최용식 칼럼

복지가 포퓨리즘?

일취월장7 2011. 1. 20. 18:44

복지가 포퓨리즘?
: 최용식   : 2011-01-16 : : 161
 

복지제도는 현대사회의 특징이다. 비록 최근에는 다소 후퇴했지만 장기적으로 살펴보면 복지를 위한 정부지출이 20세기 이후처럼 컸던 적은 과거 역사에는 없었다. 물론 미국과 영국 경제가 1970년대 이후에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에 빠져들면서 과다한 복지비 지출이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고 실업률과 물가상승률만 높인다는 인식이 일반화되었고, 복지비 지출의 축소가 성장잠재력과 국제경쟁력을 회복시키는 첩경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복지비 지출이 꾸준히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성장률을 구가했던 나라가 있었다는 사실은 흔히 간과되었다. 그런 대표적인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의 복지비 지출은 세계대전 직후에는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1950년대부터 꾸준히 증가하여 1975년에는 국내총생산의 9%에 이르렀다. 이 수준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외치며 세계대전 직후부터 복지비 지출을 마냥 확대했던 1960년대 초의 영국과 비슷했다. 그런데 세계대전의 승전국이었던 영국 경제는 왜 쇠락의 길로 들어섰고, 반면에 패전국이었던 일본 경제는 복지비 지출을 꾸준히 확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고도성장을 지속했을까? 일본은 각종 연기금을 세계 최대 규모로 키웠을 정도로 복지비 지출을 계속 확대했는데, 왜 1980년대 말까지 고도성장을 지속했을까? 그 답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견줘보면 비교적 쉽게 찾아질 수 있다.

인간은 돈을 쓰기 위해 돈을 번다. 돈을 쓰는 것은 목적이고 돈을 버는 것은 수단인 셈이다. 만약 목적을 위해 수단을 외면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쉽게 말해, 버는 것보다 더 많이 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연히 머지않아 파산한다. 아무리 적게 벌더라도 쓰는 것이 더 적으면 부자가 되고, 아무리 많이 벌더라도 더 많이 쓰면 거지가 되는 것이다. 국가경제도 마찬가지이다. 복지가 아무리 지고지선의 정책목표일지라도, 소득이 증가하는 것보다 더 많이 지출하면 결국은 파탄을 면치 못한다. 파탄에 이르기 훨씬 이전에 성장률은 낮아지고 물가는 상승하며 실업률은 높아지는 등 심각한 경제난이 찾아온다. 한마디로, 영국 경제는 버는 것보다 더 많이 복지비를 지출했기 때문에 경제난이 찾아왔고, 일본경제는 버는 것보다 더 적게 복지비를 지출했기 때문에 고도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른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2002년 10월에 부시 정권은 ‘우리의 바람은 미국인 모두가 저마다 집을 소유하는 것이다’라고 선언하고, 저소득층 550만 명에게 새로운 주택소유자로 만들기 위해 2003년 ‘아메리카 드림 지원법’을 제정했다. 그 결과는 참혹하여 2008년에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터졌고 금융시스템 위기가 발생하면서 미국경제는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관련된 파생금융상품을 대규모로 매입했던 다른 나라들도 큰 손실을 입었고, 미국의 금융위기는 세계 각국으로 전염되었으며, 대부분의 나라들이 마이너스 성장을 해야 했다. 폴란드, 헝가리, 그리스, 아일랜드 등 경상수지가 대규모 적자였던 나라들은 더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위와 같이 미국에서는 못 사는 사람들의 주택 매입을 지원했던 정책이 비극적인 결말을 빚는 데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반대로, 미국과 똑같은 경제정책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금융위기를 겪지 않았던 나라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영국을 들 수 있다. 1980년대에 대처정권은 150만 명을 주택 소유자로 만들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영국경제는 괄목할만한 경제성적을 기록했다. 1970년대까지 영국경제는 독일 경제에 계속적으로 뒤처지기만 했는데, 1980년대 이후부터는 차츰 따라잡기 시작하여 2000년대에 들어선 뒤에는 드디어 독일을 추월했던 것이다. 왜 이처럼 상반된 일이 벌어졌을까?

여기에는 재정수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영국은 재정수지를 건전화시켰기 때문에, 즉 버는 범위 안에서 돈을 썼기 때문에 금융위기가 발생하지 않았고 오히려 경제호조를 지속할 수 있었다. 반면에, 미국은 버는 것보다 더 많이 썼기 때문에 재정수지가 결정적으로 악화되었고, 이에 따라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심각한 경제난이 뒤따랐다. 진짜로 그랬을까? 미국은 재정지출을 급증시킴으로써 재정수지를 악화시켰고, 이에 따라 국채발행이 급증했다. 국채발행이 급증하자 시장금리는 머지않아 상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장금리가 상승하자 주택담보 대출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었고, 주택담보대출과 관련한 파생금융상품의 가격은 폭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파생금융상품의 가격 폭락은 각종 금융회사의 경영수지를 악화시켰고,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투자은행들이었다. 베어스턴스가 무너지고 리먼브라더스가 도산하면서 결국은 금융시스템 위기로 발전하고 말았다.

위와 같은 사례들은 어떤 가르침을 우리에게 던져줄까? 한 마디로 사회복지제도의 확충이 결정적인 문제는 아니라는 사실을 시사해준다. 즉, 사회복지비 지출을 확대하더라도 국가경제가 더 많이 벌어들일 수 있다면, 이것이 오히려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다만, 돈을 버는 데에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 가운데 복지만 내세우는 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이다. 지속가능한 범위 안에서 경제를 더 빨리 성장시켜야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고, 돈을 더 많이 벌어야 복지비 지출을 더 키울 수 있지 않겠는가?

더 어이없는 일은, 경제를 번영시키는 데에는 무능하기 짝이 없고 오로지 재정적자를 키우는 데에만 유능한 자들이 복지를 포퓨리즘으로 몰아세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친서민 정책, 인위적인 일자리 창출, 운 좋은 사람들에 대한 주택의 공급 등을 내세워 부채를 눈덩이 구르듯이 키운 자들이 오히려 복지를 비난하고 있다. 이 세상에는 땀을 흘리지 않고 이룰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을 외면한 채 환율 인상이라는 손쉬운 방법으로 경제를 살리겠다고 억지를 쓰는 자들이 그들이 아닌가. 그들이 어떻게 더 많이 벌 수 있겠는가? 다른 한 편에서는 돈 버는 일에는 관심도 기울이지 않고 오로지 복지만 내세우고 있으니, 이것은 또 어떻게 봐야 하겠는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