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식 칼럼

장하준만 몰랐던 23가지 이야기

일취월장7 2011. 1. 5. 17:47

장하준만 몰랐던 23가지 이야기
: 최용식   : 2010-12-31 : : 136

장하준 교수(이하 장하준이라 표기)와 21세기경제학연구소의 공통점을 두 가지 꼽을 수 있다. 가장 크게 공유하는 부분은 기존 경제학에 대한 반성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이해하기 쉬운 경제학”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대부분 차이점을 보인다. 접근하는 큰 틀에서 동의하는데, 왜 기존 경제학보다 더 크게 차이를 보이는 것일까? 세 가지 측면에서, 즉 장하준의 최근 태도, 경제학적 모델의 차이, 그리고 구체적으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이하 생략)에 대해 따져보고자 한다.


장하준은 “자유 시장 경제학(또는 자본주의)”에 의문을 제기한다. 물론 “자본주의가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좋은 경제 시스템”(14쪽)이라고 인정한다. 자유 시장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엄밀하게 규정된 자유 시장의 경계가 없”고(29쪽), 그 경계를 만드는 것은 시장의 옆이나 밑에 있는 규제라고 보는 제도학파의 통찰 때문이다. 그러니 규제(또는 제도)를 만드는 것은 국가라고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결국 시장에 맡겨두지 말고, 대신 “국가의 역할”(장하준의 주저)에 대해 강조한다. 시장에 대해 깊고 넓은 통찰이 아쉽다. (“아담 스미스와 시장” 참고, 아담 스미스가 얼마나 시장에 대해 설명하려고 공을 들였는지 설명하고자 했다.)


장하준이 최근 점점 강조하는 것은 “복지국가”이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언론과 한나라당이 참여정부 시절, 참여정부의 실패를 포퓰리즘, 특히 "큰 정부“에 대해 비판을 했었는데, 그 당시 장하준은 신자유주의와 더불어 FTA와 동북아금융허브에 대해 참여정부를 비판했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추구하는 복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찬성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장하준이 이번 책에서 가장 공들여 쓴 부분중 하나가 "큰 정부는 변화를 더 쉽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는 21번째 사실이다.


사정이 반전되어, 이명박 정부가 4대강 토목사업을 무모하게 추진하자, 일부 진보는 그 예산을 “복지예산”으로 쓰는 것이 더 좋다고 주장하고, 게다가 2008년 2/4분기 이후 물가불안과 환율변동으로 경기 하강세가 두드러지고 2009년 0.2% 성장을 하면서 어려운 사람들은 더 어려워졌다. 그 과정에서 무상급식 논란과 더불어 3년 연속 예산 날치기를 하면서 특정 지역에 대한 예산은 늘리고, 일부 복지예산은 줄였으니 "복지"가 이슈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장하준은 2009년 4월 및 2010년 12월 27일 두 차례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이 주최하는 강연에서 “복지국가라는게 흔히 좌파정책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복지국가를 제일 먼저 만든 사람이 독일의 유명한 보수 정치가 비스마르크”라고 했다. 평소 박정희식 국가주도 경제모델을 강하게 긍정한 그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복지국가도 항상 좋기만 한 것은 아니”(299쪽)라고 한 발 빼며, “미국의 근로 빈곤층 문제만큼이나 유럽의 전반적으로 높은 실업률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잘 설계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종류의 복지제도는 변화에 더 개방적일 수 있는 여유를 줘서 산업 구조조정이 쉬워지기 때문에 경제 발전을 촉진시”킨다고 주장한다. 비유적으로 “차를 빨리 몰 수 있는 것은 브레이크가 있기 때문이”(300쪽)며, 복지국가가 경제를 빨리 성장할 수 있기 위한 브레이크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역사를 조금이나마 아는 사람은, 국가를 거대한 배에 비유한다. 최근에 오바마가 국가를 유조선에 비유한 것이 기억난다.


복지국가에 대해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면, 경제에 브레이크가 아닌 악셀레이터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최초의 복지국가는 1970년을 전후해서 등장했”는데, 그 당시 “치솟는 인플레, 세계통화 공급량의 급증, 미국의 막대한 적자에 의해서 촉진된 열병에 가까운 것”, 즉 “체제가 ‘과열’ 되었”(극단의 시대, 395-398쪽)었다. 이에 복지국가는 악셀레이터를 더 밟은 것이다. 점점 세계경제는 과열돼 오일쇼크가 오게 되었다. 거꾸로 브레이크가 된 것이 신자유주의였는데, 맑스주의 역사가인 홉스봄조차 “배들의 선체를 덮고 있던 외피를 벗겨내는 데에 신자유주의라는 세척제를 써서 유익한 결과를 가져올 여지는 상당히 많았다”(극단의 시대, 566쪽)고 인정한다.


좀 더 홉스봄의 말을 살펴보면, “미국의 헤게모니가 쇠락”(극단의 시대, 396쪽) 하면서 유럽 복지국가의 축이 사라졌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매력적이면서 냉정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실용주의적인 스칸디나비아인들이 민간부문을 건드리지 않았”(극단의 시대, 379쪽)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그마저도 “일시적”이어서 “가장 우수한 사회민주주의 국가” 모델이었던 “스웨덴 모델은 1980년대 중반부터는 폐기되었다”.(극단의 시대, 565쪽) 심지어 “핀란드에서 1990년대 초의 경제난이 1930년대의 경제난(대공황)보다 심하다는 고백을 듣는다”.(극단의 시대, 556쪽)


(필자가 보는) 기존 경제학을 단순하게 묘사하면, (하나의) 가격은 단일소득 모델에 의해 결정되고, (하나의) 소득은 단일체제 모델에 의해 결정된다. 이에 대해 “최용식경제학”은 가격-소득-체제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한다. 그런데 장하준은 간혹 중간(특히 소득부분)을 생략하고, 즉 가격에서 제도(단일체제 모델)로 바로 뛰어버렸다. 오히려 기존 경제학의 문제가 더 엉키게 되는 것이다. 문제가 있다고 피하면 오히려 문제는 더 커지는 법이다.


그 대표적 예로, “보호주의 덕택 즉 이민 통제 정책 때문에 스웨덴 노동자들은 인도를 비롯한 가난한 나라의 노동자들과 직접 경쟁하지 않아도 되”(51쪽)고, 그래서 “선진국에서 임금을 결정하는 데에는 최저 임금법을 포함해 다른 무엇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이민 정책”(24쪽)이 되며, “다른 모든 가격에 영향을 주는 임금과 이자율이 상당 부분 정치적으로 결정된다면, 궁극적으로 모든 가격이 정치(제도, 국가)를 통해 결정된다”(25쪽)고 주장한다. 가격에서 제도로 뛰어버린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임금이 올바르게 되기 위해 국가의 역할을 줄여야 하는데, 앞에서 말한 장하준의 주장("경제의 역활"의 증대)과 모순이 됨을 보여주는 예다. 역으로 장하준 현상이 우리사회의 병리적인 현상을 반영하는 한 예라고 보고 싶다. 


차이점이 대다수인 만큼 ‘장하준이 알려주는 23가지 사실’에 대해 모두 지적해야 올바르나, 하나라도 제대로 지적하고 싶다.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는 도발적인 네 번째 사실을 살펴보자. 첫째 장하준이 말하려고 하는 것은 세탁기로 상징하는 “구닥다리 제조업”의 중요성을 역설하고(66쪽), 인터넷으로 상징하는 기술 혁명을 냉정하게 바라보자는 뜻이다. 그런데 냉정하게 보면 세탁기도 “기술 혁신”의 한 결과물이며, “기술 혁신”이 끝나지 않고 계속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기술혁신이 계속되게 하는 것은 “경제적 과학기술수준”이 아닌가.


둘째 “세탁기를 비롯한 가전제품이 집안일에 들이는 노동 시간을 대폭 줄여 줌으로써 여성들의 노동 시장 진출을 촉진했고, 가사 노동자(가정부) 같은 직업을 사라지게 만들었”(58쪽)으며, “여성들의 지위도 높아졌다”(62쪽)고 지적한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은 “여성고용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던 -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일시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영구적으로 - 것이 양차대전”(극단의 시대, 70쪽)이라는 사실이다. 더욱이 “가난하고 생활비가 부족한 기혼여성들이 1945년 이후에 일하러 나간 이유는 거칠게 말하면, 아이들이 더 이상 일하러 나가지 않”아 “어머니들이 아이들 대신 일했”기 때문이다. 물론 “가사 허드렛일이 상당한 기계화(특히 세탁기)와 인스턴트 식품으로 더욱 쉽게 해주었지”(극단의 시대, 441쪽)만 이는 작은 부분이었다고 홉스봄은 뼈아프게 말한다.


셋째 “인터넷이 혁명적인 기술인지 회의적”(64쪽)이며, 오히려 “보잘것없는 (그나마 무선도 아니라 유선) 전보에도 상대가 안 되는 것”(65쪽)이라는 글에는 할 말이 없어진다. 자본주의의 역사를 과연 알기는 하는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페르낭 브로델은 자본주의를 만든 것을 세 가지로 드는데, 바로 두 번째가 상인의 “교육과 정보”라고 지적한다. “정보가 교육보다 더 중요하며, 여기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정보원은 바로 서신”이었다고 지적한다. “상인은 밤이나 낮이나 편지를 쓰”고, 늘 “손가락에 잉크를 묻히고 있는 것이 전통적인 (서양의) 상인의 이미지”(물질문명Ⅱ, 578-579쪽)였다는 것이다. 요컨대, 정보원이 서신에서  이메일-인터넷으로 변하는 거대한 흐름이 있는 것이다. (중간에 우편이 있음. 우편의 연장선상, 또는 보조적인 수단으로 전보가 있다) 물론 이는 가장 기본적인 인터넷 서비스에 대해 설명한 것에 불과하며, 인터넷의 가능성에 대해서 필자는 충분히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한가지 덧붙이면, "1960년대 젊은 남녀들 및 그들의 선생은 초국적이어서 쉽고 빠르게 국경을 넘나들며 사고와 경험을 교류했고, 아마도 정부보다 쉽게 통신기술을 다루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표현하는 데에 유례 없이 효과적인 힘을 발휘했다". 그리하여 "1917년 이후 혁명가들이 꿈꾸었던 동시적인 세계 대격변에 해당하는 것이 딱 한 번 있었다면 그 시기는 1968년이 될 것이다"(극단의 시대, 413-414쪽)라고 홉스봄은 말한다. 


하나만 지적하고 끝맺고자 했으나,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어, 한가지 더 지적하고자 한다. 열아홉 번째 사실인 “우리는 여전히 계획경제 속에서 살고 있다”(263쪽)가 그것이다. 1991년 소련의 붕괴로 “인류의 상황을 관리하거나 개선하기 위한 모든 기획(또는 계획)은 명백히 실패했다”(극단의 시대, 769쪽)고 장하준도 인정하고, 홉스봄도 인정한다. 그러나 장하준은 “계획도 계획 나름”이라며, “유도 계획”, 즉 “주요 경제 변수에 관해 대강의 목표를 세운 다음 민간 부분과 충돌이 아닌 협조를 통해 그 목표를 이루려 노력을 기울이는 방법”(269쪽)은 효과적이었다고 말한다. 장하준이 유도 계획의 대표적 사례로 소개한 프랑스조차 “1980년대 초에 경기부양책을 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극단의 시대, 566쪽) 요컨대 유도 계획은 경기부양책과 다를 바가 없다. 국민소득 1만달러-OECD 가입을 목표로 유도 계획을 세운 김영삼 정권이 결국 외환위기를 겪게 되었는데, 장하준은 깨닫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그뿐만이 아니다. 다음부분은 더하다. “아버지 부시” 말을 소개(272쪽)하면서, CEO가 ‘계획을 하는 사람’(273쪽)이며, 심지어 “기업들은 사업 계획을 세우”는데, “그것도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273쪽) 세우듯이 국가도 그러해야 한다고 말한다. CEO 대통령에다 세세한 계획까지! 소망교회 장로님이 생각나지 않은가.


“맑스가 경제 전반을 중앙에서 계획한다는 아이디어를 얻은 것은 바로 기업들이 세우는 사업 계획에서였다”(273쪽)는 것은 심각한 오해가 있다. 극렬 맑스주의자인 홉스봄은 “‘계획’이나 중공업 위주의 급속한 산업화에 대한 어떠한 논의도 맑스와 엥겔스의 저작들에서 볼 수 없”으며, "계획에 대한 레닌의 생각에 영감을 준 것은 1914-18년의 독일의 전시경제(그 당시 수준으로도 최선의 모델이 아니었다)“(극단의 시대, 519-520쪽)라고 고백한다. 요컨대 계획이나 중공업 위주 산업화는 1차대전 당시, 전쟁을 통해 싹텄다는 것이다.


홉스봄의 말을 인용하면서 끝맺고자 한다. “복잡하게 뒤얽힌 현대경제에서 일단의  목표들의 설정이 반드시, 다른 목표들의 설정으로 곧장 이어지지는 않”(극단의 시대, 526쪽)으며, “생존과 아마도 성공에 이르는 길은 좋은 의도보다는 현실주의라는 딱딱한 자갈로 덮여 있다”(극단의 시대, 673쪽)고 충고한다. 

 

P.S.

"23가지"란 제목을 붙인 만큼, 가급적이면 나머지 이야기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중에서 "열번째 사실:아프리카의 저개발은 숙명이 아니다" 등 무역과 아프리카의 저성장에 관련되서는 이강년 연구원이 저보다 훨씬 안목이 높기 때문에 글을 부탁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