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식 칼럼

탁월한 성과를 남긴 G20 정상회의?

일취월장7 2010. 11. 19. 14:04

탁월한 성과를 남긴 G20 정상회의?
: 최용식   : 2010-11-13 : : 127
  

공중파 방송3사의 보도를 보면, 이번 서울 G20정상회의가 눈부신 성과를 거둔 것처럼 보인다. 그 찬양이 낯간지러울 정도이다. 그러나 내 눈에는 이번 회의가 ’아무런 합의도 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으로만 보인다. 굳이 성과를 따지자면 ‘세계 정치지도자들을 위해 큰돈을 들여 잔치를 벌인 것’ 정도가 아닐까? 주목을 끌만한 합의 내용은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특히 이번 회의의 핵심쟁점이었던 환율전쟁은 해결의 실마리를 전혀 찾지 못했다.

폐막하던 날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은 “주요 기축통화국들은 책임 있는 정책을 실행해야 하며 환율도 상대적으로 안정을 유지해야 한다”고 연설했고,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중국은 위안화 저평가를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부으며 시장에 개입하고 있다”며 ‘무역흑자 국가들은 경제현실을 자국 환율에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전히 환율전쟁은 언제든지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환율전쟁은 세계대공황과 같은 파국을 불러올 수도 있다며 대부분의 세계적인 경제전문가들이 가장 심각하게 우려하는 문제가 아니던가.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의장국인 우리나라가 환율전쟁을 촉발하는 일을 벌였다는 데에 있다. 폐막하는 날 신현송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은 미디어센터 브리핑을 통해 “외환시장이 펀더멘털을 벗어나 무질서하게 움직이면 정부가 개입할 수 있다‘고 언급했고, 이날 우리 환율은 하루에 무려 19.9원이 폭등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환율이 지나치게 높은 수준이라는 불평이 특히 일본과 대만을 중심으로 터져 나오는 상황이 아니던가. 중국조차도 우리나라 환율방어를 물고 늘어지지 않았던가.

신현송 보좌관의 위와 같은 발언은 여러 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첫째는, 그동안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던 정부의 환율방어가 이제는 한계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스스로 밝힌 꼴이다. 이제는 금융시스템 안정을 내세워 외환시장을 제도적으로 규제하겠다지만, 이것이 장기적으로 성공할지는 미지수이다. 아니, 현재 거론되는 방법들로는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 빤하다. 환율 하락의 근본 원인은 국제 핫머니의 유입이 아니라, 경상수지의 대규모 흑자이기 때문이다. 그의 발언은 '환율을 다시 높게 끌어올려 놓을 테니 외국자본은 더 많은 돈을 벌어가라'고 유혹한 것이나 다름없다.

둘째, 제도적 규제의 주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보좌관이 굳이 나섰다는 데에도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 문제를 제기하려면 제도적 규제의 주체인 기획재정부 장관이 나섰어야 했다. 그런데 왜 청와대 보좌관이 굳이 나섰을까? 개인적인 공명심 때문이라면 그나마 문제의 심각성이 덜하다. 만약 청와대 보좌관이 자신의 의지를 기획재정부에게 강요하려고 했다면 이것은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셋째, 청와대 보좌관이 언급한 펀더멘털은 지나치게 자의적이다. 환율의 펀더멘탈은 경상수지이고, 우리나라의 경상수지는 대규모 흑자가 아니던가. 그런데 펀더멘털을 내세워 환율을 기어이 방어하겠다? 이것은 펀더멘털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만약 다른 나라들도 펀더멘털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환율전쟁을 확산시킨다면, 우리나라가 대응할 수단은 무엇인가? 환율전쟁이 확산되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나라가 과연 어디인가?

넷째, 정책적인 환율방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책당국이 시장보다 유능해야 한다. 그러나 정책당국은 지금까지 전혀 유능하지 못했다. 지난해 5월에는 환율 1,300원을 방어하기 위해 불과 한 달 동안에 무려 143억 달러를 시장에서 거둬들였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올해 5월에는 그리스 금융위기를 계기로 1,100원대였던 환율을 1,250원대까지 끌어올려 놓았지만, 그 뒤로 계속 하락하여 최근에는 1,100원대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환율을 방어하지도 못하면서 터무니없게 비싼 값으로 외환을 사들여 큰 손실을 입은 꼴이다.

더욱이 정책당국은 2009년도 경상수지 흑자가 427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며, 2010년 무역수지 흑자를 200억 달러로 전망했지만 이것은 이미 상반기에 초과달성되었다. 정책당국은 내년도 환율을 1,150원으로 전망하고 경제운용계획을 세웠지만, 이 전망 역시 이미 무참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한마디로 그들은 환율을 성공적으로 방어할 정도로 유능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섯째,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의 발언이 환율주권을 암묵적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환율 주권을 내세우는 것은 우리나라가 환율을 조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또한 다른 나라들에게 무차별적인 보복조치를 얼마든지 취해도 좋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WTO와 IMF는 모두 환율조작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섯째, 지난 7월초 정부는 IMF의 한국경제 미션단과 ‘환율방어는 급격한 환율변동을 제어하는 수준’으로 제한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다시 말해 공격적인 환율방어는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신현송 보좌관의 발언이 공표된 직후 우리 환율은 하루에만 20원이 급등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공격적인 환율방어를 한 셈이었다. 즉, IMF 미션단과의 합의를 어긴 것이다. 국제적인 합의가 어겨졌을 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IMF가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해도 우리나라는 아무런 대응수단도 마련할 수 없게 되지 않았는가.

일곱째, 환율방어가 경제적 성과라도 남기면 그나마 당위성이 주어질 수 있다. 그러나 환율이 상승하면 수출은 오히려 감소하여 경기가 하강했고, 환율이 하락하면 수출은 오히려 증가하여 경기가 상승했던 것이 그동안의 역사적 경험이다. 2001년에는 원화 가치가 12.4% 하락했지만, 수출은 12.7%나 줄어들었고, 2009년에는 원화 가치가 13.6%나 하락했지만, 수출은 13.9%나 줄었다. 반면에, 2001년말 1,326원이었던 환율이 2007년 10월말에는 907원까지 떨어졌어도 수출은 그동안 2.5배 이상 증가했다. 2010년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환율이 더 크게 떨어진 분기에 수출 증가율은 더 높았다. 한마디로 정책당국은 환율방어를 통해 수출을 감소시키고 경기를 하강시킨 셈이다.

끝으로, 환율방어는 그의 말대로 경제의 안정성을 위해서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만 현재까지의 환율방어는 오히려 경제의 안정성을 크게 해쳤다. 정책적으로 환율을 끌어올려 놓으면, 시장이 환율을 다시 끌어내리는 일이 반복되면서 환율의 변동 주기는 잦아지고 변동 폭마저 더 커졌다. 그 결과로 주요 원자재와 시설재의 수입이 지장을 받으면서 경제활동마저 둔화되곤 했다. 하루에 20원씩 상승했던 적이 과거에 언제 있었던가? 1년에 수백원씩 등락했던 적이 언제 있었던가? 모두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에 일어난 일이다.

이제는 제발 청와대의 관계자들이 현실을 직시해주기를 기대해마지 않는다. 통계라도 확인해가면서 경제정책을 다뤄주기를 촉구하고 싶다. 아무리 탁월한 경제학적 능력을 쌓았고 아무리 뛰어난 경력을 갖췄더라도, 경제현실을 이겨낼 수는 없다. 관념적으로 옳아 보이는 일이 현실에서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 경우가 꽤 자주 일어나지 않는가. 경제분야는 더욱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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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식소장 관련기사>

 

세계 역사에서 일어났던 환율전쟁과 그 여파를 분석한 '환율전쟁'(새빛에듀넷)이 중국의 현대출판사(Modern Press)에서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2010년 초에 출간되어, 국내에서 장기간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이 책은 최근 환율전쟁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다시 한번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현재 환율전쟁의 한 축으로 자리한 중국에서 한국의 학자가 환율전쟁의 의미를 분석한 책이 번역되었다는 점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입니다.

21세기 경제학연구소의 최용식 소장이 쓴 <환율전쟁>에는 과대평가된 파운드화로 인해 10년간의 경제불황을 감수해야 했던 영국, 낮은 환율로 세계시장에서 톡톡히 이득을 누리다가 20년 가까이 장기침체에 시달리고 있는 일본 등 환율변동이 한 나라의 경쟁력을 결정한 예를 열거하며 정책으로서의 환율의 의미를 다루어 오늘의 정책입안자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고환율정책을 반대하는 대표적인 재야 경제학자로 알려진 최용식소장은 ‘국민의 정부’ 출범시 대통령인수위원회 경제정책 멘토와 노무현대통령의 경제교사로 활약 했으며, 새빛인베스트먼트 리서치센터장과 21세기 경제학연구소장으로 활동중입니다. 최근에는 자신의 경제학 이론과 현실경제를 접목한 "최용식경제학"을 집필중입니다.

주요 저서로는 “ 경제를 보는 새로운 시각, 경제병리학"등 10여종의 저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