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식 칼럼

헌금은 좋지만 세금은 몰라요(종교인 과세) - 박근혜표 기초생활보장법 반대 이유는?

일취월장7 2014. 8. 18. 14:57

헌금은 좋지만 세금은 몰라요

2015년부터 종교인 과세가 시행될 예정이었다. 법률 개정도 추진되었다. 그러나 8월6일 발표된 세법 개정안에서는 관련 내용을 찾아볼 수 없었다. 개신교계의 심상찮은 움직임에 박근혜 정부가 물러선 것으로 분석된다.

이종태 기자  |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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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호] 승인 2014.08.18  11:03:07

 

박근혜 정부는 집권 초부터 ‘지하경제 양성화’의 한 방법으로 종교인 과세를 제안했다. 조세 형평성도 높이고 복지재정도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당초 일정에 따르면, 내년(2015년)부터 종교인에게도 본격적으로 납세의무를 부과할 예정이었다. 법률 개정도 추진되었다. 드디어 8월6일 최경환 신임 경제부총리가 ‘2014년 세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 개정안에는 종교인 과세 내용이 말끔하게 빠져 있었다.

한국에서 종교인 과세 논란의 역사는 길다. 종교인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어떤 명분도 없지만 관행적으로 납세의무를 면제해왔기 때문이다. 반발에 부딪혀 논쟁만 하다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미국 등 해외에서도 교회나 사찰 같은 종교기관이 납세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는 있다. 정교분리 원칙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기관에 종사하는 성직자가 소득세를 내지 않는 경우는 어느 정도 근대화가 진전된 국가 중에서는 한국밖에 없다(<시사IN> 제210호 “어린 양은 ‘유상’인데 목자는 ‘무상’이니” 기사 참조). 한국 세법에도 ‘납세의무에서 종교인을 제외한다’는 조항은 없다. 국세청이 직무를 방기해온 것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자료</font></div>한국 세법에는 ‘납세의무에서 종교인을 제외한다’는 조항이 없다. 성직자가 소득세를 내지 않는 경우는 근대화가 진전된 국가 중에서는 한국밖에 없다.  
ⓒ시사IN 자료
한국 세법에는 ‘납세의무에서 종교인을 제외한다’는 조항이 없다. 성직자가 소득세를 내지 않는 경우는 근대화가 진전된 국가 중에서는 한국밖에 없다.

2000년대 중반부터 ‘종교인도 세금을 내자’는 사회운동이 시작되었다. 2012년 초부터 정부·여당도 종교인 과세 문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분위기 조성에 앞장섰다. 박근혜 정부 초기에는 종교인 과세가 기정사실이 되었다.

종교계도 내놓고 제동을 걸지는 못했다. 천주교와 불교 성직자들은 이미 소득세를 내고 있거나 수용 의견을 밝혔다. 개신교 쪽에서도 보수 성향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외에는 대체로 수긍하는 눈치였다. 무상급식·무상보육 같은 복지정책을 ‘공짜 포퓰리즘’이라며 격렬히 비난해온 보수 성향의 개신교계가 다른 국민의 세금으로 제공되는 국방, 경찰, 교통 등 공공 서비스를 ‘공짜’로 누리겠다는 것이 기이한 일이기는 하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는 2015년 시행을 목표로 종교인 과세의 입법화를 추진해왔다. 반발을 의식해서인지 성직자들의 세금 부담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한 흔적도 눈에 띈다. 무엇보다 종교인들의 수입을 세법상 ‘근로소득’이 아니라 ‘기타소득’으로 분류했다. 이 같은 분류는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내게 되는 세금이 어느 정도인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근로소득은 노동력을 제공한 대가로 받는 돈이다. 특정 사업체에서 일하면 정기적이고 규칙적으로 받을 수 있는 임금·상여금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소득세가 이런 근로소득 전액을 기반으로 산출되는 것은 아니다. 근로소득 중 일부를 ‘삶에 필수적인 경비’로 간주해서 뺀(공제한) 다음, 남은 금액(과세표준)에만 일정 비율(세율)을 곱해서 소득세 규모를 결정한다. 연봉이 3000만원인 노동자의 경우, 연봉의 15%인 450만원을 제외하고 남는 2550만원(3000만원-450만원)에만 세금을 부과한다는 의미다(실제 과정은 좀 더 복잡하지만 설명의 편의를 위해 생략한다). 이처럼 세율을 적용하기 전에 소득 전액 중 ‘제외하는 몫’을 ‘공제율’이라고 부른다. 공제율이 클수록 납세자에게 유리하다. 또한 소득이 적을수록 공제율이 높다. 현행 세법에서는, 총급여액이 500만원 이하인 근로소득자의 공제율은 70%에 달하지만, 500만~1500만원은 40%, 1500만~4500만원은 15%, 4500만~1억원은 5%, 1억원 이상은 2%다.

근로소득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원천징수’다. 사업체 측이 근로소득자에게 임금이나 상여금을 주는 경우, 미리 소득세를 뗀다. 덕분에 국세청은 근로소득자가 어느 정도의 돈을 버는지 훤히 알 수 있다. ‘월급쟁이’의 살림을 유리지갑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사진공동취재단</font></div>박근혜 정부는 초기 조세 형평성과 복지재정 마련을 명분으로 종교인 과세를 기정사실화했었다.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정부는 초기 조세 형평성과 복지재정 마련을 명분으로 종교인 과세를 기정사실화했었다.
이에 비해 ‘기타소득(종교인에게 적용하기로 했던)’은 한마디로 ‘어쩌다 번 돈’을 가리킨다. 우연히 줍게 된 남의 지갑을 돌려주고 받는 사례금, 현상수배자를 신고하고 받는 상금, 배상금, 강연료 등 일시적이고 우발적으로 들어온 수입이 기타소득에 해당된다. 기타소득의 공제율은 세법상 80%다. 1000만원의 기타소득이 들어왔다면 이 중 800만원을 제외한 200만원에 대해서만 세금을 낸다는 의미다. 납세자 처지에서는 근로소득보다 훨씬 유리하다. 지난해 11월 초 신설된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은 “종교 관련 종사자로서의 활동과 관련하여 받는 금품”을 기타소득으로 규정했다. 어떤 목회자가 특정 교회에 소속되어 일하며 매달 규칙적으로 월급을 받는다 해도(통상적으로는 엄연한 근로소득이다), 이를 기타소득으로 간주해 80% 공제율을 적용하겠다는 의미다.

예컨대 연봉 1억원을 받는 회사원은, 2% (200만원)를 뺀 9800만원을 기반으로 ‘근로소득세’를 내야 한다. 그러나 같은 연봉의 대형 교회 목사는 80%(8000만원)를 공제한 2000만원에 대해서만 ‘기타소득세’를 납부하면 된다. 국회예산정책처에서 낸 <2013년 세법개정안 분석>(2013년 10월 발간)은 “고소득 종교인의 경우 다른 고소득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세금 부담을 지게 된다”라면서 조세 형평성 원칙의 파괴를 우려하기도 했다. 이 정도로 박근혜 정부의 방안은 종교계를 크게 배려한 것이었다.

세법 개정안 원칙 중 하나는 ‘공평 과세’인데…

그럼에도 한기총을 비롯한 보수 개신교 측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성직자는 ‘대가를 얻기 위해 일하는’ 노동자가 아니며, 신도들이 이미 세금을 내고 남은 수입으로 낸 헌금(이 중 일부가 종교인의 수입이 된다)에 다시 세금을 물리는 ‘이중 과세’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 논리대로라면, 대한민국 국민 중 누구도 소득세를 낼 필요가 없다. 누군가의 수입은 다른 누군가가 세금을 낸 뒤 남은 돈으로 사용한 지출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임시국회를 앞두고는 한국기독교시민총연합이라는 단체가 종교인 과세에 주도적 구실을 한 정당과 정치인에 대해 낙선운동을 벌이겠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박근혜 정부는 다시 한발 물러섰다. 지난해 개정안에는 포함되었던 원천징수 조항을 삭제했다. 근로소득과 달리 종교인의 기타소득에 대해서는 각자 알아서 자발적으로 신고하고 납부하라는 의미다. 가난한 종교인들에 대해서는 근로장려금(EITC) 혜택도 부여하기로 했다.

그런데도 반발이 가라앉지 않았던 모양이다. 지난 7월 말 정부·여당은 일제히 ‘공감대 형성 미흡’ ‘시기 부적절’ 따위 발언을 쏟아냈다. 최경환 부총리는 “종교인 간에 먼저 컨센서스(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인 정희수 의원(새누리당)이 “종교인에게 과세할 경우 이중 과세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희수 의원실은 오보라며 “인터뷰 중에 이중 과세 이야기가 나와서 단지 ‘신중하게 접근할 문제’라고 했는데 (종교인 과세에) 반대한다는 기사가 나와 곤혹스럽다”라고 <시사IN>에 해명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관계자는 “정부의 최종안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먼저 나서는 것이 적절하지 않아 관망 중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여야 모두 종교인 과세에 적극적이지 않다. ‘2014년 세법 개정안’에서 종교인 과세가 도려내진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던 셈이다. 세법 개정안의 3대 원칙 중 하나는 ‘공평 과세’였다.

교회개혁실천연대 최호윤 회계사는 “기획재정부가 목회자들의 소득을 굳이 기타소득으로 분류해 과세하려 했다면 먼저 소득세법을 개정한 뒤 이에 맞춰 시행령을 바꿔야 했다. 그러나 뭔가에 떠밀린 듯 시행령부터 바꾸고 법률 개정을 시도하면서 상황이 꼬여버렸다”라고 말했다.

 

박근혜표 기초생활보장법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기초생활보장제도 개혁, 수급선정기준이 핵심

남재욱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박사과정, 내만복 연구모임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8.18 14:26:45

 

"내 아버지의 꿈은 복지국가 건설이었다." 정치권에 복지 열풍이 거세던 지난 2009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자신의 최대의 정치적 자산인 '아버지'까지 동원해 복지 바람에 올라탔다. 그 기세를 몰아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제시하며 대통령직에 올랐지만,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 원 보장', '4대 중증질환 100% 국가 책임'과 같은 핵심적인 복지공약은 차례차례 후퇴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 개혁 마지막 카드 : 기초생활보장제

아직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고 손대지 않은 복지정책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우리 사회의 최후 안전망으로 지난 2000년 도입 이후 중요한 역할을 해왔지만, 너무 넓은 사각지대와 낮은 급여 수준이 계속 문제로 지적됐다. 특히 지난 봄 '송파구 세 모녀 죽음'을 계기로 제도 개선에 대한 여론도 높아졌다. 정부도 여당 의원을 동원한 의원 입법의 형태로나마 개정안을 제시하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기초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내세운 기초법 개정의 방향은 '맞춤형 개별급여'로 요약된다. 지난 13일 국회 토론회에서 보건복지부가 밝힌 내용(<복지 사각지대 해소대책과 과제>)에 따르면 정부 여당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칙에 기초한 제도 개편을 추진 중이다.

▲ 세 모녀가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이라는 메모와 함께 남긴 현금 봉투. ⓒ서울지방경찰청

▲ 세 모녀가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이라는 메모와 함께 남긴 현금 봉투. ⓒ서울지방경찰청


정부법 개정안, '맞춤형 개별급여' 도입에 초점

첫째, 현재 최저생계비를 중심으로 일괄적으로 결정되는 수급 선정 기준을 급여별로 다층화하여 탈수급 유인을 제고한다. 둘째, 급여별 특성과 상대적 빈곤 관점을 반영하여 보장성을 적정화한다. 셋째,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하여 기초생활보장 사각지대를 해소한다.

이와 같은 원칙에 기초한 급여별 개정 방안은 다음과 같다. 우선 급여별 수급 선정 기준이 제시됐다. 생계급여는 종전의 최저생계비 대신 중위소득 30% 이하라는 상대빈곤을 기준으로 지급한다. 의료급여는 중위소득 40% 이하, 주거급여는 중위소득 43% 이하의 가구에 대해 실제 임차료 또는 주택수선유지비를 지급한다. 교육급여는 중위소득 50% 이하의 대상자들에게 제공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온 부양의무자 기준에 대해서는 부양의무자 소득기준 완화를 제시하였다. 현재의 부양의무자 제도는 부양의무자 가구의 소득 수준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부양의무 미약' 또는 '부양의무 있음'으로 구분되어 적용된다. 

(1) 부양능력 미약 : 부양의무자 가구의 소득이 해당 가구 최저생계비의 130%를 넘을 경우
(2) 부양능력 있음 : 부양의무자 가구 소득이 해당 가구 최저생계비와 수급자 가구 최저생계비를 합산한 것의 130%를 넘을 경우 부양능력 있음(단, 취약가구는 185% 기준)

부양능력 미약으로 판정된 경우 실제 부양 여부와 상관없이 수급자에게 일정액의 부양비가 지원되는 것으로 보는데 이를 '간주부양비'라고 한다. 간주부양비는 부양의무자 실제 소득에서 부양의무자 가구 최저생계비의 130%를 뺀 금액에 30%의 부양율을 곱하여 산정한다(혼인한 딸이나 취약계층이 부양의무자인 경우 15%). 이 금액의 수준과 수급자의 소득 수준에 따라 생계급여 지급액이 차감되거나 수급 자격이 박탈될 수도 있다. '부양능력 있음'으로 판정된 경우는 수급 자격이 박탈된다.

정부의 개정안은 이와 같은 기준을 완화하여 부양능력 미약은 부양가구 최저생계비의 185%로, 부양능력 있음은 중위소득과 수급자 가구 최저생계비를 더한 수준으로 상향 조정하여 완화하겠다는 것이다(그림 참조).

▲ 보건복지부가 올해 발표한 <복지 사각지대 해소대책과 과제> 일부.

▲ 보건복지부가 올해 발표한 <복지 사각지대 해소대책과 과제> 일부.


여야 의견 상당히 근접한 듯

한편 새정치민주연합은 기초생활보장제도 개선 방안에 대해 의원별로 상이한 견해를 보이나 공통 요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상대빈곤선 기준을 법안에 명기하여 행정부가 자의적으로 기준을 정하지 못하도록 한다. 둘째, 부양의무자 기준에 대한 추가적 완화가 필요하다. 부양의무자 기준의 추가적 완화 내용으로는 부양 능력 미약을 없애는 것과 1촌의 배우자(즉, 며느리와 사위)에 대한 부양의무 완화, 노인 등 취약계층의 부양의무 면제 등이 거론된다. 그 밖에는 현재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대한 심의, 의결기구인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역할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하였다.

이처럼 현재 여야 간에는 상대빈곤선의 법안 명기 여부와 부양의무자 기준과 관련한 이견이 있다. 하지만 정부와 새누리당에서 상대빈곤선의 법안 명기를 수용할 경우, 야당의 부양의무자 기준에 대한 입장이 정부 안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도 있다.

핵심 문제인 수급 선정 기준 논의가 빠져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정부의 개정안과 여야 간의 논의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가장 긴급하고 중요한 문제를 제대로 다루고 있지 못하다. 정부의 개편안은 수급 선정 기준의 개선이 아닌 통합급여를 개별급여로 전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송파구 세 모녀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그리고 수많은 빈곤한 사람들이 최소한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통합급여 체계가 아닌 수급 선정 기준 문제다.

수급 선정 기준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 대상을 결정하는 기준이다. 현재 기초법은 수급 대상을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을 받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즉, 부양의무자, 소득인정액, 최저생계비의 세 가지가 수급자 선정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들 각각은 모두 사각지대를 만들어내고 있다.

첫째, 부양의무자 기준은 사각지대의 가장 큰 원인이다. 자신의 소득인정액이 실제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데도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수급 자격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 무려 117만 명에 이른다. 부양의무자의 대부분은 소득이나 재산이 기준보다 소폭 높은 경우로 실제 부양 능력이 높지 않은데도 자신 때문에 부모나 자식이 수급권을 얻지 못하게 하는 원인 제공자로 내몰리는 꼴이다. 또한 간주부양비나 자의적인 부양관계 판단으로 인한 수급 탈락자의 비중도 적지 않다.

둘째, 소득인정액은 소득평가액과 재산의 소득환산액으로 구성된다. 소득평가액은 실제 소득을 기준으로 하지만, 추정소득 규정을 두어 실제 소득이 없어도 근로능력이 있으면 소득이 있다고 간주한다. 또한 재산의 소득환산의 경우, 임차보증금을 포함한 주거목적 재산과 같이 사실상 현금으로 전환하기 어려운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실제로는 없는 소득을 이유로 급여가 줄어들거나 수급 대상에서 탈락한다. (☞관련 기사 "방 한 칸 있다고 수급자 될 수 없다?")

셋째, 최저생계비의 수준이 낮아 실제로 빈곤층이 생활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문제가 있다. 거주 지역이나 가족 구성 등 소비 규모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최저생계비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 또한 문제다. 더구나 최저생계비의 상대적 수준은 제도 도입 당시인 1999년 도시근로자 가구 중위소득의 45.5% 수준에서 지난해 40% 수준으로 계속해서 감소해 왔다.

이 중에서 좀 더 급박한 문제를 꼽으라면 부양의무자와 소득환산액의 문제다. 부양의무자와 소득 환산 기준으로 실제 소득이 최저생계비보다 낮은 이들이 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비수급 빈곤층'이 되고 있다. 이들은 수급자만큼, 혹은 그 이상 빈곤함에도 기초생활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다.

▲ 기초생활보장을 받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은 117만 명에 달한다. ⓒ프레시안(김윤나영)

▲ 기초생활보장을 받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은 117만 명에 달한다. ⓒ프레시안(김윤나영)


비수급 빈곤층 계속 방치될 우려

그렇다면 정부가 제시한 세 가지 제도 개편 방향, 즉 '급여별 수급 기준 다층화', '상대빈곤선 개념 도입', 그리고 '부양의무 기준 완화'가 수급 선정 기준 개선과 비수급 빈곤층 문제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자. 

우선 급여별 수급기준 다층화, 즉 개별급여로의 전환은 비수급 빈곤층 문제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의료급여나 교육급여에 대해 수급 기준을 완화하는 것은 일부 급여를 차상위 계층으로 확대하지만, 부양의무자를 이유로 배제된 비수급 빈곤층을 여전히 배제한다. 상대빈곤선 개념 도입 또한 마찬가지로 장기적으로 급여 수준을 높이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현재 제도에서 배제된 비수급 빈곤층을 제도 내로 포괄하는 조치는 아니다.

정부의 개편 방향 중 유일하게 수급 선정 기준을 직접 다루고 있는 것이 부양의무자의 소득기준 완화다. 이는 비수급 빈곤층의 수급권을 부분적으로나마 보장한다는 점에서 금번 제도 개편 안 중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추계한 것처럼 현재 개편안을 통해 보장받을 수 있는 대상자는 12만 명에 불과하다. 이는 부양의무자 등의 이유로 수급권을 박탈당한 117만 명의 10%를 조금 넘는 수준이며, 여전히 90%의 비수급 빈곤층은 사각지대에 남는다.

이뿐만 아니라 정부 안은 부양의무자의 기준 완화 후에도 간주부양비를 존속시키고 있으며, 소득환산이나 추정소득의 문제는 아예 다루지 않고 있다. 특히 소득인정액 문제에 대해서는 야당조차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정부의 개편안과 여야 간 논의는 수급 선정 기준이라는 기초생활보장제도 개선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부차적인 문제로 다루고 있다. 비수급 빈곤층을 사실상 방치하는 논의이다. 물론 통합급여의 개별급여화나 상대빈곤선 논의도 중요하지만, 그 시급성에 있어서 제도 밖에 방치된 비수급 빈곤층의 문제만큼 중요하다고 할 수 없다. 결국 정부의 제도 개편안은 부분적으로 빈곤층의 생활을 개선한다고 해도 세 모녀 사건과 같은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데는 턱없이 부족하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해야

세 모녀 사건만큼 알려져 있지 않지만, 대한민국에서 빈곤한 사람들이 매해 스스로 세상을 하직하고 있다. 지난 2010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애 아들을 가진 아버지도, 2011년에 수급자에서 탈락하고 객사한 할머니도, 2012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할머니도 모두 빈곤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에서조차 밀려난 채 목숨을 잃었다. 이처럼 거듭되는 비극의 중심에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밀려난 비수급 빈곤층이 있다. 따라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개편은 수급 선정 기준의 개선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개혁 논의의 초점을 부양의무자 제도에 두어야 한다. 가족에게 생계 책임을 묻는 부양의무자 기준은 원칙적으로 폐지되는 게 옳다. 정부의 개편안이나 야당이 제시하는 완화 방안은 현상의 일부를 개선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되지는 못한다. 부양의무자가 수급자 선정 기준이 존재하는 한 비수급 빈곤층의 문제는 지속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부양의무 기준을 어떻게 완화할 것인지를 논의하기보다는 부양의무 기준을 폐지하는 것을 전제로 부작용에 대한 보완책을 논의해야 한다.

소득인정액과 관련해서는, 실제 있지도 않은 소득을 있는 것으로 산정하는 추정소득을 폐지해야 한다. 추정소득은 수급자의 실제 소득을 파악하지 못한 경우에도 수급자의 상황을 고려하여 소득이 있을 것으로 판단될 경우 일정 금액의 소득이 있는 것으로 산정하는 제도다. 이는 실제 없는 소득을 있는 것으로 산정하는 문제를 낳는다. 또한 재산의 소득 환산의 경우, 임차보증금을 포함한 주거목적의 재산은 상당한 고가가 아닌 한 소득 환산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 실제로 소득이 될 수 있는 것을 소득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기초생활보장제도, 가난한 사람의 복지로 제자리 찾아가야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근본 목적은 빈곤한 사람의 삶을 보장하는 것이다. 경제적 효율성의 추구는 그 운영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수적인 목표에 불과하다. 그런데 정부는 부정수급 운운하며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뿌리 자체를 흔들곤 한다. 앞에서 살펴본, 부양의무자제, 추정소득, 재산의 소득환산액 모두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관리하려는 정책 방향이 낳은 독소 조항들이다. 비수급 빈곤층을 제도의 사각지대로 내모는 이러한 규정들은 폐지하는 방향으로 개편돼야 한다.

정리하면, 현재의 기초생활보장제도 논의는 핵심 주제 선정이 부적절하다. 맞춤형 급여체계, 빈곤선 기준(상대 빈곤선)도 개선 논의가 필요하지만, 수급 선정 기준을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 논의는 근본 문제를 회피하는 일이다. 수급 선정 기준을 개혁의 핵심 주제로 삼고 기초생활보장제도 사각지대에 방치된 비수급 빈곤층의 복지 권리를 다루어야 한다. 맞춤형 급여체계 개편 논의에 앞서 수급 선정 기준을 논의 테이블 중심에 올리고 수급 당사자, 시민들과 국민적 토론을 벌이자. 그래야 또 다른 세 모녀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 

* 내만복 칼럼은 필자가 참여하는 팟캐스트 <만복라디오>에서 상세히 논의됩니다. 지난번 칼럼을 들으세요. (☞바로 가기 : http://mywelfare.or.kr/6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