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식 칼럼

주식시장 읽기

일취월장7 2010. 4. 29. 11:50

(주식시장 읽기)미국 주가지수의 역사적인 장기 상승①

입력시간 :2010.04.29 11:00

[이데일리 최용식 칼럼니스트] 미국의 국내경기는 주택대부조합의 도산사태가 금융시스템 위기로 발전하는 바람에 1990년 하반기부터 빠르게 하강했다. 3~4%에 이르던 성장률은 1990년에 1.9%로 뚝 떨어졌고, 1991년에도 더 빠르게 하강하여 -0.5%라는 근래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이런 실적이라면 주가지수도 폭락을 해야 정상적이었으나, 다우지수는 1989년의 2753에서 이듬해에는 2634로 떨어져 하락률은 4.3%에 불과했다. 성장률이 크게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주가지수 하락이 이처럼 비교적 양호했던 것은 FRB가 기준금리를 23차례나 인하하고 유동성도 비교적 풍부하게 공급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처했기 때문이다.

1991년에는 성장률이 비록 마이너스를 기록했지만, 위와 같은 적절한 정책 조치가 취해지자 그해 하반기부터는 국내경기가 상승으로 돌아섰고, 주가지수도 그 영향을 받아 상승하기 시작했다. 비유하자면 지하 2층에서 지하 1층으로 올라선 것과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지하에 머물러 있었지만 한 단계 올라섰던 것도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 영향을 받아 1991년에는 다우지수 역시 3168로 상승했고, 경기가 본격적으로 상승하면서 성장률이 3%대를 회복했던 1992년에는 3300대까지 돌파했다.

이후 미국 경제는 2000년까지 2%대 후반부터 4%대 초반까지의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비교적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지속했다. 무려 10년 가까이 경기가 팽창했던 것인데, 이것은 자본주의 역사상 최장의 경기상승이었다. FRB가 경기가 하강을 시작할 때에는 금리를 낮춰서 그 속도를 늦춰줬고, 경기가 지나치게 빠르게 상승하거나 과열 징후를 보일 때에는 금리를 올려서 경기를 진정시켰던 것이 이런 탁월한 성적을 기록하게 했다.

그러자 주가지수도 매년 신기록을 작성했다. 1995년에는 다우지수가 5000을 넘어섰고, 1996년에는 6000을 넘어섰다. 경기 진단과 예측에 있어서 어느 누구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들었던 당시 그린스펀 FRB 의장은 1996년에 주식시장이 ‘비이성적 과열’로 치닫고 있다고 경고했으나, 이런 경고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다우지수는 1997년에는 거의 8000에 육박했다. 1998년에는 9000도 넘어섰으며, 1999년에는 드디어 1만을 넘어 1만1497을 기록했다.

1990년에 기록했던 2633과 비교하면 수익률이 9년 동안에 4.4배에 달했다. 연평균 수익률로 따져도 무려 18%라는 놀라온 성적을 남겼다. 이것 역시 자본주의 역사상 최장 기간의 상승기록이었다.

미국 주식시장이 이처럼 오랜 세월 강세장을 연출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9년 동안의 성장률이 2~4% 대로서 비교적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우지수는 왜 위와 같이 높은 상승률을 보였을까?

그 이유는 기업의 경영실적이 그만큼 양호했기 때문이고, 기업의 경영실적이 양호했던 것은 경기가 안정적인 상승을 지속했기 때문이다. 또한 경기가 안정적인 상승을 장기간 지속하면서 고용은 상대적으로 더 많이 늘어났고, 이에 따라 주식의 수요를 형성하는 투자자의 소득도 상대적으로 더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아무리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더라도 경기가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면 기업으로서는 고용을 크게 늘릴 수 없다. 경기가 하강할 때에는 고용을 줄여야 하는데,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에 경기가 안정적으로 상승할 때에는 고용의 증가가 안정적으로 이뤄짐으로써 고용비용이 생산비의 상승을 초래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경기가 하강할 때에는 나타나기 마련인 노동력의 잉여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린스펀의 업적은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2000년에 들어선 뒤에는 미국의 주식시장이 다시 약세로 돌아선다. 2000년에는 다우지수가 다시 1만 대로 떨어졌고, 2001년에도 약간 더 하락하여 1만 대를 겨우 지켜내는 데에 그쳤다.

그 이유는 소위 ‘IT 버블의 붕괴’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정보통신 산업의 설비투자가 거의 전멸하면서 성장률이 2000년에는 0.8%로 떨어졌고, 2001년에도 1.6%에 그쳤다. 이것마저 그린스펀이 FRB의 기준금리를 지속적으로 인하시켜 경기의 급격한 하강을 잘 막아냈기 때문에 거둔 성적이었다.

지속적인 금리인하의 덕택으로 성장률은 2002년에 다시 2%대를 회복했고, 2003년에는 3% 대까지 상승했으며, 2004년부터 2007년까지는 2%대 성장률을 꾸준히 기록했다. 그러자 다우지수도 다시 상승으로 돌아서면서 2006년에는 1만2000을 넘어서면서 신기록을 갱신했고, 2007년에는 한 때 1만4000을 넘어서기도 했다.

그러나 주가지수의 상승은 여기에서 그치고 말았다. 2007년 말부터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불거지고 2008년에는 베어스턴스와 리먼브라더스와 같은 대형 투자은행들까지 무너지는 등 금융시스템 위기로 발전했다.

미국의 금융시스템 위기는 전 세계로 전염되면서 여러 나라의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대부분의 나라가 마이너스 성장을 했고, 이에 따라 주식시장도 거의 모든 국가에서 약세로 전환했다. 특히 미국의 다우지수는 한 때 8000이 무너졌을 정도로 추락했다.

미국 금융위기의 발생에 대해 일부 경제전문가들은 그린스펀이 2000년대 초에 금리를 지나치게 낮은 수준으로 인하함으로써 주택시장 버블을 형성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것은 지나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이런 비판은 2000년대 초에 나타났던 ‘IT 버블의 붕괴’를 극복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주장이나 다름없다. 당시에 만약 경기 하강을 방관했더라면 어떤 결과가 빚어졌을까? 당연히 성장률 하락 → 소비 감소 → 생산 감소 → 고용 감소 → 소득 감소 → 소비 감소 등의 악순환이 벌어졌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나타나도 좋았다는 것일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는 그린스펀이 퇴임한지 2년 가까이 지난 다음에 터졌다. 2년 후에 벌어질 일을 누가 감히 예견할 수 있겠는가? 당시에는 경제전문가들 중에서 단 한 사람도 경기하강을 전망하지 못했었다. 오히려 대부분의 경제전문가들이 경기상승이 지속될 것이라고 봤다. 그런데 그린스펀에게만 그런 예측을 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그린스펀은 FRB 의장을 퇴임한 뒤에도 부동산 버블의 붕괴와 그에 따른 경기하강을 줄기차게 경고한 바 있다.

오히려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는 대규모 재정적자의 누적이 불렀다고 보는 것이 옳다. 다시 말해, 재정적자의 누적이 시장금리를 상승시킴으로써 서브프라임모기지의 부담을 가중시켰던 것이 더 결정적인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빚을 내서 주택을 소유하도록 부추긴 정책도 여기에 단단히 한 몫을 했다. 빚을 내서 주택을 매입했던 사람들이 금리 인상을 이겨내지 못함으로써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발생했던 것이다.

다행히 2009년 하반기부터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차츰 진정되면서 미국의 주식시장을 비롯하여 대부분 국가의 주식시장도 회복세로 들어섰다. 실로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주식시장의 약세가 지속되었더라면 1930년대와 같은 경제공황이 찾아올 수도 있었다는 것이 경제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우려였기 때문이다.

금융위기가 진정되고 경기가 비록 미약하지만 상승국면으로 진행하면서 미국의 다우지수는 이제 1만을 넘어섰고, 금융시장도 전반적으로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높은 성장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성장의 지속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일자리의 창출에 있어서도 그렇고, 주식시장의 안정적인 상승에 있어서도 그렇다. 우리 경제도 장차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한다면, 주가지수 역시 상승을 오랜 세월 지속하면서 신기록을 계속 갱신할 것으로 봐도 좋다. 제발 그렇게 되기를 기원해본다.

반복하거니와, 높은 성장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성장률의 지속이 중요하다. 일본의 주가지수 파동을 살펴보면 이런 사실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