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칼럼

'그들만의 낙원'에서 벗어나자 대안교육이 부활했다

일취월장7 2018. 10. 26. 14:13

'그들만의 낙원'에서 벗어나자 대안교육이 부활했다

폐쇄 위기 처한 지혜학교가 서머힐에서 얻은 교훈
2018.10.26 11:28:58

시험도, 숙제도 없는 행복한 학교, 서머힐(Summer Hill). 대안교육에 별 관심 없는 이들에게도 익숙한 이름이다. 1990년대 초 한 방송에서 소개해서 큰 화제가 됐었다. 벌거벗고 수영하는 아이들은 모자이크 처리가 돼 방송이 됐었다. 설립자인 알렉산더 닐이 쓴 <서머힐> 역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였다. "수업에 들어오거나 들어오지 않을 자유, 필요하다면 며칠, 몇 달, 몇 년이라도 놀 수 있는 자유, 종교나 도덕이나 정치를 막론하고 모든 교화로부터의 자유, 성격 틀에 찍어내기로부터의 자유"가 보장된다. 아울러 "아이들과 교직원의 자치"가 탄탄하게 이뤄진다.  

문 닫을 뻔 했던 서머힐의 부활 


대안교육 진영 안에 다양한 갈래가 있지만, 서머힐에 대한 관심은 대개 공유한다. 서머힐에서 받은 영감 때문에 대안교육을 고민하게 됐다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그 뒷이야기는 덜 알려져 있다. 1921년 영국에서 설립된 서머힐은 1999년 학교 문을 닫을 뻔 했다. 영국 교육당국은 서머힐에 '시정 명령서'를 보냈고, 지시 사항을 6개월 안에 이행하지 않으면 학교 문을 닫겠다고 통보했다. 서머힐 측은 이에 불복했다. 학생, 학부모, 교직원 등은 소송을 포함한 다양한 반대 운동을 했다. 결국 영국 정부가 물러섰다. 서머힐 방식이 보장됐다. 서머힐은 2007년 '영국 최고 학교'로 선정됐다.

대안교육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또 다른 곳은 덴마크의 자유학교(프리스콜레)다. 덴마크는 대안학교의 천국으로 꼽힌다. 정말 다양한 대안학교가 있다. 150년 전 덴마크의 교육자 그룬트비가 세운 학교에서 비롯됐다. 권력과 권위에 길 들지 않은, '위대한 평민'을 키우는 게 그룬트비의 목표였다. '위대한 평민' 역시 전 세계 대안학교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한국의 풀무학교 역시 '위대한 평민', '더불어 사는 평민'을 교육 목표로 삼는다.

덴마크의 특징은, 이런 다양한 교육모델이 법으로 보호된다는 점이다. '갭이어(Gap Year) 학교'가 활발히 운영되는 것도 특징이다. 정규교육과정을 중단하고 다니는 곳인데, '에프터스콜레'가 이런 사례다. 한국으로 치면, 중학교 3학년에서 고등학교 1학년 사이의 학생들이 1년 간 다니는 학교다. 정규 교육과정 대신 다양한 체험을 하며, 자기 적성을 찾는다. 학위가 나오지도, 정규 교육으로 인정되지도 않지만, 현재 245곳이 운영된다. 서울시교육청이 마련한 '오딧세이 학교'의 모델이다.  

미인가 대안학교 둘러싼 논란 

서머힐, 그리고 덴마크 에프터스콜레 교사들이 한국을 찾았다. 24일 오후 광주 광산구 지혜학교에서 열린 '학습권 확보를 위한 국제 심포지엄' 때문이다. 대안교육연대, 삶을 위한 교사대학, 한국대안교육협의회(준) 등이 마련한 행사다.  

여기엔 배경이 있다. 지혜학교 역시 1999년의 서머힐 같은 처지다. '철학 대안학교'를 표방한 지혜학교는, 법적으로 '미인가 대안교육기관'이다. 현행 초·중등교육법은 교육부 인가를 받지 않으면 '학교' 명칭을 쓸 수 없도록 규정했다. 이 학교 장종택 교장은 초·중등교육법 위반으로 약식 기소된 상태다.  

장 교장 측은 초·중등교육법의 관련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아울러 대안교육 관련 단체들 역시 공동대응을 하고 있다.  

'교육부 인가를 받으면 될 것 아니냐'라고, 쉽게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인가 받고 운영되는 대안학교도 많다. 하지만 늘 논쟁이 따라 붙는다. 현행법에 따르면, 대안학교 역시 기존학교 교육과정과 절반 이상은 겹치게끔 운영해야 한다. 이에 반발하는 대안학교가 많다. 한국에선 '서머힐' 같은 시도가 불가능하다는 게다. 지혜학교 역시 이런 규정에 반발해서 '미인가'로 남는 쪽을 택했다.  

물론, 너무 느슨한 인가 규정에 대해 우려하는 측도 있다. 일반적인 공립학교보다 더 노골적인 입시교육을 하는 곳이 '대안학교'라는 이름을 내걸 수도 있다. 특정 종교가 편협한 교육을 하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  

현행 초중등교육법의 위헌 여부를 따지는 과정은 이런 논쟁을 정리하는 일과 맞물려 있다. 아울러 외국 대안학교 사례를 자세히 살필 필요도 있다. 


▲ 심포지엄 참가자들의 그룹 미팅. ⓒ지혜학교


영국 국정교과과정과 대안교육의 위기 

24일 심포지엄에는 서머힐의 헨리 레드헤드 교사, 수네 코베레 덴마크 에프터스콜레협회 사무국장 등이 참가했다.  

서머힐 모델에 대한 위협과 대응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영국은 전통적으로 학교의 자율성이 폭넓게 인정돼 왔다. 근대 이전에, 국가의 간섭 없이 설립된 학교들이 잘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80년대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영국 학생들의 언어 및 수리 능력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떨어진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보수당과 노동당 모두 기업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영국 학교가 배출하는 인재의 역량이 떨어져서, 기업의 경쟁력이 불안해졌다는 게 재계의 요구였다. 치열한 경쟁 교육이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경제의 성장 비결이라는 식의 분석도 곁들여졌다. 1980년대는 '작은 정부'를 내건 대처 총리 집권 시기였다. '작은 정부'와 교육에 대한 국가 개입은 양립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기업의 요구라는 점에선 공통점이 있다.  

결국 영국 정부는 기존의 장학기관을 '교육기준청'으로 개편하고, 교육 수준에 대한 기준을 마련했다. 그 결과, 1988년에 교육법 개정을 통해 국정교과과정이 마련됐다. 이런 노선은 노동당 집권 이후에도 이어졌다. 학생들의 학력을 높여서, 기업에 우수한 인재를 공급하면, 지식 경제 시대 영국의 경쟁력이 뛰어오른다는 게 당시 영국 정부의 입장이었다.

서머힐에 대한 폐쇄 압력이 있었던 1999년은, 노동당 소속인 토니 블레어 총리 집권 시기였다. '교육기준청'이 나서서 서머힐 방식을 수술하려 했다.

"그들만의 낙원"에서 벗어났다 

▲ 헨리 레드해드 서머힐 교사.ⓒ지혜학교

서머힐 학생과 교직원들은 어떻게 맞섰나. 그 이전까지 서머힐은 "그들만의 낙원"이었다. 설립자인 알렉산더 닐이 사망한 뒤론 이런 경향이 더 심해졌다. 설립자는 베스트셀러 <서머힐> 출간을 비롯한 다양한 활동으로 서머힐의 철학을 외부에 알렸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토론이 있었고, 서머힐은 시민권을 얻었다. 하지만 설립자의 아내와 딸로 교장이 바뀐 뒤론, 서머힐은 서서히 잊혀졌다. 그리고 1999년에 위기를 맞았다. 결과적으로 그게 기회가 됐다. 학교 폐쇄에 맞선 다양한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서머힐은 다시 존재감을 얻었다. 아울러 서머힐의 교육철학에 대한 성찰과 점검도 이뤄졌다. 이날 심포지엄에선 1999년 당시 벌어진 다양한 캠페인이 소개됐다.

서머힐 학생들은 총리와 의원들에게 편지를 썼고, 총리 관저로 행진을 했다. 국제기구에 직접 도움을 요청했으며, 하원 본회의장에서 학교 회의를 하기도 했다.  

아울러 외부 전문가 집단과 교류했고, 다른 대안학교와 연대했다. 서머힐이 "그들만의 낙원"에서 벗어나자, 영국 정부도 물러났다. 서머힐 방식은 살아남았고, 다시 많은 이들에게 깊은 영감을 준다.  

풀뿌리 운동과 자유교회, 자유학교 

덴마크에선 전체 학생의 약 17%가 자유학교(프리스콜레)에 다닌다. 이들 모두가 지금 언급된 맥락의 '대안교육'을 받는 건 아니다. 그러나 대안교육의 다양한 시도가 존중되는 건 사실이다. "아이들이 '학교를 위한 삶이 아닌 삶을 위한 학교'에 다녀야 한다"는 그룬트비의 철학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다니는 '에프터스콜레'는 전체 학생의 약 25%가 경험한다. '에프터스콜레'를 거친 학생들은 이후 교육과정에서 자퇴하는 비율이 낮다. 학교를 잠시 쉬면서 다양한 진로를 모색한 경험 때문이다.

자유가 철저히 보장되는 덴마크 교육을 이해하려면, 역사부터 살펴야 한다. 수네 코베레 사무국장은 19세기 중반의 풀뿌리 운동에 대해 설명했다. 역시 그룬트비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절대왕정이 흔들렸다. 기존 권위가 무너진 자리에 '각성한 평민'이 들어섰다. 대중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가장 잘 아는 이는 왕이라는 게 그 전까지의 통념이었다. 그룬트비를 포함한 풀뿌리 운동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대중 스스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갈 수 있다고 했다. 기존의 목사와 교회가 제 구실을 못한다고 여긴 '각성한 평민'들은 '자유교회'를 세웠다. '자유학교'가 생겨난 배경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아이들이 찾아가야 한다. 

대안교육의 '학습권'과 '적극적 자유' 

이 대목에서 서머힐과 덴마크 자유학교가 만난다. 이들 대안학교는 모두 '자유'를 중심에 둔다. 하태욱 건신대학원대학교 대안교육학과 교수는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을 빌어 설명했다.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를 구별하는 개념이다. 시험을 치지 않아도 되는 자유는 '소극적 자유'다. 원하는 공부를 할 자유는 '적극적 자유'다. 서머힐 등의 사례가 한국에선 '시험으로부터의 자유'라는 맥락으로 주로 소개됐다. 이는 '시험을 치지 않아도 돼'라고 허락하는 외부 권위자를 전제한 것이다. 하 교수는 이 같은 '소극적 자유'가 아닌, '적극적 자유'가 서머힐을 포함한 대안교육의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아이들이 원하는 걸 찾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게다. 대안교육을 하는 이들이 이야기하는 '학습권'은 '적극적 자유'에 바탕을 뒀다. 아이들은 원하는 지식과 기술을 스스로 찾아서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장종택 지혜학교 교장은 교육청의 학교 폐쇄 명령과 검찰의 약식 기소에 따른 당혹감을 호소했다. 이에 대한 법적 대응 계획과 함께, 그는 지혜학교 사법처리 건이 하나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언제부터인가, 대안교육을 하는 이들 역시 당장의 학교운영에만 골몰했다는 게다. "그들만의 낙원"에 갇혀 있다가 학교 폐쇄 압력을 계기로 거듭난 서머힐의 사례에서 교훈을 찾겠다는 뜻이다. 또 외부의 권위에 기대지 않고 적극적 자유를 쫓는 위대한 평민을 키우는 덴마크 자유학교의 역사를 되새긴다는 뜻이기도 하다.

▲ 지혜학교 아이들. ⓒ지혜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