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칼럼

"학교는 언제까지 '선발기관'이어야 하나"

일취월장7 2018. 10. 8. 10:59

김상곤을 위한 변명…진짜 문제는?

[기고] "학교는 언제까지 '선발기관'이어야 하나"
2018.10.08 10:31:09

김상곤 부총리가 1년 3개월 만에 교육부 수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의 재임기간 동안 현 정부 교육부문 지지도는 30%대에 불과하였고, 입시 공론화나 유치원 방과후 영어교육 등 교육부 정책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었다. 김상곤 장관은 무능 장관으로 낙인 찍혀 불명예 퇴진하였다. 그가 국가 교육정책 수장으로서 교육정책의 큰 흐름을 바꾸어 놓는데 의미 있는 역할을 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그는 이전 장관들과는 다른 조건에서 장관직을 맡았다. 그는 취임에 앞서 7~8년 가까운 진보교육감 시대를 거치며 전국 학교현장 곳곳에 혁신교육이 뿌리내린 시점에 교육정책 전반을 책임지는 일을 맡게 되었다. 이 점에서 그는 교육혁신 정책의 물적 기반까지 갖춘 조건에서 직을 수행할 수 있는 장관이었다. 무엇보다 그 자신이 우리나라 1호 진보교육감이었으니 더 말해 무엇 하랴. 

이런 조건들 때문에 김상곤에 대한 기대는 높았었고, 그에 비례해 실망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의 개인적 리더십에 대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지난 1년 5개월간의 문재인 정부 교육정책에 대한 평가를 김상곤 개인에게 맞추는 것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이 생기는 건 왜일까. 9년 전 최초의 진보교육감으로 혁신교육의 씨를 뿌렸던 이가, 그래서 전국에 진보교육감 시대가 열리는 발판을 마련하는 데 앞장섰던 이가 1년 넘게 이렇게 존재감 없는 사람이 되고 급기야 '엉망'이고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는 극단적 변화를 과연 그 개인의 문제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떤 일에 대한 평가, 그것도 정부정책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김상곤 개인이 갖는 한계도 있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교육부 수장으로서 책임을 요구받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김상곤 개인이 갖는 한계로 오늘의 이 사태를 완전히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건 도무지 합리적이지 않다. 많은 이들이 문재인 정부 출범이후 지속된 교육정책에 대한 실망이 너무 커 객관적 관점을 잃고 있는 듯 보인다.  

김상곤은 문재인 정부의 교육정책을 대표하고 책임지는 이였고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교육정책 책임을 김상곤에게 묻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각료들에게 일정하게 전권이 위임되었을 때 이야기다. '청와대 정부'라는 말이 공공연히 회자되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정당으로서의 존재감이 미미해진 지 오래다. 게다가 청와대와 정부 각 부 각료들 간의 협업구조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물음표가 생겨 왔다. 대표적인 부분이 교육부다. 사실 지난 6.13 지방선거까지 득표관리 차원에서 교육관련 정책에 자제모드를 유지하는 것이 현 정부의 방침이었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왔었다. 물론 이런 건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일이 아니니 확인할 길은 없다.

그러나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지는 않다. 전교조에게 법외노조 상태는 조직 존립과 관련된 절박한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 안착을 감안해 지방선거까지 법외노조 해제가 미루어지는 것을 감수하며 기다려 왔던 전교조가 지방선거 이후부터 100일 넘게 단식농성을 이어오고 있지 않은가. 촛불의 무게가 엄중함을 아는 이들은 때때로 거시적 문제를 위한 공감과 협조로 미시적 자기 현안을 양보하는 대승적 태도를 견지해오기도 하였다. 2017년 8월로 공식 예고되었던 입시제도 개편안 발표가 1년 유예된 것도 당시 장관 취임직후라는 부담과 공론화에 대한 장관의 신념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첨예한 갈등이 예견되는 뜨거운 감자인 입시문제를 선거 이후로 넘기고 싶은 이들의 요구가 작동한 게 더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만일 만에 하나 이런 짐작이 사실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이는 첫째, 현 정부가 교육을 지나치게 정치적으로만 접근해 다루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육은 국민들에게는 자녀들 삶과 관련된 당장의 현안이며 사회적으로는 10년 20년 후 우리 사회의 총체적 수준을 결정하는 일이다. 10년 20년 후를 위해 가장 공을 들여야 하는 분야가 바로 교육이다. 이해찬 대표의 '20년 집권' 슬로건이 단순 권력연장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촛불정신이 살아있고 그걸 발전시키는 20년을 의미한다면 더욱 그렇다. 우리 국민들은 촛불정신이 거세된 권력이라면 그 어느 정당의 집권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교육 분야 촛불정신 구현은 혁신교육을 위한 교육혁신의 안착이다. 수직적 관료주의 교육행정, 암기 중심 지식 교육, 성장이 아닌 선발기관이 된 학교를 두고서는 아이들의 자살을 막을 길 없고 미래사회에 대응할 수도 없다. 국가운영의 핵심과제로 교육을 다루지 않고 득표전략의 하나로 정치적 유불리 차원에서만 접근한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둘째, 이는 현 정부가 교육에 대한 철학과 국가운영 전망 속에서 도출되는 교육정책 비전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교육을 정치적 판단으로 접근하는 것 자체도 교육철학과 정책전망 부재의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경제도 중요하고 남북문제도 중요하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시급하다 말하기 어렵다. 국가운용 전반을 책임지는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리라.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시스템이나 제도, 정책으로 해결되는 것은 언제나 절반의 해결일 뿐이다. 시스템도 제도도 그것을 움직이는 건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키우는 일이 교육이다. 아무리 좋은 경제정책도 그걸 운용하는 사람에 따라 결과가 좌우된다. 남북 간 선의의 호혜교류와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가 실시된다 해도 종국의 평화안착은 결국 사람들에 의해 완성된다. 

그러니 국가의 미래를 진정으로 고민하고 이끄는 위치에 있는 이들은 일자리나 부동산, 남북문제 등 못지않게 교육문제를 중요한 현안으로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다면 집의 외관을 바꾸는 일은 성공할지 모르나 그 내부를 바꾸는 일에는 성공하기 어렵다. 파란색으로 칠해진 지붕과 벽은 언제든 다시 빨간색이나 초록색으로 바꿔 칠해질 수 있다. 국민들 삶에 영향을 주는 국가운영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아니 그렇기 때문에 국가운영에 직접 책임을 지는 이들에게는 철학과 비전이 더 요구된다. 더구나 촛불로 세워진 정부가 아닌가. 국가의 근본을 다시 다지는 일, 5년이나 10년 후 다시 우리 사회를 후퇴시키지 않을 일을 하기 위해서는 당장의 지지율과 득표전략으로 임해서는 안 된다.

국가발전 전망을 고민하는 순간 교육이 가지는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고민하는 척 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국가운영을 책임질 능력부족이거나 둘 중 하나다. 문재인 정부 출범이후 지금까지의 교육정책을 보면서 장관 개인의 역량을 넘어선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현 정부 교육정책의 책임을 장관 하나에서 찾는다면 장관 하나 바뀐 것으로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미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 비난이 아니라 비판은 문제원인을 찾아 개선하고 해결하기 위함이다. 현 정부 교육정책이 빚어낸 문제 원인은 김상곤 개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육문제의 중요성과 그에 대한 전망을 갖지 못하고 있는 현 정부 핵심 실세들에게도 있다. 어쩌면 후자가 더 근본적인 원인일 수 있다.

신임 교육부 장관의 임명과정은 참으로 순탄치 않았고 많은 이들이 우려스런 눈길을 거두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그가 국회 교육상임위 활동 외에는 교육분야 경험이 없는 비전문가라는 점에 대한 우려보다 현 정부 핵심실세들과 정당과 정치 영역에서 오랫동안 코드를 맞춰 함께 해온 이라는 점이 더 염려된다. 안 그래도 교육을 주로 정치의 관점에서만 인식하고 다루어 왔던 청와대의 한계를 더욱 강화시키게 되지 않을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취임 첫 정책으로 유치원 방과후 영어교육 허용을 발표하는 것을 보고 그 염려가 현실이 될까 하는 걱정이 더 깊어진다. 그러나 변화는 그 원인이 무엇이든 새로움이 수반되기 때문에 일정한 기대를 갖게 한다. 그리고 때론 단점이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신임 교육부 장관은 청와대 실세들과 소통하고 교감하기 수월하다는 장점을 십분 활용해 교육이 학교나 입시제도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 전반의 운명과 관련된 문제라는 점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적극적 역할을 해 준다면 좋겠다. 물론 교육부 장관 자신의 교육철학과 전망이 중요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대처리즘이 만들어낸 적폐청산 과제를 안고 있던 토니 블레어의 1997년 선거 슬로건이 '교육, 교육, 그리고 교육!'이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현 정부를 책임지고 이끄는 이들은 깊이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따뜻한 대통령이 만드는 남북긴장 완화만으로 국민행복과 사회발전이 보장된다고 믿는 국민은 거의 없다.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 없이 촛불이 만들어 낼 행복한 민주사회는 결코 오지 않는다. 민주시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며 그 일을 하는 것이 바로 교육이기 때문이다. 교육부 장관이 부총리가 되는 것은 교육이 여러 분야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가 전체운영에서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청와대에 당부하고 싶다. '교육, 교육, 교육!'만큼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정부조직 구성에 상응하는 만큼만이라도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고민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