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통일 문제

김정은, 그는 왜?

일취월장7 2018. 5. 1. 10:59

김정은, 그는 왜?  

[정욱식 칼럼] 급변하는 한반도, '김정은 코드' 읽어야
2018.05.01 10:05:13

"70년 동안의 조미(북미) 대결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위대한 승리를 가져온 국가 핵무력의 역사적 소임은 끝났다. 이에 모든 국가 핵무력의 폐기를 엄숙히 천명한다."

2020년을 전후해 나올 것으로 보이는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정서'의 일부이다. 물론 가상이다. 하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말에 "국가 핵무력 건설 완성"을 선언하고 올해에는 신년사를 통해 국면 전환을 꾀하면서 마음 한켠에 두었던 '속내'였을 것이다. 또한 확신이 서지 않았던 이런 속내가 문재인 대통령과의 '케미'를 일으키면서 다짐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핵이라는 물리학의 결정체와 변화무쌍한 인간 의식이 만나면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킬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문제이다. 루스벨트에게 편지를 보내 핵무기 개발을 독촉했던 아인슈타인이 나중에 이를 가장 후회하면서 반핵을 주창했던 것처럼, 맨해튼 프로젝트 책임을 맡아 불철주야 '신의 불'을 달궈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로 불렸던 로버트 오펜하어머가 나중에는 '핵 군축의 아버지'가 되고자 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는 김정은 위원장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김정은의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체질적인 거부감, 북한이 본래 원했던 것은 핵무기라는 고정 관념과 굴절된 역사 인식, 화석처럼 굳어진 불신, 그리고 힘, 특히 군사력이 국가의 생존을 보장하다는 교조화된 현실주의 국제정치론 등이 뒤섞여 있었다. 

김정은에게 핵무기란?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판문점 선언'에서 "완전한 비핵화"는 남북한의 "공동의 목표"라며, 두 가지를 분명히 했다. 하나는 북한이 핵실험을 중지하고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도 중단키로 한 것은 핵보유국 지위를 노린 것이 아니라 비핵화를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로써 4월 20일에 나온 노동당 결정서의 취지는 분명해졌다. 

또 하나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요구한 것이다. 이건 이번 판문점 선언의 백미 가운데 하나이다. 지금까지의 외교 문법은 북한은 국제사회의 비핵화를 요구를 수용하고 남한은 대북 제재와 압박이라는 국제사회 노력에 동참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북한의 목표는 한반도 비핵화이니 국제사회가 이를 지지하고 협력해달라'고 했다. '게임의 법칙'이 바뀌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불과 얼마 전까지 도저히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한반도 비핵화가 왜 '이제는 가능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희망으로 바뀐 것일까? 앞서 가상으로 써본 노동당 결정서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담겨 있다. 즉, 김정은 위원장에게 핵무기는 그 자체가 '목표'라기보다는 '조미 대결의 승리'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가 없었거나 비핵화 약속을 비교적 잘 지키고 있었거나 핵 능력이 고도화되지 않았던 상태와 "국가 핵무력 건설 완성"을 선포한 이후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비교해보면, 이러한 진단이 결코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 지난 27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판문점 공동 취재단


김정은이 '국가 핵무력 건설' 숙제를 빨리 끝내고 싶었던 이유

세 가지만 지적해보자. 첫째는 북미 정상회담이다. 고(故)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도 미국 현직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은 간절히 원했었다. 심지어 김정은 위원장도 자신의 친구 데니스 로드맨을 통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는 뜻을 밝혔지만, 로드맨이 미국에서 '종북주의자'로 왕따 당하는 모습만 지켜봤을 뿐이다. 

그런데 정작 김 위원장이 "핵무력 건설 완성"을 선언한 직후에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하자 기적(?)이 일어났다. 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된 것이다. 역설적으로 핵탄두 장착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보유 시도가 초대장이 된 셈이다.

둘째는 종전과 평화협정이다. 이 둘은 북한의 오랜 요구였다. 그 결과 2005년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에는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별도의 포럼"을 열기로 했다. 하지만 13년 동안 "별도의 포럼"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이 사이에 북한은 의외의 모습도, 상식 밖의 모습도 보였다. 2010년에는 "정중히"라는 대단히 이례적인 표현을 쓰면서까지 평화협상 개시를 호소했지만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이듬해에는 미국 국방장관에게 "평화협상이 시작되지 않으면 핵 참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협박성 위협도 해봤지만 무시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2013년에는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하면서 일촉즉발의 위기까지 불사했지만 그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정작 핵무력 건설 완성을 선언한 이후 종전과 평화협정이 가까워지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미 신년사에서 "전쟁도 평화도 아닌 상태"를 끝내고 싶다는 열망을 피력했다. 남북정상회담이 다가오고 있을 때, 트럼프는 남북한이 종전을 논의하고 있다는 천기를 누설하면서 "축복"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리고 급기야 '판문점 선언'에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키로 했다. 

셋째는 "단계적 군축"이다. 김일성 시대 북한의 군축 제안은 프로파간다로 치부되었고 김정일 시대의 군축은 선군정치와 어울리지 않은 짝이었다. 반면 김정은 시대의 군축은 매우 중요하다. 병진노선, 더 나아가 '선군(military first) 정치'에서 '선경(economy first) 정치'로의 성공적인 전환의 열쇠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군축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은 핵무력 건설에 박차를 가하면서 재래식 군사력의 비중은 줄였다. 

하지만 "새로운 전략적 노선"이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려면 한반도 차원의 군축이 필요했다. 그래서 김 위원장은 공식 수행단에 인민군 총참모장과 인민무력부장을 포함시켰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거수경례를 하게 하는 파격까지 연출한 것이다. 그리고 판문점 선언에는 "단계적 군축"이라는 합의가 포함되었다. 6,15에도, 10,4 선언에도 없던 것이다.

결국 오늘날의 대전환은 김정은이 왜 작년에 잇따른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재"와 트럼프의 전쟁 위협을 감수하면서까지 핵무력 건설 완성을 향해 폭주를 거듭했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힘이 있어야 비로소 상대방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믿음의 상당 부분은 하나둘씩 실현되고 있다. 불편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게 김정은 코드의 핵심이었던 셈이다. 


문재인 '족집게 과외', 트럼프-김정은 통할까?
[정세현의 정세토크] "비핵화·북미수교·평화협정 삼위일체 돼야"
2018.05.01 10:05:45

2018년 4월 27일, 세 번째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2000년, 2007년에 이어 또다시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았지만, 그 무게와 의미가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2000년 정상회담이 핵 문제보다는 남북관계를 우선적으로 다뤘고 2007년 회담이 미국이 가지고 있는 전략의 큰 테두리에서 진행됐다면, 2018 정상회담은 핵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이 운전자로 나섰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는 분석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2007년 정상회담은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북한의 핵무장 속도를 늦추기 위한 미국의 계획 및 전략 테두리 내에서 진행됐다고 봐야 한다. 북핵 능력의 고도화를 예방하기 위해 미국의 주문을 받고 정상회담을 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그런데 이번에는 북한이 국가핵무력이 완성됐다고 선언했고 미국 본토 타격 가능성까지 나오는, 즉 북핵 문제가 최악의 상태로 진입한 상황에서 북미 간 갈등‧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남북 정상회담이 추진됐다. 이전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정 전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독대했을 때 어떻게 트럼프 대통령을 대해야 북미 정상회담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코치해줬을 것이고,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남북 정상회담의 뒷이야기를 해줄 것"이라며 "우리가 말 그대로 '운전자'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건데, 이렇게 양쪽에서 조율하면 북미 정상회담에서 빠른 성과가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일각에서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 추진이 올해 안으로 시한이 정해진 반면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시기가 명시되지 않은 것에 대해 비판이 제기되는 것과 관련, 정 전 장관은 "비핵화의 시한을 정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몫이다. 문 대통령이 다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화낸다"고 일갈했다.  

그는 "주방장인 트럼프 대통령이 메인 요리를 할 수 있도록 재료 손질해주고 준비해주는 정도가 돼야지 다 해놓으면 안된다"며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트럼프가 빛나게 해줘야 한다. 비핵화뿐만 아니라 북미수교와 평화협정 역시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정 전 장관은 미북 양측이 서로에 대한 신뢰가 깊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비핵화와 북미수교, 평화협정이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의 사한 및 이를 몇 단계로 나눠서 진행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며 "미국과 우리가 바라는 빠른 비핵화를 이루려면 북미수교와 평화협정을 빨리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비핵화 과정이 물리적으로 2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지적에 정 전 장관은 "트럼프가 2년 이상을 기다릴 수가 없다. 본인의 대선 때문이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2년 내에 이 모든 과정을 끝내야 한다"며 시일이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그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는다. 정전협정은 서로 감시해야 하기 때문에 협정 자체가 내용이 굉장히 많다. 하지만 평화협정은 복잡할 것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물론 기술적으로는 북한의 핵 능력 상태를 봤을 때 완전한 비핵화까지 3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 거라고 한다. 기술적으로 검증하고 신고가 제대로 됐는지 따지고 들어가고 실무회담에서 까다롭게 굴면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면서도 "김 위원장이 핵 물질은 들고 나가고 시설은 폐기하겠다면서 현재 있는 무기는 비싸게 팔겠다는 식으로 가면 2단계로도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인터뷰는 30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2018 남북 정상회담과 지난 2000년, 2007년 있었던 정상회담을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정세현 :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 때는 북한의 핵 문제가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당시는 1994년 북미 간 제네바 기본 합의가 있었고 이후 북한이 핵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미국도 북한이 약속을 잘 이행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죠. 오히려 미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음에도 북한이 핵 활동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제네바 합의에서 3개월 내로 북한과 무역 및 투자 장벽을 낮춰주기로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합의 타결 2주 뒤 열린 미국의 중간선거에서 집권당인 민주당이 패배하면서 의회에 사사건건 발목이 잡혔습니다. 제네바 합의 이행에 차질이 생긴 것이죠.

그럼에도 북한은 경수로 공사에 대한 기대 때문에 핵 활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핵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 남북 정상회담은 남북 간 화해 협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2007년 2차 남북 정상회담의 경우 북한이 첫 핵실험을 한 지 1년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앞서 2005년에는 9.19 공동성명을 통해 북핵 문제 해결의 로드맵을 만들었지만, 성명 직후 미국이 BDA의 자금줄을 묶으면서 합의는 사실상 깨졌습니다. 그리고 나서 2006년 10월 9일 북한이 1차 핵실험을 감행한 것입니다.  

이를 목도한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압박으로는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 9.19 공동성명에서 이야기한 평화체제까지 달성돼야 북한이 비핵화를 하겠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부시 대통령은 2006년 11월 하노이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만나 "우리가 김정일을 만나 종전선언을 협의하자"라고 말하게 됩니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남북 정상회담 준비가 시작됐습니다. 또 2007년 2.13 합의가 나오면서 북한을 비롯한 관련국들이 9.19 공동성명을 이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높아졌던 측면도 작용했습니다.  

즉 2007년 정상회담은 핵실험 이후에 북한의 핵무장 속도를 늦추기 위한 미국의 계획 및 전략 테두리 내에서 진행됐다고 봐야 합니다. 북미 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 위해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한 것이죠. 즉 북핵 능력의 고도화를 예방하기 위해서 미국의 주문을 받고 정상회담을 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북한이 국가핵무력이 완성됐다고 선언했고 미국 본토 타격 가능성까지 나오는, 즉 북핵 문제가 최악의 상태로 진입한 상황에서 북미 간 갈등‧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남북 정상회담이 추진됐습니다. 이전과는 상황이 다르죠.

지난해 11월 북한의 국가핵무력 완성 선언 이후 미국은 이를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북한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이 대기권 재진입을 하든 못하든, 일단 북한이 미국을 향해 미사일을 쐈다는 것이 북한에게는 도발이지만 미국에게는 수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해 12월 북한에 대해 자극적인 말을 하지 않고 방향 전환을 준비했다고 봐야 합니다. 그걸 감지한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을 핑계로 남북대화가 재개되도록 분위기를 만들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등에 업혀서 워싱턴으로 가려고 한 것이죠.  

즉 북한은 북미 관계를 개선하려는 확실한 계획을 가지고, 비핵화도 북미 관계 개선이 확실하게 가시권 내에 들어오면 실행할 준비를 하면서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징검다리 차원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전 남북 정상회담 시기에는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돼있지도 않았었죠.  

프레시안 : 이전의 핵 협상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남한이 상당히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정세현 : 제네바 합의 때는 김영삼 대통령이 북미 협상을 반대했습니다. 당시 협상 방식으로 북한을 다루면 기고만장해져서 일을 그르치니까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고 주문하는 바람에 오히려 미국이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말릴 정도였죠.  

미국은 북핵 문제가 소위 '기 싸움'이나 '오기'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협상을 통해서 눌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남한을 끼워주지 않았던 겁니다. 나중에 남한이 중간에라도 들어가려고 하니까 미북 모두 '나중에 결과 통보해 줄게'라는 식으로 남한을 소외시켰습니다. 당시 귀동냥하느라 애 좀 먹었죠.  

그런데 이번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비위를 맞추면서 트럼프의 귀를 잡아둔 것 같습니다.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배석자 없이 독대했을 때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어떻게 트럼프 대통령을 대해야 북미 정상회담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는지에 대해 코치해줬을 것이라고 봅니다.  

▲ 27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문재인(왼쪽)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배석자 없이 독대하고 있다. ⓒ판문점 공동 취재단


이건 김 위원장 입장에서 반드시 알아가야 할 정보였을 겁니다. 북한에서 김 위원장이 이른바 '최고 존엄'이긴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는 북미수교와 평화협정의 성과를 끌어내야 '최고 존엄'의 능력을 인민들한테 인정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한편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남북 정상회담의 뒷이야기를 해줄 것으로 보입니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일종의 '족집게 과외'를 해주는 셈이죠. 우리가 말 그대로 '운전자'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건데, 이렇게 양쪽에서 조율하면 북미 정상회담에서 빠른 성과가 나올 수 있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끌어내려면 

프레시안 : 그런가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 결과를 상당히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원래 6월 초 이야기까지 나왔던 북미 정상회담을 5월로 당겼죠?  

정세현 : 트럼프 대통령은 마이크 폼페이오 신임 국무장관을 북한에 보낸 이후 성과가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고, 이후에 남북 정상회담 결과를 보면서 확실하게 자신감을 얻은 것 같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마 판문점 선언에 '완전한 비핵화'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을 가지고 북한이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받아들였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성급하다고 할 정도로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미리 잘될거라는 이야기를 하고 나오는 것은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더라도 이번에 성과를 내서 11월 중간선거에 도움이 되길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는 2년 내에 비핵화를 끝내서 본인의 재선에도 영향을 미치고 싶어할 겁니다.  

또 그는 25년 동안 전임 대통령들이 해결하지 못했던 북한 핵 프로그램을 본인이 확실히 해결하겠다고 주장할 겁니다. 이게 근거만 있다면 사실 노벨평화상을 받을 자격은 충분히 되는 거죠.  

물론 북한의 CVID만 보장 받고 미국은 아무것도 안해도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겁니다.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에 갔을 때 북한으로부터 'CVID를 끌어내고 싶으면 CVIG(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Guarantee‧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체제 보장)를 하라'라는 요구를 받았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핵화 프로세스와 평화협정 프로세스, 북미수교 프로세스 등 3개의 프로세스가 물려 들어가는 구조로 판을 짜야 할 것입니다.

프레시안 : 돌이켜보면 지난 3월 31일 ~ 4월 1일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에 갔고 이달 20일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북한인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중지하며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건 미국과 교감이 있었던 것일까요?

정세현 :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에 다녀온 뒤 그 결과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했을 겁니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은 12일(현지 시각)에 주지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정은과 회담이 멋질 것이라고 말했죠. 이는 폼페이오 장관이 김정은 위원장과 직접 대화하면서 CVID 약속을 받고, 대신 미국이 종전문제를 보장해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결과로 보입니다.

종전선언은 사실 평화협정의 입구입니다. 북한은 이걸 미국이 보장해줘야 한다고 주장했을 겁니다. 미국과 수교하고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자신들이 비핵화를 못할 이유 없다고 했을 겁니다.  

실제 김정은 위원장이 "앞으로 미국과 신뢰가 쌓이고 종전과 불가침을 약속하면 왜 우리가 핵을 가지고 살겠느냐"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김 위원장은 폼페이오 장관에게 분명 이 말을 했을 겁니다. 그러니까 트럼프는 종전선언? 체제 인정? 북미 수교? 평화협정? 해주지 뭐! 이런 반응을 보였을 수 있습니다.  

또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이 트럼프의 생각을 확실하게 바꾼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3월 8일(현지 시각)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의 방미 때 트럼프가 절반 정도 입장이 바뀌었고 폼페이오 장관이 직접 북한에 가면서 북한과 협상으로 핵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입장으로 완전히 바뀐 것 같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7일(현지 시각)에는 종전 논의를 축복한다고도 밝혔습니다. 이건 남북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에 대한 서론을 띄우고 북미 정상회담에서 종전 선언을 확인하겠다는 뜻입니다. 또 필요하면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이 만나는 프로세스를 트럼프가 결정하도록 해놓으라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남북 정상회담이 제대로 치러졌습니다. 올해 종전을 선언한다는 건 평화협정 협상을 시작한다는 것인데요.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해야 할 것들의 절반 이상을 남북 정상회담에서 마무리 해놓은 셈입니다.  

완전한 비핵화와 종전 문제를 선언문에 명시했는데 완전한 비핵화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비핵화에 바꿔야 하는 과정이죠. 또 평화협정은 북미 수교와 표리의 관계에 있습니다. 결국 비핵화와 북미 수교, 평화협정이 삼위일체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에 대한 운을 뗀 정도가 아니라 절반 정도의 반제품을 만들어 놓은 상황입니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이에 대한 완제품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비핵화를 언제까지 끝낸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올 겁니다. 그렇게 되면 북미 수교와 평화협정 등도 어떤 단계를 거칠지가 착착 맞물려 들어가야 합니다.

프레시안 : 판문점 선언을 보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의 경우 연내 추진하겠다고 시한을 못박았습니다. 하지만 비핵화는 '완전한 비핵화'라는 말만 있고 그 시한은 없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정세현 : 비핵화의 시한을 정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몫입니다. 문 대통령이 다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화냅니다. 주방장인 트럼프 대통령이 메인 요리를 할 수 있도록 재료 손질해주고 준비해주는 정도가 돼야지 다 해놓으면 안됩니다.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트럼프가 빛나게 해줘야 합니다. 비핵화뿐만 아니라 북미수교와 평화협정 역시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이 돌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 시각) 미시간 주에서 열린 유세집회에서 "북한과 만남이 오는 3∼4주 이내에 열릴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AP=연합뉴스


물론 미국과 국내 일부 세력은 북한에 대해 체질적 거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비핵화에 시한이 없다, 북한을 어떻게 믿을 수 있냐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도 미국을 못 믿는 측면이 있습니다. 북한은 2007년 2.13합의에 입각해 2008년 7월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했습니다. 이는 미국이 24만 톤의 식량을 지원하기로 한 조건으로 이뤄진 것인데요. 문제는 미국이 직후에 식량 지원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렇게 북미 양측이 서로에 대해 신뢰가 깊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비핵화와 북미수교와 평화협정은 동시에 맞물려 진행돼야 합니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의 시한 및 이를 몇 단계로 나눠서 진행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에 따라 2년 내에 비핵화를 끝낸다고 하면 북한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핵 무기 폐기는 마지막으로 남겨 두고 핵 물질과 핵 시설을 동시에 폐기하는 식의 2단계로 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평화협정도 이에 맞춰서 2단계로 가야 합니다.  

미국과 우리가 바라는 빠른 비핵화를 이루려면 북미수교와 평화협정을 빨리 끝내야 합니다. 그러면 북미 수교도 질질 끌 것이 아니라 연락대표부는 언제까지 설치하고 무기 폐기를 언제까지 하면 대사관을 설치하는 등의 단계별 로드맵이 있어야 합니다. 평화협정도 가안을 언제까지 마련하고 최종적으로 언제 평화협정에 사인할 것인지 등의 로드맵을 잡아야 합니다.

"핵 무기 가지고 어렵게 살겠느냐, 잘 살수 있는 상황만 손에 쥐어주면 얼마든지 버릴 수 있다"는 김정은의 이야기는, 그렇게 할 수 있으니 대신 값을 치러달라는 겁니다. 그게 북미수교이고 평화협정인데, 중간에 경제지원 이야기가 나올 수 있습니다. 또 기존에 있던 핵 무기 폐기 과정에서 돈 이야기가 나올 겁니다. 우크라이나가 당시 비핵화할 때 기존 무기를 돈을 주고 팔았던 사례가 있습니다.  

프레시안 : 비핵화와 북미수교-평화협정이 같이 맞물려야 한다는 것인데, 남아프리카공화국이 1990년대 초 비핵화할 때 최대한 순조롭게 했지만 2년 반이 걸렸다고 하던데요. 2년 반 뒤에 가서야 북미수교와 평화협정을 한다고 하면 북한 입장에서는 굉장히 오래 걸린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정세현 : 그런데 트럼프가 2년 반까지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본인의 대선 때문입니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2년 내에 이 모든 과정을 끝내야 합니다. 2020년 5월이면 이걸 무기로 재선 선거운동을 할 수 있거든요.  

또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습니다. 정전협정은 서로 감시해야 하기 때문에 협정 자체가 내용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평화협정은 그렇게 복잡할 것이 없습니다. 

물론 기술적으로는 북한의 핵 능력 상태를 봤을 때 완전한 비핵화까지 3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 거라고 합니다. 기술적으로 검증하고 신고가 제대로 됐는지 따지고 들어가고 실무회담에서 까다롭게 굴면 시간이 걸릴 수도 있죠. 그런데 김 위원장이 핵 물질은 들고 나가고 시설은 폐기하겠다면서 현재 있는 무기는 비싸게 팔겠다는 식으로 가면 2단계로도 가능합니다.

종전선언을 입구로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적대관계가 청산되니까 북미 수교도 가능합니다. 북미가 각자 영토에 상대방의 대사관이 들어서고 미국 기업들이 북한에 투자하면 그 다음부터 미국은 북한을 군사적으로 치지 못합니다. 북한은 이런 물질적인 보장을 원합니다.

또 북한은 국제적인 협조 체제도 바라고 있을 겁니다. 정전협정은 이를 보장하는 국제 협조 체제가 없었다는 것이 큰 약점이었습니다. 북한과 중국, 유엔사령부가 3자로 추진했고 한반도의 직접 이해 당사자인 소련(현 러시아)과 일본도 없었습니다. 이게 빠졌기 때문에 한쪽이 깨면 그대로 깨지는 취약성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평화협정 추진은 남북미중을 비롯한 관련국들의 지지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성명을 내든지 유엔 안보리의 지지를 받는 것과 같이 못을 박아 버려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북한은 마음 놓고 개방해서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여러 조건을 갖춰나갈 수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중국도 참여해야 

프레시안 : 그런데 '완전한 비핵화'가 한반도의 비핵화 아닙니까? 주한미군 철수까지는 아니더라도 미국의 전략자산이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정세현 : 김정은 위원장이 남한의 대북특사단이 평양에 방문했을 때 주한미군 주둔을 전제로 한 북미 수교도 선대 유훈이라고 말했을 겁니다. 이미 이건 1992년부터 계속 나왔던 이야기고요. 이를 정의용 실장이 트럼프와 만났을 때 전했을 겁니다. 그게 트럼프에게 가장 매력적인 포인트일 수 있습니다. 미군을 한반도에 놔두는 조건에서 북미 수교해주면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을 겁니다.  

물론 군산복합체 입장에서는 고가의 전략 무기를 파는 것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수익원이 줄어들어서 북핵 문제 해결을 원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트럼프는 이제 정치인이 돼있습니다. 전임 대통령들이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본인이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 입장에서 냉전 이후 가장 골치 아픈 존재이자 '희대의 악마'로 불리는 북한을 상대로 협상을 통해 핵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은 적잖은 성과입니다. 트럼프는 이러한 성과를 내고 싶어 할 겁니다. 우리가 이를 잘 활용해야 합니다.  

▲ 27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 앞에서 정상회담 이후 판문점 선언을 공동 발표하고 있는 문재인(오른쪽)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판문점 공동 취재단


전략자산의 경우 태평양 쪽에 있는 태평양 사령부 휘하에 있는 핵무기 실은 항공모함이 한반도에 진입하기도 했는데, 상황이 변하면서 이런 전략자산이 쉽게 들어오지는 못할 것입니다. 또 사실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 목적은 북한을 핑계로 한 중국 견제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그 핑계가 없어졌으니 한반도 쪽으로는 힘들 겁니다.

다만 태평양 함대가 이제는 한반도가 아닌 남중국해 쪽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은 현재 김정은-트럼프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것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을 겁니다. 북한이 미국의 품 안으로, 그것도 남한의 주한미군 주둔을 전제로 들어가는 것에 대해 중국은 남북미 3개국이 자신을 견제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과 중국이 만나서 이런 이야기를 어느 정도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프레시안 : 이번 회담 결과로 7월 27일에 종전선언을 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는데요.

정세현 : 남북미중 정상회담 통해서 7월 27일에 판문점에서 할 수도 있죠. 트럼프 대통령이 결심하기 나름입니다. 10.4 정상선언에는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한국전쟁의 공식 종료를 선언하자고 돼 있고, 이번에 판문점 선언으로 그 프로세스가 시작되기 때문에 종전선언을 그 자리에서 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국을 빼면 안됩니다.

프레시안 :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경제 제재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정세현 : 종전선언 및 비핵화 프로세스가 시작되고 평화협정 및 북미수교 협상이 시작되면 법리상 유엔 대북 제재는 유보 상태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비핵화가 되고 북미수교랑 평화협정이 마무리 되면 제재는 정지되는 겁니다.  

협상이 시작되면서 북한의 대외 경제활동이 정상화될 수도 있습니다. 협상 시작되면 유엔 결의는 유보 상태로 해주고 이와 함께 남북 간 경협을 판문점 선언을 기반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남북관계 오르막, 남은 숙제도 행복하다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현안진단] 한반도 평화, 새로운 출발
2018.05.01 10:06:25

2018년 4월 27일, 남북한은 11년 만에 성사된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 합의했다. 한나절 짧은 시간임에도 남북 정상은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나든 것이나, 평화로이 산책을 하는 명장면들을 연출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다.

우리가 내세운 정상회담의 표어인 "평화, 새로운 시작"과 김정은 위원장이 방명록에 쓴 "평화의 시대, 역사의 출발점에서"처럼 남과 북이 같은 마음이었기에 가능했다. 남북은 이제 한반도에서 오랜 분단과 대결의 세월을 끝내고 새로운 평화의 문을 열었다.

이번 2018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합의한 '판문점 선언'에는 남북관계만의 특별함이 있다. 잠들어 있던 지난 남북 간 모든 합의를 깨우고, 남북관계를 중심으로 한반도의 미래를 만들어 가겠다는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다.  

남과 북이 한반도 문제의 직접 당사자로서 이제는 더 이상 주변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좌고우면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함께 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지금껏 남북관계가 북핵문제로 인해 표류하고 되돌려졌던 과거를 반복해서는 안 되며 북핵이라는 블랙홀을 벗어나기 위해 남북이 함께 고민하겠다는 진정성과 간절함을 담았다. 

이는 3조 13개 항의 '판문점 선언'에 잘 나타나 있다. 남북 정상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이 없는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천명하면서 남북관계 발전, 군사적 긴장완화, 그리고 평화체제 구축에 합의했다. 합의문의 순서만을 놓고 보더라도 남북관계가 북핵 문제와 북미 관계의 종속변수가 아니라 출발점이자 중심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거기에 군사적 조치가 남북관계를 더욱 단단히 지탱하고, 나아가 평화체제와 비핵화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어야 한다는 지극히 합당한 한반도 미래 디자인이다.

그저 비핵화에 대한 무언가를 상상하고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이번 합의가 당황스럽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비핵화나 북미 정상회담을 뒷받침하겠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디딤돌이나 가교적 역할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남북관계 발전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및 비핵화와 선순환 관계를 형성하도록 우리가 책임 있는 길라잡이 역할을 하겠다는 점에서 한반도 운전자론은 더 힘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의 전면적이고 획기적인 개선과 발전을 담은 1조는 먼저 민족자주의 원칙과 남북간 합의 이행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층위의 남북대화 채널을 제도화하고 민간 교류협력 활성화와 이산가족 상봉 행사도 진행하기로 했다. 원활한 교류협력을 보장하기 위해 평양시간도 다시 서울시간으로 변경하여 일치시켰다.

여기에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번영을 위해 철도와 도로 연결을 합의문에 포함시킨 것은 차후 추진할 한반도 신경제지도까지 염두에 둔 꼼꼼함으로 보인다. 남북 접근에 있어 탑다운(Top-down)과 바텀업(Bottom-up) 방식의 조화를 통해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남북관계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려는 노력이다. 

▲ 27일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악수하고 있는 문재인(오른쪽)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판문점 공동 취재단


2조에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구축을 배치한 것은 논리적 전개상 절묘한 신의 한수이다. 남북 간 군사적 조치는 남북관계(1조)를 떠받치고 평화체제(3조)를 추동하면서도 남북관계와 평화체제를 연결하는 가장 확실한 고리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남북관계가 부침을 겪었던 이유의 대부분은 남북 간 군사적 충돌 때문이었다. 과거 우리의 대북정책과 비핵화 노력은 돈(경제)으로 북한의 핵(안보)을 사려고 했기에 한계가 있었다. 남북 간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사라져야만 남북관계 역시 흔들림 없이 이어나갈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다.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현 정전협정의 준수를 위한 군사적 조치가 선행되어야 한다.  

경제교류를 지원하기 위해 군사회담이 열리고, 북핵 문제 진전에 따라 군사문제는 한발 뒤따라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과감히 벗어버렸다. 오히려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남북군사회담을 앞장세우겠다는 발상의 전환(paradigm shift)이다. 평화 유지(peace keeping)를 넘어 적극적인 평화 구축(peace making)이다.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구축은 남북관계 발전과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시급한 필요조건이라는 점에서 최우선적으로 5월 중 장성급 군사회담을 개최하기로 명시했다. 여기에서는 일차적으로 확성기 철폐와 전단 살포문제가 우선적으로 다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DMZ(비무장지대) 문제는 차후에 국방부장관회담 등에서 논의될 것이다.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관련된 합의사항은 10.4선언의 계승과 이행 차원에서 포함된 것으로 보이나, 평화협정의 진행과정에서 협상 의제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이 또한 소홀히 여길 수 없다. 

3조에서는 "정전상태를 종식시키고 확고한 평화체제를 수립"하기 위해 어떠한 무력도 사용하지 않을 불가침 합의의 준수와 나아가 군축까지도 합의문에 담았다. 이 역시 군사적 조치의 연장선이고 연결고리다.  

군축은 단순히 남북간 군사적 긴장과 전쟁 위협의 근원을 감소하고 제거한다는 의미를 넘어서는 것이다. 남북 군사력 감축은 평화체제를 넘어 한반도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며, 주변국들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남과 북이 올해 안에 종전을 선언하기로 한 부분은 향후에 일어날 또 다른 역사적 이벤트의 예고이다. 남북정상회담은 놀라움의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종전선언을 한반도 평화공존의 실질적인 출발점으로 삼고 북한의 우려를 해소시켜 비핵화 협상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남북 간 종전선언은 정전협정이 미국, 중국, 북한 3자간에 체결되었다는 점에서 사전에 미국과 중국 등 관련 당사국들을 이해시켰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대신 10.4선언에서 합의한 평화협정을 위한 3자 또는 4자 회담 개최를 재확인하였다. 연이어 개최될 한중일 정상회담, 한미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과 함께 향후 남북미, 남북미중 정상회담 등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문제가 보다 심도 있게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비핵화에 대해서는 마지막 3조 4항에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라는 공동의 목표와 의지를 확인하였다. 무엇보다 지금 "북측이 취하고 있는 조치들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대단히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라는 점을 인정한 것은 국제사회를 향해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 방향성에 대해 남한이 확인해주고 견인하겠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북한 역시 매체를 통해 판문점 선언을 있는 그대로 보도했다. 또한 북한은 5월 중에 한미의 전문가와 언론인을 초청해 핵실험장 폐쇄를 투명하게 공개적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남북이 책임과 역할을 다하고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노력해 나가기로 한 것은 반대로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따른 보상에 대해서도 남한이 북한을 안심시켜주는 진정한 한반도의 운전자 역할을 자임하는 모습이다. 이제 비핵화의 공은 북미 정상회담으로 던져졌지만 그냥 두고만 봐서는 안 된다. 

2018 남북 정상회담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해 그리고 비핵화와 북미 관계까지 책임진 의미 있는, 가치를 담은 정상회담으로 역사에 기록되어야 한다. 또 이제는 더 이상 남북이 잡은 손을 놓아서도 안 되고 놓게 해서도 안 된다. 남북관계만큼은 앞으로 되돌릴 수 없는 길을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판문점 선언'이 남긴 합의사항을 차질 없이 이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우리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남과 북이 손을 잡고 속도전으로 나아가기로 했으니 이제 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세계가 놀라면 놀랄수록 한반도 평화공존과 공동번영에 한걸음 가까이 가는 것이다.

어쩌면 이제부터가 진짜 오르막이고 가야 할 길은 멀 것이다. 그래도 '판문점 선언'을 넘어서는 목적지에 대한 기대와 믿음이 있다. 남북관계가 기분 좋은 오르막인 만큼 숨이 조금 가쁘고 힘들더라도 산적한 숙제에 대한 걱정마저 행복한 비명인 이유이다.


판문점 선언에 담긴 '신의 한 수'

[정욱식 칼럼] 김정은이 '북방한계선'을 인정한 이유는?


나는 앞선 글에서 북한의 "국가 핵무력"은 "조미(북미) 대결의 궁극적인 승리"를 위한 것이었고, 그날이 온다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기꺼이 핵무력 폐기를 선언할 것이라고 분석·전망한 바 있다. (☞ 관련 기사 : 김정은, 그는 왜?) 

물론 "조미 대결의 승리"는 북한이 미국과 전쟁을 해서 승리하거나 주한미군을 몰아내고 한반도를 공산화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65년째 이어져오고 있는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고 70년 동안 한 번도 없었던 북미 간의 완전한 정치적·경제적 관계의 정상화를 의미한다. 관건은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및 북미 수교 사이의 '선순환적 케미'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있다.

그런데 판문점 선언에는 '신의 한 수'가 등장했고 "디테일 속의 악마들"을 물리칠 수 있는 '천사들'이 담겼다.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신의 한 수'는 "남과 북은 정전협정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합의한 부분을 가리킨다. 

이게 '신의 한 수'인 까닭은 이렇다. 북한이 핵무장을 추구하면서 내세운 핵심적인 논리가 바로 "조선반도는 교전 상태"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북한 정상이 정전체제를 가리켜 "비정상적인"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올해에" 종전과 평화협정을 추진키로 합의했다. 북핵이 정전체제라는 비정상적인 토양에서 자라왔던 만큼, 토양 자체를 정상적인 평화체제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또한 북한은 "교전 상태"라는 이유로 초기 핵신고 대상에서 핵무기는 제외한 바 있었고, 검증도 "최종 단계"로 미뤘었다. 그런데 "올해에" 종전과 평화협정을 추진키로 함으로써, 비핵화로 가는 길목에 도사리고 있는 "디테일 속의 악마들"을 사전에 제거할 수 있게 되었다. 종전과 평화협정이 빨라질수록 비핵화에도 속도가 붙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이 북미 정상회담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는 의미는 바로 이들 지점에서 추출할 수 있다. 다만 미국과의 협의 과정에서 과제는 남아 있다.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의 관계를 명확히 해둬야 한다. 종전 선언이 평화협정의 예비단계인지, 아니면 동일한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올해에"라는 부사가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 모두를 염두에 둔 것인지에 대한 후속 논의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종전과 평화협정은 북한에 일방적으로 베푸는 시혜나 보상이 아니라 공동의 안전과 이익을 증진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미국에 주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 지난 4월 27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문재인(왼쪽)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내에서 수행원 없는 산책에 나서고 있다. ⓒ판문점 공동 취재단


김정은의 용단 배경은? 

그렇다면 '천사들'은 무엇일까? 기존 문법에 따르면 종전과 평화협정으로 가는 데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다. 정전협정이 협상 개시부터 체결까지 무려 2년 이상이 걸렸고, 정전체제가 65년 동안 이어져오면서 이 기간 동안 켜켜이 쌓인 난제들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올해에"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 그리고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3자 또는 4자 회담을 개최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의구심을 동반할 수 있다.

그런데 판문점 선언에는 이러한 의구심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는 합의들이 담겼다. 전문 첫머리에 담긴 '부전(不戰)의 약속'에서부터, 2조 한반도 군사적 긴장 완화에 담긴 "일체의 적대행위 전면 중단" 및 "비무장지대의 실직적인 평화지대"와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의 평화수역" 만들기, 그리고 3조에 담긴 "불가침 합의" 및 "단계적 군축 실현"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합의 내용만 놓고 볼 때에는 '남북 평화협정'에 근접한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종전과 평화협정의 당사자는 남북한만이 아니다. 미국은 핵심 당사국이고 중국의 참여도 필요하다. 그래서 판문점 선언에는 남북한이 합의할 수 있는 내용을 먼저 담고 한미·북미 정상회담과 3자 또는 4자 회담을 통해 대미를 장식하자는 취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행간도 읽을 수 있다. 평화협정 협상의 난제 가운데 하나는 북방한계선(NLL) 문제였다. "해상분계선"으로 간주하는 남측과 이를 "유령선"이라고 주장했던 남북한의 오랜 갈등과 이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판문점 선언에는 '북방한계선'이 명시되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방한계선의 존재를 인정한 셈이다. 이는 평화협정 협상 시 불거질 뻔한 "디테일 속의 악마"를 사전에 제거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평화협정 협상 시 최대 쟁점은 뭐니 뭐니 해도 주한미군 문제로 간주되었다. '평화협정→주한미군 철수→한반도 적화통일'로 이어지는 아전인수식 3단 논법은 국내외 보수 진영이 평화협정을 반대해온 핵심적인 사유였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과거에 여러 차례 주한미군을 용인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쳐도 소용었었다.

그런데 김정은은 여러 경로를 통해 주한미군을 양해할 수 있다는 뜻을 전달했다. 비핵화의 조건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물론 구체적인 각론들과 변화무쌍한 국내외 정치 환경을 고려할 때,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에는 앞으로도 험난한 길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속도전"에 나서자고 의기투합했다. 미국의 현직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에 응하기로 한 만큼, 이러한 천재일우의 기회를 살려야 한다고 다짐했다.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하고 사실상 북방한계선을 인정하며 주한미군을 용인하겠다는 김정은의 용단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재작년부터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을 맞이하는 2018년 7월 27일경에 당사국들 정상이 만나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끝내고 항구적인 평화를 선포하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염원하고 또한 주문했었다. 그런데 꿈같은 일이 성큼 다가서고 있다. 그 꿈이 실현되는 날, 북한이 '명예로운 비핵화'를 천명하는 날도 성큼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