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통일 문제

"전쟁 없는 한반도…완전한 비핵화"

일취월장7 2018. 4. 28. 09:44

"전쟁 없는 한반도…완전한 비핵화"  

한반도 지각변동 몰고 온 '판문점 선언'
2018.04.27 21:37:52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5년간 이어온 정전체제와 25년간 진행된 북핵 위기를 일거에 허물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를 근본적으로 뒤바꾸는 지각변동이 27일 분단의 상징 판문점에서 시작됐다.

세계가 주목한 가운데 열린 4.27 '판문점 선언'을 통해 양 정상은 13개 항으로 구성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공동으로 발표하고 "완전한 비핵화"와 "정전 상태 종식"을 선언했다. 

ⓒ판문점 공동취재단


"완전한 비핵화"…북미 정상회담 청신호 

관심을 모은 '비핵화' 수위와 관련해 남북 정상이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고 밝힌 대목이 주목된다.

북핵 완전 폐기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의지를 공식 합의문에 담은 것으로, 이에 대한 일각의 의심을 불식시킨 최대 성과로 꼽힌다. '비핵화'라는 표현만 합의문에 담아도 성공이라던 당초의 예상을 뛰어넘은 수위다. '완전한 비핵화'는 5월 말, 6월 초로 예상되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정부가 요구하는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와 일맥상통한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를 들고 5월 중 미국을 방문할 문재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비핵화 청사진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체적인 비핵화 로드맵은 북미 정상회담을 거치며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남북 정상은 또 "북측이 취하고 있는 주동적인 조치들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대단히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라는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 전면 중단과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선언을 비핵화를 향한 중대한 조치로 의미 부여한 것이다. 무엇보다 합의문을 비롯해 이날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내내 김 위원장은 비핵화에 따르는 보상을 언급하지 않아 진정성을 강조하는 모양새도 냈다.

한편 "남과 북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했다"고 합의한 대목은 미국의 전술핵 배치나 전략무기 전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65년 만에 한반도 전쟁이 끝난다 

정전 체제 종식과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키로 한 점도 한반도 질서를 뒤엎는 사건이다.  

양 정상은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적극 협력해 나갈 것"이라며 "한반도에서 비정상적인 현재의 정전 상태를 종식시키고 확고한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것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역사적 과제"라고 선언했다. 

'한국전쟁을 잠시 중단한다'는 휴전의 의미를 담아 지난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을 무려 65년 만에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겠다는 양국 정상의 의지다. 

이를 위해 양 정상은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남북 간 선언적 의미를 뛰어넘어 주변국들과 함께 명실상부하게 구속력 있는 평화협정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공식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평화협정이 체결될 경우, 한반도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의 얼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합의문 발표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한국전쟁은 끝날 것"이라고 적극 호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이 같은 평화협정 로드맵과 함께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실질적인 조치에도 합의했다. 

양 정상은 "그 어떤 형태의 무력도 서로 사용하지 않을 때 대한 불가침 합의를 재확인하고 엄격히 준수해 나가기로 했다"며 "군사적 긴장이 해소되고 서로의 군사적 신뢰가 실질적으로 구축되는 데 따라 단계적으로 군축을 실현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특히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충돌의 근원이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5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의 확성기 방송, 전단살포가 중단되며, 비무장지대(DMZ)를 평화지대로 전환하는 방안이 추진될 전망이다. DMZ 내에 위치한 감시초소에서 중화기와 병력 철수를 비롯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를 평화 수역으로 전환하는 조치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 국방장관 회담과 군사당국자 회담을 비롯해 5월 중에 열기로 한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긴장완화를 위한 논의들이 구체적으로 오갈 것으로 보인다.

ⓒ판문점 공동취재단


문재인-김정은 가을에 또 만난다 

남북 간 교류를 통한 관계 개선도 급물살을 탄다. 이날 회담을 통해 양 정상은 정상회담 정례화를 위한 초석을 다진 데 이어 다양한 민간 교류 방안도 폭넓게 논의했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이 올가을 평양을 방문키로 해 하반기에도 한차례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될 전망이다. 이는 남북 정상이 지속적으로 만날 수 있는 모멘텀을 확보한 것으로,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은 김정은 위원장이 먼저 제안했다는 후문이다. 

이어 양 정상은 "고위급 회담을 비롯한 각 분야의 대화와 협상을 빠른 시일 안에 개최해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문제들을 실천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나가기로 했다"면서 "각계각층의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 왕래와 접촉을 활성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6.15 행사를 남북이 '민족 공동행사'로 추진하는 한편, 8.15 이산가족 상봉, 8월 18일부터 열리는 아시안게임으로 이어지는 민간 차원의 남북 교류가 올 한해 활발하게 진행될 전망이다. 

양 정상은 또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하여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취해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인해 현재 가로막혀 있는 남북 간 경제협력을 준비하기 위한 포석이다. '비핵화 진전 → 북한에 대한 국제 재재 완화 → 경제 협력'으로 나아가려는 김정은 위원장의 구상과 '한반도 신경제지도'를 추진해 온 문 대통령의 구상이 맞물린 결과라는 평가다. 

개성에 설치될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는 남북 경협에도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 대통령은 "여기서 10·4 정상선언 이행과 경협 추진을 위한 남북 공동조사 연구 작업이 시작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양 정상은 "이미 채택된 남북 선언들과 모든 합의들을 철저히 이행한다"는 데에 합의함으로써 남북 관계가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한반도 주변 정세나 정권 교체 등 상황 변화에 따라 반복됐던 합의 불이행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는 해석이다. 

정부는 한반도 평화를 향한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되는 이번 '판문점 선언'을 향후 국무회의 심의와 대통령 비준을 거쳐 공포할 방침이다. 이 과정에서 국회 동의 여부도 관련부처 검토를 거쳐 결정키로 했다. 


"최대 성공 거둔 회담"...트럼프만 남았다
[전문가 진단] "북미 정상회담서 '완전한 비핵화' 로드맵 도출 전망"
2018.04.27 21:59:23

남북 정상이 4.27 정상회담을 통해 완전한 비핵화와 종전선언을 합의한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성공적인 회담이었다며, 향후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이와 관련한 성과가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27일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대단히 만족스러운 성공적인 회담이었다"며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 문제에서 미국이 '키 플레이어'중에 하나고 아직 북미, 한미 정상회담이 남아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완전한 비핵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한 것으로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백 수석연구위원은 또 "남북은 이번 회담에서 '북측이 취하고 있는 주동적인 조치들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대단히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라는데 인식을 같이 했다'고 했는데, 이는 남북이 비핵화를 위한 북한의 조치가 중요하다는 점을 합의했다는 뜻"이라며 "이로써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북한의 조치를 다시 한 번 강조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김동엽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역시 이번 합의가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할 수 있는 최선"이라며 위와 같은 문구가 "우리가 미국과 국제사회에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 지금의 행동이 비핵화를 향해 가고 있다고 보장해주는 일종의 보증인이 되어준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준형 한동대학교 교수도 "최대치의 성공을 거둔 회담"이라고 평가한 뒤 "회담 결과에서 완전한 비핵화와 종전 선언이 언급됐는데, 이건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미 승인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본다"고 해석했다.  

김 교수는 마이크 폼페이오 신임 미 국무장관이 지난 4월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났을 때 이미 이러한 합의 내용을 이야기했을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그걸 못 참고 '천기누설'을 했던 것 아닌가"라고 내다봤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7일(현지 시각) 아베 신조 (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그들(남북한)은 (한국전쟁) 종전 문제를 논의하고 있으며, 나는 이 논의를 축복한다"고 말한 바 있다.  

김 교수는 "이제 북미 정상회담은 오늘 남북 정상이 이야기했던 내용을 실천하는 수준이 될 것"이라며 "시점을 정해서 완전한 비핵화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전망했다.

그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있는 해인 2020년을 기한으로 잡아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한다는 정도의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며 "북한의 핵 프로그램 사찰을 완료한다는 부분도 회담의 결과에 포함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 27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문재인(왼쪽)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내에서 수행원 없는 산책에 나서고 있다. ⓒ판문점 공동 취재단


백 수석연구위원 역시 북미 정상회담에서 '2020년까지 비핵화를 완료한다'는 수준의 합의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관측했다.  

그는 "트럼프는 북미 정상회담을 성공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일단 북한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을 막아야 한다. 또 올해 있을 중간 선거를 이겨야 한다"며 "트럼프는 '북한이 우리한테 핵과 미사일로 위협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예전 미국 정부들이 북핵 문제를 질질 끌어왔다'면서 '내가 이번에 한 번에 해결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자기 임기 내에 북한의 비핵화 이행을 완료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 역시 '2020년까지 비핵화 완료'라는 카드가 필요할 것이라는 게 백 수석연구위원의 전망이다. 그는 "미국은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바뀔 수 있다. 그러면 정책이 또 바뀐다. 그러한 미국의 정치체제를 고려했을 때 북한은 미국의 대선 전에 비핵화 이행까지 완료하고 싶을 수 있다"며 "북미 모두 서로 2020년까지 비핵화 이행을 완료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백 수석연구위원은 "미국 내에는 평화체제 논의보다는 비핵화를 먼저 해야 하다는 분위기가 있다. 그런데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북한이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했다는 입장을 전달했을 수 있다"며 "그렇다면 비핵화와 평화체제는 동전의 양면이며 단계적으로 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미국에 설득하기 쉬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남북이 이번 회담에서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하였다"고 합의한 부분이 한미 연합 군사 훈련과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북한 입장에서 '일체의 적대시 행위'에는 한미 연합 군사 훈련도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 정부가 훈련의 축소나 중단을 고려할 수도 있는데, 이는 미국과 국내 여론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 당장 8월로 예정된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이 어떻게 진행될지가 이를 판가름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위 문구가 북한의 비핵화 및 체제 안정을 위한 안보 환경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대목이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김동엽 교수는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군사적 위협 제거와 체제안정을 위한 안보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남북한 군사적 조치는 당연히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라며 "군사적 조치, 즉 안보를 통해 안보를 얻고자 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편 이번 회담에서 남북은 개성에 연락사무소를 두기로 합의했다. 연락사무소란 아직 수교를 맺지 않은 두 국가가 외교 관계를 수립하기 위한 전 단계로 사실상 대사관의 역할을 하는 곳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징적인 기관을 개성에 두기로 한 것을 두고 김준형 교수는 "개성에는 남북이 같이 쓰던 시설이 있었다. 그걸 그대로 이용하겠다는 것"이라며 "앞으로 일이 잘 풀리면 개성공단도 열 수 있다는 상징적 의미도 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실제 개성공단에는 남북이 함께 사용했던 사무실 및 건물이 남아있다.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와 개성공단 공동위원회 사무처 등 남북 실무자들이 함께 근무를 한 공간이 남아있다.

백학순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의 비핵화가 이행되면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완화될 수 있다"며 "그 과정에서 개성공단을 활성화하고 회복한다는 의도도 있다고 보여진다"고 말했다.   

 

30대 수령 김정은, 아버지와 같은 듯 달랐다

국제사회에 본격 데뷔한 김정은 위원장 스타일…행동과 패션의 정치학

오종탁 기자 ㅣ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18.04.27(금) 17:03:50


"평양에서 어렵사리 평양냉면을 가져왔는데 대통령님께서 좀 편한 마음으로 멀리서 온, 아 멀다고 말하면 안되갔구나."(일동 웃음) 

 

가히 '제2의 데뷔'라 할 만하다. 2018 남북정상회담에서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얘기다. 2010년 9월28일 북한 차기 지도자로서 공개석상에 처음 등장했던 김 위원장이 이번처럼 국제사회에 본인 스타일을 맘껏 드러낸 적은 없었다. 잠깐잠깐씩 북한 방송에 비치는 김 위원장 모습에 맹인 코끼리 다리 만지기식 분석이 쏟아질 뿐이었다. 이제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김 위원장이 대화 국면에 완연히 녹아든 만큼 앞으로도 그의 '민낯'을 쉽게, 자주 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4월27일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만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소개로 북측 수행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4월27일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만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소개로 북측 수행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파격과 허심탄회 

 

4월27일 남북정상회담에 임하는 김 위원장의 스타일을 두 단어로 요약하면 '파격'과 '허심탄회'다. 예상을 뛰어 넘은 적극적인 모습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첫 만남에서부터 나타났다. 문 대통령은 판문점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남쪽으로 오려는 김 위원장에게 "나는 언제쯤 넘어갈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김위원장은 남측으로 넘어온 뒤 "그럼 지금 (북측으로) 넘어가 볼까요"라며 문 대통령 손을 잡아끌었다. 두 정상이 손 잡고 MDL을 넘는 장면은 이번 회담의 주제 의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진으로 남았다. 남북 정상이 폭 50㎝, 높이 5㎝의 콘크리트 시설물로 된 분단의 선을 함께 넘나드는 퍼포먼스가 성사되자 지켜보던 남북한 수행원들 사이에서는 저절로 박수가 터져 나왔다.

 

화기애애함은 본격적인 회담 전까지 계속됐다. 화동으로부터 꽃을 받고 기념사진을 찍을 때 김 위원장은 화동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정다감함을 보였다. 이어 김 위원장은 남측 수행원들과 밝게 웃으며 인사하고, 일일이 손 내밀어 북측 수행원들을 문 대통령에게 소개했다. 팔자로 성큼성큼, 팔을 휘휘 저으며 걷는 모습은 자신감을 반영했다. 문 대통령의 '방남 초청' 발언에 흔쾌히 화답한 대목에서도 김 위원장의 대담성이 엿보였다. 문 대통령이 이날 전통의장대 행사가 약식으로 치러졌다면서 "청와대에 오면 훨씬 좋은 장면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하자, 김 위원장은 "초청해주면 언제라도 청와대에 가겠다"고 화답했다.

  

김 위원장은 나이가 30살 이상 많은 문 대통령에 대한 정중함도 잃지 않았다. 이는 정상회담 직전 모두발언에서 가장 잘 드러났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을 '대통령님'으로 칭하며 손윗사람 대하듯 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평화와 번영, 북남 관계의 새로운 역사를 쓰는 출발선에서 신호탄을 쏜다는 마음"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강조해온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그대로 언급한 것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김 위원장이 회담 준비를 많이 했고, 문 대통령을 존중하고 있다는 점이 느껴졌다"고 평가했다.

 
인민복, 뿔테 안경…패션의 정치학


앞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남북정상회담에 김 위원장이 어떤 옷을 입고 나올지도 큰 관심사였다. '정상 국가'임을 강조한 최근 행보를 감안할 때 서양식 정장을 입으리라는 관측도 있었다. 그러나 이날 오전 김 위원장은 줄무늬가 있는 검은색 인민복을 입고 등장했다. 족히 10여명은 되어 보이는 근접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아가며 수행원단을 이끌고 위풍당당하게 걸어 내려왔다. 잠시 후 뒤따르던 공식 수행원단이 다른 통로를 이용하고자 비켜섰고, 김 위원장 혼자 판문점 MDL 쪽으로 다가왔다.

 

인민복은 사회주의 국가 지도자의 상징이다. 양복 대신 인민복을 선택한 것은 북한 내부를 다독이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북한에서도 생중계는 아니지만 녹화방송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시청한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격변기 속 북한 지도층과 주민들이 동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의 파격적인 대외 개방 행보와 달리 북한 내부에서는 반(反) 사회주의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는 추세"라며 "내부 개혁에 대해선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며 부분적,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은 이번에 갈색 뿔테 안경을 착용했다. 지난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 때는 인민복을 입고 안경은 쓰지 않았다. 또 문 대통령과 회담장에서 마주앉자마자 검은색 파일을 열었다. 북·미 정상으로 이어지는 릴레이 회담 국면에서 진중함과 준비성을 어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4월27일 오전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만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화의 집 회담장의 사전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4월27일 오전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만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화의 집 회담장의 사전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아버지 김정일과 '같은 듯 다른 듯'


김 위원장의 모습에서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읽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는 2011년 홀로서기를 시작했을 때부터 김 국방위원장 혹은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외모, 제스처를 따라해왔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 환영 행사에서 김 위원장이 자연스레 상황을 주도하는 장면이 지난 1, 2차 남북정상회담 때의 김 국방위원장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는 평이 많았다.

 

김 위원장은 이날 판문점 평화의집 방명록에 "새로운 력사(역사)는 이제부터. 평화의 시대, 력사(역사)의 출발점에서"라고 썼다. 메시지에 함축된 의미 못지않게 20~30도 기울여진 김 위원장의 독특한 필체가 눈길을 끌었다.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올려 쓰는 김 주석의 이른바 '태양서체'를 연상시킨다.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도 지난 2월 문 대통령을 예방해 청와대 방명록에 태양서체를 연상시키는 필체를 남겼다. 
 
김 위원장은 간간이 젊은이 특유의 설익음과 발랄함도 내비쳤다. 우리 군의 의장 행사 때 김 위원장은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는 군악대의 연주가 이어지는 동안 무표정으로 레드카펫을 걸었다. 의장대 사열을 기다리면서는 거수경례를 하는 문 대통령 옆에서 굳은 표정으로 부동자세를 취했다. 회담장에 들어서서는 이내 긴장을 풀었다. 평양냉면과 관련한 회담 모두발언이 압권이었다. 김 위원장은 "오기 전에 만찬 음식으로 얘기를 많이 하던데 평양에서 어렵사리 평양냉면을 가져왔다"면서 "대통령님이 좀 편한 마음으로, 평양냉면, 멀리서 온, 아 멀다고 말하면 안 되갔(겠)구나, 좀 맛있게 드시면 좋겠다"며 웃었다. 농담할 때는 수줍은 듯 시선을 어디로 둘지 몰라 했다. 주변 수행원, 취재진은 물론 TV를 시청하는 전세계 시청자들이 웃음 지은 부분이다. 주요 회담의 모두발언이 다양한 함의를 담아 미리 구체적으로 짜이는 것을 고려하면 이런 화법은 다소 이례적이다. 이어진 문 대통령 모두발언은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는 느낌이어서 더 대조됐다.

 

김 위원장을 수행한 동생 김여정 제1부부장도 냉철함 뒤의 풋풋함을 숨기지 못했다. 김 부부장은 문 대통령이 환담장에서 "(평창동계올림픽 때 특사로 방남해) 남쪽에서 아주 스타가 됐다"고 추켜세우자 얼굴이 빨개진 것으로 전해졌다.


北이 바라는 핵폐기 대가…韓·美의 대책은

北 핵무기 개발에 3조원 넘게 투입 추정…그 이상의 보상 필요하지만 구체적 계획 없어

공성윤 기자 ㅣ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8.04.28(토) 10:00:01


'3조원.'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 쏟아 부었다고 추정되는 최소 비용이다. 남북은 4월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나온 '판문점 선언'을 통해 비핵화 목표를 공동 확인했다. 전 세계가 주목할 만한 역사적인 선언이다. 그러나 북한의 입장에선 이렇듯 거액을 들인 무기를 아무런 보상 없이 당장 폐기할 수 있을까. 대다수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받아들일 만한 상당한 보상을 해야 할 것이라는 데에 의견이 모아진다. 

 

우리 정부는 아직 공개적으로 보상 계획을 밝힌 바 없다. 판문점 선언에는 "남북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각자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그 '역할'에 비핵화에 따른 보상이 포함되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 

 

보상이 결정된다 해도 그 규모에 대해선 논란이 예상된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은 '남북 기술협력 추진방안' 보고서를 통해 "이론적으로 핵무기보다 더 높은 보상이 있을 경우 북한이 비핵화의 길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위해 적게는 3조원에서 많게는 5조원 넘게 투자한 것으로 분석된다. 

  

4월27일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반송 식수 후 군사분계선 표식물이 있는 ‘도보다리’까지 산책을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 한국공동사진취재단

4월27일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반송 식수 후 군사분계선 표식물이 있는 ‘도보다리’까지 산책을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 한국공동사진취재단

 

'비핵화' 약속했지만…보상 문제가 남아 있어

 

이 액수는 어떻게 계산된 걸까. 우리나라 국방부는 2014년 4월 "북한이 지금까지 핵 개발에 쓴 비용은 11억~15억 달러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지금 환율로 약 1조1800억~1조6100억원이다. 그런데 이는 어디까지나 4년 전에 발표된 추정치다. 

 

북한은 이후 2016년 1월과 그해 9월에 각각 4‧5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지난해 9월엔 기어이 6차 핵실험마저 진행했다. 그 사이 추가로 핵시설을 지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지난해 8월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북한이 영변 핵시설에서 추가 원자로 건설에 나섰다"고 주장했다. 올 3월엔 이 원자로가 시험가동에 들어갔다는 정황이 공개됐다. 

 

이에 따라 투자액은 현재 더 늘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8월 미국 정부를 인용한 CNBC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60기의 핵탄두 개발에 최대 31억8000만 달러(약 3조4200억원)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단, 이는 핵탄두 개발비만 추산한 액수다. 핵탄두를 실제로 원거리에 날려 보내려면 미사일이 필요하다. 넓은 의미에서 '핵무기'란 미사일에 핵탄두가 결합된 형태를 뜻한다. 우리 국방부의 2012년 발표에 따르면, 북한은 미사일 개발에 총 17억4000만 달러(1조 8700억원)를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사일을 실전에 배치하기 위해선 발사 실험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낭비되는 미사일의 자체 가격을 포함해 발사대 제작‧운용비, 연료비 등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 국방부는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한 2011년 말부터 2016년 7월까지 총 31기의 탄도미사일을 쏜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들어간 예상 비용은 9700만 달러(약 1040억원)다. 

  

4월27일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반송 식수 후 군사분계선 표식물이 있는 ‘도보다리’까지 산책을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4월27일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반송 식수 후 군사분계선 표식물이 있는 ‘도보다리’까지 산책을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핵 개발비 3조원 보상할 제안 따라나와야

 

그런데 미사일 발사 실험은 2017년 들어서도 계속됐다. 지난해 5월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에만 북한은 10차례 넘게 미사일을 쏘아 올렸다. 추가 비용이 발생했단 뜻이다. 이 모든 점을 고려하면 적어도 최소 개발비는 3조원으로 추론할 수 있다. 즉 비핵화의 전제 조건으로 이 정도 규모의 당근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가능할까. 3조원은 올해 편성된 우리나라 총 예산(428조원)의 0.7%에 해당한다. 올해 정부가 청년 일자리 예산으로 투입한 돈이 3조원이다. 또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중소기업‧소상공인 지원에도 3조원이 들어간다. 정부가 지난 10년 간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쓴 돈도 3조원에 달한다. 예산 지원에 관해선 국회와 여론의 문턱도 넘어야 한다. 게다가 핵무기 개발비의 추산 기준에 따라 보상 규모를 더 키워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은 '단계적 비핵화' 따른 보상 거절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실장은 4월27일 "오는 5월 말~6월 초에 개최될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포기에 대한 구체적 합의가 발표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미국이 이미 보상을 논하기 전에 북한부터 완벽한 비핵화를 이행해야 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는 4월26일 논평을 통해 "우리는 북한이 취하는 매 조치마다 양보하는 데 관심이 없다"면서 "이전 협상에서의 점진적, 단계적 접근 방법은 실패해왔다"고 밝혔다. 단계적 비핵화에 따른 보상안에 대해 미리 선을 그은 것이다. 

 

최악의 변수도 있다. 비핵화를 담보로 보상을 해줬는데, 북한이 입을 닦아버리고 비핵화 선언을 철회해버리는 것이다. 판문점 선언은 아직 상호간의 법적 효력을 갖지 않는 합의문 단계다. 그리고 북한과의 합의문은 국제법상 조약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우리 헌법에선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