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통일 문제

평화 외치는 김정은, ‘계획된 전략일까’ ‘진심일까’

일취월장7 2018. 5. 8. 11:31

평화 외치는 김정은, ‘계획된 전략일까’ ‘진심일까’

[평양 Insight] 핵전쟁 말한 작년과 다른 파격 행보…본격 北 개방 이어질 가능성도 있어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북한전문기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5.04(금) 17:00:00 | 1890호


표준을 바꾼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개인이나 단체 수준이 아닌 한 국가 체제의 경우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적지 않은 행정적 비용을 수반하는 건 물론이고 공동체 구성원들의 혼잡과 불편함이 따를 수밖에 없다. 새로운 표준을 경쟁적 입장에 있거나 적대적 정서를 갖고 있는 상대의 것에 맞추는 것이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기술적 측면뿐 아니라 심리적인 쪽에서 봐도 영 내키지 않는 일일 수 있다는 점에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의 표준 시간인 ‘평양시(時)’를 남한이 쓰고 있는 시간에 맞추겠다고 밝힌 건 파격으로 평가할 수 있다. 청와대의 발표에 따르면, 김정은은 4월27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 걸린 서울·평양시를 각각 표시하는 두 개의 시계를 보고 평양시 변경 입장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언급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이건 같은 표준시를 쓰던 우리 측이 바꾼 것이니 우리가 원래대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사흘 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정령을 통해 김정은이 언급한 조치를 “5월5일부터 적용한다”고 밝혔다. 3년 전 북한이 남한보다 30분 늦은 평양시를 제시하면서 내건 명분은 “일제의 잔재이기 때문”이란 것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김정은의 이번 결정은 북한 정권 수립의 이념적 토대가 된 항일·반일의 이데올로기를 훼손하는 듯한 인상까지 줄 여지가 있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이를 전격적으로 결정했고 북한 기관들은 즉각 이행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4월27일 판문점 평화의집 2층 회담장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4월27일 판문점 평화의집 2층 회담장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北 ‘항일’ 상징 평양時 전격 변경 결정

 

김정은의 파격적인 변신 행보는 거듭되고 있다. 올 1월 신년사에서 남북 화해·협력을 언급하며 대남 유화 제스처의 운을 뗀 그는 2월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 북한 선수단·고위인사를 보냄으로써 대화와 교류의 물꼬를 텄다. 특히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청와대를 방문해 김정은 친서를 전달하고 정상회담을 제안함으로써 남북관계에 엄청난 변동이 일 것임을 예고했다. 4월27일 판문점 남측 지역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은 김정은 위원장이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식과 접근법으로 남북관계를 다뤄나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자리였다고 조심스레 관측할 수 있다.

 

물론 아직은 구체적 행동이 아닌 말과 약속 차원이란 제한점이 있지만 김정은의 잇단 언급은 과거 그의 발언이나 행보에 비춰볼 때 놀라운 수준인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3개 분야 13개의 합의문을 살펴봐도 그렇다. 정상회담의 정례화는 물론 올해 안에 한국전쟁의 종전선언을 하는 문제, 평화수역 합의와 관련해 서해 북방한계선(NLL)의 존재를 인정하는 듯한 대목 등이 눈길을 끈다. 특히 ‘완전한 비핵화’란 표현에 대해 합의하고 판문점 선언에 명문화한 점은 의미가 있다. 북한 체제 보장 등 적지 않은 전제조건이 있을 수 있지만 북한 핵 문제를 남북 간에 논의하고 해결해 나가는 데 있어 단초를 마련했다는 측면에서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핵과 미사일 ‘도발자’로서의 이미지뿐이었다. 2017년 연초부터 미사일 도발에 나선 그는 미국 본토 타격을 공언하며 괌 지역을 대상에 올리는 등 위협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급기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을 쏘아 올렸고 11월말에는 소위 국가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앞서 9월엔 6차 핵실험을 강행해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제재를 자초하기도 했다. 미국과의 대립각은 날로 날카로워지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극렬한 ‘말 폭탄’을 주고받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는 올해 신년사에서 김정은이 “내 책상 위에 핵 버튼이 있다는 건 현실”이라며 핵전쟁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치달았다.

 

남북이 현재 30분 차이를 보이는 표준시를 서울 표준시로 통일하는 데 합의했다. 사진은 평화의집 1층에 걸려 있던 서울과 평양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 © 연합뉴스

남북이 현재 30분 차이를 보이는 표준시를 서울 표준시로 통일하는 데 합의했다. 사진은 평화의집 1층에 걸려 있던 서울과 평양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 © 연합뉴스

 

5월 중 해외 전문가 불러 핵실험장 폐쇄 확인

 

대남 노선도 거칠기는 마찬가지였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도 대화·교류 제안을 거부하면서 거리를 뒀다. 당국회담과 대북지원 제의도 걷어차면서 비난에 매달렸다. 잇단 핵과 미사일 도발 과정에서 ‘남조선 핵 불바다’ 위협이 나왔고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의 도발에 맞서 우리 군의 미사일 발사 현장을 참관하며 북한을 ‘적’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대치 국면까지 초래됐다. 그동안의 남북관계에서 핵 위협까지 쏟아지고, 우리 국민들이 핵전쟁 공포를 느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닥친 것이다.

 

판문점 정상회담은 이런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 버렸다. 판문점 선언의 합의 내용뿐 아니라 합의문 이외의 사안에서도 놀라운 변화가 드러났다. 핵실험장 폐쇄와 관련한 김정은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비핵화 문제를 논의하던 중 함북 풍계리에 위치한 핵실험장 폐쇄와 전문가·언론인 참관 허용을 밝혔다. 그는 “북부 핵실험장 폐쇄를 5월 중 실행하고 이를 국제사회에 투명하게 공개하기 위해 한국·미국의 전문가와 언론인들을 조만간 북으로 초청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김정은은 “못 쓰게 된 것을 폐쇄한다고 하는데 와서 보면 알겠지만 기존 실험 시설보다 더 큰 두 개의 갱도가 더 있고 이는 아주 건재하다”고 주장했다. 민감한 사안인 핵 관련 시설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알려 자신의 진정성을 드러내 보이려는 의도로 읽힌다.

 

물론 이 같은 김정은의 언급만으로 북한의 핵 포기나 체제변환 등을 이야기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에 성원을 보내는 국민 중에도 아직 김정은의 웃음 띤 얼굴과 ‘완전한 비핵화’ 선언에 대해 찜찜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서울 핵 불바다와 워싱턴 타격으로 겁박하던 그의 얼굴이 생생한데, 올리브 가지를 흔들며 평화와 비핵화를 설파하는 모습이 어색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김정은의 최근 언급과 행보에선 과거 6년간의 집권 시기에선 찾아보기 힘든 대목이 적지 않다. 어느 것이 진짜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의 모습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위장 평화공세라는 주장도 제기돼 경각심을 높이게 한다. 그렇지만 최근의 한반도와 주변 정세의 흐름에 착목해 보다 폭넓게 이 상황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기존의 틀에 얽매여 김정은과 북한 체제의 움직임을 분석하고 향후 행보를 예측하다간 자칫 중대한 변곡점을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복잡한 정세 속에서 자기 나름대로 체제와 권력을 유지하고 안팎으로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김정은 역시 조성된 정세에 맞춰 변신하고 대처해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점에서 상황을 주시할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담대한 발걸음으로 새 시대를 열다

2018 남북 정상회담은 ‘평화의 제도화’를 향한 담대한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특히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설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북 공동연락사무소야말로 남과 북이 ‘사실상의 남북연합 단계’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출발 신호탄’이자 ‘화룡점정’이다.

남문희 기자 bulgot@sisain.co.kr 2018년 05월 07일 월요일 제5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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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공동사진기자단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왼쪽)이
    판문점 평화의집 앞에서 ‘판문점 선언’을 발표한 후 박수를 치고 있다.

    2007년 10·4 선언 때 우리 측 제안 중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유일하게 거부한 게 바로 남북 정상회담의 정례화였다. 김정일 위원장은 수차례 중국 방문과 20일 이상 열차를 타고 러시아까지 다녀왔지만 이상할 정도로 남한 방문을 부담스러워했다. 4·27 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문 대통령이 정식 의제 외에 심혈을 기울인 어젠다가 바로 정상회담 정례화였다. “나는 언제쯤 넘어갈 수 있겠는가”라는 말은 그냥 한 게 아니었다. 문 대통령은 집요했다. 전통의장대 사열 때 발언에서도 집요함이 드러났다. “장소가 좁아 의장대 사열이 약식이라 아쉽다. 청와대에 오시면 훨씬 좋은 장면을 보여드릴 수 있다.” 다음에는 서울에 올 수 있겠는가, 라고 타진한 것이다. 그러자 김정은 위원장의 거침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 그런가요? 대통령께서 초청해주시면 언제라도 청와대에 가겠습니다.” 남한 방문을 부담스러워했던 아버지와 달리 김정은 위원장은 파격적이라 할 정도로 스스럼이 없었다. 

    1994년 김영삼 대통령과 정상회담에 합의하고는 서울을 방문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는 김일성 주석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김 주석은 서울에서 행할 연설문의 서두에 “반세기 만에 서울 시민을 만나기 위해 나, 김일성이 왔습니다”라고 썼다고 한다. 김 주석의 ‘반세기’가 김정은 위원장에게서는 ‘잃어버린 11년 세월’로 바뀐 것은, 그동안 남북관계 단절의 귀책사유가 남쪽에 있었음을 짚겠다는 의도로 보였다. “기대하는 분도 많고, 아무리 좋은 합의나 글이 나와도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면 좋은 결과에 기대를 품었던 분들에게 더 낙심을 주지 않겠나”라고 한 발언에서 지난 시기 이행되지 않은 약속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는지 내비치기도 했다.

    그렇다면 김정은 위원장 본인은 약속을 지킬까? 북한 외교관 출신으로 북쪽 생리에 밝은 탈북 전문가에게 물어보았다. 대개 비판적으로 북쪽의 행태를 지적하던 그가 정상회담을 본 뒤 뜻밖의 답변을 했다. “상당히 파격적인 행보다. 여기 와서 자기 입으로 공개적으로 한 발언이라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진정성 있게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정상회담 때 김정은 위원장이 쏟아낸 발언의 핵심은 ‘평화와 번영’으로 요약할 수 있다. “오늘 이 자리에서 평화 번영, 북남관계의 새로운 역사가 쓰이는 그런 순간에 이런 출발점에 서서 신호탄을 쏜다는 그런 맘을 가지고 여기 왔다(오전 정상회담 모두 발언).” 2012년 4월15일 취임 일성으로 “더 이상 우리 인민의 허리띠를 졸라매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라고 공언했던 그답게 북한의 열악한 교통 사정을 인정하는 데도 거침이 없었다. 지난해 그는 핵무장을 추구했던 아버지(김정일)의 옷을 입었다면, 올해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남북 협력에 관심을 쏟은 할아버지(김일성)의 옷을 입고 내려왔다. ‘양탄일성(원자탄·수소탄과 인공위성 개발)’을 추구한 마오쩌둥의 모자를 벗고, ‘번영을 위한 평화’를 추구한 덩샤오핑의 모자로 바꿔 쓰고 군사분계선을 넘어왔다. ‘대결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겠다며 ‘남북 적대관계의 종식’과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 “평화의 시대, 역사의 출발점에서”라는 그의 방명록 메시지는 “평화, 새로운 시작”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메시지와 공명했다.

    남북 연락사무소, 왜 중요한가

    그러나 제도화되지 않은 평화는 위험하다. 김 위원장의 말대로 ‘이행되지 못한 좋은 합의나 글’로 끝나기 십상이다. 지난 두 차례 남북 정상회담이 남긴 교훈이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 합의가 기존 합의와 차별화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바로 ‘평화의 제도화’를 향한 담대한 발걸음을 시작한 것이다.

    ⓒ한국 공동사진기자단
    2018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통의장대 사열을 하고 있다.

    4월27일 오후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흡족한 표정으로 발표하던 문 대통령이 못내 아쉬움을 드러낸 대목이 있었다. 문 대통령은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개성에 설치하기로 했다고 발표하면서 “여건이 되면 각각 상대방 지역에 연락사무소를 두는 것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여건이 됐다면 상대방 지역에 설치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는 소회를 밝힌 것이다. 이 연락사무소 문제가 회담 직전에 갑자기 떠올랐다. 판문점에 두기로 했다거나 서울과 평양에 두기로 했다는 추측 보도가 엇갈렸다.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판문점은 처음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판문점보다 진일보한 개성에 두기로 하면서도 문 대통령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는 서울과 평양 연락사무소 교환 설치를 추진했다는 방증이다.

    북한의 비핵화를 어떤 표현으로 공동선언문에 담을까 못지않게, 연락사무소 문제는 사실 최대 이슈였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우리 정부가 심혈을 기울였던 사안이다. 정상회담 직전인 지난 4월18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서울과 평양에 대표부를 설치하는 것과 비무장지대의 GP 철수만 되면 다른 합의는 안 되어도 남북관계에서 획을 긋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문제는 미국 트럼프 정부 대북정책의 최대 현안이기도 하다(<시사IN> 제549호 ‘평양 하늘에 성조기 휘날릴까’ 기사 참조). 우리 정부가 요구한 서울·평양 연락사무소 교환 설치가 불발된 데는 미국과 관계를 고려한 북한의 사정이 있었다. 남북 접촉 과정에서 언제부터 연락사무소 문제가 제기됐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3월5일 대북 특사단 방북 때 거론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남한으로 돌아온 특사단이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미국 측에 우리가 연락사무소 교환 설치를 추진 중이라는 사실을 알리며, 미국도 비핵화를 위한 거점으로 평양에 연락사무소 설치를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이미 2월 중순부터 뉴욕 채널(유엔 북한 대표부와 국무부를 중심으로 한 미국 정부 사이의 대화 루트)을 통해, 워싱턴과 평양 연락사무소 교환 설치를 추진 중이었다. 한·미 간에 서로 같은 목표를 추진하고 있다는 게 확인된 것이다. 폼페이오 국무장관 지명자(당시 CIA 국장)가 지난 3월31일부터 4월1일 방북해, 김정은 위원장과 이 문제를 타결했다고 한다. 당시 폼페이오 지명자는 남북의 연락사무소 교환 설치에 대해 미국은 반대하지 않는다고 확인해줬다고 한다.

    미국 측의 동의하에 우리는 이번 정상회담으로 서울과 평양 연락사무소 교환 설치 타결을 강력하게 희망했다. 문제는 시기였다. 우리는 상반기 이내 설치를 목표로 했다. 그러나 5월 말~6월 초 미국과 정상회담을 앞둔 북한이 난색을 표했다. 서울과 평양에 연락사무소가 들어가기에는 준비가 너무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였다고 한다. 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시점까지도 결론을 내지 못하다 하루 전에야 결국 개성에 공동연락사무소를 두기로 합의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대로 ‘개성 공동연락사무소’는 도착지가 아닌 정류장이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워싱턴과 평양 연락사무소 교환 설치가 합의되고 늦어도 11월 미국 중간선거 전에 북·미 연락사무소가 문을 여는 시점에 남북도 서울과 평양 교환 설치를 준비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판문점 선언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문 대통령의 방문 시기도 바로 ‘올해 가을’이다. 그때가 되면 남북 공동연락사무소가 아니라 상주 대표부로 격상할 가능성도 있다. 지금은 일단 개성에 설치하는 게 절묘한 타협안일 수 있다. 한·미의 우호관계를 고려할 때 남북이 먼저 선수를 치는 듯한 인상을 주지 않으면서 북·미 연락사무소 개소 시점에 우리 연락사무소의 평양 진출을 시도할 수 있다. 그사이 남북 당국자들이 개성에 모여 개성공단 회생 방안을 의논할 수 있다. 서울과 평양에 각각의 대표부가 문을 열면 개성은 그것을 하나로 모으는 공동사무처로 자동 격상될 수도 있다.

    좌우의 지지를 받는 3단계 통일방안

    ⓒ사진공동취재단
    2000년 6월 김대중·김정일 남북 정상회담
    ⓒ사진공동취재단
    2007년 10월 노무현·김정일 남북 정상회담

    이종석 전 장관은 “언젠가 이뤄질 통일국가를 위해 서로를 완전히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서울·평양에 대표부를 설치하자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각자 수도에 대표부를 둔다는 것은 남북이 서로의 실체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1991년 5월 남북 유엔 동시 가입에 버금가는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정부의 공식 통일정책인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 따른 ‘사실상의 국가연합 단계’ 진입이라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노태우 정부 초기인 1989년 9월 국회에서 대통령 특별선언으로 발표되고 비준을 거친 한국 정부의 공식 통일정책이다. 극우 인사인 조갑제씨 역시 ‘국가 공인 통일방안’이라고 인정할 정도로 좌우를 막론하고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 따르면, 우선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해 ‘민족공동체 헌장’을 채택하고, 이를 법적 근거로 남북 간 협력기구인 ‘남북연합’을 결성해서 긴장 완화와 교류 협력을 통해 평화를 제도화하고 통일 과정의 난제들을 해결해나간다. 이처럼 ‘과정으로서의 통일’ 내지 ‘사실상의 통일’ 단계를 일정 기간 거친 뒤 법적 통일을 이루는 3단계 통일방안이다.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저서인 <피스 메이커>에서 1990년 8월20일 남북 고위급회담 준비를 위한 협상대표 모임에 참석했을 때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 따라 남북연합의 제도화를 구현한다는 비전에 주목’하게 됐다고 적었다. 즉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기본합의서를 채택하고 남북 각료회의의 정례화를 실현하여 남북연합의 제도화를 구현한다’는 게 당시 회담의 추진 전략이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임기 말에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 기본합의서를 ‘민족공동체 헌장’ 수준으로 격상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때도 임동원 당시 국정원장이 사전 방북을 통해 김정일 위원장에게 우리 측의 남북연합 안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시사IN>과의 전화통화에서 “당시 김정일 위원장이 남북연합에 대해 통일의 형태로 오해하고 있어서 내가 통일되기 이전 남북의 협력기구라고 설명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번 판문점 선언에도 포함된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의 예를 들어 남북연합의 구체적 기능과 필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정전협정 체제에서 종전 선언을 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바로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것으로 여기는데,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1975년 베트남의 경우 평화협정을 체결했지만 평화체제가 정착되기는커녕 미군 철수의 명분으로만 활용돼 곧바로 전쟁 재발로 이어졌다. 국제적으로 이런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국내 보수 세력 역시 이 점을 우려한다.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굉장히 포괄적이고 치밀한 평화 만들기의 과정, 즉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먼저 한국을 포함한 정전협정 당사자, 즉 남북한과 미국·중국이 모여 종전을 선언해야 한다. 이때 종전 이후 평화체제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 그 방안과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이 평화체제는 북한 비핵화와 맞물려 북한 체제 안전을 보장하는 방안이기도 하지만 한국 안보를 보장하는 방안이어야 한다. 북·미, 북·일 수교 등을 통해 북한에 대한 국제적인 체제 보장과 더불어 우리 앞에 놓인 여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즉, 해상경계선 문제와 유엔사 및 주한 미군 문제 등 그동안 정전체제에서 해결하지 못했거나 정전체제 해체로 발생하게 될 남한의 안보 문제도 풀어야 한다. 또한 남북 간 군사적 신뢰 구축 등의 난제도 같이 해결해야 한다. 단순히 군사 분야의 신뢰 구축만으로는 안 되고 경제 교류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교류 협력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1975년 헬싱키 협약 이후를 주목해야

    ⓒ한국 공동사진기자단
    4월27일 남북 정상회담 만찬에서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오른쪽)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임동원 전 장관은 “유럽에서 냉전체제 해체를 위해 1975년 헬싱키 협약을 체결하고 그에 따라 유럽안보협력회의(CSCE)를 결성했다. 군비 축소와 경제 교류, 인권 개선 등의 분야에서 15년간 노력한 끝에 1990년 파리 협정을 통해 냉전 해체를 마무리했던 경험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우리 식으로 하자면 헬싱키 협약이 종전 선언이고 파리 협정을 평화협정이라 한다면 CSCE가 바로 남북연합인 셈이다. 이처럼 좁게는 평화협정 체결뿐 아니라, 남과 북이 평화를 제도화하고 통일을 추진하기 위해 협력기구를 만들어 서로 노력하자는 게 바로 남북연합인 것이다. 임 전 장관은 <피스 메이커>에서 “남과 북은 이미 2000년 6·15 선언을 통해 협력기구로서 남북연합을 형성 운영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라고 썼다. 그러나 지켜지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단적으로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석렬 국립외교원 명예교수는 남북연합의 설립 요건으로 먼저 ‘남북 정상회의’를 통해 ‘남북연합 헌장’을 합의해 작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 교수는 남북연합 헌장이 없다고 해도 남북연합의 제 기구들이 기능을 발휘할 경우 자연스럽게 ‘사실상의 남북연합’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밝혔다(통일연구원, <남북연합의 개념과 추진과제>, 2001년). 가장 중요한 지표가 바로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남북 정상회의가 존재하느냐 여부다. 정상회의는 곧 정상회담의 정례화를 뜻한다. 두 번째로 중요한 게 정상회의 결정 사항을 실행에 옮길 각료회의 존재 여부다. 이는 고위급회담 정례화나 남북 기본합의서상의 각급 공동위원회로 대체할 수 있다. 그다음이 남북 국회회담, 그리고 마지막이 바로 남북관계의 연락사무를 맡아보는 남북 공동연락사무소가 제 기능을 발휘하느냐 여부다. 연락사무소는 판문점 공동연락사무소를 시작으로 서울·평양의 각각 연락사무소 그리고 가장 높은 단계로 남북 공동사무처의 순서로 발전한다.

    이런 관점으로 ‘판문점 선언’을 다시 읽어보면 정부 차원에서 갖출 수 있는 것은 사실상 다 갖추었다. 정상회담과 고위급회담 정례화가 결정됐고, 그것을 통해 다뤄져야 할 많은 안건이 나열돼 있다. 그리고 전화 송수신 사무소에 불과한 판문점 연락사무소 대신 공동연락사무소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남북 공동연락사무소야말로 남과 북이 ‘사실상의 남북연합 단계’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출발 신호탄’이자 ‘화룡점정’이다.



    평화로 가는 길, 걱정스런 세 경향

    [서리풀 논평] 남북 평화체제 구축이 먼저다
    2018.05.08 11:38:57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곧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곧 전쟁이 날 것 같았지만, 이제 기차를 타고 베를린을 갈 수 있느니 개마고원 트래킹을 가느니, '안심' 분위기로 일변했다. 가끔 너무 앞서 나가는 기대도 있다 싶지만, 평화체제로 가는 길을 뒷받침하는 것이면 약간의 흥분도 나쁘지 않다. 이제 막 입구에 들어섰으니 큰 어려움 없이 새 시대가 열리기 바란다.

    희망과 가능성이 크다 하더라도 모든 일이 저절로 풀리지는 않을 것이다. 당분간 대세는 거스를 수 없겠으나, 현실과 실질, 관계까지 묶인 각론은 어렵고 복잡하다. 자주 듣는 서양 속담,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을 가볍게 넘길 수 없다.

    각론에 들어가면 백가쟁명의 소리가 당연히 나온다. 체제 문제는 조금씩이라도 각자의 이해가 달렸으니, 누구든 얻을 것과 잃을 것을 따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통일 비용이 대표적인 아닌가 싶다. 말을 시작하는 순간 누군가는 지나치게 많은 부담을 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하는 소리가 나온다.  

    삶에서 드러날 이해와 손익을 다루는 것은 그 자체로 '작은 생선 굽듯 해야'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작고 구체적인 일들이 돌고 모여 총론을 흔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평화와 생명으로 가는 길에 우여곡절이 될 수도 있는 몇 가지 경향을 미리 걱정한다.

    첫째, 평화체제 구축에 집중하자 

    통일이 중요하고 또 중요한 역사적 과제임을 모르지 않지만, 현실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 분단체제가 남긴 핵심 교훈이다. 상대가 있고 국제 정세가 있는데, 하고 싶다고 또는 할 수 있다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더구나 북한은 '체제 보장'을 관건적 요구로 내놓지 않았는가. 

    지금 '좋은 이웃'을 목표로 삼는 편이 장기적으로는 더 멀리 갈 수도 있다. 이런 접근이 논쟁적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현실은 이미 이 길로 접어들었다고 봐야 한다. 북미정상회담에서 '체제 보장'을 논의해야 하고 평화협정도 같은 맥락이다. 공존, 공영의 토대를 쌓아야 다음 기회를 엿볼 수 있다.  

    말만 그렇게 하지는 소리가 아니다. 시간, 공간으로 범위를 정하고 목표를 다르게 잡으면 당장 해야 할 일과 일의 우선순위도 조금씩 달라진다. '통일 이후 보건의료체계'나 '독일 통일이 사회보장제도에 미친 영향' 같은 것은 천천히 다음 차례에 검토하기를 제안한다(한참 전에 한차례 유행이 지났으니, 필요와 수요가 적기도 하다).  

    평화체제 구축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만, 또한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남북의 긴장 완화와 교류에 힘쓰는 것, 그리하여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는 것은 다양한 가치와 이념, 목표가 상충하는 가운데 우리 사회가 도출할 수 있는 최대한의 '중첩적 합의'이다.

    둘째, 경제 중심, 경제 만능은 옳은 접근인가? 

    남북 평화체제가 남북한 모두에 경제적 효과를 낼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노동력, 자원, 자본, 기술 그 무엇이든, 두 체제가 모두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도로와 철도 같은 사회간접자본을 두고 한국 내 건설과 토목 기업들이 무엇을 기대하는지를 봐도(☞관련 기사 : 현실로 다가온 남북경협건설사 '잰걸음'), 경제는 현실을 밀고 가는 동력이다.

    두 체제를 구속하는 도구로 (잠재적) 경제의 위력을 인정하지만, 한편 모순적 양면성을 지닌다는 점은 걱정스럽다. 막상 경제효과가 크지 않으면 평화체제의 동력이 떨어진다는 점이 부정적 측면이다.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중심부에 근접한 한국 경제가 '북한 특수'로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평화체제로 가야 하는 동기로 충분할까?

    남북한이 합치면 소득이 세계 몇 등이고 경제규모가 어디보다 크다는 등, 그동안 우리 사회를 지탱한 완고한 성장주의, 그리고 국가주의와 결합하면 셈은 더 어려워진다. 희망과 비전을 품는 것은 경제에서도 예외가 아니지만, 물신화한 욕망이 좌절하면 반동의 에너지를 축적하는 법이다. 우리보다 사정이 나았던 독일도 통일 이후 차별적, 국수주의적 파시즘이 부활하는 사태와 마주하지 않았는가.  

    경제주의의 여파는 물적 토대에 그치지 않는다. 경제는 모든 것을 시장과 상품으로 환원하는, 일종의 '윤리' 문제를 함께 제기하기 때문이다. 돈과 돈벌이를 빼고는 다 소용없는 것이라면, 평화체제가 추구하는 그 평화의 실질도 장담할 수 없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어떤 평화인지 동요할 것이 뻔하다.  

    평화는 한 가지 모습이 아니다. 돈벌이에 더 우월한 상품과 경제로서 작동할 수 있다면, 긴장과 전쟁조차 돈을 매개로 평화를 위장할 수 있는 법. 수출을 늘리겠다고 군수 산업을 키우는 것이나 지역 경제가 나빠진다고 군부대 철수를 반대하는 것은 경제화한 평화의 대표적 모습들이다.  

    셋째, 유사 '제국주의' 경향을 걱정한다  

    남북 사이에 여러 측면에 차이와 격차가 있으니, 호혜와 상호의존은 당연히 한계가 있다. 눈에 띄는 것은 경제와 생활 수준이지만, 건강과 보건도 마찬가지다. 평균수명을 비롯한 건강부터 차이가 뚜렷하고, 이와 관련된 인력이나 시설, 물자 등 자원의 대비 상태도 격차가 크다.

    차이가 크면 무슨 일을 해도 일방적이고 한 방향이 되기 쉽다. 형편이 아쉬운 쪽에서 '무엇이라도 좋다'고 하면 상황은 더 나빠진다. 남한에서는 환경 규제 때문에 더는 쓰지 못할 발전 시설을 북한으로 옮긴다고 상상해보자. 이제 막 임상시험이 끝났으나 아직도 논란이 있는 의약품을 공급하는 것도 비슷하다.  

    말은 험악하지만, 대단히 나쁜 일을 해야 제국주의가 아니다. 오죽하면 일제(일본 제국주의)도 식민지 조선의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주장할까. 무엇인가 주는 쪽, 하는 쪽, 결정하는 쪽의 이해관계가 앞서면 제국주의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금 말하는 '제국주의'는 한편으로 관례적 용법이지만, 부분적으로 사회경제체제를 나타내는 용법이기도 하다.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노력이 한국의 사회경제 문제와 과제를 해결하는 동기를 벗어나지 못하면, 인도주의는 언제라도 제국주의로 돌변할 수 있다.

    시설, 인력, 물자, 재정 등 물적 토대보다 문화, 가치체계, 사고방식 같은 무형의 토대가 더 걱정스럽다. 남한 체제에 조응하는 문화와 가치(예를 들어 경쟁과 효율)를 당연하게 전제하고 북한을 이에 맞추겠다는 생각이야말로 가장 일방적이다. 탈북자들의 호소를 들어보라. 사람의 마음과 의미야말로 평화체제 구축을 방해하는 주범이 될지도 모른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일은 이제 막 출발해 앞으로 얼마나 더 걸릴지 모른다. 점진적이지만 꾸준하게, 아울러 방향을 잃지 않고 가야 할 길이다. 형편이 이럴 진대, 외부 정세도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 스스로 더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 성찰과 공부, 실천이 모두 필요하다.

    예컨대, 평화체제에 대한 개방적이고 성찰적인 논의, 그리고 그를 위한 민주주의의 심화. 우리가 치러야 할 비용이다.     



    홍준표 조롱해서 얻을 평화는 없다

    [김성희의 정치발전소] 보수는 정말 미치광이 바보일까?
    2018.05.08 10:33:34

    환상적인 날이었다.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번갈아 넘는 모습은 감격적이었다. 현실적 목표로서 종전선언와 평화협정이 공식적으로 언명되고, 비핵화와 평화의 과정에 대한 대강의 합의가 이루어 진 것은 역사적이었다. 

    그러나 회담을 복기하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만약 북한의 정치체제를 잘 모르는 관찰자가 이번 회담을 지켜봤다면 의아함을 느꼈을 만한 대목도 있었다. 남북 정상회담에 참석한 남과 북의 공식 수행단의 상이한 스케일은 그 중 하나다.   

    남측의 참여 인사는 청와대, 국정원 등 대통령 직할 조직, 내각의 관련 장관 등 주로 대통령의 직무를 보좌하는 기관의 장들로 구성되어 있다면, 북측의 공식 수행원은 거의 전 국가적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십 노구를 이끌고 참석한 김영남은, 북의 법제에 따르면 일상적 시기의 최고주권기관이자 입법기관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의 위원장이다. 김영철, 최휘, 리수용은 북측의 집권당인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다. 이들은 노동당의 최고위급 인사일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에서 외교에 이르는 각 분야의 책임자들이다. 특히 리수용은 2017년, 19년 만에 부활된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회의 위원장을 겸하고 있다.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역시 형식상 당 인사이다. 군령권을 가진 총참모장, 군부를 대표하는 인민무력상, 남북관계 관련 국가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까지 포함하면 말 그대로 북한을 지탱하는 당정군의 핵심 인사가 모두 망라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북한은 수령-당-국가가 일체화된 체제이기 때문에, 민주주의 정치체제인 우리와 직접 비교하는 것은 곤란하다. 북한의 공식 수행단이 포괄적으로 구성되어 있다고는 하나 명목상의 역할을 가진 형식적인 것일 수 있다. 그렇다고 그런 형식이 아무 의미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북한은 남북정상회담을 비롯 향후 대남, 대미 관계의 전환과 관련해 지난 4월 20일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통해 당적인 결정으로 이를 추인했다. 1인 통치의 전체주의지만, 형식적으론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절차와 합의과정을 밟고, 그에 상응하는 스쿼드를 구성해 판문점에 나온 것이다. 

    일체화된 북한과 달리 우리는 다원적 정치체제이다. 시민의 대표기관인 의회, 그리고 의회를 구성하는 정당들이 모두 실질적인 권한과 힘을 갖고 있다. 의회는 예산, 외교 및 안전보장과 관련된 각종 조약에 대한 비준 동의권, 나아가 선전포고에 대한 동의권 등 그 권한은 매우 강력하고 실질적이다. 의회의 동의 없이 대통령은 평화협정도, 전쟁도 함부로 할 수 없다. 의회는 외교안보를 포함한 국정 전반에 있어 중요한 통치기구이다. 동시에 시민의 의사를 나누어 대표하고 정치과정을 통해 통치에 관여하는 야당들 역시 내일의 여당들이다. 언제든 집권세력이 될 수 있는 대안정부들이다. 금석문처럼 변하지 않는 남북 간의 합의를 만들고자 한다면, 야당의 참여는 필수적이다.  

    의회와 정당이 가진 통치, 외교안보에 관한 중요성을 감안 할 때, 집권당과 야당의 대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방위원회 위원장 정도는 공식 수행단의 일원으로 참여해 남북 정상회담을 정치적으로 보증하는 역할을 했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최소한 만찬행사에는 의회와 야당의 대표단은 참여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회담은 대통령의 스텝들과 우리 정치의 일부만을 대표했다. 

    행사가 끝날 무렵 TV 카메라를 향해 V자를 그린 현송월 단장에게 "우리는 1번"이라며 엄지를 꼽도록 한 집권세력 관계자의 깨알 같은 디테일은 애교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남북관계를 포함한 외교를 자신의 스텝과 일개 정파의 것으로 밀고 가는 것은 우려할 만하다. 과거 남북관계에 대한 중대한 합의를 도출하고도 정권의 변화에 따라 정책이 널뛰기 하듯 냉온탕을 반복한 것은 국내정치적 합의 또는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당대 집권세력의 정치력 부재도 중요한 이유이기 때문이다.  

    회담 다음날,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일성은 "위장 평화 쇼"라는 것이었다. 그의 발언은 당내에서조차 비판이 제기됐지만, 진보파들 사이에서는 조롱이 그치지 않았다. "미친 것 아니냐", "바보 아니냐"라는 비웃음도 있었지만, 홍 대표의 설익은 말을 은근히 즐기는 듯한 태도도 있었다. 내가 만난 집권당 간부는 "홍 대표는 민주당의 숨어 있는 권리당원"이라고 했다. 이번 기회에 냉전보수세력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강경한 말도 들린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2일 오후 창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지방선거 경남도당 필승결의대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과연 한국 보수가 냉전반공주의라는 이념에 매몰된 미치광이거나 바보일까? 물론, 국내정치에서 한국 보수는 냉전보수적이었다. 냉전보수주의를 국내정치에 강요하며 권위주의 시기에는 민주화 세력을 억압했고, 민주화 이후에는 적대적인 정치 양극화를 주도했다. 그러나 그들은 딱 '물가에 나가기 전'까지만 그랬다. 바다를 건너면 그들은 꽤 능력 있는 외교관이자 비즈니스맨이었다. 그들의 능력은 현실주의에서 왔다. 현실주의는 힘을 중심으로 국제관계를 보는 시각이다. 그래서 한국전쟁 후 그들은 미온적이던 미국에 매달려 이례적으로 군사동맹을 체결했고, 냉전시대 내내 미국 편에 서서 싸웠다. 그러면서도 국제정치의 힘의 변화를 예민하게 포착했다. 북방정책으로 당시 자유주의권의 어느 나라보다 빨리 변화하는 동구권․소련과 수교했고, 새롭게 떠오르는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었다. 이를 통해 기업에게 새로운 투자처와 방대한 교역시장을 열어주었다.   

    그들은 국내에서라면 분명 경기(驚氣)를 일으켰을 공산당, 그 간부들과 레닌의 초상이 올려 보이는 홀에서 거리낌 없이 와인잔을 부딪혔다. 카메라를 물리고 나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익을 추구했다.  

    보수파는 기회주의자가 아니다. 그들 역시 국제정치에 있어 필요한 일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정치적 부담과 손실을 감당했다. 대표적인 것은 한일 수교다. 한일 수교는 국제질서 상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보수가 주도한 협상이 최선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그들이 필요한 일을 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보수는 이 과정에서 국내의 민족주의적 열정과 부딪혀야 했으며, 끝내 민족주의자들의 마음을 되돌리지 못했다. 당시 야당 지도자 중 유일하게 한일 수교의 필요성을 제기했던 DJ조차 한동안 '사쿠라'로 몰려 곤욕을 치러야 했다. 북방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북방정책은 "매우 해괴하고 위험한 일을 벌이고 있다”는 보수 주류의 강경한 반공주의를 넘어선 결과이다.(주1) 

    한국 보수파는 결코 바보이거나 미치광이가 아니다. 그들 역시 공동체의 안정과 안전에 기여해 온 우리 정치의 중요한 자산이다.  

    외교안보에 대한 보수의 기여와 능력을 인정하고 그들과 대화하고 협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한 국가의 중대 이슈인 외교안보 문제를 가능한 한 합의 쟁점으로 다루고 이를 통해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정치의 규범 때문만은 아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적절하게 표현했듯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긴 과정의 "출발선에서 신호탄을 쏜 것"에 불과하다. 앞으로 우리가 평화의 과정에서 다뤄야 할 상대는 북한만이 아니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국제체제의 최강자들이 게임의 상대이다. 외교안보를 둘러싼 국내정치의 적대구조를 그대로 두고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나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협상과 대화는 의견이 같기 때문이 아니라 다르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미국을 설득하고, 북한을 설득할 수 있다면, 국내정치의 가장 중요한 협상 파트너를 설득해야 한다. 협상은 적폐청산과 같은 담론으로는 할 수 없다. 이는 냉전반공주의의 또 다른 얼굴일 뿐이다. 상대를 제거하고자 하는 욕망이 통치의 수단이 되면 증오와 적대만 키울 뿐 조정과 타협, 협력과 공존은 불가능해 진다. 정치에서 외교안보는 선거처럼 누가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라 정치공동체 모두에게 공존의 조건을 만드는 일이다. 내전을 벌이며, 밖으로 평화를 추구할 수는 없다. 이제 남은 가장 큰 숙제는 문재인 정부의 몫이라 할 수 있다. 

    (주1) 노태우 정부 당시 민병돈 육사 교장은 북방정책을 추진하는 대통령 면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 정부의 북방정책과 남북한 관계에서 볼 수 있는 일련의 상황들은 (…)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이며,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조차 흐려지기도 하며, 적성국과 우방국이 어느 나라인지도 기억에서 지워버리려는, 매우 해괴하고 위험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 당시 민병돈 총장의 발언을 보도한 <한겨레>는 민병돈의 발언 배경에 대해 '군 지휘부는 노태우 대통령의 7·7선언 이후부터 심각한 인식의 혼란을 겪어 왔다'고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현정국 군부 불만 대변"(한겨레. 1989년 3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