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생각한다

삼성이 파괴한 것은 노조만이 아니다

일취월장7 2018. 4. 28. 09:56

삼성의 무노조 경영이라는 실적

고제규 편집국장 unjusa@sisain.co.kr 2018년 04월 16일 월요일 제553호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노조를 인정할 수 없다.”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남긴 ‘유지’다. 이병철 회장은 1987년 이건희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고 숨졌다. 이건희 회장은 2014년 심근경색으로 입원할 때까지 아버지의 뜻을 받들었다. 이재용 부회장도 할아버지 유지를 받들고 있다.


이병철 회장의 무노조 발언이 나올 때만 해도 군사독재 시절이었다. 노동 3권은 법전에만 있었다. 1987년 6월항쟁을 거치며 사회는 민주화되었고 창업주의 눈에도 흙이 들어갔다. 그런데도 무노조 경영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두 가지 정도 이유를 헤아려볼 수 있다. 첫째, 오너 콤플렉스다. 알려진 대로 이건희 회장은 셋째 아들이다. 재벌가의 불문율인 장자상속이 깨졌다. 장자가 아닌 그가 아버지의 무노조 유지도 받들지 못한다는 비난을 듣기 싫었을 것이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던 그도 시대착오적인 유지만은 바꾸지 않았다. 이재용 부회장도 마찬가지다. ‘황태자’는 아직까지 제대로 경영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이재용’ 이름 뒤에는 늘 ‘불법 승계’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그룹 내 경쟁자도 있다. 그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경쟁 구도는 한때 삼성 이너서클에 있었던 김용철 변호사가 쓴 <삼성을 생각한다>(2010)에도 잘 나와 있다. 그런 이 부회장이 아버지가 대를 이어 지켜온 무노조 경영을 깰 수 있을까? 이 부회장은 무노조야말로 자신의 ‘실적’이라고 여기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 무노조 경영을 뒷받침해준 사회 시스템이다. 한국은 노동청부터 검찰, 법원까지 인맥과 로비로 엮인 삼성공화국이었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은 삼성 문턱 앞에서는 멈춘다. 문턱을 넘으려면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빈말이 아니다. 1990년 삼성조선 민주노조 이근태 부위원장이 농약을 마시고 자살한다. 그는 “삼성조선의 탄압에 이근태는 목숨을 던집니다. 저 개인의 희생이 값진 희생이 되길 삼성조선 동지 여러분께 부탁드립니다”라는 유서를 남겼다. 가장 최근인 2014년에는 삼성전자서비스노조 염호석 양산분회장도 목숨을 내놓았다. 염씨는 “저 하나로 인해 지회의 승리를 기원합니다”라는 유서를 남겼다. 이들 외에도 삼성에서 노조를 만들려다 사찰당하고, 납치당하고, 해고당해 정신병원 입원까지 한 이들이 숱했다. 그중 한 명이었던 박종태씨는 <삼성 안에 숨겨진 내밀하고 기묘한 일들-환상>(2013)이라는 구술집에서 적나라하게 회사의 탄압을 폭로했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이재용 부회장이 최근 16일간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고 한다. 언론은 ‘열공 출장’이니 ‘스터디 출장’이라고 포장했다. 만일 그가 시대착오적인 할아버지의 유지를 깰 수 있다면, 그때야말로 ‘이재용표 신경영’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삼성 노조 와해 공작 이번에는 밝혀질까

검찰이 삼성그룹 압수수색을 통해 삼성 노조 와해문건 수천 건을 확보했다. 2013년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폭로한 2012S그룹 노사전략등 그동안 관련 문건이 수차례 공개되었다.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2018년 04월 16일 월요일 제552호

검찰이 최근 삼성그룹 압수수색을 통해 ‘삼성 노조 와해’ 문건 수천 건을 확보했다. 삼성전자 직원이 갖고 있던 외장하드에서 압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4년여 전인 2013년 10월14일 이와 유사한 문건이 세상에 드러난 적이 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공개한 114쪽 분량의 ‘2012년 S그룹 노사전략’이라는 문건이다. 작성 시기가 2012년 1월로 기재되어 있고 작성 주체는 명시되어 있지 않은 이 문건에는 “(노조 설립 시) 조기 와해가 안 될 경우 장기 전략을 통해 고사화시켜 나가야 한다”라는 내용과 함께 그룹 차원의 구체적 대응 방안이 담겨 있었다. 4년 전 삼성은 “해당 자료 전체를 검토한 결과, 삼성에서 만든 자료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라고 부인한 바 있다.

하지만 2011년 삼성에버랜드(현 삼성물산) 노동조합 설립을 추진하다 징계 해고된 조장희씨 사건을 다룬 서울행정법원·서울고등법원·대법원은 삼성그룹이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인정했다. 법원은 삼성 내부 고위 관계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자료가 포함되어 있으며, 내용이 실제로 진행된 사실관계에 대체로 부합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시사IN 조남진
4월3일 금속노조 삼성지회,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삼성웰스토리지회 등의 조합원들이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면담을 요구하며 본관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여기서 ‘실제로 진행된 사실관계’란 조장희씨가 징계 해고된 사건을 비롯한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을 보면, “에버랜드 문제 인력 4명”이 2011년 7월13일 노조를 설립했으며 부위원장인 조장희씨가 “주동자”라고 사진과 실명이 나와 있다. 이어 “주동자 1명 징계 해고, 조합원 1명 정직 조치” 등의 표현이 나온다. 2011년 7월18일 에버랜드는 회사 명예 실추, 개인정보 유출 등 여덟 가지 사유를 들어 조씨를 징계 해고했다.

조씨는 자신의 해고가 부당해고이자 부당노동행위라며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다. 경기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조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씨는 법정으로 사건을 가져갔고 1·2·3심은 모두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에버랜드가 조씨를 해고한 것은 재량권을 남용한 부당해고이자 노조 조직을 이유로 한 부당노동행위라고 판단하며 그 근거 가운데 하나로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을 들었다. 조씨는 2016년 12월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아 2017년 3월 복직했다.

그러나 이 문건과 관련한 수사와 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문건은 에버랜드 노조 설립 대처뿐 아니라 복수노조 시행 2년차인 2012년 삼성그룹 차원의 노조 설립 대응 시나리오를 구체적으로 담았다. 문건을 보면, 삼성은 ‘문제 인력’에 대해 “외부 세력과 연계하여 노조 설립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지속적으로 감축하여 문제 발생 소지를 원천적으로 해소”하는 방침을 가지고 있다. 특히 노조 설립 시 즉시 징계할 수 있도록 비위 사실 증거 수집을 지속하라며 계열사인 SMD(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가 “문제 인력 개개인에 대한 ‘100과 사전’을 제작해 개인 취향, 사내 지인, 자산, 주량 등을 꼼꼼히 파일링하여 활용 중”이라는 예를 들었다. 문제 인력의 대척점에 있는 존재는 방호 인력, 여론 주도 인력, 노조활동 대응 인력으로 구성된 ‘사내 건전 인력’이다. 이들에게는 “지속적인 신뢰 유지를 위해 적절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명단은 철저히 보안 유지(점조직형 운영)”한다. 사내 건전 인력과 인사·홍보·법무 등 관계자를 대상으로 주기적으로 모의훈련도 실시한다.

ⓒ시사IN 신선영
삼성의 노동 탄압을 비판한 최윤동 금속노조 삼성지회 회계감사, 박원우 지회장, 조장희 부지회장(왼쪽부터).
이런 기조를 바탕으로 해서 노조가 있는 8개사와 노조가 없는 19개사 각각의 단계별 대응 방안을 제시한다. 설립신고 단계에선 그룹 비상상황실과 실시간으로 대책을 공유하며 노조 탈퇴와 설립 신고 취하를 설득한다. 단체교섭 요구 시 합법적으로 거부하고, 신규 노조의 내부 분열을 유도하고, 기존 노조를 활용해 노노 갈등을 유발하며, 고액 손해배상 및 가처분신청 등을 통해 경제적 압박을 가중시켜 활동을 차단하고 식물 노조로 만든 뒤 노조 해산을 유도하는 식이다. ‘친사노조’를 활용할 경우 “PU(서류상 노조)가 있는 4개사는 공개 시 ‘알박기 노조’라는 비난 여론을 감안해 신규 노조의 조기 와해 가능성을 면밀히 분석한 후 결정”한다는 표현도 있다.

“노사협의회를 친사노조로 전환”


2013년 10월22일 조씨와 그가 속한 금속노조 경기지부 삼성지회(옛 삼성노조) 등은 당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최지성 삼성전자 미래전략실 실장, 이부진 제일모직 사장을 비롯한 삼성그룹 관계자들을 부당노동행위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고소·고발했다. 하지만 2015년 1월26일 검찰은 해당 문건에 대해 “명의가 표시되어 있지도 않고 작성 주체 및 출처도 확인이 불가능”하다며 이건희 회장 외 35명을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했다. 고소·고발인 측은 2015년 2월26일 검찰에 항고했지만 5월20일 기각되었다. 그해 6월5일 재정신청을 했지만 같은 해 12월23일 서울고등법원은 재정신청을 기각했다.

4월4일 만난 조장희씨는 “무혐의 처분을 했던 검찰 스스로 재조사하겠다고 하니 아이러니하다. 과거처럼 잘못은 위에서 하고 처벌은 밑에서 대신 받아선 안 된다. 무노조 경영을 누가 왜 시작했는지 제대로 밝혀야 한다”라고 말했다.

문건을 보면, 삼성이 노사 화합의 상징으로 내세우는 ‘노사협의회’를 “유사시 친사노조로 전환할 수 있도록”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활용하는 방안이 담겨 있다. 문건에는 “외부 환경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임직원들이 전혀 흔들림 없이 비노조 경영철학을 견지할 수 있도록 정신교육을 강화”한다고 되어 있다. 임금과 복리후생 비교우위를 유지하고 임직원 기념일 선물에 사장 사인이 있는 축하편지를 보내는 것(회장님 말씀)도 노조 관련 관심을 줄이는 방안으로 제시된다. 복수노조 시행에 대비해 ‘CCTV’를 보강했다는 문구도 있는데, 에버랜드 내에 삼성지회 설립 3개월 만에 CCTV 150대가 추가 설치되었다.

1987년 ‘노사관리 기본지침’, 1989년 ‘345 사업장 수호전략 수립지침’, 1990년 ‘노사관리 지침’, 1998년 ‘인력 구조조정에 따른 시나리오 및 대응방안’ 등 지금까지 삼성에서 유출된 노동자 통제 지침은 여럿이다. 삼성SDI 인력개발팀이 2001년 12월 대외비 형태로 삼성전자 본사에 보고한 것으로 추정되는 ‘2002년 임금, 노사 추진 전략 문건’은 ‘MJ’, 즉 문제 인력 제로화 전략 수립을 최우선 과제로 꼽는다. 2004년 삼성SDI 노동자들 휴대전화 위치추적 사실이 확인되었으나 아직까지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2015년 삼성테크윈 노조원 미행이 발각되는 등 감시 논란도 여전하다.

삼성은 최근 협력업체 노조도 조직적으로 관리한 정황이 확인됐다. 2013년 7월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출범한 뒤인 2014년 삼성전자서비스 울산센터를 운영하는 협력업체가 작성한 ‘조직 안정화 방안’ 문건에는 노조 조합원을 ‘NJ’로 지칭하며 이들을 ‘Green화’, 즉 탈퇴하도록 공작하겠다는 내용이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들의 위장 폐업, 노조 탈퇴 회유 등 광범위한 탄압과 원청의 지시 의혹이 제기되었다. 문건이 나온 울산센터의 경우 유사 납치 사례까지 있었다. 노조 탄압과 관련한 죽음마저 이어졌다.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수리기사이자 조합원 표적감사로 고통받던 조합원 최종범씨는 2013년 10월 “삼성서비스 다니며 너무 힘들었어요”라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이듬해 5월 조합원 염호석씨도 “저 하나로 인해 지회의 승리를 기원합니다”라고 적고 세상을 떠났다. 이번에 검찰이 확보한 문건에는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관련 보고 문건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사회학·삼성노동인권지킴이 공동대표)는 삼성의 노동통제 전략을 4가지로 개념화하기도 했다. △폭력이나 징계 등 불이익을 주는 물리적 강제력 △노조 탈퇴 회유와 관련된 물질적 보상 △기업과 노조 사이에서 기업 정체성을 갖게 하는 조직 규범 △문제 인력 격리, 왕따와 같은 사회적 관계 배제 등이다. 조 교수는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직원들의 자발적인 동의가 아니라 그룹 차원의 노동 통제와 일상화된 감시체계로 유지되었다. 노사전략 문건의 존재 자체가 이를 입증한다. 삼성은 시장에서의 성공이 무노조 경영 덕분이라고 교육하지만 삼성에 노조가 있었다면 반도체 노동자들의 산재 사망이 이어졌을지 묻고 싶다”라고 말했다.

4월3일 오전 11시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 금속노조 삼성지회,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삼성웰스토리지회, 서비스연맹 삼성에스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저마다 삼성 마크가 새겨진 조끼를 입고 모였다. 삼성지회는 2011년 조장희씨와 에버랜드 노동자들이 만든 노조로, 교섭권은 없지만 조금씩 조합원을 늘려가고 있다. 2013년 설립된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대부분 협력업체 소속이지만 싸움 끝에 그룹사 최초로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2017년 연이어 출범한 삼성웰스토리지회와 삼성에스원노동조합은 교섭대표 노조 지위를 확보하고 단체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4개 노조는 “우리는 파산하고 있는 무노조 경영의 마지막 숨을 거두기 위해 모였다”라고 말하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면담요청서를 전달하러 들어가려다 막혔다. 이들은 앞으로 공동으로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1년을 망설이다 에버랜드 노동자들로 구성된 삼성지회에 지난해 6월 가입했다는 최윤동 삼성지회 회계감사는 “예전에는 노조 하는 사람들이 도깨비인 줄 알았다. 회의실에 가면 회사 사람들이 피하기도 하고, 가난해서 노조 들어갔느냐는 오해도 받지만 24년 근무한 세월보다 노조에 가입한 1년이 직장 생활 만족도가 높고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비로소 부품이 아니라 삼성의 일원이 된 느낌을 받는다”라고 말했다. 이번 문건 발견 및 ‘2012년 S그룹 노사전략’, 무노조 경영 방침과 관련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 말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삼성이 파괴한 것은 노조만이 아니다

[인권으로 읽는 세상] 삼성의 노조파괴, 어떻게 가능했나
2018.04.27 16:08:09

삼성 노조파괴의 구체적 방법들이 담긴 문서, '서비스 안정화 마스터플랜'이 공개됐다. 문서가 공개된 후, 삼성전자서비스는 8000명 하청 노동자를 직고용하고, 노조를 인정하겠다며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 합의했다. "무노조 80년이 깨졌다", "파격적인 행보"라고 연이어 보도되며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지만, 삼성의 노조파괴 문건이 등장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13년 이미 정의당 심성정 의원이 'S그룹 노사전략'을 공개했다. 노조를 만드는 과정에서 삼성 노동자들이 겪었던 숱한 일들도 그간 폭로된 바 있다. 이 문건에는 삼성 노동자들이 겪어온 현실 그 자체가 담겨있다. 그러므로 파격적인 삼성의 행보를 주목하기에 앞서 80년 무노조가 어떤 현실 속에서 유지되어왔나를 살펴야 한다. 
 
뭉치면 죽이는 회사 

삼성에서 노동조합을 만드는 일은 시작부터 도전이다. 삼성은 노동자의 일상적인 동향을 파악해 노동조합 활동에 나서면 감시와 미행을 서슴지 않았다. 노동조합 활동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노동자를 문제 사원으로 분류해서 직장 내에서 따돌리고, 노동자 간의 갈등을 조장했다. 징계와 해고, 일감 배정 조절로 생계를 위협하며 노조에서 탈퇴시키기 위해 움직였다. 이 모든 노조 파괴의 배경에는 삼성 전체 조직의 헤드라고 불리는 미래전략실이 나선 정황들도 밝혀지고 있다. 결국 삼성의 감시와 탄압으로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조합원 중 일부는 탈퇴를 선택하거나 아예 퇴사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를 견디다 못한 두 명의 조합원은 자살을 선택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삼성의 탄압이 미친 영향은 노동조합 조합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부당한 처우를 받은 노동자도, 자신의 권리를 외치려고 마음을 먹었던 노동자도 동료가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을 보며 침묵을 강요받는다. '먼저 이야기 했다가 해고될까, 아무도 동조해주지 않을까' 쉬쉬하고 침묵하는 분위기 속에서 노동조합 가입은 기대보다 감수해야 할 부담이 많아진다. 노동자들이 함께 모여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창구가 점점 막혀가는 것이다.
  
일은 시켜도 사장은 아니다

그럼에도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 노조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삼성전자서비스 노조는 대화하고 협상할 상대를 찾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삼성전자의 제품을 설치, 수리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간접고용 노동자다. 그 말인즉슨 자신의 노동조건을 책임져야 하는 주체가 삼성전자서비스라는 사실부터 입증해야 노사 간 협상이 시작될 수 있다는 뜻이다. "A/S는 삼성"이라는 삼성전자의 판매전략 아래 삼성전자서비스는 노동자의 수리시간을 초 단위까지 체크하지만, 그들은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책임지지 않는다. 노동조합이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려 해도 삼성전자서비스센터(협력업체)는 자신은 권한이 없다는 식으로 빠져나가고, 본사(삼성전자서비스)는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고 말한다. 이에 삼성전자서비스 노조는 고용노동부에 근로감독을 요청하고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도 제기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위장도급은 아니'라는 판단을 내리며 논란을 빚었다. 재판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일을 시키는 사람은 있는데 사장이 없는 현실은 노동조합이 노동조건에 대한 협상조차 시작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말 그대로 노동조합을 '고사'시킨다.

'불법'노조 만드는 공권력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삼성전자서비스 노조가 행동에 나서면 공권력은 오직 삼성의 편에서만 움직인다. 삼성의 감시를 폭로하든, 위장 폐업을 규탄하든 공권력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에게 수갑을 채워가며 노동자들의 외침을 틀어막았다. 노조에서 파업만 시작하면 경찰은 불법 딱지를 붙이며 강제 진압으로 일관했고, 검찰과 재판부는 집시법 위반, 업무방해죄, 일반교통방해죄로 기소하고 처벌했다. 파업을 이유로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줄 수 없다는 노조법은 무용지물이었다. 반면, 노동자에게 엄격했던 공권력은 삼성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는 너그러웠다. 2013년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이 나왔을 당시 노조 파괴의 증거가 분명했지만 검찰은 삼성을 무혐의로 처리했다. 


공권력이 노동자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단체행동 하지 말 것. 회사에 맞서 노동자의 목소리를 드러내지 말 것. 거리로 나오지 말 것. 공권력은 권리를 외치는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았다. 
 
삼성이 파괴한 것은 노조만이 아니다 

공단에 가서 최저임금 준수 캠페인만 펼쳐도 "노동조합 한다고 될 것 같냐"는 냉소를 보내는 노동자를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공단 안에 위치한 식당 사장도 "노조하는 것들이 나라를 망친다"고 큰소리로 떠들어 댄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전략과 '마스터플랜'이 삼성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확인하는 풍경이다. 무노조 80년은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권리로 인정받지 못하도록 압박해온 80년이었다. 삼성의 문건들은 혹시나가 역시나로 확인된 대한민국 노조할 권리의 축소판이다. 


내가 일을 할 때 몇 시간을 일하고, 언제 쉴 것인지 결정할 권리. 내가 일을 하다 다치면 치료비 걱정 없이 치료 받을 수 있는 권리. 동료가 부당한 일을 당하면 누구와 이야기 나누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방법을 찾을 권리. 노조할 권리는 노조를 만드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더 나은 삶에 대한 요구이자 함께 살기 위한 방식이다. 삼성과 국가는 노동자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기 위해 필요한 이 모든 권리들을 무노조라는 이름으로 파괴해온 것이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노조할 권리를 부정하는데 앞장섰던 삼성은 8000명 직고용으로 무마하려 해서는 안된다. 무노조 경영전략이 범죄이자 인권침해였음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국가 역시 철저한 재수사를 통해 삼성과 공권력의 그간의 잘못을 밝히고 처벌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사회에 노조할 권리가 '권리'로 인정받게 만드는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