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생각한다

이재용 구속 후, 삼성의 지배구조는 안녕한가

일취월장7 2017. 8. 4. 12:23

이재용 구속 후, 삼성의 지배구조는 안녕한가

[연속기고 ①] 삼성이 변하지 않으면 범죄는 반복된다
2017.07.27 10:13:07
    
이재용 삼성전자부회장의 변론 종결(결심)이 8월 7일로 예정되어 있다. 이제 변론이 종결되고 나면 8월 말경 1심 선고가 내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은 역대 삼성 총수 중 유일하게 구속된 상태에서 받은 재판이며, 그동안 삼성이 저질러온 범죄를 심판하는 상징적인 재판이기도 하다.

하지만 재판이 진행되면서 이재용 무죄론이나, 처벌 불가론이 다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삼성노동인권지킴이'와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는 이재용을 처벌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를 연속기고를 통해서 알리고자 한다. 연재는 3회에 걸쳐 진행될 예정으로 <프레시안>, <참세상>, <미디어오늘>, <오마이뉴스>에 공동 게재할 예정이다. (필자)

재판정에 선 황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지만, 대한민국 안에 삼성이라는 또 하나의 왕국이 있다는 사실은 서글픈 현실이다. 삼성 총수는 황제가 되었고, 삼성 왕국은 민주 공화국이 만든 법질서를 비웃으며 법위에 군림해왔다. 탄핵정국 이전까지 이재용의 권력승계는 당연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재용은 지난 탄핵 정국을 통해서 결국 구속됐다. 삼성 총수 중 최초의 구속이니만큼,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적폐 청산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관심은 이재용이 제대로 처벌 받을 것인지, 3대 세습이 가능할 것인지로 옮겨 갔다. 자연스럽게 이번 기회에 삼성의 지배구조가 투명해질 것인지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재용 구속, 지배구조는 투명해질 수 있을까?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긴 하겠지만 이재용이 재판을 받으면서, 삼성 3대 세습 일정이 어긋난 모양새다. 재판과 사회적 비난을 의식한 듯 삼성은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지주사 전환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런 결과만 놓고 보자면 삼성의 지배구조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삼성의 지배구조가 투명해진다고 속단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사실 삼성의 지배구조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통해서 이미 이재용 체제로 상당히 진행된 상태다. 삼성물산은 그룹 순환출자의 정점에 있고 이재용 부회장이 약 17%가량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삼성그룹의 핵심 계열사이자, 가장 높은 수익을 내는 기업은 삼성전자이고, 삼성전자에 대한 이재용 부회장의 지분은 고작 0.6%라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다. 왜 이재용이 삼성전자 지분을 가지고 있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무리 삼성이 어수선해도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등 삼성 총수 일가들이 건재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이는 없을 게다. 결국은 총수일가의 지배를 더 확실하게 구축하기 위한 지주회사 추진도 유보된 것이지, 그 자체를 중단하겠다거나, 3대 세습을 중단하겠다는 건 아니다. 당장은 삼성이 여력이 없을 뿐이다. 무슨 방법이든 찾아냈던 삼성이 아니던가! 아직까지 삼성의 변화를 기대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다. 

삼성이 변하기 위해서는 삼성 각 계열사들이 책임 있고 독립적인 이사회 구조를 활용해 스스로 이 국면을 헤쳐 나가야한다. 하지만 삼성의 각 계열사들은 여전히 총수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일례로 이재용이 회사 돈을 빼돌려 부정한 뇌물로 사용한 증거가 포착됐다면, 삼성전자는 이사회를 열어 등기이사인 이재용에 대해서 그에 합당한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재용의 신분은 아무런 변화가 없다. 이건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회사에서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더군다나 최지성, 장충기, 박상진 등, 이재용 외 다른 피고인들은 적극적으로 이재용을 변호하며, 자신들이 죄를 뒤 짚어 쓸 태세다. 이재용은 다시 돌아올 것이며, 이재용의 권력은 계속될 것이라는 '위협'이 존재하는 한 삼성의 어느 누구도 변화를 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재용을 제대로 처벌해야 삼성이 올바로 선다 

돌아보면 이재용은 비 등기이사 시절에도 경영을 주물렀다. 모든 경영이 이재용을 위한 경영이었고, 용비어천가에 버금가는 이재용찬가가 난무했다. 하지만 이재용의 경영성적은 모든 국민들이 아는 것처럼 초라하다. 괄목한 만한 업적(?)은 갤럭시노트7 사태일 뿐이다.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고 모든 것을 결정한 '비선개입'은 박근혜 정권에만 있었던 게 아닌 셈이다. 지금까지는 그렇다 해도 이미 구속된 이재용에게 삼성에서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은, 아직도 삼성의 변화가 요원하다는 반증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번 재판에서 뇌물죄와 같은 국정농단 사건을 처벌하면서, 동시에 삼성이 79년 동안 쌓아 올린 '적폐'를 청산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이재용이 구속된 이후에도 삼성에서는 삼성웰스토리라는 신생 민주노조에 대한 탄압을 일삼았고, 삼성직업병문제 해결을 위해서 나서는 사람은 여전히 찾기 어렵다. 삼성전자서비스노동자들에 대한 책임을 나몰라 하는 것도 여전하다. 이런 현실을 두고 이재용이 여전히 모든 것을 지시하고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재용이 구속된 이후에 삼성의 여러 계열사들이 총수의 간섭과 전횡 없이 의사결정구조를 가지려고 노력했다면, 노동조합에 대한 대응은 분명 달라졌어야 한다. 하지만 에버랜드에 있는 민주적인 노동조합 '금속노조 삼성지회'는 여전히 삼성과 대화하지 못하고 있으며, 노조파괴를 위해 만든 어용노조를 유지하고 있다. 신생노조인 삼성웰스토리 노동조합도, 조합원에 대한 회유와 압력으로 여전히 힘든 활동을 하고 있다. 이병철, 이건희로 내려오면서 이어져온 노조파괴의 기업문화가 아무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변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문제의 핵심은 아무도 나서고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직도 감옥에 있는 이재용, 그리고 이재용을 따르는 가신들의 눈치만 보고 있다. 기업 내부의 민주적이고 정상적인 의사결정구도는 작동되지 않고, 구태적인 악습을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재용이 구속된 상태에서도 삼성 내부에서는 어떤 변화의 움직임도 보여주지 못한다는 사실은 서글프다. 지난 79년 동안 삼성 총수들은 수많은 범죄에 연루되었다. 하지만 제대로 처벌 받은 적은 단 한 차례도 없다. 이번에도 언론을 통해 연일 '무죄'를 외치고 있지 않은가! 

이재용 없이도 삼성전자는 최고의 실적을 올리고 있다. 이재용을 변호하는 삼성 임원들에게 과연 이재용을 비호할 이유가 있는지 되묻고 싶다. 이재용은 이미 무능한 경영능력 때문에 삼성에 수많은 Risk를 안겼다. 하지만, 이재용은 이제 삼성에 Risk를 넘어서 Danger를 안기고 있다. Risk는 관리 가능하지만, Danger는 관리 불가능하다.

이재용 Danger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서 솔솔 이재용 무죄론이 등장하고 있다. 특검의 수사가 부실하다느니, 뇌물 증거가 없다느니 사실을 왜곡한 수준의 보도까지 넘쳐나는 중이다. 이재용의 구속에도 불구하고, 큰 변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삼성이다. 만일 이재용이 무죄 또는 상당한 부분의 혐의를 벗고, 일찍 세상으로 풀려난다면, 삼성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더욱 요원해질 뿐이다. 이재용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삼성이 변하지 않는다면, 삼성의 범죄가 반복되리라는 사실은 장명하지 않겠는가! 이병철이 그랬고, 이건희가 그랬듯이.

삼성에 닥친 Danger를 넘어서 삼성 스스로 변할 수 있는 길은 이재용을 제대로 처벌하는 것  뿐이다. 


'반도체 독성 물질' 삼성은 정말 몰랐을까?
[연속기고 ②] 알고도 방치한 직업병

거짓말 


"처음에 삼성은 아예 화학약품을 안 쓴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화학약품이 발견되니 해로운 화학물질은 안 쓴다고 했어요. 지금은 영업비밀이라서 화학물질을 공개할 수 없다고 합니다. 삼성은 계속해서 거짓말만 해왔습니다." 

10년을 삼성과 싸워 온 황상기 아버님의 말씀이다.  

"미국 반도체칩 제조업체들에 독성 문제가 있었고, 이들은 이 문제를 외주화했다."

한 달 전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가 보도한 탐사 기획 기사의 제목이다. 이 기사는 삼성의 거짓말을 지적한 황상기 아버님의 말씀이 생각보다 더 많은 진실을 담고 있다는 점을 공포스럽게 보여준다.  

1980년대에 미국의 한 역학조사를 통해, 반도체 공장 여성노동자들의 유산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첫 조사가 논란을 불렀지만, 이어진 조사들은 거듭해서 같은 결과를 보여주었다. 1995년 IBM사는 문제가 된 화학물질의 사용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발표하기에 이른다.  

조사를 진행했던 연구진은 혹시 모를 위험성도 함께 경고했다. ‘이 독성물질이 싸고 뛰어난 성능을 가졌기 때문에, 해외에서는 더 비싼 대체물질이 아니라 이 물질이 사용될 위험이 있다’ 

슬프게도 이 경고는 고스란히 한국에서 실현되었다. 1995년 이 독성물질의 사용을 중단했던 IBM이 같은 해 1,650억 달러에 달하는 대형 납품계약을 체결했는데, 그 상대가 한국의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였던 것이다. 한국 반도체회사를 상대로 한 이런 종류의 계약은 인텔과 HP 같은 다른 회사들로 확대되어 갔다.  

세월을 훌쩍 뛰어 2009년, 삼성과 하이닉스에서 임의로 채취한 샘플의 절반 이상에서 바로 이 독성물질 EGEs(에틸렌글리콜에테르)가 검출되었다. 미국에서 1급 생식독성물질로 지정되어 금지된 후 적어도 15년 가까이 한국 노동자들은 이 물질에 노출된 것이다. 

삼성이 정말 몰랐을까? 미국 반도체 회사들이 생산을 중단하고, 자신들에게 거액의 계약을 안겨주었던 그 이유를 삼성이 정말 몰랐을까? 불임, 유산, 자녀기형 등을 유발하는 1급 생식독성물질의 존재를 정말 몰랐을까? 간단한 검색만으로도 이 내용을 보도한 당시 기사를 찾을 수 있는데? 어찌 됐든 삼성이 지난 해 강행했던 비밀보상절차에는 생식질환 항목이 빠져있다. 삼성은 예외 없이 이렇게 뻔뻔하다. 

무책임 

황유미 님의 죽음 이후 10년, 많은 것들이 변했다. 양심적인 전문가들이 반도체 산업의 유해성에 대해 많은 것을 밝혀냈다. 덕분에 삼성과 근로복지공단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20명의 피해자들이 산재 인정을 받게 되었다.  

SK하이닉스는 전문가들이 얘기하는 전자산업 직업병 대부분을 포괄하는 보상제도와 예방제도를 도입하였다. 많은 국내외 언론들이 반도체 전자산업의 유해성을 보도하고, 불합리한 법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삼성만은 이런 변화에서 여전히 비켜나 있다. 법적 의무사항인 작업환경측정도 제대로 하지 않거나, 필요한 자료 제출은 ‘영업비밀’을 핑계로 대부분 거부한다. 삼성은 법원과 국회에 제출하는 안전보고서까지 조작해서 고발당하기도 했다.

반올림과 합의했던 유일한 쟁점인 재발방지대책도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재발방지책으로 합의했던 ‘옴부즈만 위원회’의 활동을 보고하는 행사들이 최근 언론에 대대적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 자리에 토론자로 참석한 전문가들은 내용도 없고 준비도 부실한 자리에 실망을 감추지 못한다. 실제 직업병 예방에 힘을 쏟는 게 아니라 '옴부즈만 활동이 있다'는 언론보도용 행사에만 치중하는 게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삼성이 책임을 회피하는 동안 반올림의 농성은 660일을 넘어 이어지고 있다. 반올림은 진정성있는 사과와 투명하고 배제 없는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조정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피해자들에게 보상했다는 삼성의 또다른 거짓말만 돌아올 뿐이다. 

'삼성전자가 조정위원회와 별도의 자체 보상위원회를 구성해서, 조정위원회가 권고한 보상기준을 임의로 수정한 후, 조정위원회와 관련 없이 보상절차를 집행하는 것'

조정위원회의 입장 발표가 있었지만, 역시 삼성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처벌 

연말부터 이어진 촛불 덕분에 이재용이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삼성을 공짜로 세습받기 위해 회사 돈 수백억을 횡령해서 은닉하고 해외로 빼돌려서 검은 권력에게 뇌물을 준 혐의이다.  

뇌물의 대가로 이재용을 위한 기업합병에 국민연금의 찬성을 얻어냈고, 이 과정에서 국민연금에까지 손실을 끼쳐 국민적 분노를 자아냈다. 이재용과 공범들은 이 범죄행위에 대해 온전히 죄 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재판이 이제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선고일이 다가오면서 ‘특검이 부실한 증거로 무리하게 기소’했다느니, ‘죄를 입증할 결정적 한 방이 없다’느니 하는 친삼성 언론들의 설레발이 더 극성이다. 이들 언론만 보면 이재용이 풀려나는 거 아닌가하는 걱정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국정농단 전체와 긴밀히 얽혀있는 이재용의 범죄행위는 너무나 어마어마해서 그렇게 쉽게 지울 수 있는 게 아니다. 합병 결정을 주도한 보건복지부 장관 문형표와 국민연금 기금본부장 홍완선이 이미 2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삼성의 승계를 지원했다는 광범한 증거를 담고 있는 안종범의 수첩, 최근 발견된 청와대 문서들이 모두 재판에서 증거로 채택되어 이재용의 범죄를 잘 드러내고 있다. 이 문서를 작성한 전 청와대 행정관은 우병우가 문서작성을 지시했다는 점도 증언하고 있다.  

미래전략실에서 대관로비를 담당했던 장충기의 문자는 삼성이 정부 관료들을 밀착관리하고, 다음과 네이버같은 포털싸이트의 기사까지 꼼꼼하게 관리해왔다는 점을 보여준다. 장충기가 국정원 간부를 통해 정부 인사에 개입한 정황도 드러났다. 불의한 권력을 불의한 방법으로 유지하고 세습하기 위해 기업 안팎에서 삼성이 벌여온 추악한 행동은 반드시 단죄되어야 할 것이다. 

반올림은 삼성전자 뇌종양 피해자인 한혜경님과 어머니인 김시녀님, 그리고 황상기 아버님과 함께 종종 이재용의 재판정을 찾고 있다. 법정에 갈 때마다 삼성 사장단에게 잊지 않고 항의도 전달하고 있다.  

'삼성직업병 해결하십시오' 
'백 명도 넘게 죽었는데 언제까지 모른체할 겁니까' 
'우리 유미를 죽여놓고 책임도 안지느냐' 

거짓말과 무책임으로 점철된 삼성. 회사 안팎에서 탈법과 불법을 가리지 않고 사용해 온 이재용과 삼성의 공범들. 이들은 삼성을 위해 일하다 죽고 병든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다할 생각이 여전히 없는 듯하다. 이재용과 삼성은 스스로 변하지 못한다는 걸 거듭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재용에 대해 제대로 단죄하는 것이 중요하다. 황상기 아버님이 늘 하시던 얘기가 맞다.  

"삼성이 처벌을 면하려고 이제 와 쇄신한다고 하는데, 삼성이 진짜로 쇄신하려면 인적 쇄신이 먼저입니다. 거짓말만 해왔던 사람들 그대로 두고 쇄신이 제대로 될 리가 없어요."



또 하나의 적폐, 삼성의 언론 지배

[연속기고 ③] 삼성이 변하지 않으면 범죄는 반복된다
2017.08.03 11:37:30

ⓒ프레시안(최형락)


언론은 여지없이 이재용을 비호하며 친삼성적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에서 삼성의 뇌물 공여 혐의가 큰 몸통으로 드러나면서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에 대한 특검의 구속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해당 사건의 선고가 다가올수록 보수언론과 경제지는 이재용 재판과 특검의 공소사실에 대한 부정적 기사를 쏟아놓으며, 재판부와 특검 흔들기를 가속화 하고 있다.  

보수언론과 경제지는 법리를 왜곡하면서 특검을 깎아내리는 보도를 서슴지 않고 있다. 특검이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간부들의 각종 문자내역, 공정거래위원회·금융위원회·국민연금관리공단·보건복지부 압수수색 문건, '대통령 말씀자료' 및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업무수첩 등 2만 쪽이 넘는 기록을 제출했지만,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과 경제지 등은 이러한 기록이 '정황 증거에 불과'할 뿐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 청탁을 입증할 명시적·구체적 증거가 되지 못한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안종범 수첩이 "예고편만 요란했[지만] '맹탕'"으로 드러났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어 특검을 노골적으로 폄훼했고, <중앙일보>와 <한국경제>, <매일경제>를 비롯한 경제지들은 "안종범 수첩의 직접증거 채택이 불발됐다", "이재용 부회장 측에 유리하다", "특검이 갈수록 수세에 몰린다", "재판은 확증 없이 무의미한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등의 기사들을 연실 쏟아냈다. 하지만 이재용의 뇌물 공여 사건은 형사재판으로, 직접적 증거보다 "범죄를 추단케 하는 정황증거를" 고려하는 것이 일반적이다(7월 25일 자 <미디어오늘> 김남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 즉, 재판부의 안종범 수첩의 정황증거 채택 결정은 이를 증거로 '채택'한 것에 의미가 있었음에도 언론은 이를 누락시키고 왜곡하고 있다.  

<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과 경제지는 또한 이재용의 밤샘 조사를 문제 삼으며 초점을 흐렸고, 정유라가 이재용 재판에 출석해 증언한 일에 대해서도 자발적 출석이었는지에 대해서만 대중의 관심을 몰고 갔다. 정유라의 증언이 이재용의 뇌물 사건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보도하기보다, 정 씨의 변호사가 내놓은 "살모사"란 발언이 적절한 것이었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었다. 한 시민으로서 증언을 자처한 공정거래위원장 김상조에 대해서는 그의 이재용 재판장 출석이 부적절한 행위였다고 비난했고, 그의 증언이 추측성 발언이어서 증거 가치가 없다고 폄훼했다. 반면 싱가포르 국립대학 경제학과 교수 신장섭을 '경제전문가'로 한껏 띄우며, 그의 입을 빌려 삼성물산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공단의 찬성을 놓고 "엘리엇에 맞서 국익을 지킨 것"이라는 입장을 부각시켰다. 해당 사안을 문제 삼는 것 자체가 "상식을 벗어난 반기업 정서의 결과물"이라는 그의 평가도 덧붙였다. 청와대에서 두 차례에 걸쳐 엄청난 양의 문건이 발견됐고 해당 문건이 이전 정부가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에 개입했다는 정황 증거를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이재용 재판을 '여론전'으로 몰고 간다고 몰아붙였다. '오너 부재'에 따른 '삼성 위기론'과 '국가 신인도 하락론', 그리고 '삼성=국가 1등 기업론', '삼성 국가 경영론', '삼성 위기=국가 경제 위기론' 등 삼성을 두둔하기 위해 만들어진 언론의 공식들도 여지없이 이어졌다.  

<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국경제>, <매일경제>, <아주경제>, <헤럴드경제>, <머니투데이>, <디지털타임스> 등 꼽을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언론이 삼성에게 면죄부를 주도록 여론을 조성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이들 보수언론과 경제지들의 이런 행위가 이례적인 것도 아니다. 언론이 여론을 호도하면서 우리 모두가 삼성의 불법 행위에 무감각해지게 한 것은 하루 이틀에 걸쳐 이루어진 일이 아니다. 2005년 '삼성 X파일' 사건이 불거졌을 당시에도, 언론은 그에 대한 보도를 지연시키고 누락시켰으며 비판의 수위를 조절하는 면모를 보여주었다. 2007년 삼성 비자금 사건이 드러났을 당시에는 김용철 변호사의 내부고발 내용을 묵살하거나 그의 폭로가 사회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고 오히려 그를 공격하는 태도를 취했다. 2007년 당시 이건희 회장이 단지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 원의 선고를 받고 삼성 특검이 큰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사건을 마무리하게 된 것은 언론의 폐단과 무관하지 않다. 언론은 2007년에 발생한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건'에 대해서도 피해를 입은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7년간 무시·묵살하고, 2014년이 돼서야 삼성이 내놓은 위선적인 사과와 보상 내용을 확대시켜 보도했다. 언론의 적극적인 지지 덕분에 삼성은 백혈병 피해자들에 대해 ‘삼성식’ 해결방안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언론의 삼성 편향적 보도의 배후는 무엇일까? 삼성이 광고를 통해 언론을 통제한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삼성은 연간 수천억 원의 광고비를 지출하면서 언론에 통제력을 발휘했고, 그를 통해 기업 이미지를 유지시켜왔다. 특히 1997-8년 IMF 경제위기를 계기로 경제적 상황이 급격히 어려워진 경제지들과 인터넷 언론이 최대 광고주로서의 삼성에 종속된 기사를 양산함으로써 저널리즘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는 점도 여러 차례 지적되었다. 

물론 삼성이 최대 광고주로서 언론 위에 군림하고 있던 탓도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삼성이 국가 경영을 주도한다'는 '삼성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압축 성장기부터 한국 경제를 먹여 살린다는 평가를 받았던 삼성은 1990년대 중반 한국의 대표 재벌기업으로 떠올랐다. 1997-8년 IMF 외환 위기에도 삼성은 한국 경제를 버티게 해주는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2000년대를 관통하면서 삼성은 명실상부한 제1위 기업으로 자리를 굳혔고, 이로써 '삼성이 하면 뭔가 다르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특히 외국에서 삼성을 마주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삼성을 '국가적 자긍심'에 연결시켰다. 삼성의 인기는 나날이 높아졌으며, 젊은이들도 가장 근무하고 싶은 기업을 삼성으로 꼽는다. '삼성 갤럭시 노트7'의 폭발 게이트가 문제가 되었지만, 삼성은 이를 '실수'로 포장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사실로 믿어주었다. 다시 말해 지난 20년간 삼성은 '신화'가 되었다. 신화의 특징은 의문을 거부하는 것이듯, 삼성이 적합한 방법과 절차를 통해 성장한 것인지, 국가 경제에 실질적으로 어느 정도로 기여하고 있는지, 국가 공동체적 가치의 실현에 어느 정도로 책임을 수행하고 있는지 등의 문제는 제대로 제기되지도, 또 논의되지도 않았다.

결국 신화가 유지되는 동안, 삼성은 총수체제, 문어발경영을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부실시공, 하청착취 등의 경제활동을 수시로 벌였으며, 부당거래, 불법상속, 노조탄압, 정경유착 등의 불법 행위들을 저질렀다. 언론과 정부, 검찰은 삼성을 비호하며, 삼성이 가진 그늘을 체계적으로 은폐해주었다. 결국 경제력을 기반으로 초법적 권력기관으로 성장한 삼성은 국가의 운영 자체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세금제도, 노동정책, 전기요금, 공정거래 등 국가의 주요정책에 대해 영향력을 발휘하고, 그 정책들을 바탕으로 수십조에 달하는 이익을 챙기면서 중산층과 서민, 중소기업, 그리고 비정규직에게 고스란히 그 부담을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에서도, 삼성은 뇌물을 공여하고 국가기관 국민연금을 움직여 국민 전체를 희생시키고 사적 이익을 취했다. 경제권력을 통해 정치권력을 이용하고, 이로써 경제권력을 더욱 확대했던 셈이다. 

이처럼 삼성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발휘하면서 사익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최근 인기리에 방송된 드라마의 한 대사에 함축되어 있다. "되니까" "되니까 할 수 있었던 거다" "모두들 침묵하니까" "아무도 소리 지르거나 문제 삼지 않으니까" 언론은 삼성의 불법 행위가 드러날 때마다 침묵을 지켰고, 또 삼성이 필요로 할 때에는 거짓말로 삼성의 허물을 덮어주었다. 삼성의 언론 지배, 혹은 삼성에 대한 언론의 종속은 분명 우리 사회가 청산해야 할 적폐이다. 국가 경제도 중요하지만, 우리에게는 현재 정의를 세우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권력과 재벌의 유착은 시장 경제 질서를 흔들고 국가기구를 병들게 한다. 따라서 삼성의 뇌물 공여 사건의 진상은 명백히 드러나야 한다. 그를 위해서는, 또 하나의 적폐, 삼성의 언론 지배가 청산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