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생각한다

삼성, 성역의 변화를 생각한다

일취월장7 2017. 3. 7. 09:54

삼성, 성역의 변화를 생각한다

통제와 모방에서 창조와 혁신으로 나아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

권상집 동국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3.06(월) 16:20:44


미래전략실, 전략기획실, 경영기획실, 기획조정실, 정책본부, 회장실. 그 동안 재벌로 통칭되던 대기업들의 계열사를 일사불란하게 통제하고 조율해온 주요 그룹의 컨트롤타워 명칭이다. 그 효시(嚆矢)가 바로 1959년 삼성그룹이 만든 회장 비서실이다. 당시 일본 경제의 성장과 일본 기업에 대해 깊이 분석하던 故 이병철 선대 회장은 이를 따라잡기 위해 회장 비서실을 만들었고 이후 비서실은 삼성그룹 인재사관학교의 산실이 됐다. 이후 수많은 국내 대기업이 이와 유사한 명칭과 구조를 갖춘 컨트롤타워를 신설해 그룹 성장을 주도해나갔다.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은 이후 몇 차례 위기를 겪으며 폐지와 신설을 거듭했으나 결과적으로 2017년 미래전략실이라는 마지막 명칭을 역사 속에 남기며 완벽한 해체를 선언했다. 삼성그룹이 2010년 그룹의 헤드쿼터 명칭을 미래전략실로 바꾼 이후 상당수 대기업 및 중견기업들이 잇따라 자사의 컨트롤타워 명칭을 미래전략실 또는 미래전략본부로 바꾸자 ‘삼성이 시도하면 모든 기업이 다 따라 간다’는 비아냥이 한동안 재계에 퍼지기도 했다. 이런 측면에서 국내 대기업 성장의 상징과도 같았던 삼성의 미래전략실 해체는 기업 성장과 인재 확보에 있어 또 다른 변곡점을 시사하는 측면이 크다.

 

삼성전자 사옥 ⓒ 시사저널 임준선

삼성전자 사옥 ⓒ 시사저널 임준선


사실 삼성그룹을 포함해 모든 대기업들의 컨트롤타워가 해당 그룹의 경제 성장을 주도해나간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국내 대기업 혁신 연구의 개척자 중 한 사람인 故 김인수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삼성전자 및 현대자동차의 성장에 대해 ‘최고경영자가 위기의식을 조성한 후 임직원들이 선도기업의 역량을 흡수하고 모방해서 곧바로 추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최고경영자의 메시지는 곧바로 컨트롤타워에 의해 건설적인 위기의식으로 전환돼 각 계열사에 퍼져 나갔고 글로벌 선도기업의 기술과 역량을 흡수하고 모방하는 기간까지 컨트롤타워가 직접 점검하고 지휘해 나갔다. 자원과 인력, 정보의 한계가 존재한 당시 시대적 환경 속에서 급속하게 성장하기 위해서 컨트롤타워 중심의 경영은 국내 기업들에게 절박한 전략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 더 이상 추격 또는 선도기업에 대한 모방으로 성장이 가능하지 않다고 경영학계에서 진단한 시점은 2001년부터이다. 영국의 존 호킨스에 의해 ‘창의적 경제’라는 말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 등 혁신 기업들이 2000년대 이후 창조적 인재들의 아이디어와 첨단기술을 통해 시장과 산업의 경계선을 무너뜨리자 국내에서도 더 이상 컨트롤타워에 의한 지휘와 통제가 아닌 유연함과 창의성을 강조하는 경영으로 변화돼야 함을 상당수 학자들은 역설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국내 모든 대기업들은 자신들의 지휘 구조를 해체하려는 시도를 실행하지 않았다. 과거 성공에 의한 집착이 강력한 타성(惰性)으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삼성은 왜 권위주의와 통제에서 탈권위주의, 유연 문화를 시도하려는 걸까. 가장 중요한 초점은 삼성이 지금까지 해온 일사불란한 지휘와 통제, 컨트롤타워 중심의 경영은 더 이상 초일류급 인재 확보에 효과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도 여러 대학에서 똑똑한 학생들을 많이 만났지만 그들 중 목표가 ‘대기업 CEO’이거나 ‘대기업에 입사 하겠다’는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취업이 어려운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소위 말하는 명문대학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학생일수록 자율성과 권한위임을 부여하지 않는 곳이면 아무리 높은 연봉을 주더라도 절대 가지 않겠다는 생각이 확고했다. 역량이 뛰어난 인재들은 자신들의 역량과 신념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유연한 조직문화를 선호하지, 구성원 위에 군림하려는 통제 문화를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가 알고 있는 핵심인재 중 한 명은 지난해 구글과 국내 대기업 여러 곳으로부터 동시에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인물은 ‘구글에 가야 할지, 그냥 학자의 길을 걸어야 할지 고민’이라고 필자에게 털어놓았다. 국내 대기업의 스카우트 제의는 왜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그의 반응은 단호했다. 국내 대기업들은 자율성과 유연성, 수평적인 의사결정을 하지 않고 통제와 감시, 오너의 일방적인 명령만을 요구하기에 그런 곳에서 결코 희생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국내 대기업들이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다.

 

국내 대기업 오너 중에 직원들과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고 임직원들과 수평적인 토론과 논의를 통해 의사결정을 도출하는 경영자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나 그들은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니고 직원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출근해서 신격화된 메시지를 남긴다. 그리고 모호한 메시지는 이내 컨트롤타워에 의해 철학적인 어록으로 변화돼 전 직원에게 공유된다. 국내 기업이 어떤 부지를 사들이거나 글로벌 기업을 인수․합병할 때도 언제나 열정적인 토론이 아닌 오너의 명령으로 결론이 도출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때도 오너가 내린 결론은 합리적인 토론을 통한 의사결정보다 더 합리적이고 통찰력 있는 철학으로 뒤바뀌고 포장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 중에 오너가 일사불란함과 통제에 기반해 지휘를 내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여전히 세계 경제를 선도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CEO는 직원들과 치열하게 논의하고 식사도 대부분 구내식당에서 해결하기에 직원들이 CEO를 성역(聖域)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글로벌 기업에 다니는 핵심인재들에게 필자가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CEO와 나는 맡은 직분(職分)이 다를 뿐, 누가 위고 누가 아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였다. 수평적인 논의와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존재하기에 지금도 국내외 핵심 인재들은 글로벌 기업 입사를 꿈꿀지언정 국내 대기업에 가서 저녁이 없는 삶과 치열한 야근을 경험하며 미생처럼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

 

삼성그룹은 우리나라에서 이제 성역 그 이상에 가깝다. 대한민국 1년 예산보다 더 많은 매출을 올리는 기업 집단은 국내에서 삼성그룹 밖에 없다. 대통령 위에 삼성그룹 회장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국민들 역시 적지 않다. 과거 《추적자》, 《골든크로스》, 《몬스터》 등 각 지상파 드라마에서도 언제나 대통령은 ‘5년짜리 비정규직’으로 격하(格下)돼 표현됐고 대한민국을 좌지우지 하는 권력은 신성불가침 대상인 국내 No.1 그룹의 재벌 회장으로 묘사됐다. 이런 측면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 결정은 재계에서 상상하기 힘든 충격이었다. 해당 충격을 통해 성역이 또 다시 변화를 추구한다고 단호하게 결정했기에 그 결심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되길 바랄 뿐이다.

 

글로벌 기업들의 경쟁 패러다임은 ‘전략’에서 ‘문화’의 싸움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초일류급 인재들은 유연한 문화와 탈권위주의, 수평적인 소통이 내재된 문화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직접 수많은 글로벌 기업 CEO 및 인재들과의 대화에서 이런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삼성을 창조적 기업, 혁신 기업, 존경 받는 기업으로 바라보는 이는 거의 없다. 이번 변화는 삼성이 통제와 모방에서 벗어나 창조와 혁신으로 나아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성역 스스로 성역이라는 두터운 장벽을 내려놓고 국가와 임직원들 위에 군림하는 자세가 아닌 헌신하고 배려하는 자세로 바뀌어야 한다. 오너의 구속을 통해 삼성이 환골탈태(換骨奪胎)할지 이제 모두가 지켜볼 일이다.​ 


‘이재용의 삼성’ 더더욱 공고해졌다

경영쇄신안, 지주사 전환으로 지배구조 개편 노려…‘이건희 라인’ 한꺼번에 물갈이

송창섭·송응철 기자 ㅣ realsong@sisapress.com | 승인 2017.03.08(수) 08:17:48 | 1429호


3월1일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미래전략실(미전실)이 공식 해체되면서 실질적인 ‘이재용 삼성’의 서막이 올랐다. ‘관리의 삼성’을 상징했던 미전실의 퇴장은 그동안 고(故)이병철-이건희 회장 체제의 삼성으로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이다.

 

이번 쇄신안은 삼성 임직원들에게도 적잖은 충격이었다. “대국민 사과 차원에서 미전실 개편 정도를 생각했지, 이 정도로 센 게 나올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삼성전자 대관업무를 담당하는 A씨는 지금도 그룹 쇄신안이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그룹 안팎의 반응을 종합해 보면 쇄신안의 여진(餘震)은 ‘현재진행형’이다. A씨의 말처럼 삼성 내부에서는 ‘미전실 해체’라는 골격만 세워졌을 뿐, 세부안을 놓고 여러 가지 설(說)이 난무했다. 한 대기업 대외협력 담당자는 “미전실을 없애되, 인력은 삼성전자 내에 별도로 남겨두는 설이 유력했었지만, 발표된 안(案)은 이를 훌쩍 뛰어넘는 파격 그 자체”라고 말했다. 3월1일자로 미전실 수뇌부 9명 전원이 사퇴한 것은 1993년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에 비견될 만큼 파격적인 변화다. 그룹이 사실상 해체됨에 따라 계열사들도 각자도생이 불가피해졌다.

 

반대로 미전실 해체는 이사회 중심으로의 변신을 의미한다. 삼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기업 경영의 중심에 이사회가 자리 잡고 있다. 한 대형 증권사 지주회사 담당 애널리스트는 “하버드에서 공부를 한 이 부회장에게 이사회 중심 경영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 모른다”면서 “최순실 게이트가 아니었어도 언젠가는 나올 법한 이야기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청문회장에서 이 부회장이 별다른 고민 없이 미전실을 해체하겠다고 말한 것도 이미 오래전부터 이사회 중심 경영을 구상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시사저널 박정훈·뉴시스

© 시사저널 박정훈·뉴시스


삼성전자, 투자사·사업사 인적분할 가능성

 

미전실 해체가 삼성의 지주회사 전환을 앞당길 거라는 전망은 그래서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재 국회에서는 대기업집단 소속 회사의 회사 분할 시 자사주 취득을 제한하고 반드시 자사주를 미리 소각해야 한다는 의무규정을 담은 상법 개정이 추진 중이다. 현행 상법상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회사를 분할할 경우 사실상 의결권이 부활돼 대주주가 자금 투입 없이 손쉽게 지분을 늘릴 수 있는 도구로 활용돼 왔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주주가치 제고방안의 일환으로 제기한 지주사 전환을 위한 인적분할 등의 요구에 대해 “향후 6개월간 지주회사 전환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비록 이 부회장은 구속됐지만, 지주사 전환은 그보다 더 시급한 당면과제다. 지주사 전환은 3~4년의 시간이 필요한 중장기 과제다. 오너 부재를 이유로 지주사 전환을 미루기 힘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주사 전환을 늦출 경우, 기관투자가들에게 오너의 일방통행식 의사결정을 자인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지주사 전환이 본격화될 경우 삼성그룹은 어떤 구조로 변신할까. 국내 증권가에서는 인적분할로 삼성전자가 ‘투자회사 삼성전자’와 ‘사업회사 삼성전자’로 나눠지며, 투자회사 삼성전자가 실질적인 지주회사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한다. 지주회사 전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 삼성물산이다. 삼성물산은 17.08%의 지분을 가진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다. 또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25%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물산이 지주회사가 되고 그 아래 투자회사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중간 지주회사로 둘 경우, 지배구조를 좀 더 단출하게 만들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투자회사 삼성전자는 사업회사 삼성전자와 비(非)금융계열사를, 삼성생명은 금융계열사를 아우르게 된다. 삼성이 쇄신안에서 전자·물산·생명을 중심으로 그룹을 재편하겠다고 밝힌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미전실을 해체하면서 9명의 수뇌부를 동시에 내보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앞서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삼성 내부에서는 미전실 수뇌부들의 물갈이설이 유력하게 나돌았다. 경영 최일선에 나선 이재용 부회장이 대폭적인 임원 인사로 체제 개편에 나설 계획인데, 이 과정에서 최지성 부회장(미전실 실장)과 장충기 사장(미전실 차장) 등 미전실 수뇌부가 대거 배제될 것이란 게 주된 내용이었다. 이 부회장이 자신을 위해 수족처럼 움직여줄 인사들로 자리를 채워 ‘이재용 체제’로의 전환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존 체제를 유지할 경우 이 부회장은 사실상 ‘부친의 그늘’ 아래서 경영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회장의 최측근인 최 부회장은 2012년 6월부터 미전실장을 맡아온 명실상부한 그룹 내 2인자다. 특히 이 회장 와병 이후 최 부회장의 삼성 내 영향력이 급격하게 커지면서 ‘이재용 체제’ 전환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돼 왔다. 장 사장은 이 회장 체제 때 2인자를 맡은 이학수 전 전략기획실(미전실의 전신) 실장 라인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삼성 안팎에서는 ‘최순실 게이트’가 오히려 미전실을 정리하고 새로운 친정(親政)체제를 구축할 ‘명분’을 줬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1심 재판 앞두고 추가 쇄신안 나올 수도

 

일각에서는 이번 쇄신안 발표가 향후 이재용 부회장이 받게 될 재판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시각도 있다. 과거를 청산하고 반성하고 있다는 점을 내세워 재판부로부터 관대한 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쇄신안이 재판부가 양형을 정하는 데 어느 정도 참작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가 나온다. 재판부가 정상을 참작해 형량을 줄여주는 작량감경을 해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형량이 징역 3년 이하로 낮아질 경우 집행유예도 가능해진다. 이 부회장에게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부친인 이건희 회장도 2008년 ‘삼성 특검’ 당시 이런 식으로 작량감경을 받았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으면서 구속을 피할 수 있었다. 삼성 내부에선 5~6월 사이로 예상되는 1심 재판을 전후로 추가 쇄신안이 나올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삼성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이 그랬던 것처럼 이 부회장도 재판을 앞두고 재산 사회 환원을 포함한 추가 쇄신안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를 통해 집행유예를 이끌어내는 것이 삼성의 노림수”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