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생각한다

[인터뷰] 김상조 "삼성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일취월장7 2017. 2. 17. 12:40

[인터뷰] 김상조 "삼성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삼성 사외이사, 외부 주주가 선임하게 하라"
성현석 기자       
2017.02.16 15:55:10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구속될까. 서울중앙지방법원은 16일 오전 10시 30분께 한정석 영장 전담 판사 심리로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 실질 심사)을 진행했다.

구속 여부는 이르면 이날 밤 결정된다. 지난달 18일에도 같은 절차가 있었다. 당시엔 영장이 기각됐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두 번째 이 부회장 구속 시도, 성공할까.

"한 달 동안 증거 및 논리 강화이번엔 이재용 구속 가능성 있다"


김상조 한성대학교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를 지난 15일 오후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이 부회장에 대한 첫 번째 구속 영장이 청구됐던 지난달, 그는 특검의 논리에 빈 고리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구속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실제로 당시 법원은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 영장을 기각했다.  

이번엔 어떨까. 김 교수는 구속 가능성이 꽤 높다고 전망했다. 이 부회장 구속 수사를 정당화하는 논리가 지난 한 달 사이 확 보강됐다는 게다. 특검팀이 새로 확보한 증거도 만만치 않다고 했다.  

하지만 김 교수의 진짜 관심사는 이 부회장 구속 여부가 아니다. 이 부회장이 구속되건 안 되건, 삼성은 여전히 한국 경제에서 큰 역할을 할 게다. 중요한 건, 법질서를 깨려는 삼성 내부의 압력이 생기지 않게끔 하는 일이다. 좋은 지배구조를 만들어야만 가능하다.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 실질 심사를 앞두고, 김 교수가 한 이야기를 요약 소개한다. 


'평판 관리'에 실패한 이재용  


통념과 달리, 김 교수는 삼성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오랫동안 멈춰 있었다고 본다. 1995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이 부회장에게 61억 원을 증여하면서 승계 작업이 시작됐다. 이듬해인 1996년,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 'e삼성'을 통한 지분 강화 시도가 있었다. 정보기술(IT) 벤처 거품에 편승한 전략이다.

그리고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갑작스레 쓰러졌다. 그 사이 십 년 남짓 동안,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구체적인 작업이 거의 없었다는 게다. 삼성 X파일 사건,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 등이 있었다.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불거진 법적, 윤리적 논란이 거셌다.

그뿐 아니다. 김 교수는 이건희 회장 본인 역시 경영권 승계 작업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본다. 봉건적인 재벌 문화에선, 회장이 직접 나서지 않는 한 참모들은 승계 관련 논의를 할 수 없다. 김 교수는 현대자동차 그룹과 삼성을 비교했다. 경영권 승계는 그저 지분을 늘리는 것으론 완결되지 않는다. 시장에서 좋은 평판을 쌓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아들인 정의선 부회장의 평판 관리를 위해 온갖 노력을 했다. 정 부회장에게 기아자동차 경영을 맡긴 뒤, 다양한 지원을 해서 성공 사례를 쌓으려 했다.

반면, 이건희 회장은 이런 노력이 없었다. 그 결과, 경영 능력에 대한 평판만 놓고 보면, 이재용 부회장은 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에게조차 밀리는 처지가 됐다.

이건희 투병과 엘리엇 사태돌발 변수로 급류 탄 경영권 승계


이런 상태에서 갑자기 회장 유고 상태가 되자, 삼성 미래전략실은 뒤늦게 숙제를 시작했다. 이 부회장의 지분 강화를 위해 다양한 인수 합병 및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그리고 새로운 변수, '엘리엇 사태'가 터졌다. 2015년 6월이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통해,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을 강화하려던 시도에 제동이 걸렸다. 삼성물산 3대 주주였던 미국 사모펀드 엘리엇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 기존 주주들에게 불리하다는 점을 공격했다.  

'회장 유고', '엘리엇 사태'. 모두 삼성 미래전략실이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였다. 회장 유고 때문에 갑작스레 승계 작업에 속도를 냈다. 이는 재무 담당자의 몫이었는데, 엘리엇 사태로 변화가 생겼다. 로비 담당자가 나서야만 했다. 시장의 자연스런 흐름에 맡겨서는 풀 수 없는 과제가 됐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승마 유망주' 지원 요구장충기, 기회를 잡다 


'회장 유고'와 '엘리엇 사태'의 사이에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만남이 있었다. 2014년 9월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서 두 사람이 독대했다. 박 대통령은 "승마 유망주를 발굴해 적극 지원해 달라" "승마 유망주에게 좋은 말을 사주고 해외 전지훈련도 지원해 달라" 등의 요구를 했다. 이게 무슨 뜻인가?  

장충기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이 나설 때가 됐다. 장 사장은 삼성에서 '대관 업무'만 담당했었다. 관청을 상대하는 일, 즉 정보 수집과 로비 업무다. 실제로 과거 삼성 비서실(현 미래전략실)에서 일했던 이는, "장충기 사장을 구속 수사하지 않고서는, 정경유착 고리를 끊을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삼성과 권력의 어두운 거래 내역을 가장 구체적으로 아는 인물이 장 사장이다.  

하지만 그 역시 나이가 들었다. 2014년 가을에는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협력 담당 사장과 마찬가지로 '은퇴 프로그램' 적용을 앞두고 있었다. 기존에 담당하던 역할의 비중을 줄이고, 조금씩 가벼운 역할로 옮겨가는 것이다. 다른 전직 삼성 관계자 역시 장 사장에 대해 '이건희 라인'이라고 설명했다. 이재용 시대 개막과 함께 퇴장할 인물이라는 게다.

박 대통령의 '승마 유망주' 언급은 장 사장에게 새로운 기회였다. 그는 박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관계에 대해 파악했고, 그의 전공 실력을 발휘했다.  

2014년 11월 25일, 삼성은 대한승마협회 부회장사가 됐다. 다음 날 삼성과 한화 사이에서 화학 계열사 인수 합병 조치가 발표됐다. 이듬해인 2015년 3월, 대한승마협회 회장사가 한화에서 삼성으로 교체됐다. 그리고 정유라 씨를 본격적으로 지원했다. 이재용 체제 삼성에서 장 사장의 역할을 찾았다.  

특검 논리에서 빠진 고리 하나 

그 뒤에 터진 게 '엘리엇 사태'다. 장충기 사장의 역할은 더 확대됐다. 삼성물산 대주주인 국민연금의 지지를 끌어내고, 다양한 지원을 얻어내려면, 권력의 협조가 필수적이었다.

이 부회장에 대한 첫 번째 구속 영장이 청구됐던 지난달, 김 교수가 기각 가능성을 점쳤던 한 이유가 이 대목과 관련이 있다.  

장충기 사장이 최순실 씨의 존재를 포착하고 로비를 시도한 게 2014년 가을이다. '엘리엇 사태'는 2015년 6월이다. '엘리엇 사태'가 없었다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순조롭게 진행될 터였다. 그렇다면, 최 씨에 대한 로비가 국민연금의 지지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논리는 어색하지 않은가.  

삼성의 딜레마지주회사 전환까지 고려한 로비 

김 교수는 보다 큰 그림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삼성 지배구조를 가장 오랫동안 살폈던 그가 보기에, 지금의 삼성 출자 구조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지주회사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현 상황에선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이 부회장이 부당 이득을 누릴 가능성이 높다. 마치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과정에서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시장은 더 이상 이 부회장의 부당 이득에 대해 관대하지 않다. 재벌 총수 일가에 대한 사회적 비난 수위는 꾸준히 상승했다. 삼성과 한국을 동일시 하는 '애국심 마케팅' 역시 한계가 있다. 외국인 주주들에겐 안 통한다. 그렇다고 해서, 현 상태에서 계속 버틸 수도 없다. 


삼성의 로비는 이런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지주회사 전환까지 고려한 로비였다. 이렇게 보면, 대가성 여부도 분명해진다. 법원 역시 이런 논리는 부정하기 어렵다고 본다. 그래서 김 교수는 이 부회장 구속 가능성을 전보다 높게 본다.

"이재용, 지주회사 지분 20%에 만족해야" 

앞서의 딜레마에서, 삼성은 어떻게 했어야 할까. 권력을 향한 '로비'가 아닌, 합법적인 경로는 무엇이었을까. 김 교수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다.

"정당한 지분 거래를 통해 이재용 부회장이 확보할 수 있는 지주회사 지분은 20%대다. 계산방식에 따라 다르지만, 이 수준을 넘어설 수는 없다. 이 부회장 입장에선 불안한 비율이다. 사업에 실패하면, 주주총회 결의를 통해 경영권을 뺏길 수 있다. 그러니까 무리해서 높은 지분을 확보하려 한다. 그런 목표로 지주회사 전환을 추진하면, 불법 행위를 피할 수 없다. 


지주회사 전환은 해야 한다. 하지만 총수 지분은 20%로 만족해야 한다. 이 부회장은 경영 능력에 대한 시장의 평판을 쌓지 못한 상태다. 경영권 방어에 대해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무리하게 경영에 나서기보다, 대주주로 남되 '조정자' 역할에 머무르는 게 옳다. 그리고 그걸 약속해야 한다.  

이런 약속을 한다고 한들, 사회와 시장이 믿겠느냐고 할 수도 있다. 신뢰를 얻을 방법이 있다. 외부 주주가 사외이사를 선임하게 하면 된다. 삼성물산, 삼성전자, 삼성생명 등에서 외부 주주가 선임한 사외이사가 활동하면, 신뢰가 생긴다. 예컨대 국민연금, 또는 삼성을 공격했던 엘리엇 등이 사외이사를 선임한다고 생각해보라.  

이재용 부회장이 곧 구속될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오히려 기회다. 이 부회장이 사회와 격리된 상태에서 자신의 역할 및 경영 투명성에 대한 약속을 한다면, 더 확고한 신뢰가 생긴다. 총수가 막후에서 조종한다는 의심을 덜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총수가 구속되면, 인수 합병 및 신규 사업 진출 결정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는 우려도 있다. 맞다. 그건 분명히 총수 구속에 따른 비용이다. 그러나 반드시 치러야 하는 비용이다. 그리고 일상적인 경영은 총수 구속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 부회장이 자리를 비운 뒤의 상황은,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이재용 영장 재청구 자초한 ‘관리의 삼성’

삼성은 과연 피해자일까? ‘관리의 삼성’은 최순실씨의 영향력을 누구보다 먼저 파악했다. 최씨의 딸 정유라씨를 계속 지원했고 박근혜 대통령도 삼성을 챙겼다. 지원 규모가 커질수록 혜택도 늘었다.

김은지·신한슬 기자 webmaster@sisain.co.kr 2017년 02월 16일 목요일 제492호


삼성은 박근혜 게이트의 중심축이다. 최순실씨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곳에는 어김없이 ‘관리의 삼성’도 등장한다. 박근혜 게이트를 촉발한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 승마 훈련(220억원 계약)뿐 아니라 조카 장시호씨가 주도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16억원 후원)까지 모두 삼성이 지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삼성에 대한 관심도 특별했다. 2014년 5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삼성의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 문제에 신경을 썼다. 2015년 7월25일 독대를 앞두고 청와대에서 작성된 ‘대통령 말씀자료’가 이를 뒷받침한다. 해당 문건에는 “현 정부 임기 내에 후계 승계 문제가 해결되길 기대한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부회장 승계의 ‘실탄 공급처’로 국민연금공단이 동원되었다는 혐의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까지 구속된 상태다.

ⓒ연합뉴스
1월19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종이 가방을 들고 서울구치소를 걸어 나오고 있다. 이 부회장은 430억원 규모의 뇌물공여와 횡령·위증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지만 기각되었다.


박영수 특검팀도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대가를 주고받은 정황을 포착하고 이 부회장에 대해 뇌물·횡령·위증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영장은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부 조의연 부장판사는 1월19일 “현재까지의 소명 정도 등으로 보아 구속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피해자 삼성’의 논리가 통했다는 평가가 법조계에서 나왔다.

삼성은 과연 피해자일까? 먼저 삼성은 관련 의혹에 대해 계속해서 말을 바꿨다. 지난해 9월 삼성은 정유라씨에 대한 지원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송금 내역이 나오자, 대한승마협회를 통한 정당한 지원이었다고 변명했다. 이런 해명을 무너뜨리는 증거가 나오자 어쩔 수 없는 지원이었다고 또 말을 뒤집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협박을 받았다는 것이다. 강요죄의 피해자는 처벌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 구속영장 기각 뒤 특검은 보강 수사에 들어갔다. 청와대 압수수색 여부에 눈길이 쏠렸던 2월3일, 금융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를 압수수색했다. 안종범 전 수석이 추가 제출한 업무수첩 39권도 확보했다. 이 수첩에도 삼성과 관련한 VIP(대통령)의 지시 사항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순실-박근혜-삼성의 뇌물 커넥션’은 2014년 9월15일 첫 독대 전후 시기부터 주목해야 한다.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지속적으로 서로의 필요를 주고받은 상황을 따져봐야 뇌물 사건의 본질이 보이기 때문이다. 독대 4개월 전 2014년 5월10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자택에서 쓰러졌다.

당장 삼성의 후계 문제가 불거졌다. 그해 6월20일 김영한 전 수석의 업무일지에도 ‘삼성그룹 승계 과정-monitoring’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2014년 9월15일 대구경북 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이 만났다. 삼성이 파트너로 있는 두 센터의 대표인 김선일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장과 김진한 경북 창조경제혁신센터장은 모두 삼성 임원 출신이다.

ⓒ연합뉴스
2월3일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관들이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실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뒤 압수 물품을 들고 나오고 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첫 번째 독대가 이뤄졌다. 안봉근 당시 제2부속비서관을 통해 만들어진 자리였다. 박 대통령은 이 부회장에게 “승마 유망주를 발굴해 적극 지원해달라” “승마 유망주에게 좋은 말을 사주고 해외 전지훈련도 지원해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정유라’라는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고 한다. 정유라씨는 2013년 경북 상주 승마대회에서 준우승을 했고 2014년 9월20일 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땄다.

관리의 삼성은 최순실의 존재를 포착했다

그때부터 삼성의 ‘레이더’가 작동했다. 삼성그룹 사정을 잘 아는 재계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정보 하면 삼성이다. 대통령이 말하는 게 뭔지 파악하기 위해 대관업무를 총괄하는 장충기 사장 등이 동원됐다. ‘이건희 라인’으로 꼽힌 장 사장이 열심이었다. 이건희에서 이재용으로 권력 교체기에 ‘공’이 필요했을 것이다. 결국 최순실·정유라가 박 대통령과 아주 가깝다는 걸 알아내고, 관리에 들어갔다. 당시만 하더라도 다른 대기업은커녕 고위 공직자 중에서도 최순실의 존재를 모르던 때였지만, 관리의 삼성은 달랐다.”

당시 최순실씨의 관심은 딸의 올림픽 출전 준비였다. 최씨를 20년 넘게 알아온 한 승마계 인사의 증언이다. “유연이 엄마(최순실)를 돕던 박원오 전 전무가 아시안게임 이후에 찾아와서 올림픽에 나가려면 얼마 드는지 상담했다. 나는 올림픽은 아시안게임하고 차원이 다르다고 했다. 좋은 말을 사고 더욱 체계적으로 훈련을 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1인당 50억원은 넘게 든다고 조언했다.” 정유라씨가 올림픽 출전을 꿈꾼다는 이야기는 승마계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삼성은 승마단을 해체한 지 4년이나 지난 2014년 11월25일, 대한승마협회 부회장사가 되었다. 바로 다음 날 삼성과 한화의 화학·방산 빅딜이 발표됐다. 2015년 3월 한화가 맡던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를 삼성이 차지했다. 한화의 임기가 2년이나 남았지만 삼성이 대한승마협회 회장사가 된 것이다. 정유라씨 지원을 위한 구실을 마련했다.

이때 변수가 생겼다. 정유라씨가 임신을 했다. 최순실씨도, 박근혜 대통령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정유라 선수 훈련에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대한승마협회를 앞세운 삼성의 지원 계획 또한 변경해야 할 상황이었다. 2015년 5월 정씨가 출산한 다음으로 모든 일정이 미뤄졌다.

정유라씨가 아이를 낳은 뒤 2015년 6월18일 정씨의 말을 관리하던 이씨가 말 4마리와 함께 독일로 먼저 출국했다. 정유라씨도 2015년 6월30일 독일로 출국했다. <시사IN>이 입수한 대한승마협회 ‘한국 승마 중장기 로드맵’ 문건은 이때 만들어졌다. 2015년 6월이라고 표지에 쓰인 문건에는 ‘2020년 도쿄올림픽 메달권 내 진입을 목표로 마장마술을 포함해 3개 종목별 선수 3명씩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마장마술은 정유라 선수 종목이다(<시사IN> 제486호 ‘삼성과 최순실 은밀하고 긴밀했다’ 기사 참조).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흡수합병 계획이 발표되었다. 발표와 함께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 비율(0.35:1)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삼성물산의 가치를 일부러 떨어뜨렸다는 지적이 나왔다. 제일모직이 싼값에 삼성물산을 인수하게 되면 이재용 부회장은 지주회사 격인 통합 삼성물산을 통해 삼성그룹 지배력을 높일 수 있게 된다. 이 부회장 등 삼성그룹 대주주 일가는 제일모직 주식 42.19%를 가진 상태였고 삼성물산 주식은 1.41%만 가졌다.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11.21% 보유)였던 국민연금공단의 결정이 중요했다. 삼성물산 주식 7.12%를 가진 엘리엇이 합병 반대 의사를 밝힌 터라 국민연금의 결정에 따라 합병 여부가 결정되었다.

ⓒ시사IN 조남진
2014년 9월20일 제17회 아시아경기대회 승마 마장마술 부문에 참가한 정유라씨가 경기를 펼치고 있다


당시 국민연금공단은 삼성의 손을 들어주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 수사 결과에 따르면, 내부적으로 적정 합병 비율을 0.46:1(삼성물산:제일모직)이라 산정했지만, 이조차도 조작했다. 7월10일 국민연금기금운영본부 투자위원회는 합병에 찬성했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공소장에는 ‘그가 국민연금기금 운용에 대한 개별 투자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챙기며 수차례 삼성에 유리한 결정을 해주라고 지시했다’고 쓰여 있다. 안종범 전 수석 등을 통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이 성사될 수 있도록 잘 챙겨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를 전달받았기 때문이다. 청와대·보건복지부·국민연금공단이 조직적으로 나서서 삼성을 도와줬다는 것이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판단이다. 그 정점에 박근혜 대통령이 있다고 본 것이다. 문형표 전 장관은 지난해 12월31일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합병 성사 이후 2015년 7월25일 박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이 두 번째로 독대했다. 지난해 11월13일 검찰 특별수사본부에 출석했던 이재용 부회장은 당시 박 대통령과 정유라씨 승마 지원 문제에 대해 논의한 바가 없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하지만 특검 수사가 좁혀오자 이 부회장 쪽은 “독대  당시 박 대통령이 압박해 정유라씨 승마를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을 바꿨다. 지원이 소홀하다는 박 대통령의 지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삼성의 해명에 따르더라도 두 번째 독대 당시 승마 지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사실은 인정한 것이다. 또한 독대 뒤 삼성이 지원을 활발히 했다는 점도 인정한 모양새가 되었다. 물론 삼성 해명대로 ‘정유라를 지원할 테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해달라’고 명시적으로 요구한 게 아닐 수도 있다. 삼성으로서는 2014년 첫 번째 독대 이후 정권의 최고위급(최순실)과 소통하며 박 대통령과 채널이 생겼다는 게 가장 큰 성과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후 삼성은 정유라씨 지원이나 미르·K스포츠재단 등 박 대통령 관심사를 챙겼고, 정부도 삼성을 챙겼던 정황이 보인다. 결국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받은 셈이다. 넓게 보면 포괄적 뇌물죄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두 번째 독대 이틀 후 대한승마협회장인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이 직접 독일로 갔다. 지난해 8월26일 삼성전자와 최순실씨 독일 회사 코어스포츠는 220억원대 계약을 체결했다. 또 독일에 머무르는 동안 정유라씨가 타던 말이 늘었는데 삼성이 돈을 냈다. 2016년 1월27일 삼성은 덴마크 말 중개상이자 정유라씨 코치였던 안드레아스 헬그스트란드를 통해 비타나Ⅴ와 라우징1233을 구입했다. 비타나V는 그랑프리 대회에서 여러 차례 3위 이내의 성적을 거둔 명마다. 비타나V는 150만 유로(약 18억4000만원)에 달했다. 함께 구매한 라우징1233은 50만 유로(약 6억1300만원)이다.


ⓒ연합뉴스
2015년 5월7일 삼성전자 반도체 평택공장 기공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너무나 적극적이면서도 이득을 본’ 피해자


2016년 2월15일 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의 세 번째 독대가 이뤄진다. 장시호씨는 독대 바로 전날 삼성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0억원을 추가 지원하는 내용을 작성해 청와대에 넘겼다고 특검에 진술했다. 또 최근 특검은 2015년 말 공정위가 삼성SDI의 삼성물산 주식 처분 규모를 1000만 주에서 절반으로 줄여주면서까지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력을 강화해준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또 금융위가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에 특혜를 줬다는 점도 수사한다. 이에 대해 삼성은 “특혜를 받은 바가 없다”라며 부인했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혁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한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삼성이 로비를 했다면 그 목적이 단지 삼성물산 합병 성사에만 한정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삼성이 최순실이라는 존재를 파악하고 로비한 것은 지주회사 전환 등 승계 작업의 원활한 작업을 위한 목적을 포함했을 거다. 이런 관점에서 뇌물죄를 봐야한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을 보면 삼성의 해명을 인정하더라도, 삼성은 ‘너무나 적극적이면서도 이득을 본’ 피해자인 셈이다. 특검도 이같은 점 때문에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



이재용 구속, 특검이 '재수'에 성공한 비결?

삼성물산 합병 대신 지배구조 전환에 초점
성현석 기자       
2017.02.17 12:13:51


김상조 한성대학교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의 예상대로였다. 지난 12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참고인'으로 출석했던 그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 실질 심사)을 하루 앞둔 지난 15일 <프레시안>과 만났었다. 그 자리에서 김 교수는 "이번에는 이 부회장이 구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었다. 전망의 근거 역시 정확했다.

특검이 이 부회장에 대해 구속 영장을 청구한 건 두 차례다. 지난달 16일 청구했던 첫 번째 영장은, 지난달 19일 새벽 기각됐다. 하지만 지난 14일 청구된 두 번째 영장은, 17일 새벽 발부됐다.  

한 번 기각됐던 이재용 구속 영장, 두 번째엔 뭐가 달랐나

한 달에 못 미치는 기간,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  

첫 번째 영장에선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관련 논란에 초점을 맞췄다. 당시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 기존 주주들에게 불리했다. 2015년 6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이 대목을 공격하면서, 합병 계획이 위기를 맞았다. 그런데 삼성물산 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 지지한 덕분에 합병이 성사됐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외압 의혹이 있다.

그리고 삼성은 박근혜 정부의 비선 실세인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에게 경제적 지원을 했다.  

문제는 삼성물산 합병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과 정유라 씨에 대한 삼성의 지원 사이를 논리적으로 잇기가 애매하다는 점이다. 삼성이 정 씨를 지원할 준비를 한 건, 2014년 가을이다. 반면 엘리엇의 공격 때문에 삼성물산 합병이 위기를 맞은 시기, 즉 합병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절실해진 시기는 2015년 6월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지난달 첫 번째 영장 청구 당시엔, 이 대목에서 갸우뚱하는 전문가들이 있었다. 김상조 교수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삼성이 정말 원했던 게 무엇이었나? 

첫 번째 영장이 기각된 이후, 특검팀은 전략을 바꿨다. 삼성이 정 씨에게 막대한 지원을 했다는 사실 자체는 분명하다. 박 대통령의 요구가 발단이 되긴 했으나, 삼성이 나름의 전략을 갖고 적극적으로 나선 정황도 뚜렷하다. 한화그룹이 담당하던 대한승마협회 회장 사를 삼성이 맡으려고 움직였던 점이 그렇다. 정 씨를 지원한 대가에 대한 기대가 없었다면,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면, 초점이 맞춰진다. '삼성이 기대한 대가'는 무엇이었나. '엘리엇의 공격'도 있기 전인 2014년 가을, 삼성 미래전략실의 숙제는 무엇이었나. 특검은 이 대목을 캤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게 2014년 5월이다. 한참 동안 멈춰 있던 경영권 승계 작업을 다시 진행해야 했다. 목표는 두 가지다. 지주회사 체제 완성, 그리고 총수 일가의 안정적인 지주회사 지분 확보.  

지주회사 설립과 안정적인 지분 확보, 양립 불가능한 목표

문제는 이런 두 가지 목표가 양립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삼성그룹 간판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이건희 회장 시기에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삼성의 힘이 세진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전자 주식 가격이 뛰면서, 지분 비율을 늘리는 비용 역시 함께 올랐다. 삼성 출자 구조를 둘러싼 온갖 논란은 결국 그 때문이다. 삼성전자 장악에 드는 비용을 줄이겠다는 의도다. 지주회사 전환 역시 이런 목표의 하위 범주에 있다.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지주회사를 세우되, 정당한 거래를 통해 확보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지주회사 지분을 확보하려 한다. 그러니까 온갖 편법을 동원해야 했다.

정상적인 방법으론, 향후 설립될 지주회사에서 이 부회장이 안정적인 지분을 가질 수 없다. 물론, 이런 경우가 꼭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예컨대 네이버의 경우, 창업자 지분은 미미하지만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한다. 다른 주주들이 창업자의 경영 능력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도 그럴까. 총수 일가와 무관한 주주들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행사를 지지할까. 이런 질문에 대해 삼성 수뇌부조차 대답을 하지 못한다. 이 부회장의 경영 능력에 대한 시장의 불신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른바 '삼성 경영권 승계' 문제의 핵심이다.

지배구조 문제 겨냥하자 단서가 술술 

특검이 이 대목을 겨냥하자 단서가 술술 나왔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업무 수첩 39권 곳곳에 지주회사 체제 전환에 대한 삼성 수뇌부의 고민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또 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의 세 차례 독대에서 오간 대화 역시 이런 고민이 중심이었다고 한다.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 매각 과정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청와대로부터 압력을 받은 정황 역시 새로 조명됐다. 3년 연속 적자 기업이었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순조로운 상장을 둘러싼 논란 역시 마찬가지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중간금융지주회사제도 도입을 추진했던 배경도 다시 돌아보게 됐다.  

혐의는 확대되고, 논리는 견고해져 

특검은 이런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두 번째 구속 영장을 청구했다. 두 가지 효과가 생겼다. 하나는 논리 체계가 확 짜인 점이다. 안 전 수석의 수첩 기록,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대화, 공정거래위원회 및 금융위원회의 움직임 등이 '이재용 부회장이 안정적인 지분을 갖는 삼성 지주회사 설립'이라는 목표에 부합했다.  


두 번째는 삼성의 범죄 혐의 규모가 더 확대된 것이다. 첫 번째 영장 청구 때는 없었던 '재산 국외 도피', '범죄 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가 추가됐다.

그렇다면 법원 역시 영장을 기각할 수 없다. 죄의 규모는 더 커졌고, 이를 뒷받침하는 논리는 더 탄탄해졌기 때문이다.  

이건희 쓰러진 뒤, 속도 낸 승계 작업곳곳에서 '무리수'


소수의 수사 인력으로 구성된 특검팀이 채 한 달도 안 된 기간 안에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가 있다.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뒤, 삼성은 경영권 승계 작업을 하면서 너무 많은 무리수를 뒀다. '관리의 삼성'이라지만, 곳곳에 흔적이 남는 걸 막기는 힘들었다. 


특검이 겨냥을 제대로 하고 찌르는 순간, 단서가 쏟아졌다. 법원이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근거들이었다. 



“이재용 구속으로 한국 국가브랜드 타격 받을 것”

‘삼성 총수 구속’에 대한 외신 반응

김경민 기자 ㅣ kkim@sisapress.com | 승인 2017.02.17(금) 14:32:39


브랜드가치 세계 7위, 전세계 임직원 50만여 명을 거느린 글로벌 IT기업으로서 삼성그룹의 총수인 이 부회장의 구속은 전 세계적 관심을 모았다. 해외 유력 언론지들은 이 부회장의 구속 소식을 속보로 타전하며 즉각적인 관심을 보였다. 외신들은 이 부회장이 구속된 배경과 그가 받는 혐의에 대해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또 특검의 수사의 향방과 삼성그룹 및 삼성전자에 대해서도 정리했다.

영국의 BBC, 가디언, 미국의 CNN, 뉴욕타임즈 등 주요 외신은 이재용 부회장 구속 소식을 ‘톱뉴스’로 전하며 “이재용 구속은 남한 대통령 박근혜 탄핵을 부른 정치 스캔들과 연관돼있다”고 전했다. 이재용 부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지난달 1차 영장 때 적시된 뇌물공여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과 더불어 재산국외도피와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등 모두 5가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온라인판을 통해 이 부회장의 구속이 이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 이유인 부패 스캔들과 관련이 있다고 보도했다. WSJ는 “이 부회장이 최순실과 관련된 회사에 삼성이 3700만여 달러(약 422억 원)를 지급한 것과 관련되어 있다”며 “그가 뇌물, 횡령, 위증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즈(FT)는 “삼성그룹은 남한 경제의 20%를 담당하고 있는 거대 그룹”이라며 “그룹 뿐만 아니라 삼성전자도 영향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을 전했다. FT는 이라며 “삼성전자는 이미 지난해 갤럭시노트7 파동으로 많은 대가를 지불한 바 있다”며 삼성전자가 경영 측면에서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로이터 홈페이지 캡쳐

로이터 홈페이지 캡쳐


외신 “장기적 운영 전략 수립 어려울 것”

 

로이터는 총수 구속 사태가 삼성 그룹 및 삼성전자에 불러온 파급효과에 집중했다. 일각에서 우려하는 바와 같이 당장 삼성전자가 흔들리진 않을 것이라며 관계자의 코멘트를 전했다. ‘익명의 한 삼성전자 엔지니어’는 이 매체에 “총수가 자리를 비운다고 이 정도 규모의 회사가 운영에 차질이 온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늘 그래왔듯 문제없이 굴러갈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상무 출신인 김용석 성균관대학교 교수 역시 “이재용 부회장 구속으로 삼성이 사라지고 그러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장기적인 투자 전략을 세우는 데에 있어선 다소 어려움이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김용석 교수는 로이터에 “매년 당해 실적에 따라 평가받는 삼성 임원 시스템의 특성상 임원직이 장기적인 관점으로 전략을 세우긴 어려운 구조”라며 “장기적인 전략을 결정하는 것은 총수의 몫이었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얼마간의 어려움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 해체 및 인사 단행 등 전망이 불투명해졌다는 보도도 이어졌다. 로이터는 “보통 12월 단행되는 인사나 지난해 12월 청문회에서 약속했던 미래전략실 해체작업 역시 총수의 부재로 어려운 상태가 됐다”며 “삼성전자 내부 직원들 사이에선 동요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보도했다. 

산케이 “한국, 국제적 브랜드 이미지 하락 불가피”

일본 언론들은 이 부회장의 구속 뉴스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관련 보도를 이어갔다.

 

산케이신문 홈페이지 캡쳐

산케이신문 홈페이지 캡쳐

 

 

일본의 산케이신문은 이 부회장의 구속이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에 주목했다. 이 신문은 “한국 최대 재벌 총수의 체포는 정체된 한국 경제에 타격이 될 수도 있어 재계의 우려가 크다”며 “올림픽 공식 스폰서이기도 한 삼성 그룹의 총수 체포로 삼성 뿐만 아니라 한국의 국제적인 브랜드 이미지 하락이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한국 최대 기업의 ‘흔들림’이 한국 경제에 불러올 여파에 대한 분석이다.

 

니혼케이자이 신문은 이 부회장 구속에 있어 한국 국민 여론의 역할에 주목했다. 이 신문은 “1월 이 부회장의 1차 구속영장 발부가 기각된 이후 주말 촛불 집회에선 ‘이재용을 구속하라’가 울려 퍼졌다”며 “또 이달 초 주주총회 당시 삼성 서초 사옥 앞에서 이재용 구속을 촉구하는 집회․시위가 열리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결국 법원이 이 같은 민심을 무시할 수 없었다는 분석이다. 

 

이 신문은 또 한국 재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는 점을 강조하며, “명확한 증거가 제시되지 않은 가운데 국제적 기업 경영자의 수사는 신중해야 한다”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주장과 “특검이 박근혜 대통령을 조사해야 한다는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라는 한 매체의 주장을 인용하기도 했다. 



이재용 영장 논란과 현직 판사의 제안

민주화 이후 30년이 지났지만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여전하다.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 논란을 계기로 한 현직 판사가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신뢰 회복을 위해 사법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차성안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 판사) webmaster@sisain.co.kr 2017년 02월 16일 목요일 제492호


ⓒ시사IN 신선영
1월18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실질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등 관련 시민단체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지난 1월26일 재판을 마치고 보니 카카오톡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 내가 페이스북과 법원 내부 게시판에 올린 글을 인용해 언론이 보도를 했다. 일부 기사는 ‘이재용 영장 기각 비판’ 등의 낚시질에 가까운 선정적 제목을 달았다. 지인들이 걱정스레 알려주었다. 내가 올린 글에는 이재용 영장 기각의 찬반을 논한 내용이 전혀 없다. 기자 이름을 확인해 부랴부랴 연락을 취했다. 자신이 쓴 기사 제목과 달리 인터넷판 제목이 잘못 나갔다면서 바로 수정을 하겠다고 했다.

대한민국 국민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가진다. 이재용 영장 기각에 관한 의견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 영역이다. 다만 개별 판사에 대한 신변 위협과 유언비어 유포는 그 한계를 벗어난다. “헌법상 표현의 자유 영역 YES. 신변 위협과 유언비어 유포는 NO.” 내가 원래 글에 쓴 표현이다. 다만 나는 글에 “구체적 사건에 관한 의견 제시는 적절치 않아 자제”한다고 명시했는데, 왜 그랬을까. 선정적 인터넷판 기사 제목을 새로 단 누군가가 클릭 수를 올리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탓도 크다. 글을 너무 어렵게 썼다. 평소 법관으로서 사법제도 개선에 관해 시민과 소통을 지나치게 소홀히 한 탓도 크다. 이 글을 통해 만회해보고 싶다.

이재용 영장 기각을 둘러싼 논란은 뿌리 깊은 사법부 불신의 반영이다. 사법부의 불신은 숙명인가? ‘재판엔 항상 지는 쪽이 있다. 진 쪽은 법원을 원망하니 사법부 불신은 피할 수 없다.’ 이런 패배론적 사고에 동의하지 않는다. 국민 절반 이상이 사법부를 신뢰하는 여러 사법 선진국은 뭐란 말인가. 절반은커녕 절반의 절반의 신뢰도 얻을까 말까 한 한국 사법부는 뭐가 문제일까? 뿌리는 암울한 역사로 인해 권력과 금력에 맞서 소수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던 선배 법관들의 업보다. 이런 업보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이후 30년이 지났지만 자성은 부족했고, 재판제도를 선진화하고 국민과 소통하려는 노력도 약했다. 법원의 사법 시스템을 하나하나 바꿔가면서 ‘우리 사법부가 이렇게 바뀌었으니 신뢰해달라’고 해도 신뢰를 얻기 힘든데, 너무 뻣뻣했다. 불신의 눈초리에 대해 ‘억울하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항변하는 데만 익숙했다. 항변에는 능하고, 자성과 개선에는 인색했다.


ⓒ연합뉴스
1월2일 양승태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법원장의 사무 분담 독점구조 깨뜨려야



이재용 영장 기각 논란을 계기로 사법부 신뢰 회복을 위해 바꾸어야 할 시스템은 무엇일까. 첫째, 영장·뇌물·선거 전담재판부 재판장 등을 정하는 사무 분담을 법원장이 독점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예를 들어 정치인·재벌의 뇌물 사건은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재판부나 부패전담(뇌물, 정치자금)재판부 등 몇 개 형사재판부로 몰린다. 이 재판장을 누가 맡을지 서울중앙지방법원장 혼자서 정한다. 법원장이 성향 등을 가려 그에 맞는 사람을 영장전담이나 형사합의 등 요직에 꽂는다는 의혹이 생기는 이유다. 대법원장이 법원 전체에 적용되는 전문재판부 관련 규정 등을 정하는, 사실상 권한과 모든 법원장을 임명할 권한을 가지다 보니 의혹은 대법원장에까지 확대되기도 한다.

법원 내에서 이런 의혹은 적은 편이다. 기수별로 능력과 인품을 인정받은 판사, 속된 표현으로는 기수별 ‘에이스’로 잘나가는 이들 대부분이 서울중앙지법의 영장전담재판부나 형사합의재판부를 채우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원 밖에서의 의혹은 적지 않아 보인다. 사무 분담 등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먼저 법원의 사무 분담과 배당 기준 등을 법원장 혼자가 아니라, 선거로 뽑은 8~14명 정도의 판사로 구성된 판사회의 운영위원회에서 정하도록 하자. 한국이 주로 참조한 대륙법계 관료법관 시스템을 가진 독일 법원의 사무분담위원회를 모델로 했다. 독일은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매우 높은 나라 중 하나다.

판사에 대한 근무 평정·사무 분담 등 인사권을 가진 법원장들을 모두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구조도 바꿔보자. 그런 시스템이 일선 판사가 민감한 사건 판결을 할 때 대법원장·법원장의 눈치를 볼 수도 있다는 의혹을 낳는 면이 있다. 객관적 기준에 따라 일정 기수 이상 판사가 번갈아가며 법원장을 담당하는 순번제나 법관이 선거로 법원장을 뽑는 선거제도도 고민해보자. 주민선거제 등도 논의될 수 있는데, 미국 일부 주의 판사 선거처럼, 지역 유지가 법원장 선거 결과를 왜곡할 우려가 크다. 이 부분은 지역에서 특히 기승을 부리는 금권선거의 획기적 개선과 함께 장기 과제로 고려하자. 우선은 일선 법관 전체가 참여하는 선거로 작동 중인 독일식 법원 내 민주주의 장치를 참고하자.

ⓒ연합뉴스
1월2일 양승태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둘째, 지방법원 부장판사가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는 제도가 문제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부, 형사합의재판부, 기타 중요 재판부를 맡은 이력이 있는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대부분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한다. 차관 대우를 받는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려고 민감한 사건에서 눈치를 볼 수도 있다는 의혹이 나온다. 대법원이 제시한 해결책이 있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 시절 제시된 지방법원·고등법원 이원화다.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을 이원화해, 지방법원·고등법원 판사로 경로를 나누고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고등법원 판사가 순차로 맡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당시 일선 판사 77.7%의 지지를 받았다. 이 외에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에 탈락한 지방법원 부장판사가 전관 변호사로 개업해 전관예우 논란을 부르는 것도 차단해 사법부 신뢰를 회복하자는 계획이었다.

2011년부터 5~6년 동안 잘 시행해왔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내년부터는 지방법원 부장판사의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는 폐지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1~2년 전부터 대법원·법원 행정처가 이원화 제도의 사실상 폐기 수순을 의견 수렴도 없이 진행한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일선 법관의 비판에도 이런 기조는 강화됐다. 지난 2월 정기 인사는 절정에 달한 듯했다. 고등법원 판사에게 보장했던 같은 법원 근무 등을 철회해 지방법원으로 내려보낸다고 한다. 지난 2월 법원장에서 복귀하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등을 원로법관으로 지명해 1심 지방법원으로 빼내는 원로법관제도를 마련했다. 이는 경륜 있는 법관을 통한 1심 강화라는 홍보성 기사로만 알려졌다. 그러나 원로법관제도 도입으로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자리가 5개가량 확보되었다. 지방법원 부장의 고등법원 부장 승진제도의 폐지는 이제 다음 대법원장의 의중에 달렸다는 평가도 있다. 이원화처럼 사법부 신뢰에 핵심이 되는 제도는, 교체되는 대법원장 의중에 따라 오락가락하지 않도록 법원조직법 등 법률에 명문화해야 한다.

셋째, 법원 홍보용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국민참여재판도 큰 문제다. 최순실 사건 등 중요 사건을 다루는 일정 범위의 형사재판에 국민참여재판을 의무화하자.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 평결 결과에 강제력을 부과해 판사도 따르게 하자. 지금은 피고인이 신청해야만 국민참여재판을 하는데 신청이 미미해 사건 수가 매우 적다. 유죄 평결 때 중형이 예상되는 뇌물 등 중요 사건일수록, 피고인이 ‘바보’가 아닌 한 신청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또 판사가 배심원 평결에 반드시 따를 필요도 없다. 국민참여재판을 형사단독재판까지 전면 확대하는 것이 무리라면, 형사단독재판에는 법관 1명과 시민 참심원 2명이 동등한 1표를 갖는 독일식 참심제도 검토해보자. 최순실 사건 등 중요 사건을 국민참여재판 등으로 처리하면, 판사가 정치·재벌 권력 눈치를 본다는 의혹에서 자유로워진다.

마지막으로 ‘전화 변론’ 문제다. 정치권·재벌과 담당 재판부 사이의 부당한 압력이나 사전 교감·전관예우 등에 대한 의혹의 가장 큰 원인이다. ‘전관 변호사·친인척·지인·동료 판사·직원이든 이런 전화 변론 시도는 드물기도 하거니와, 있더라도 거의 결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국민은 믿지 않는다. “기록 잘 봐달라, 원칙대로 해달라, 억울함이 없게 해달라”는 전화 변론 시도에, 결론에는 영향이 없다는 생각과 자기에 대한 ‘평판’ 악화의 염려 때문에 야박하게 바로 “부적절한 방식이니 끊겠습니다”라고 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던 법원 문화를 반성한다.

부정청탁금지법(이른바 김영란법)으로 전화 변론 시도 자체가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형사소송 규칙 등에도 전화 변론을 규제하는 규정이 추상적이나마 생겼다. 판사가 바로 부적절함을 알리고 전화를 끊어도 평판 악화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 근거가 생겼다.

최근 대법원 공직자윤리위는 제11호 권고의견에서 전화 변론 등 일방 소송 당사자와의 의사소통 내지 재판기일이 아닌 법정 밖의 변론에 관한 구체적 의견을 내놓았다. 미국의 입법례를 주로 참조한 것인데, 소송의 실체적 내용이 아닌 소송 절차에 관한 긴급 사항에 한해 매우 좁게 예외를 인정했다. 예외 사유에 해당하더라도, 일방 당사자와의 의사소통 사실과 내용을 또 다른 상대방에게 알려주는 절차를 거치도록 했다.

법원 내부는 나아지고 있지만 의혹이 지속된다면, 법관윤리 규정과 형사소송 규칙에 금지되는 전화 변론 등의 범위·대응 절차를 명문화하자. 부정청탁금지법의 ‘부정청탁’ 개념도 사법부의 전화 변론에 특화된 법률 조항을 신설해 명문화하자. 법관윤리 규정, 형사소송 규칙, 부정청탁금지법의 규정은 여전히 불명확하다. 윤리위 권고는 권고일 뿐이라 판사에 따라 고려하지 않는다는 의혹조차도 없애보자.

사법부의 지방분권화 필요


이 외에도 사법부 신뢰 회복을 위한 과제는 산적해 있다. 사법 선진국의 2~3배인 과도한 판사 1인당 사건 부담으로 일어나는 5분 재판의 현실을 극복하고, 충분히 경청하고 토론하는 15분·30분 재판을 만들고 싶다(<시사IN> 제421호 ‘5분 재판에 대한 근본적 반성은 없고…’ 기사 참조). 그래서 판사의 사회적 지위 하락에 대한 일부 법관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법관 대폭(2~3배) 증원을 주장했다. 빈곤층·서민이 주로 겪는 소액재판은 더 사건이 폭주한다. 평균 5분도 들어주지 못하는 현실도 개선 가능하다.

월 10만원 혹은 몇십만원인 생계급여나 국민연금 급여 등을 부당하게 박탈당할 경우, 소송 비용 부담 없이 법원 구제를 받을 수 있는 독일의 사회법원도 내 관심사다. 법원 소송 절차상 시각·청각·지체·발달 장애인 등에 대한 사법 지원 절차 개선도 중요하다. 전관예우 문제를 근본적으로 없애기 위한 평생법관제 정착에 대한 고민도 있다. 나는 법관 재임용제도, 대법관 임기제를 없애 모든 법관의 평생법관 정년제를 도입하는 ‘유인책’에도 관심이 많다. 서울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사법부의 지방분권화도 고민해야 한다. 지역별 법관 선발, 근무지 고정 및 사무 분담 장기화를 통한 전문성 확보도 일선 판사들과 함께 모색 중이다.

법관과 시민이 소통해 사법부의 신뢰를 회복하는 방안을 찾아보자.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 공정성의 외관을 유지해야 하는 법관으로서, 이것이 내가 이재용 영장 기각 논란에 대해 던지는 제안이다.



이재용 구속, 첫 번째는 안 되고 두 번째는 된 이유


2차 영장 청구에서 인정된 이 부회장의 혐의 정리

조유빈 기자 ㅣ you@sisapress.com | 승인 2017.02.17(금) 20:27:55



2월17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거액의 뇌물을 준 혐의로 구속됐다. 1차 구속영장청구 당시 법원은 “뇌물죄의 요건인 대가관계, 부정청탁 등에 대한 현재까지의 소명 정도, 각종 지원 경위에 관한 구체적 사실관계와 법률적 평가를 둘러싼 다툼의 여지 등에 비춰볼 때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구속수사를 불허했다. 

그러나 이 부회장에 대한 두 번째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한정석 영장전담판사는 “새롭게 구성된 범죄 혐의 사실과 추가로 수집된 증거자료 등을 종합할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 며 영장을 발부했다. 특검의 보강 수사 과정에서 어떤 혐의들이 확보된 것인지 삼성이 개입한 일련의 사건들과 함께 살펴봤다.

ⓒ 연합뉴스·시사저널 임준선

ⓒ 연합뉴스·시사저널 임준선


■ 최씨 측 지원, 회사 현안 해결 목적으로 한 것  

2014년 9월 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의 1차 독대가 이뤄졌다.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 후에 이뤄진 이 독대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승마 유망주 지원을 요청했다. 박 대통령은 승마 유망주에 대한 적극 지원과 함께 말 구입과 해외 전지훈련을 지원해 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해 11월 이영국 삼성전자 상무가 대한승마협회 부회장으로 선임됐고, 이듬해 3월 삼성은 한화가 맡고 있던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를 맡게 됐다. 

6월24일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담당 사장 겸 대한승마협회 회장은 김종 차관을 만나 정유라씨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대한승마협회는 삼성의 후원으로 최대 505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승마 선수들을 지원할 것을 약속했는데, 이 때 지원 선수 명단에 최순실씨의 딸인 정유라씨가 포함돼 있었다. 

이와 같은 승마 지원에 대해 삼성은 “청와대의 강요에 의한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특검은 2차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이 부회장이 회사 현안 해결을 목적으로 박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최순실씨 측 지원에 나섰다는 식으로 논리를 구성했다.

ⓒ 연합뉴스

ⓒ 연합뉴스


■ 뇌물죄 대가 관계, 합병 외에 경영권 승계 과정도 관련

삼성그룹의 현안은 합병과 경영권 승계였다. 2015년 5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결의가 공시됐다. 당시 이 부회장의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삼성 물산 가치를 떨어뜨렸다는 지적이 나왔다. 2015년 7월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였던 국민연금관리공단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찬성을 발표했고, 7월17일 합병안은 두 회사 임시주주총회에서 통과됐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지난 1월1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도운 대가로 최순실씨 일가에 430억원대 특혜를 제공한 것으로 보고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검은 이 부회장 쪽이 박 대통령 쪽에 청탁한 증거와 관련해 “최씨가 ‘삼성이 합치게 (합병을) 도와줬다’고 말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최씨가 박 대통령을 통해 도움을 줬기 때문이다”라는 김종찬 대한승마협회 전무와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의 진술도 여럿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은 1차 영장청구 때 삼성이 대가를 바라고 최씨 일가를 지원했다는 논리를 입증하지 못했다. 영장 기각 후 3주간의 보강수사를 통해 합병뿐 아니라 경영권 승계 과정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그 과정에서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 간의 3차 독대가 이뤄졌고, 금원이 조직적으로 지원됐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삼성에 특혜가 이뤄진 부분도 확인했다. 합병 후 청와대 경제수석실이 청와대 경제수석실이 공정위를 동원해 삼성의 주식 매각 규모를 줄여주는 등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도운 사실을 파악한 것이다.


■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도 ‘횡령’

2015년 7월25일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두 번째 독대 자리가 이뤄졌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승마협회 뿐 아니라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에 대한 출연을 삼성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10월26일 삼성그룹은 미르재단에 125억원을 출연했고, 2016년 1월 12일에는 K스포츠재단에 79억원을 출연했다. 삼성이 막대한 자금을 출연한 다음날인 2015년 10월27일과 2016년 1월13일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은 설립됐다. 

1차 영장청구 당시 특검은 삼성이 정유라씨에게 제공한 승마 지원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만 횡령으로 봤지만, 2차 영장청구에서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204억원까지 횡령 혐의에 추가로 포함시키는 강수를 뒀다.

ⓒ 시사저널 박정훈

ⓒ 시사저널 박정훈


■ 최씨 일가 지원, 우회적으로도 이뤄진 정황 포착 

삼성전자는 2015년 8월 코레스포츠와 약 213억 규모의 컨설팅 계약을 체결했다. 또 삼성전자는 2015년 9월~10월 사이 최순실 모녀가 설립한 독일 현지 법인 코레스포츠에 280만유로(약35억원)을 송금하는 등 총 80억원 가량을 지원했다. 2015년 10월~2016년 3월 사이에는 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가 운영하는 한국동계스포츠 영재센터에 16억원을 지원했다. 

장시호씨는 특검에서 박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의 세 번째 독대가 이뤄지기 바로 전날인 2015년 2월14일 삼성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0억원을 추가 지원하는 내용을 작성해 청와대에 넘겼다고 진술했다. 2015년 9월부터 2016년 중순까지 이 부회장 쪽에서 정유라 측에게 송금된 금액은 76억원 정도였다. 

특검은 보강수사를 통해 삼성이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면서 최씨 측 지원이 어렵게 되자 우회지원을 하려 한 정황도 포착했다. 삼성이 30억원대 스웨덴산 명마 블라디미르 등 말 두 필의 소유권을 허위계약을 통해 최씨 측에 넘겼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범죄수익은닉 혐의가 적용됐다. 또한 삼성이 최씨 소유 독일 법인 코레스포츠(비덱스포츠 전신)에 수십억원을 송금하며 금융당국에 신고를 하지 않은 재산국외도피혐의를 적용한 점도 법원 판단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