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생각한다

'삼성맨' 꿈꾸는 이들의 필독서…모르면 큰코다친다

일취월장7 2014. 11. 29. 12:33

'삼성맨' 꿈꾸는 이들의 필독서…모르면 큰코다친다

[프레시안 books] 조돈문·이병천·송원근·이창곤 엮음 <위기의 삼성과 한국 사회의 선택>

성현석 기자 2014.11.28 17:34:33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가 과거 칼럼에서 "이미 <중앙일보>는 이 나라의 주요한 제도가 됐다"라고 적은 적이 있다. 노무현 정부가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을 주미 대사로 내정한 직후 발표한 칼럼에서다. 2005년 당시 문 전 후보자는 <중앙일보> 주필이었다.

<중앙일보>가 과연 "이 나라의 주요한 제도"인지, 만약 그렇다면 꼭 좋은 일인지 등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 다만 문 전 주필의 논리대로라면, 삼성 역시 "이 나라의 주요한 제도"가 됐다고 할 수 있을 게다.

공무원 노조 반발하니, '무노조 삼성' 인사 전문가를 인사혁신처장에 임명?

삼성 경영진 출신이 국정 책임자로 발탁되는 일이 잦다. 반대로, 고위 관료가 삼성 경영진이 된 사례 역시 흔하다. 4.19혁명 당시 발포 책임자로 지목됐던 홍진기 전 내무부 장관은 이병철 전 삼성 창업주와 사돈을 맺으면서 삼성과 인연을 맺었다. 홍 전 장관은 당시 삼성 계열사였던 <중앙일보>와 <동양방송>의 경영을 맡았다. 'TK 마피아의 대부'로 불렸던 신현확 전 총리는 전두환 정부 시절 삼성물산 회장으로 영입됐다. '관존민비' 정서가 강하던 시절, '일인지하, 만인지상'으로 불리던 전직 총리가 이병철 회장에게 깍듯이 고개 숙이는 모습은 당시 관료들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고 한다.

민주화 이후에도, 고위 관료와 삼성 경영진이 서로 자리를 바꾸는 모습은 여전했다.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냈던 남궁석 전 삼성SDS 사장과 진대제 전 삼성전자 사장, 삼성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던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삼성 출신 인사 전문가인 이근면 씨가 신설된 인사혁신처의 수장으로 발탁됐다. 삼성의 빈틈없는 인사 관리 방식이 공직 기강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삼성의 인사 관리는 '무노조 경영', '총수에 대한 비판 불허' 등으로도 악명이 높다.

하필 공무원 노조가 연금 개혁에 반발하며 들고일어난 시점에, 또 세월호 참사 이후 쏟아지는 대통령에 대한 비판에 청와대와 검찰이 날카롭게 대응하는 시점에, 삼성 출신 인사 전문가를 인사혁신처장으로 불러들인 의도가 궁금해진다.

2008년과 2014년 사이, 삼성에 대한 비판적 연구는 어떻게 진화했나

ⓒ후마니타스

ⓒ후마니타스

삼성에 대한 관심이 그저 총수 일가에 대한 호기심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고 보는 건 그래서다. "이 나라의 주요한 제도"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삼성이 정부와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점, 그리고 그 힘이 꾸준히 증가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한국 사회에 대한 진지한 관심은 결국 삼성과 부딪히게 된다.

하지만 이 같은 사회적 요구에 비해, 삼성에 대한 사회과학자들의 연구는 질과 양에서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일본만 해도, 대표적인 제조업체인 토요타만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경제학자, 사회학자가 꽤 있다. 토요타 전문가, 소니 전문가를 찾기가 어렵지 않다. 그러나 한국에서 삼성 전문가, 현대차 전문가는 흔치 않다. 학문적 엄밀성과 비판적 거리를 동시에 유지하는 전문가는 더욱 드물다.

최근 출간된 <위기의 삼성과 한국 사회의 선택>(후마니타스, 2014년 11월 펴냄)이 반가운 이유다. 삼성노동인권지킴이, 참여사회연구소, 함께하는시민행동,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등이 기획하고 조돈문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이병천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 송원근 경남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교수,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소장 등이 엮은 책이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2월까지 진행된 "다시, 삼성을 묻는다: 삼성과 한국 사회의 선택" 토론회에 참가했던 이들이 쓴 글을 다듬어 냈다.

이 책은 2008년 출간된 <한국 사회, 삼성을 묻는다>의 후속작 성격이 짙다. 역시 반가운 일이다. 삼성 문제가 현재 진행형이므로, 연구자와 활동가들의 작업 역시 일회성에 그쳐서는 안 된다. <한국 사회, 삼성을 묻는다>와 비교하며 읽는다면, 2008년과 2014년 사이, 삼성 문제에 대한 비판적 연구자들의 시각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흥미로운 독서 경험이었다. 그 기간 동안, 삼성과 관련한 다양한 취재 경험을 했다. 경험을 반추하며 책을 읽는 일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시는 것과 비슷하다. 자리를 뜨기 어렵다.

생태 담론과 재벌 담론의 만남,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

<위기의 삼성과 한국 사회의 선택>에서 새로 추가된 문제의식을 발견한 게 특히 흥미로웠다. "전력 다소비 산업의 대표 삼성은 친환경 기업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보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의 글이 그렇다. 삼성을 포함한 재벌에 대한 비판적 담론은 주로 정경유착, 노동 탄압 등의 키워드가 중심이 됐었다. 그런데 이 글에선 전력 소비를 다루는 생태 담론과 재벌 담론이 서로 만났다. 담론 지형의 중요한 변화다. 아울러 생태 운동과 재벌 개혁 운동이 연대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든 작업이기도 하다.

"삼성의 성과주의 임금, 문제는 없는가?"라고 따져 묻는 류성민 경기대 경영학과 교수의 글도 인상적이었다. 온갖 추문에도 불구하고, 삼성은 늘 구직자 선호 기업 1위다. 성과와 연동한 높은 임금 때문이다. 류 교수의 글은 누구나 궁금해 하는 문제를 정면으로 파고든다. 다만 이미 공개된 자료를 근거로 삼은 탓에, 독자의 궁금증을 온전히 풀어주긴 어려웠다.

그러나 의미는 깊다. 전직 삼성 관계자들에 따르면, 삼성의 임금 체계는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꾸준히 '상후하박(上厚下薄, 윗사람이 많이 받고 아랫사람이 적게 받는다는 뜻)' 구조로 변화했다. 한 명의 천재가 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이건희 회장의 '천재 경영'과 같은 맥락이다. 기업의 성장에는 최고경영자와 엘리트 전문가의 역할이 결정적이라는 것, 따라서 고위 임원과 'S급 인재'에겐 파격적인 보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경영진의 천문학적 연봉을 정당화하는 논리인 동시에, 숱한 젊은이들이 '삼성맨'을 꿈꾸게 한 근거이기도 하다.

그 결과, 삼성은 임원과 직원의 임금 격차가 유난히 큰 기업이 됐다. 지난 2012년 기준으로 삼성전자 임원 평균 연봉은 53억 원이었다. 이는 같은 회사 직원 평균 연봉인 7000만 원에 비해 74배 많은 수치다. 30대 대기업 임원과 직원의 연봉 격차가 약 13배(2011년 기준)라는 것과 비교하면, 두드러지게 높은 수치다.


삼성 식 성과주의, 과연 효과적일까?

삼성전자의 놀라운 실적 앞에서, 이 같은 성과주의 임금 체계도 정당성을 얻었다. 실제로 상당수 중견 기업들은 임금 체계 개편 논의를 하며 '삼성 방식'을 종종 참고한다. '삼성 출신 인사 전문가'가 곳곳에서 환영받는 한 이유다.

그런데 과연 삼성 식 성과주의 임금 체계는 효과적인가. 설령 지금까진 효과가 있었다고 해도, 앞으로도 효과적일까. 류 교수는 부정적인 가능성을 제시했다. 조직 내부의 임금 격차가 지나치면, 협력 저해, 구성원의 조기 이탈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동안 재벌에 대한 비판적 분석은 주로 경제학, 사회학, 법학 연구자들이 주로 진행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경영학 연구를 통해 재벌 기업 내부를 비판적으로 들여다보는 작업이 진행됐다. 향후 작업에 기대가 간다.

이병천, 정준호, 최은경 교수가 함께 진행한 "삼성전자의 축적 방식 분석" 연구는, 기자 입장에서 몹시 반가운 자료였다. 한국의 1등 기업 삼성전자가 어떻게 이익을 내서 어떻게 분배하는지가 말끔하게 정리돼 있다. 삼성을 둘러싼 다양한 논쟁에서 중요한 근거 자료가 될 듯하다.

768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책을 짧은 글에서 소개하긴 버거웠다. 23명의 필자 역시 문제의식의 결이 조금씩 달랐다. 이는 삼성 문제가 한국에서 얼마나 복잡한 맥락을 지닌 것인지를 보여준다. 조금 상투적이지만, 좀 더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마친다. 20대 청년 다수가 일하고 싶어 하는 기업, 동시에 무시할 수 없는 숫자의 시민이 날선 비판을 쏟아내는 기업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적다면,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