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생각한다

10조 대박이 ‘껌값’인 까닭

일취월장7 2014. 12. 26. 16:09

 

10조 대박이 ‘껌값’인 까닭

최근 삼성그룹의 지주회사라 할 수 있는 제일모직이 상장되었다. 상장을 통해 그룹의 순환출자 구조를 일부 해소했다. 하지만 이는 지배구조 개편에서 ‘쉬운’ 문제에 불과하다. 계열사가 가진 삼성전자 지분이 핵심이다.

이종태 기자  |  peeker@sisain.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380호] 승인 2014.12.26  08:18:36

삼성그룹의 지주회사라고 할 수 있는 제일모직(구 에버랜드)이 12월18일 상장됐다. 그동안 제일모직은 비상장회사로 주식 역시 광의의 삼성 관계자들만 보유하거나 그들 사이에서 소규모로 거래되었다. 그랬던 제일모직 주식이 상장에 따라 시장에서 공개적으로 거래되고 가격 역시 큰 폭으로 오르내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상장 첫날인 12월18일 제일모직 주가는 주당 11만3000원(종가)이었다. 제일모직 최대 주주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23.24%)이고, 다른 자녀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 역시 각각 7.75%씩 가진 대주주다. 이건희 회장은 3.45%를 보유하고 있다. 12월18일 종가로 계산하면, 이건희 일가의 제일모직 지분(42.19%)의 가치는 모두 6조4000억원에 달한다. 이재용 3남매는 지난달 상장한 삼성SDS에도 4조1000억원(19.05%) 정도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승계자인 3남매가 올 하반기 들어 10조5000억원 상당을 쥐게 되었다는 의미다. 언론에서는 이 돈을 일가의 삼성그룹 지배력 강화 및 승계 밑천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래서 심지어 ‘지배구조 개편이 마무리되었다’ ‘개편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따위 성급한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12월17일 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앞에서 네 번째)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12월17일 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앞에서 네 번째)이 참석했다.

과연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건희 일가가 제일모직과 삼성SDS 상장으로 마련한 10조5000억원은 일가의 위기를 타개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적은 돈이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축은, 이건희 일가→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소유의 사슬’이다. ‘소유의 원천’은 제일모직이었다. 상장 이전에는, 일가의 지분율만 무려 42.19%에다 삼성카드(5.0%), 삼성SDI(8.0%), 삼성물산(1.48%) 등 계열사들이 대주주였다. 제일모직은 일가의 철옹성이었던 것이다. 이런 제일모직이 19.44%의 지분율로 삼성생명을 지배하고,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의 7.5%를 가진 최대 주주였다. 삼성전자의 또 다른 대주주는 4.1%를 보유한 삼성물산이다. 이건희 일가가 제일모직에 대한 지배력을 기반으로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를 ‘간접 지배’한 것이다.

가장 허약한 ‘삼성생명→삼성전자’ 소유 사슬

이래도 미덥지 못해서 이건희 일가는 삼성전자에 4.69%(이건희 회장 3.38%), 삼성생명에 20.82%(이건희 회장 20.76%)의 지분을 직접 보유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삼성전자의 지배를 받는 삼성카드, 삼성SDI가 다시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제일모직의 지분을 보유하는 순환출자 구조도 형성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일가는 이중, 삼중의 방어막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외형상 대단히 강고한 이 철옹성에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하나의 사슬만 끊어지면 전체 구조가 흔들린다. 가장 허약한 부위는 ‘삼성생명→삼성전자’의 소유 사슬이다. 이미 시행 중이거나 예정된 금산분리 관련 법안(공정거래법·보험업법 등)에 따르면, 금융(지주)회사는 ‘일반 회사’의 지분을 많이 보유해서는 안 된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의 지분을 7.5%나 갖도록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더욱이 2014년 12월 현재 삼성생명의 1대 주주는 이건희 회장(20.76%)이고, 2대 주주는 제일모직(19.44%)이다. 만에 하나 ‘회장 유고’가 발생하면, 제일모직은 삼성생명의 1대 주주로 등극한다. 보험 등 금융회사의 1대 주주가 기업인 경우 그 업체는 자동적으로 법률상 ‘금융지주회사’로 간주된다. 그리고 금융지주회사는 삼성전자 같은 ‘일반 회사’를 자회사로 둘 수 없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강제로 매각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되면, 삼성전자에 대한 일가의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는 근거는 일가가 ‘직접’ 보유한 4.69%밖에 없다. 국내외 기관투자자들이 연합하면 일가의 삼성전자 지배권을 탈취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에 더해 삼성그룹은 순환출자도 해소해야 했다.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축인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는 삼성SDI와 삼성카드를 각각 통해서 다시 제일모직으로 이어진다. 삼성전자가 지배하는 삼성SDI는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7.18%)고,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주식의 4.1%를 보유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새로운 순환출자’만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대선 때 야권은 기존 순환출자까지 청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던가?

삼성그룹(이건희 일가) 처지에서는 골치 아픈 일 중 ‘쉬운 문제’부터 해결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룹의 순환출자 구조를 일부 해소했다. 제일모직 상장의 이유 중 하나다.

   
 

이번 제일모직 상장에서 개미 투자자들이 사고판 주식 중 상당수는, 그동안 삼성카드와 삼성SDI가 보유하기만 하다가 내놓은 제일모직 지분이다. 삼성카드는 전량(5%)을, 삼성SDI는 보유 지분(8%) 중 절반(4%)을 내놓았다. 삼성SDI는 나머지 4%도 조만간 매각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그룹 지배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소유 사슬’ 중 일부였던 ‘삼성전자→삼성SDI→제일모직’과 ‘삼성전자→삼성카드→제일모직’의 순환출자가 해소되는 셈이다. 지난 11월 이후 급박하게 진행된 삼성SDS 상장, 방위산업 및 석유화학 계열사 한화그룹에 매각 등도 순환출자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30개에 달했던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고리는 제일모직 상장으로 현재 10개까지 줄어들었다.

그러나 순환출자 해소는 ‘쉬운 문제’에 불과하다. 정말 어렵고 중요한 삼성전자 지분 문제에는 아직 손도 대지 못했다. 예컨대 삼성물산이 삼성전자에 가진 지분 4.1%는 그룹 순환출자의 주요 고리 중 하나지만, 감히 처분할 수 없다. 이건희 일가가 삼성물산으로부터 4.1% 전부를 사들이려면 모두 10조원 정도가 필요하다. 나아가서 일가가 삼성전자 지배권을 유지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계열사(삼성생명·삼성물산·삼성화재) 보유 지분(모두 12.85%)을 직접 사들이는 것인데 무려 24조원 정도가 있어야 한다.

이번에 이재용 3남매가 확보했다는 10조5000억원은 그들 주식(제일모직과 삼성SDS)의 12월18일 현재 가치일 뿐이다. 더욱이 ‘지배력의 원천’인 제일모직의 지분을 전량 팔 수도 없다. 삼성의 미래 주력산업으로 내정해놓은 사물인터넷(IoT)과 첨단 의료 서비스업의 핵심 기업인 삼성SDS에 대한 지배를 포기할 수도 없다. 더욱이 ‘회장 유고’ 시 7조원 정도의 상속세도 납부해야 한다.

결국 문제는 ‘일가와 그룹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분을 어떻게 유지하느냐’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삼성전자·삼성물산·제일모직 등에 대한 ‘인적 분할’과 합병 등 복잡하고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시나리오가 떠돌고 있으나 이 또한 금산분리 관련 법안이 시행되는 한 가동되기 힘들다. 외형상 삼성 3남매는 ‘떼돈’을 벌었다. 그러나 이는 쉬운 문제를 푼 결과일 뿐이다. 일가의 진정한 위기는 지금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