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생각한다

삼성, 생명 논할 자격 있나?

일취월장7 2015. 1. 10. 12:27

삼성, 생명 논할 자격 있나?

[프레시안 books] 백재중 <삼성과 의료 민영화>

최규진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기획국장 2015.01.09 18:19:41

 
한국, 삼성의 "국제시장"

삼성그룹은 2013년 결산 기준으로 계열사가 74개이고 전체 자산 규모가 331조4000억 원이다. 이는 2013년 우리나라 한 해 예산(342조5000억 원)에 버금가는 액수다. 삼성의 영향력은 단지 경제 부문에 그치지 않는다. 여전히 사람들은 삼성을 우리나라의 경제계를 대표하는 국가 대표로 생각하고, 삼성의 실적에 울고 웃는다. 외국에 나갔을 때 삼성 간판을 보고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며, 아는 사람이 삼성에 취직하면 축하해 마지않는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들을 보면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은 삼성 이건희 회장이고, 가장 취직하고 싶은 회사도 삼성이다.

그러나 삼성이 이처럼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굴지의 기업이 된 것은 단지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 덕만은 아니다. 역대 정권들의 비호도 크게 작용했고, 무엇보다 국가 경제와 기업을 위해 미련스러울 정도로 일하고 저축했던 민중들의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힘든 세상 풍파를 우리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 게 참 다행"이라 생각하며 삼성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어준 민중들에게 삼성은 과연 합당한 화답을 하고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삼성 X파일과 김용철 변호사의 입을 통해 폭로된 수많은 정치 공작, 무노조 경영과 삼성 백혈병 불인정에서 보여주는 저급한 기업 경영, 태안 기름 유출 사고와 그 후속 조치에서 드러난 환경 파괴와 무책임한 대민 정책, 그리고 삼성 주식 한 주 갖기 힘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허무하게 만드는 편법·불법 상속. 최근의 몇 가지 사례만 꼽은 것임에도 이처럼 삼성의 높은 위상 아래 드리운 그늘은 짙고 깊다. 세계 경제 14위 대국임을 자부하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감히 이런 전근대적인 작태를 고수하고 있는 것은 박근혜 정권의 구태 정치만큼이나 한국 사회를 군사정권 시절로 회항시키고 있는 것이라 비판받아 마땅하다. 

삼성의 '또 하나의 그늘', 의료 민영화 

ⓒ건강미디어협동조합

ⓒ건강미디어협동조합

 
 
그러나 삼성을 비판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건희 회장의 인생 역정과 경영 철학을 다룬 책은 서점에 널렸고 베스트셀러 란에 빠짐없이 진열되어 있지만, 삼성의 깊은 그늘을 조명한 책은 거의 없다. 어렵게 책을 낸다 하더라도 판매망을 확보하기 어렵고 주류 매체를 통해 광고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언론의 주목을 받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과 의료 민영화>(건강미디어협동조합, 2014년 10월 펴냄)라는 책을 출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선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삼성이 잘되는 것이 한국 국민에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적어도 의료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얼마나 위험한 착각일 수 있는지 아주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논리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가 뭐래도 삼성은 기업이다. (…) 삼성과 국가를 동일시하는 국가주의적 입장에서 삼성을 바라보는 국민이 많은 게 현실이지만 삼성은 정부 기관도 아니고 구호 단체도 아니고 비영리 단체도 아니다. (…) 삼성은 영리를 추구하는 것 자체를 자기 속성으로 가지고 있는 조직이다. 삼성의 헬스케어 사업 진출도 자본의 자기실현 즉 이윤을 남기기 위한 활동의 일환이다. 인류 건강에 기여한다거나 고령화 사회에 대비한다는 슬로건은 단지 홍보용일 뿐이다. 삼성도 이런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헬스케어 사업을 삼성의 차세대 먹거리라고 공공연히 얘기한다. 그것도 아주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뒤집어 얘기하면 헬스케어는 삼성의 먹잇감이라는 얘기이다. 국민의 헬스, 국민의 건강이 삼성의 먹잇감이고 삼성의 볼모인 셈이다." 

저자 백재중은 의료 민영화 담론을 쉽고 명쾌하게 풀어내는 데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의료 민영화 전개 상황을 조목조목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 정리된, 삼성이 의료 관련 분야에 뻗친 영역을 보면 가히 놀랍다. 현재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생명보험과 손해보험 분야에서 부동의 업계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실손형 보험의 확장을 주도하며 국민건강보험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다. 또한 삼성서울병원은 전국의 환자들을 빨아들이며 한국 의료 생태계를 뒤흔들고 있을 뿐 아니라 삼성그룹 헬스케어 사업 수행의 전위로서 첨단 의학 기술의 개발과 상업화, 삼성에서 개발‧생산한 의약품, 의료 장비‧기기에 대한 임상 시험 센터로서 역할을 하며, 의료 관광이나 글로벌 의료 사업까지 진행하고 있다. 

삼성의 의료 분야 장악은 보험, 병원처럼 의료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계열사를 통해서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삼성전자, 에버랜드 등 주요 계열사를 중심으로 바이오 의약품 사업, 의료 기기 생산 사업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고, 최근 원격의료를 추동하며 스마트폰이나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이용한 모바일 헬스, 디지털 헬스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주식 상장으로 삼성 일가에 수조 원의 이익을 가져다준 삼성SDS는 의료 정보화 사업, 병원 관리 솔루션, 클라우드 컴퓨팅, 건강관리 서비스 사업을 지향하는 365홈케어 운영 등 다양한 영역에서 헬스케어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삼성 에스원은 응급 의료, 재택 긴급 출동 등의 분야에 진출했고 독자적으로 민영 응급 구조단인 3119 구조단까지 운영하고 있다. 이외에도 개인 유전자 정보 분석 서비스 사업, 줄기세포, 재생의학, 안티 에이징 사업 등 의료라는 이름으로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에 손을 뻗치고 있다.


삼성의 '또 하나의 가족', 정부 

이 책의 또 하나의 장점은 삼성이 의료를 자신들의 '먹거리'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는지를 분석함과 동시에, 역대 정권들이 이에 얼마나 착실하게 협조해왔는지도 실증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민간 기업의 연구소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역대 정부의 정책 생산에 관여해 왔다. 이미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의 '의료보험 재정 안정 종합 대책' 등의 정부 정책을 입안한 바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2005년 '매력 있는 한국, G20 in Y10 프로젝트'를 통해 의료 서비스를 선진국 진입을 위한 3대 정책으로 언급하며, 구체적으로 영리법인의 의료 기관 설립, 병원 광고, 포괄수가제, 외국인 의사 고용, 민간 의료보험 활성화 등 의료 민영화의 밑그림을 제시했다. 

특히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삼성의 의료 민영화를 위한 작업이 본격화되는데, 이때 삼성생명이 제시한 국민건강보험을 민영 보험으로 대체하기 위한 전략 보고서는 표현까지 유사하게 정부 정책 보고서에 반영되었다. 그리고 이 전략 보고서에 나온 의료 민영화 밑그림이 사실상 한국 정부의 의료 정책에 방향타 구실을 했다. 실제 2005년 생명보험사도 실손형 의료보험을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한 이래 삼성생명을 선두로 그 시장이 급성장하여 현재 전체 국민의 60퍼센트인 3000만여 명이 실손보험에 가입한 상황인 것만 보더라도 거의 삼성의 전략대로 진행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삼성의 개입은 지속됐다. 이명박 정부는 대형 재벌 병원과 민영 보험이 궁극적으로 노리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까지 언급했다. 물론 2008년 촛불 운동으로 철퇴를 맞아 의료 민영화 정책 추진이 주춤하긴 했지만, 삼성의 국가 의료 정책 개입은 계속됐다. 2010년 삼성경제연구소는 보건복지가족부로부터 용역을 의뢰받아 '미래 복지사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산업 선진화 방안' 보고서를 제안했는데, 이를 통해 'HT'라는 개념을 새롭게 제시하며 건강관리 서비스의 시장화와 원격의료 도입을 역설했다. 실제 2010년 입안된 건강관리서비스법과 의료법 개정안은 이 보고서의 골자인 건강관리 서비스 시장화와 원격의료 전면 허용을 담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투자 활성화 대책이라는 이름으로 의료법인의 영리 자회사 설립 허용을 중심으로 한 '박근혜 버전의 의료 민영화'가 추진되고 있다. 이 영리 자회사라는 우회 전략을 지렛대 삼아 역대 정부에서 구성한 각종 의료 민영화 사안들이 구체화되고 있다. 의료 민영화 사안이 디테일해진 만큼 삼성과 박근혜 정권의 협력 또한 디테일해지고 있다. 이는 갤럭시S5 의료 기기 관리 대상 제외 과정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삼성은 원격의료를 염두에 둔 듯 갤럭시S5에 심박 측정 기능을 탑재해 출시했는데, 이럴 경우 규정상 의료 기기로 분류되어 일반 대리점 판매에 제동이 걸릴 수 있었다. 그러나 삼성전자 측에서 직접 식품의약품안전처를 방문해 갤럭시S5를 의료 기기에서 제외시키는 고시 개정안을 직접 전달했고, 식약처는 이를 받아 갤럭시S5 출시 예정 3일 전인 2014년 4월 8일 '의료 기기 품목 및 품목별 등급에 관한 규정'을 공포했다. 다른 업체들의 유사한 요구에는 아랑곳 않던 식약처가 마치 '빵셔틀'처럼 삼성의 말 한마디에 날짜까지 맞춰 규정을 개정해준 것이다.

▲ <뉴스타파> 화면 갈무리.

▲ <뉴스타파> 화면 갈무리.  

 
 


삼성, 생명 논할 자격 있나? 

저자는 책 말미에서도 의료 민영화의 목적은 기업의 이윤 추구에 있는 것이지 건강과 안전에 대한 고려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기에 결코 삼성의 이해와 국민의 이해가 동일시될 수 없음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삼성이 헬스케어 사업에서 이윤을 얻기 위해서는 누군가 그 이윤에 기여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삼성의 호주머니를 채워주어야 할 사람은 "일차적으로 환자이거나 보호자일 것이고 지금은 건강하지만 미래에 아플 수 있는 잠재적 환자, 즉 일반 국민 모두"일 거란 얘기다. 이 때문에 국민들이 삼성의 이익과 국민의 이익이 상충됨을 인식하고, 냉철하게 삼성과 박근혜 정부의 의료 민영화 추진을 감독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한 발 나아가 구체적으로는 공공 병원과 국민건강보험을 강화하는 것을 시작으로 '의료 공공성 운동'을 전개해야 함을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현직 의사인 저자는 과연 삼성이 의료 사업을 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그가 드는 구체적 예를 보면 섬뜩하기까지 하다. 2013년 1월 27일 삼성 화성 사업장 불산 누출 사고가 일어났다. 이때 삼성은 공공 소방서에 신고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삼성 3119를 통해 화재 진압에 나섰다. 그러나 사망자가 발생하고 경찰이 경위 파악에 나서자 사고 발생 25시간 만에야 공식적으로 '불산 유출 사고가 났다'고 신고했다. 불산 유출로 인한 사상자 발생이라는 제3세계에서나 일어날 법한 사고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세계 일류 기업을 자처하는 삼성 공장에서 일어났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 알량한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사고 사실마저 감추려 했다는 의혹이 들기에 더욱 경악스럽다. 그리고 행여 이런 짓을 위해 민영 응급 의료까지 손을 댄 것일까봐 섬뜩하다.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문제 또한 여전히 진행 중이다. 며칠 전인 2014년 12월 29일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던 조재성 씨는 2015년 서른 살 새해 아침을 보지 못한 채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다. "삼성전자에서 일하다가 백혈병 등 직업 관련 질환으로 고통 받는 자기 직원들에 대한 철저한 외면은 이들이 생명 산업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지를 새삼 되돌아보게 한다"는 저자의 물음은 분명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