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생각한다

7년 끌어온 삼성전자와의 싸움, 전환점 맞나?

일취월장7 2014. 8. 21. 19:19

7년 끌어온 삼성전자와의 싸움, 전환점 맞나?

[해설] 2심 원고 일부 승소, 직업병 인정에 미치는 영향은?

김윤나영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8.21

 

7년 3개월 만의 판결이다. 한 아버지가 삼성전자에서 일하던 딸을 2007년 3월 6일 먼저 떠나보내고, 긴 시간이 흘렀다. 2011년 6월 23일 1심에서 이겼지만 소송은 계속 이어졌다. 1심 판결이 난 지 3년 만에 똑같은 판결이 나왔다. 결론은 '삼성전자 백혈병은 직업병이 맞다'는 것이었다. (☞관련 기사 : 법원 "삼성 백혈병 직업병 맞다"…2심서도 승소)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는 지난 7년간 지난한 과정을 거쳤다. 이제는 영화 <또 하나의 약속>으로 더 잘 알려진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가 2007년 6월 홀로 근로복지공단의 문을 두드렸을 때, 그는 냉대를 받아야만 했다. 황 씨는 근로복지공단 담당자에게 "삼성에서 몇 사람 죽었다고 거짓으로 말할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관련 기사 : "죽어가는 딸에게 삼성은 백지 사표를 요구했다")


삼성전자와 직업병 공방을 벌이기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황 씨는 처음에는 홀로 외롭게 싸웠다. 2007년 6월 수원 삼성전자 정문 앞에서 딸의 죽음을 알리는 지역신문 기사를 돌렸다. 삼성전자에서 파견한 경비들이 신문을 빼앗아갔다.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그린 장면 그대로다. (관련 기사 : "어떻게 삼성을 건드려…개봉 자체가 기적")


▲ <또 하나의 약속>에서 상구 역을 맡은 배우 박철민 씨와 윤미 역을 맡은 박희정 씨. ⓒ또 하나의 약속

▲ <또 하나의 약속>에서 상구 역을 맡은 배우 박철민 씨와 윤미 역을 맡은 박희정 씨. ⓒ또 하나의 약속

▲ 이 영화의 실제 모델인 고 황유미(사망 당시 23세) 씨와 아버지 황상기 씨. ⓒ반올림

▲ 이 영화의 실제 모델인 고 황유미(사망 당시 23세) 씨와 아버지 황상기 씨. ⓒ반올림

 


황 씨의 노력 끝에 마침내 2007년 11월 20일 노동·시민단체 20여 곳이 모여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 규명 대책위원회(이후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으로 개명)'가 만들어졌다. 1명이었던 제보자가,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이제는 전자산업 분야에서 일하다가 중증질환에 걸렸다는 제보자가 223명에 달한다.


반올림은 다른 유가족, 피해자들과 함께 '산재 소송'을 벌였다. 삼성전자는 대형 로펌을 고용해 피고보조 참가인으로 소송에 참가했다. 불리한 조건이었음에도, 2011년 6월 23일 마침내 법원이 최초로 '반도체 백혈병 산재'를 인정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근로복지공단은 즉각 항소했고, 삼성전자는 여전히 '피고보조 참가인'으로 나섰다. 


7년을 끌어온 직업병 문제, 삼성전자-반올림 교섭 시작됐지만… 


'삼성전자 직업병' 공방은 최근 한 차례 전환점을 맞았다. 지난 5월 14일 삼성전자는 기자회견을 열어 백혈병에 발병한 노동자들에게 사과한다고 밝혔다.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 이사가 직접 나섰다. 삼성전자는 반올림 및 피해자들과 협상을 벌이기 시작했고, 지난 7월 8일에는 '피고보조 참가'를 철회하기에 이르렀다. 2011년 12월 22일 1차 공판이 이뤄진 지 3년 반 만이었다.


반올림은 지난 1년 6개월간 삼성전자와 교섭을 벌였지만, 양측은 입장 차이만 확인했다. 반올림은 삼성전자 반도체와 LCD 공장에서 일하다 중증질환에 걸렸다는 제보자가 164명 가운데, 산재를 신청한 사람은 40여 명에 대해 모두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명 삼성전자는 교섭단에 참가한 8명만 먼저 선별 보상하자고 맞섰다.


사과 문제를 둘러싸고도 갈등의 골이 깊다. 삼성전자는 이미 사과했기 때문에 또 다시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반면, 반올림은 "안전 보건 관리에 소홀했던 점, 산재 신청을 방해했던 점"을 명시해 사과하라고 맞서고 있다. 황상기 씨는 "사과는 사과받는 사람이 사과라고 얘기해야 사과이지, 사과하는 사람이 사과했다고 하면 사과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반올림의 세 번째 요구 사항인 '재발 방지 대책'에 대한 논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관련 기사 : 삼성 2심 판결 앞둔 황상기 씨 "아빠가 끝까지 싸울게")


▲ 딸의 영정에 헌화하는 황상기 씨. ⓒ프레시안(최형락)

▲ 딸의 영정에 헌화하는 황상기 씨. ⓒ프레시안(최형락)

 


이번 판결, 전자산업 직업병 전환점되나? 


삼성전자와 반올림의 교섭이 교착 상태인 상황에서, 이번 판결의 의미는 남다르다. 전자산업 직업병 문제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반올림은 21일 입장문을 내어 "이번 판결은 2011년 6월 23일 서울행정법원이 고 황유미, 고 이숙영 씨에 대해 산재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근로복지공단이 항소를 제기하는 바람에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또 한 번의 법정 공방 끝에 내려진 소중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7년을 끌어온 산재 공방은 21일 원고 일부 승소로 일단락됐지만 쟁점은 여전히 남는다. 고등법원이 "원고들이 산재 입증 책임을 지기 힘들다"고 인정하면서도 "입증 책임은 직업병이라고 주장하는 쪽(원고)에게 있다"는 대법원 판례를 여전히 전제한 탓이다.


승소했을지라도 유족들이 산재를 최종 인정받기까지도 험난한 과정이 높여있다. 근로복지공단이 상고할지 여부도 아직 불투명하다. 만약 상고한다면, 또 몇 년의 법정 공방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를 신속하게 구제"한다는 산재법의 취지와는 너무나 다른 현실이다.


고 황유미 씨와 고 이숙영 씨는 같은 공정에서 비슷한 시기에 작업하다가 백혈병에 걸려 산재를 인정받았지만, 원고 5명 중 3명은 산재를 인정받지 못했다는 점도 한계로 남는다. (☞관련 기사 : 반올림 "근로복지공단은 상고 말고 삼성은 사과해야")


반올림은 21일 "근로복지공단이 애초에 재해 노동자들의 업무 환경을 철저히 조사했다면, 반도체 산업의 특수성과 사측의 정보 은폐 상황 등을 고려했다면, 산재법 취지에 입각한 적극적인 판단을 했다면 유족들의 고통을 이미 오래전에 덜 수 있었을 것"이라며 "노동자에게 산재 증명 책임이 있다는 현행 법 제도를 당장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