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멘토

한비야! 그건, 사랑이었네

일취월장7 2010. 9. 8. 19:50

 

혼자 잘 먹고 잘 살면 행복하냐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믿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돈 많기로 소문난 사람들의 딱딱한 얼굴들을 보더라도 행복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음을 알 수 있죠. 사람들은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다 같이 행복한 세상이란 무엇이고, 그런 세상을 만드는데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두리번거리며 진정한 행복, 참된 만남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아지고 있습니다.

 

시커멓게 썩어가며 절망감만 가득한 세상이 그나마 이정도 굴러가는 건 소금 같은 사람들 덕분이죠. 짐승과 마찬가지로 본능을 갖고 태어나지만 사람답게 살고자 애를 쓰는 사람들, 그들 덕택에 오늘도 살만한 하루가 됩니다. 그들 가운데 한비야씨는 한줄기 빛을 뿜어내며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분이죠. 그녀가 쓴 책을 펴면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고 촉촉한 물기가 배어나오는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되죠.

 

어떤 꽃으로 문질렀기에 책에서 이다지도 알싸한 향이 나는지.

 

이번에 새로 나온 책 <그건, 사랑이었네>[2009. 푸른숲]는 한비야씨의 생얼이 담겨 있지요. 가슴 밑바닥에서 나오는 가장 진솔한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바람대로 가끔 짜증도 내며 외로워하고, 그럼에도 용기 갖고 사랑을 믿으며 살아가는 모습이 솔직하게 써져 있네요. 한씨가 들려주는 첫사랑 이야기, 틈날 때마다 산에 가는 일, 1년에 책 백 권 보는 이유 등을 읽다보면 배시시 웃게 되네요.

 

한씨의 글은 부드럽게 가슴 깊숙한 곳으로 들어와 잔잔한 감동을 낳습니다. 천천히 피어오르는 뭉클함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괜히 코를 킁킁 거리게 되죠. 이 책도 어김없이 굳어있던 감수성을 흔들면서 자주 울컥하게 되네요. 그가 세상에서 만난 사람들 사연에 한 번, 한비야씨의 따뜻한 마음에 두 번, 마음이 짠해집니다. 어떤 꽃으로 문질렀기에 책에서 이다지도 알싸한 향이 나는지.

 

요즘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고 싶어 하듯 그녀 역시 성공을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성공은 높은 지위에 오르거나 돈 많이 버는 걸 뜻하지 않죠. 사회 분위기도 사뭇 달라져서 돈만 많은 걸 성공했다고 내세웠다가는 남우세스러워지죠. 지은이는 무엇이든 자신이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들어놓고 가는 것, 이곳에 살다 간 덕분에 단 한 사람의 삶이라도 더 풍요로워지는 것을 성공이라며 자신도 꼭 성공하고 싶다고 하죠.

 

그런 뜻에서 보면, 그녀는 크게 성공한 사람이고 훌륭한 역할을 해냈죠. 1991년, 백 명도 되지 않았던 월드비전 후원자수는 2000년에 2만 여명, 2009년에는 33만 명으로 늘어났는데, 이 때 한비야씨의 역할이 컸죠.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80만부 이상이 나가며 외국 출판계도 놀랐다고 하네요. 긴급구호에 대한 책이 사람들에게 이 정도 읽힌 적은 어느 나라에서도 없었으니까요.

 

한씨가 몸담았던 9년 동안 월드비전은 이렇게 달라지면서 한국사회 기부문화도 크게 바꾸어 놓았죠. 수많은 기부단체들이 생겨났고, 나눔이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들어왔지요. 왜 남에게 자기 돈을 줘야하는지 어리둥절했던 사람들이 기쁨으로 손 내미는 시대가 된 것이죠. 9년 만에 기부문화가 이렇게 성장하고 시민 의식이 성숙한 예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지요. 앞으로 9년 뒤, 한국 사회가 얼마나 또 변화할지 흐뭇한 상상을 하게 되네요.

한비야 팀장이 짐바브웨 루파네 지역에서 식량배분을 하고 지역주민들과 어울리고 있네요 @월드비전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훌륭한, 한비야의 신앙고백, 가서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어라!

 

한비야씨가 이러한 삶을 살 수 있는 바탕에는 종교가 자리 잡고 있죠. 신실한 천주교 신자로서 짐바브웨에서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그녀는 고백합니다. 가슴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지면서 어떠한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죠. 가서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어라. 드디어 하느님이 자신에게도 말씀들 해주셨다며 놀랍기도 하고 벅차기도 하고 황송하기도 했다며 그때 감격을 늘어놓죠.

 

간절히 바랐기에 그녀는 신을 만난 거죠. 이 신은 저 멀리 하늘에 있다가 뭐 달라고 빌면 옛다~ 던져주는 백화점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자기 안에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끝없이 얘기하는 존재의 뿌리가 있죠. 따라서 어떤 종교를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한씨는 천주교인이기 때문에 훌륭한 게 아니라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훌륭한 거죠. 다른 종교도 존중하며 자기 신앙을 지키는 모습이 참 예쁘네요.

 

여기저기서 ‘글로벌 리더’를 떠들고 있습니다. 가만히 하는 말들을 살펴보면, 열에 여덟은 세계지도자가 되어 세계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해 떼돈을 벌자는 얘기죠. 참 딱한 수준으로 듣다보면 씁쓸하기만 하죠. 한씨는 이런 흐름을 거스르며 세계지도자가 되려면 먼저 세계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죠. 세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세계로 나가 사람들을 이끈다는 건 말이 안 되니까요.

 

세계시민이 되려면 세계시민의식을 갖춰야겠죠. 세계를 자기 무대라고 생각하고 세상 사람들을 공동 운명체이자 친구라고 여기며, 세계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머릿속에 세계지도를 넣어 놓고,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뿐 아니라 소말리아, 라이베리아, 네팔 등 작고 힘없는 나라, 그래서 우리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나라들도 골고루 알아야 하죠.

 

더불어 세계의 식량 위기, 지구 온난화, 에이즈 확산, 그리고 하루 천원 미만으로 살아가야 하는 절대 빈곤의 현실 등 세계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가슴에 담고 있어야 하죠. 날로 세상은 가까워지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지구는 하나라고 외치는 것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지요. 그런 기막힌 일들이 한국에서 많이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닌가 싶네요.

 

세계 시민의식은 시대정신, 더 나은 세상 만드는 것이 21세기에 주어진 과제

 

세계 시민의식은 있으면 좋고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시대정신이에요. 시대마다 요구하는 시대정신이 있지요. 일제 침략기엔 자주 독립이, 5,60년대에는 가난에서 벗어나는 산업화가, 7,80년대에는 군부독재에 맞서 민주화 이루는 것이 시대정신이었다면 21세기에는 세계시민의식을 갖고, 더 나은 세상 만드는 것이 한국 사람들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할 수 있지요.

부모님을 잃고 극심한 영양실조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캄보디아의 시아르와 시아리스 형제는 결연아동이 되어 영양식을 배급받고 학교에 다니게 되었지요 @월드비전

 

이것은 결코 머리로만 외워서 되는 것도 아니고, 덜컥 행동만 해서도 안 되는 일이죠. 냉철한 머리와 뜨거운 가슴, 여기에 부지런한 손발이 더해져야 세계 시민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하고, 끝없이 자신을 돌아보면서 계속 배우려고 애를 쓰며, 열린 마음으로 남을 대하고, 기꺼이 자기 호주머니를 열어 나눠줄 때, 우리 시대의 세계시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벌써 이곳저곳에서 세계시민으로 자라난 젊은이들이 세계로 나가고 있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인을 만날 수 있듯 청년들은 더 이상 자그만 땅덩어리에 머물지 않습니다. 지구를 가슴에 품고 사는 이들이기에 그들의 생각도 넓고도 깊지요. 그들은 마치 냄비 속에서 잔뜩 달궈진 옥수수 알갱이처럼 한 알이 튀기만 하면 그것을 신호탄 삼아 곧바로 냄비 안의 무수한 다른 알갱이들과 함께 타다다닥 튀어 오르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죠.

 

물론, 이렇게 되려면 찐하게 공부를 해야 하죠. 한비야씨도 쉰이 넘어서 다시 미국유학을 갑니다. 세상과 사람들을 움직이는 건 사랑이었다며, 그 사랑을 더욱 뜨겁게 하고자 공부한다고 얘기하네요. 늘 새로운 꿈을 꾸며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할 때 짜릿하고 행복하다는 한비야씨, 그녀는 긴급 구호 현장과 정책의 차이를 느끼며, 직접 구호이론을 공부하러 떠납니다.

 

그녀가 떠나서 아쉽다기보다 오히려 더 기쁘네요. 몇 년 뒤 더 멋진 모습으로 나타날 한비야씨가 그려지기 때문에. 또 하나, 한씨는 이제 떠돌지 않고 한곳에 묵게 되면서 남자친구 만날 확률이 높아졌다고 해요^^ 그녀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독신주의자가 아니라 아직 임자를 못 만났을 뿐이고, 지금도 열심히 찾고 있고 꼭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을 하죠. 공부도 뜨겁게, 사랑도 뜨겁게 했으면 좋겠네요. 마지막으로 한비야씨가 늘 힘들고 주저앉고 싶었을 때, 그녀를 일으켜 세웠던 글을 나누고자 합니다.

 

벼랑 끝 100m전.

하느님이 날 밀어내신다. 나를 긴장시키려고 그러시나?

10m전. 계속 밀어내신다. 이제 곧 그만두시겠지.

1m전. 더 나아갈 데가 없는데 설마 더 미시진 않겠지?

벼랑 끝. 아니야, 하느님이 날 벼랑 아래로 떨어뜨릴 리가 없어.

내가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너무나 잘 아실 테니까.

그러나, 하느님은

벼랑 끝자락에 간신히 서 있는 나를 아래로 밀어내셨다.

…….

그때야 알았다.

나에게 날개가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