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마을은 “손바닥만 하다”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작다. 마을 입구 주차장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까지 10분 거리이고, 그 사이에 방앗간·생가·사저·추모의 집·기념품판매소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마을 구성원도 40여 가구에 불과하다.

그런 봉하마을을 지난 3년간 4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았다. 노 전 대통령이 귀향한 2008년 첫해에는 84만명, 이듬해에는 추모 인파가 더해져 236만명, 그리고 지난해에는 80만명이 다녀갔다. 올해도 벌써 5월이 다 가고 있으니, 연말이면 방문객 수 450만명을 훌쩍 넘길 것으로 보인다. 


   
ⓒ시사IN 조남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 참배하고 나면 왼쪽에서 바로 봉화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만나게 된다. 산 정상에 보이는 게 사자바위다.


노 전 대통령은 생전에 봉하마을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딱히 볼거리가 없는 걸 몹시 안타까워했다. 오로지 대통령 얼굴 한번 보겠다며 몇 시간씩을 기다리고, 그나마 얼굴이라도 보면 다행이지만 대통령이 없어 그마저도 못하면 낭패감을 느끼기 십상이어서였다. 노 전 대통령은 그래서 봉하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이 걷기도 하고 생태 체험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참모들에게 여러 번 얘기했다.

“봉화산은 약자를 보호하는 산”


2010년 5월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아 개장한 ‘봉화산 숲길’과 지난 5월14일 서거 2주기를 맞아 새로 연 ‘화포천 습지길’은 그 같은 노 전 대통령의 유지가 깃든 ‘대통령의 길’이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대통령님이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가진 소박한 꿈이 봉하를 아름답고 살기 좋은 친환경 생태마을로 만들어 전국 농촌 마을로 확산시키는 것이었다. 대통령의 길 곳곳에 그 꿈이 서려 있다”라고 소개했다. 


   
ⓒ봉하재단 제공
‘봉화산 길’은 사자바위-정토원-호미관음상-도둑골-약수암-생태연못을 거치는 2㎞ 길과, 더 멀리 편백나무 숲길을 돌아오는 5.3㎞ 길이 있다.


   
ⓒ봉하재단 제공
사자바위에서 전경을 설명 중인 노 전 대통령.


대통령의 길 1코스 격인 ‘봉화산 숲길’은 노 전 대통령 생전에 손님이 오는 날이면 늘 함께 거닐던 길이다. 1시간30분짜리 짧은 코스와 2시간30분가량 걸리는 긴 코스가 있다. 이 길을 걸으며 노 전 대통령은 지인들에게 이렇게 설명하곤 했다.

“옛날 봉화를 올리던 봉수대가 있었던 곳이라 봉화산(烽火山)이란 이름이 붙었지요. 해발 140m에 불과한 낮은 산인데도 주변 40~50리가 모두 평지라 정상인 사자바위에 올라서 보면 꽤 높아 보입니다. 사자바위 양 옆으로 길게 날개를 펼치고 있는 학(鶴) 모양을 하고 있어, 건너편 뱀(산)이 화포천의 개구리(산)를 못 잡아먹게 견제하는, 약자를 보호하는 산입니다.”

정토원은 대통령의 49재를 지낸 곳이다. 정토원에서 ‘대통령의 길’을 벗어나 왼쪽으로 조금더 가면 부엉이바위가 있다. 예전부터 수리부엉이가 많이 살았다고 해서 이 이름이 붙었는데, 노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슴 아픈 곳이다. 대통령이 살아 있었다면 이곳도 당연히 걷기 코스에 들어갔겠지만, 지금은 멀리서 바라볼 뿐 ‘접근 금지 구역’이다.

봉화산에는 주로 소나무와 참나무가 많지만, 봉화산에서 화포천으로 내려가는 산자락에는 편백나무 오솔길이 나 있다. 편백나무는 침엽수 중에서도 피톤치드(식물이 병원균·해충·곰팡이에 저항하려고 내뿜거나 분비하는 물질. 삼림욕을 통해 피톤치드를 마시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장과 심폐기능이 강화된다고 한다)를 가장 많이 배출해, 이곳을 지나가면서 크게 숨을 쉬면 온몸이 맑아지는 걸 느낄 수 있다.

북제방길은 노 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의 연애시절 데이트 코스 중 하나다. 물가의 버드나무가 아름다운 곳으로 8~10월이면 청정 지역에서만 산다는 ‘늪반딧불이’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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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포천 습지길’은 습지 면적 500만㎡에 이르는 화포천 주변을 1시간30분가량 걷는 5.7㎞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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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와 폐수로 몸살을 앓던 화포천을 직접 청소하는 노 전 대통령과 봉하 주민, 자원봉사자들(위).


5월14일 공개된 대통령의 길 2코스 ‘화포천 습지길’에는 노 전 대통령의 생태 복원 의지가 오롯이 녹아 있다. 낙동강의 지류인 화포천은 11개 지천에서 물이 흘러들고, 습지 면적이 500만㎡(약 150만 평)에 이르는 습지 하천이다. 대통령이 낙향했을 때만 해도 화포천은 주변 공장에서 흘러들어온 각종 폐수와 생활 쓰레기 등으로 엉망진창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그런 화포천을 직접 집게와 망태를 들고 청소하기 시작했다. 대통령과 참모진, 마을 주민과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수거한 쓰레기만도 1t 화물차로 100대 분량이 넘었다. 대통령은 이후에도 새벽마다 자전거를 타고 화포천 주변을 돌아보며 습지 복원에 애를 썼다. 그 결과 지금은 청둥오리와 쇠기러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랑부리저어새가 수천 마리씩 날아와 겨울을 나고, 선버들과 창포·노랑어리연꽃 같은 다양한 수생 식물이 사는 생태의 보고로 탈바꿈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길 3코스도 준비 중”


<시사IN>은 화포천 습지길이 열리던 5월14일 독자 80여 명과 함께 이 길을 걸었다. ‘2011 <시사IN> 독자와 함께 걷기’ 행사의 일환이었다(6월18일에는 강원도 바우길 걷기가 예정되어 있다. 9쪽 안내 글 참조). 길 안내를 맡은 문재인 이사장은 “대통령이 즐겨 거닐었던 곳을 따라 생태친화적인 산책길을 만들어가고 있다. 다음에는 대통령이 고시 공부를 했던 뱀산 쪽의 마옥당을 둘러볼 수 있는 코스를 준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함께 다녔다는 경호실의 주영훈 본부장은 “화포천 길을 걷던 대통령께서 ‘옛날에 많이 했던 놀이’라며 뒤따라오던 여사님 발이 걸리라고 몰래 풀을 서로 묶어 놓기도 했다”라는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시사IN 조남진
화포천 습지길을 걷다보면 선버들과 군락을 이룬 창포, 노랑어리연꽃 등을 볼 수 있다. 버드나무 다리를 지나면 양쪽으로 청보리밭과 호밀밭이 펼쳐진다.


이처럼 서거 2주기를 맞은 봉하마을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지를 구현하기 위한 작업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작업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게 가장 큰 힘을 보태고 있는 건 이른바 ‘봉하 폐인’이라 불리는 열성 자원봉사자들이다.

노무현 재단이 운영하는 ‘사람사는세상’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자원봉사 모임이 여러 개 있다. 그 가운데 빅3가 ‘봉길이네(봉하 가는 길)’와 ‘봉삼이네(봉하마을 노삼모, 노무현 대통령과 삼겹살 파티를 하는 사람들 중 봉하 자원봉사팀)’ 그리고 ‘사랑나누미’다. 여기에 다음 카페에 개설된 노사모 ‘노랑개비’까지, 이들 네 모임이 가장 활발하게 자원봉사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주말마다 ‘노뽕’ 맞는 ‘봉하 폐인들’

이들은 모임별로, 때로는 소속된 모임에 상관없이 따로 또 같이 주말이면 꼭 봉하마을에 내려간다. 그렇게 1년 열두 달 매주 봉하마을을 찾는 사람이 20~30명이다.

하는 일은 크게 세 가지다. 모 심고, 벼 베고, 땅 갈아엎는 등 농사와 관련된 일, 꽃 심고, 풀 베고, 생태연못을 만드는 등 환경과 관련된 일, 그리고 노무현재단이나 봉하재단이 주관하는 각종 행사를 지원하는 일이다. 대통령이 정성을 들인 장군차를 심고 가꾸는 일이나, ‘화포천 습지길’에 다양한 꽃을 심고 일일이 푯말을 다는 작업도 자원봉사자들 몫이었다.

이한인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부 팀장(자원봉사센터 사무장)은 ‘봉하 폐인들’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대부분 2년 이상 자원봉사를 한 분들이다. 대통령이 살아계실 때는 대통령과 함께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설레던 분들이고, 대통령이 돌아가신 뒤에는 그분이 하고자 했던 일을 이어나가겠다는 사명감에 매주 봉사에 나서고 있다. 사는 곳은 모두 다르지만, 봉하의 또 다른 주민들이다.” 


   
ⓒ노무현재단 제공
봉하마을 곳곳에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닿아 있다. 생태연못을 가꾸고 있는 자원봉사자들 옆에 역시 자원봉사자들이 만든 정자가 서 있다.


한 봉하 폐인은 “우리끼리는 봉하에 ‘노뽕’ 맞으러 간다고도 한다. 한 번이라도 안 가면 매일 하던 운동을 거른 것처럼 뭔가 꺼림칙하고 불안해지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인터넷 다음 카페 ‘노랑개비’에서는 수도권에서 봉하를 오가는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매주 ‘노랑버스’를 운행한다. 어른 5만원, 고등학생·대학생 4만원, 중학생 이하는 3만원에 왕복 차편과 숙식을 제공한다. 봉하까지 들어가는 대중교통이 불편하고 택시는 비싸기 때문에, 매주 자기 돈 내고 봉하를 왕래하는 자원봉사자들에게는 더 없이 고마운 버스다. 하지만 좌석이 차지 않아도 꼭 운행을 하기 때문에 노랑버스는 늘 적자에 허덕인다. 그 적자는 노랑개비에서 후원금을 걷어 충당한다.

아예 봉하로 주소지를 옮긴 자원봉사자도 적지 않다. 대통령 퇴임 즈음 충북 제천에서 무작정 봉하마을로 이사 온 닉네임 ‘반디’는 봉하마을의 만능 재주꾼으로 통한다. 특히 목수 일에 능숙해 방앗간 정자, 생태연못 정자 등이 모두 그의 손길을 거쳐 탄생했다. 강원도 원주에서 매주 봉하를 오가던 여성 한의사 ‘건너가자’도 올해 초 이사를 했다. 자원봉사자들이 숙식을 해결하는 방앗간 마당에 있는 두 개의 컨테이너가 그녀의 기증품이다. 닉네임 ‘자봉’과 ‘데비트’도 봉하에 눌러앉았다(온라인에서 만나서인지 이들은 현장에서도 서로 닉네임을 쓴다).

‘건너가자’와 ‘자봉’ ‘데비트’는 지난 4월 방앗간 직원으로 정식 채용됐다. 방앗간 직원은 봉하에서 생산되는 친환경 쌀의 가공품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일을 한다. 5월21일과 23일 서거 2주기 행사장에서 선보인 ‘봉하쌀막걸리’와 ‘봉하떡’ ‘누룽지’ ‘연잎밥’ 등이 방앗간에서 고안해낸 제품들이다.

지난해 10월에는 자원봉사 커플 1호가 탄생했다. ‘봉삼이네’ 회원인 이재웅씨(닉네임 ‘마음바라기’)와 오경화씨(닉네임 ‘노공人山’)가 봉하마을에서 백년가약을 맺은 것. 이씨는 부산에서 오씨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했는데, 매주 봉하에서 자원봉사를 하다 결혼에 이르렀다. 두 사람은 결혼 후 아예 김해로 이사했다.

‘화포천 습지길’이 열리던 5월14일 저녁, 때마침 이 커플의 집들이가 열렸다. 우연히 이 자리에 동석한 후배 기자는 “자원봉사자들이 전문 농사꾼마냥 어려운 농사 얘기만 해서 깜짝 놀랐다”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을 고리로 만난 사람들인데 노무현의 ‘노’자도 입에 올리지 않으면서, 친환경 농약이니, 내일은 당장 논에 뭐가 필요하다느니 하는 농사 얘기만 잔뜩 하더라”는 것이다. 그만큼 봉하 폐인들에겐 이제 농사일이 ‘거들기’가 아니라 ‘자기 일’이 된 셈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후 귀향을 선택하면서 두 가지를 꿈꾸었다. 친환경 농법을 개발해 농업의 질과 농가 소득을 올리고, 농촌의 생태환경을 복원해 봉하를 경제적·환경적으로 살기 좋은 모범 사례로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그래야 자신의 평생 과업인 지방화와 균형 발전의 비전이 생긴다고 봤다. 그 유업을 남겨진 그의 지지자들이 차근차근 이루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