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수 경제 블로그

[스크랩] 클래스 - 너무나도 현실적인 작은 교실 이야기(스포일러 有)

일취월장7 2010. 4. 26. 11:52

 

 

<클래스>의 영화 포스터에 보면 이런 문구가 나옵니다.

 

"가르쳐봐야 알죠. 울화통 터지는 거."

 

영화 <클래스>는 이 문구를 금새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영화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포스터 하단에 나온

 

"배워보면 알죠. 말 뿐이라는 거."

 

라는 말 역시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영화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두 문구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지금부터 천천히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영화 <클래스>는 프랑스의 파리에 위치한 저소득 계층의 거주지역에

있는 학교에서 발생하는 교사와 학생들의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철저하게 학교 안에서의 이야기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영화는 소위 중2병이라고 불리는, 허세에 찌든 아이들의 사춘기 모습을

매우 디테일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프랑스어 선생인 마랭입니다.

마랭은 아이들을 통제하기 위한 규율 보다는 대화를 통한 이해로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소통해 보고자 노력하는 교사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 마랭 선생이 정말 대인배라는 사실을 여러차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말을 안 듣고, 무시하고, 수업 하는데

엉뚱한 말을 해서 수업을 방해하고, 선생님을 비웃는 등

아이들이 이 마랭 앞에서 취하는 태도들은 정말 가관입니다.

 

우리나라식 표현으로 말하자면, 정말 다들 싸가지가 없습니다.

교사의 권위가 땅바닥으로 추락한 상태에서 제멋대로 행동하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마랭은 하루 하루 매우 힘겹게 수업을 계속합니다.

 

선생님의 수업 내용에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져서 이겨 보려는 아이들과,

자신이 마치 대단한 존재라도 되기 때문에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수업 따위는

별것 아니라는 식의 치기어린 허세가 아이들에게는 가득 차있습니다.

 

 

<클래스>에 나오는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이 소위 말하는 꼴통입니다.

그렇지만, 문화적인 차이 때문인지 우리나라의 꼴통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우리나라의 아이들과 프랑스 아이들이 가지는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수업시간에 선생님과 소통 하는 자세입니다.

 

보통 우리나라의 경우 선생님이 수업을 할때면 자신이 모르는 내용이

나오거나 궁금한 사항이 있어도 어지간하면 손을 들어서 수업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의 경우에는 궁금한 점 또는 하고픈

말이 있을 때는 재깍재깍 손을 듭니다.

 

 

또한 프랑스 아이들은 발표 하는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우리나라 아이들의 경우에는 수줍음이 많기 때문인지 선생님이

숙제를 해온 아이들에게 발표를 시킬 경우, 자기 스스로 손을 들어서

발표를 하는 아이는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선생님이 그날의 날짜와 일치하는 번호의 아이를 시키는 방법

등으로 발표할 아이를 지목해아만 마지못해 일어나 발표를 하는

편입니다.

 

우리나라와 프랑스의 수업 분위기는 각각의 장단점이 존재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교과를 가르치는 것이 매우 편합니다.

아이들은 수업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기 때문에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교과내용에 따라 아이들을 가르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그러한 자연스러운 교과 중심의 수업이 불가능합니다.

아이들이 시시각각 계속해서 손을 들어 질문을 하기 때문에 수업의 진행이

제대로 이루어지기가 어렵습니다.

 

가령, "젊은 청춘의 고뇌는 방황을 동반한다."라는 문장을 칠판에 적어서

아이들에게 그 의미를 가르치려고 하면, 아이들이 손을 들어서 질문합니다.

 

"선생님 고뇌가 뭔가요?"

 

고뇌란 괴로워하고 번뇌하는 것이라고 말해주면, 아이들은 다시 번뇌가

무엇인지 묻거나 혹은, 괴로워 하는 것이 이가 아파서 괴로워 하는 것이나

배가 고파서 괴로워 하는 것과 같은 것인지를 묻습니다.

 

이런저런 설명을 통해 간신히 아이들에게 고뇌라는 말이 지닌 의미를

설명해주면, 이번엔 다시 방황이 무엇인지를 물어봅니다.

이런 식으로 문장 하나를 아이들에게 설명 하는데에 매우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만약, 아이들이 한번 배운 문장을 모두 기억한다면,

처음에는 시간이 많이 소요 되겠지만, 나중에는 원할하게 수업이 진행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영화의 아이들은 한번의 설명으로

그 문장을 완전히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랭은 수업시간 내내 배가 산으로 가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아이들이 궁금해 하는 것을 가르쳐 주면서 힘겹게 수업을 진행합니다.

 

 

 

왼쪽의 여자아이는 에스메랄다라는 아이로 영화에서 나오는 아이들

중에서 가장 허세가 심한 하이입니다. 또한, 우리나라식 표현으로

하자면 싸가지가 너무나도 없어서 늘 실실 쪼개는 얼굴로 선생님을

비웃습니다.

 

이 아이가 하는 질문이나 말 속에는 선생님을 무시하는 것들이 수도

없이 엿보이지만, 천사 같은 선생인 마랭은 언제나 이 아이의 그런

속내를 모른척 해줍니다.

 

저라면 아마 버릇을 단단히 고쳐놨을 것입니다.

 

오른쪽의 아이는 웨이라는 중국인 아이입니다.

우리나라의 아이와 가장 비슷한 모습을 지닌 아이로, 이 학급 내에서

가장 모범생으로 통합니다. 언제나 조용하며, 선생님의 말씀을 경청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입니다. 때문에 이 학교의 모든 선생님들이 웨이를

아끼고 사랑합니다.

 

심지어는 임신한 선생님 한 분은, 뱃속의 아이가 웨이처럼 훌륭한 아이가

되어주길 원하기까지 합니다. 학창시절에 웨이 같은 아이를 매우 많이

보아왔습니다. 사실, 웨이와 같은 스타일은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흔한

타입입니다.

 

동서양의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우리나라의 아이들이 미국이나 유럽의

고등학교에 입학 했을 때 천재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은 아마도 이런

문화적인 차이와 교육방식의 차이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최고 문제아 중 하나인 슐레이만입니다.

아프리카 말리 출신으로, 언제나 수업시간에 수업 내용을 듣지 않고,

제일 뒷자리에서 겉멋이 잔뜩 들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습니다.

 

반항아적인 기질이 다분하며, 이 아이 역시 허세에 찌들어 있지만,

앞서 등장한 에스메랄다 처럼 심각한 정도는 아닙니다.

에스메랄다의 경우, 겉으로는 모범생인 것처럼 생활하지만,

교사와 학생 사이를 이간질 하는 등 매우 악질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슐레이만의 경우, 반앙아 적인 기질 때문에 대놓고 규율을

소중히 여기는(우리나라에 비한다면 규율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지만)

학교의 분위기에 직접적으로 반발하여 모든 교사들로부터 문제아라는

낙인이 찍힌 상태입니다.

 

슐레이만의 경우 자기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도 알고 있지만,

그 문제를 고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계속해서 반항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그러나 에스메랄다의 경우에는 자신의 행위를 언제나 합리화 시켜 스스로의

상태를 항상 정당화 시키는 타입입니다. 이런 아이는 어지간 해서는

나쁜 성격이 올바르게 변하지 않기 때문에 가르치는 것이 매우 어려운

타입입니다.

 

어쨌든, 영화의 중요한 사건들은 모두 슐레이만으로 인해 전개 됩니다.

 

에스메랄다의 옆자리에 앉아서 손을 들고 있는 흑인 여자아이의

이름은 쿰바입니다. 이름이 매우 순박하게 느껴지죠?

그런 순박한 이름 만큼이나 성격도 매우 순박한 아이입니다.

 

쿰바는 사춘기를 겪기 시작하면서 반항적인 기질이 조금 생겼습니다.

또한, 에스메랄다와 단짝인 탓에 선생님에게 반항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말대답을 하는 등의 태도를 보이는 에스메랄다의 행동을

그대로 흉내냅니다.

 

마랭 선생님이 발표를 시킨 것에 대해 아무런 이유 없이 거부를 하고

그렇게 이유 없이 거부한 사실 때문에 선생님에게 혼이 나자

<존중>이라는 제목의 편지를 마랭 선생에게 보냅니다.

 

편지의 내용을 보면 왜 자신을 존중해 주지 않는 것이냐?

선생님이 나를 존중해주지 않으면 나는 이제부터 선생님과 다시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내용의 편지입니다.

 

그런데, 재미 있는 것이 이 편지를 쓴 직후, 쿰바는 계속해서 마랭

선생의 눈치를 살핍니다. 마랭 선생이 먼저 백기를 들고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길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 순박한 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탓에 영화를 보는 내내 쿰바의 모습이 매우 귀엽게

느껴졌습니다.

 

쿰바는 전형적인 사춘기 시절을 겪고 있는 여자아이입니다.

주변의 분위기에 휩쓸려 허세를 부려보지만, 사실은 선생님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평범한 아이입니다.

 

 

제일 앞자리에 앉아 있는 흑인 여자아이를 주목해야 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존재감이 없이 가끔가다 묘한 눈빛으로

마랭 선생을 바라보는 모습만이 간간히 비춰지는 아이이지만,

이 아이야말로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이야기를

마음 속에 품고 있습니다.

 

영화에는 위의 아이들을 제외하고도 각각의 색다른 개성을 지닌

다양한 아이들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영화의 전개에 핵심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아이들은 바로 위의 네 아이입니다.

 

 

마랭 선생은 아이들과 진심으로 소통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다른 교사들은 아이들이 공부에 의욕이 없으며 매일 떠들고

딴짓만 한다며, 벌점제 운영 등의 규율 강화 방안을 이야기 하지만,

마랭 선생은 규율이 아닌 이해를 통해 아이들을 보듬어 주는 교육을

추구합니다.

 

마랭 선생은 아이들에게 자화상을 써오는 숙제를 내주게 됩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비밀로 하고픈 이야기를 선생님에게 하기 싫다며

자화상 숙제를 하지 않으려 하지만, 마랭 선생은 아이들에게 가볍게

질문을 하는 방법을 동원하여 자화상이란 것이 그렇게 어렵거나 거창한

것이 아니며, 한 번쯤 해보는 것이 재미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만들어 설득합니다.

 

이러한 설득 방법은 마랭 선생의 매우 큰 장점입니다.

마랭 선생은 결코 아이들에게 어떠한 생각을 강요하지 않으며,

항상 아이들의 생각을 끝까지 들어준 후, 자신의 생각을 아이들에게

다시 이야기 해주는 방식으로 아이들이 스스로 무언가를 깨닫길 원합니다.

 

마랭 선생은 자화상 숙제를 통해

"네 말이 침묵보다 덜 중요하다면, 차라리 침묵해라"라는 내용의 문신을

어깨에 새긴 채 자신은 이 말이 멋지기 때문에 자화상 따위는 쓰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슐레이만을 설득하여 숙제를 해오도록 만듭니다.

 

문제아 슐레이만은 디지탈 카메라로 자신의 일상과 가족들의 모습을

촬영해서 정성껏 자화상 숙제를 하게 됩니다. 마랭 선생은 슐레이만의

숙제를 보며, 매우 잘 했다고 칭찬하면서 교실의 벽면에 슐레이만의 자화상

숙제를 붙입니다. 이렇게 잘 해온 숙제는 모두가 함께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슐레이만은 선생님이 지금 나를 엿먹이려고 그러는게 아니냐는 평소의

말투로 말을 하면서도 마랭 선생이 자신을 칭찬해 준 것이 기분 좋은지

연신 흥분한 모습을 보입니다.

 

칭찬은 돌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랭 선생은 칭찬을 통해 문제아 슐레이만이 변화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뒤이어 터지는 사건에 의해 슐레이만은

변화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박탈당하고 맙니다.

 

슐레이만의 존재가 수업 분위기를 방해하는 요소이기 때문에 퇴학 시켜야

한다는 규율 중심의 의견과, 그래도 슐레이만에게 기회를 주어야만 한다는

마랭 선생 개인의 의견이 팽팽하게 대치 된 상태에서 결국 교육이라는

현실은 개인이 아닌 다수를 선택하게 됩니다.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슐레이만의 퇴학을 막고자 노력했으나,

결국 슐레이만이 퇴학을 당하게 되면서, 아이들과 마랭 선생 사이의

관계는 매우 서먹서먹하게 변화합니다.

 

영화의 종반부에 다다르면, 겨울방학이 시작 되면서 마랜 선생과

아이들이 작별 인사를 나누게 됩니다. 마랭 선생은 아이들이 썼던

자화상을 책으로 엮어서 아이들에게 나누어줍니다.

 

아이들에게는 매우 큰 선물이며, 마랭 선생 나름대로 아이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좀 더 생각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한 표면적인

노력에 최선을 다 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때, 한 아이의 등장이 모든 것을 변화시킵니다.

 

 

아까 앞서 말했던 바로 이 아이가 마랭 선생 앞에 서게 됩니다.

방학이 된것을 기뻐하며 다른 아이들이 전부 교실을 빠져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는 교실을 나가지 않은 채 마랭 선생에게 다가옵니다.

 

"선생님과 다른 선생님들이 수업 시간 내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전혀

모르겠어요. 전 배운게 없어요."


"잘 기억해내봐. 9개월동안 배운게 없다니?"

 

아이는 흑백이 선명한 큰 눈을 깜빡이며 멍하니 마랭 선생을 바라만

봅니다. 그리곤 다시 말합니다.

 

"선생님 전 직업학교에 가기는 싫어요. 그런데 지금처럼 전혀 배운게

없이 있으면 직업학교에 가게 될거에요. 어떻게 해야 하죠?"

 

"다음 학기 부터라도 열심히 공부 해봐. 그러면 분명 이해 하고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을거야."

 

마랭 선생의 말에 아이는 당당하게 대답합니다.

 

"그러긴 싫어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대화지만, 전 이 아이의 마음이 모든 아이들의

마음과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꿈을 지니고 있지

않은 아이는 직업학교에 가는 것과 같이 힘들게 살게 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반면 열심히 공부하고픈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공부의 목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단지 막연하게만 싫다고 느껴지는 직업학교와 같은 미래를 피하기 위해

지금 당장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있어 별로 내키지가 않는

일인 것입니다.

 

꿈이 없는 아이들...

그것이 영화 <클래스>에 등장하는 학교의 모습입니다.

 

학교에서 교사들은 많은 것을 가르치지만,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지는

못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 역시 많은 것을 배우지만, 꿈을 품지 못해

무엇을 배웠는지가 모호할 뿐입니다.

 

마랭 선생이 진정으로 찾고 노력해야 할 교육은 바로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교육을 펼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화를 통해 보여지는

학교의 모습을 보면, 이 <클래스>에서 아이들에게 마랭 선생이 꿈을

심어주는 일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

 

우리는 <클래스>라는 작은 교실 안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배우는 것일까요?

 

이 질문은 인간이 무엇으로 살아가느냐?는 매우 본질적이고도 철학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 담겨 있는 물음입니다. 규율을 해체하고 아이들과

수평적인 관계를 지니기 위해 노력하며, 규제와 제도 만으로 아이들을

평가하고 가르치려 하지 않는 프랑스식 교육과, 규제와 성적으로만

이루어지는 엄격한 평가를 통해 아이들을 통제하는 대한민국식 교육 중

어느 것도 본질 적인 물을음 스스로 생각하게끔 가르치는 교육은

없습니다.

 

대한민국 교육 방식에도 장단점이 있으며, 프랑스식 교육 방법에도

장단점이 존재하지만, 교육의 본질이 담아야 할 근본적인 물음이 결여

되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느끼기에는 모두 "말뿐인 것"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프랑스는 다양한 인종이 함께 살아가는 다민족 국가입니다.

때문에 위의 사진에서와 같이 한 <클래스>안에 매우 다양한 아이들이

모여 있으며, 그러한 다양성으로 인해 강력한 규율 없이는 이들을 통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지경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교육 시스템은 우리나라와 같이 관리자

편이성만을 앞세운 방식의 교육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프랑스 교육에 대해 놀란 점들이 있는데,

 

첫째, 프랑스의 학교와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원하는 것은 높은 점수를

받은 성적표 보다도,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것들을 갖추는 것에 있다는

점입니다.

 

둘째, 학교의 모든 교사와 학생들의 대표로 뽑힌 학생 몇 명이 한 자리에

모여서 학교의 학생 하나하나를 다양한 관점에서 평가 한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러한 시스템이 악용 되어 <클래스>에서는 문제가 발생했지만,

이러한 시스템은 분명 단 한명의 선생이 아이를 평가함에 있어 편견을 가질

수 있는 위험을 최소화 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습니다.

 

셋째, 학교와 교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강압적인 체벌을 시도하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나라였다면 강력한 체벌이 수십번도 더 나갔을 상황에서도 학교와

교사들은 언제나 체벌이 아닌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고 합니다.

 

프랑스의 교육 시스템은 우리나라와 매우 달라 생소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으며, 그러한 부분들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는 겪지 않아도 될 어려움 들을

무수히 많이 겪게 되는 부분들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분명, 프랑스식 교육에는

많은 장점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에도, 프랑스 교육에도 모두 장단점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어떠한 교육 방식이 옳다고 단정 하기는 매우 어려워 보이며, 단지 어떠한

상황에 어떠한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냐라는 결과만이 존재할

것입니다.

 

영화 <클래스>를 통해 교육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가 왜 제 61회 칸느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게 되었는가는, 영화를 끝까지 본 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너무나도 리얼하기 때문에 슬프고 답답하면서도 재미 있는 이 영화를 보다

많은 분들이 함께 봤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 희망대학교
글쓴이 : 시지프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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