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칼럼

김광두 "멀리서 경제 암운 퍼펙트 스톰이 밀려오고 있다" - 이제 '도넛 경제학'이다!

일취월장7 2018. 10. 10. 11:29

김광두 "멀리서 암운이 밀려오고 있다"

'퍼펙트 스톰'...수출 불안, 국제금리 상승, 외국인자금 이탈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인 김광두 서강대 교수는 7일 "멀리서 암운이 밀려오고 있다"며 '퍼펙트 스톰' 도래를 우려했다.

김광두 교수는 이날 밤 페이스북을 통해 "12일에 일자리 통계가 나올 것이다. 아마 이젠 체념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도 있다"며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예고했듯 9월 취업자 증가수가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한은은 금리 인상을 고민하는데,내수 침체의 상황에서영세기업과 가계는 쌓인 빚의 이자 부담에 허덕이고 있다"라며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라고 반문했다.

그는 그러면서 자신이 운영하는 국가미래연구원의 인터넷매체 <ifs POST>에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가 당일 기고한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 오고 있다'는 글을 링크했다.

신 교수는 "정치 혹은 경제에 있어서 일어나기 어려운 일들이 겹쳐서 일어나면서 전에 찾아보기 어려운 큰 혼란에 빠져드는 현상을 퍼펙트 스톰이라고 말한다"며 "지금 한국 경제를 둘러싸고 퍼펙트 스톰이 몰려오고 있다는 불안감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며 3가지 위기 징후를 지적했다.

그는 "첫째로 수출과 경상수지가 불안하다"며 "정부 당국자들은 5개월 연속 수출이 500억 달러 이상을 기록했다고 자부하지만 수출증가율은 현저히 떨어지고 있어서 지난 3분기 수출증가율은 1.7%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더 나아가 "지난 2017년 벽두부터 1년 반 동안 원화가 지속적으로 일본 엔화에 대해 강세를 보인 것을 보면 앞으로 수출증가율은 마이너스로 떨어질 것이 거의 확실하다"며 "수출 역전의 스톰이 온다. 그렇게 되면 2012년 3월부터 78개월 계속된 경상수지 흑자 기조가 심각하게 흔들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둘째로 국제 금리의 상승"이라며 "주지하다시피 미국은 2015년부터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2015년과 2016년 각각 한 번, 그리고 2017년에는 세 번, 그리고 2018년에 세 번 합해서 여덟 번을 올렸다. 그리고 금년에 한번, 그리고 내년에 서너 번을 더 올릴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같은 기간 동안 한 번(2016년 6월) 내렸다가 2017년 7월 한 번 올렸으니 그동안 퉁 친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결과적으로 미국과 한국의 금리는 0.75% 역전된 상태에 놓여있다. 가계부채나 경기침체를 우려하는 한국은행으로서는 0.75% 혹은 그 이상 벌어진 한미금리역전을 되돌려 놓기가 매우 어렵다"며 "설혹 결단을 내려서 한국금리를 올린다고 하더라도 내년 내내 미국도 올릴 것이므로 한미 금리역전을 뒤집으려면 적어도 2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지금이야 경상수지가 흑자이고 따라서 원화환율이 강세기조를 유지하니까 그나마 금리역전으로 인한 자금유출걱정이 적지만 수출이 적자로 돌아서고 경상수지 흑자규모가 크게 위축되면 원화환율 약세우려로 촉발되는 자본유출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수가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셋째로 실제로 자본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다"며 "2018년 7월 증권투자수지는 2014년 6월 이래로 4년 1개월 만에 처음 적자로 돌아섰다. 8월과 9월 증권투자 수지도 적자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증권시장에서 외국인들이 주식을 팔고 한국을 떠난다는 얘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9월 첫 주 외국인의 주식순매도 금액도 1조2446억 원이었고 10월 들어 최근 4거래일 동안 1조원 이상의 국내 주식을 팔아치웠다. 코스닥 시장 매도 2천억을 포함하면 두 시장에서의 순매도 금액은 1조2500억 원이 넘는다"며 "금년에 이미 여러 나라에서 미국금리 인상과 이에 따른 자본유출로 홍역을 치른 바가 있다. 6~8월 중의 러시아와 아르헨티나와 터키 금융시장이 불안했고 최근에는 말레이시아와 인도가 특히 불안하다"며 신흥국 위기가 전염될 가능성을 경고했다.

그는 그러면서 "관건은 원화환율이 얼마나 안정적일 것이냐에 달려있다. 원화가 안정적이려면 경상수지 흑자가 계속 유지되든지, 국내금리가 오르든지 외국자본이 계속 들어와야 한다. 그 어느 한 고리라도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된다"며 "한국은행이 원화 환율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을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외환보유고가 4천억 달러에 달한다고 하지만 즉각 동원될 수 있는 유동성자금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하루 외환시장 거래규모를 6백억 달러로 잡더라도 일주일이면 다 소진될 정도로 빈약하다. 민간부문이나 금융부문의 외자동원에 기댈 수도 있겠지만 금융위기 발생 시 이들 기관들이 얼마나 협조적일지 확신이 가지 않는다"며 "이 위에다가 취업자 증가수가 마이너스로 돌아서고 3분기 경제성장률이 크게 떨어진다면 퍼펙트 스톰에 빠진 한국경제는 무엇으로 버티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코스피 추락 '검은 목요일', '퍼펙트 스톰' 전조인가?

[분석]환율 급등, 내대외 여건 불확실성 가중
2018.10.11 11:10:13


간밤 뉴욕증시 3대 지수 모두 3%가 넘게 급락한 뒤 11일 국내 증시가 개장하자마자 붕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국 경제에 퍼펙트 스톰이 다가오고 있다"는 무시무시한 경고가 금융시장에 선반영되는 사건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최근 거론되는 한국 경제의 '퍼펙트 스톰'은 대처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악재들로 인한 경제위기를 뜻한다. 구체적으로는 미국의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한미 금리 격차가 외국 자본 유출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수출 둔화와 경상수지 흑자 감소 등으로 금융시장을 떠받치는 펀더멘털까지 악화되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경고다.


▲ 11일 금융시장은 개장부터 코스피 지수가 급락하고 환율이 급등하는 등 '검은 목요일'을 연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제성장률 전망치 계속 하향 조정, 내년은 더 나빠



코스피 지수의 흐름만 보면 심상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이날까지 8거래일까지 하락세를 보이는 코스피 지수는 전날 연중 최저점을 경신하고 2170선까지 붕괴했다. 코스닥 지수도 전날 연중 최저점을 경신한 뒤 720선 붕괴 직전이다. 

뉴욕증시도 간밤에 5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고, 특히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4% 넘게 폭락했다. 미국의 금리 인상과 기술주 실적 악화 보고서가 나오면서 뉴욕증시의 매도세를 촉발시킨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2170선이 무너진 코스피 지수는 그동안 심리적 지지선으로 여겨졌던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인 2560선에서 한참 떨어진 수준이다.  

'퍼펙트 스톰'을 경고하는 단 하나의 지표를 꼽는다면 환율인데, 환율의 움직임도 우려된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0원 가까이 급등하며 1140원을 넘어섰다. 원/달러 환율이 장중 1140원대를 기록한 것은 지난해 10월 10일(1143.0원) 이후 처음이다. 거의 1년 만이다. 금융시장에서는 글로벌 자금이 안전자산으로 몰리면서 신흥시장 중 펀더멘털이 강하다는 원화마저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최근 증시의 급락세와 환율 급등을 '퍼펙트 스톰'의 전조증상으로 우려하는 이유에 대해 "사실 왜 이렇게 이 시점에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짚기도 한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에 대한 우려도 악재로 거론되고 있지만, 대부분 오래 전부터 알려진 악재들이기 때문에 특별히 이 시점에 작동하는 악재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진짜 악재는 '불확실성 가중'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오히려 실물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 장기적으로 금융시장의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와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대폭 하향 조정한 것에 보듯, 한국 경제를 둘러싼 내외적 여건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IMF는 지난 9일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0%에서 2.8%로 낮추고,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2.9%에서 2.6%로 더 크게 낮췄다. 앞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0%에서 2.7%로,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3.0%에서 2.8%로 낮췄다. 아시아개발은행(ADB) 역시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0%에서 2.9%로, 내년 전망치를 2.9%에서 2.8%로 낮췄다.

한국은행도 오는 18일 금리결정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직후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8%로 낮출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투자와 소비가 급격하게 위축된 데다 그동안 경제를 지탱했던 수출마저 둔화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은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3.0%에서 지난 7월 2.9%로 낮춘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금리 격차를 좁히기 위해 연내 한은이 최소한 1차례는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대두되면서 1500조 원이 넘는 가계부채 등 경제 불안 요인이 더욱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12일 발표될 '9월 고용동향'도 더욱 악화된 고용지표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9월 신규 취업자 증가 폭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예상대로 신규 취업자 수가 마이너스를 기록한다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이 닥쳤을 때 이후 8년8개월 만이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연말까지는 성과를 보일 것이라고 강조해온 정부는 고용지표가 계속 나빠지는 등 저조한 경제 성적표에 당황하고 있다. 하지만 고용 문제조차 질 낮은 단기적 일자리 창출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한국 경제의 근본적 위기는 주력 산업의 경쟁력 상실이라는 구조적 원인에서 기인하고 있고, 세계 경제도 내년부터는 침체기로 접어들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가 정부의 단기적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퍼펙트 스톰'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인지 예의주시할 때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윤증현 "그 어떤 정책도 시장 이기지 못해..정부 간섭 최소화해야"

성수영 입력 2018.10.09.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동안 언론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목 상태가 좋지 않아 강연이나 인터뷰를 삼가라는 의사의 권유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나라가 돌아가는 것에 대해 말을 꺼내고 싶지 않은 이유가 컸다.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윤 전 장관은 한동안 참았던 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정책 결정의 잘못을 지적하는 부분에서는 핏대가 드러날 정도로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꼼꼼하게 준비한 자료를 바탕으로 경제 현안과 문제를 조목조목 언급하며, 해법에 대해서도 매우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윤 전 장관과의 인터뷰는 지난 1일 여의도 윤경제연구소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한국 경제는 위기입니까.

“경기순환적 측면에서 보나, 구조적 측면에서 보나 위기임이 분명합니다. 우선 생산, 투자, 소비심리, 기업 체감경기 모든 것이 악화일로에 있습니다. 저성장이 이어지면서 분배도 더 나빠지고 있습니다. 실업률은 더 치솟고 있고요. 오히려 실업대란이 걱정되는 상황입니다. 그러다보니 현 정부가 표방했던 ‘일자리 정부’가 제대로 진전이 안 되고 있어요. 지금 우리 경제는 정말 위기상태로 돌입하고 있다 이렇게 보입니다. 이게 올해 말까지가 아니라 내년에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더 어렵습니다.”

▶위기 원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성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순 없지만 그래도 많은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본다면 성장이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성장이 모든 문제해결의 기본이에요. 그런데 계속 저성장 이어지고 있고, 그러다 보니 어떻게 됩니까. 일자리 창출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지금 가장 안타까운 게 성장 담론이 실종되고 있다는 거예요. 노동 개혁 등 필요한 구조조정은 계속 지연되고 있고요. 결론은 명확합니다. 어떻게 하면 성장 저력을 되살려 다시 성장잠재력을 회복할 것이냐에 모든 정책의 포커스를 맞춰야 됩니다.”

▶올해 3% 성장도 어려울 전망입니다. 저성장 굴레에 빠져드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많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0%대로 추락한 한국 성장률이 2010년에 6.5% 성장으로 회복했습니다. 제가 현직에 있을 때인데, 다들 교과서적인 회복이라고 했죠. 이후 계속 성장은 내리막길입니다. 4%대에서 3%대, 2%대까지 떨어지고 있어요. 제가 보기엔 한국 경제의 장기적 성장추세가 이미 하강하고 있습니다. 최근 OECD도 한국 경제 전망을 3% 성장에서 2.7%로 낮췄습니다. 한국은행이나 다른 민간연구소도 전부 다 내리고 있습니다. 올해도 아무리 봐도 3% 못 넘어갈 거 같다는 거죠. 특히 내년에는 더 어렵게 봅니다. 대부분의 민간연구소들이 내년 2.8~2.7% 정도로 보고 있어요.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렇게 되면 일자리 창출, 복지안전망 확충, 이런 것들이 모두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미국보다 성장률이 더 낮아질 전망인데요.

“우리가 이만큼 오기까지 한국 경제는 항상 세계 경제보다 높은 성장세를 이어왔어요. 그런데 최근에 보면 우리가 세계 경제 성장률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올해만 해도 세계 경제는 굉장히 호황이잖아요. 3.7~3.8% 정도 예상되는데, 우리는 겨우 2.8~2.9% 정도 전망됩니다. 미국보다도 성장률이 떨어진다는 게 말이 됩니까? 미국은 우리보다 경제 규모가 12~13배 큰 나라예요. 우리 성장률이 더 떨어지면 어느새 이걸 따라잡나요. 금리도 역전돼있고, 실업률도 우리가 더 높아요. 이건 말이 안 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잠재성장률 자체를 끌어올려야 합니다. 얼마 전까지 우리 잠재성장률이 3% 초반 정도였잖아요. 최근엔 3% 밑으로 떨어졌고, 지금은 2.7~2.8% 정도로 봅니다. 최소한 실질성장률이 잠재성장률 이상으로 가야 하는데 그것도 안 되고 있다는 얘깁니다.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려야 우리 경제가 계속 확대재생산, 확대균형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성장 문제를 정말 심각하게 생각할 때가 됐어요. 성장을 국가적으로 담론화시켜서 어떻게 하면 우리 경제가 계속 성장할 수 있을 것이냐에 초점을 모을 필요가 있습니다.”

▶저성장의 원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미국의 폴 크루그먼 교수가 동아시아 네 마리 용을 언급하면서 경제성장에 한계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이른바 요소투입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요소투입이라고 하면 인적투자, 물적투자, 생산성 세 가지를 의미합니다. 이게 한 나라의 잠재성장률, 다시 말해 경제성장 저력을 이루는 세 축이거든요. 우리 경제가 저성장에 빠진 이유도 이 세 축이 다 무너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투자가 부진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한 나라 경제가 성장하려면 투자가 끊임없이 이뤄져야 합니다. 투자가 끊임없이 이뤄져야 확대재생산이 되고 일자리가 늘어나죠. 그런데 그동안 투자 지표를 보세요. 지난 몇 년간 우리나라 기업들이 해외 투자한 게 국내 투자한 것보다 세 배 이상 많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요. 제일 큰 것이 각종 요소비용, 쉽게 말해 지대 인건비입니다. 요소비용이 너무 많아 생산성이 못 따라가고 있어요. 과격한 노조도 문제입니다. 어느 나라 제조업이든 노조가 합리적이지 않으면 견디질 못합니다. 세계 경쟁은 계속 치열해지는데 국내에선 각종 규제에 묶여 마음껏 투자할 수 있는 환경도 안 돼요. 이런 이유로 제조업 회피 현상이 심각한 겁니다.”

▶인적자원 투자 역시 부진한데요.

“인적자원에 투자하려면 노동시장 유연성이 확보돼야 합니다. 그동안 인력양성을 위해 정부가 얼마나 노력을 해왔습니까?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국토는 좁고, 환경은 열악하고, 가진 건 인적자원밖에 없어요. 인적자원을 어떻게 우수한 인력으로, 기술 인력으로 탈바꿈시킬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젊었을 때만 해도 고등학교 졸업하고 가장 우수한 인재가 가는 데가 공과대학이었어요. 화학 금속 기계 전자 원자력 조선공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산업 인력화 되면서 오늘날 수출 효자가 된 거예요. 지금은 어떻습니까. 가장 우수한 인재가 죄다 의과대 치과대 약대로 갑니다. 벌써 한 20년 지속하고 있는 현상이에요. 이런 현상을 거스를 수 없다면 이 분야라도 빨리 산업화를 시켜야 하는데, 온갖 규제 때문에 다 막혀있잖아요. 정부 방향제시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인적·물적 투자 측면에서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어요.”

▶노동생산성은 여전히 낮습니다.

“임금을 올리려고 하면 반드시 생산성하고 연계해야 합니다. 생산성이 안 오르는데 어떻게 임금을 올려줍니까? 노동시장 경직성은 이어지고, 그러니까 생산성은 그대로인데 임금만 오를 수밖에요. 국회도 책임이 큽니다. 과거 정년연장을 통과시키면서 임금피크제는 나중에 사업장별로 알아서 하라고 했는데 지금까지 잘 안 되고 있죠. 생산성을 하락시키는 주범입니다. 이런 모든 분야에서 정치권이 큰 책임을 져야 합니다.”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어떠한 정책도 시장을 이기지 못한다는 걸 정부는 명심해야 합니다. 중국에서 나온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중국처럼 국가자본주의 하는 나라에서도 뭐라는지 압니까? ‘상유(上有) 정책, 하유(下有) 대책’이라는 거예요. ‘위에서 정책을 세우면 아래에서는 대책을 세운다’는 뜻인데, 중앙 정부가 정책을 내놓으면 지방의 관료들이 ‘마음대로 해봐라. 우리도 대책이 있다’는 거예요. 참 무서운 말입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하는 나라에서도 이럴진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하는 나라에서는 더더욱 어떤 정책도 시장을 이길 수가 없어요. 일시적으로 이길 수 있는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시장으로부터 보복을 당합니다. 절대로 시장을 이길 수 있는 정책은 없어요. 이 게 무슨 얘기냐면, 시장경제와 사유재산권 보장,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정체성을 말하는 겁니다. 역사가 증명합니다.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기초해 사회주의가 나왔지만 결국 다 무너졌잖아요. 경제 때문입니다. 시장에서 중심은 민간기업이고, 민간이 중심이 돼야 고용이 창출되고, 성장도 하고, 사업도 확장되는 거예요. 그 역할을 정부가, 공기업이 하겠다고 하면 그날로 문 닫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공기업 낙하산 어쩌고 하지만, 최선의 방책은 공기업 수를 최대한으로 줄여서 꼭 민간이 할 수 없는 부분만으로 최소화하는 대책밖에 없어요. 기업 앞에 ‘공’ 자가 붙는 순간 그 기업은 기관화합니다. 더 이상 기업이 아니에요. 지금 경제운용에 있어서 정부는 정체성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너무 많은 걸 하려고 하죠. 시장에 자유를 돌려주고, 사유재산권을 철저히 보장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열심히 뛸 수 있어요. 그래야 기업가 정신이 고양되는 겁니다.”

▶일자리 문제가 심각합니다.

“지금 정책이 계속되는 한 굉장히 어둡다고 봅니다. 우리와 정반대인 일본 미국을 보면 알지 않습니까. 시장은 자유가 생명입니다. 그걸 통해서 창의성 나오고 활력이 넘치게 됩니다. 시장에 활기가 차야 사회 전체가 활력이 넘치거든요. 자유는 공기와 같은 거예요. 자유가 바탕이 되지 않고는 사회 활력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시장이 생기있게 돌아가야 기업도 왕성하게 투자 활동을 하고, 그런 과정에서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이죠. 하지만 지금 정부가 하고 있는 건 뭡니까? 공공부문 일자리를 인위적으로 늘리면서 민간에는 일자리 창출에 부담이 될 비용만 잔뜩 안기고 있잖아요. 최저임금 과속이 대표적입니다. 지난 8월 고용을 보면 도소매, 숙박 등 서비스 업종에서만 취업자 수가 20만명 이상 줄어든 게 나오잖아요. 그것을 세금으로 보전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공공 일자리 확대가 그나마 취업자 수 마이너스를 막아주는 형국입니다.

“8월 전체 취업자 수 증가폭이 3000명 수준으로 급감했는데, 그나마 공공부문 증가가 커버해준 건 맞습니다. 그거 빼면 엄청나게 줄어든 숫자가 나왔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다고 도대체 공무원 숫자를 얼마까지 늘릴 건가요. 공무원 채용을 늘린다는 건 일자리와 일거리를 혼동해서 생긴 일입니다. 일자리라는 건 일거리가 있으면 저절로 생기는 거예요. 그런데 공직자를 늘린다는 건 일거리에 상관없이 일자리를 그냥 갖다 놓는 거예요. 일거리를 그대로인데 일자리만 늘려놓으면 이 사람들 어떻게 됩니까? 그냥 노는 거예요. 그래도 밥값은 해야 하니까, 자꾸 쓸데없는 일거리를 만들어내고, 그게 다 규제로 연결되는 거예요. 민간은 어떻습니까? 생산이 늘어나거나 매출이 증가하면 부서가 생기고 인원이 늘어납니다. 일거리가 늘어나면 일자리가 자동으로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일거리와 일자리를 혼동하지 말라는 게 제 메시지입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일거리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게끔 시장에 자유와 창의를 불어넣는 것입니다. 기업으로 하여금 투자에 나서도록, 민간으로 하여금 스스로 움직이도록 역할과 환경을 조성해주고 뒷받침해주는 것, 그것이 정부 역할이지 정부가 직접 시장 플레이어로 뛰면 안 된다 이겁니다. 축구로 치면 축구 감독이 있고 선수가 있는데 감독이 선수를 겸하면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예요. 감독이 선수로 뛰면 이길 거라 생각하는데, 한마디로 착각하는 겁니다.”

▶국가주의 논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가주의 논쟁, 이것은 한 번은 꼭 짚고 가야 할 문제예요. 사회주의 계획경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가장 큰 차이점은 뭡니까? 바로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입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기본적으로 작은 정부를 추구합니다. 공무원 수를 자꾸 줄여가는 거지요. 그래야 규제가 없어지지. 공무원 수가 늘면 밥값을 해야되니까 자꾸 일거리를 만들어냅니다. 규제가 자꾸 늘어나는 거예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가 공무원 12만명 줄이고 작은 정부로 간다는 거잖아요. 시장개입을 최소화해야합니다. 정부의 역할은 공정한 질서가 있느냐, 투명한 경제가 일어나느냐 등 감시·감독 업무에만 충실하면 되는 거예요. 정부가 내건 공약 중에 이런 게 있습니다.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정부’. 박근혜 정부 때는 ‘국민의 행복을 책임지는 정부’를 내걸었습니다. 다 정치적 용어입니다. 어떻게 국민의 삶과 행복을 정부가 책임집니까? 행복의 가치는 주관적이고, 삶은 개인 책임입니다. 정부는 그걸 제도적으로 도와줄 수 있을 뿐이에요. 보통 정부가 시장에 개입할 때 명분이 있습니다. 시장은 만능이 아니고, 시장도 실패한다는 거죠. 하지만 정부가 실패하면 누가 책임집니까? 시장실패보다 정부실패가 더 많습니다. 부동산 시장이 대표적인 사례 아닙니까?”

▶현 정부는 소득주도성장과 함께 혁신성장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혁신성장의 요체는 무엇입니까.

“혁신성장이라는 게 실체가 모호하지만 규제혁파하겠다, 구조조정하겠다, 노동시장 개선하겠다 이런 거 같아요. 하지만 이 가운데 하나라도 제대로 되는 게 있나요? 규제혁파의 대표적인 게 감세인데 우리는 세계적 추세와 거꾸로 가고 있죠. 대통령이 지시한 은산분리도 진통을 겪으면서 겨우 찌그러져서 통과해놨죠. 구조조정은 어떻습니까? 조선·해운 등 경쟁력을 잃고 있는 산업은 진작에 덩치를 줄이고 효율화했어야 하는데 유야무야되고 있죠. 노동시장 개혁은 더 말할 나위도 없어요. 1987년 노동시장 자유화 이후 30년이 흘렸는데도 아직도 한 발자국도 진전을 못 하고 더 악화되고 있죠.”

▶포용적 성장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포용적 성장이란 게 뭡니까.  쉽게 말해 성장 일변도가 아니라 성장은 하되 시장해서 실패한 사람이나 사회적 약자들한테도 성장의 몫이 함께 돌아가도록 하자는 개념 아닌가요? 이론적으로는 참 매력적이에요. 문제는 성장과 분배를 조화시키는 건데, 이 정부는 분배가 성장을 견인할 수 있다고 보는 것 아닙니까? 소득주도성장이 그것인데, 시중에 이런 말이 있어요. ‘배변 주도 포만’이라고. 배가 부르면 변이 마렵다는 건데, 거꾸로 변을 누면 배가 부른다는 거예요. 얼마나 웃긴 얘기입니까? 비가 오면 우산을 쓰는데, 우산을 쓰면 비가 온다는 말과도 같아요. 물론 분배격차가 너무 심하면 성장도 저해된다는 건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어느 사회나 성장할 때 분배도 함께 개선되는 것이지, 분배가 우선됐을 때 성장한다는 건 인정되지 않거든요.”

▶규제개혁, 모든 정부의 슬로건이었습니다. 이 게 안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 아는 듯하면서도 참 모르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겁니다. 차라리 제대로 혁명을 하면 기존 질서를 때려 부수고 새로운 집을 지을 수 있는 건데, 기존 질서를 존중하면서 하려니까 어려운 거예요. 지대추구,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저항세력과의 끊임없는 갈등이 있습니다. 관광 산업만 해도 그래요. 강원도의 산악면적이 스위스 산악면적보다 1200㎢ 더 넓다고 합니다. 이걸 잘 개발해서 지리산부터 시작해 태백산, 설악산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관광자원으로 연결하면 우리도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어떤가요? 케이블카 하나 제대로 못놓고 있습니다. 환경 단체 반발로 각종 규제에 묶여 케이블카를 새로 놓으려 하면 13개의 법을 바꿔야 합니다. 조사해보니 13개 법을 다 피해 가서 개발할 수 있는 면적은 0.5%도 안 나옵니다. 서비스업도 마찬가지죠. 이런 것을 푸는 게 바로 규제개혁이고 우리가 도전해야 할 과제입니다. 규제개혁을 제대로 못 하니 전부 먹이사슬이 된 거예요. 은산분리도, 원격진료도 그렇고요. 세상에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된 이 시대에 원격진료 안 하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습니다. 기득권 세력에 밀려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런 것이야말로 적폐청산하듯이 해야 합니다. 교육개혁, 의료개혁 이런 게 우리의 살길인데, 이런 것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 단 하나는 규제를 혁파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래야 일자리가 생기고, 기업이 투자할 기회가 생기거든요. 한번 보세요. 서울대병원 지을 때 외래환자 하루 2000명을 예상했는데, 지금 얼마인 줄 아십니까? 1만500명이에요. 서울대병원 응급실 가면 그야말로 도떼기시장이나 다름없어요. 아산병원, 삼성의료원은 어떻습니까? 종합병원 하나 지으면 최소 5000~1만명의 고급 일자리부터 허드렛일까지 생기는 곳인데 기득권 반발에 모든 게 막혀있어요. 우리나라 의료산업 수준이 정말 세계적인 수준 아닙니까? 지금이라도 의료를 빨리 산업화해야 합니다. 고등학교 졸업생중 가장 우수한 인력이 가는 게 의과대학이잖아요. 특히 성형외과는 세계 최고 아닙니까? 그걸 왜 활용을 못 합니까? 답답할 뿐이에요.”

▶의료 선진화는 현직에 계실 때부터 줄곧 외쳤는데, 아직도 안 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들어온 고급 의료관광객이 작년에 30만명 좀 넘을 거예요. 태국은 200만명이 넘습니다. 싱가포르 중국 인도도 180만명씩 받아요. 최고 인재가 병원으로 몰리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가요? 내가 목이 쉬도록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이런 걸 호소합니다. 인류 문명이 종언을 고하는 날까지 절대로 망하지 않을 산업이 있어요. 바로 헬스케어와 바이오 의료입니다. 동서고금 막론하고 똑같아요. 오래 건강하게 젊게 예쁘게 살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어요. 이 산업은 절대 망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걸 규제로 막아놓고 국민을 위하니, 사람을 위하니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제주도에서도 엑스레이 보면서 전화로 서울에 있는 병원과 상담하고 싶은데, 왜 못하게 막나요? 국민을 위한 정부면 그거부터 해줘야죠. 의사들의 이익을 위해서 안 해줍니까? 울화통이 터집니다.”

▶기업가정신이 퇴조했다는 우려가 많습니다. 어떻게 되살릴 수 있을까요.

“기업가정신은 민간의 경제활력이 넘치고 자율이 담보되지 않는 한 발휘될 수가 없어요. 사회주의 국가에서 기업가정신 넘친다는 말 들어봤어요? 정부가 플레이어로 직접 역할을 하는 한 기업가정신이 나올 수가 없어요. 결론은 정체성의 문제로 귀착됩니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로 가야 해요. 동시에 실패가 용인되는 사회문화가 돼야합니다. 그래야 기업가정신이 부활하는 것이죠. 반기업 정서로는 절대 되지 않습니다.”

▶미래 먹거리를 위한 투자, 기업도 정부도 고민이 안 보인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이건 정말 정부부터 앞장서서 역할을 해야됩니다. 중심에는 민간이 있어야겠지만 정부가 리드를 해줄 필요가 있어요. 정보를 제공하고, 도전의식을 불어넣어 주고,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 정부에 가장 안타까운 것 중 하나가 성장담론이 상실된 거예요. 정부가 미래 얘기를 하는 걸 들어봤습니까? 앞으로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인 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안 보여요.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미래 산업도 제조업의 경쟁력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입니다. 제조업을 절대로 홀대하면 안 돼요. 제조업이 바탕이 안 되는 서비스와 정보기술(IT)이란 게 존재할 수 없어요. 경쟁력있는 제조업을 유지하면서 고용 친화적인 내수산업을 육성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일자리도 창출되고 미래 먹거리를 위한 투자가 생기는 거예요. 몇 가지 꼽으면 의료 교육 관광 콘텐츠 바이오 건강관리 헬스케어... 이런 분야에 대해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갈지 지향점을 정하고 투자를 서둘러야 합니다. 국민적 공감대 이루고 가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분야별로 묶여 있는 규제부터 혁파하고 노동시장을 유연화해 투자유인을 제공해야 합니다. 정말 갈 길은 멀고 할 일은 많습니다.”

▶구체적인 실행방안으론 무엇이 있을까요.

“제언을 하나 한다면 관광청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관광산업이 굉장히 부가가치가 높고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분야중의 하나거든요. 일본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일본 관광객이 줄어들자 아베 신조 총리가 직접 위원장을 맡고 관광진흥위원회를 만들었잖아요. 지난 5년동안 엄청난 투자를 했습니다. 해발 3000m 넘는 다까야마 산에 호텔을 짓게 하고요. 각종 규제도 없앴습니다. 우리는 국립관광지에 식당 호텔을 몇 층 이상은 못 짓게 하는 규정도 있어요. 모든 규제를 한꺼번에 풀어야 합니다. 내가 장관 할 때도 하려다 못했는데,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는 거예요.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하나 설치하는 것도 환경 단체 반발에 눌려 문화재청 위원회에서 취소해버렸잖아요. 관광청을 만들어 권한을 제대로 위임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낙수효과, 더 이상 기대난망인가요.

“낙수효과니, 분수효과니 이러는데 왜 낙수효과가 없어요? 주력산업이 노동집약 분야에서 기술집약 분야로 이행되니까 고용유발효과가 옛날보다 못하는 건 어쩔 수 없어요. 정도의 차이지, 낙수효과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문제는 낙수효과가 더 커지도록 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게 막혀있다는 것입니다. 대기업이 수출하면 부가가치가 들어오잖아요. 이걸 내수 확대로 이어지도록 연결 파이프라인을 만들어야 합니다. 수출로 들어온 자금이 내수로 유입돼 퍼질 수 있도록, 그래야 고용창출 선순환이 일어날 거 아닙니까. 그러려면 각종 규제를 단계별로 혁파해 투자의 기회를 제공해줘야 해요. 지금은 연결 파이프라인이 끊어져 있어요. 그러니 낙수효과가 더더욱 작아지는 겁니다.”

▶생산인구감소는 경제활력을 퇴조시키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어떻게 극복해야 합니까.

“지금까지 10년 넘게 126조원 이상을 투입하고도 저출산은 전혀 진전이 없습니다. 합계출산율은 1.04에서 지난 8월 1 미만으로 떨어졌고요. 신생아도 작년까지 40만명 유지됐는데 올해 잘못하면 30만대도 위협받는단 말이죠. 이거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이제는 인구문제 접근방법을 달리해야 합니다. 저출산 대책을 인구정책으로 전환해야한다는 거예요. 무슨 얘기냐면, 정부예산을 아무리 퍼부어보세요. 한달에 10만원 준다고 애를 낳겠냐구요. 인구정책으로 바꿔야 해요. 우선 이민문제를 정식으로 논의해야 됩니다. 어쩔 수가 없어요. 생산가능인구는 이미 올해부터 줄기 시작했고, 전체 인구도 2030년부터 줄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게 세계인구는 더 늘어나요. 우리보다 못사는 신흥국에서 더 젊고 기술 가진 인력을 유입해와야 합니다.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요. 접근방법을 빨리 인구정책으로 바꾸고, 이걸 실행할 인구청을 만들어야 합니다. 또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구 학자들 스카우트해서 연구소도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이런 거 하나도 준비 안 하는 한국의 앞날이 정말 걱정됩니다. 일본처럼 조직적, 체계적으로 하는 나라와 어떤 차이가 나겠습니까? 이런 걸 하자면 법무부 고용부 외교부 등 모두 반대할 거예요. 법무부는 범죄소굴된다고 하고, 외교부는 외국인 함부로 데려다 어떻게 할 거냐 하고, 고용부는 일자리 뺏긴다고 할까봐 노조 눈치 보는 겁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효과도 없는 저출산 대책에 매달릴 것인가요? 과감히 인구정책으로 전환해서 이민 문제를 합리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정부의 9.13 부동산 대책이 실효성이 있을까요.

“시장도 경제도 수요 공급의 양 축으로 움직입니다. 물건 만드는 사람이 있으면 사주는 사람도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최근의 부동산 시장이 불안한 것도 양 축이 균형 있게 못 받쳐줘서입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만만한 게 수요정책이니까, 자꾸 수요를 억제하는 대책만 내놓은 것이죠. 수요정책만 펴선 안 됩니다. 뒤늦게 공급책을 내놨는데 헛다리만 짚고 있어요. 수요 있는 곳에 공급이 있어야 하는데, 집값이 떨어지는 엉뚱한 곳에 공급을 늘린다고 해요. 강남 아파트값 잡는 데 제일 좋은 건 특목고 전부 부활시키고, 강남에 재건축 재개발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는 것이에요. 다 해줘서 한 100층 아파트 다섯 동만 세워보라 하세요. 그럼 교통 대란이 일어나고 강남 아파트값이 안정이 아니라 폭락합니다. 접근은 그렇게 해야되는 거예요. 지금 부동산 정책은 없는 사람만 더 어렵게 만들고 있어요. 내 말 틀렸습니까? 그래서 국민들이 깨어있어야 해요. 그러려면 정치가 바로잡히고, 올바르게 해줘야 되는데…참 안타깝습니다.”

■ 약력

△1946년 경남 마산 출생
△서울고, 서울대 법학과 졸업
△10회 행정고시 합격(1971년)
△재무부 금융실명거래실시 준비단장(1989~1990년)
△증권국장, 금융국장(1991~1995년)
△세제실장(1996년) △금융정책실장(1997년)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사(1999~2003년)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2004~2007년)
△기획재정부 장관(2009년 2월~2011년 6월1일)
△윤(尹)경제연구소장(2011년~현재)



이제 '도넛 경제학'이다!

[장석준 칼럼] 도넛 경제학, 혹은 구명 튜브 경제학
2018.10.09 11:21:51

언제부터인가, 아니 돌이켜보니 한국에서는 1997년 외환위기부터인 것 같은데, 정치 논쟁에 어려운 경제학 용어가 출몰하는 일이 잦아졌다. 요즘 풍경도 그러하다. 평화를 의제에 올린 남북미 정상의 잇단 만남에 잔뜩 골이 난 극우 언론은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구호를 난타하고, 극우 정당은 이를 그대로 따라 읊는다. 이름 난 대학 경제학과 교수들이 척탄병으로 동원되고, 공격은 사뭇 효과를 발휘한다.  

오늘날 경제학의 위상이 이와 같다. 경제학은 단지 여러 사회과학 가운데 가장 위세가 드높은 분과 정도가 아니다. 경제학은 사실상 '유일' 사회과학이다. 다른 분과들에서 생산된 지식은 반드시 경제학의 최종 검열을 거쳐야만 공인된 지식 취급을 받는다. 그리고 경제학이 이런 검열에 첫 번째 잣대로 내세우는 것이 경제 성장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국내총생산(GDP) 성장에 기여하는지 여부다. '소득주도성장'론에서도 이 기준은 시뻘겋게 살아 있다.

지금껏 우리는 이런 지식 피라미드를 거부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모두가 다 순순히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목소리 높여 다른 대안을 내세우지도 못했다. 주류 경제학 체계가 자본가와 부유층의 이익을 편든다고 의심하면서도 GDP 성장이 절대적 기준이자 목표가 되는 피라미드 전체를 허물어뜨리려고 감히 나서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이렇게 우물쭈물하며 끌려 다니는 모양새도 더는 편하게 이어갈 수 없게 됐다. 올해 유례없이 뜨거웠던 게 소득주도성장 논쟁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날씨 또한 참을 수 없을 만큼 뜨거웠다. 그나마 기나긴 혹서기가 끝나고 한반도 주민에게 1년 중 유일하게 위안이 되는 계절(왜냐하면 봄은 이제 황사와 미세먼지의 계절이 됐으므로), 가을이 찾아왔건만, 이 또한 철모르는 태풍에게 일격을 당했다. 모두가 기후 변화의 심란한 광경들이다.

기후 변화가 인류의 화석 에너지 남용이 초래한 대기 중 이산화탄소 급증 탓임은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어떤 명제나 공식보다 더 과학적인 진실이다. 달리 말하면, GDP 성장은 인간 경제 활동의 증가를 뜻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탄소 배출량 증가를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가 기성 경제학의 안내에 따라 오로지 성장에만 계속 골몰할수록 기후 변화의 역풍은 더욱더 우주적 규모로 확대된다.  

우리는 이 역풍을 점점 더 몸으로 실감하는데, 우리의 머리는 여전히 경제학이 지배하는 지식 피라미드 안에 갇혀 있다. 2018년은 보통사람들이 이 영육분리를 뼈저리게 느낀 원년이라 할만하다. 어느 쪽에 우선권을 줘야 하는가? 시들어가는 몸인가, 아니면 굳어버린 머리인가? 전대미문의 어려운 선택이 코앞에 닥쳐왔다. 그리고 그 순간, 한 권의 책이 우리를 찾아왔다. 영국의 한 비주류 경제학자(케이트 레이워스)의 저작 <도넛 경제학>(홍기빈 옮김, 학고재 펴냄)이다.  

'도넛'이라기보다는 '구명 튜브'? 

'도넛' 경제학이라니, 묵시록적 상황치고는 너무 천진하고 태평한 이름이다. 왜 하필 트랜스 지방산과 설탕 범벅인 이 음식을 앞에 내세웠을까? 입에 달다고 마냥 먹어대다가는 성인병을 줄줄이 불러올 이 음식은 차라리 경제 성장 만능주의의 상징으로 더 어울리지 않는가?

실은 책 제목의 '도넛'은 실제 도넛이 아니다. 도넛을 연상시키는 2개의 동심원이다. 종이에 2개의 동심원을 그리고 안쪽 원과 바깥 쪽 원 사이를 색칠해보라. 도넛 모양이 나온다. 레이워스는 이 도넛 모양 도표로 우리 머릿속의 오래되고 단단한 건축물을 무너뜨리려 한다. '도넛'에서 연상되는 목가적 이미지와는 달리 <도넛 경제학>이 의도하는 바는 우선은 파괴와 해체다.  



레이워스가 그리는 첫 번째 원은 사회적 기초, 즉 모든 이가 누려야 할 최소 수준의 안녕(wellbeing)을 가리킨다. 인간 존엄성을 보장하려면 반드시 충족시켜야 할 기준들이다. 구체적 목록으로 풀어보면, 물, 에너지, 식량, 주거, 보건, 교육, 소득과 일자리, 평화와 정의, 정치적 발언권, 사회적 공평성, 성 평등, 각종 네트워크 등등이다. 인간 사회의 경제 활동이 이 원 안쪽으로 오그라든다는 것은 곧 경제적 결핍 때문에 위기에 처함을 뜻한다.

레이워스의 도식에서 이 첫째 원을 감싸는 더 큰 원은 지구 생태계의 한계를 가리킨다. 인류가 생존하려면 절대 넘어서는 안 될 기준들이다. 레이워스가 정리한 목록에 따르면, 기후 변화, 대기 오염, 오존층 파괴, 해양 산성화, 화학적 오염, 질소와 인 축적, 담수 고갈, 토지 개간, 생물 다양성 손실 등이다. 인간 사회의 경제 활동이 이 원 바깥쪽으로 뻗어나간다는 것은 곧 생태계의 혼란과 역습으로 또 다른 위기를 불러 온다는 뜻이다.

그래서 레이워스의 그림에서 바람직한 경제란 첫째 원과 둘째 원 사이를 채우는 면, 즉 도넛형 공간이 된다. 사실 이 도넛 면은 첫째 원 안쪽의 상당한 공간과 둘째 원 바깥쪽의 너른 공간에 포위된 형국이다. 그러니 결코 넓을 수가 없다. 첫째 원 안쪽으로 수축되지 않으려고 경제 활동 규모를 키우다가는 쉽게 둘째 원을 넘어서게 된다. 둘째 원 바깥쪽으로 넘어가지 않으려고 반대의 노력을 하다가는 또한 첫째 원을 넘어가는 후퇴가 되기 쉽다. 그야말로 절묘한 균형이 필요하다.  

그렇다. <도넛 경제학>이 주창하는 경제 활동의 목표는 이제 성장이 아닌 균형이다. 인간 존엄성을 보장할 사회적 기초를 마련하기 위해 일정한 발전을 추구하면서도 지구 생태계와 조화를 이루도록 이 발전의 방향과 수준을 조절해야 한다. 균형이라 하니, 흔히 이야기하는 '중도'니, '제3의 길'이니 하는 표어들처럼 미적지근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레이워스의 그림에서 도넛 면 안의 어떤 점일 이 균형은 도달하기 쉽지 않은 균형, 참으로 역동적인 균형이다. 안쪽 원과 바깥쪽 원 사이 좁은 길목에서 방향을 잡아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안쪽 원과 바깥쪽 원 사이의 이 협애한 면에는 저자가 붙인 '도넛'보다는 다른 이름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그것은 '구명 튜브'다. 거센 파도에 휩쓸리는 가냘픈 생명에게 생명줄이 되어주는 구명 튜브 말이다. 이쪽이 <도넛 경제학>이 담고 있는 시급하고 절실한 메시지를 더 잘 형상화한다.  

아무튼 레이워스는 경제를 바라보는 세인의 시각을 확 바꿔야 한다면서 이 도넛 혹은 구명 튜브 그림에서 출발하자고 한다. 난공불락의 성채 같은 기존 경제학의 거대한 체계에 고작 그림 하나로 도전장을 내민다니 황당하다 여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실은 주류 경제학 역시 그림에서 출발한다. 만다라나 아이콘은 종교에만 있지 않다. 자연과학 수준의 과학임을 자처하는 경제학 역시 의외로 간단한 몇몇 그림의 틀 안에 갇혀 있다. 대다수 경제학자들을 지배하는 그 그림이란 끝없이 우상향으로 뻗어나가는 곡선 같은 것이다. 바로 경제의 무한한 성장을 나타내는 도형이다. 경제학 논문과 서적은 번잡하고 현란한 수학 공식들로 넘치지만, 경제학자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이런 단순한 도상이다.

말하자면 레이워스는 경제를 둘러싼 상식을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부터 재구성하려 한다. 도넛 혹은 구명 튜브 도상을 통해 거의 무의식에 가까운 층위에서 경제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재구축하려 한다. 어떤 경제적 사태든 도넛-튜브라는 결코 광활하지 않은 면 안에 그때그때 인간의 좌표를 찍는다는 마음으로 대하자고 제안한다. <도넛 경제학>의 도전은 생각보다 훨씬 더 도저하고 심각하다.  

21세기 인류를 위한 실체경제학  

<도넛 경제학>은 제1장에서 GDP 성장 대신 도넛 그림을 경제 활동의 새로운 목표로 제시한 뒤에, 다음 5개 장에 걸쳐 우리의 경제관에서 바뀌어야 할 주요 내용을 정리한다. 자기 완결적 시장이라는 도식은 사회와 자연에 묻어든 경제로 바뀌어야 한다. 합리적 경제인이라는 인간관은 상호 의존하며 다양한 잠재력을 지닌 인간의 강조로 바뀌어야 한다.

또한 기계적 균형이라는 19세기 물리학식 관념은 동학적 복잡성에 길을 내줘야 한다. 쿠즈네츠 곡선이라는 억측에 따라 경제가 성장하면 모두 부자가 된다는 미신은 분배의 적극적 설계로 대체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경제가 성장하면 환경도 정화된다는 미신 역시 재생과 순환, 회복력을 중심에 둔 경제의 설계로 극복돼야 한다.  

이렇게 주류 경제학이라는 거대 건축물을 이루는 주요 기둥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새로운 기둥을 세운 뒤에 레이워스는 처음 논의로 돌아온다. 마치 도넛처럼, 이야기의 끝이 시작과 다시 만난다. 결국 이 모든 재구축 작업은 이제껏 경제 활동의 최대 목표로 군림해온 성장 맹신주의에서 벗어남으로써 완결된다는 것이다. 경제 성장을 비행기의 이륙에 빗대었던 월터 로스토우의 비유를 뒤집어 저자는 말한다. 이륙했던 비행기는 언젠가는 착륙해야 한다고.

이미 마르크스주의나 제도주의, 생태주의나 여성주의 같은 비주류 경제학 사조에 익숙한 독자라면, <도넛 경제학>의 각 장에 담긴 내용이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만큼, 기발하거나 참신한 주장은 아니라고 생각될 것이다.

하지만 레이워스의 장점은 그런 각론의 독창성에 있지 않다. 여러 이단적 경제학 흐름의 주장을 엮어 하나의 통일된 이야기로 풀어내는 솜씨야말로 <도넛 경제학>의 미덕이다. 자칫 딱딱하고 건조할 수 있는 경제학설들이 저자의 손을 거쳐 어떤 독자든 단박에 읽어 내려갈 수 있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탈바꿈한다. 또한 모든 좋은 이야기가 언제나 그렇듯, 이야기를 듣고 난 이의 삶이 그 전과 같을 수 없도록 새 지평을 열어준다.

이런 레이워스의 이야기에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21세기 실체경제학'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에서 '실체경제학'이란 <도넛 경제학>의 지적 뿌리 중 한 사람인 칼 폴라니가 유작 <인간의 살림살이>(이병천, 나익주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 인간의 살림살이>에서 폴라니는 대다수 현대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경제란 '형식적' 경제에 불과하다고 일갈했다. 그들에게 경제 활동이란 희소한 자원으로 이뤄진 세계에서 최대의 산출을 거두는 일이다. 따라서 경제학의 관심 역시 산출량을 극대화하는 데 있을 따름이다. 어떤 문제 상황이든 결국은 더 많은 생산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형식경제 논리는 늘 더 많은 축적에서 길을 찾는 산업자본주의와 더없이 잘 어울린다.

그러나 폴라니가 보기에 본래 경제란 그런 것이 아니다. '형식적' 경제와 구별해 그는 이를 '실체적' 경제라 칭한다. 다른 무엇이 아니다. 인간을 먹이고 기르며 살리는 일이다. 국역자들이 훌륭하게 옮긴 대로, 살림살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좋은 삶을 이루도록 사회 전체가 벌이는 다양한 활동들이다. 그리고 이때 '좋은 삶'이란 지금처럼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쌓아놓으며 그래서 더 많은 권력을 누리는 것 따위가 아니었다.  

모든 인류는 오랫동안 이런 실체적 경제의 습속에 따라 살아왔다. 그러나 대략 제1차 산업혁명이 전개되던 무렵부터 반역의 세월이 시작됐다. 산업자본주의의 등장과 함께 형식경제 논리가 부상했다. 이것이 20세기, 제2차 산업혁명 시대에 들어서는, 폴라니가 대표작 <거대한 전환>에서 바랐던 바와는 달리, 완전히 전 세계 유일 표준이 됐다. 그리고 마침내 이 흐름이 지구 생태계와 충돌해 기후 변화 같은 재앙을 몰고 오는 국면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다.

물론 그 동안 실체경제의 복권을 위한 노력이 줄기차게 이어졌다.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개혁이든 혁명이든 사회주의의 여러 흐름이 추구한 바는 한 마디로 산업 시대에 맞는 실체경제의 재구축이었다 할 수 있다. 역사적 사회주의 세력들은 레이워스가 그린 두 원 중 작은 원(사회적 기초)에 주목해 자본주의보다 훨씬 더 이 원 바깥쪽으로 뻗어나가는 경제를 지향했다. 어떤 경우에, 아니 많은 경우에 이는 성장을 추구하는 기존 자본주의와 외관상 잘 구별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한계나 모순은 차치하고라도 이 관성은 이제 더는 그대로 지속될 수 없다. 레이워스가 덧붙이는 또 다른 원(지구생태계의 한계) 때문이다. 21세기에는 사회적 기초를 충족시키는 노력뿐만 아니라 이 노력과 생태적 한계 사이의 쉽지 않은 균형을 찾아나가는 것도 실체경제 재건의 중요한 내용이 되어야 한다.  

덕분에 항상 "더 많은 생산”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형식경제 논리를 넘어서는 실체경제의 원리 또한 더욱 명확하고 풍부해진다. 산출량 증대 이상으로 분배나 재생이 중심 원리로 부상한다. <도넛 경제학>은 이렇게 21세기에 맞는 실체경제 재구축 방향을 명쾌히 제시한다.

녹색성장과 탈성장 사이에서  

그럼 기후 변화 재앙과 성장 맹신주의의 반성 이후에 취해야 할 구체적인 정책 방향은 무엇인가? 혹자는 '녹색성장'을 말한다. 여전히 경제 활동의 일정한 확대는 필요하니(저발전 지역일수록 더욱) 에너지 전환처럼 새로운 균형을 찾아가는 노력 속에 일자리도 늘리고 분배 몫도 늘리자는 것이다.  

반면 '탈성장'을 말하는 이들도 있다. 지구 생태계를 더 파괴하지 않으려면 당장 인류 경제 활동의 축소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제러미 리프킨처럼 당분간은 녹색성장을 추진하다 어느 시점에 탈성장 국면으로 진입할 수밖에 없다는 단계론(<3차 산업혁명>, 안진환 옮김, 민음사 펴냄)을 펼치는 이들도 있다.  

레이워스는 녹색성장과 탈성장 사이에서 '불가지론'의 입장을 제안한다. 섣불리 어느 한 편을 정답인 양 강변하지 말고 어쨌든 GDP 성장 맹신주의에서부터 빨리 벗어나보자는 것이다. 분명한 답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어찌 보면 <도넛 경제학>이 제시하는 '역동적 균형'이라는 새 기치에 가장 어울리는 해법이기도 하다.

이렇듯 <도넛 경제학>은 우리 세대 앞에 놓인, 두 낭떠러지 사이의 좁은 길을 정직하게 가리킨다. 그러면서 그 길을 함께 열어가자고 호소한다. 성공의 보장도 없지만, 다른 길도 없다.


"인류가 지구에 입힌 손상을 처음으로 깊이 자각한 세대이자 번영과 발전의 정의를 바꿀 수 있는 마지막 세대"(국역본 표지에 실린 문구)에게 달리 더 어떤 지적-도덕적 결단이 있을 수 있겠는가? 나는 '도넛 경제학'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