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칼럼

"2008년보다 더 큰 금융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일취월장7 2018. 10. 3. 13:27

"2008년보다 더 큰 금융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해외시각] 글로벌 금융위기 10년, 세상은 과연 달라졌나?
2018.09.26 14:08:47

자본주의 체제에서 경제위기는 터지기 전까지는 알지 못하는 특성을 지녔다. 그 이유는 자본주의 경제는 거품으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이 거품을 주도하는 기득권 세력은 위기가 터지기 전까지 말하지 않는다. 또한 위기가 터져도 상관없다. 죽어나는 것은 중산층과 서민이기 때문에 기득권 세력은 정부를 움직여 탄력적으로 회복한다. 중산층과 서민은 다시 죽어난다.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한 지 10년이 지났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큰 특징 중 하나가 위기는 더 큰 위기의 원인이 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위기를 경험했다고 해도 더 큰 위기가 터지기 전까지 역시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이런 위기를 주도하는 기득권 세력이 침묵하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의 경제는 지난 10년 중 가장 탄탄한 지표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속성이 이제는 들어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뉴욕 증시 대표지수들은 지난 8월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2.4분기 미국 경제 성장률은 4.1%(연율)에 달했다. 실업률은 4% 밑으로 떨어졌고, 임금도 오르고 있다.  

하지만 기득권 세력이 평균을 보여주는 각종 경제 지표와 통계로 사람들을 기만하고 있을 뿐이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해 미국의 주요 매체와 일부 전문가들은 금융위기 10주년을 맞은 다양한 분석들을 통해 '태풍 전야'를 경고하고 있다. 더 큰 위기가 수면 위에서 솟구칠 에너지를 키우는 중이라는 것이다. 

폭발적 에너지는 불균형에서 나온다. 자본주의 위기의 핵심도 불균형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 미국의 경제는 금융위기 10년 동안 더욱더 중산층과 서민 경제의 붕괴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경제 상황과는 다소 다를 수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결코 남의 얘기라고 할 수 없다는 점에서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10년 후' 현재 미국 경제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정리해 소개한다. 편집자  

▲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지난 2008년 9월 15일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했다는 소식에 뉴욕증시 트레이더들이 충격을 받고 있다. ⓒAP=연합


"미국에서 노동으로 성공하겠다는 것은..."



< 뉴욕타임스>는 '중산층의 꿈이 무너진 경제회복(The Recovery Threw the Middle-Class Dream Under a Benz)'이라는 특집기사(☞원문보기)를 통해, 미국 경제의 회복 과정에서 부의 축적 측면에서 장기적인 불균형은 더욱 커졌다"면서 "그 결과 확실한 부의 축적 방식 자체가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미국 경제 시스템에서 진정한 부의 축적은 더 이상 연봉에서 나오지 않는다. 주식시장 상장, 스톡옵션, 주식 매매 등으로 부가 축적된다. 이런 변화 속에서 미국의 가구에서 벌어들이는 임금 소득은 급격히 감소했다. 지난 15년간 미국연방준비제도(Fed)의 통계에 따르면, 가구 임금 소득은 70% 가까이 줄었다. 

신문은 "주식 등 거래 가능한 자산을 보유한 미국인들이 누려온 경제회복을, 저축이나 임금소득에 의지하는 미국인들은 체감하지 못하는 이유"라면서 "매일 일터에 가서 일하는 노동으로 성공하겠다는 것은 요즘 시대에 전화번호 찾겠다고 전화번호부를 뒤지거나 영화 한 편 보겠다고 비디오숍을 찾는 것처럼 기묘한 일이 되었다"고 개탄했다.

임금 소득이 더 이상 부의 축적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것뿐이 아니다. 미국의 중산층과 서민들은 '내집 마련'이 주는 부의 증식 효과와 자부심마저 산산조각이 났다. 이제 집은 많은 빚을 지면서 구입해도 항상 가격이 오르는 자산이 아니다. 10년전 미국발 금융위기는 중산층과 서민들에게 집값보다 120%나 많은 대출까지 해주면서 부풀어졌던 주택시장 거품 붕괴로 시작됐다. 지금 미국의 많은 중산층과 서민들은 집이 경매로 처분되거나 엄청난 빚더미에 올라있다.  

Fed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전형적인 중산층 가구의 순자산은 2007년보다 낮은 4만 달러 정도다. 미국의 중산층이 받은 정신적 충격은 값으로 따질 수 없을 정도다.

은행들도 금융위기로 타격을 받기는 했다. 하지만 리먼브라더스처럼 파산을 한 몇몇 사례를 빼고, 은행권의 타격은 일시적이라는 것이 큰 차이다. 은행들은 그들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은행이 무너지면 자본주의 금융시스템이 무너진다는 이유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부 차원에서 총력 지원을 해줬기 때문이다. 주주와 투자자들 역시 구제금융으로 지원받았다. 

제로금리와 대대적인 통화 팽창 정책으로 Fed는 주식시장에 내려가고 싶어도 내려갈 수 없게 만드는 '트램펄린'을 깔아주었다. 인위적인 통화정책 지원으로 경제가 회복됐지만, 그 혜택은 주식이나 연금 등 상대적으로 자산이 많은 미국인 절반 정도에 돌아갔을 뿐이다.

금융위기 이후 10년 동안 중산층과 서민 사이에서도 경제회복의 혜택은 크게 달랐다. 고용시장에서도 실업률이 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기까지 노동자들의 임금은 오르지 못했고, 기업의 수익만 치솟았다.  

트럼프 당선과 브렉시트는 금융위기 극복 과정의 결과물


신문은 "미국인의 절반은 임금이 정체된 반면, 나머지는 자산시장에서 부를 얻은 결과가 바로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영국에서 유럽연합(EU) 탈퇴를 국민투표로 결정한 것은, 금융위기 이후 경제회복 과정에서 소외된 유권자들의 분노가 쌓여오면서 폭발한 결과라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체제의 부의 양극화를 진단한 <21세기 자본주의>의 저자 토마스 피케티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계층간 빈부격차가 줄어들고, 계층 상승의 경제적 기회가 확대되면서 중산층이 형성됐지만, 수십년간 지속된 이 현상은 궤도를 이탈했다"면서 "빈부 격차가 역사적 수준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신문은 "피케티의 주장이 옳건 그른건, 금융위기의 유산인 부의 집중 현상은 갈수록 체감하게 될 것"이라면서 "특히 1929년 대공황이 20세기를 관통하며 당대 세대들을 짓눌렀던 것처럼,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젊은 미국인들도 비슷한 세대로 기록될 것"이라고 짚었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의 최근 연구는 "금융위기 동안 모든 세대들이 부를 잃었지만, 1980년대생 미국인들이 '부의 축적 면에서 잃어버린 세대'가 될 위험이 가장 크다"고 밝혔다.

미시간 대학교 사회학자 파비언 페퍼는 "갈수록 가계의 자산은 임금소득보다 향후 세대의 기회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면서 "가계의 자산은 다른 선택과 다른 계획을 감당할 여유를 주는 사적인 안전망으로 기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돈이 있는 사람은 일자리를 잃어도 자신에게 맞는 기회를 기다릴 수 있다. 부모의 재력을 의지할 수 있다면, 학비가 비싼 대학에 진학하고 빚을 지는 데 따르는 리스크는 낮아진다는 것이다. 

'대마불사' 혜택 받고 더 커진 대마들 


다국적 기업이 주도하는 세계화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필리핀 사회학자 월든 벨로는 '위기 후의 위기:금융붕괴 후 10년, 세계 자본주의 개혁은 없다(Crisis After Crisis: 10 Years After the Crash, There’s No ‘Reforming’ Global Capitalism)라는 글(☞원문보기)에서 더 큰 파괴력을 지닌 금융위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필자는 그 근거로 세가지를 꼽았다.

첫째, '대마불사'의 논리로 살아난 미국의 대형은행들은 이 논리의 혜택을 누릴 더 큰 대마기 돼었다. JP모건체이스, 웰스파고, 뱅크오브아메리카,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 이른바 '미국 6대 은행'은 2008년에 비해 수신액은 43%, 자산은 84%, 현금보유액은 3배가 늘어났다.

둘째, 2008년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파생상품은 여전히 거래되고 있다. 대표적인 파생상품인 주택저당증권(MBS)만 6조 7000억 달러에 이른다. Fed는 1조 7000억 달러를 투입해 이 상품의 가치를 떠받쳐주었다. 

미국 은행들은 157조 달러에 달하는 파생상품을 운용하고 있다. 전세계 GDP의 두 배나 되는 어마어마한 물량이다. 2008년 금융위기 초기보다 12%가 늘어난 것이다. 시티그룹 혼자 금융위기 전에 비해 50% 이상 늘어난 44조 달러어치를 보유하고 있다.

셋째, 전세계 조세회피처에 은밀한 자금들이 엄청난 규모로 떠돌고 있다. 조세회피처에 100조 달러로 추정되는 슈퍼리치들의 자산이 헤지펀드 등 20개의 펀드에 집중돼 있다.

넷째,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대적인 통화팽창 정책으로 뿌려진 값싼 유동성으로 전세계의 부채는 글로벌 GDP의 세배 이상인 325조 달러에 달한다. 이런 부채 증식은 폭발적인 파열없이 무한정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은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필자는 "또다른 금융위기가 어느 곳에서 폭발할지 예측하기는 힘들다"면서 "하지만 몇몇 후보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필자에 따르면, 중국이 가장 유력하다. 중국 경제가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진 미국과 비슷하게 곪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 과열, 요동치는 주식시장, 급증하는 그림자금융은 중국이 새로운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될 것을 경고하는 3대 증후군이다.

중국의 그림자금융은 아직 월스트리나 런던처럼 정교한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으며, 현재 10조~18조 달러 규모로 추정되고 있다.

<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주식과 부동산처럼 변동성이 큰 자산시장에서 중국의 그림자금융 위험자산 규모는 중국의 GDP 대비 53%에 달했다. 글로벌 평균이 GDP 대비 120%라는 점에서 규모가 작아보일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의 그림자금융이 특히 위험한 이유는 제도권 금융에서 끌어온 부채 비중이 크다는 점이다. 그림자금융의 부실채무의 절반은 제도권 금융으로 위험이 전가될 수 있다. 

세계 경제에 중국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오늘날 중국발 금융위기는 중국의 실물경제에 타격을 주고, 다시 전세계에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  

트럼프 정부에서 벌어지는 '비이성적 과열' 


<포린폴리시인포커스>의 존 페퍼 소장은 '새로운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There’s a New Crash Coming)'이라는 글(☞원문보기)에서 미국발 금융위기 재발을 경고했다.


필자는 트럼프 정부 들어 각종 경제지표가 좋아보이는 것이 트럼프의 정책 효과와는 관련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오히려 '비이성적 과열'을 보여주는 증후군이라면서, 미국에 또다시 금융위기가 터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글에 따르면, 미국의 재정적자는 전임 오바마 정부말 6600억 달러에서 올해 8900억 달러로 증가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내년에 1조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재정지출은 타당한 정책일 수 있지만, 트럼프의 재정적자 지출은 부자에게 혜택이 집중되는 효과를 줄 뿐이다. 


미국은 정부뿐 아니라 가계도 빚더미에 올랐다. 가계 총부채는 지난 8월 13조 3000억 달러로 사상 최대 규모로 불어났다. 이 가계부채는 1조 5000억 달러에 달하는 학자금 채무, 9조 달러에 이르는 주택담보대출(2008년 금융위기 당시 10조 5000억 달러에 육박하는 수준), 사상 처음으로 1조 달러를 돌파한 신용카드 대금 등이 포함된 것이다.

기업 부채도 증가했다. 지난 여름 기업 부채는 사상 최대규모인 6조 3000억 달러에 달했다. 기업의 부채 대비 현금 보유 비율은 2008년 14%에서 12%로 떨어졌다.

국내외에서 미국의 국채를 매입하고 보유하는 흐름이 이어지는 한 미국의 재정적자 지출로 인한 문제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러시아 등 일부 국가들이 최근 움직임을 보이고 있듯, 지속불가능한 미국의 지출을 지지하지 않아 중국 등 미국 국채를 대량 보유한 국가들까지 미국 국채를 일제히 매각하는 순간이 올 수 있다.  

미국 경제에 대한 외국의 신뢰가 감소하고 있다는 신호는 또 있다. 국제거래에서 미국의 달러가 결제수단으로 쓰이는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 지난 7월 기준, 달러 결제는 39%에 그쳤다. 유로가 35%로 2위, 그 다음으로 파운드, 엔, 위안화가 국제결제에 쓰였다.

파시즘이냐 민주사회주의로 가느냐의 대결 


자본주의는 구조적으로 금융위기가 발생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를 개혁하는 과제는 쉽지 않다. 자본주의의 구조적 속성이 관철되는 글로벌 경제체제에 대해 금융위기를 막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더 큰 이윤에 대한 탐욕 등 자본주의의 또다른 속성들이 제어되지 않고는 변화는 일어날 수 없다. 


금융경제 발전을 궁극적으로 결정하는 요인은 실물경제다. 새로운 관점은 아니다. 마르크스 경제학자들은 금융경제의 위기는 실물경제에서 과잉생산, 불평등 확대에 따라 수요보다 공급이 초과하는 근본적인 모순의 결과라고 지적해 왔다.  

흥미로운 것은 자본주의 체제 경제학자들도 실물경제의 수요부족이 지난 20년간 '구조적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의 원인이라는 진보적 견해에 동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평등에 의한 실물경제의 수요부족이 문제라면, 통화팽창과 초저금리 등 금융당국이 취한 조치들은 일시적으로 위기를 봉합할 수 있어도 중장기적으로 위기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아무리 금융분야를 개혁해도, 자본이 침체된 실물경제보다는 금융에서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욕망을 끝까지 억누를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월든 벨로는 자본주의 체체 개혁방안을 모색하는 몇 가지 시각을 소개했다. 하나는 불평등에 따른 수요부족를 해결하기 위한 자본주의 개혁이 시급하다는 시각이며, 또 하나는 자본주의 개혁을 위한 모든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만드는 자본의 탐욕이 가장 큰 문제라는 시각이 있다.  

이와 함께, 사회적 불평등뿐 아니라 생태계를 희생시키며 성장하려는 자본주의의 파괴적 속성도 제어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이들은 기후변화의 재앙으로 더욱더 대안 자본주의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가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벨로는 "분명한 것은 세계화 이후 체제는 두 정치세력의 투쟁 결과에 달렸다"고 말한다. 한 진영은 국가가 경제를 관리하지만, 자본주의 생산방식은 물론 계급 불평등 문제까지 건드리지 않는 방어적 프로그램을 옹호한다. 이 프로그램은 민족, 혈연, 인종에 기반해 차별적인 특권을 보장하는 사회다. 이민자에 대한 국경 폐쇄 정책도 포함된다.

다른 진영은 경제에 대해 국가와 시민의 통제를 강화하는 것을 지지한다. 급진적인 소득과 부의 재분배 등을 강력히 추진하는 등 자본주의를 탈피하며, 이민자를 환영하고, 민주적 절차를 옹호한다.  


벨로는 "두 진영의 대립은 파시즘과 민주사회주의의 대결이라고 규정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 모순은 이제 거대한 정치투쟁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주열 거품'과 한국은행 지도부의 강변

[기고] 금통위의 민주적 재구성이 중요하다
2018.09.27 09:23:06


그린스펀 "풋", 그리고 그린스펀에 대한 엇갈린 평가

"그린스펀 풋"은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 의장을 18년 넘게 지낸 앨런 그린스펀 금융정책의 핵심을 찌르는 말이다. 여기에서 "풋"이란 "풋 옵션"의 준말로, 특정한 가격에 자산(주식, 채권, 토지 등)을 팔 수 있는 권리를 나타낸다. 풋 옵션을 가진 권리자는 자산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그 자산을 미리 정해진 가격에 팔 수 있으므로 가격 하락에 따른 손해를 면할 수 있게 된다.

그린스펀은 연준 의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자산 가격이 떨어질 때마다 금리를 낮추고 화폐를 시장에 대량으로 흘려보내는 정책을 폈다. 그 결과 자산 가격 하락세는 금세 멈추었고 이내 상승세를 이어갔다. 그는 자산 가격이 너무 오를 때는 이를 걱정하는 투의 말을 한 마디씩 던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예를 들어 정보통신 거품이 한창이던 1996년 12월에 그는 널리 알려진 "비이성적 과열 상태"라는 발언을 했다. 그렇지만 그가 이끄는 연준이 그러한 상태를 바로잡을 정책을 폈던 것은 아니다.  

시장 참가자들은 어떤 우연한 사건으로 자산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그린스펀이 곧 시장에 개입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시장 참가자들에게는 그린스펀의 정책이 자산 가격의 하락에서 오는 손실을 막아주는 "풋 옵션"이나 다름없었다. 그린스펀의 백만장자 친구들이나 대자본가들은 자산 가격을 떠받쳐주는 그린스펀의 금융정책을 극찬했다. 그들은 그린스펀을 경제대통령으로 불렀고, 거장이라는 뜻의 "마에스트로"로 묘사했다.

그렇다면 대자산가들이 얻는 그 이익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그것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것(또는 앞으로 나올 것)이다. 예를 들어 금융위기 국면에서 화폐를 금융시장에 대량으로 공급하여 자산 가격을 떠받칠 때 생기는 비용은 사회 전체가 떠맡는다(손실의 사회화). 사회가 비용을 떠맡는 방식은 다양한데, 임대료의 상승과 화폐가치 하락에 따른 대중들의 소비능력 감소, 실질임금 감소, 노동자 구조조정은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처럼 그린스펀의 금융정책은 중산층과 서민의 희생을 바탕으로 부유층의 부를 늘려주는 내용을 내포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린스펀이 재임하는 동안 미국의 실질임금은 하락했고 부의 집중은 심해졌으며 불평등도는 크게 높아졌다. 더욱이 그린스펀이 만든 거품은 2000년의 나스닥 주식시장 붕괴와 2008년의 주택시장 붕괴(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로 나타났는데, 미국경제 전체가 커다란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 때문에 진보적인 시민단체·지식인들은 그린스펀을 "지적 사기꾼" 또는 경제대통령에 빗댄 "거품의 제왕"으로 묘사했다. 이와 같이 그린스펀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모습을 보인다.  


엇갈린 평가를 받게 될 이주열 금융통화위원회 체제 

얼마 전, 한국은행 부총재는, 최근의 집값 상승이 저금리에 따른 과잉유동성 탓에 생긴 것이 아닌가하는 기자들의 질문에, 한국은행이 부동산 가격만을 보고 통화정책을 펼 수는 없다고 답변했다. 한은 부총재의 답변은 원론적으로 맞는 얘기이고 또 마땅히 중앙은행은 그래야 한다. 중앙은행이 자산 가격에 중점을 두고 금융정책을 펴면 서민대중들의 불행이 생겨나고, 자산 양극화는 심해지며, 경제의 발전 잠재력은 줄어든다. 그런데 지금 많은 국민들은 최근 몇 년 동안 중앙은행이 부동산 가격에 중점을 두고 금융정책을 펴왔던 것은 아닌지를 한국은행(금통위)에 오히려 묻고 있다.  

이러한 국민들의 질문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취임한 2014년부터 금융통화위원회(한국은행 총재는 금융통화위원회 의장도 겸한다)는 금리를 공격적으로 낮추기 시작했다. 당시 최경환 부총리가 부동산 가격 부양을 위해 금리 인하를 의도한다는 것 말고는 금리를 낮추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금융통화위원회는 정책금리를 다섯 번에 걸쳐서 인하하여 1.25% 수준에 이르게 했는데, 이러한 수준은 주요 나라들의 정책 금리보다 더 낮은 수준이었다.  

또한 금통위는 본원통화를 2014년 4월 말 99조 원에서 연말에는 117조 원으로 18조 원을 증대시켰는데, 이는 연율로 환산하면 27%에 이르는 역대급 증가율이다. 금융위기 국면에서 중앙은행이 "최후의 대부자" 역할을 한 것도 아닌데, 화폐량 증가율이 이렇게 높아야 할 이유를 자산 가격 말고는 찾을 데가 없다. 이후 실제로 부동산 가격 상승세가 나타나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집값의 경우 2012년에 마이너스 0.03%, 2013년에는 0.31% 상승했던 것이 2014년에는 1.71%, 그리고 2015년에는 3.51%가 상승했다.

이주열 금통위체제가 들어선 이후 만들어지기 시작한 자산 부문의 금융 거품은 현재 한국사회를 송두리째 흔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거품이 생기는 동안 우리사회 최대의 땅부자인 재벌과, 부동산 부유층들은 큰 이득을 챙긴 반면, 다수 대중들은 전세·상가 임대료 올려주랴, 이사하랴 수많은 개인적인 고난과 불행을 겪고 있다. 재벌과 부유층의 횡재, 이에 대비한 서민대중의 고통 증가는 거품이 만들어낸 단면들인데, 여기에서 사회의 심각한 이해 균열이 생겨나고 있고, 이러한 균열은 틀림없이 경제사회의 장기적인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 역할을 할 것이다.  

이주열 금통위의 금융정책은, 그린스펀 정책이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극단적인 평가를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소수의 재벌과 부유층, 그리고 이들을 대변하는 언론, 학자들은 이주열 금통위의 능력을 평가하고 칭송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수 서민대중은 이주열 금통위의 금융정책이 서민들의 삶을 파탄내고 양극화를 극단으로 치닫게 한 것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부동산 가격 상승이 너무 가팔라 그 책임이 금통위에 돌아갈 수 있음을 걱정한 탓인지 이주열 금통위 체제가 현 국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중앙은행은 자산 가격 안정을 목표로 내세워야 하는가? 

금통위의 강변이 함의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산 가격과 물가의 관계를 정확히 알아두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물가란 일반 상품들의 가격지수(사실은 물가도 상품의 가치가 올라서 생기는 경우, 화폐의 가치가 떨어져서 생기는 경우가 있다)를, 그리고 자산 가격이란 국채, 회사채, 주식, 파생상품, 토지 등의 가격 지수를 나타낸다. 자산 가격은 미래의 청구권(배당, 임대료 등)을 자본화한 것이라는 점에서 일반 상품의 가격과는 형성되는 원리가 다르다.  

물가와 자산 가격은 경기의 순환국면을 따라 함께 움직이는 것이 보통이지만 1980년대 들어서 둘이 전혀 별개로 움직이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는 논쟁거리이지만 어쨌든 중앙은행이 외부에서 금융시장으로 밀어 넣은 화폐가 재생산과 관련을 맺지 않은 채 자산 시장에서만 머물면서 자립적으로 운동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예컨대 1980년대 후반 일본의 부동산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를 때도 물가는 매우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1990년대 중반의 정보통신 주식 거품이나 2000년대 초반의 부동산 거품 때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났다.  

이제 이러한 현상에 대해 중앙은행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자산 가격 거품의 형성과 붕괴가 대중의 소비생활을 압박하고 양극화를 진전시킨다는 점에서는 중앙은행은 당연히 자산 가격 안정을 정책 목표로 삼아야 했다. 그러나 중앙은행의 자산 가격 통제는 자산가 계급의 이해와 충돌한다. 이리하여 중앙은행이 자산 가격 통제를 목표로 삼아야 하는가, 그렇지 않아야 하는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이 논쟁에서 유명한 중앙은행 연구가인 굿하트는 자산 가격 거품의 확산과 붕괴가 경제 전반에 막대한 비용을 초래한다는 점을 들어 중앙은행이 거품형성 초기에 정책대응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다른 여러 연구자들도 이러한 견해에 동조했다. 이에 대해 그린스펀은 자산 가격에 거품이 생겼는지 그렇지 않은지, 그리고 그 거품이 구조적 요인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투기적 요인에 의한 것인지를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중앙은행이 자산 가격 거품에 대응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거품에 대응할 경우 경제가 위축될 수 있으므로 차라리 자산 가격 거품이 꺼진 뒤에 대응하는 것이 낫다는 논리를 폈다.

1990년대의 그린스펀 위상이 막강했기 때문에(그리고 금융자산가 계급의 힘이 셌기 때문에) 논쟁은 중앙은행이 자산 가격 안정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쪽으로 일방적으로 정리되었다. 자산 가격 안정의 배제는 중앙은행 운영의 중요한 원칙으로 대접받았고, 이는 "그린스펀 독트린"으로 불렸다. 이러한 독트린을 바탕으로 중앙은행은 물가 수준이 낮다는 사실을 핑계 삼아 자산 가격을 높이기 위한 무제한의 화폐 공급에 나설 수 있었다. 1950~60년대에 미국 연준 의장을 맡은 바 있는 윌리암 맥체스니 마틴은 중앙은행의 임무가 "파티가 한창일 때, 술동이를 치우는 일"이라고 말한 한 바 있는데, 그러한 임무는 무시되었다.

자산 가격 안정은 한국은행법에 명시된 한국은행의 목표

그린스펀 독트린은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새삼 논쟁거리가 되었다. 이 금융위기의 원인이 자산 시장에 형성된 거품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 분명했기 때문에 누구든(자산가 계급 이해의 옹호자를 포함하여) 자산 가격의 안정을 중앙은행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점에 대해 토를 달기가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중앙은행이 직접 자산 가격 안정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 좀 타협적으로 넓은 의미의 금융시장 안정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 "틴버겐의 정리(Tinbergen’s theorem)"에 따라 중앙은행이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동시에 목표로 삼고 독립된 정책수단(금리정책과 거시건전성 정책)을 함께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 등이 나타났다.  

현실에서는 중앙은행이 금융안정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타협안이 주로 논의되었다. 금융안정의 일반적인 정의는 자산 가격이 펀더멘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주식이나 부동산 가격이 펀더멘탈에서 벗어나면 이는 금융시장에 불안을 누적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중앙은행은 그런 상태가 되지 않도록 유의해서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중앙은행이 자산 가격 안정을 직접 목표로 삼는 것은 아니더라도 금융 시장 안정에 영향을 주는 자산 가격의 움직임에 대해 큰 틀에서 유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금융안정 목표는 우리나라의 한국은행법에도 도입되었다. 우리나라는 2012년 한국은행법 개정을 통해 제1조 2항의 한국은행 목표에 "한국은행은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할 때에는 금융안정에 유의하여야 한다"는 규정을 마련했다. 여기에서 보듯 한국은행법은 소극적으로 규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튼 금융안정을 한국은행의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로 내세웠다. 다시 말해서 부동산 가격 안정도 한국은행의 목표 가운데 하나라는 얘기다(금융통화위원들은 이를 자꾸 무시하려 하지만).  

한은 지도부의 강변과 책임 회피 

이제 한은 지도부의 강변들에 대해 몇 가지 살펴보자. 첫째, 한은 지도부는 금리나 화폐 공급량 증대가 부동산 가격 상승의 주요한 원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주열 총재는 최근의 부동산 가격 상승이 "수급불균형, 일부 지역 개발 계획과 그에 따른 가격상승 기대가 퍼진 점, 시중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에서 대체 투자처가 마땅하지 않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주열 총재는 부동산 가격 상승의 원인이 한국은행의 금융정책과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주열 총재의 주장은 중앙은행의 정책과 자산 가격의 관계에 대한 기존의 수많은 연구결과를 뒤집는 것이다. 중앙은행 정책이 자산 가격에 영향을 준다는 점은 통설에 속한다.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위에서 보았듯이 중앙은행이 자산 가격 안정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있을 뿐이다. 이성태 전 한국은행 총재도 저금리 기조가 장기간 지속되고 그에 따라 유동성이 과다 공급된 것이 자산 가격 급등(2006년 당시)으로 이어졌다고 명백히 설명한 바 있다. 

둘째, 한은 지도부는 자산 가격 하락이 곧 물가 하락인 것처럼 호도한다. 예컨대 어떤 금융통화위원은 "현재 상황에서 물가에 선제로 대응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그는 자산 가격을 물가로 표현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물가는 비교적 낮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서 그것이 오르거나 내리는 것을 크게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 다만 자산 가격이 오르는데 대해서는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고, 또 그것이 한국은행법에 정해진 한국은행의 임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금통위원은 물가에 대응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얘기로 사실은 자산 가격에 대응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한은 지도부는 초저금리와 신용 팽창을 합리화하는 근거로 현재의 고용 상황을 들고 있다. 그러나 금통위는 현재와 같은 초저금리나 신용 팽창이 고용을 유지하거나 늘리는데 도움을 준다는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1117조 원의 떠돌이 자금이 새로운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여기저기 헤매고 있는 국면에서, 저금리나 신용팽창이 고용에 어떤 특별한 영향을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실 현재와 같은 국면, 곧 거대한 유동성이 존재함에도 투자, 고용, 생산이 늘어나지 않는 상황에서는 중앙은행의 화폐정책이 효력을 발휘하기 쉽지 않다. 이러한 국면에서는 사회가 세금을 더 걷거나 국채를 발행하여 조달한 자금으로 직접 투자를 조직하는 방식이 고용, 생산 문제를 훨씬 더 쉽게 풀 수 있다(투자의 사회화).  

넷째, 현행의 물가안정목표제가 갖는 반서민성에 대해 덧붙일 필요가 있다. 한국은행법 제6조는 물가안정목표제를 규정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제1항은 한국은행이 정부와 협의하여 물가안정목표를 정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제3항은 한국은행이 제1항에 따른 물가안정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는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물가안정목표제는 지난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행법이 국제금융자본의 이해에 부합하는 쪽으로 개정되면서 들어간 것인데, 이것이 지속적인 자산 가격 상승을 만들어내는 데서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현재와 같이 화폐량의 공급이 일반 상품의 가격에 별로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자산 가격을 끌어올리는 데에만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중앙은행은 낮은 물가를 핑계로 화폐 공급을 최대한 늘릴 수 있다. 만약 물가안정이 아니라 다른 것이 중앙은행의 정책 목표였다면 한국은행은 한 해에 본원통화량을 27%나 늘리는 무모한 행태는 보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물가안정목표제는 자산 계급의 이익에 봉사하는 제도로 기능하고 있다. (물가안정 목표와 금융안정 목표가 상충하는 면도 있다. 물가를 유지하기 위한 중앙은행 정책이 자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금통위의 민주적인 재구성이 사회 개혁의 선결적인 과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금융통화위원회는 국민의 재산 분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조직이다. 이 권한이 올바로 사용되지 못하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근본적인 요소(현재 우리가 이주열 금통위 체제에서 경험하고 있는 자산 양극화, 사회 이해의 균열과 같은)가 자라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선출된 권력은 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항상 감시하고 통제해야 한다. 그런데 금융 거품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선출된 권력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제대로 감시·통제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금융통화위원회의 민주적 재구성은 사회개혁의 핵심 과제이다. 경제민주화든, 소득주도 성장정책이든 금통위의 민주적 재구성을 빼고는 얘기를 꺼낼 수조차 없다. 라파비차스(그리스 출신의 경제학자)와 이토(일본의 경제학자)는 함께 쓴 한 책에서, 화폐 정책으로 인해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을 사람들(노동자, 농민, 소상공인 등)의 이해관계가 금통위의 의사결정에 체계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몹시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렇듯 금통위의 민주적인 재구성은 매우 중요한 과제임에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집권여당이든, 진보정당이든 제대로 된 문제제기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발 '금리 쇼크', 중산층과 서민 덮쳐온다

11년만에 최대 한미 금리 격차....한은도 연내 기준금리 인상 유력
2018.09.27 17:35:00

미국의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26일(현지시간) 통화정책회의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기준금리를 최고 2.25%로 올렸다. 올해 들어 지난 3월, 6월에 이어 9월에도 0.25%포인트씩 세 번째 금리를 인상한 것이다.  


다시 3개월 뒤인 12월에도 FOMC 회의가 예정돼 있다. 이미 FOMC 위원들이 스스로 제시하는 금리 전망인 '점도표'가 착착 현실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연내 1차례 금리 인상이 추가되는 '2018년도 4차례 인상', 나아가 내년 3차례 인상 전망도 여전히 유효한 상황이다. 

연준이 이날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한국(기준금리 1.5%)과 미국의 금리 격차는 최대 0.75%포인트에 달한다. 2007년 6월(미국 5.25%-한국 4.50%) 이후 11년3개월 만의 최대 폭이다. 연준이 예고한 대로 올해중 기준 금리를 한차례 더 인상하고 한국은행이 10~11월에도 기준금리를 동결하면 한미 금리 격차는 1.0%포인트까지 확대된다.

금리 격차만 고려하면 한은도 올해 안에 인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외국 자본이 국내 자본시장에서 유출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내 경기가 금리 인상으로 받을 충격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한은이 '절묘한 줄타기'를 해야하는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한미 금리 역전 현상은 1979년 이후 세차례에 불과할 정도로 이례적이다. 그러나 1% 포인트 이상 한미금리 역전 현상이 심한 기간이 일시적이나마 존재했던 경우는 처음은 아니다. 2000년대 초반(2000년 5월~9월)에는 5개월간 1.50%포인트까지 차이가 났으며, 3개월간(2006년 5~7월) 1%포인트까지 확대된 적도 있었다. 

그래서 한국은행 금리 결정에 책임있는 금융통화위원들 중 상당수는 미국을 추종하는 금리 인상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한미 금리역전이 경제 상황 차이를 반영하는 정상적인 현상의 성격이 강하다면, 섣불리 한국의 기준금리를 미국을 추종해 인상할 경우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한국의 자본시장 자체는 건전한 편이고, 외국의 기관투자자들의 자금이 70% 이상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한미 금리격차가 1% 포인트까지 벌어져도 외국자본이 급격히 유출할 것이라는 우려는 지나치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위원들이 아직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을 미뤄도 어차피 미국발 금리 인상으로 시중금리가 들썩이는 '금리인상 쇼크'는 시작됐고, 앞으로 가중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대출규제 강화, 시중금리 들썩 

은행권 변동형 주택담보대출 금리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 금리는 미국의 금리인상 가능성을 선반영해 지난달 잔액기준 1.89%로, 2년 9개월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잔액기준 코픽스 금리는 지난해 8월 1.59%에서 12개월 연속 상승했다.국내 주요 시중은행의 잔액기준 코픽스 연동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4% 중후반으로 접어든 상황이다.

이처럼 시중은행 금리까지 높아지는 상황에서 10월부터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Debt Service Ratio) 규제도 시행된다.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에 다른 가계대출은 이자만 합산해 소득 대비 비율을 보는 총부채상환비율(DTI·Debt To Income ratio)이 '돋보기'라면 DSR은 '현미경'에 비유되는 대출심사 제도다. DSR은 가계대출의 원리금 상환액을 모두 더해 소득으로 나눠 부채비율을 따진다. 

금융당국은 DSR가 70∼80% 등 일정 비율을 넘는 경우 위험성이 대출로 분류하고, 이런 위험 대출이 전체 대출의 일정 비중을 넘지 못하도록 대출규제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9.13 부동산 대책으로 수도권 등 규제 지역의 신규 대출이 전면 금지된 데 이어, 대출 비율 규제도 강화되고 시중금리 상승세가 이어지면 그동안 무리하게 빚을 낸 대출자들의 원리금 상환에 차질이 빚는 경우가 늘어날 전망이다. 

또한 이미 채권시장에서는 한은이 결국 연내에 금리 인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금리 쇼크'의 파고가 중산층과 서민부터 덮칠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이다.



미국 금리 드리블에 아르헨 경제 레드카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부터 10년이 지난 최근, 다시 위기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아르헨티나 등 이머징 마켓의 여러 나라가 급격한 통화 절하, 자본 이탈, 물가 인상으로 고통받는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2018년 10월 02일 화요일 제576호


2008년 9월15일 미국 거대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을 신청했다. 이로써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지옥문이 열렸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최근, 위기의 어두운 그림자가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21세기 첫 10여 년간 급속한 성장을 누렸던 이머징 마켓(신흥 발전국)에서다.


특히 남미의 아르헨티나는 어떤 대책도 통하지 않는 총체적 난국에 봉착했다. 아르헨티나의 통화인 페소는 지난 4월 중순부터 폭락하기 시작했다. 올해 초(1월2일 1달러에 18.4페소)에 비하면 9월 중순 현재(9월17일 1달러에 39.55페소) 미국 달러 대비 50% 이상 떨어진 상태다. 외국인들이 아르헨티나에 심어뒀던 자산(주식·채권·부동산)을 팔아치우며 그 자금을 해외로 유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이 아르헨티나에 보유한 땅을 1000만 페소에 매각했다고 가정하자. 미국에 송금하려면 그 1000만 페소를 25만3000달러(9월 중순 환율 기준)로 바꿔야 한다. 이렇게 ‘페소를 팔아’ ‘달러를 사는’ 사람이 많을수록(페소 공급 증가, 달러 수요 증가) 페소 가치가 떨어지는 반면 달러 가치는 치솟는다. 페소 가치가 폭락하는 만큼 아르헨티나로 수입되는 완성재와 중간재의 가격은 올라가고, 물가인상률 역시 가파르게 상승한다. 최근 아르헨티나의 물가인상률이 30%를 넘어섰다. 외국인들이 주식·채권·부동산을 팔아치우면서 아르헨티나의 자산 가치는 폭락했다.

일반적으로 자국 통화의 가치가 떨어지면 수출이 늘어나야 한다.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20페소짜리 아르헨티나산 초콜릿이 미국에 수출되는 경우, 올해 초에는 1달러에 거래되었다. 페소 가치가 절반으로 떨어진 지금은 0.5달러에 팔린다. 하지만 2016년 하반기부터 적자였던 아르헨티나의 무역수지는 여전히 적자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르헨티나가 다른 나라와 상품·서비스를 사고파는 거래에서 받아야 할 돈보다 줘야 할 돈이 훨씬 많다는 의미다. 더욱이 다른 나라 업체와 결제할 때는 자국 통화(페소)가 아니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권위 있는 돈(달러)’을 줘야 한다. 이를 위해 아르헨티나 기업들은 중앙은행에서 페소를 달러로 바꿔야 하는데, 중앙은행에도 달러가 부족한 경우가 있다. 이른바 외환위기다. 해외 거래자에게 달러를 주지 못하게 되면 교역이 끊어지고 이에 따라 국민경제 전반이 마비될 수 있다.

물론 외국과의 상품·서비스 거래 외에도 달러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외국인이 아르헨티나에서 발행된 주식이나 채권, 부동산 등을 구입하는 경우다. 이른바 ‘외국인 투자’. 외국인들이 달러를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에서 페소로 바꾼 뒤(달러 공급 증가, 페소 수요 증가) 투자하게 되니까 페소 가치가 상승한다. 외국인들의 달러를 받고 페소를 내준 중앙은행에서는 외환보유고가 증가한다. 그러나 현실의 외국인들은 아르헨티나에 달러를 들고 오기보다는 빼가고 있을 뿐이다. 즉, 아르헨티나는 무역 거래에서나 자산 거래에서나 모두 적자를 보고 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페소 가치의 하락을 중단시켜야 한다. 그래야 외국 자본이 아르헨티나에 대한 투자를 재개할 것이다. 만약 환율이 달러당 40페소라면, 2만 달러로 80만 페소 상당의 아르헨티나 기업 주식을 매입할 수 있다. 그런데 페소 가치가 이후 달러당 80페소까지 내려가리라 예상된다면, 그 외국인은 이 시점에 투자할 필요가 없다. 기다리기만 하면 불과 1만 달러로 80만 페소어치의 아르헨티나 주식을 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아르헨티나가 달러화로 갚아야 할 채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통화가치를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 예컨대 2만 달러의 채무를 갚으려면 80만 페소(달러당 40페소)면 되는데, 페소 가치가 절반(달러당 80페소)으로 떨어지는 경우에는 160만 페소를 동원해야 한다. 아르헨티나가 내년에 갚아야 할 외채가 무려 249억 달러다.

그래서 아르헨티나 정부는 ‘페소 가치 유지’에 사활을 걸고 여러 가지의 극한 수단을 감행해왔다. 우선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이 보유한 달러(외환보유고)로 페소를 사들였다. 달러를 대규모로 매각하고 페소를 사들이는 것이므로, 달러 대비 페소 가치의 인상을 기대할 수 있다. 중앙은행이 올해 들어 시장에 내다 판 외환은 모두 130억 달러에 달한다(지난 7월 현재 외환보유고는 모두 513억 달러). 기준금리를 올리는 방법도 있다. 높은 수익률을 찾아 달러를 들고 지구 전역을 헤매는 글로벌 유동 자본들에게 ‘아르헨티나 자산을 사면 초고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고 신호를 보낸 것이다.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올해 초 27.5%였던 기준금리를 지난 4~5월에 걸쳐 40%까지 올렸다. 지난달 중순에 다시 45%로 인상하더니 2주 뒤인 8월30일에는 60%로 15%포인트나 단번에 올려버렸다. 소비자와 기업으로선 감당할 수 없는 살인적 금리다. 실물경제가 어떻게 되든 일단 통화가치부터 안정시켜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아르헨티나 경제 상황이 급박했던 것이다. 그러나 달러 매각이든 초고금리든 페소를 구하지는 못했다.

ⓒReuter
9월12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정부의 초긴축정책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또 하나의 수단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아르헨티나가 ‘총알(구제금융)’을 확보했기 때문에 빌린 돈이나 결제 대금을 떼먹지는 않으리라는 확신을 해외 거래자들에게 심어줄 수 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지난 6월 IMF로부터 500억 달러를 빌리기로 하고 1차분인 150억 달러를 받았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IMF에 나머지 350억 달러를 빨리 달라고 독촉했는데, 그때마다 자금 이탈이 오히려 가속화하면서 페소 가치가 떨어지는 이변이 발생했다. 시장이, ‘IMF 자금을 받으니 상황이 좋아지겠다’가 아니라 ‘지금 돈이 없다’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미국 연준의 두 차례 금리 인상이 영향 미쳐

더욱이 IMF는 돈을 빌려줄 때마다 엄혹한 조건을 내건다. 공기업 매각, 공무원 해고 및 임금 삭감, 연금 삭감 등을 통해 정부 지출을 줄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빌려준 돈을 엉뚱한 데 쓰지 말고’, 경제 및 복지 시스템을 ‘돈 갚기에 적합한 구조’로 바꾸라는 의미다. 이왕 빌려주기로 약속한 달러를 한꺼번에 내주지 않는 것도 구제금융 조건을 이행하도록 강제하기 위해서다.

이런 압박에 따라 지난 9월 초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은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비상조치’를 선언했다. 주된 내용은 교통·전기 등 공공서비스 보조금 삭감, 19개 정부 부처 통폐합으로 공무원 수 절반 축소, 농업 수출품에 대해 달러당 4페소 세금 부과, GDP의 1.3%로 예정된 내년 ‘근본 적자(primary deficit:세입-세출)’ 0%로 조정 등이다. 최근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등 아르헨티나 주요 도시에서는 이런 초긴축정책에 반발하는 시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

마크리 정부의 긴축정책은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아내기 위한 자구책이지만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이 나라 실물경제를 마비시킬 수밖에 없다. 대다수가 총수요를 극적으로 줄이는 조치이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인 3분의 1 이상은 이미 빈곤선 아래에서 살고 있다.

아르헨티나뿐 아니라 터키, 브라질,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같은 신흥 발전국들이 급격한 자국 통화 절하와 자본 이탈, 물가 인상으로 몸부림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는 올 상반기에 이미 두 차례나 기준금리를 올려 신흥 발전국들에 투자되어 있던 자금을 빨아당겼다. 신흥국발 금융위기론이 최근 위세를 떨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