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통일 문제

북한과 쿠바는 우리의 미래? - 김영철 죽이라는 야당, 물 만난 '신앙의 정치'

일취월장7 2018. 2. 24. 15:44


북한과 쿠바는 우리의 미래?
[햇빛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2018.02.23 10:28:20

숲을 파괴하고 사라진 문명들

전 세계에 걸쳐 산업 사회 이전까지 인류의 1차 에너지는 나무였다. 광합성을 통해 생명을 꽃피우는 식물이야말로 햇빛에너지를 이 지구상에 다른 형태로 잡아두는 놀라운 지구 생명 창조자이자 에너지 창조자였다.

지금은 사막이지만, 최초의 도시국가가 발생한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그 당시에는 울창한 삼림 지대였다. 이런 삼나무 숲을 에너지원으로 수메르 문명이 탄생했다. 

어떤 문명이든지 인류 문명의 중심에는 에너지와 식량의 생산 소비 체계가 자리 잡고 있다. 에너지와 식량이 없으면 사람은 단 하루도 살 수가 없다. 도시도 만들 수 없다.

수메르를 포함해서 역사상 수많은 문명의 몰락 또한 그 핵심 요인은 결국은 에너지와 식량이다. 

수메르 도시국가를 건설하는데 필요한 건축자재도 나무였고, 도자기를 굽는데 필요한 연료도 나무였고, 배를 만드는 데도 나무가 들어갔다. 청동기나 철기를 만드는 데도 나무가 들어갔고, 농사를 짓기 위해서도 나무가 베어졌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인간이 어떻게 숲을 파괴했는지 생생하게 증언하는 기록 문학이기도 하다. 

"길가메시는 (…) 손에 도끼를 들고 허리에서 칼을 빼 훔바바의 목을 향해 힘껏 내리쳤다. (…) 그러자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숲의 수호자가 쓰러졌기 때문이다. (…) 수호자가 쓰러지자 2리그 안에 있던 향나무들은 모두 떨었다. 산들이 요동하고 언덕들이 진동했다. (…) 그들은 향나무를 베어 나갔다. (…) 길가메시가 숲의 나무들을 베는 동안 엔키두는 그들의 길을 유프라테스 강둑처럼 시원하게 닦아 놓았다." 

도시에 필요한 나무가 고갈되고 인근에 나무가 사라지자 수메르 사람들은 나무를 구하기 위해 원정을 나가거나 먼 곳에서 나무를 수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윽고 그도 불가능하게 되면서 너무도 당연하게 수메르는 사막의 모래더미에 파묻히고 말았다. 숲을 파괴하고 만든 농토도 곧바로 염분이 많은 땅으로 변해버려 더 이상 곡물 생산을 지속할 수 없었다.

메소포타미아의 다른 지역에서 일어선 우르, 라가시 등 도시국가 또한 똑같은 과정을 반복하고는 수메르처럼 그렇게 몰락해 버리고 말았다.로마의 멸망도 밑바닥에는 에너지원인 나무가 있었다. 로마 말년에는 로마 해군을 지탱하던 군선의 재목이 없어 머나먼 아프리카에서까지 수입해야만 했고, 결국은 유럽의 풍부한 숲속에서 성장한 게르만족에 의해 멸망한다.

앙코르와트도 마야도 농사를 짓기 위해 숲을 없애고 에너지로 나무를 고갈시키면서 그렇게 붕괴되고 말았다. 

석유 문명의 몰락 

오늘날 우리는 석유 문명의 절정과 풍요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 적어도 소비생활만큼은 역대 어느 왕이나 황제보다도 훨씬 더 호화롭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세종대왕이 에어컨 나오는 가마를 타고 출퇴근할 수는 없었다. 네로 황제도 칠레산 포도주를 값싸기 마실 수는 없었다. 

사실 멸종돼 가던 고래를 구한 것도 석유였다. 19세기 유럽의 밤을 밝힌 가로등과 등불의 원료는 고래 기름이었다. 허먼 멜빌의 <모비딕>을 비롯해서 '포경선(捕鯨船) 문학'이라는 말까지 생길 정도로 19세기 고래잡이는 고래 씨를 말릴 정도로 극성이었다. 그런데 석유 등잔이 등장하면서 고래는 간신히 살아났다. 

이런 석유 문명 또한 화석연료의 고갈과 함께 몰락을 피할 수 없다. 그런 몰락의 예를 우리는 최근에 아주 가까이에서 목격하고도 이를 잘 모르고 있다. 바로 북한이다.

1990년대 초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소연방이 해체되자, 구(舊) 소련의 북한에 대한 석유 공급이 한순간에 중단되고 말았다. 

사실 북한은 거의 공짜에 가까운 소련의 석유 덕택에 수십 년 동안 풍요를 구가해 올 수 있었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북한은 남한보다 훨씬 잘 살았던 사회주의 모범 국가였다.

북한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전후(戰後) 복구 3개년 계획을 수립, 금세 식량의 자급자족 체계를 갖출 수 있었다. 1950년대 북한은 남한에는 단 한 대도 없었던 트랙터를 2000대나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 남한이 태풍 피해로 식량이 부족할 때 지금과는 정반대로 북한은 식량 원조를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석유 공급이 끊어지자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이 모든 풍요가 멈춰버렸다. 버스도 멈추었고 기차도 멈추었다. 거의 모든 공장도 가동을 멈추었다. 탱크도 비행기도 움직일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식량생산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현대 농업은 석유 농업이다. 논밭을 가는 데서부터 종자 생산, 비료, 농약, 수확, 포장, 운송, 보관 등 식량 생산의 전 과정에 석유 에너지가 투입된다.

우리가 먹는 한 끼 식사의 90%가 석유를 비롯한 화석연료다. 1945년 대략 23억 명으로 추산하던 세계 인구가 현재 70억 명으로 증가할 수 있었던 것도 전 세계 농지에 화석 에너지가 대량으로 뿌려져 세계 곡물 생산량이 세 배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북한은 식량 부족을 해결하지 못한 채 수십만 인민들이 끔찍하게도 아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금도 북한은 여전히 고난의 행군을 계속하고 있다.

햇빛 세상의 재생, '햇빛 발전'과 '햇빛 농업'은 하나다 

그런데 석유 없는 세상을 맞이했던 또 하나의 나라가 있다. 다름 아닌 쿠바다.

쿠바 또한 구소련의 석유 지원으로 남미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에 속했다. 심지어 쿠바는 소련 몰래 원조를 받은 석유를 되팔기까지 했다. 

그리고 1990년대 초반 갑자기 구소련의 석유 공급이 끊겼다. 쿠바도 북한과 마찬가지로 하루아침에 원시시대로 되돌아가야만 했다. 

그러나 쿠바는 북한과는 전혀 다른 대응으로 위기를 극복해 나갔다. 쿠바는 지속가능한 유기농으로 전환, 1990년 43%에 지나지 않던 식량자급률을 1994년 97%로 높여 혁명 이후 처음으로 식량의 자급자족 체제를 갖춤으로써 석유 문명에서 탈석유의 생태 순환 농업사회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도대체 무엇이 이 같은 차이를 낳았을까.

북한과 쿠바의 차이는 다름 아닌, 국가로부터 자율성을 갖고 있는 소농과 자치공동체의 존재 유무였다. 쿠바의 인민들은 국가가 비상사태를 맞아 어떤 지원도 해줄 수 없게 되자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 바리오(barrio) 지역공동체를 중심으로 스스로 자립 자치의 탈석유 유기농업과 도시농업을 선택하였고 적어도 굶어 죽는 주민들은 발생하지 않았다. 쿠바 정부도 국방비를 절반으로 줄이며 인민들의 유기농업을 지원했다. 

그러나 북한에는 소농과 인민들 스스로의 지역 자치공동체가 사라지고 없었다. 북한 전체주의 왕조체제에는 인민·대중들이 주체사상의 자주성과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립 자치의 공동체가 없었다. 최악의 식량 부족 사태에 직면해서 오직 수령과 당의 지시·명령을 기다리다 굶어 죽는 사태는 이렇게 해서 발생했던 것이다. 

햇빛 발전과 탈석유 생태순환 햇빛 농업은 한 뿌리다. 수많은 청년들이 새로운 자립·자치의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일자리의 보고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인류는 석유를 거의 절반 정도 불태웠다. 석유는 조만간 고갈되고 만다. 석유 고갈 이후의 가까운 미래를 북한과 쿠바는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산업 자체가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오늘 날, 기후 재앙과 타이타닉 침몰 5분 전 에너지-식량 위기를 대비해서 한국의 청년들과 노동자들이 과연 무엇을 선택해야만 하는지 깊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영철 죽이라는 야당, 물 만난 '신앙의 정치'
[기자의 눈] 영원히 야당만 할 건가?
2018.02.23 18:30:57 
    
북한 조선노동당 서열 17위인 거물급 김영철의 방한이 최대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눈물과 감동의 평창올림픽, 국회에서의 개헌과 법안 논의, 심지어 미국 대통령의 장녀인 백악관 선임보좌관의 방한 소식까지 언론의 '톱(top)'에서 밀려났다.

김영철이 이명박 정부 당시 한미 양국에 의해 천안함 사건의 기획자로 지목된 탓에, 파장은 정치권 전반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그의 방한을 막아 달라는 청원이 수십 건 등장했다. 설 명절 연휴를 거치며 간신히 반등세로 접어든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다시 향방을 알 수 없게 됐다. 

보수 야당은 이 기회에 단단히 한몫을 잡으려 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청와대 항의방문에 이어, 당 사무총장이 라디오 인터뷰에 나와 국회 전면 보이콧을 시사했다. (☞관련 기사 : 한국당 "김영철과 악수하면 文대통령 인정못해") 유승민·박주선 공동대표가 이끄는 바른미래당도 가세하고 나섰다.  

차라리 우리도 '믿고' 싶다 

이 대목에서, 오래된 지적 하나를 다시 꺼내들지 않을 수 없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9월 13일 펴낸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에서 "어뢰에 의한 수중 폭발로 충격파와 버블효과를 일으켜 선체가 절단되고 침몰했다"고 결론내렸다. 하지만 국방부가 주도한 민군합동조사단(합조단)의 보고서는 과학자들과 시민사회에 의해 그 진실성을 의심받았다. 이들의 문제 제기에, 납득할 만한 정부의 해명은 전혀 없었다. 단지 '정부 발표를 믿느냐, 북한 주장을 믿느냐'는 '믿음의 문제'가 과학적 검증을 대체했다.

오해는 금물이다. 문제를 제기하는 과학자들이나 시민단체는 무슨 '좌초설'이나 '미군 잠수함 원인설', '기뢰 침몰설' 등을 주장하는 게 아니다. 천안함 사태가 누구의 소행이냐는 물음에 대한 상식적·합리적 답은 '아마도 북한의 소행일 것으로 강하게 의심된다'는 정도일 터이다. 다만 '검사' 역할을 맡은 합조단이 피의자(북한)의 '범죄사실'을 객관적으로 소명하는 데 실패했을 따름이다. 이승헌·양판석 등 과학자들의 주장 요지는 '북한 소행이 아니다'가 아니다. '합조단 보고서가 오류투성이다'일 따름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당시 국방부와 보수언론은 이들의 문제 제기를 '정부 발표를 믿지 못하겠다는 불순세력의 선동' 쯤으로 싸잡아 매도하며 '믿느냐, 믿지 않느냐'는 신앙고백만을 강요했다. 효과는 대단했다. 정부의 발표에 조금이라도 의심을 가졌다는 이유로 고위공직자 후보자(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하거나 현직 정치인들도 마녀사냥을 당했다. 문재인 대통령마저 2015년 3월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믿습니다'라는 신앙고백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동참으로 '천안함=북한 소행' 등식이 정치권에서는 더 이상 논란 없이 통용되게 됐다 한들, 매직마커펜으로 쓴 '1번' 글씨의 존재나 버블제트 물기둥이 사라진 데 대한 의문이 갑자기 명쾌하게 풀린 것은 당연히 아니다. 시민단체 '참여연대'는 2015년 당시 '문 대표'의 발언에 대해서도 "국민의 의혹만 키운 정부 발표에 대한 검증 요구를 접고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단정하게 된 근거가 무엇인가"라고 따져 묻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들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내놓지 않았다.  

그렇다고 8년 전 사건을 이제 와서 재검증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어려운 일이 됐다. 결정적 증거가 남아있다고 보기 어렵고 정부가 참여하는 재검증은 앞서 살펴봤듯이 막대한 정치적 부담 때문에 무리다. 정부가 참여하지 않으면 검증에 공신력이 없어진다. 결국 '보고서는 부족·미흡하지만 정황상 북한이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 정도로 '퉁 치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게 지금의 상황이다. 유일하게 명쾌한 해법은, 사건 직후부터 일관되게 관련성을 부인해 온 북한이 스스로 '우리가 한 게 맞다'고 자인하고 공식 사과 내지 유감 표명을 하는 것이다. 당연히 실현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현재 문재인 정부에서 통일부 산하기관인 남북하나재단(구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고경빈은 2011년 당시 강연에서 "천안함 사건은 일종의 '신앙고백'이 됐다. 이성의 시대에서 '믿습니까?'라는 신앙의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정부가 신뢰를 잃게 행동한 면은 있지만 이미 한 발표를 뒤집을 정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한편에서는 정권이 바뀌면 재조사해서 결론도 다시 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양이지만 이는 매우 위험하다"고 제언한 바 있다. 귀담아 들을 대목이다. (☞강연 전문 보기)

'김영철 사살'을 떠들어대는 야당 

물론 이런 대혼란이 벌어질 것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김영철을 굳이 찍어서 보낸 북한 정권의 심보도 고약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하지만 '김정은 체제의 북한을 대화 상대로 인정할 수 없고, 그 정권이 저절로 붕괴할 때까지 온갖 군사도발과 전쟁위기를 감내하며 꿋꿋이 '전략적 인내'를 하겠다'는 입장이라면 모를까, 북한과 대화를 하겠다면서 특정 인물은 전범(戰犯)이니 안 된다는 식의 주장은 현실적이지 않다.  

특히 김영철이 '천안함 폭침 주범'이라는 주장은 소위 '믿는 자'들의 입장에서 봐도 자가당착이다. 그러면 연평도 포격은 김격식이, KAL기 폭파는 김현희가, 김정남 암살은 동남아 여성 2명이 저지른 일일 뿐인가? 이들을 '사살'하면 희생자들이 지하에서 편히 눈을 감게 되고 정의는 구현되는 것일까? 그럴 리가. 설사 '천안함 북행 소행설(說)'이 어떤 계기로 인해 다시 과학적으로 입증된다 한들, 김영철은 김격식·김현희 등과 마찬가지로 실행범 내지 중간실행범에 불과하다. 1인 독재국가인 북한에서, 연평도·KAL기·아웅산 등 북한이 저지른 모든 만행의 책임은 최고권력자 1인으로 수렴된다. '인민의 뇌수' 수령제를 채택한 북한의 숙명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동영 민주평화당 의원은 천안함 논란에 대해 "문제는 북한의 시스템이며,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개인의 책임이라 보기 어렵다"고 이날 지적했다. 그의 지적이 겨냥하는 바는 명확하다. 한국과 북한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래 현재까지 '종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반인도적 무력 도발이 분단으로 인해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이른바 북한의 '최고 존엄'을 거론하지 않고 특정 인사 몇몇에게 도발행위의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 김영철이 '대남 강경파'이거나 "연쇄살인범"(김진태 한국당 의원, 23일 법사위 회의석상에서)이기 때문에 북한군의 도발이 저질러진 게 아니라는 말이다.

돌이켜보면 과거 보수정권도 무력 도발을 자행했던 김정일·김정은 정권을 대화 상대로 인정했다. 그게 좋아서가 아니라, 달리 답이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심지어 천안함·연평도 사건이 발생한 이듬해(2011년)에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북한과 비공개 접촉을 가졌다. 결국 북한이 비공개 접촉 사실을 폭로하며 대화가 무산됐지만, '그' 이명박 정부조차 천안함 사태 1년여 만, 연평도 포격도발 반년 만에 북한과의 대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반증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김정은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고, 2015년 1월 신년기자회견에서는 "남북 정상회담도 (평화통일에) 도움이 된다면 할 수 있다. 전제조건은 없다"고까지 했었다.

이런 한반도 분단의 현실을 무시하고 '김영철=천안함 주범=살인자'라는 도식을 앞세워 여론몰이 선동에 나서는 것은 한반도의 긴장 완화와 평화 구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무책임한 자세다. 이런 주장이 굳이 가져올 수 있는 이득이 있다면, 주장하는 자들에게 정치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정도일까. 구태의연하지만, 영화 <강철비>의 주인공들이 말하듯 "분단국가의 인민은 분단 그 자체가 아니라 분단을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이용하는 자들에 의해 더 고통받는다." 

천안함 사태로 가족·친지를 잃은 유족들의 울분을 십분 이해한다. 8년 전 정부와 여론이 북한과 김영철을 지목한 이상, 유족들에겐 김영철이든 김정은이든 용서할 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일 수밖에 없다. 책임있는 정부라면 이들의 상처를 다독여야 마땅하다. 사안의 성격상 김영철의 방한 경위를 사전에 알리고 이해를 구하기가 어려웠더라도, 이제부터라도 유족들을 만나 양해를 구하는 게 옳다. 그게 통합을 지향하는 정부의 마땅한 자세다.

그러나 김영철에 대해 '사살'이며 '체포'를 운운하는 일부 보수야당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나라의 안보와 평화를 책임져야 할 집권당이어도 같은 주장을 할 수 있는지 돌이켜 살펴볼 일이다. (☞관련 기사 : 한국당, 4년 전엔 김영철 회담 "바람직하다"더니…) 김영철을 '사살'해야 한다면, 김영철에게 그런 지시를 내렸을 김정일과 정상회담을 추진한다는 것도, 김정일의 계승자 김정은과 마주앉아 대화를 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북한이 나쁘다고 비난만 하는 것은 필부도 할 수 있는 쉬운 일이다. 영원토록 야당만 할 게 아니라면, 수권 능력이 있는 정당으로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일 때다. 


김영철은 정말 '천안함 폭침 주역'인가?
북한은 왜 '천안함 논란' 김영철 카드를 꺼냈나?
2018.02.22 17:05:09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에 참석할 대표단 단장으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겸 중앙위 부위원장을 지목해 22일 우리 측에 통보했다. 

김 부위원장은 지난 2010년 3월 발생한 천안함 침몰 사건을 일으킨 핵심인물로 지목된 인사다. 천안함 침몰을 둘러싸고 북한 소행설과 그의 연루설이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 정부 주도 조사단과 보수언론이 그렇게 규정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보수 정부가 주도한 조사 결과와 달리 과학적으로는 천안함 침몰 원인이 입증되지 않았다. 2010년 7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천안함 침몰에 관한 성명을 발표하면서 "천안함 침몰을 초래한 공격을 규탄한다"고 하면서도 북한이 천안함 침몰에 책임이 있다고 결론 내린 한국 정부 주도의 조사 결과를 인용하지는 않았다. 북한 폭침설의 근거가 된 북한 잠수정이나 '1번 어뢰'에 대한 언급도 당연히 없었다. 국제사회의 시각에서 보면 천안함 침몰은 '미제 사건'이라는 얘기다. 

다만 지난 2015년 3월 25일,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이던 문 대통령이 천안함 침몰 5주년을 맞아 "북한의 잠수정이 감쪽같이 들어와서 천안함을 타격한 후에 북한으로 복귀했다"고 밝히면서 '북한 소행설'에 대한 정치권의 합의는 이뤄졌다. 현재 청와대와 정부가 북한에 의한 폭침론은 인정하면서 '김영철 주도설'에만 선을 긋는 이유다. 

조명균 통일부장관은 이날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천안함 도발 당시 국방부가 구체적인 사람에 대한 책임소재에 대해 구체적인 확인을 하기 어렵다고 답변한 바 있다"며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 사건이 일어난 이후 국회에서 많은 토론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당시 국방부가 밝힌 내용을 확인했다"고 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천안함 사건 뒤 조사를 했을 때 주역이 누구였는지 조사 결과 발표에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그래도 문재인 정부로선 부담스러운 인사의 방한이다. 김 부위원장은 지난 2010년 8월 오바마 행정부 당시 핵무기 개발 자금 차단을 위한 대북제재 행정명령에 의해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부위원장이 미국의 독자 제재 대상이고 대한민국의 제재 대상이기는 하다"면서도 "올림픽의 성공을 위해, 폐막식 참가를 대승적 차원에서 받아들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노규덕 외교부 대변인도 "평창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데 있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틀을 준수한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기본 입장"이라며 "이에 따라 이번 북한의 고위급 대표단 방남도 이런 틀 안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미국 등과 긴밀히 협의 중에 있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은 곧바로 공격적인 논평을 냈다. 전희경 대변인은 "문재인 정권이 천안함 폭침의 주범인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을 맞이하겠다고 나섰다"고 반발했다. 

그는 "북한이 감히 김영철을 폐막식에 고위급대표단 단장으로 파견하겠다는 후안무치한 발상을 하게 한 것은 그동안 북한 해바라기에, 굴종과 굴욕을 밥 먹듯이 해온 문재인 정권이 불러들인 희대의 수치"라고도 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김 부위원장 방남과 관련해 이날 오후 긴급 의원총회를 소집해 김 부위원장을 "철천지 원수", "말을 섞지 못할 불구대천의 상대"라고 규정했다. 또한 문재인 정부를 향해 "이 정권은 정말 친북 주사파 정권이거나 아무런 생각이 없는 무뇌아 정권"이라고 비난하며 "문재인 정권의 작태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도 했다.

이처럼 남남갈등이 훤히 예상되는 김 부위원장을 대표단장으로 선택한 북한의 의도는 매우 전략적이다. 일차적으로는 그의 남북대화 경험이다. 김 부위원장은 1990~1992년 열린 제1~8차 남북 고위급회담 북측 대표,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의전경호 실무자접촉 수석대표, 2006년 제3~7차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북측대표, 2007년 제2차 남북국방장관회담 북측 대표 등을 맡은 바 있다.

또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을 통해 문 대통령의 방북을 요청한 데 이어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우리 정부의 진정성을 타진하기 위한 포석으로도 보인다.

보수진영의 반발을 무릅쓰고 우리 정부가 김 부위원장 일행의 방남을 수용키로 한 배경도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열린 남북 관계 개선의 모멘텀을 이어나가려는 고심으로 풀이된다. 우리 정부가 먼저 북한에 대승적 차원의 진정성을 보임으로써 향후 북미 대화 중재를 위한 지렛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 부위원장과 만남이 예상되는 조명균 장관은 "많이 남지 않은 시간 속에 북미 대화를 이끌어내야 하는데 남북 관계를 통해 북미 대화를 시작하도록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면서 "북한에서 남북대화를 총괄하는 김영철 같은 사람과 마주앉아 얘기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계기"라고 설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부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과도 만날 가능성이 높다"며 별도의 회동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다만 김 부위원장의 방남을 계기로 북미 접촉이 급진전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김 부위원장 일행은 25일 평창올림픽 폐막식에서 미국 대표단을 이끄는 이방카 백악관 선임고문과 조우할 것으로 보이지만, 청와대는 동선이 겹칠 뿐이라는 설명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이방카 고문과) 만날 기회가 없다"며 북미 접촉을 위한 중재 노력에 대해서도 "이번엔 그런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평창 올림픽 개막식 당시,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김여정 부부장의 고위급 접촉 자리를 마련했던 것과 같은 물밑 중재는 없을 것이란 의미다. 

하지만 이방카 고문(23일~26일)과 김 부위원장(25일~27일)의 방남 기간이 겹치는 만큼, 폐막식을 전후해 우리 정부가 양측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있다. 올림픽이라는 유연한 외교 공간에 모인 북미 고위급 인사들을 직접 상대하며 북미 대화를 촉진시킬 사실상 마지막 기회다. 

조명균 장관은 "우리 정부로서는 북미간 대화가 시작될 수 있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긴 하지만 구체적인 전망은 이르다"고 했다. 

조 장관은 그러나 "통일부가 상대하는 북한측 대표단에게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라도 북미 대화를 시작하는 게 필요하다고 개막식 고위급 대표단에게 여러차례 밝혔다"며 "이번에도 같은 입장에서 북측에 전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