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통일 문제

'핵단추의 난'이 보여주는 것

일취월장7 2018. 1. 4. 11:59

'핵단추의 난'이 보여주는 것

[정욱식 칼럼] 핵 시대의 쌍생아 트럼프·김정은 닮은꼴 '네 가지'
2018.01.03 17:07:11 
    
2018년 들어서도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 '절대 무기'를 둘러싼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다. 2017년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화두였다. 김정은은 작년 신년사에서 ICBM 개발이 "마감 단계"에 있다고 했고, 트럼프는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응수했었다.

올해에는 "핵 단추"가 등장했다. 먼저 김정은이 "미국은 결코 나와 우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걸어보지 못한다"며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으며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는 것, 이는 결코 위협이 아닌 현실임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위협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이틀 후인 2일(현지 시각) 자신의 트위터에 "나는 김정은이 가진 것보다 더 크고 강력한 핵 단추가 있다는 사실을, 식량에 굶주리고 고갈된 정권의 누군가가 그에게 제발 좀 알려주겠느냐"고 응수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내 버튼은 작동도 한다!"

핵보유국 지도자들이 자신의 책상 위에 핵 단추가 있다고 공개적으로 자랑하듯 말하는 것부터가 대단히 이례적이다. 이는 핵무기는 절대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류 사회의 '핵 금기(nuclear taboo)'를 건드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자칫 우발적인 핵전쟁의 위험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김정은과 트럼프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들이야말로 군사적인 힘, 특히 핵무기에 의한 평화를 신봉하는 '핵 시대의 쌍생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정은과 트럼프의 핵 독트린을 비교해보면 싱크로율이 100%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크게 네 가지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오전 9시(평양 시각)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닮은꼴 '네 가지' 

먼저 북한과 미국 모두 핵무기를 국가안보의 중추로 삼으면서 그 비중을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김정은은 신년사에 "지난해 우리 당과 국가와 인민이 쟁취한 특출한 성과는 국가 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을 성취한 것"이라며 "그 어떤 힘으로도 그 무엇으로도 되돌릴 수 없는 강력하고 믿음직한 전쟁 억제력을 보유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핵무력을 가리켜 "평화수호의 강력한 보검"이라고 일컬었다. 

이에 질세라 트럼프도 핵무기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2017년 12월에 발표된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를 보면 이러한 내용을 잘 알 수 있다. 보고서에선 "핵무기는 지난 70년 동안 미국 국가안보전략의 사활적인 목표에 복무해왔다"며 핵무기를 국가안보전략의 중추로 삼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특히 "미국은 핵 삼축 체계와 미국이 해외에 배치한 전역(戰域) 핵 능력에 의해 제공되는 신뢰할 만한 억제와 확신 능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밝힌 부분이 주목된다. 이는 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전략 폭격기뿐만 아니라 유럽에 배치한 B61 핵폭탄도 유지·강화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해외 배치 핵무기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냉전 종식 이후 처음이다. 

둘째는 핵무기 증강 및 현대화 계획이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이미 그 위력과 신뢰성이 확고히 담보된 핵탄두들과 탄도로케트들을 대량생산하여 실전배치하는 사업에 박차를 가해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연구개발 및 시험 단계에서 생산 및 배치 단계로 넘어가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셈이다.  

특히 "적들의 핵전쟁 책동에 대처한 즉시적인 핵반격 작전 태세를 항상 유지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밝혀 '경보 즉시 발사(launch on warning)' 태세도 구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 역시 핵무기 현대화 계획을 분명히 하고 있다. 특히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이 핵무기에 대한 투자와 비중을 줄여왔다고 비판해, 핵전력 증강 의사를 강하게 암시했다.

셋째는 '모호한' 핵무기 사용 독트린이다. 북한은 이번 신년사를 비롯해 여러 차례에 걸쳐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책임 있는 핵강국으로서 침략적인 적대세력이 우리 국가의 자주권과 리익을 침해하지 않는 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나라나 지역도 핵으로 위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왔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북한이 핵무기 선제 불사용 정책을 선언한 것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이렇게 해석하는 데에는 무리가 따른다. 우선 북한이 조건으로 제시한 "침략적인 적대세력이 우리 국가의 자주권과 리익을 침해하지 않는 한"이라는 표현 자체가 대단히 모호하고 추상적이다. 또한 국제 규범으로 통용되는 핵무기 선제 불사용 정책은 "상대방이 먼저 핵무기를 쓰지 않는 한"이라는 구체적이고도 엄격한 조건 하에서 성립된다.

북한의 핵 사용 독트린은 2013년 4월 1일 최고인민회의 법령으로 제정된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한 법'에 그 내용이 비교적 상세히 담겨 있다. 일반적으로 핵 사용 독트린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핵보유국을 상대로 한 전략이고, 또 하나는 비핵국가를 상대로 한 것이다.  

핵보유국 간의 독트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핵무기 선제 불사용(No First Use) 정책을 채택하고 있느냐의 여부이다. 비핵국가에 대해서는 소극적 안전보장(Negative Security Assurance), 즉 핵무기 사용 및 사용 위협을 하지 않겠다는 정책에 조건을 다느냐의 여부가 중요하다. 

전자와 관련해 북한은 "적대적인 다른 핵보유국이 우리 공화국을 침략하거나 공격하는 경우 그를 격퇴하고 보복타격을 가하기 위하여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의 최종명령에 의하여서만 사용할 수 있다"고 적시했다.  

이는 북한이 먼저 핵무기를 사용해 다른 핵보유국을 공격하지는 않겠지만, 핵보유국이 핵무기는 물론이고 비핵무기로 북한을 침략하거나 공격해오더라도 핵무기로 보복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후자와 관련해서 북한은 "적대적인 핵보유국과 야합하여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침략이나 공격행위에 가담하지 않는 한 비핵국가들에 대하여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핵무기로 위협하지 않는다"고 적시했다. 일종의 '조건부' 소극적 안전보장이다. 이는 핵보유국인 미국의 동맹국들이자 비핵국가들인 한국과 일본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볼 때, 북한이 핵무기 선제 불사용을 천명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평화를 사랑하는 책임 있는 핵강국"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려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주도의 '비핵' 공격에도 핵 보복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억제력을 과시하려는 욕구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핵 사용 독트린은 어떨까? 미국은 단 한 번도 핵보유국을 상대로 핵무기 선제 불사용 정책을 천명한 적이 없었고, 비핵국가를 상대로 한 소극적 안전보장도 갈팡질팡해왔다.  

'핵무기 없는 세계'를 주창한 오바마 행정부조차 "미국과 동맹·우방국들의 사활적인 이익을 보호해야 하는 극단적인 환경에서만 핵무기 사용을 고려할 것"이라며, "핵보유국들과 NPT 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나라들이 미국이나 동맹·우방국들에게 재래식 및 생화학 무기 공격을 가하려는 것을 억제하는 데 있어서, 좁은 범위 내에서 미국 핵무기의 역할은 남게 될 것"이라고 밝혔을 정도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아직 핵태세 검토(NPR) 보고서를 발표하지 않아, 핵 사용 독트린의 구체적인 내용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다만 북한을 상대로 "트럼프 대통령은 점증하는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이들을 방어하기 위해 핵과 재래식 전력 등 미국의 모든 범주의 군사력을 사용할 준비가 돼 있음을 강조했다"는 2017년 11월 8일 한미정상회담 공동언론발표문의 내용이 주목된다. 

▲ 지난해 12월 31일 트럼프 대통령이 플로리다에 위치한 개인 소유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연말 파티를 열었다. ⓒAP=연합뉴스


통상적으로 미국의 안보 공약은 "확장 억제"라는 포괄적인 표현으로 언급되곤 했는데, 트럼프는 "핵 사용 준비"를 공식적·공개적으로 언급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트럼프가 적어도 북한을 상대로는 대단히 공세적인 핵 독트린을 천명했다는 점이다.

끝으로 북한과 미국 모두 핵무기 사용을 최고 지도자의 독점적인 권한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법에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의 최종명령에 의하여서만 사용할 수 있다"고 명시했고,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고 자랑하듯 말했다. 

이는 미국 역시 마찬가지이다. 트럼프가 북한을 상대로 "화염과 분노", "완전 파괴"와 같은 극언을 내놓자 미국 의회 일각에서 대통령의 독점적인 핵 사용 권한에 제동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는 것이 이러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독불장군처럼 행동하는 트럼프에게 절대 무기를 전적으로 맡겨두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라는 문제의식이 발동된 것이다.

통미통북으로 핵전쟁 예방해야 

이러한 네 가지 내용을 종합해볼 때, '싸우면서 닮아간다'는 말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제 평화나 규범보다 핵주권을 우선시하는 일방주의도 너무나 닮았다. 서로가 강력한 억제를 추구하다가 안보 딜레마를 야기하고 이것이 핵전쟁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미소 냉전 시대의 위험이 어느덧 우리 앞에도 성큼 다가선 것이다. 

이는 핵무기라는 절대 무기를 손에 쥔 지도자들 사이의 적대관계를 풀지 않는 한, '아마겟돈'이 한반도를 유령처럼 배회할 것임을 예고해준다. 그리고 통미통북을 통해 두 적대국 북한과 미국이 서로 통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적 숙제라는 것을 새삼 일깨워준다.     


"남북회담 성패, 국방부에 달려있다"
[정세현의 정세토크] "대화 모멘텀 미국 협조가 필수"
2018.01.03 10:22:16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그 어느 때보다 구체적인 메시지를 담은 신년사를 발표했다. 남북관계에 대한 원론적 차원의 언급이 아니라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표단 파견을 포함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 이를 위해 북남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사실상 대화 제의를 한 것이다. 

이를 두고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김정은 위원장이 대화 제의를 한 것이라기 보다는 "지난해 6월부터 북한에 지속적으로 보낸 문 대통령 메시지에 북한이 호응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축사에서 북한 선수단의 평창 올림픽 참석을 언급했다. 이후 7월 6일(현지 시각) 독일 쾨르버 재단 초청 연설에서도 이를 반복했고 12월 19일 미국 방송 NBC와 인터뷰에서는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까지 도발을 멈추면 한미 양국도 올림픽 기간에 예정돼있는 합동 군사 훈련을 연기하는 문제를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신년사 발표 이후 2일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오는 9일 판문점에서 고위급 남북 당국 회담을 열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정 전 장관은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신년사에서 시급하게 만날 수 있다고 밝혔기 때문에 굳이 오랜 시일을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고 본다"며 적절한 제안이었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번 회담이 성사된다고 해도 실제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의 사실상의 전제조건으로 한미 연합 군사 훈련 중단 또는 취소를 요구하고 있지만 한미 양국은 훈련의 중단 또는 취소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 전 장관은 "미국 군산복합체 입장에서는 훈련을 중단하면 무기 판매를 통한 매상 실적이 줄어든다. 한국의 방위산업 쪽도 마찬가지 입장일 것"이라며 미국이 훈련 중단이나 취소에 합의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예측했다.  

그는 "또 실제 훈련과 관련한 합의는 통일부가 아니라 국방부가 해야 하는데 참수부대 창설을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는 국방부 장관이 미국과 훈련 규모를 축소하자는 이야기를 미국과 하고 싶을까?"라고 반문했다.  

정 전 장관은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국방부에 확실한 지시를 해야 한다. 통일부 장관이 국방부 장관에게 협조를 구하는 식으로 하면 '처삼촌 벌초하듯' 일이 진행될 것"이라며 "훈련을 연기하든 축소하든 중단하든, 남북 회담의 성공 여부는 국방부가 쥐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인터뷰는 2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기존에 많은 전문가들이 예측한 대로 '미국으로 가는 남한 열차'를 탄 것 같습니다. 신년사에서 매우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며 남한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냈는데요.  

정세현 : 북한이 올해 대화 공세를 벌일 것이라는 점은 예상됐던 부분입니다. 지난해 북한은 남북관계를 틀어막고 미국과 '일전불사'(一戰不辭)의 자세로 핵과 미사일 능력을 극대화시켰습니다. 그러면서 남한과 대화든 민간교류든 응할 생각이 없다고 했죠. 실제 북한은 지난해 11월 말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급인 화성-15형을 시험 발사한 뒤 '국가핵무력'이 완성됐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한 달 정도 지난 올해 1월 1일 대화 공세를 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신년사에서 굉장히 구체적인 메시지를 보냈는데요. 남북 대화에 대한 전반적인 방향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평창 동계올림픽을 직접 언급하면서 대표단을 파견할 용의가 있고 남북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렇게 구체적인 메시지를 보낸 배경에는 당장 1월 29일에 평창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단 엔트리가 마감된다는 시일의 문제도 있어 보입니다.

어쨌든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신년사에서 시급하게 만날 수 있다고 밝혔기 때문에 남한 정부 입장에서도 굳이 오랜 시일을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고 봅니다. 신년사 발표 다음날인 오늘(2일) 북한에 고위급 회담을 제안한 것은 적절했다고 봅니다.

그런데 북한이 신년사를 통해 평창 올림픽 참가에 대한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사실 이 문제를 꾸준히 이야기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6월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축사에서 북한 선수단의 평창 올림픽 참석을 언급했습니다. 이후 7월 6일(현지 시각) 독일 쾨르버 재단 초청 연설에서도 이야기했고 12월 19일 미국 방송 NBC와 인터뷰에서는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까지 도발을 멈추면 한미 양국도 올림픽 기간에 예정돼있는 합동 군사 훈련을 연기하는 문제를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김정은의 이번 신년사는 지난해 6월부터 북한에 지속적으로 보낸 문 대통령 메시지에 북한이 호응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정부는 고위급 회담 제의에서 회담의 격이나 의제를 상당히 열어둔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 때문에 누가 남북 수석대표가 될 것이냐를 두고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정세현 : 회담의 수석대표는 장관급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1990년대 초에 열렸던 총리급 회담에 대해 남한은 남북 총리급, 북쪽은 북남 고위급 회담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총리급 회담을 하자는 제안을 한 것은 아니라고 보여집니다. 남한은 통일부 장관이 회담 수석대표를 맡고 평창 올림픽과 한미 연합 군사 훈련 등을 논의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방부 등이 회담대표로 함께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조 장관이 남북의 '상호 관심사'를 의제로 했기 때문에 평창 문제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안이 회담 테이블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북한이 우리 쪽에 제기할 의제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프레시안 : 하지만 아직 북한의 공식 응답은 없습니다. 판문점 연락 채널도 받지 않고 있는데요. 김정은 위원장이 시급하게 남북 당국 회담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연락을 받지도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세현 : 북한은 일단 회담 수석대표를 총리급으로 할지, 장관급으로 할지 고민하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 쪽에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고위급 회담을 제안했다는 점을 북한이 잘 읽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의도를 북한이 읽었다면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나와서 조명균 장관과 장관급 회담을 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회담 의제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을 겁니다. 당장 평창올림픽 참가를 위한 체육회담과 지난해 7월 남한이 제안한 이산가족 상봉과 군사회담 모두를 받을 것이냐, 아니면 이번 남북대화는 평화적인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만나는 것으로 한정하고 체육회담과 군사회담만 할 것이냐 등을 고민할 것으로 보입니다.  

▲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2일 북한에 고위급회담을 제안했다. ⓒ연합뉴스


남북 고위급회담, 결국 국방부에 달렸다 

프레시안 : 북한이 평창 올림픽 참가 의지를 보였지만,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이 어떻게 될지 아직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북한이 올림픽 참가를 확정지을 수 있을까요?  

정세현 : 북한은 올림픽을 계기로 군사훈련을 올해만이라도 중단시키면 자기들은 남는 장사라고 계산하고 오는 것일 겁니다. 결국 회담이 성사된다면 남한으로부터 한미 연합 군사 훈련 문제에 대한 확답을 받고 싶어 할 겁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올해 정권 수립 70돌이라는 점을 맨 앞부분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뒤에 가서 평창 올림픽을 언급하면서 '민족적 경사'라고 표현했습니다. 결론적으로 평창 올림픽과 자신들의 정권 수립일인 9.9절을 평화롭고 성대하게 치르자는 취지로 말을 꺼낸 겁니다.  

따라서 북한은 9.9절과 관련, 8월 중하순으로 예정된 또 다른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문제에 대해서도 답을 얻으려고 할 것입니다.

문제는 미국이 북한의 이러한 요구를 들어주느냐에 달려 있는데,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은 훈련 중단은 어렵다고 못을 박은 상황입니다. 따라서 북한이 남한과 회담에서 훈련 중단이라는 답을 얻어가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키리졸브/폴이글' 훈련 중단도 고려하지 않는 상황에서 UFG 훈련 중단까지 결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올해 계획된 모든 한미 연합 군사 훈련 중단'은 북한이 바라는 최대치이기 때문에 이 부분은 협상을 통해 풀어나가야 할 문제입니다.  

일단 문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이 없을 경우" 훈련 연기를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는데요. 사실 연기는 북한에게 그다지 매력적인 카드가 아닙니다.  

북한은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을 통해 받게 되는 군사적 압박뿐만 아니라, 이 훈련에 대응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훈련을 해야 하는 것에 상당히 부담을 느끼고 있습니다. 여기에 적잖은 자원이 소요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훈련이 중단이나 취소가 아닌, 연기만 된다면 북한이 받는 군사적 압력과 경제적 불이익은 그 시기만 달라지는 것이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훈련 중단이나 취소를 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훈련 규모를 축소하는 수준에서의 타협이 가능할 수 있지만, 이 역시 합의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일단 미국이 훈련 축소까지 합의해줄지 의문입니다. 한미연합사령부는 지난해 12월 20일 보도자료를 통해 "동맹국으로서 (한미 연합) 연습과 관련한 동맹의 결정을 따를 것"이라고 밝히기는 했습니다만, 실제로 훈련 내용을 건드리는 것에 동의할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훈련을 축소하면 미국 군산복합체 입장에서는 무기 판매를 통한 매상 실적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방위산업 쪽도 마찬가지 입장일 겁니다.  

또 실제 훈련과 관련한 협의는 국방부가 해야 합니다. 통일부가 나서서 미국 국방부와 훈련 문제를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런데 국방부 입장에서는 참 내키지 않는 일이 될 겁니다. 참수부대 창설을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는 국방부 장관이 미국과 훈련 규모를 축소하자는 이야기를 미국과 하고 싶을까요?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국방부에 확실한 지시를 해야 합니다. 통일부 장관이 국방부 장관에게 협조를 구하는 식으로 하면 '처 삼촌 벌초하듯' 일이 진행될 겁니다. 결국 훈련을 연기하든 축소하든 중단하든, 남북 회담의 성공 여부는 국방부가 쥐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오전 9시(평양 시각)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동맹국인 한국 고려해 융통성 발휘해야 

프레시안 : 여러 우려 요인이 있습니다만 일단 회담이 이뤄진다면 우선은 평창 올림픽에 참가할 북한 대표단 문제부터 논의가 시작되지 않을까요?

정세현 : 대표단은 북쪽에서 꾸릴 일인데 선수가 많지는 않을 겁니다. 북한이 올림픽에 출전하려면 '와일드카드'를 이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선수단 외에 응원단이 올 가능성도 있습니다.  

북한의 대표단 중에 어느 정도의 인사가 내려올 것인지를 두고도 말이 많이 나오는데요. 일단 최휘 북한 국가체육지도위원장 정도가 방문할 것 같고,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정도가 방문할 것으로 보입니다. 일부에서는 김정은의 동생인 김여정 선전선동부 부부장이 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던데 아무리 동생이라도 직책에 맞는 역할이 있기 때문에 대표단의 단장으로 내려오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들은 결국 군사 문제에 대한 남북간 협의 결과에 따라 연동되기 때문에 섣불리 예단하기는 어렵습니다.  

프레시안 : 정부가 '관심사항'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면서 의제에 사실상 제한을 두지 않았는데,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도 논의될까요?

정세현 : 남북회담이 열리고 남북관계가 진전된다면, 그 과정에서 북한은 반드시 이 주제를 꺼낼 겁니다. 특히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에 발표된 5.24조치 문제를 먼저 제기할 것으로 보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원한다면 남조선의 집권여당은 물론 야당들, 각계각층 단체들과 개별적 인사들을 포함하여 그 누구에게도 대화와 접촉, 래왕(왕래)의 길을 열어놓을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이것 역시 민간인의 방북을 제한하고 있는 5.24조치를 염두에 두고 한 발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어쨌든 정부 입장에서는 정말 오랜만에 북한과 대화의 실마리를 잡았으니까 계속 이걸 놓치지 말고 가져가야 할텐데요.  

정세현 : 문재인 정부가 이 불씨를 잘 살려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핵심은 미국의 협조입니다. 사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압박과 제재를 계속 유지하려고 하는데 북한의 대화 제의에 남한이 호응하면서 대화국면으로 넘어가면 압박과 제재에 김빠지는 느낌이 들겁니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이러한 움직임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두고 미국과 중국‧러시아가 최근 갈등을 보이고 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 선박들이 북한에 선박 이전 형태로 정유 제품을 공급했다는 의혹을 미국이 제기하자 중국과 러시아는 그런 일이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상임이사국들이 대놓고 갈등을 드러내면 제재 결의에 구멍이 나고 바람이 샐 수 있습니다.

제재와 압박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위와 같은 사례가 또 발생하면 중국이나 러시아는 추후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 제재 결의안에 협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북한이 인공위성이라는 구실로 ICBM급 미사일을 또 쏘면 국제적인 제재가 필요한데, 미국이 이런식으로 하면 중국과 러시아가 협조해줄까요? 이렇게 되면 유엔 안보리 차원의 제재는 의미가 없어지는 겁니다.

프레시안 : 북한이 제재와 압박에 굴복해 남한에 손을 내밀었다는 관측도 있는데요.

정세현 : 원인이 어디에 있든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미국이 남한을 지지하고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의 규모를 축소해주고 남북회담의 지속성을 보장해 준다면 대화 분위기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한국이 북한을 설득하고 그 결과를 미국에 전하면서 미북 간 접점을 만들면 양자회담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압박과 제재에 대해 북한의 붕괴가 아니라 대화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여러 번 설명해왔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은 북한이 대화 테이블에 나오도록 한국 정부에 남북관계를 좀 잘해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는 겁니다. 미국 정부가 봄과 가을 훈련을 축소하든지 연기하든지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융통성을 발휘해주기도 해야 합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이재호)


아베, 평창 올림픽 불참의 후과 생각해야 

레시안 : 그런가하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8일 "이 합의(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다시금 분명히 밝힌다"면서 사실상 파기 또는 재협상 의사를 밝혔는데요. 그러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평창 올림픽 참가를 위안부 합의와 연계시키면서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정세현 : 아베 총리가 지금 당장은 저렇게 강경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미국도 지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평창과 가장 가까운 나라인 일본의 총리가 참석하지 않는다면 국제사회에서 아베 총리의 행동이 어떤 평가를 받을까요? 아베 총리가 잘 생각해봐야 하는 부분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위안부 합의와 관련, 피해자들 입장에서 문제를 검토하겠다고 공언하고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문 대통령뿐만 아니라 당시 대선에 출마한 모든 후보가 이와 유사한 입장이었습니다. 한국의 새 대통령이 누가 됐든 위안부 합의를 검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합의는 1㎜ 도 움직일 수 없다구요? 누구보다 국내 정치를 우선시하는 아베 총리가 한국 국내 여론과 정치도 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문재인 정부는 역사는 역사대로, 미래는 미래대로 분리한다는 '투 트랙' 외교를 공언하고 있습니다. 이건 과거 정부와 다르지 않은 입장입니다. 아베 총리가 이런 부분을 너무 고려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