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으로 북한 움직일 수 있을까
당근과 채찍 모두 北 도발 막지 못해 文 대통령 ‘달빛정책’ 대화와 제재 병행
이민우 기자 ㅣ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7.05.24(수) 09:06:55 | 1440호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북한은 5월14일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인 ‘화성-12형’을 발사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한 지 나흘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소식을 듣고 곧바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무모한 도발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며 동시에 엄중히 경고한다”고 말했다. 사흘 뒤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를 방문한 자리에서도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위반하는 중대한 도발 행위”라며 “한반도는 물론이고 국제 평화와 안정에 대한 심각한 도전 행위”라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개선될 것으로 기대했던 남북관계는 더 악화될 위기에 처했다. 이를 두고 주요 언론들은 ‘달빛정책이 도전에 직면했다’고 표현했다. 달빛정책이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Sunshine policy)에 문 대통령의 영자 성(姓)인 ‘Moon’을 합성한 용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가리켜 처음 사용했다. 문재인 정부 내에서는 이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진 않았지만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달빛정책이라는 표현은 그 자체로 복잡다단한 대북관계를 그대로 함축하고 있다.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 취임 나흘 만인 5월14일 중장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시사저널 최준필·조선중앙통신 연합
文 대통령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 기조는 대화와 제재를 병행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도발에는 단호하게 대응하면서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대화 시도는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북한 또한 대화에 나서면서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을 이어가는 화전양면전술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역대 정부에서는 강도 높은 대북제재를 통한 채찍도, 대화와 지원을 통한 당근도 먹혀들지 않았다. 달빛정책으로 불리는 문 대통령의 ‘전략적 모호성’이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에게 안보 문제는 아킬레스건과도 같았다. 지난 대선 기간 문 대통령에게는 “북한을 왜 주적(主敵)이라고 말하지 못하느냐” “2007년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결정과 관련해 왜 북한의 의견을 물어봤느냐” “사드 배치에 왜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느냐” 등 색깔이 덧씌워졌다. 물론 문 대통령을 향한 색깔론은 과거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국민들은 쉽게 동요하지 않았고, 문 대통령은 단 한 차례도 선두를 내주지 않고 손쉽게 청와대에 입성했다.
대통령이 된 그에게는 이중적 과제가 주어졌다. 반대 세력 혹은 반대 세력의 논리에 설득당한 국민의 불신을 해결하는 문제다. “안보관이 불안하다”는 반대 세력에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북한의 도발 이후 대북 강경 메시지를 내놓거나 국방부 등을 방문해 대북 대비 태세를 점검하는 안보 행보에 나선 것도 반대 측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동시에 문 대통령을 청와대까지 안내해 준 지지층의 기대 심리도 충족시켜야 한다.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 세력이다. 이들 대부분은 문 대통령이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을 계승하길 바라고 있다. 문 대통령 또한 햇볕정책을 계승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조만간 판문점 연락사무소 정상화를 추진하는 등 새로운 대북정책이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도 문 대통령을 향한 기대감을 반영한 결과물이다.
안보 불안감과 햇볕정책 기대감 사이에서 탄생한 것이 달빛정책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북한의 핵 폐기에 따라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우발적 군사충돌 방지와 군사적 긴장완화를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밝혔다. 남북의 단일 시장을 만들어 정치적 통일의 기반을 구축한다는 구상은 2012년 18대 대선에서 공약한 ‘남북경제연합’ 공약과 같다. 하지만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남북관계 원칙에는 5년 전에는 없던 ‘도발 불용’이 포함됐다. 또 ‘국민과의 소통을 통한 대북정책 추진’을 강조한 것은 안보 위기 등에 대한 국민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4월 전쟁위기설까지 나올 정도로 악화된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단기적으로 중요하다”며 “미국·중국뿐 아니라 위기의 원인을 제공한 북한에 대해서도 어떠한 형태로든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 대북정책에 대한 구상과 현재 국제 정세, 북한에 대한 정보 등을 적용해 구체적인 액션 플랜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햇볕정책과 강경제재 모두 ‘실패’
북한의 위협은 한국에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됐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는 게 더 이상 특별하게 여겨지지 않을 정도다. 지난 2005년 이후 북한은 거의 매년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지난해의 경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에 성공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10월을 시작으로 지난해 9월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핵실험을 감행했다.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 반열에 오른 데 이어 운반체를 만들어 무기체계를 완성시키는 단계에 이르렀다.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의 태도로 인해 모두 좌절을 겪었다. 그동안 대북정책과 관련한 한국 정부의 일관된 목표는 한반도 비핵화였다. 1994년 1차 핵 위기 당시 제네바 합의를 통해 북한이 핵 발전 중수로를 동결하면 국제사회에서 100만kW 경수로 2기를 제공하는 등 경제 제재를 완화하기로 했다. 이어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햇볕정책이 추진됐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6·15남북공동성명을 채택했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2002년 미국 정부가 중유 제공을 중단하고, 북한은 이에 반발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을 추방하고,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다. 이 같은 정세 속에서 등장한 노무현 정부는 ‘동북아 균형자론’을 내세우며 개성공단 개발, 남북 철도 연결 등 적극적인 경제 교류에 나섰지만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반기를 들며 등장한 보수 정권 또한 북핵 사태의 해결책을 찾는 데 실패했다. 오히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 북한의 연이은 군사 도발로 남북관계는 더 악화됐다. 5·24 조치로 인해 대북제재는 강화됐고 남북 간 대화통로는 좁아졌다. 급기야 인도적 지원조차 끊기고, 남북 교류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개성공단마저 가동이 중단됐다. 북한의 도발이 거듭될수록 더 강력한 대북제재에 나선다고 했지만 추가적인 제재 수단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미국 내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더 쓸 카드가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른바 진보 진영에서 주장하는 ‘대화와 협력’도, 보수 진영에서 주장하는 ‘강경한 대북제재’도 북한의 핵개발을 막을 수는 없었던 셈이다.
군사 전문가인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하나의 정책을 일관되게 할 수 있는 기회조차 별로 갖지 못했다”며 “미사일 발사 등 한 차례의 도발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비전과 행동계획, 그것을 수행할 전략적 주체들을 정비해 장기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14일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해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내놨다. © 뉴시스
北·美 태도 따라 정책 달라진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정책인 달빛정책의 모호성은 동시에 전략적 선택의 폭이 넓다는 점을 의미한다. 북한의 태도에 따라, 초기 남북관계가 어떻게 설정되느냐에 따라, 국제적인 대응이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도발이 지속되고 대북 압박에 대한 국제사회의 요구가 커질 경우, 달빛정책의 무게중심은 강경한 대북 압박 쪽으로 기울어질 공산이 크다. 군 관계자는 “북한은 핵실험이나 장거리미사일 발사를 남북관계와는 별개로 보고 진행하지만 우리나라는 북핵 미사일 위협과 남북대화를 구분해서 바라볼 수 없다”며 “북한이 전략적 도발을 하면 남북대화 분위기는 냉각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국제사회와의 공조가 필수라는 점을 지적한다. 북한에 대한 지원이나 압박 모두 국제사회와의 공조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제2차관을 지낸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은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완성시키면 사실상 북핵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어야 2~3년이기 때문에 좌고우면하지 말고 국제사회와 발을 맞춰 뭔가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내면서 상황을 안정적이면서 주도적으로 이끌고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과 미국은 본격적인 협상을 위한 힘겨루기를 계속 이어오고 있다”며 “정부는 한·미 동맹과 남북관계를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한 공조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행히도 ‘트럼프 리스크’는 대북정책에 있어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일련의 메시지 속에서 북한의 변화에 따라 대화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어서다. 문 대통령의 달빛정책의 목표와 방식 면에서 상당 부분 조율이 가능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리언 시걸 미국 사회과학연구위원회 동북아안보협력 프로젝트 국장은 “(미국이) 문재인 대통령과 대북정책에서 불협화음을 낼 것이라고 예상한 전문가들은 놀라고 있을 것”이라며 “한·미는 지금으로서는 같은 성가(聖歌)를 부르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다만 외교정책의 다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노무현 정부에서 평화군축센터 소장을 맡았던 서보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는 “북한 핵 문제가 상당히 심각한 단계에 있고 국제적인 제재 국면에 있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표방했던 새로운 남북관계의 발전을 어떤 방식으로 또 주변 국가들과 어떻게 협력하면서 열어나갈 것이냐가 관심을 끌고 있다”며 “한쪽으로 쏠려 있는 외교정책을 다변화함으로써 우리 국익을 극대화할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안정에도 기여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북핵 문제 해결의 입구로 들어가려면
북핵 문제 해결의 입구로 들어가려면 한·미 군사훈련 중단과 북핵 동결을 교환해야 한다. 북핵을 돌이키지 못하게 하는 것은 국제관계의 과실이지, 경제제재가 아니다.
잠깐 한숨을 돌린 안보 위기와 경제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북한의 핵전략은 정확히 ‘상호 확증 파괴(MAD:Mutual Assured Destruction)’를 따르고 있다. 냉전 시대 강대국의 행동 원리를 이론화했다는 미어샤이머 유의 공격적 현실주의나 셸링의 게임이론은 오히려 북한의 행동, 벼랑 끝 전술을 정확히 묘사해준다. 북한의 행동은 순수하게 안보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당 안에 모든 정치행위를(심지어 경제도) 흡수했고, 또한 주체사상이라는 이데올로기가 거의 완벽하게 이런 통제 시스템을 합리화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훨씬 더 숫자도 많고 강력한 중국의 핵무기는 걱정하지 않는 것일까? 미국의 핵무기는? 그들이 우리를 공격할 이유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국제 규범이나 경제적 이해관계, 국내 정치 등이 관련되어 있다. 이런 사고를 경제 쪽으로만 단순화하면 페리 전 국방장관이 주창하는 ‘상호 확증 경제파괴(MAED:Mutual Assured Economic Destruction)’가 된다. 잃어버릴 게 많으면 서로 공격하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중국과 미국이 으르렁거리면서도 쉽게 보복하지 못하는 이유다. MAD와 MAED, 이 둘은 어떤 관계일까?
트럼프에게 사드는 ‘목표’ 아닌 ‘협상의 지렛대’
그동안의 역사를 보나 북한의 요구를 보나 북핵 문제 해결의 입구로 들어가려면 한·미 군사훈련 중단과 북핵 동결을 교환해야 한다. 출구는 일단 한반도 비핵화일 텐데, 그 조건은 평화협정 체결 등 북한이 안보 위험을 걱정하지 않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여기까지 어떻게 이를 것인가?
문재인 정부는 이 과정을 주도해야 한다. 이미 훌륭한 사례가 있다. 한반도 평화의 모범적 사례로 일컫는 ‘페리 프로세스’는 기실 ‘임동원 프로세스’였다. 하지만 이제 그 내용은 한층 발전해야 한다. 원칙부터 말하자면 일단 입구에 들어선 뒤엔 ‘최대의 압박 그리고 관여’가 아니라 ‘최대의 혜택 그리고 관여’여야 한다. 그 혜택은 국제적이어야 한다. 북핵을 돌이키지 못하게 하는 것은 국제관계의 과실이지, 경제제재가 아니다. 말하자면 국제판 햇볕정책이다.
입구에 이르는 첫 단추는 사드 배치의 철회 또는 축소(북한 지역만 감시하는 레이더로 교체)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직접적 목표는 되도록 이른 시점에 협상을 시작해서 미국 내외의 각종 비판을 잠재우는 것이고, 사드 배치는 오바마 정부의 결정이다. 트럼프에게 사드는 협상의 지렛대이지 목표가 아니다.
사드 배치의 철회나 축소는 중국에게는 크나큰 선물이다. 중국은 그 비용을 기꺼이 치르려 할 것이다. 우리는 바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활용해 북한의 철도와 도로망을 현대화하고, 나아가 송유관과 가스관 그리고 통신망을 까는 프로젝트를 제안할 수 있다. 물론 현재 상태로 북한은 어떠한 국제기구에도 가입할 수 없지만 중국과 한국, 러시아와 아세안(ASEAN) 국가들이 합의한다면 AIIB에는 가입할 수 있다. 북한의 국제관계가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다. 트럼프 역시 북핵 해결의 비용을 중국 주도의 AIIB가 대는 것이니 반대할 이유가 없고, 무엇보다도 한국 내부의 ‘퍼주기’라는 비판도 설 자리가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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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Photo 2014년 10월24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AIIB 설립 양해각서 체결식이 열렸다(위). 시진핑 주석(가운데 손 든 이)은 AIIB를 출범시키는 데 성공했다. |
AIIB 가입과 북한 인프라 개발에 따른 북핵 해체의 진행 정도에 맞춰 북·일 관계 정상화와 경협 자금(전쟁배상금)도 동원할 수 있다. 비핵화의 출구에는 북·미 관계 정상화가 있을 테고, 이후에는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지원이 기다릴 것이다.
한국이나 북한 모두 중국과 미국 사이에 끼어 있다. 외따로 떨어지면 아무리 동맹을 맺는다 해도 연루와 방치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 아세안의 전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냉전 시대의 ‘제3세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중국과 미국이 이들 나라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둘 사이의 완충지대에 구애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통일과 관련한 장기 목표도 새롭게 세워야 한다. 예컨대 남북이 모두 북유럽 복지국가 체제를 목표로 각각 개혁에 나선다면 언젠가는 훨씬 편하게 통일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사드 감정 잦아드나
문재인 정부 들어서자 중국의 한한령 해제 징후
중국 단둥=김지영·유지만 기자 모종혁 중국 통신원 ㅣ young@sisajournal.com | 승인 2017.05.24(수) 11:29:51 | 1440호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때문에 장사하기 힘들다.”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단둥(丹東)에서 북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생필품 등을 판매하는 대형 상점 여주인이 한 말이다.
이 상점에선 한국산 압력밥솥부터 그릇 등 주방용품과 옷, 구두 등을 판다. 이 상점 여주인은 5월16일 취재진을 만나 “지난 3월쯤부터 한국에서 물건이 잘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중국이 (한국의) 사드 배치 때문에 세관 통관을 어렵게 해 놨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됐으니까 사드 문제도 잘 해결될 것으로 본다”며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실제로 사드 배치 후 중국의 대(對)한국 제재는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중국 내 한국 기업 제재뿐 아니라 무역 장벽도 높여 놨다. 당장 북·중 교역의 중심지인 단둥 지역 경제에도 사드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한국 물건을 선호하는 북한 사람들에게 공급해야 할 물건이 제때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5월16일 중국 랴오닝성 단둥에서 북한으로 들어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평안북도 번호판을 단 북한 화물트럭 © 시사저널 유지만
대북 보따리상 대부분 ‘개점휴업’
2010년 천안함 사태로 취해진 대북 교역 중단 조치인 ‘5·24 조치’ 이후에도 한국 상품은 ‘음성적으로’ 북한에 들어간다. 그 역할을 하는 이들은 ‘보따리상’이다. 이들은 인천항에서 배로 중국 단둥항까지 물건을 싣고 와서 단둥 상인들에게 넘긴다. 이 물건들이 단둥에서 북한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사드 배치 논란이 일면서 중국 세관이 이전보다 엄격하게 통관 절차를 처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세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단둥 현지인에 따르면, 사드 배치 논란 이전까지 한국인 보따리상은 한 번에 보통 100kg 이상씩을 단둥으로 갖고 왔다. 보따리상 100명이 한꺼번에 갖고 가는 한국산 가전제품과 생필품은 최소 10톤에 달했다.
하지만 사드 논란 이후 중국 세관이 물건 수량을 제한했고, 통관 절차도 까다롭게 하면서 보따리상이 중국으로 가져갈 수 있는 물건 수량이 대폭 줄었다. 물량이 ‘대량’에서 ‘소량’으로 줄면서 수지타산이 안 맞자 대부분의 보따리상은 ‘개점휴업’ 상태다. 그 여파가 단둥 지역 경제에도 미치고 있다.
사드 여파는 경제 부문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중국에서 한국 드라마 등 한류 문화도 차단하고 있다. 단둥에서 만난 20대 여성은 “전에는 한국 드라마를 핸드폰으로 마음껏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볼 수 없다. 우리(중국) 정부가 보지 못하도록 막아놨기 때문이다”며 아쉬워했다.
그런데 중국의 경제, 문화 제재 조치가 조금씩 해제되는 징후도 나타나고 있다. 5월13일 보석 전문기업 테시로(Tesiro)의 선둥쥔(沈東軍) 사장은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 흥미로운 소식을 전했다. 한국 배우 이종석과 중국 배우 정솽(鄭爽)이 주연한 한·중 합작 드라마 《비취연인(翡翠戀人)》이 조만간 정식 방영된다는 것이었다. 《비취연인》은 지난해 6월 촬영을 마쳤고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광전총국)의 심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한·중 합작에다 대표적인 한류 스타가 출연해 방송이 계속 미뤄졌었다. 테시로는 《비취연인》 제작에 투자한 기업 중 하나다.
다음 날 제작사 씨에이치수박의 최세연 대표는 “창작 뮤지컬 《빨래》가 6월23일부터 7월9일까지 베이징 다인(大)극장에서 공연된다”고 발표했다. 《빨래》는 달동네를 배경으로 강원도에서 상경한 젊은이, 몽골 출신 이주노동자 등 이웃과의 애환 어린 서울살이를 그린다. 최 대표는 “현지 배우와 중국어로 제작하되, 서울 달동네와 원작 인물은 그대로 살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틀 뒤에는 뮤지컬 《마이 버킷 리스트》와 《빈센트 반 고흐》가 각각 8월과 9월 중국에서 라이선스 공연을 하기로 확정했다.
지난해 하반기 이래 지속됐던 중국 정부의 한한령(限韓令·한국 문화콘텐츠 금지 조치) 빗장이 조금씩 내려지고 있다. 5월12일 중국 ‘차이나데일리’는 “한국인 재즈 피아니스트가 베이징에서 팬들을 매료시켰다”고 보도했다. 전날 배세진씨가 가진 연주회를 소개한 것이다. 차이나데일리는 중국의 대표적인 관영 영자지다. 사드 배치 결정이 난 뒤 관영매체는 한국 문화예술 관련 보도를 거의 하지 않았다.
심지어 순수 예술인의 공연은 줄줄이 취소됐다. 2월 소프라노 조수미씨는 비자를 받지 못해 광저우(廣州), 베이징, 상하이에서의 공연을 접었다. 3월 피아니스트 백건우씨도 같은 이유로 구이저우성(貴州省) 구이양(貴陽) 심포니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취소했다. 4월에는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지영씨가 상하이발레단과 함께하려던 《백조의 호수》 공연이 무산됐다. 이처럼 한한령의 칼날은 한국을 겨눴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중국 내 기류가 급변하고 있다. 3월초 중국 3대 음원사이트에서 사라졌던 한국 차트가 다시 등장했다. QQ뮤직은 이전처럼 한글로 가수 이름과 노래명을 복원했다. 비록 최대 음원사이트인 바이두(百度)뮤직과 3위인 왕이(網易)뮤직은 여전히 케이팝(K-POP)을 빼놓고 있지만, 이들도 QQ뮤직의 전철을 따를 공산이 크다. 실제 중국 음악 업계에선 케이팝 가수들의 중국 공연을 암암리에 추진하고 있다.

중국 3대 음원사이트 QQ뮤직에 다시 등장한 한국 차트 © 시사저널 포토
한한령, 중국 문화산업 보호 조치
콘서트 기획업체 펑거성뎬(風格盛典)의 리샤오레이(李小雷) 회장은 ‘란징(藍鯨)TMT’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EXO, 방탄소년단 등 한류 가수의 콘서트를 추진 중이라 한한령이 풀리면 곧바로 콘서트를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중국에서 공연한 아이돌 그룹도 나타났다. 5월17일 한·중 합작그룹 바시티(VARSITY)의 유닛인 ‘바시티 파이브’가 베이징에서 쇼 케이스를 열었다. 비록 12명의 멤버 중 중국인 5명만 참여했지만, 쇼 케이스를 진행한 스태프 대부분은 한국인이었다.
그동안 한한령으로 인해 국내 문화산업계가 입은 피해는 막대했다. 4월16일 문화체육관광부는 “3월16일부터 4월15일까지 접수된 피해 사례는 사업계약 중단·파기 13건, 제작 중단 5건, 투자 중단 4건, 행사 지연·취소 3건, 기타 6건 등 총 31건”이라고 발표했다. 장르별로는 방송 10건, 게임 6건, 애니메이션 4건, 엔터테인먼트·음악 4건, 캐릭터 3건, 기타 4건 등이다. 문체부는 공공기관들이 운영하는 중국 사업 피해 신고센터를 통해 피해 사례를 접수했었다.
특히 중국 시장 진출을 목표로 제작됐던 드라마가 직격탄을 맞았다. 그 대표작이 SBS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사임당》)다. 《사임당》은 2004년 중국에서 드라마 한류 붐을 일으켰던 《대장금》의 히로인 이영애를 앞세워 사전 제작됐다. 한·중 동시 방송을 위해 지난해 6월 촬영을 마쳤고, 광전총국에 심의를 신청했다. 본래 SBS는 10월에 《사임당》을 방영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광전총국의 심의 결과가 나오지 않아 편성을 미뤘다. 올해 1월부터 방송됐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시청률은 떨어졌다.
이는 KBS 2TV 드라마 《화랑》도 마찬가지였다. 《화랑》은 중국 시장을 겨냥해 아이돌 스타들을 대거 주연과 조연으로 발탁했다. 비록 광전총국의 심의를 통과해 온라인 동영상 사이트인 러스왕(樂視網)에서 동시 방영됐지만, 2회만 방송된 뒤 중단됐다. 결국 《화랑》은 종영될 때까지 중국 방영은 재개되지 못했다. 이에 반해 검증되지 않은 아이돌을 기용한 여파로 인해 한동안 연기력 논란에 휩싸였다. 게다가 지지부진한 스토리 전개까지 더해져 평균 시청률은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현재로선 한한령이 완전히 해제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동안 사라졌던 송혜교·전지현 등 한류 스타가 출연한 광고가 동영상 사이트에 다시 등장했으나 TV에선 여전히 이들을 볼 수 없다. 또한 드라마, 예능, 영화 등 한국 콘텐츠가 동영상 사이트에서 업데이트되지 않고 있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전화통화에서 “문재인 대통령 당선 직후 중국 업체들에서 문의가 자주 온다”면서도 “한한령의 해제를 전제로 한 사전 접촉일 뿐”이라고 말했다.

5월3일 경북 성주군 성주골프장에 배치된 사드 발사대가 하늘을 향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차이나 리스크’ 염두에 둔 접근 필요
무엇보다 한한령은 사드 배치를 빌미 삼아 자국의 문화산업을 보호하려는 중국 정부의 노림수였던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해마다 중국 내 인터넷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지난해 동영상 사이트 시장 규모는 전년대비 53.6%나 폭증한 615억9000만 위안(약 10조422억원)을 기록했다. 인터넷방송 플랫폼 시장 규모도 150억 위안(약 2조4457억원)에 달해 전년 대비 66.7% 급증했다.
급성장하는 자국 시장을 등에 업고 연 매출액 2000만 위안 이상인 문화산업 기업 약 5만 개가 거둔 매출액은 8조314억 위안(약 1309조원)에 달했다. 비록 중국 기업의 경쟁력이 갈수록 늘어나지만, 아직 우리 업계보다는 뒤처진다. 실제 한국에서 낮은 작품성으로 질타받았던 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와 《달의 연인》이 중국 동영상 사이트에선 조회 수 각각 41억 뷰와 26억 뷰를 달성해 대박을 터뜨렸다. 따라서 한한령이 해제된다 하더라도 ‘차이나 리스크’를 항상 염두에 두는 접근법이 필요하다.
사드, 국회 비준 동의가 최선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게 바람직한 해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편법과 불법으로 점철된 사드 배치 절차를 국회에서 검증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이게 국회 비준 동의를 밟기 위한 사전 조치라면 문재인 정부가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국회 비준 동의 절차를 밟게 되면, 결론적으로 문재인 정부도 사드 배치에 찬성한다는 의미가 되고 만다. 또한 국회 의석수 분포를 볼 때, 사드 비준 동의안이 부결될 가능성도 극히 불확실하다. 사드 배치 찬성을 당론으로 정한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의 의석수를 합치면 167석으로 과반수를 훌쩍 넘기게 된다. 국민의당에서 반대나 기권이 나오더라도,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에서 찬성이 나올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존재한다. 국회 표결에서 사드 배치 찬성 결과가 나오면, '절차적 문제'는 상당 부분 해소되어도 사드가 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는 거의 고스란히 남는다는 것이다. 민주적 절차를 밟는다고 해서 무용지물에 가까운 사드의 한국 방어 실효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중국이 줄곧 제기하는 전략적 우려가 해소되어 한중관계가 정상화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미-중 사이의 사드 갈등을 즐기고 또한 부추겨온 북한의 행태가 바뀌는 것도 아니다. 즉, 한국 국익에 미치는 치명적인 영향은 국회 비준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가 타당성을 갖는다면, 문재인 정부의 사드 해법도 달라져야 한다. 해법의 요지는 국회 비준 동의는 '최후의 카드'로 남겨놓고 우선 정부 차원의 해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으로 모아진다.
정부 차원의 해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어느 일방 정부의 요청이 있을 때에는 시설과 구역에 관한 협정을 재검토하여야 한다"는 SOFA 규정에 따라, 주한미군 측에 이미 제공한 기지를 재검토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한미 양국은 SOFA 합동위원회를 열어야 하는데, 정부는 이 경로를 통해 "동맹 차원의 재논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사드 배치 절차 및 가동을 중단하자고 요구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실무적 차원의 논의와 병행해 문재인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와 정상 간 논의를 비롯한 고위급 협의도 착수할 필요가 있다. 협의의 목표는 사드 배치 '철회'나 최소한 '중단과 유보'가 되어야 한다. 크게 두 가지 잘못된 전제를 고려할 때, 이는 충분히 가능하다.
첫 번째 잘못된 전제는 사드 배치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미치는 영향이다. 이와 관련해 오바마 행정부는 사드를 비롯한 미사일 방어체제(MD)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동기를 위축시켜 "비확산에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즉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만들어봐야 사드를 비롯한 MD로 요격당할 것임을 알게 되어 핵과 미사일 개발을 포기할 것이라는 논리였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사드 배치 결정 이후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은 북핵 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과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또 하나의 잘못된 전제는 "사드는 중국과 무관하다"고 했던 오바마 정부의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자신의 "핵심이익을 침해한다"는 중국의 반발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조차도 사드가 중국과 '유관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우려를 이해하고 있다"거나 "중국의 반대를 잘 알고 있다"고 밝혀왔는데, 이는 "사드는 중국과 무관하다"고 밝혔던 오바마 행정부와 분명 달라진 입장이다.
사드 배치 강행은 북한으로 하여금 '2차 공격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어긋난 결의를 강화시켜 당장 급한 북핵 동결마저도 어렵게 할 공산이 크다. 또한 북핵 해결에서 큰 역할을 해야 할 중국과의 갈등을 심화시켜 한-미-중 대북 공조 구축을 어렵게 할 것이다. 이는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의 이익도 크게 손상시킨다.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점들에 주목해 트럼프 행정부와 긴밀히 소통해야 한다. 오바마 행정부의 잘못된 전제들이 확인되고 있는 만큼, "동맹 차원의 결정"을 다시 하자고 요구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상대가 트럼프 행정부라는 점에서 이러한 접근이 성과를 거둘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성주 사드 배치를 둘러싼 음모와 거짓말 집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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