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 "北이 가시적 조치하면 北美협상 급물살 탈 수"
[인터뷰] 문정인 연세대학교 명예 특임교수 <1>
2017.04.24 11:58:10
한반도를 휘감았던 '4월 위기'는 진행형이다. 오는 25일 북한의 인민군 창건 85주년이 남아있다. 이날을 계기로 북한이 핵 실험이나 대륙 간 탄도 미사일(ICBM) 등의 군사적 행동을 벌이게 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국면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8일 칼빈슨호의 한반도 해역 접근이 발표된 이후 약 2주간 보여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를 봤을 때 미국 정부가 전임 정부인 버락 오바마 행정부보다 오히려 북핵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 국무부의 동아태 차관보 대행 수전 손튼은 '최고의 압박과 관여'라는 대북 정책의 기본 틀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문정인 연세대학교 명예 특임교수는 "'최고의 압박과 관여' 정책이 전임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 정책과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면서도 "중국 역할론을 공식화했다는데 큰 차이가 있다. 또한 중국의 입장을 존중해 대화와 협상의 여지를 열어 놓았다는 점도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트럼프 정부의 이같은 입장이 지난 6~7일(현지 시각)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있었던 미중 정상회담 이후라는 것에 주목했다. 문 교수는 트럼프 정부가 북핵 문제에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 이유에 대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북핵 문제를 주요의제로 설정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고 내다봤다.
그는 "시 주석은 트럼프의 군사 행동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깨질 수 있다고 우려했을 것이다. 또 사드 배치가 중국의 전략적 핵심 이익에 위해가 간다고 판단하고 있기도 하다"며 "이 때문에 작정하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야기했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시 주석이 한반도와 관련하여 트럼프 대통령에게 교육을 시킨 것이나 다름없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북한은 중국이 제시한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 교환에 대해 "상호 신뢰 없이 이런 방식은 문제 해결에 방해만 될 뿐"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에 문 교수는 "북한은 자신들에 대한 미국의 적대적 의도와 정책이 조금도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비핵화를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렇게 되면 무장해제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만약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문을 해주는 사람이라면 북한에 은밀히 특사를 보낼 것이다. 김정은이 어느 정도 양보할 수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며 "25일까지 기다렸다가 북한이 핵 실험을 하지 않는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비밀리에 특사를 보내는 방법을 고려할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문 교수는 북한과 핵 문제를 진지하게 협상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며 △한미 양국이 북한의 핵 미사일 동결을 당면 목표로 설정하는 현실적 접근 △한미 연합 군사훈련 임시 중단과 핵 미사일 시험 유예를 교환할 수 있는 유연한 태도 △북한이 설사 '악마'라고 해도 최소한 대화 상대로 인정해주는 역지사지의 자세 등을 꼽았다.
인터뷰는 지난 19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프레시안>은 인터뷰 주요 내용을 2회에 걸쳐 게재한다.
그러나 지난 8일 칼빈슨호의 한반도 해역 접근이 발표된 이후 약 2주간 보여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를 봤을 때 미국 정부가 전임 정부인 버락 오바마 행정부보다 오히려 북핵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 국무부의 동아태 차관보 대행 수전 손튼은 '최고의 압박과 관여'라는 대북 정책의 기본 틀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문정인 연세대학교 명예 특임교수는 "'최고의 압박과 관여' 정책이 전임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 정책과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면서도 "중국 역할론을 공식화했다는데 큰 차이가 있다. 또한 중국의 입장을 존중해 대화와 협상의 여지를 열어 놓았다는 점도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트럼프 정부의 이같은 입장이 지난 6~7일(현지 시각)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있었던 미중 정상회담 이후라는 것에 주목했다. 문 교수는 트럼프 정부가 북핵 문제에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 이유에 대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북핵 문제를 주요의제로 설정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고 내다봤다.
그는 "시 주석은 트럼프의 군사 행동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깨질 수 있다고 우려했을 것이다. 또 사드 배치가 중국의 전략적 핵심 이익에 위해가 간다고 판단하고 있기도 하다"며 "이 때문에 작정하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야기했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시 주석이 한반도와 관련하여 트럼프 대통령에게 교육을 시킨 것이나 다름없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북한은 중국이 제시한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 교환에 대해 "상호 신뢰 없이 이런 방식은 문제 해결에 방해만 될 뿐"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에 문 교수는 "북한은 자신들에 대한 미국의 적대적 의도와 정책이 조금도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비핵화를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렇게 되면 무장해제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만약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문을 해주는 사람이라면 북한에 은밀히 특사를 보낼 것이다. 김정은이 어느 정도 양보할 수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며 "25일까지 기다렸다가 북한이 핵 실험을 하지 않는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비밀리에 특사를 보내는 방법을 고려할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문 교수는 북한과 핵 문제를 진지하게 협상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며 △한미 양국이 북한의 핵 미사일 동결을 당면 목표로 설정하는 현실적 접근 △한미 연합 군사훈련 임시 중단과 핵 미사일 시험 유예를 교환할 수 있는 유연한 태도 △북한이 설사 '악마'라고 해도 최소한 대화 상대로 인정해주는 역지사지의 자세 등을 꼽았다.
인터뷰는 지난 19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프레시안>은 인터뷰 주요 내용을 2회에 걸쳐 게재한다.

▲ 문정인 연세대학교 명예 특임교수 ⓒ프레시안(이재호)
프레시안 : 미중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가 최우선 과제로(다른 하나는 미중 무역) 다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함께 트럼프 정부는 북핵 보유 인정과 대북 선제 타격을 제외한, 최고 수준의 대북 압박과 관여 정책을 펼 것이라고 한다. 이는 평화적 북핵 해결을 천명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데, 북핵 문제 해결이 트럼프 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된 배경은 무엇인가? 이번 회담으로 미중이 북핵 해결에 적극 나서는 데 합의한 것으로 봐도 될까?
문정인 : 솔직히 '최고의 압박과 관여' 정책이 전임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 정책과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중국 역할론을 공식화했다는데 큰 차이가 있다. 또한 중국의 입장을 존중해 대화와 협상의 여지를 열어 놓았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이와 관련 미국 국무부의 동아태 차관보 대행 수전 손튼이 대북 정책을 6개로 요약한 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 미국은 북한 핵 문제를 가장 우선 순위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로 북핵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에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는 중국이 북한을 압박해주길 바라는 것인데, 중국이 북한의 행태를 바꿔서 대화로 나올 수 있게 할 때까지는 기다리겠다는 의미다.
세 번째는 만약 중국이 북한의 행태를 바꾸는데 실패한다면 미국이 독자적 행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독자적 행동에는 한미일 3국 공조가 깔려 있고 한국의 새로운 대통령도 여기에 동참하길 바란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네 번째, 미국의 목적은 북한의 비핵화지, 정권 교체(레짐체인지‧Regime change)는 아니라고 강조했고, 다섯 번째로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 행보를 보이지 않으면 대화도 없다는 것인데, 이는 핵‧미사일 동결 보다는 비핵화를 목표로 설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마지막으로 '전략적 인내'는 끝났다고 밝힌 점이다. 손튼은 많은 사람들은 트럼프 정부도 전략적 인내를 채택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그 속도나 강도에 있어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와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트럼프 정부의 입장은 미중 정상회담 이후에 나온 것이다. 여기서 추론하면, 시진핑 주석은 당시 회담에서 중국이 항상 강조했던 3대 목표인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한반도의 비핵화, 모든 현안을 대화와 협상으로 해결한다'라는 입장을 유지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중국에 "너희들이 북한을 다룰 수 있는 지렛대를 가지고 있는데,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것 아니냐"고 반박했을 것으로 본다.
그래서 시 주석은 북한에 대해서 트럼프가 이야기한 대로 모든 압박 조치를 취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이 정도는 수용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본다. '한시적 중국외주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중 양국은 윈-윈하는 협상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흔히 트럼프는 충동적이고, 무지하며 극적인 효과를 노리는 지도자라는 인식이 있는데, 이번에 협상의 여지가 있는 인물임을 보여준 셈이 됐다. 즉 중국과 협력해서 북핵 문제를 잘 풀어보겠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본다.
프레시안 : 그런데 당초 미중 정상회담에서 양국의 무역 문제나 환율 등 경제 분야가 회담의 주요 이슈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런데 북핵이 최대 관심사가 됐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 것으로 보나?
문정인 : 국무부에서 북한 핵 문제를 강조했고,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도 중요한 사안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시 주석이 북핵 문제를 주요의제로 설정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시 주석은 트럼프의 군사 행동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깨질 수 있다고 우려했을 것이다. 또 사드 배치가 중국의 전략적 핵심 이익에 위해가 간다고 판단하고 있기도 하다. 이 때문에 작정하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야기했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시 주석이 한반도와 관련하여 트럼프 대통령에게 교육을 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초에는 이란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중요할 수밖에 없고, 여기서 중국이 북한의 핵 문제를 중요한 사안으로 끌어 올리니까 트럼프 대통령도 북핵 문제를 우선순위로 올려둘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난 12일 양국 정상의 전화통화에서도 시진핑이 칼빈슨호가 한반도 인근 해역으로 진입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운이 감돌기 시작하니까 한반도에서 평화와 안정이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못 박았을 가능성이 있다.

▲ 7일(현지 시각) 미중 정상회담이 열린 플로리다 주 마라리고 리조트에서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프레시안 : 사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에 하는 발언과 행동을 보면 마치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안달 난 사람처럼 보인다. 국내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북한에 군사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면 같은 원리로 국내 정치적인 이유로 북핵을 해결하겠다고 냐서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내놓았던 행정 명령이 법원에 의해 가로 막혔고 의료보험 개혁법인 '오바마 케어'를 폐지하기 위해 '트럼프 케어'를 내놓았으나 이마저도 의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지지율마저 추락하다 보니 국내정치적인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외부로 눈을 돌린 것 아닌가?
문정인 : 당연히 국내 정치적인 이유가 크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그나마 해낸 것은 닐 고서치 연방대법관 임명이다. 취임 100일이 가까워져 오지만 해놓은 일이 없다. 북핵 문제에 대한 전략적인 시각보다는 뭔가 내놓을 것이 필요하다는 상황에 몰리다 보니 이러한 행보를 보인 것일 수 있다.
프레시안 : 트럼프 대통령이 공언한대로 '전략적 인내'를 끝내고 진지하게 협상할 뜻이 있다고 보나?
문정인 : 반반이다. 중국이 역할을 제대로 하고, 북한이 결단을 내려서 핵, 미사일 도발을 중단하고 대화의 장으로 나온다면 진지한 협상은 가능할 것이다. 트럼프는 작은 성과도 침소봉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가시적 조치 취하면 북미 간 협상은 급물살을 탈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재임 중 북한과 전쟁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여러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국내정치적으로 트럼프의 인기가 계속 떨어지면 결국 북한의 위협을 인위적으로 확대해서 군사적 행동을 벌이고 이를 통해 반전을 노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이를 국제정치학에서 희생양 이론이라고 하는데, 실제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에 미사일을 퍼부은 이후 지지율이 소폭 상승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러한 유혹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로는 지금 트럼프의 최고 관심사는 미국 경제를 살리는 것이다. 인프라 사업도 하고 일자리도 만들겠다고 하는데 이게 작동되지 않는다면 새로운 충격요법으로 소위 '전쟁 특수'를 생각할 수도 있다. 그 대상이 이란이나 북한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세 번째는 미국 군 관계 인사들에 따르면 지상군만 투입하지 않는다면 미국으로서는 북한이 가장 좋은 공격 대상이라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고립됐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 위협이 심각해지면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 예방적 군사조치를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을 완전히 고립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다.
또 북한은 대규모 난민 발생하기도 어렵고, 난민이 나온다고 해도 중국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막아버리면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군인들 입장에서는 북한은 공습으로만 끝낼 수 있는, 군사 작전이 아주 용이한 국가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네 번째는 전쟁 이후 한국이 북한에 대한 안정화와 전후 복구를 할 것이기 때문에 전쟁 비용이 많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쟁을 벌인 미국은 전쟁 그 자체보다는 전쟁 이후 안정화시키고 재건하는데 많은 돈을 투입했다. 미국이 북한과 전쟁을 벌이면 해군, 공군과 정보력만 가지고 전쟁을 치를 가능성이 높다. 지상군은 한국에서 투입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후 안정화와 전후 복구 담당은 한국이 맡아야 한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미국으로서는 북한과의 전쟁 비용이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오산할 수도 있다.
물론 군사작전을 벌이려면 정치, 군사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김정은 제거나 북한 핵 무기의 완전한 폐기라는 정치적 목표나 미사일과 적의 지휘부를 괴멸시킨다는 군사적 목표를 달성하기는 쉽지 않다. 1994년 5월의 경우, 영변에만 핵 시설이 있었고 미사일도 특정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외과적 타격 (surgical strike)을 통해 정치, 군사적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계산이 서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적 지휘부는 요새화되어 있고 핵과 미사일은 도처에 은닉되어 있다. 이를 공습이나 원거리 타격을 통해 제거하는 작업은 매우 어렵다 하겠다.

▲ 미 항공모함 칼빈슨호 ⓒ미 해군
북한, 북미 협상에 나올까
프레시안 : 트럼프 정부가 북한의 레임체인지를 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것 만으로 북한이 대화 테이블에 나올지 의문이다. 손튼 동아태차관보 대행은 북한과 핵 문제 관련한 협상을 하려면 북한의 분명한 사인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정인 :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가시적인 행보를 보이지 않는 한 대화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변수는 북한이 아니라 중국에 있다. 지난 10일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쌍궤병행(雙軌竝行·북한의 비핵화와 북미 간 평화협정 체결)' 및 '쌍중단(雙中斷·북한의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중단과 한미 연합 군사 훈련 중단)'을 언급했다. 중국은 여기에서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고 본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걸 받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프레시안 : 그런데 북한은 17일 김인룡 유엔 주재 북한 대표부 차석대사가 기자회견을 열고, 중국이 제안했던 평화협정과 북한의 비핵화를 교환하는 협상 방식에 대해 "현재 아무런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 이런 방식은 도움보다는 방해가 된다"면서 반대 의사를 밝혔다. 북한이 중국의 제안도 받지 않는 상황 아닌가?
문정인 : 북한은 자신들에 대한 미국의 적대적 의도와 정책이 조금도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비핵화를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렇게 되면 무장해제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문을 해주는 사람이라면 북한에 은밀히 특사를 보낼 것이다. 김정은이 어느 정도 양보할 수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극적 협상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다면 지금 이런 작업을 해야 한다.
(이와 관련 현지시간으로 지난 19일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의 북한전문 웹사이트 '38노스' 운영자인 조엘 위트 연구원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트럼프 정부가 북한과 대화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물밑대화를 조언하기도 했다.
그는 칼럼에서 "시간은 트럼프의 편이 아니다. 트럼프 정부는 압박정책에서 벗어나 북한과 대화 재개를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미국 정부는 북한과 표시가 나지 않게 대화를 해야 한다. 유엔 북한 대표부든 다른 채널이든 미국의 이익을 지켜내기 위해 워싱턴의 해결방법을 강조하고, 미국이 북한에 대해 적대적인 개입을 하지 않을 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 또 미국은 향후 평화적인 길을 찾기를 바란다고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밑대화가 끝나면 이후로는 양쪽 정부가 서로의 관심사항을 제기하는 "대화를 위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위트의 주장이다. 그는 "미국의 경우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이 주요 관심사안"이라며 "만약 접점을 찾는다면, 즉 만약 북한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이룬다는 최종 목표를 기꺼이 다루겠다고 한다면 양측은 공식적인 협상 재개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편집자. ☞ 관련 칼럼 보기)
물론 지금 북한에 특사를 보냈다가 오는 25일 북한이 인민군 창건 85주년에 맞춰 6차 핵실험을 감행하면 트럼프의 특사외교는 재앙이 될 것이다. 때문에 25일까지 기다렸다가 북한이 핵 실험을 하지 않는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비밀리에 특사를 보내는 방법을 고려할 수도 있다.
프레시안 : 북미 간 진지한 협상을 하려면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사람을 보내서 진지한 대화를 탐색할 정도가 돼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압력만으로는 성사되기 어려울 것 같다.
문정인 : 중국이 압력을 가하면서도, 중국과 미국 사이에 역할 분담을 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북한에 특사를 보내서 어떤 조건에서 대화할 용의가 있는지를 타진해본다면 가능하겠지만 중국의 압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중국의 기본 입장은 북미 간 대화하라는 것이다. 중국의 대북 압박은 북미대화와 6자 회담 재개를 위한 수단이다. 따라서 중국이 북한에 압박을 가하는데는 기본적으로 한계가 있을 것이다.
북한과 핵 문제를 진지하게 협상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우선 미국과 한국이 현실적인(realistic) 자세를 보여야 한다. 북한이 이미 핵보유 국가라고 선언했고 다양한 형태의 미사일도 보유하고 있는데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에는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도 강조하고 있지만 북한의 핵, 미사일 동결을 현실적인 목표로 잡고 북한과 협상해야 한다. 비핵화는 그 뒤의 협상 과정으로 미뤄 놓아야 한다. 협상 과정에서 서로가 신뢰를 쌓여서 북한이 위협을 느끼지 않을 때 비핵화로 가는 길이 열릴 것이다.
두 번째로 유연한(flexible) 태도를 보여야 한다. 북한은 이미 2015년 1월 9일 미국 측에 한미 연합군사 연습과 훈련을 임시 중단하면 자신들은 핵실험 및 미사일 시험발사를 유예하겠다는 제안을 한 바 있다. 거기에 더해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관 수용, 그리고 이상의 것도 이행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미국 국무부는 이 제안을 불과 9시간 만에 거부했다. 그 이후 북미 관계가 악화된 바 있다.
미국의 입장은 한미 연합군사훈련은 '주권적' 사항이니까 북한이 왈가왈부할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고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의 연계도 북한의 선전 선동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이건 너무 경직된 자세다. 의제를 열어놓고 북한과 대화와 회담에 임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세 번째로는 역지사지(inter-subjective)의 자세가 필요하다. 북한이 3대 세습의 독재국가인 것은 맞다. 북한이 악마일 수도 있다. 악마라고 치자. 그럼에도 대화할 수 있어야 하고 대화를 위해 그 악마에 대한 최소한의 인정이 필요한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인정 없이 접촉과 대화는 불가능하다. 북한을 악마로 치부하고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대결과 재앙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 문정인 교수 ⓒ프레시안(이재호)
프레시안 : 미국이 북한 지도부에 대한 참수작전을 이야기하고 항공모함도 보내고 선제타격도 언급하고 있는 것도 북미 간 협상이 가능할지 의문이 들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문정인 : 그게 문제다. 미국이 그런 무지막지한 엄포를 보이는데 북한이 이에 굴복하고 협상에 나올 리 만무하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한국에 와서 북한에 "시리아 봐라, 너희도 당할 수 있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 그리고 항공모함 칼빈슨호를 포함 가공할 만한 전략 무기들을 한반도에 전개하고 있다. 이런 무력 과시는 북한을 굴복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 이게 미국 지도부가 북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해의 정도라고 보면 된다.
북한은 시리아가 아니다. 100만 명 이상의 정규군과 핵, 미사일을 보유한 국가다. 지난 15일 북한에서 있었던 태양절 행사를 봤으면 북한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 그런데도 미국은 타성에 젖은 대북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정부에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국방부는 북한이 우리에게 선제공격을 가해 올 때 우리는 방어(defense), 억지(deterrence), 파괴(destruction), 그리고 참수(decapitation) 작전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군사적 대응이다. 그러나 참수라는 표현은 문제시 된다.
북한 지도자의 목을 따겠다는 것인데 북한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북한은 지도자가 '최고 존엄'인 유일지도체제다. 최고 존엄을 위해서라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것이 북한의 입장이다. 이런 북한이 김정은을 참수하겠다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겠나?
이걸 '지휘부 궤멸' 정도로 하면 그나마 좀 덜했을 텐데 있는 그대로 '지도자의 참수'로 바로 연결하는 것은 용어 설정을 대단히 잘못한 것이다. 적대적 수사의 악순환에서 벗어 날 때 대화와 협상이 가능해 질 것이다. 물론 이는 북한도 마찬가지다. 자기들은 막말을 뱉어내면서 우리보고 순화된 말을 쓰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프레시안 : 일단 북한으로서는 미국의 진위가 무엇이냐에 대해 탐색하지 않을까?
문정인 : 북한은 트럼프 행정부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을 것으로 본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와의 대화 가능성을 조심스레 모색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대미 인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본다. 북한 지도부는 자신들이 나약함을 보이면 미국이 군사행동, 특히 핵으로 타격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이 태양절 행사에서 "전면 전쟁에는 전면 전쟁으로, 핵 전쟁에는 우리식의 핵 타격전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연설한 것도 이러한 믿음을 반영한 것으로 봐야 한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5일 평양에서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을 맞아 열린 열병식에 참석해 손을 흔들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미국은 과거 군사적 행동은 선택지에서 빼놓은 상태에서 상대가 '레드라인'을 넘어가면 이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시사해 왔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모든 선택지는 테이블 위에 있다(All the options are on the table)"고 밝히고 군사행동 가능성을 전면에 놓고 있다. 미국은 이런 태도가 북한에 엄청난 위협을 주고 이것이 곧 협상 카드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이건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북한은 미국이 자신들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한 미국이 취하는 첫 번째 조치가 군사 행동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제일 앞에 두고 있다.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의 군사행동 카드가 쉽게 먹히지 않을 것이다. 이건 6.25 때부터 계속 축적된, 북한의 집단적인 사고 때문이라 하겠다. 평양이 미국 공습으로 초토화되는 과정에서 미국의 힘과 공격성을 목격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결국 미국이 그만큼 북한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워싱턴과 평양의 주파수가 맞지 않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문정인 "차기 정부, 사드 정책검토 당연히 해야"
[인터뷰] 문정인 연세대학교 명예 특임교수 <2>
2017.04.25 11:07:50
지난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항공모함인 칼빈슨호가 한반도 인근 해역으로 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 한 마디에 한반도는 금세 전운에 휩싸였다. 북한이 고(故)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에 맞춰 핵 실험이나 미사일을 발사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태양절 당일까지도 트럼프 대통령이 보냈다고 말한 칼빈슨호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시간에 칼빈슨호는 한반도와 반대 방향인 인도양으로 향하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정부가 거짓말을 한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문정인 연세대학교 명예 특임교수는 이와 관련 트럼프 정부가 기만 전술을 썼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한편, 현재 트럼프 정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심지어 워싱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폭스뉴스를 보고 칼빈슨호의 행적을 알게된 것 아니냐는 농담 아닌 농담도 흘러나온다고 문 교수는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트럼프 정부의 행태와 더불어 한국 정부의 행보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한국 정부 모르게 전쟁을 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는데, 한국 정부가 미국의 군사적 움직임을 제대로 모니터하지 못하고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지 못했다는 평가다.
문 교수는 특히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꼽으며 "지난 3월 17일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방한했을 때 모든 선택지가 테이블에 있다고 하면서 군사행동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당시 회담 상대였던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여기에 동의해주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며 "우리의 동의 없이 군사 행동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못 박아야 할 외교장관이 저러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누군가의 말처럼 '망국의 좀비' 같다"며 "과도기 정부의 각료가 이런 식으로 잘못된 신호를 주어서 미국이 파국적 행동이라도 벌이면 어찌 할 것인가. 안타까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번 4월 위기설은 북한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 '예측할 수 없는 인물'이기 때문에 불거진 측면도 있다. 이에 대해 문 교수는 "부시와 오바마 모두 가치나 이념의 잣대에서 북한을 바라봤는데 트럼프는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도움이 된다면 북한과 거래를 할 생각이 있어 보인다"며 "이념보다는 실리의 잣대에서 북한에 접근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는 트럼프가 '견문이 좁고(ill-informed)', '충동적(impulsive)' 이라는 평가에 대해서는 "북한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무모한 행동을 취할까 우려된다"면서도 "트럼프가 집필한 저서 <거래의 기술>(The art of deal)을 보면 최악의 경우를 준비하지만, 계속 압박을 가하다 기회를 보라는 대목이 있다"며 "트럼프는 북한을 계속 밀어붙이다가도 북한이 조금만 꼬리 내리면 바로 협상하자는 전략을 취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사드와 관련, 한국의 차기 대통령이 배치 완료를 결정하는 것이라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발언에 대해 문 교수는 "지극히 건전하고 상식적인 발언"이라고 말했다. 그는 "새 정부의 정책 검토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지극히 당연한 절차"라며 "오히려 대선 전에 배치를 완료하려 하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한민구 국방부 장관,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몰상식한 것"이라고 일갈했다.
인터뷰는 지난 19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1편 보러가기 : 문정인 "北이 가시적 조치하면 北美협상 급물살 탈 수")

프레시안 : 지난 9일 미국 태평양함대 사령부 데이브 밴험 대변인은 북한을 제어하기 위해 칼빈슨호가 싱가포르를 떠나 한반도로 향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10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칼빈슨호가 태평양을 자유롭게 돌아다닌다고 하면서도 한반도를 향해 북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11일에는 트럼프 대통령까지 나서서 무적함대를 보낸다며 칼빈슨호의 한반도 해역 진출을 사실상 인정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칼빈슨호는 한반도 쪽으로 북상하지 않았다. 함대 사령부에 국방장관, 대통령까지 모두 거짓말을 한 셈이 됐다. 미국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셈인데, 어쩌다가 미국의 신뢰도에 상당한 타격이 될 수 있는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문정인 : 두 가지 시각이 있다. 하나는 전략적 기만 시각이다. 강대국들은 기만 전술을 많이 쓴다. 존 미어샤이머의 저서 <왜 리더는 거짓말을 하는가? (지도자의 거짓말에 관한 불편한 진실)>라는 책을 보면 전략적 이익을 위해 미국 지도자들은 과거에 기만 전술을 많이 했었다고 한다.
예를 들면 미국은 세계 2차대전 때 독일 잠수함이 미국과 영국의 상선을 공격하지 않았지만, 공격했다는 빌미로 참전을 결정했다. 1964년 통킹만 사건도 마찬가지다. 당시 월맹이 미군 전함 매독스에 대한 공격을 가하지도 않았는데 공격한 것처럼 꾸며 대대적 월남전 개입을 정당화 한 바 있다. 이런 것을 전략적 기만이라고 하는데, 이번 사태 역시 전략적인 허풍, 허세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잘못된 정보에 의해 트럼프가 독자적 행동을 했다는 이론이다. 사실 트럼프가 폭스 뉴스를 보고 칼빈슨호가 북상하는 것으로 오인, 이를 공식적으로 언급했다는 것이다. 워싱턴의 내부 사람들은 이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고 있다. 리얼리티 쇼에 나오는 트럼프의 모습 그대로다.
사실 지금 미국 행정부가 국방 정책 수립이나 집행에서 '콩가루 집안'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故)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에, 가장 결정적인 시기였던 15일에 북한이 핵이나 미사일 시험을 감행할 수 있고, 그러면 이에 맞춰서 타격하겠다고 했는데 그때 레이건호는 요코스카 항에 있었고 칼빈슨호는 남중국해에 있었다. 그리고 4월 15일 당일에는 칼빈슨호가 순다해협을 통해 인도양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실제 칼빈슨호가 예정에 없던 북상을 했다면 한반도 전쟁 위기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래서 이게 정말 대북 억지 차원에서 계산된 허풍이었는지, 아니면 미국 정부 시스템에 정말 큰 구멍이 생긴 것인지는 규명돼야 하는 문제다.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한국 정부의 행보다. 미국은 전략적으로 허세를 부릴 수 있는데, 칼빈슨호의 전개를 두고 한국 국방부는 지난 10일 정례브리핑에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가능성 등 북한의 전략적 도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점을 감안해 이뤄지는 만반의 대비태세 차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아무런 정보도 없고 판단도 확립되지 않았던 것 같은 답변이었다.
이건 미국이 한국 정부 모르게 전쟁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해 준 사례이기도 하다. 한국 정부가 미국의 군사적 움직임을 제대로 모니터하지 못하고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지 못했다는 것은 정말 큰 문제다.
프레시안 : 김종대 정의당 의원이 지난 3월 중국을 방문해서 옌쉐퉁(閻學通) 칭화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를 만났는데, 중국에서는 진짜 미국이 북한을 선제타격할 것이라고 믿고 있고 이미 한국은 여기에 동의해준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했다고 한다.
문정인 :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 지난 3월 17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방한했을 때 모든 선택지가 테이블에 있다고 하면서 군사행동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당시 회담 상대였던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여기에 동의해주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우리의 동의 없이 군사 행동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못 박아야 할 외교장관이 저러고 있으니, 중국이 아니라 선제타격 행동 당사자인 미국에서도 이걸 묵인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겠나?
정말 누군가의 말처럼 '망국의 좀비' 같다. 과도기 정부의 각료가 이런 식으로 잘못된 신호를 주어서 미국이 파국적 행동이라도 벌이면 어찌 할 것인가. 안타까운 일이다.

프레시안 : 트럼프 행정부가 취임한 지 석 달 정도가 지났다. 대선 전에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보다는 트럼프 후보가 우리에게 기회가될 수 있다는 전망이 있었다. 지금까지 행보로 봤을 때 어떻게 평가하나? 우리에게 정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보나?
문정인 :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나 부시처럼 이념적‧가치적 경직성을 가진 인물이 아니다. 부시는 '악의 축'이라는 개념을 쓰면서 적과 아군을 구분했고, 오바마는 인권 혹은 민주주의라는 가치로 봤을 때 북한은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고 했다.
즉 부시와 오바마 모두 가치나 이념의 잣대에서 북한을 바라봤는데 트럼프는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도움이 된다면 북한과 거래를 할 생각이 있어 보인다. 이념보다는 실리의 잣대에서 북한에 접근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 대화나 협상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중국도 그런 점에서 트럼프를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로써는 모든 게 가변적이다. 여기에는 북한의 태도가 관건이다. 북한이 중국에 설득 당하는 듯한 인상을 주면서 핵, 미사일 행보 중단하고 미국과 대화 의사를 우회적으로라도 보이면 트럼프가 화답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프레시안 :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에도 후보 때와 별로 다르지 않다면서 견문이 좁고(ill-informed) 충동적(impulsive) 이라는 평가가 있다.
문정인 : 단기적인 위협이 있다. 북한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무모한 행동 취할까 우려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문제가 극복되길 바란다. 미국 정부의 각 부처에서 한반도에 대한 브리핑하지 않겠나. 그런 점에서 충분히 개선될 여지가 있다고 본다.
충동적인 부분도 빛과 그림자가 있다. 골목대장 식으로 상대방을 성가시게 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충동 또는 본능적으로 극적인 거래를 할 수도 있다. 이념이나 가치가 아니라 실리 추구의 장사를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거래가 더 쉬울 수도 있다.
트럼프가 집필한 저서 <거래의 기술>(The art of deal)을 보면 최악의 경우를 준비하지만, 계속 압박을 가하다 기회를 보라는 대목이 있다. 트럼프는 북한을 계속 밀어붙이다가도 북한이 조금만 꼬리 내리면 바로 협상하자는 전략을 취할 수 있다.
사드 배치, 차기 대통령이 결정하는 것이 '상식적'
프레시안 :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한국에 왜 들렀을까?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사드 배치 완료는 한국의 다음 대통령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하더니만,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공동발표에서는 사드 배치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개정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문정인 : 펜스 부통령의 방한은 이 지역 동맹국들과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관례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입장에서 일본과 한국이 주요 동맹국인데 펜스 부통령이라도 와서 인사를 하고 관계를 강화 하는게 좋은 것 아닌가.
의전적인 측면도 있다. 원래 주요 방문지는 일본인데 일본 가면서 한국에 오지 않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게다가 펜스 부통령의 아버지가 한국전에 참전, 동성무공훈장을 받은 바 있다. 펜스 부통령에게는 엄청난 정치적 자산이다. 그래서 이번에 가족들까지 모두 데려와서 판문점을 방문하기도 했다. 일종의 '애국적인 가족'이라는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강조하는 행보를 보인 것이다. 펜스 부통령의 방한은 이러한 여러 목적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본다.

프레시안 : 지난 19일 KBS TV토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사드 문제와 관련 '전략적 신중함'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얼핏 봐서는 전략적 모호성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데, 전략적 신중함이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지? 그리고 이러한 입장이 한국의 대외정책이 가져가야 할 방향이라고 보시는지?
문정인 : 두 개념 모두 분명하지가 않아 보인다. 아마 전략적 모호성은 사드 관련 우리의 입장을 미국과 중국에 애매모호하게 함으로서 정권을 잡은 후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겠다는 것이고, 전략적 신중함은 '전략적 모호성'이 좌우 양측에서 비판받으니까 모호성을 신중성으로 단어만 바꾼 것 아닌가 한다.
심상정 후보를 제외하고는 다른 후보들 중 문재인 후보가 그래도 나은 편이지만 보다 솔직했으면 한다. 사드와 관련, '군사적 유용성에 대해 미국이나 한국 정부로부터 자세히 보고 받은 바도 없고 절차적 하자가 있으니 이번 대선 기간 중 확실한 답을 줄 수 없다. 집권하면 면밀한 정책 검토를 통해 최종 결정을 내리겠다'고 하면 될 일이지 전략적 모호성이니 신중성이니 하는 수사를 쓸 필요가 없다고 본다.
한국, 전쟁 막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프레시안 : 사드와 함께 박근혜 정부 재임 기간 중에 실패했던 대표적인 외교 안보 정책으로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문제를 꼽을 수 있다. 대권 후보들 모두 위안부 협상을 다시 하거나 파기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문정인 : 일본은 이 합의를 소녀상 철거로 받아들이고 있고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결정이라고 못을 박았다. 어떻게 한 정부가 역사 문제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고 규정하나?
우리가 일본에 이기는 길은 딱 하나다. 일본 정부로부터 받은 10억 엔을 국민들이 성금을 모아서 돌려주고 대신 대사관 영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은 시민단체들이 자발적으로 이전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일본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을 국제사회에 보여주는 것이다.
이와 함께 대통령이 역사에 대한 집단적 기억을 최종적‧불가역적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못 박고 지난 정부가 부적절하게 합의한 것이라고 규정해야 한다.
또한 한일 관계에 대한 입장도 분명히 해야 한다. 한미일 3국 공조라는 동맹의 틀 보다는 한중일 3국의 협력과 통합의 질서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일본이 중요한 파트너라는 점을 부각시켜야 할 것이다.
역사 문제는 백년이 지나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따라서 과거사 문제는 점진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으로 가야한다. 역사 갈등은 최소화 시켜 나가면서 협력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독도 문제나 역사 문제 가지고 국제사회에서 일본과 경쟁할 필요가 없다. 그건 일본이 바라는 것이다. 그래야 쟁점화가 되기 때문이다.
독도는 우리 땅인데 국제무대에 나가서 우리 땅이라 선전할 필요 있나. 위안부 문제도 마찬가지다. 과거 일본의 만행을 학계와 언론계를 통해 우회적으로 알리면 된다. 일본과 이전투구 할 필요 없다. 우리의 국격을 살리면서 일본을 압도하는 방안이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 : 일본에 100억 원을 돌려주는 것은 찬성하는 여론이 높을 것 같은데, 소녀상을 이전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닐 것 같다.
문정인 : 소녀상 이전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해야 한다. 강제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일본에 비해 월등한 도덕적 우위에 설 수 있도록, 용서는 하지만 잊지는 말자는 생각으로 전국 곳곳에 소녀상을 설치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어떨까 싶다.

프레시안 : 미국과 중국이 북한의 핵 문제를 가지고 속도를 내고 있는데, 정작 거기에서 한국이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로운 정부가 가장 중점을 둬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보나?
문정인 : 새 대통령이 해야 할 가장 큰 일은 전쟁을 막는 것이다. 한반도의 급변사태를 막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 그러려면 세 방향의 접근이 필요한데 우선 남북부터 대화를 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북한의 의도를 파악한 뒤 워싱턴에 이를 전달해줘야 한다. 중국과도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주도권을 가지고 남북, 북미, 한미, 한중, 북중 관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핵심은 우리가 북쪽과 통로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가 한반도에 몰아치는 소용돌이 속에서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북한과 관계를 완전히 단절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용할 수 있는 외교적인 자원을 스스로 없애버린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남북관계를 한미관계에 예속시키면서 미국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이것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다.
그리고 대통령의 귀를 누가 잡느냐는 상당히 중요하다. 이건 미국도 마찬가지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미국 대통령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은 한국 대통령이다. 진솔하고 진지하게 이야기하면 그만큼 효과가 클 수밖에 없다. 다음 대통령이 이런 부분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프레시안 : 동북아를 둘러싼 큰 질서를 바라보고 외교안보 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하는데 지엽적인 사안에만 매몰돼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
문정인 : 노무현 정부 당시 동북아시대위원장으로 있을 때 노 대통령이 지시했던 중요한 과제 중 하나가 앞으로 20년 후 동아시아 질서가 어떻게 변할지를 보고하는 것이었다. 그 정도의 안목이 있었던 대통령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 대선 후보들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만 매달려있고, 사드와 한미 동맹만 염두에 두고 있는데 이건 지도자의 길이 아니다. 한국이 당장 내일 없어질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백년대계를 보는 외교적 철학과 지역질서에 대한 큰 그림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없어서 걱정이다. 남북관계와 통일에 대한 비전 제시가 실종된 이런 대선은 처음 본다.
미국의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은 '무오류성'이라고 하는 미국의 전염병 문제를 그의 최근 칼럼에서 지적한 바 있다. '자신들은 잘못한 것이 전혀 없다'는 이러한 전염병이 이제 한국에도 상륙한 것 같다. 모든 것이 북한과 중국의 잘못이고 우리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식이다. 잘못한 것이 없으니까 반성도, 고칠 것도 없는 거다. 지금 야당 후보들도 무오류성에 빠져있는 것 같은데, 이렇게 되면 정책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외교와 관련해서 제일 중요한 것이 철학적 기조다. 일정한 기조를 가지고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한반도와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여기서 우리가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끝)
하지만 태양절 당일까지도 트럼프 대통령이 보냈다고 말한 칼빈슨호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시간에 칼빈슨호는 한반도와 반대 방향인 인도양으로 향하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정부가 거짓말을 한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문정인 연세대학교 명예 특임교수는 이와 관련 트럼프 정부가 기만 전술을 썼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한편, 현재 트럼프 정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심지어 워싱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폭스뉴스를 보고 칼빈슨호의 행적을 알게된 것 아니냐는 농담 아닌 농담도 흘러나온다고 문 교수는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트럼프 정부의 행태와 더불어 한국 정부의 행보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한국 정부 모르게 전쟁을 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는데, 한국 정부가 미국의 군사적 움직임을 제대로 모니터하지 못하고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지 못했다는 평가다.
문 교수는 특히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꼽으며 "지난 3월 17일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방한했을 때 모든 선택지가 테이블에 있다고 하면서 군사행동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당시 회담 상대였던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여기에 동의해주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며 "우리의 동의 없이 군사 행동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못 박아야 할 외교장관이 저러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누군가의 말처럼 '망국의 좀비' 같다"며 "과도기 정부의 각료가 이런 식으로 잘못된 신호를 주어서 미국이 파국적 행동이라도 벌이면 어찌 할 것인가. 안타까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번 4월 위기설은 북한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 '예측할 수 없는 인물'이기 때문에 불거진 측면도 있다. 이에 대해 문 교수는 "부시와 오바마 모두 가치나 이념의 잣대에서 북한을 바라봤는데 트럼프는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도움이 된다면 북한과 거래를 할 생각이 있어 보인다"며 "이념보다는 실리의 잣대에서 북한에 접근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는 트럼프가 '견문이 좁고(ill-informed)', '충동적(impulsive)' 이라는 평가에 대해서는 "북한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무모한 행동을 취할까 우려된다"면서도 "트럼프가 집필한 저서 <거래의 기술>(The art of deal)을 보면 최악의 경우를 준비하지만, 계속 압박을 가하다 기회를 보라는 대목이 있다"며 "트럼프는 북한을 계속 밀어붙이다가도 북한이 조금만 꼬리 내리면 바로 협상하자는 전략을 취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사드와 관련, 한국의 차기 대통령이 배치 완료를 결정하는 것이라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발언에 대해 문 교수는 "지극히 건전하고 상식적인 발언"이라고 말했다. 그는 "새 정부의 정책 검토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지극히 당연한 절차"라며 "오히려 대선 전에 배치를 완료하려 하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한민구 국방부 장관,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몰상식한 것"이라고 일갈했다.
인터뷰는 지난 19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1편 보러가기 : 문정인 "北이 가시적 조치하면 北美협상 급물살 탈 수")

▲ 문정인 연세대학교 명예 특임교수 ⓒ프레시안(이재호)
프레시안 : 지난 9일 미국 태평양함대 사령부 데이브 밴험 대변인은 북한을 제어하기 위해 칼빈슨호가 싱가포르를 떠나 한반도로 향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10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칼빈슨호가 태평양을 자유롭게 돌아다닌다고 하면서도 한반도를 향해 북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11일에는 트럼프 대통령까지 나서서 무적함대를 보낸다며 칼빈슨호의 한반도 해역 진출을 사실상 인정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칼빈슨호는 한반도 쪽으로 북상하지 않았다. 함대 사령부에 국방장관, 대통령까지 모두 거짓말을 한 셈이 됐다. 미국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셈인데, 어쩌다가 미국의 신뢰도에 상당한 타격이 될 수 있는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문정인 : 두 가지 시각이 있다. 하나는 전략적 기만 시각이다. 강대국들은 기만 전술을 많이 쓴다. 존 미어샤이머의 저서 <왜 리더는 거짓말을 하는가? (지도자의 거짓말에 관한 불편한 진실)>라는 책을 보면 전략적 이익을 위해 미국 지도자들은 과거에 기만 전술을 많이 했었다고 한다.
예를 들면 미국은 세계 2차대전 때 독일 잠수함이 미국과 영국의 상선을 공격하지 않았지만, 공격했다는 빌미로 참전을 결정했다. 1964년 통킹만 사건도 마찬가지다. 당시 월맹이 미군 전함 매독스에 대한 공격을 가하지도 않았는데 공격한 것처럼 꾸며 대대적 월남전 개입을 정당화 한 바 있다. 이런 것을 전략적 기만이라고 하는데, 이번 사태 역시 전략적인 허풍, 허세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잘못된 정보에 의해 트럼프가 독자적 행동을 했다는 이론이다. 사실 트럼프가 폭스 뉴스를 보고 칼빈슨호가 북상하는 것으로 오인, 이를 공식적으로 언급했다는 것이다. 워싱턴의 내부 사람들은 이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고 있다. 리얼리티 쇼에 나오는 트럼프의 모습 그대로다.
사실 지금 미국 행정부가 국방 정책 수립이나 집행에서 '콩가루 집안'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故)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에, 가장 결정적인 시기였던 15일에 북한이 핵이나 미사일 시험을 감행할 수 있고, 그러면 이에 맞춰서 타격하겠다고 했는데 그때 레이건호는 요코스카 항에 있었고 칼빈슨호는 남중국해에 있었다. 그리고 4월 15일 당일에는 칼빈슨호가 순다해협을 통해 인도양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실제 칼빈슨호가 예정에 없던 북상을 했다면 한반도 전쟁 위기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래서 이게 정말 대북 억지 차원에서 계산된 허풍이었는지, 아니면 미국 정부 시스템에 정말 큰 구멍이 생긴 것인지는 규명돼야 하는 문제다.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한국 정부의 행보다. 미국은 전략적으로 허세를 부릴 수 있는데, 칼빈슨호의 전개를 두고 한국 국방부는 지난 10일 정례브리핑에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가능성 등 북한의 전략적 도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점을 감안해 이뤄지는 만반의 대비태세 차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아무런 정보도 없고 판단도 확립되지 않았던 것 같은 답변이었다.
이건 미국이 한국 정부 모르게 전쟁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해 준 사례이기도 하다. 한국 정부가 미국의 군사적 움직임을 제대로 모니터하지 못하고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지 못했다는 것은 정말 큰 문제다.
프레시안 : 김종대 정의당 의원이 지난 3월 중국을 방문해서 옌쉐퉁(閻學通) 칭화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를 만났는데, 중국에서는 진짜 미국이 북한을 선제타격할 것이라고 믿고 있고 이미 한국은 여기에 동의해준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했다고 한다.
문정인 :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 지난 3월 17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방한했을 때 모든 선택지가 테이블에 있다고 하면서 군사행동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당시 회담 상대였던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여기에 동의해주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우리의 동의 없이 군사 행동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못 박아야 할 외교장관이 저러고 있으니, 중국이 아니라 선제타격 행동 당사자인 미국에서도 이걸 묵인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겠나?
정말 누군가의 말처럼 '망국의 좀비' 같다. 과도기 정부의 각료가 이런 식으로 잘못된 신호를 주어서 미국이 파국적 행동이라도 벌이면 어찌 할 것인가. 안타까운 일이다.

▲ 미 항공모함 칼빈슨호 ⓒ미 해군
프레시안 : 트럼프 행정부가 취임한 지 석 달 정도가 지났다. 대선 전에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보다는 트럼프 후보가 우리에게 기회가될 수 있다는 전망이 있었다. 지금까지 행보로 봤을 때 어떻게 평가하나? 우리에게 정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보나?
문정인 :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나 부시처럼 이념적‧가치적 경직성을 가진 인물이 아니다. 부시는 '악의 축'이라는 개념을 쓰면서 적과 아군을 구분했고, 오바마는 인권 혹은 민주주의라는 가치로 봤을 때 북한은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고 했다.
즉 부시와 오바마 모두 가치나 이념의 잣대에서 북한을 바라봤는데 트럼프는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도움이 된다면 북한과 거래를 할 생각이 있어 보인다. 이념보다는 실리의 잣대에서 북한에 접근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 대화나 협상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중국도 그런 점에서 트럼프를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로써는 모든 게 가변적이다. 여기에는 북한의 태도가 관건이다. 북한이 중국에 설득 당하는 듯한 인상을 주면서 핵, 미사일 행보 중단하고 미국과 대화 의사를 우회적으로라도 보이면 트럼프가 화답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프레시안 :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에도 후보 때와 별로 다르지 않다면서 견문이 좁고(ill-informed) 충동적(impulsive) 이라는 평가가 있다.
문정인 : 단기적인 위협이 있다. 북한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무모한 행동 취할까 우려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문제가 극복되길 바란다. 미국 정부의 각 부처에서 한반도에 대한 브리핑하지 않겠나. 그런 점에서 충분히 개선될 여지가 있다고 본다.
충동적인 부분도 빛과 그림자가 있다. 골목대장 식으로 상대방을 성가시게 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충동 또는 본능적으로 극적인 거래를 할 수도 있다. 이념이나 가치가 아니라 실리 추구의 장사를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거래가 더 쉬울 수도 있다.
트럼프가 집필한 저서 <거래의 기술>(The art of deal)을 보면 최악의 경우를 준비하지만, 계속 압박을 가하다 기회를 보라는 대목이 있다. 트럼프는 북한을 계속 밀어붙이다가도 북한이 조금만 꼬리 내리면 바로 협상하자는 전략을 취할 수 있다.
사드 배치, 차기 대통령이 결정하는 것이 '상식적'
프레시안 :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한국에 왜 들렀을까?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사드 배치 완료는 한국의 다음 대통령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하더니만,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공동발표에서는 사드 배치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개정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문정인 : 펜스 부통령의 방한은 이 지역 동맹국들과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관례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입장에서 일본과 한국이 주요 동맹국인데 펜스 부통령이라도 와서 인사를 하고 관계를 강화 하는게 좋은 것 아닌가.
의전적인 측면도 있다. 원래 주요 방문지는 일본인데 일본 가면서 한국에 오지 않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게다가 펜스 부통령의 아버지가 한국전에 참전, 동성무공훈장을 받은 바 있다. 펜스 부통령에게는 엄청난 정치적 자산이다. 그래서 이번에 가족들까지 모두 데려와서 판문점을 방문하기도 했다. 일종의 '애국적인 가족'이라는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강조하는 행보를 보인 것이다. 펜스 부통령의 방한은 이러한 여러 목적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본다.

▲ 마이크 펜스(왼쪽) 미국 부통령이 17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오찬 및 면담을 가진 이후 공동 발표자리에서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FTA 문제는, 기존 조약을 검토(review)하고 개혁(reform) 할 수 있다고 했다.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 재협상을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걸 그렇게 민감하게 볼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미국이 아무리 FTA를 바꾼다고 해봐야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지 못하면 계속 적자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은 일본과 FTA를 체결하지 않았음에도 대일적자가 대한국 무역 적자보다 훨씬 빨리 크게 늘어났다. 결국 FTA가 무역 수지의 절대적인 변수는 아니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무역수지에서는 미국이 한국을 상대로 적자를 보고 있다고 하지만, 경상수지 차원에서 보면 한국이 미국에 직접 투자한 금액이 600억 달러, 미국이 우리에 투자한 금액이 200억 달러 정도다. 그렇게 보면 미국이 일방적으로 적자만 보는 것은 아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사드 배치와 관련해서 펜스 부통령의 입장도 오락가락하는 것 같다. 미국 정부도 그렇고.
문정인 : 펜스를 수행했던 백악관 관리가 사드 배치 문제를 대선 후 새롭게 출범하는 한국 정부와 이야기하겠다고 한 것은 아주 건전한, 상식적인 발언이었다고 본다. 민주국가 미국의 시각에서는 더욱 그렇다. 오히려 대선 전에 배치를 완료하려 하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한민구 국방부 장관,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몰상식한 것 아닌가?
지금 정부의 임기는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차기 정부가 들어오면 정책 검토를 거쳐야 한다. 민주 국가라면 당연히 거쳐야 할 절차다. 여기서 사드 배치 문제를 논의하기 전에 이 정부에서 대못을 박아 버리자는 것인데, 아무리 북한의 위협이 있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대단히 정략적이자 자신들이 틀리지 않았다는 아집을 반영하는 몰상식의 극치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정책 검토를 통해 오바마 케어뿐만 아니라 의회에서도 인준이 끝났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도 뒤집었다. 물론 역대 정부가 한 것을 무조건 뒤집는 것이 100% 능사는 아니지만, 새 정부의 이러한 정책 검토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지극히 당연한 절차다.
게다가 한국은 대통령도 탄핵한 나라다. 국민의 열망을 반영하여 전반적인 정책 검토를 하는 것이 민주주의 이치에 맞는다. 새 대통령이 들어서면 해야 할 일을 왜 '과도기 정부의 좀비 각료'들이 나서서 서두르고 있는 것인가? 그 저의가 의심스럽다.
사드 도입은 절차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 국회와 협의하지도 않았고 배치 지역인 성주 및 김천 지역의 주민들과 제대로 된 공청회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밀어붙이기식으로 하다 보니 경제적인 피해를 보는 국민들도 생겨났다. 사드에 대한 중국 보복으로 1조 이상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나. 그 피해는 더 커질 것이다. 새로운 대통령이 들어서면 이런 문제들을 당연히 검토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이건 홍준표 후보가 당선된다고 해도 해야 할 과정이다.
그리고 실제 사드 배치가 언제 완료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환경영향평가도 거쳐야 하고, 사드 배치와 관련해 법적인 소송 문제로 들어가면 6개월이 걸릴지 1년이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이에 한국과 미국, 중국이 북한과 잘 소통해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없애나갈 수도 있다. 그러면 사드 배치할 이유가 없어지는 셈이다.
이번에 새로 들어오는 정부가 인수위는 없지만, 사드가 군사적으로 유용한지, 사드를 운용하면 북한의 행태를 바꿀 수 있는지, 추가로 사온다고 한다면 비용은 얼마나 될지, 중국과 러시아는 어떻게 반응을 할지 등등 검토를 해야 하지 않나? 그리고 '국익의 손익 계산'이라는 관점에서 제 검토하고 국회와 국민의 의견을 물어보고 나서 최종적으로 결정해도 늦지 않다.
더군다나 지금 배치하려는 사드가 수도권을 방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사드는 기본적으로 주한미군과 시설을 방어하기 위한 것인데, 당장 우리의 생사를 결정하는 무기 체계도 아니다. 정책검토가 당연히 있어야 한다.
프레시안 : 사드 배치 시작이 미국의 상층부보다는 군에서 먼저 결정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오기도 했다. 록히드마틴 쪽에서 들어온 민원을 처리하는 것과 유사한 과정을 거쳤다는 관측도 있는데?
문정인 : 처음에는 그랬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고 본다. 이미 사드가 국가 정상이 다루는 이슈가 되어 버리지 않았나? 미국과 중국 간의 기 싸움이 돼버렸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온 것에는 당사자 중 하나인 박근혜 정부의 무능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15년 3월까지만 해도 박근혜 정부는 △미국의 요청도 △한미간의 협의도 △결정된 바도 없다는 이른바 '3NO' 입장을 유지했다. 그래서 박 대통령이 그해 9월 1일 중국에서 항일 전쟁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행사에 참석해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했을 때만 해도 중국은 이 문제를 따로 거론하지 않았다. 또 같은 해 10월 박근혜 대통령이 워싱턴에 가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회담했을 때 역시 사드 문제는 언급되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2016년 1월 6일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하고 난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1월 13일 기자회견에서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 문제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감안하면서 우리 안보와 국익에 따라서 검토해 나갈 것"이라며 다소 입장을 바꿨다.
그리고 그해 2월 7일 북한이 장거리 로켓인 광명성호를 발사하자 그날 오후에 한미 양국 군 당국은 브리핑을 통해 사드 배치 가능성에 대한 공식 협의 시작을 결정했다. 그리고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3월 4일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과 토마스 밴달(Thomas S.Vandal) 주한미군사령부 참모장이 국방부에서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를 협의하기 위한 한미 공동실무단 구성 관련 약정에 서명했다.
합의문도 없는 사드가 배치로 결정 나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합의문은 없을 수밖에 없다. 한국 내 미군이 들어오는 문제는 모두 소파(SOFA, 주둔군 협정)에 의해 진행된다. 주한미군이 탄저균을 들고 들어오는 것도 모르는데, 미국이 몰래 사드 들여오면 알 수 있겠나?
또 미국 입장에서 사드가 그렇게 중요했다면 2015년에 국방장관 회담과 정상회담 때 왜 의제에 넣지 않았겠나. 이렇게 보면 록히드 마틴이라는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미 국무부와 국방성의 부차관보 수준 관리들의 쟁점화가 성공을 거든 사례라 하겠다.
그런데 미국이 아무리 FTA를 바꾼다고 해봐야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지 못하면 계속 적자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은 일본과 FTA를 체결하지 않았음에도 대일적자가 대한국 무역 적자보다 훨씬 빨리 크게 늘어났다. 결국 FTA가 무역 수지의 절대적인 변수는 아니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무역수지에서는 미국이 한국을 상대로 적자를 보고 있다고 하지만, 경상수지 차원에서 보면 한국이 미국에 직접 투자한 금액이 600억 달러, 미국이 우리에 투자한 금액이 200억 달러 정도다. 그렇게 보면 미국이 일방적으로 적자만 보는 것은 아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사드 배치와 관련해서 펜스 부통령의 입장도 오락가락하는 것 같다. 미국 정부도 그렇고.
문정인 : 펜스를 수행했던 백악관 관리가 사드 배치 문제를 대선 후 새롭게 출범하는 한국 정부와 이야기하겠다고 한 것은 아주 건전한, 상식적인 발언이었다고 본다. 민주국가 미국의 시각에서는 더욱 그렇다. 오히려 대선 전에 배치를 완료하려 하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한민구 국방부 장관,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몰상식한 것 아닌가?
지금 정부의 임기는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차기 정부가 들어오면 정책 검토를 거쳐야 한다. 민주 국가라면 당연히 거쳐야 할 절차다. 여기서 사드 배치 문제를 논의하기 전에 이 정부에서 대못을 박아 버리자는 것인데, 아무리 북한의 위협이 있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대단히 정략적이자 자신들이 틀리지 않았다는 아집을 반영하는 몰상식의 극치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정책 검토를 통해 오바마 케어뿐만 아니라 의회에서도 인준이 끝났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도 뒤집었다. 물론 역대 정부가 한 것을 무조건 뒤집는 것이 100% 능사는 아니지만, 새 정부의 이러한 정책 검토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지극히 당연한 절차다.
게다가 한국은 대통령도 탄핵한 나라다. 국민의 열망을 반영하여 전반적인 정책 검토를 하는 것이 민주주의 이치에 맞는다. 새 대통령이 들어서면 해야 할 일을 왜 '과도기 정부의 좀비 각료'들이 나서서 서두르고 있는 것인가? 그 저의가 의심스럽다.
사드 도입은 절차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 국회와 협의하지도 않았고 배치 지역인 성주 및 김천 지역의 주민들과 제대로 된 공청회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밀어붙이기식으로 하다 보니 경제적인 피해를 보는 국민들도 생겨났다. 사드에 대한 중국 보복으로 1조 이상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나. 그 피해는 더 커질 것이다. 새로운 대통령이 들어서면 이런 문제들을 당연히 검토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이건 홍준표 후보가 당선된다고 해도 해야 할 과정이다.
그리고 실제 사드 배치가 언제 완료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환경영향평가도 거쳐야 하고, 사드 배치와 관련해 법적인 소송 문제로 들어가면 6개월이 걸릴지 1년이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이에 한국과 미국, 중국이 북한과 잘 소통해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없애나갈 수도 있다. 그러면 사드 배치할 이유가 없어지는 셈이다.
이번에 새로 들어오는 정부가 인수위는 없지만, 사드가 군사적으로 유용한지, 사드를 운용하면 북한의 행태를 바꿀 수 있는지, 추가로 사온다고 한다면 비용은 얼마나 될지, 중국과 러시아는 어떻게 반응을 할지 등등 검토를 해야 하지 않나? 그리고 '국익의 손익 계산'이라는 관점에서 제 검토하고 국회와 국민의 의견을 물어보고 나서 최종적으로 결정해도 늦지 않다.
더군다나 지금 배치하려는 사드가 수도권을 방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사드는 기본적으로 주한미군과 시설을 방어하기 위한 것인데, 당장 우리의 생사를 결정하는 무기 체계도 아니다. 정책검토가 당연히 있어야 한다.
프레시안 : 사드 배치 시작이 미국의 상층부보다는 군에서 먼저 결정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오기도 했다. 록히드마틴 쪽에서 들어온 민원을 처리하는 것과 유사한 과정을 거쳤다는 관측도 있는데?
문정인 : 처음에는 그랬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고 본다. 이미 사드가 국가 정상이 다루는 이슈가 되어 버리지 않았나? 미국과 중국 간의 기 싸움이 돼버렸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온 것에는 당사자 중 하나인 박근혜 정부의 무능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15년 3월까지만 해도 박근혜 정부는 △미국의 요청도 △한미간의 협의도 △결정된 바도 없다는 이른바 '3NO' 입장을 유지했다. 그래서 박 대통령이 그해 9월 1일 중국에서 항일 전쟁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행사에 참석해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했을 때만 해도 중국은 이 문제를 따로 거론하지 않았다. 또 같은 해 10월 박근혜 대통령이 워싱턴에 가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회담했을 때 역시 사드 문제는 언급되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2016년 1월 6일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하고 난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1월 13일 기자회견에서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 문제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감안하면서 우리 안보와 국익에 따라서 검토해 나갈 것"이라며 다소 입장을 바꿨다.
그리고 그해 2월 7일 북한이 장거리 로켓인 광명성호를 발사하자 그날 오후에 한미 양국 군 당국은 브리핑을 통해 사드 배치 가능성에 대한 공식 협의 시작을 결정했다. 그리고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3월 4일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과 토마스 밴달(Thomas S.Vandal) 주한미군사령부 참모장이 국방부에서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를 협의하기 위한 한미 공동실무단 구성 관련 약정에 서명했다.
합의문도 없는 사드가 배치로 결정 나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합의문은 없을 수밖에 없다. 한국 내 미군이 들어오는 문제는 모두 소파(SOFA, 주둔군 협정)에 의해 진행된다. 주한미군이 탄저균을 들고 들어오는 것도 모르는데, 미국이 몰래 사드 들여오면 알 수 있겠나?
또 미국 입장에서 사드가 그렇게 중요했다면 2015년에 국방장관 회담과 정상회담 때 왜 의제에 넣지 않았겠나. 이렇게 보면 록히드 마틴이라는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미 국무부와 국방성의 부차관보 수준 관리들의 쟁점화가 성공을 거든 사례라 하겠다.

▲ 류제승(오른쪽) 국방부 정책실장과 토머스 밴달 미8군 사령관이 지난해 3월 4일 서울 용산에 위치한 국방부에서 사드 배치 협의를 위한 한미 공동 실무단 구성 협약 약정을 체결한 뒤 악수하고 있다. ⓒ국방부
프레시안 : 지난 19일 KBS TV토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사드 문제와 관련 '전략적 신중함'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얼핏 봐서는 전략적 모호성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데, 전략적 신중함이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지? 그리고 이러한 입장이 한국의 대외정책이 가져가야 할 방향이라고 보시는지?
문정인 : 두 개념 모두 분명하지가 않아 보인다. 아마 전략적 모호성은 사드 관련 우리의 입장을 미국과 중국에 애매모호하게 함으로서 정권을 잡은 후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겠다는 것이고, 전략적 신중함은 '전략적 모호성'이 좌우 양측에서 비판받으니까 모호성을 신중성으로 단어만 바꾼 것 아닌가 한다.
심상정 후보를 제외하고는 다른 후보들 중 문재인 후보가 그래도 나은 편이지만 보다 솔직했으면 한다. 사드와 관련, '군사적 유용성에 대해 미국이나 한국 정부로부터 자세히 보고 받은 바도 없고 절차적 하자가 있으니 이번 대선 기간 중 확실한 답을 줄 수 없다. 집권하면 면밀한 정책 검토를 통해 최종 결정을 내리겠다'고 하면 될 일이지 전략적 모호성이니 신중성이니 하는 수사를 쓸 필요가 없다고 본다.
한국, 전쟁 막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프레시안 : 사드와 함께 박근혜 정부 재임 기간 중에 실패했던 대표적인 외교 안보 정책으로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문제를 꼽을 수 있다. 대권 후보들 모두 위안부 협상을 다시 하거나 파기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문정인 : 일본은 이 합의를 소녀상 철거로 받아들이고 있고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결정이라고 못을 박았다. 어떻게 한 정부가 역사 문제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고 규정하나?
우리가 일본에 이기는 길은 딱 하나다. 일본 정부로부터 받은 10억 엔을 국민들이 성금을 모아서 돌려주고 대신 대사관 영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은 시민단체들이 자발적으로 이전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일본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을 국제사회에 보여주는 것이다.
이와 함께 대통령이 역사에 대한 집단적 기억을 최종적‧불가역적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못 박고 지난 정부가 부적절하게 합의한 것이라고 규정해야 한다.
또한 한일 관계에 대한 입장도 분명히 해야 한다. 한미일 3국 공조라는 동맹의 틀 보다는 한중일 3국의 협력과 통합의 질서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일본이 중요한 파트너라는 점을 부각시켜야 할 것이다.
역사 문제는 백년이 지나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따라서 과거사 문제는 점진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으로 가야한다. 역사 갈등은 최소화 시켜 나가면서 협력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독도 문제나 역사 문제 가지고 국제사회에서 일본과 경쟁할 필요가 없다. 그건 일본이 바라는 것이다. 그래야 쟁점화가 되기 때문이다.
독도는 우리 땅인데 국제무대에 나가서 우리 땅이라 선전할 필요 있나. 위안부 문제도 마찬가지다. 과거 일본의 만행을 학계와 언론계를 통해 우회적으로 알리면 된다. 일본과 이전투구 할 필요 없다. 우리의 국격을 살리면서 일본을 압도하는 방안이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 : 일본에 100억 원을 돌려주는 것은 찬성하는 여론이 높을 것 같은데, 소녀상을 이전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닐 것 같다.
문정인 : 소녀상 이전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해야 한다. 강제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일본에 비해 월등한 도덕적 우위에 설 수 있도록, 용서는 하지만 잊지는 말자는 생각으로 전국 곳곳에 소녀상을 설치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어떨까 싶다.

▲ 문정인 교수 ⓒ프레시안(이재호)
프레시안 : 미국과 중국이 북한의 핵 문제를 가지고 속도를 내고 있는데, 정작 거기에서 한국이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로운 정부가 가장 중점을 둬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보나?
문정인 : 새 대통령이 해야 할 가장 큰 일은 전쟁을 막는 것이다. 한반도의 급변사태를 막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 그러려면 세 방향의 접근이 필요한데 우선 남북부터 대화를 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북한의 의도를 파악한 뒤 워싱턴에 이를 전달해줘야 한다. 중국과도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주도권을 가지고 남북, 북미, 한미, 한중, 북중 관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핵심은 우리가 북쪽과 통로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가 한반도에 몰아치는 소용돌이 속에서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북한과 관계를 완전히 단절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용할 수 있는 외교적인 자원을 스스로 없애버린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남북관계를 한미관계에 예속시키면서 미국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이것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다.
그리고 대통령의 귀를 누가 잡느냐는 상당히 중요하다. 이건 미국도 마찬가지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미국 대통령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은 한국 대통령이다. 진솔하고 진지하게 이야기하면 그만큼 효과가 클 수밖에 없다. 다음 대통령이 이런 부분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프레시안 : 동북아를 둘러싼 큰 질서를 바라보고 외교안보 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하는데 지엽적인 사안에만 매몰돼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
문정인 : 노무현 정부 당시 동북아시대위원장으로 있을 때 노 대통령이 지시했던 중요한 과제 중 하나가 앞으로 20년 후 동아시아 질서가 어떻게 변할지를 보고하는 것이었다. 그 정도의 안목이 있었던 대통령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 대선 후보들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만 매달려있고, 사드와 한미 동맹만 염두에 두고 있는데 이건 지도자의 길이 아니다. 한국이 당장 내일 없어질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백년대계를 보는 외교적 철학과 지역질서에 대한 큰 그림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없어서 걱정이다. 남북관계와 통일에 대한 비전 제시가 실종된 이런 대선은 처음 본다.
미국의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은 '무오류성'이라고 하는 미국의 전염병 문제를 그의 최근 칼럼에서 지적한 바 있다. '자신들은 잘못한 것이 전혀 없다'는 이러한 전염병이 이제 한국에도 상륙한 것 같다. 모든 것이 북한과 중국의 잘못이고 우리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식이다. 잘못한 것이 없으니까 반성도, 고칠 것도 없는 거다. 지금 야당 후보들도 무오류성에 빠져있는 것 같은데, 이렇게 되면 정책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외교와 관련해서 제일 중요한 것이 철학적 기조다. 일정한 기조를 가지고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한반도와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여기서 우리가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끝)
한반도, 미·중 패권 속 전쟁 맞을 수 있다
[민미연 포럼] 동아시아 유목민제국사와 동양평화론이 시급하다
2017.04.26 08:37:15
한반도 주변 정세가 심상치 않다. 최근 미·중 정상이 주고받은 이야기를 살펴보면 위기의 징후가 뚜렷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9일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 중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Korea actually used to be a part of China)"는 발언을 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22일 중국 관영인 <환구시보>는 사평을 통해 미국이 북한의 핵시설만을 타격한다면 중국이 군사개입을 하지 않겠지만, 한·미가 38선을 넘어 북한을 전면 공격한다면 군사 개입을 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한·미 공격에 따라 북한도 서울지역에 대한 보복성 타격을 가할 위험이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 경고했다.
시진핑 발언에 대해 파문이 커지자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0일 "트럼프 대통령이 전한 발언으로 한국 정부와 국민이 우려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한국 국민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전했고, 백악관은 21일 "우리는 한국이 수천 년간 독립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We know well that Korea has been independent for thousands of years)고 입장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시진핑은 왜 미·중 정상회담 자리에서 중국과 한국의 역사를 얘기했을까? 이 배경에 대해 주진오 상명대 교수의 해석을 참고해보자. 주 교수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 얘기가 나온 건데 저는 그것이 중국 측이 말하자면, 미국이 만약에 북한을 공격한다면 그냥 자기들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그렇게 이해를 합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앞서 중국 <환구시보>가 내놓은 중국의 군사 개입 노선의 입장과도 연결된다.
이 같은 미·중 정상들의 언급들은 머지않은 시기에 한반도 주변에서 미·중의 패권전쟁이 시작될 수도 있음을 예고한다. 정치·경제적 양극화, 진영논리로 홍역을 앓으면서 국론분열로 통합력이 약화된 현재의 대한민국은 미·중의 패권전쟁을 막아내는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채 허송세월만 하다가 속수무책으로 전쟁을 맞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는 중국의 중화주의와 일본의 군국주의, 그리고 북한의 핵수령주의 사이에서 어떻게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을까? 이번 대선은 중국과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를 놓고 벌이는 진보 대 보수라는 진영구도를 넘어, '한국의 생존과 번영 전략'의 한 방법을 찾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동북공정과 한족 중심의 중국사 왜곡 등 역사전쟁으로 밀고 들어오는 중국의 패권주의에 맞서는 방법으로서 '동아시아 유목민제국사'와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시급히 정립하여 전 국민이 토론하고 교육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이 국내정치를 놓고 싸우더라도 미국의 패권을 위해 대외정책에서는 초당적으로 대처하는 것처럼 우리 정치권도 '친중'이니, '친미'니하는 사대주의 추구용 색깔론(이른바 '주적논쟁', '송민순 회고록 파문') 등으로 분열하지 말고 실질적이고 초당적인 대외정책안을 만들어 대처할 필요가 있다.
언제부터 중국사(中國史)인가? 수천 년 동안 중국대륙엔 수많은 나라가 일어나고 없어졌다. 진시황의 진(秦)나라의 음(音)에서 '차이나(China)'가 유래된 이후, 어떤 나라도 이름을 중국이라 부르지 않았다. 중국은 없다. 있다면 상상 속의 나라(A Nation of Imagination)일 뿐이다. 1912년 '중화민국'의 탄생으로 시작된 '중국사'는 100년이 채 안 된다.
유장근 경남대 교수가 쓴 <현대중국의 중화제국 만들기>(푸른역사 펴냄)에 의하면, 한족 중심의 중국사는 '청대의 유산을 물려받은 현대의 중화제국'이라는 것이다. 중국이란 국호로 불린 적이 없는 중국이 다른 민족사를 한족(漢族)의 변방사로 흡수하여 중국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즉, 작금의 중국사란 다름 아닌 한족에 의해 만들어진 주변 민족의 '정복사'이자 '식민지사'로 보인다.
중국 정부에서 진행된 역사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 스키야마 마사아키 교토대학 교수가 쓴 <유목민이 본 세계사>(이진복 옮김, 학민사 펴냄)를 참고하여, 한족 중심의 패권주의적 '중국사'가 아닌 '동아시아유목민제국사'를 새롭게 정립하고 교육할 필요가 있다. 중국 이전의 통일 왕조 중에 농경민 출신의 순수 한족(漢族)의 왕조는 한(漢)·명(明)·송(宋) 삼국에 불과하다. 진(秦), 수(隨), 당(唐), 원(元), 청(淸) 등 통일왕조는 유목적 전통을 가지고 있거나 북방 유목민이 세웠다.
중국 이전의 동아시아 제국을 만든 것은 한족이 아닌 그들이 동이, 서융, 남만, 북적이라 부르며 멸시하던 오랑캐들이었다. 중국 땅에는 후한부터 당까지 무려 33개의 나라가 피고 졌고, 그중 후한이 196년으로 가장 오래갔고 200년 이상 지탱한 나라는 없다. 진나라를 세운 진시황은 투르크 몽골족인 서융이고, 5호16국을 세운 것은 흉노족이다. 수나라와 당나라는 선비족이 세웠고, 요, 금, 원나라는 거란족, 여진족, 몽골족이다.
중국의 역사는 한족과 북방 민족 사이의 쟁투와 긴밀한 연관을 갖고 있다. 분열의 시기에 북방 민족은 중국 대륙으로 진출해 패권을 다투었다. 중국의 한족 역사 2000년을 보면 한족이 북방의 기마민족에게 지배당한 '기마민족의 식민지'로 산 것이 1100년이나 된다. 전체 역사의 55%를 북방의 기마민족인 선비, 돌궐, 말갈, 여진, 만주족에게 굴욕적 통치를 당했다. 대표적인 예로 중국의 자긍심이라 할 수 있는 베이징 자금성의 주인은 한족이 아니라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이다.
우리가 중국과 일본보다 우수한 것은 민주주의를 경험한 덕성 있는 시민이 있다는 것이고, 민주공화국이란 가장 탁월한 정체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아시아의 평화안정과 공동번영 및 민주주의 확산을 위해서는 안중근 의사가 꿈꾼 동양평화론을 근거로 한·중·일이 동반성장할 수 있는 동아시아연방제국으로 이행할 수 있는 문명 규범과 담론을 생산하고 공급할 필요가 있다.
동양평화론은 19세기 제국주의 시대, 서양의 침략 속에서 동양이 공동 대처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탄생했다. 안중근은 '동양평화론'에서 한·중·일 삼국이 공용 화폐를 발행하고 공동 군대를 창설하는 등 공동체를 결성해 영구한 평화와 행복을 얻자고 제안했다. 동양평화론은 미완의 작품으로 많은 의의와 함께 한계도 가지고 있다. 이 한계를 새롭게 채우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의 몫이다. 동아시아의 평화, 번영 및 민주주의 확산을 위해 정치권과 국민이 분열과 대립을 중단하고 우리나라가 나아갈 방안에 대해 에너지와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리고 22일 중국 관영인 <환구시보>는 사평을 통해 미국이 북한의 핵시설만을 타격한다면 중국이 군사개입을 하지 않겠지만, 한·미가 38선을 넘어 북한을 전면 공격한다면 군사 개입을 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한·미 공격에 따라 북한도 서울지역에 대한 보복성 타격을 가할 위험이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 경고했다.
시진핑 발언에 대해 파문이 커지자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0일 "트럼프 대통령이 전한 발언으로 한국 정부와 국민이 우려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한국 국민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전했고, 백악관은 21일 "우리는 한국이 수천 년간 독립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We know well that Korea has been independent for thousands of years)고 입장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시진핑은 왜 미·중 정상회담 자리에서 중국과 한국의 역사를 얘기했을까? 이 배경에 대해 주진오 상명대 교수의 해석을 참고해보자. 주 교수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 얘기가 나온 건데 저는 그것이 중국 측이 말하자면, 미국이 만약에 북한을 공격한다면 그냥 자기들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그렇게 이해를 합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앞서 중국 <환구시보>가 내놓은 중국의 군사 개입 노선의 입장과도 연결된다.
이 같은 미·중 정상들의 언급들은 머지않은 시기에 한반도 주변에서 미·중의 패권전쟁이 시작될 수도 있음을 예고한다. 정치·경제적 양극화, 진영논리로 홍역을 앓으면서 국론분열로 통합력이 약화된 현재의 대한민국은 미·중의 패권전쟁을 막아내는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채 허송세월만 하다가 속수무책으로 전쟁을 맞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미중 정상회담이 현지시각으로 4월 6~7일 미국 플로리다 주 마라리고 리조트에서 열렸다. ⓒAP=연합뉴스
우리는 중국의 중화주의와 일본의 군국주의, 그리고 북한의 핵수령주의 사이에서 어떻게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을까? 이번 대선은 중국과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를 놓고 벌이는 진보 대 보수라는 진영구도를 넘어, '한국의 생존과 번영 전략'의 한 방법을 찾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동북공정과 한족 중심의 중국사 왜곡 등 역사전쟁으로 밀고 들어오는 중국의 패권주의에 맞서는 방법으로서 '동아시아 유목민제국사'와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시급히 정립하여 전 국민이 토론하고 교육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이 국내정치를 놓고 싸우더라도 미국의 패권을 위해 대외정책에서는 초당적으로 대처하는 것처럼 우리 정치권도 '친중'이니, '친미'니하는 사대주의 추구용 색깔론(이른바 '주적논쟁', '송민순 회고록 파문') 등으로 분열하지 말고 실질적이고 초당적인 대외정책안을 만들어 대처할 필요가 있다.
언제부터 중국사(中國史)인가? 수천 년 동안 중국대륙엔 수많은 나라가 일어나고 없어졌다. 진시황의 진(秦)나라의 음(音)에서 '차이나(China)'가 유래된 이후, 어떤 나라도 이름을 중국이라 부르지 않았다. 중국은 없다. 있다면 상상 속의 나라(A Nation of Imagination)일 뿐이다. 1912년 '중화민국'의 탄생으로 시작된 '중국사'는 100년이 채 안 된다.
유장근 경남대 교수가 쓴 <현대중국의 중화제국 만들기>(푸른역사 펴냄)에 의하면, 한족 중심의 중국사는 '청대의 유산을 물려받은 현대의 중화제국'이라는 것이다. 중국이란 국호로 불린 적이 없는 중국이 다른 민족사를 한족(漢族)의 변방사로 흡수하여 중국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즉, 작금의 중국사란 다름 아닌 한족에 의해 만들어진 주변 민족의 '정복사'이자 '식민지사'로 보인다.
중국 정부에서 진행된 역사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 스키야마 마사아키 교토대학 교수가 쓴 <유목민이 본 세계사>(이진복 옮김, 학민사 펴냄)를 참고하여, 한족 중심의 패권주의적 '중국사'가 아닌 '동아시아유목민제국사'를 새롭게 정립하고 교육할 필요가 있다. 중국 이전의 통일 왕조 중에 농경민 출신의 순수 한족(漢族)의 왕조는 한(漢)·명(明)·송(宋) 삼국에 불과하다. 진(秦), 수(隨), 당(唐), 원(元), 청(淸) 등 통일왕조는 유목적 전통을 가지고 있거나 북방 유목민이 세웠다.
중국 이전의 동아시아 제국을 만든 것은 한족이 아닌 그들이 동이, 서융, 남만, 북적이라 부르며 멸시하던 오랑캐들이었다. 중국 땅에는 후한부터 당까지 무려 33개의 나라가 피고 졌고, 그중 후한이 196년으로 가장 오래갔고 200년 이상 지탱한 나라는 없다. 진나라를 세운 진시황은 투르크 몽골족인 서융이고, 5호16국을 세운 것은 흉노족이다. 수나라와 당나라는 선비족이 세웠고, 요, 금, 원나라는 거란족, 여진족, 몽골족이다.
중국의 역사는 한족과 북방 민족 사이의 쟁투와 긴밀한 연관을 갖고 있다. 분열의 시기에 북방 민족은 중국 대륙으로 진출해 패권을 다투었다. 중국의 한족 역사 2000년을 보면 한족이 북방의 기마민족에게 지배당한 '기마민족의 식민지'로 산 것이 1100년이나 된다. 전체 역사의 55%를 북방의 기마민족인 선비, 돌궐, 말갈, 여진, 만주족에게 굴욕적 통치를 당했다. 대표적인 예로 중국의 자긍심이라 할 수 있는 베이징 자금성의 주인은 한족이 아니라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이다.
우리가 중국과 일본보다 우수한 것은 민주주의를 경험한 덕성 있는 시민이 있다는 것이고, 민주공화국이란 가장 탁월한 정체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아시아의 평화안정과 공동번영 및 민주주의 확산을 위해서는 안중근 의사가 꿈꾼 동양평화론을 근거로 한·중·일이 동반성장할 수 있는 동아시아연방제국으로 이행할 수 있는 문명 규범과 담론을 생산하고 공급할 필요가 있다.
동양평화론은 19세기 제국주의 시대, 서양의 침략 속에서 동양이 공동 대처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탄생했다. 안중근은 '동양평화론'에서 한·중·일 삼국이 공용 화폐를 발행하고 공동 군대를 창설하는 등 공동체를 결성해 영구한 평화와 행복을 얻자고 제안했다. 동양평화론은 미완의 작품으로 많은 의의와 함께 한계도 가지고 있다. 이 한계를 새롭게 채우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의 몫이다. 동아시아의 평화, 번영 및 민주주의 확산을 위해 정치권과 국민이 분열과 대립을 중단하고 우리나라가 나아갈 방안에 대해 에너지와 지혜를 모아야 한다.
주적? 북한 퍼주기? 빈 수레는 요란했다
[정욱식 칼럼] 보수 후보들 색깔론, 이명박-박근혜 10년 동안 뭘했나?
2017.04.25 16:05:50
한마디로 안보가 기가 막힌다. '안보 대선'으로 불릴 만큼 대선 후보 TV 토론 장내와 장외에선 연일 안보 논쟁이 거칠게 전개되고 있다. 그런데 공수가 바뀐 느낌이다. 지난 10년간 안보를 말아먹은 수구 보수 정당 후보들은 공세적으로 나오고 정권 교체를 외치는 야권 후보들은 방어적이다. 정의당의 심상정 후보를 제외하곤 말이다.
수구 보수 후보들은 한국전쟁 이후 최악의 안보 위기가 다가왔다고 경쟁적으로 말한다. 이러한 진단에 동의 여부를 떠나 홍준표, 유승민 후보에게 묻고 싶다. 정권을 잡았던 10년 동안 무엇을 했냐고 말이다. 지난 10년간 안보 상황이 지속적으로 악화되어왔다면, 집권 세력으로서 일말의 반성이라도 보여야 한다. 그런데 그 책임을 김대중-노무현 정부에게 돌린다. 이들 정부가 "북한에 퍼준 돈이 핵과 미사일로 돌아왔다"는 황당한 궤변을 늘어놓는다.
김대중-노무현 시기에 북한에 지원했던 식량이 핵과 미사일로 둔갑할 수는 없다. 오히려 '대한민국'이라고 적힌 수많은 포대가 북한 전역으로 퍼지면서 북한 주민들의 민심을 얻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것만큼 중요한 통일의 토대도 없었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말로는 북한 인권과 통일을 외치면서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얻고자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등 남북경협은 대북 지원이 아니라 상업적 거래에 해당한다. 우리는 노동자에 지불하는 임금을 '지원'이라고 하지 않는다. 관광지에서 쓰는 돈도 '지원'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남북경협에 지출한 비용을 '대북 지원'이라고 말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제 이러한 '가명(假名)'을 '정명(正名)'으로 바꿔야 한다. 더구나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남북경협으로 쓰인 돈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로 전용되었다는 어떠한 근거도 제시하지 못했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에 사용된 대북 비용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경수로 사업이었다. 총 사업비 약 50억 달러의 70%를 한국이 부담키로 김영삼 정부 때 합의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수로는 북미 간의 제네바 합의가 파기되면서 완공되지 못했다. 이로 인해 경수로 사업비의 상당 부분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이를 대북 '지원'에 합산해 핵과 미사일 개발에 전용되었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는 것이다.
바른정당의 유승민 후보는 '주적론'을 들고 나와 문재인 후보를 공격하고 있다. 이 당은 "주적을 주적으로 부르지 못하는 후보는 안 된다"며, 반문(反文) 3자 연대를 추진키로 했다. 한 마디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안보는 적개심이 아니라 애국심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국민 스스로가 내 나라를 목숨 걸고 지킬 가치가 있다고 여길 때, 안보는 튼튼해질 수 있다. 그런데 이명박-박근혜 시기에 맹위를 떨치고 있는 말이 '헬조선', '탈조선'이다. 많은 국민들이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아니라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 하여 안보의 가장 소중한 토대를 무너뜨린 당사자는 이명박-박근혜 정권들이다. 수구 보수 진영이 끊임없이 북한을 호출해 상대편을 공격하는 색깔론과 종북몰이를 시도해도 먹혀들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수구 보수 진영의 '가짜 안보'의 백미는 자국군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2006년 9월 4일에 버웰 벨 주한미군 사령관이 도날드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과 피터 페이스 합참의장에게 보낸 서한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비밀 해제된 이 서한은 한국군 주도로 연합훈련을 실시하면서 "전쟁 수준의 환경에서 한국군의 지휘통제작전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었다.
"한국군은 오늘날에도 전쟁 수준의 환경에서 높은 수준의 전투 지휘 능력을 행사할 능력을 갖고 있다. (중략) 주어진 위협의 성격과 준비 수준을 감안할 때, 한국군은 지금 당장이라도 독자적으로 그들의 나라를 성공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 한국군의 능력은 미국이 기대했던 것 이상이다."
벨의 후임자인 월터 샤프 주한미군 사령관도 2013년에 작성한 <전작권 전환 보고서>를 통해 마찬가지 평가를 내렸다. "한국군 지휘관들은 전문적이고 현대적이며 잘 훈련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군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한국 합참이 전시에도 한국 방어를 통제할 능력이 있다고 확신한다."
지금과는 상황이 다르지 않았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2013년 상반기에도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 채택→북한의 3차 핵실험→유엔 안보리의 추가 제재→북한의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미국의 전략무기 대거 투입'이 이어지면서 한반도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었다.
이처럼 주한미군 사령관들조차 한국군이 전시작전권을 행사할 충분한 역량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잠재력이 뛰어났던 한국군을 누가 무능하고도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는 군대로 전락시킨 것인가? 그건 바로 우리군의 능력을 못 믿겠다며 전작권 환수를 계속 연기하고 군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이명박-박근혜 정권들이다.
대선 후보들을 비롯한 수구 보수 진영은 입만 열면 '안보'를 말한다. 궤멸 위기에 처해, 그래서 '안보'를 동아줄로라도 삼고 싶은 심정이야 이해하겠지만,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 한다. 안보를 망친 당사자들이 안보를 선거용 무기로 삼는 행태를 이제는 중단하길 바란다.
수구 보수 진영이 이러한 최소한의 자각 능력마저 보여주지 않는다면 심판의 몫은 국민들에게 있다. 이번 대선이 '빈 수레가 요란했다'는 점을 깨닫는 계기가 되길 바랄 뿐이다.
수구 보수 후보들은 한국전쟁 이후 최악의 안보 위기가 다가왔다고 경쟁적으로 말한다. 이러한 진단에 동의 여부를 떠나 홍준표, 유승민 후보에게 묻고 싶다. 정권을 잡았던 10년 동안 무엇을 했냐고 말이다. 지난 10년간 안보 상황이 지속적으로 악화되어왔다면, 집권 세력으로서 일말의 반성이라도 보여야 한다. 그런데 그 책임을 김대중-노무현 정부에게 돌린다. 이들 정부가 "북한에 퍼준 돈이 핵과 미사일로 돌아왔다"는 황당한 궤변을 늘어놓는다.
김대중-노무현 시기에 북한에 지원했던 식량이 핵과 미사일로 둔갑할 수는 없다. 오히려 '대한민국'이라고 적힌 수많은 포대가 북한 전역으로 퍼지면서 북한 주민들의 민심을 얻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것만큼 중요한 통일의 토대도 없었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말로는 북한 인권과 통일을 외치면서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얻고자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등 남북경협은 대북 지원이 아니라 상업적 거래에 해당한다. 우리는 노동자에 지불하는 임금을 '지원'이라고 하지 않는다. 관광지에서 쓰는 돈도 '지원'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남북경협에 지출한 비용을 '대북 지원'이라고 말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제 이러한 '가명(假名)'을 '정명(正名)'으로 바꿔야 한다. 더구나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남북경협으로 쓰인 돈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로 전용되었다는 어떠한 근거도 제시하지 못했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에 사용된 대북 비용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경수로 사업이었다. 총 사업비 약 50억 달러의 70%를 한국이 부담키로 김영삼 정부 때 합의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수로는 북미 간의 제네바 합의가 파기되면서 완공되지 못했다. 이로 인해 경수로 사업비의 상당 부분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이를 대북 '지원'에 합산해 핵과 미사일 개발에 전용되었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는 것이다.
바른정당의 유승민 후보는 '주적론'을 들고 나와 문재인 후보를 공격하고 있다. 이 당은 "주적을 주적으로 부르지 못하는 후보는 안 된다"며, 반문(反文) 3자 연대를 추진키로 했다. 한 마디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안보는 적개심이 아니라 애국심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국민 스스로가 내 나라를 목숨 걸고 지킬 가치가 있다고 여길 때, 안보는 튼튼해질 수 있다. 그런데 이명박-박근혜 시기에 맹위를 떨치고 있는 말이 '헬조선', '탈조선'이다. 많은 국민들이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아니라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 하여 안보의 가장 소중한 토대를 무너뜨린 당사자는 이명박-박근혜 정권들이다. 수구 보수 진영이 끊임없이 북한을 호출해 상대편을 공격하는 색깔론과 종북몰이를 시도해도 먹혀들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수구 보수 진영의 '가짜 안보'의 백미는 자국군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2006년 9월 4일에 버웰 벨 주한미군 사령관이 도날드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과 피터 페이스 합참의장에게 보낸 서한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비밀 해제된 이 서한은 한국군 주도로 연합훈련을 실시하면서 "전쟁 수준의 환경에서 한국군의 지휘통제작전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었다.
"한국군은 오늘날에도 전쟁 수준의 환경에서 높은 수준의 전투 지휘 능력을 행사할 능력을 갖고 있다. (중략) 주어진 위협의 성격과 준비 수준을 감안할 때, 한국군은 지금 당장이라도 독자적으로 그들의 나라를 성공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 한국군의 능력은 미국이 기대했던 것 이상이다."
벨의 후임자인 월터 샤프 주한미군 사령관도 2013년에 작성한 <전작권 전환 보고서>를 통해 마찬가지 평가를 내렸다. "한국군 지휘관들은 전문적이고 현대적이며 잘 훈련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군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한국 합참이 전시에도 한국 방어를 통제할 능력이 있다고 확신한다."
지금과는 상황이 다르지 않았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2013년 상반기에도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 채택→북한의 3차 핵실험→유엔 안보리의 추가 제재→북한의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미국의 전략무기 대거 투입'이 이어지면서 한반도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었다.
이처럼 주한미군 사령관들조차 한국군이 전시작전권을 행사할 충분한 역량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잠재력이 뛰어났던 한국군을 누가 무능하고도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는 군대로 전락시킨 것인가? 그건 바로 우리군의 능력을 못 믿겠다며 전작권 환수를 계속 연기하고 군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이명박-박근혜 정권들이다.
대선 후보들을 비롯한 수구 보수 진영은 입만 열면 '안보'를 말한다. 궤멸 위기에 처해, 그래서 '안보'를 동아줄로라도 삼고 싶은 심정이야 이해하겠지만,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 한다. 안보를 망친 당사자들이 안보를 선거용 무기로 삼는 행태를 이제는 중단하길 바란다.
수구 보수 진영이 이러한 최소한의 자각 능력마저 보여주지 않는다면 심판의 몫은 국민들에게 있다. 이번 대선이 '빈 수레가 요란했다'는 점을 깨닫는 계기가 되길 바랄 뿐이다.
정말 전쟁 날까? 트럼프에게 달렸지
전쟁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미국 항모 전단이 한반도 근해로 모여들고 있다. 한국의 전시작전권은 미국에 귀속되어 있다.
김형민 (PD) webmaster@sisain.co.kr 2017년 04월 27일 목요일 제501호
헌법상 60만 국군 통수권자는 대통령이야. 그런데 작전권, 즉 전쟁이 났을 때 군대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지휘할 권리는 대통령에게 있지 않아. 전시작전권은 주한 미군 사령관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 1950년 7월14일,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군 작전권을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 원수에게 넘긴단다.
“한국군은 귀하의 휘하에서 복무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할 것이며 한국 국민과 정부도 고명하고 훌륭한 군인으로서 우리들의 사랑하는 국토의 독립과 보전에 대한 비열한 공산 침략을 대항하기 위하여 힘을 합친 국제연합의 모든 군사권을 받은 귀하의 전체적 지휘를 받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또한 격려되는 바입니다.”
이를 두고 리처드 스틸웰 전 주한 미군 사령관은 “역사상 보기 드문 주권의 양도”라고 표현한 바 있다. 현재까지도 한국군 작전권은 한·미 연합사령관, 즉 미군 장성에게 귀속되고 있단다. 여기에는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분명한 점은 한국군은 미국의 허락 없이는 전쟁을 시작할 수도, 단독으로 수행할 수도 없다는 것이겠지. 당연히 비정상적이고 자존심이 몹시 상할 뿐 아니라 북한이 남한을 ‘미제의 식민지’라고 우기는 근거가 되기도 했어. 그러나 어떤 측면으로는 미국이 전쟁의 열쇠를 쥐고 있음으로써 허다한 남북 간 충돌에도 제2의 6·25(즉 전면전)가 발발하지 않았다고 볼 여지도 있어.
1960년대 말 북한은 남한에 대규모 무력 공세를 펼친단다. 베트남 전선에 허덕이던 미국이 두 개의 전선을 펼칠 수 없는 약점을 활용하여 군사적·경제적으로 허약했던 남한을 혼란에 빠뜨림과 동시에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을 저지하는 등 다양한 목적을 지닌 군사행동이었지. 인민군 수백명이 남한에 침투해서 게릴라전을 벌였고 수많은 희생을 낳았다. 휴전선에서도 마찬가지였어. 북한 인민군은 수시로 휴전선을 넘어 한국군 진지를 기습했다. 한국군도 당연히 복수를 감행했지. 1960년대 전방에서 군대 생활한 사람들은 단순한 군 복무가 아닌 ‘전투’를 경험한 사람들이 많아.
1967년 4월12일 일어난 남북 간 충돌을 보면 당시 휴전선은 낮은 수준의 전시 상황이었다고 해도 무방할 거다. “북괴(北傀:북한은 소련의 꼭두각시라는 뜻)가 휴전 이후 최초로 다수의 병력인 60여 명으로 휴전선을 침범케 한 사건(<경향신문> 1967년 4월14일자)”이었는데 북한군 1개 소대가 휴전선을 넘어와 남한 초소를 기습하자 이에 분노한 한국군 7사단은 포탄 585발을 북한 측 지역에 퍼부어버렸어(참고로 2010년 연평도 포격 만행 때 북한이 170여 발 정도를 쐈다). 급기야 1968년 1월에는 북한 특공대가 남한 대통령의 목숨을 노리고 청와대 턱 앞까지 찌르고 들어온 사건이 발생했지. 박정희 대통령은 사건 당일 미국 대사를 불러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해.
“대사! 30명의 북한군이 쳐들어와 나를 죽이려 했소. 북을 공격해야겠소. 이틀이면 평양에 닿을 수 있다고 생각하오.” 그러나 윌리엄 포터 당시 주한 미국 대사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지. “하려거든 혼자 하십시오.” 대한민국 만인지상(萬人之上) 유아독존(唯我獨尊)의 통치자였던 박정희 대통령이었지만 단독으로 북한을 응징할 수는 없었어. 미국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이렇듯 한국 대통령 관저에 북한 특공대가 육박해도, 1983년의 아웅산 테러처럼 한국 대통령이 해외 순방 때 북한 특수요원이 장착한 폭탄 세례를 받아도 전면전이 터질 조짐은 별로 없었어. 오히려 당시 전두환 대통령 스스로 전방을 누비며 “내 명령 없이 경거망동하지 말 것”을 단속하고 다녔단다.
한반도가 정작 위태로운 순간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 전쟁을 결심하거나 그에 준하는 사태와 마주칠 즈음이었어. 1976년 8월18일, 판문점 인근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하던 미군 장교 2명이 북한군과 승강이 끝에 도끼에 맞아죽는 사건이 발생해. 이른바 8·18 도끼 만행 사건이지. 휴전 이후 최초로 한국에는 전시에 준하는 상황을 뜻하는 ‘데프콘 3’ 단계가 선포됐다. 문제의 미루나무를 잘라버리는 작업이 진행되던 판문점 주변에는 ‘데프콘 2(전쟁 준비 완료 상황)’까지 발동됐지. 항공모함 미드웨이를 포함한 7함대가 총동원됐고 미국 본토에서 공군 전력이 한국으로 건너왔으며 괌에서 폭탄을 싣고 날아온 폭격기들이 한반도 상공을 선회했어.
그 엄청난 무력 앞에서 북한도 기가 질리지. 한국군이 미루나무 제거 작전 와중에 북한군 지역까지 넘어가 북한 초소들을 때려 부쉈지만 북한은 엎드려 움직이지 않았어. 결국 김일성 주석이 유감 표명을 하고 미국 측이 이를 사과로 받아들이면서 1976년의 전쟁 위기는 고개를 숙이게 돼.
이후 최악의 전쟁 위기는 1994년에 왔어. 1994년 6월16일 오전, 제임스 레이니 주한 미국 대사는 정종욱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만나 미국의 민간인들을 철수시키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민간인들을 뺀다는 건 전쟁이 임박했다는 뜻이야. 미국 클린턴 대통령은 평안북도 영변의 원자로 폭격을 결심했고 그럴 경우 한국군과 미군 및 민간인 사망자까지 예상된 시나리오를 세워두고 있었어. 기가 막힌 것은 미국의 결심으로 파국을 맞이할 당사자였던 한국인들은 거의 새까맣게 그 사실을 몰랐다는 거야. 아빠를 포함한 많은 한국인들의 눈은 당시 한창 진행 중이던 미국 월드컵에 집중돼 있었거든.
‘귀신이 곡할 일’이란 바로 이런 형국이군
심지어 미국의 ‘혈맹’인 한국의 대통령도 미국 대사가 “미국 민간인들을 소개(疏開)시키겠소”라고 통보하기 전까지는 미국이 한국의 의사와 관계없이 전쟁을 결심했다는 사실을 깡그리 몰랐어.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자신의 주장에 따르면) 클린턴에게 이렇게 소리 질렀다고 해. “전쟁은 안 됩니다. 역사와 국민 앞에 죄를 지을 수는 없소.” 그러나 가장 큰 죄는, 그 자신이 정말로 ‘죄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토록 뒤늦게 알게 됐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닐까 해.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 한국 사람들은 축구에 열광하고 있었어. 그즈음에 벌어진 한국 대 볼리비아 축구 경기의 시청률은 63.7%로 역대 스포츠 경기 가운데 최고의 시청률로 남아 있단다.
그로부터 또 4반세기 가까이 흐른 지금 미국은 또 한번 전쟁을 결심한 듯한 제스처를 취하며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94년 당시 북한을 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밝혔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가능한 한 모든 옵션을 준비”하라고 선언한 가운데 미국 항모 전단이 한반도 근해로 모여들고 있어. 북한에는 그 할아버지나 아버지보다 훨씬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듯한 김정은 위원장이 버티고 있으니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지. 1994년과 다르다면 우리가 그 위기를 감지해서 걱정하고 있다는 점이겠지만, 전쟁이 미국의 의사에 따라 결정된다는 슬픈 현실만은 벗어나지 못했지. 전쟁이 벌어질 땅은 우리 땅이고 죽어 엎어질 사람들의 태반은 한국 사람인데,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전쟁이 우리 의사와 관계없이 벌어진다는 것, ‘귀신이 곡할 일’이란 바로 이런 형국이 아닐까.
“한국군은 귀하의 휘하에서 복무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할 것이며 한국 국민과 정부도 고명하고 훌륭한 군인으로서 우리들의 사랑하는 국토의 독립과 보전에 대한 비열한 공산 침략을 대항하기 위하여 힘을 합친 국제연합의 모든 군사권을 받은 귀하의 전체적 지휘를 받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또한 격려되는 바입니다.”
이를 두고 리처드 스틸웰 전 주한 미군 사령관은 “역사상 보기 드문 주권의 양도”라고 표현한 바 있다. 현재까지도 한국군 작전권은 한·미 연합사령관, 즉 미군 장성에게 귀속되고 있단다. 여기에는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분명한 점은 한국군은 미국의 허락 없이는 전쟁을 시작할 수도, 단독으로 수행할 수도 없다는 것이겠지. 당연히 비정상적이고 자존심이 몹시 상할 뿐 아니라 북한이 남한을 ‘미제의 식민지’라고 우기는 근거가 되기도 했어. 그러나 어떤 측면으로는 미국이 전쟁의 열쇠를 쥐고 있음으로써 허다한 남북 간 충돌에도 제2의 6·25(즉 전면전)가 발발하지 않았다고 볼 여지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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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1976년 8월18일 판문점에서 북한군이 미군에게 도끼를 휘두르고 있다. |
1967년 4월12일 일어난 남북 간 충돌을 보면 당시 휴전선은 낮은 수준의 전시 상황이었다고 해도 무방할 거다. “북괴(北傀:북한은 소련의 꼭두각시라는 뜻)가 휴전 이후 최초로 다수의 병력인 60여 명으로 휴전선을 침범케 한 사건(<경향신문> 1967년 4월14일자)”이었는데 북한군 1개 소대가 휴전선을 넘어와 남한 초소를 기습하자 이에 분노한 한국군 7사단은 포탄 585발을 북한 측 지역에 퍼부어버렸어(참고로 2010년 연평도 포격 만행 때 북한이 170여 발 정도를 쐈다). 급기야 1968년 1월에는 북한 특공대가 남한 대통령의 목숨을 노리고 청와대 턱 앞까지 찌르고 들어온 사건이 발생했지. 박정희 대통령은 사건 당일 미국 대사를 불러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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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레이니 주한 미국 대사(앞줄 오른쪽)는 1994년 한국에 전쟁을 통보한 바 있다. 위는 1996년 12월 청와대가 주관한 주한 미군 송년회 모습. |
한반도가 정작 위태로운 순간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 전쟁을 결심하거나 그에 준하는 사태와 마주칠 즈음이었어. 1976년 8월18일, 판문점 인근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하던 미군 장교 2명이 북한군과 승강이 끝에 도끼에 맞아죽는 사건이 발생해. 이른바 8·18 도끼 만행 사건이지. 휴전 이후 최초로 한국에는 전시에 준하는 상황을 뜻하는 ‘데프콘 3’ 단계가 선포됐다. 문제의 미루나무를 잘라버리는 작업이 진행되던 판문점 주변에는 ‘데프콘 2(전쟁 준비 완료 상황)’까지 발동됐지. 항공모함 미드웨이를 포함한 7함대가 총동원됐고 미국 본토에서 공군 전력이 한국으로 건너왔으며 괌에서 폭탄을 싣고 날아온 폭격기들이 한반도 상공을 선회했어.
그 엄청난 무력 앞에서 북한도 기가 질리지. 한국군이 미루나무 제거 작전 와중에 북한군 지역까지 넘어가 북한 초소들을 때려 부쉈지만 북한은 엎드려 움직이지 않았어. 결국 김일성 주석이 유감 표명을 하고 미국 측이 이를 사과로 받아들이면서 1976년의 전쟁 위기는 고개를 숙이게 돼.
이후 최악의 전쟁 위기는 1994년에 왔어. 1994년 6월16일 오전, 제임스 레이니 주한 미국 대사는 정종욱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만나 미국의 민간인들을 철수시키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민간인들을 뺀다는 건 전쟁이 임박했다는 뜻이야. 미국 클린턴 대통령은 평안북도 영변의 원자로 폭격을 결심했고 그럴 경우 한국군과 미군 및 민간인 사망자까지 예상된 시나리오를 세워두고 있었어. 기가 막힌 것은 미국의 결심으로 파국을 맞이할 당사자였던 한국인들은 거의 새까맣게 그 사실을 몰랐다는 거야. 아빠를 포함한 많은 한국인들의 눈은 당시 한창 진행 중이던 미국 월드컵에 집중돼 있었거든.
‘귀신이 곡할 일’이란 바로 이런 형국이군
심지어 미국의 ‘혈맹’인 한국의 대통령도 미국 대사가 “미국 민간인들을 소개(疏開)시키겠소”라고 통보하기 전까지는 미국이 한국의 의사와 관계없이 전쟁을 결심했다는 사실을 깡그리 몰랐어.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자신의 주장에 따르면) 클린턴에게 이렇게 소리 질렀다고 해. “전쟁은 안 됩니다. 역사와 국민 앞에 죄를 지을 수는 없소.” 그러나 가장 큰 죄는, 그 자신이 정말로 ‘죄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토록 뒤늦게 알게 됐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닐까 해.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 한국 사람들은 축구에 열광하고 있었어. 그즈음에 벌어진 한국 대 볼리비아 축구 경기의 시청률은 63.7%로 역대 스포츠 경기 가운데 최고의 시청률로 남아 있단다.
그로부터 또 4반세기 가까이 흐른 지금 미국은 또 한번 전쟁을 결심한 듯한 제스처를 취하며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94년 당시 북한을 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밝혔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가능한 한 모든 옵션을 준비”하라고 선언한 가운데 미국 항모 전단이 한반도 근해로 모여들고 있어. 북한에는 그 할아버지나 아버지보다 훨씬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듯한 김정은 위원장이 버티고 있으니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지. 1994년과 다르다면 우리가 그 위기를 감지해서 걱정하고 있다는 점이겠지만, 전쟁이 미국의 의사에 따라 결정된다는 슬픈 현실만은 벗어나지 못했지. 전쟁이 벌어질 땅은 우리 땅이고 죽어 엎어질 사람들의 태반은 한국 사람인데,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전쟁이 우리 의사와 관계없이 벌어진다는 것, ‘귀신이 곡할 일’이란 바로 이런 형국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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