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트럼프 도와서 北과 대화 물꼬 터라
지난해 10월 말 벌어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약 7개월 동안 한국은 사실상 국정공백 상태였다. 이후 새로 출범하게 될 문재인 준비기간도 없이 당장 많은 과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남북관계와 대외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우선 남북관계는 지난해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개성공단이 문을 닫고 양측을 연결하던 통신까지 가동을 멈추면서, 양측 간 접촉이 사실상 전혀 없었던 지난 1972년 7.4 공동성명 이전으로 되돌아갔다.
지난 3월 소위 '알박기'로 들여온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가 불러온 중국과 갈등도 새 정부가 해결해야 할 주요 외교 과제 중 하나다. 무너진 한중 관계를 복원하는 외교적 차원의 문제뿐만 아니라, 중국의 이른바 '사드 보복'을 어떻게 막아낼지가 향후 한국의 경제 상황과도 맞물려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미 관계 역시 '예측할 수 없는'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해야 한다. 이전 미국 정부를 구성했던 인사들과는 기반 자체부터 다른 트럼프 정부를 상대로 쉽지 않은 게임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전임 정부가 새 정부에게 유산을 물려주기는커녕, 남북, 한중, 한미, 한일 관계 등에서 사실상 '짐'만 떠밀었다는 데 있다. 한동대학교 김준형 교수는 새 정부의 한미관계에서 가장 우려되는 지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국이 미국과 관계에서 지렛대로 사용할 만한 무기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답했다.
여기에 미국 내 북한에 대한 반감이 상당한 상황에서, 북한 핵 문제를 외교적 협상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선호도 역시 높지 않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또 미국 정치권이 문 대통령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대미 관계를 풀어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와 관련 김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미국의 시각을 바로잡기 위해서 '노무현 대통령과는 다르다'라는 식으로 자꾸 미국에 설명을 하려고만 한다면 미국에 끌려가는 방식의 외교를 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을 좀 불편하게 생각한다고는 인식을 갖는 것이 나쁘지 않은 측면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중에 '나 반미(反美) 아니야'라는 식으로 미국에 설명하다가 끌려가게 되는 측면이 있었는데, 이와 같이 미국 정치권을 안심시키는 전략만 쓴다면 한미 관계는 종속적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교수는 미국 정치권에 퍼져있는 이러한 인식을 통해 오히려 문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상대를 끌고 나가는 외교를 펼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미국을 설득하는 것이 필요하다. 안 그래도 지금 한국은 미국과 협상할 때 별다른 레버리지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히려 이런 인식을 이용해 한미관계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실제 사드 배치에 10억 달러를 부담하는 문제에서도 우리가 먼저 미국의 신의를 져 버린 문제는 아니지 않나. 우리가 동맹국으로서 신의에 해를 끼치지 않았다"며 "지금이 위기일 수도 있지만, 한미 관계를 종속적이지 않은, 정말 말 그대로 '동맹'이라는 관계를 확고히 다져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그런 측면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의 외교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시 주석은 북핵 및 동북아 문제에 거의 지식이 없는 트럼프에 본인의 이야기를 잘 주입시킨 것으로 보인다. 반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후 만나자고 안달을 했지만 지금 보면 시 주석에 밀린 모양새다. 어느 쪽을 벤치마킹 해야겠나"라고 반문했다.

▲ 지난 4월 7일(현지 시각) 미중 정상회담이 열린 플로리다 주 마라리고 리조트에서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시 주석처럼 정상회담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 원활한 관계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한다고 해도 양국 사이에는 쉽지 않은 현안들이 놓여 있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27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사드 배치 비용은 한국이 내는 것이 좋겠다면서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보다는 국방비 자체를 분담하길 바라는 것 같다. 그러니까 미국의 안보 부담을 한국도 같이 짊어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물론 방위비 분담금 자체를 올리려고 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한국은 100%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내고 있고, 이것은 미국의 예산을 절약하려는 자신의 성과라고 미국 국민들에게 선전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우리 입장에서는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사드 배치 또는 미국의 안보 분담 요구 축소 등을 교환하는 식으로, 즉 방위비 분담금 인상 자체를 하나의 '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트럼프 정부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새 정부가 북한이 미국과 대화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 정부가 트럼프 정부를 도와주는 셈이 되는데, 이는 실제 북핵 문제 해결과 외교적 측면 모두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판단이다.
그는 "여전히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문제를 단순한 '투자처' 라기 보다는 '짜증' 나게 하는 요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하지만 어쨌든 버락 오바마 전임 대통령과는 다르게 하겠다는 원칙은 세워 놓은 상태인데, 그러려면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방법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절한 환경'이 필요하다고 밝혔는데, 어느 정도 수준에서 북한의 항복을 받아낼 것인지, 또는 아예 북한의 항복을 받아내지 않고 시작할 것인지 등등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의 상·하원과 트럼프 대통령 모두 북한에 대해 저자세로 나설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바로 이 부분에서 한국이 나서서 북한과 미국의 대화 통로를 뚫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국, 한국과 관계 개선 원하고 있어
문재인 정부는 사드 배치로 인해 틀어진 중국과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어려운 과제에도 직면해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015년 9월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전승절에 참석하면서 양국관계의 정점을 찍었지만, 이후 북한의 핵실험과 사드 배치 등이 맞물리면서 양국은 경제적 교류에서도 마찰을 빚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 한국과 관계 개선을 위해 새 정부를 기다렸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양국 관계는 의외로 쉽게 풀릴 수도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상하이 동화대학교 우수근 교수는 "중국은 사드 국면을 빨리 끝내길 바란다"며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우 교수는 "우리가 한중관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은 그동안 정권이 바뀌면 자연스럽게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는 입장을 보여왔다"면서 "중국의 상황을 잘 이해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외교를 해 나갈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 지난 4월 26일 새벽 사드 장비를 실은 트레일러가 성주골프장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이를 위해 문재인 정부가 중국과 관계를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특사를 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 교수는 "중국 측은 그동안 중국을 잘 알고 있고 최근에도 중국과 교류를 지속했던 인물이 특사로 왔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또 향후 한중관계라든가 외교 쪽에 관심이 있는, 차기 정부에 영향력이 있는 실세 정치인과 관계를 맺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꾸준히 밝혀 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한국의 새 정부에 함께할 인사들 중에서 한중 관계에 관심을 가져왔던 인물과 사드 문제를 비롯한 현안을 풀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온 것"이라며 "이런 측면을 감안해 특사를 통해 일단 진지하게 중국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 교수는 "박근혜 정부는 지금까지 사드는 방어 무기고 중국을 탐지하는데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일방적으로 한국의 입장만 이야기하지 않았나"라며 "이런 입장에서 벗어나 일단은 중국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다음에 우리 이야기를 해야 한다. 여기서 실마리가 잡힌다면 사드 문제를 둘러싼 한중 간 불편한 관계는 생각보다 매우 빠르게 풀려나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중국은 한중관계에서 유일한 장애물은 사드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직도 '유일한'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며 "이는 사드 문제만 풀린다면 양국 간 관계는 문제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를 풀기가 더 수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우 교수는 "중국이 한국을 놓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는 중국으로부터 어쩌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다. 이는 북핵 문제 해결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전망했다.
실제 중국은 북한을 강하게 압박해 대화 테이블로 나오게 해야 한다는 미국의 요구에 일정부분 호응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우 교수는 "중국은 일단 소나기가 오면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트럼프가 저렇게까지 나오니까 지금은 한발 물러서서 트럼프를 파악해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국내적인 요인"이라며 "올해 가을 열리는 공산당 당 대표자 대회에서 시 주석이 성공적인 2기 집권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안정적으로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시 주석은 당 대회 전까지는 트럼프를 온화하게 만들고 북한을 눌러 놓으면서 대외적인 문제를 만들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완전히 끊어진 남북관계,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나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개성공단 가동을 중단시켰다. 여기에 최후의 보루인 남북 당국 간 통신망도 가동되지 않으면서 박근혜 정부는 남북관계를 사실상 단절시켰다.
이에 새 정부에서 남북관계를 어떻게 복구할지도 대외 부문의 핵심 과제로 거론되고 있다. 김연철 인제대학교 교수는 "일단 남북을 둘러싼 환경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새 정부는 북한하고 풀어야 하는 문제도 있고,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협력도 고려해야 하며 국내 여론도 살펴야 한다. 이 세 부분의 공통분모를 찾는 것이 제일 좋다"며 "이를 통해 순서와 절차를 따져서 실행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뭘 하나 하더라도 지속성을 가지려면 이 세 요인이 어느 정도 어울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그런데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이 복잡하다. 이럴 경우에는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넓혀 놓는 것이 좋다"며 "어느 것을 먼저 할 것이냐는 순서를 따지기 보다는 다방면의 접촉을 동시에 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그는 "정부의 운신 폭을 넓히려면 민간 교류를 해야 한다. 예를 들면 개성공단의 경우도 당장 가동이 아니더라도 기업인들이 시설 점검 차원에서 방북한다고 신청할 경우 허가해주고, 인적 교류의 경우에도 남북교류협력법 하에서 허용하고 이산가족 상봉과 같이 당장 추진해야 하는 사안들은 곧바로 시작해야 한다"며 "초기에 이런 식으로 환경을 조성하고 그 상황에서 정부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순서"라고 주장했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15일 평양에서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을 맞아 열린 열병식에 참석해 손을 흔들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하지만 남북 간 관계 회복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는 것이 김 교수의 판단이다. 그는 "정부 초기에는 속도를 좀 조절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지속가능성이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개성공단의 경우 당장 문을 여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으로 재가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입주 기업을 비롯한 이해 당사자들과 논의를 해가면서 신중하게 풀어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남북관계 개선 속도는 결국 북한의 핵과 결부되는 문제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핵 문제는 국제적인 틀로 다룰 수밖에 없다면서 6자회담과 2005년 체결된 9.19 공동성명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6자회담이라는 좋은 틀이 있는데, 이걸 버리려고 해서는 안 된다. 9.19 공동선언을 이끌어 내는데 몇 년이 걸렸다. 이걸 무력화시킬 이유가 있나?"라며 "북한이 무력화시키고 싶어 한다고 해도 우리를 포함해 미국, 중국 등이 이를 막아야 한다. 9.19 공동성명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쉽고 적절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때릴 ICBM 아직 개발 못했다”
장영근 항공대 교수는 북한 미사일이 액체추진제에서 고체추진제로, ‘핫 론치’에서 ‘콜드 론치’로, 보통의 스커드미사일에서 보조날개가 달려 종말단계에서 궤도 수정이 가능한 미사일로 진화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4월15일 북한은 평양에서 개최한 대규모 열병식 때 새 미사일들을 공개했다. 탄두 부분에 방향을 이리저리 틀 수 있는 보조날개가 달려 있는 등 기존 스커드·노동 미사일 계열과 달라서 북한 미사일 체계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미국도 긴장했다. 과연 북한은 미국에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했을까? 미사일 전문가인 장영근 항공대 교수한테 물었다.
4월15일 어떤 미사일들이 등장한 건가?
준장거리와 장거리 미사일이 주로 선보였다. 미국 본토와 괌, 일본의 미군 기지를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들로 대미 무력시위를 하는 게 목적이었던 것 같다. 우선 ICBM으로 보이는 웅장한 크기의 서로 다른 두 가지 미사일을 선보였다. 하나는 7축 트레일러에 실린 발사관 안에 들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사진 1), 다른 하나는 8축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TEL) 위의 발사관 안에 있을 것으로 추정됐다(사진 2). 이들 미사일은 발사관 안에서 콜드 론치(Cold Launch:발사관에서 미사일을 사출시킨 뒤 점화)하는 방식으로 발사되는 고체추진제 기반의 ICBM으로 생각된다.
8축의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는 기존 액체추진제 이동식 ICBM인 KN-08과 KN-14에 사용되던 것이라 이번에 등장한 것도 액체추진제형으로 보던데?
액체추진제 ICBM을 발사관에서 사출해 공중에 띄우면 탱크 안의 추진제(연료 및 산화제)가 흔들리면서(Sloshing) 미사일의 자세를 불안정하게 한다. 그 상태에서 공중 점화를 하면 정상적인 비행이 어려워진다. 콜드 론치에 의해 발사하는 대형 미사일은 고체추진제일 확률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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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희 장영근 한국항공대학교 교수. 국방광역감시 특화연구센터 소장, 미국 버지니아 공과대학 공학석사, 미국 테네시대학 공학박사, 한국과학재단 우주단장,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그룹장 및 책임연구원,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방위사업청 정책자문위원. |
미국 측에서 괴물(프랑켄) 미사일이라며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북한은 그동안 액체추진제를 사용하는 무수단 엔진에 기반해 KN-08, KN-14와 같은 이동식 ICBM을 개발해왔다. 그런데 지난해 8월 고체추진제 북극성-1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에 이어, 6개월 만인 올해 2월 지상형으로 개량한 북극성-2 중장거리 전략탄도미사일(IRBM)을 성공적으로 시험발사하고, 이번 열병식에서 갑작스럽게 고체추진제 이동식 ICBM의 존재를 과시한 것이다. 수개월에 하나씩 새로운 미사일을 찍어내는 듯한 요술을 부렸기 때문에 괴물 미사일이라는 표현을 쓴 것 같다.
발사관 내부에 미사일이 들었을까?
실제로는 비어 있거나 개발 중인 북극성-3 ICBM이 들어 있거나 아니면 이미 만들어놓은 KN-08이나 KN-14 미사일을 임시로 넣었을 수도 있다.
다른 미사일들은 어떤가?
두 번째 눈여겨봐야 할 것은 무수단 미사일 탑재용 6축의 미사일 발사대에 실린 정체불명 미사일(사진 3)이다. 이 미사일의 길이는 13~14m 정도로 추정되어 무수단보다는 길고, 20m 정도의 이동식 ICBM인 KN-08보다는 짧다. 탄두(페어링) 모양은 지난해 북한이 공개한 핵탄두와 제원이 유사해 KN-08 ICBM의 탄두부를 붙인 것으로 보인다. 무수단 미사일이 괌을 타격할 정도의 사거리를 확보하지 못해 추진제 탱크 길이를 키웠거나 2단 액체 엔진을 추가해 사거리를 늘린 개량형 무수단 미사일일 가능성이 크다. 만일 기존 이동식 ICBM인 KN-08의 길이를 단축하고 무수단 엔진을 장착했을 경우 KN-08보다 사거리 성능이 더욱 낮아져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준의 ICBM은 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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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A <사진 1> 7축의 트레일러에 실린 ICB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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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Photo <사진 2> 8축의 트레일러에 실린 ICB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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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A <사진 3> 6축의 무수단 미사일 발사대에 실린 정체불명의 미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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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Photo <사진 4> 스커드미사일을 개조한 ASB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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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Photo <사진 5> 러시아의 S-200(SA-5) 대공미사일 |
미국 정보당국은 무한궤도 차량에 실린 미사일에 특히 주목하던데?
스커드미사일처럼 생긴 단거리 미사일(사진 4)로 북극성 2호처럼 무한궤도 차량에 탑재돼 눈길을 끌었다. 열병식 다음 날인 4월16일 신포에서 발사를 시도한 미사일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 정보당국이 새로운 미사일로 정의하고 ‘KN-17’이라는 코드명을 부여했다. 스커드미사일을 개량한 1단형의 액체추진제 대함탄도미사일(ASBM)이라고 결론을 낸 것이다. ASBM은 항공모함과 같은 해상의 이동 목표물을 타격하는 미사일이다. 마지막 단계에서 목표물을 찾아낸 뒤 목표물이 이동하면 궤도를 수정해 타격하는 능력을 갖춘 것으로 추정된다. 노즈콘(Nosecon:미사일의 맨 앞) 부분에 보조날개가 달려 있어서 종말단계에서 궤도 수정이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2단형으로 구성되었다면 1단은 빠른 속도로 가속을 한 후 바로 분리되어 일반 탄도미사일보다 빠른 속도로 타격하는 미사일이 될 수도 있다.
영국 <데일리 메일> 기자가 촬영한 화면에 탄두가 하늘로 휘어진 미사일이 포착되면서 가짜 논란이 일기도 했다.
러시아의 S-200(SA-5) 미사일로 사거리 250㎞, 마하 4의 속도를 내는 대공미사일(사진 5)이다. 대공미사일은 초기 가속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극대화하기 위해 보조 로켓 부스터 4기를 장착한다. 보조 로켓 부스터는 순간적인 가속을 통해 엄청난 속도를 내며 주 로켓으로부터 분리된다. 이때 주 로켓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보조 로켓 끝부분을 바깥 방향으로 휘어지게 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짜는 아니고 진품이다.
고체 연료 추진형 ICBM 개발은 현재 어느 단계까지 와 있는가?
그동안 액체 연료 기반의 ICBM에 주력해오던 북한이 최근 북극성 1호, 2호로 불리는 고체 연료 미사일 시험발사에 연이어 성공했다. 북극성 3호라 부를 수 있는 ICBM도 개발 중인 것 같다. 하지만 대형 고체추진제 로켓 개발에는 상당한 제작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2020년 전에 시험발사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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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조선중앙통신 <사진 6> 보조 엔진 4기를 장착한 액체 엔진 지상 연소시험 장면. |
북극성 1호와 2호 등 두 차례 고체 연료 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한 점은 평가할 만하지 않나?
북한으로서는 획기적인 의미가 있다. 고체추진제를 사용하면 발사 직전에 연료와 산화제를 주입하는 시간을 단축한다. 관련 지원 차량이 불필요해 상대방이 발사 징후를 탐지할 시간과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 공격 능력을 현저히 증가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북한 미사일 체계의 패러다임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고체추진제로 모두 교체되리라 예상된다.
북한 자체 기술인가, 해외 기술을 들여온 건가?
고체추진제 로켓 기술은 제작이나 품질 인증이 어렵다. 한 나라의 산업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개발하기 어렵다. 추진제 제조 및 제작, 구조물에 추진제를 붙이는 본딩(Bonding) 기술, 균일한 연소 상태를 유지하는 것 등이 모두 고난도 기술이다. 특히 로켓 모터가 대형화할수록 관련 기술은 더욱 어려워진다. 북한이 지난 2~3년 내에 이러한 기술을 갑자기 독자적으로 개발해 확보했을 가능성은 낮다. 만일 이미 확보하고 있었다면 연구 개발의 역사가 최소 20여 년은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해외(중국 또는 중국에서 고체추진제 미사일 기술을 전수받은 이란이나 파키스탄 등)에서 들여와 부분적인 개조를 통해 확보했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의 ICBM 개발은 어떤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봐야 할까?
북극성 3호로 추정되는 고체추진제 ICBM과 지난해 9월에 정지궤도 위성 발사체용 엔진이라 소개하며 지상 연소시험을 보여준 80t급의 대형 액체 엔진(백두산)으로 나누어 추진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번 열병식에서는 고체추진제 기반의 ICBM 개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80t급의 액체 엔진 기반 ICBM을 다시 카드로 내밀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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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A 4월15일 북한 김일성 주석의 105번째 생일(태양절)을 맞아 열린 열병식에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3월18일과 3월24일 두 차례에 걸쳐 백두산 계열의 대형 액체 엔진 시험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9월 지상 연소시험을 수행한 80t급 엔진과 유사하지만 좀 더 개량된 엔진에 대한 지상 연소시험을 3월18일에 했다. 지난해와 다른 점은 단일 엔진이 아니라 통합추진 시스템 시험을 했다는 것이다. 제공된 사진을 보면(사진 6) 지난해 9월의 엔진과 크기나 외양이 비슷한 주 엔진에 보조 추력을 제공하고 방향 전환에 사용되는 4개의 버니어(보조 로켓) 엔진을 장착한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버니어 엔진은 미사일의 자세나 방향을 제어하는 구실을 하지만, 은하 3호 발사체에서 보조 로켓 엔진 4기를 추가해 보조 추진력을 확보했듯이 이번 지상시험에서 사용한 보조 엔진도 추가 추력을 확보하기 위해 장착한 것으로 보인다. 보조 로켓 화염의 크기로 볼 때 최소 3t 이상의 추력을 생성할 수 있으리라 예상된다. 3월24일 미국의 조기경보위성이 서해 위성 발사장에서 로켓 엔진에 대한 지상 연소시험을 또다시 수행한 것을 파악했으나, 북한에서 시험에 대한 발표가 없는 것으로 보아 시험 중 실패한 듯하다.
일련의 시험을 통해 액체 연료 기반 ICBM을 위한 최적화된 조합을 찾아냈을까?
3월18일 지상 연소시험에서 4기의 보조 로켓이 의외로 주 엔진에서 벌어져 있었다. 이 상태로는 ICBM의 직경이 2m 이상으로 커질 가능성이 있다. 백두산 엔진을 ICBM 1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또 다른 설계 변경이 필요하다. 2단 로켓에는 무수단 엔진을 사용하고 3단 로켓에는 버니어 엔진을 쓰면, 핵탄두의 무게를 500㎏으로 가정할 때 1만1000㎞의 사거리 성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북극성 3호 계통 ICBM과 백두산 계통 ICBM의 실전화에 걸리는 시간은?
고체추진제에 기반한 북극성 3호 ICBM은 1단에 대형 고체 로켓 모터가 필요하다. 이를 북한이 제작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북한이 이미 고체추진제 로켓 개발에 20여 년 이상 매달려왔고, 이란이나 파키스탄으로부터 제작 기술과 시설 및 장비 등을 도입했다면 자체 개발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 해도 시험비행을 통해 기술을 검증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만일 고추력을 생성하는 백두산 엔진에 기반한 ICBM을 제작한다면 아마도 1단에는 백두산 엔진 및 보조 엔진을 달고, 2단 또는 3단에는 무수단 및 버니어 엔진 장착을 통해 ICBM 조합이 가능할 것이다. 북한은 ICBM 개발을 위해 가용한 모든 옵션을 고려할 것이다. 액체추진제 엔진 기반 및 고체추진제 모터 기반의 ICBM을 모두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이다. 올해 신년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현재 ICBM 시험발사를 위한 준비가 최종 단계에 와 있다”라고 말했지만, 어느 옵션도 추진제 엔진의 성능 제한과 제작 기술의 한계로 인해 쉽게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지금 상황으로는 2020년 전에 미국 본토에 도달하는 ICBM을 실전에 배치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엔진 제작과 관련한 기술 문제 외에 실전 배치 과정에서 제기되는 또 다른 문제점은 무엇인가?
현재까지는 고체추진제를 사용하든, 액체추진제를 사용하든 미국을 타격할 수준의 엔진 조합을 정확히 찾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작년 재진입체에 대한 열차폐 시험을 수행했으나, 이는 탄두의 마모(삭마) 상태를 확인하는 기계적인 삭마 시험에 불과해 재진입체에 대한 검증도 아직 완료되지 않은 것 같다. 어떤 무기체계든 신뢰성을 확보하려면 최소 5~10회 시험을 거쳐야 하는데, ICBM의 경우 사거리가 길어서 시험발사에 어려움이 있다. 정상 궤적으로 동쪽으로 발사하면 미국에서는 이것이 시험발사인지 실제 ICBM 공격인지 구분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잘못하면 미국이 미사일방어체계를 가동하고 양국이 전쟁 상태에 돌입할 수 있다. 미·일과 마찰을 피하려면 고각 발사를 할 경우 수천㎞까지 올려야 하기 때문에 미사일 구조물의 재설계와 같은 여러 가지 설계 변경이 요구될 것이다. 은하 3호(광명성호) 장거리로켓처럼 서해 동창리 위성발사장에서 남쪽으로 발사하는 방안이 그나마 가장 가능성이 있다. 사거리 능력에 따라 남극을 돌고 난 후 다시 미국이나 다른 나라를 타격할 수 있어서 정밀한 분석 및 판단이 요구된다. 결국 현재 수준으로는 올해 신년사에서 공언한 바와 같이 조만간 ICBM 시험발사를 시도하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을 듯하다. 2~3년은 기다려야 할 것이다.
김태영 “한반도 안보 상황 심각 정확한 현실 인식 필요”
[인터뷰] 김태영 前 국방부 장관 “한·미 동맹 강화 최우선적으로 추진해야”
조해수 기자 ㅣ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17.05.10(수) 13:48:56 | 1438호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가 심상치 않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한반도에 또 다른 전쟁 발발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미국은 북한에 대한 선제 타격론을 공공연히 주창하는 동시에 동맹국들에 군사비 증액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중국은 빠른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미국의 패권에 도전장을 내밀며 군사력 증강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한반도 사드 배치를 둘러싼 중국의 과민반응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일본은 한반도 긴장 고조를 악용해 보통국가화, 즉 ‘전쟁할 수 있는 일본’을 향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러시아 역시 군사력 강화를 최대 국정 목표로 삼고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 하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새 정부에서도 국방·안보·외교 분야가 최우선 과제로 지목되고 있다. 시사저널은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을 만나 한반도의 현 상황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해 봤다. 김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 시절(2009년 9월~2010년 12월) 제42대 국방부 장관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전쟁기념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 © 시사저널 고성준
한반도의 현 상황을 어떻게 보나.
한반도의 현재 안보 상황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북한은 지속적으로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했는데, 완성도 면에서 급속한 진전이 있었다. 김정은 정권은 호전적 자세로 일관하며 국제적 압력에 거칠게 저항하고 있다. 중국은 빠른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항공모함, 스텔스기, 장거리 유도 무기 등 군사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면서 우방의 군사비 부담을 증가시키기 위해 과거에 체결된 군사·경제 조약을 재검토하고 있다. 일본은 보통국가화를 주창하면서 군사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미·중 갈등이 지속되면서 동북아 전쟁 위험이 증가하고 군비 경쟁도 심화될 수 있다. 한·일 관계가 악화되면서 한·미·일 안보 협력에 심각한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한국은 심각한 국론 분열 상황을 맞았다. 사상·체제 대결이 심각한 수준이다. 국내외 과제를 풀어갈 정치적 리더십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을 제거 또는 약화시키는 동시에 남북 화해협력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안보 불감증은 현상 유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희망 없는 미래’와 다르지 않다.
북핵과 관련해 트럼프 정부는 선제 타격론을 거론하고 있다.
로마의 명장 베게티우스는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고 말했다. 미국의 군사행동 시도에 대해서 ‘절대 반대’는 바람직한 대응이 아니다. 선제 타격은 미국이 가지고 있는 옵션 중 하나다. 우리가 안 된다고만 하면 미국이 빠져나갈 수 있다. 이번 기회에 북핵을 확실하게 제거한다는 인식을 국민들도 가져야 한다. 정치인들이 비겁하게 ‘평화 때문에 안 된다’고 얘기해서는 안 된다. 미국은 걸프전, 이라크전을 비롯해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때 군사행동 개시에 앞서 적의 보복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북한은 2500만 명이라는 인구와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나라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오히려 우리가 완벽한 사전 준비를 미국 측에 요구해야 한다.
전술핵 재배치나 미국과의 ‘핵 공유 협정’ 체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국내에 미국의 전술핵이 배치돼야 북한의 핵공격을 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한반도 내 미 전술핵의 재배치는 북한에 대한 상당한 경고가 될 것이며 북한의 핵공격 가능성을 크게 낮출 수 있다. 특히 한·미 동맹 체제를 십분 활용해 ‘핵 공동운영 협정’을 체결하고 전술핵을 한미연합사령부의 지휘·통제와 연결한다면 더욱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2010년 8월7일 김태영 당시 국방부 장관이 아프가니스탄의 재건 지원 활동을 위해 바그람 기지에 임시로 주둔하고 있는 오쉬노부대를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자위적 핵무장’에 대한 얘기도 나오고 있다.
우리 정부가 ‘한반도 비핵화 협정’을 파기하고 자체 핵무장을 갖추는 것이 (북핵에 대한) 궁극적 해결책일 수 있다. 그러나 MTCR(미사일기술통제체제)이나 NPT(핵확산금지조약)와 같은 국제 체제가 존속하는 한 사실상 불가능하다. 무역의존도가 매우 높은 우리의 경제 여건에서 국제적 제재가 예상되는 이 방안은 적절치 않다.
대북 강경책이 불필요한 군비 경쟁을 촉발하고 한반도를 전쟁의 위험으로 내몬다는 견해도 있다.
군사력의 약화가 쌍방 간의 상생과 평화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논리는 잘못된 생각이다. 과거 전쟁사를 보면 군사력의 균형이 무너지면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국가의 전쟁에 의한 국가 의지 관철의 욕심이 커지고, 이는 전쟁 발발의 원인이 됐다. 현재 남북 간 군사력을 따져보면 재래식 무기에서는 한국이 우위에 있겠지만, 핵이나 미사일 측면에서는 북한이 훨씬 앞서 있다. 핵무장이 불가능한 우리 정부의 입장에서는 북한의 핵·미사일에 자체 대응할 수 있는 3축 체제(킬 체인,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 대량응징 보복 체제)를 완비해야 한다. 먼저 군사력 증강을 통해서 균형을 맞춰야 하고, 동북아 여러 국가와 함께 군비검증 체계를 완비해 군비를 축소해 나가야 한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중국이 반대해도 사드 배치를 강행해야 하나.
중국 지도부 역시 사드가 방어 목적인 것을 알고 있다. 사드가 일종의 방탄조끼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중국이 사드를 반대하는 것은 한국 내 국론 분열 상황에 개입해 궁극적으로 한·미 동맹의 균열을 달성하려는 목적이다. 일부 경제적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리의 안보를 확보하기 위한 사드 배치는 흔들림 없이 신속히 진행돼야 한다. 이스라엘은 북한에 비해 훨씬 미흡한 아랍 국가들의 위협에 대비해 핵탄두와 중·장거리 미사일을 응징 수단으로 갖추고 있다. Arrow-3, Arrow-2, David’s Sling, Iron Dome 등 4~5층 방어체계를 갖추고 있다. 일본도 PAC-3 17개 포대로 대비하고 있다. 우리의 대비 태세는 이들과 비교했을 때 매우 미흡하다.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자주국방력’과 ‘군사동맹과 같은 국제적 군사협력’은 서로 상치되는 요소가 아니고 보완하는 관계다. 이를 오해해 전작권을 환수해야 자주국방을 이룰 수 있다는 주장에 따라 전작권 환수를 추진하게 됐다. 참여정부는 그 시기를 2012년 4월로 결정했다가 이명박 정부에서 2015년 12월로, 박근혜 정부에서 ‘조건부 전환’으로 조정됐다. 결국 잘못된 이해에서 출발해 불필요한 논쟁으로 한·미 동맹 관계만 훼손하게 됐다.
트럼프 정부가 사드 배치 비용을 비롯해 한·미 방위비 분담금도 증액할 것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미국이 더 이상 국제사회에서 신뢰할 만한 국가가 아니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트럼프의 말이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까지 흥정인지 알 수가 없다. 원래 부동산업자 아니었나. 땅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 자기가 해 오던 일이다. 그 수법을 한·미 동맹에도 쓰는 것이다. 사드 비용 문제도 갑자기 왜 던졌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 혼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트럼프가 방위비 분담금을 비롯해 국방비를 더 쓰라고 요구할 것으로 본다. 내년부터 한·미 방위비 분담금에 대한 협상 준비에 착수하게 된다. 이때가 되면 트럼프가 지금보다 좀 더 진중해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다.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자면, 미국과의 관계가 섭섭하다 하더라도 참고 가야 한다. 튕겨낸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2010년 10월8일 김태영 당시 국방장관이 미국 워싱턴DC의 국방부 청사에서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과 제42차 한미안보협의회(SCM)를 마친 후 합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EPA 연합
중국의 영향력이 나날이 증가하면서 한·미 동맹 못지않게 한·중 관계도 중요해졌다.
중국은 과거 중화사상의 틀 속에서 한반도가 중국의 일부였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다. 또한 중국은 북한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완충지대로 판단해 북·중 군사동맹을 유지하고 있다. 경제력이 급성장하면서 군사력을 증강해 서태평양 지역으로의 패권 확장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 지도자는 현실을 냉정히 직시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빠르게 성장하는 것은 맞지만 군사력은 미국을 따라가려면 멀었다. 미국이 세계 군사력의 반을 차지한다. 2~10등을 합쳐도 미국을 못 따라간다. 한·미 동맹을 유지하고 발전·심화시켜 나가면서 중국에 적절히 대처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미국의 통상 압력, 중국의 사드 보복, 일본의 과거사 도발 등 주변 강대국들의 공세가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새 정부의 외교 방향에 대해서 조언을 한다면.
동북아 국가들의 경제력, 군사력에 대한 정확한 현실 인식이 필요하다.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한·미 동맹 강화를 최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과거사는 망각하지 않되 한·일 양국의 미래를 위해 한·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군사정보보호협정의 실질적 운용 및 상호군수지원협정 체결 등 한·일 군사협력도 진행해야 한다. 러시아, 인도, 동남아시아국가연합, 호주 등과의 관계도 강화해 나가야 한다.
힘에 부칠 것이다...그러나 길은 있다
2017년 5월 10일은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는 역사적인 날이다. 19대 대통령은 1987년 출범하여 30년을 거치면서 현실 상황과의 간극이 많이 벌어진 이른바 87년 헌정체제를 마무리하고 미래를 위한 새로운 준비에 나서야 하는 막중한 시대적 소명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았다.
초유의 국정농단으로 훼손된 헌정질서를 수습하고 나라다운 나라를 재건하기 위한 국가의 틀을 만드는 데 국민합의를 모으면서, 당면한 외교안보 위기를 극복하고 뉴노멀(New Normal)과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인류문명사적 변화에도 대처해야 한다.
새 정부의 임기는 말 그대로 역사적 전환기에 해당한다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꺼져가는 평화통일의 불씨를 살리는 일조차 국정 우선순위에 들까 말까 할 정도로 해묵은 숙제와 새로운 과제가 산더미 같다. 적폐 청산, 분권과 협치, 일자리 창출, 공정사회 구축, 저출산·고령화 해소, 평화정착 등 그동안 쏟아진 수많은 공약들이 이에 해당된다. 정부가 국정의 우선순위를 잘 세우고 대처하지 않으면 과제에 압도되어 갈팡질팡할지도 모를 지경이다.
국내적으로는 여소야대의 어려운 정치 상황에 있고, 대외적으로는 전임 정부가 마구 소진해 버려 외교적인 레버리지가 거의 바닥난 상태여서 힘에 부칠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전환기에 선 새 정부는 자기 임기를 넘어서서 앞으로 100년의 대한민국 청사진을 마련한다는 자세로 시야를 넓히고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것이 촛불이 명하는 새 정부의 소명이다.

▲ 문재인 19대 대통령(가운데)이 9일 광화문에서 지지자들의 환호와 응원에 화답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외교안보 현안도 우선순위를 세워 대처해야 한다
그동안 국민의 신임 없이 국무총리가 관리해 온 군 통수권과 외교 대권이 민주적이고 합법적 절차로 선출된 대통령 손에 다시금 장악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실 권한대행의 권한이란 것이 탄핵당한 대통령의 기존시책을 관리하는 수준이어서 급박한 외교안보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 위기와 불안을 증폭시키기도 했다. 따라서 새 대통령의 취임으로 능동적 외교안보 대처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지금보다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하지만 그동안 빠르게 움직이는 정세 변화에도 불구하고 거의 무 대처 상태로 지내온 결과 우리 앞에는 크고 작은 외교안보 현안들이 계속 쌓여왔다. 북한의 핵·미사일 기술은 고도화되고 남북관계는 대화 채널마저 끊겼다. 미·중 간 패권경쟁의 와중에서 사드 배치문제가 불거져 우리가 양면 압박을 받는 입장에 처했는가 하면, 위안부 합의 문제로 한일 간에도 장기간 냉기류가 형성되어 있다.
외교안보정책과 관련해서는 우선 전임 정부가 남긴 주변국과의 이러한 파행적 갈등관계를 전향적으로 해소하고 한반도 안보위기의 고질적인 악순환 구조를 벗어나야 하며, 이를 위해 공고하고 합리적인 한미동맹을 기초로 남북관계를 바람직하게 주도해야 한다는 요구와 기대가 있다는 점은 새 정부도 잘 알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새 정부는 한미 정상회담을 비롯하여 주변국과의 정상회담을 속히 서둘러야 할 것이다. 정상회담 전이라도 대통령이 신임하는 특사들을 파견하여 새로운 관계 설정에 필요한 조율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또한, 시급한 현안에 대해서 현안별 단편 대처 방식은 삼가고 국가전략 차원에서 큰 그림을 가지고 우선순위를 잘 가려서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항상 한반도 위기의 근본적 처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최근 미국이 북한에 보내는 메시지가 매우 혼란스럽고 트럼프와 그 참모들 간에도 일관되지는 않지만, 과거와 뚜렷이 달라진 점은 미국 외교에서 북한 문제가 중요한 현안으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라는 이름 아래 방치되었던 북한 문제가 어떤 식으로든 처리되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아직 구체적 내용을 모호하게 유지하고 있지만, 최근 틸러슨 국무장관이 "미국은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로운 비핵화를 추구하며 그 목표를 향해 협상의 문을 열어 두겠다", "우리는 북한의 붕괴를 추구하지 않으며 비핵화가 목표일 뿐"이라고 언급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적절한 환경에선 김정은을 만날 것이다"고 발언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실패로 단정한 '전략적 인내'는 은연중에 북한 붕괴론에 기댄 것이었으나, 미국이 '최대한의 압박과 개입'(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으로 거칠게 나온다 해도 북한이 비핵화 입장만 분명히 한다면 대타협도 가능해진 상황이다. 압박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개입을 위한 압박이기 때문이다.
새 정부 외보안보정책의 대강은 대통령 선거공약에 대체로 담겨있고 앞으로 동맹과 우방의 의견을 참작하여 구체화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유권자로부터 받은 신임을 토대로 정부가 책임지고 국익을 담보하며 내실을 갖추리라 믿는다.
정부는 북한으로부터 계속되는 위협과 도전에 철저히 대응하여 안보태세에 한 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하면서, 동시에 북한이 비핵화를 향한 결단을 내리도록 유도하여 모처럼 형성되고 있는 기회 공간을 적극적으로 넓혀서 한반도 위기와 불안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데 총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국가 위상을 회복하고 상처받은 국민적 자존심을 세워야 한다
지난 정부 시기 동안 남북관계가 파탄 나고, 안보는 더 취약해지고, 외교는 제힘을 다 발휘하지 못했던 불안한 시절을 거쳐 오면서 우리 국민의 불만과 상처가 상당히 쌓여 있다는 점도 새로 구성될 외교안보팀이 유념해야 할 점이다.
사정이 어찌 되었든 위안부 합의와 관련하여 일본에게 약속이행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추궁을 받았고, 사드 배치와 관련해서는 중국에는 경제적 보복을 받고 미국에는 비용의 청구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 속에서 국민은 안타까움을 넘어 수모를 느꼈었다.
국민적 자존심을 해친 대외조치의 공통적인 배경은 외교안보 전문부처에서 충분한 검토를 거치지도 않고 국민적 이해를 구하는 과정도 생략된 채 청와대가 밀실에서 결정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전후 맥락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국민은 이런 조치가 대통령의 국내정치 목적과 관련된 것이라고 비판하고 불신하기 마련이다.
새 정부는 절차적 정당성을 회복하여 국민과 소통하고 주변국과의 파행적 관계를 수습하면서 그간 상처받은 국민의 자존심을 다시 세워 주어야 할 것이다. 정권 자체의 관점을 넘어선 외교안보의 큰 그림에 대해서 국민적 이해와 지지를 모으는 노력이 그 출발점이 될 것이다.
새 정부의 현안 과제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우선주의'에 입각해서 제기한 동맹관계의 재정립 문제에 대해 우리 입장의 답을 준비하는 일이 있다. 전시작전권 전환문제나 FTA, 주한미군 방위비 등이 그것이며, 이는 당면 문제이자 우리 외교안보정책의 큰 그림의 핵심적 밑그림이 되는 만큼 중차대한 일이다.
장차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하든지, 중국을 포함한 동북아 집단안보를 모색하든지, 남북한 평화체제를 준비하든지, 어떤 식의 큰 그림을 그린다 하더라도 한미동맹이 제대로 린치 핀(Linch-Pin) 역할을 하려면 자주국방력 강화를 통해 안보 주권이 튼실하게 확립되어야 할 것이다.
외교안보 면에서 우방에 대한 신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정부에 대한 신뢰다. 그리고 그 신뢰는 국민이 위임한 주권을 정부가 국민과의 소통 속에서 제대로 행사하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
남북관계에서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를 경계해야 한다
북한은 우리에게는 안보 현실 측면에서 적이자, 장래 통일을 함께 할 상대이다. 이것은 모순이 아니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운명이다. 우리가 평화통일을 단념하든가 북한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남북관계의 끈을 유지해야 하며, 남북관계 개선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이는 명백한 헌법정신이기도 하다.
그러나 새 정부가 어떤 외교안보정책의 큰 그림과 국정 우선순위를 마련하든지 안보를 확고히 하는 일과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노력은 동전의 양면처럼 어느 하나를 후 순위에 둘 수 없다. 안보와 남북관계 개선은 같이 가는 것이고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다.
무엇보다 전임 정부 시절 파탄이 난 남북관계를 복원시키는 노력이 시급히 요구된다. 그렇지만 전임 정부와의 차별성을 부각하거나 자신의 큰 그림에 대한 희망적 사고에 빠져서 당면한 안보적 위협과 도전을 평가절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서 오는 안보위기를 극복하면서 남북관계를 복원하여 평화통일의 초석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새 정부에게 주어진 이 시대의 소명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대한민국은 비로소 87년 체제를 질적으로 전환하고 새로운 미래를 희망으로 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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