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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이 말하는 이 땅에서 ‘폴리테이너’로 살아가는 법 - 진정한 뇌섹남이란?

일취월장7 2017. 5. 22. 10:00

김제동이 말하는 이 땅에서 ‘폴리테이너’로 살아가는 법

“자신의 정치적 성향 드러내는 게 헌법 정신에 부합”

이예지 우먼센스 기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5.19(금) 15:30:00 | 1439호


김제동은 꼬장꼬장하지만, 밉지 않은 말투를 가졌다. 묵직한 목소리는 아니지만, 귀 기울이게 하는 힘이 있다. 에둘러 말하는 법 없이 콕 집어 하는 습관은 간혹 오해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그가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군 사령관 부인을 ‘아주머니’라고 불러 영창에 다녀왔다”고 밝히자 백승주 자유한국당 의원이 진상 조사를 요청했다.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사건이 결국 거짓말 논란으로 번졌다. 특정 정치인을 향한 거침없는 발언을 일삼아왔던 그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기회 된다면 박 전 대통령 얘기 들어보고 싶다”

 

이 땅의 대표적 ‘폴리테이너’(정치인(politician)과 연예인(entertainer)의 합성어)라 불리는 김제동을 만난 건 JTBC 《김제동의 톡투유-걱정 말아요 그대》(《김제동의 톡투유》)가 방송 100회를 맞은 날이었다. 그의 표정이 밝았다.

 

“지난 몇 달간 광화문 광장 등에서 제일 많이 떠든 놈이 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적어도 《김제동의 톡투유》에서만큼은 말을 줄이고 듣는 입장이 됩니다. 듣는 즐거움이 뭔지를 알게 된 것 같아요. 이제는 4시간 동안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입이 간지럽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 훨씬 더 많은 게 보이더군요.”

© 베이직 하우스

© 베이직 하우스

 

김제동에게 ‘표현’은 시작이고 끝이다. 그에게 ‘말’에 얽힌 일화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강한 언행과 정치색은 몇 차례 구설에 올랐고, 덕분에 몇몇 프로그램에서는 하차해야 했다. 혹자는 그의 이런 행보를 두고 “주목받고 싶어서 하는 행동”이라고 꼬집는가 하면, 혹자는 “사이다 발언”이라고 칭찬하기도 한다. 김제동은 그런 세간의 시선에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사람들이 제 정치 성향을 두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엔 관심 없습니다. 민주공화국에서 한 개인이 정치적 성향을 갖는 건 당연하다 생각하고, 또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방송인이 매체를 통해 그 성향을 드러내는 게 옳은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각자가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고요. 저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보는 사람들의 자유니까요. 저를 오해하시는 것도, 제 의도를 곡해하시는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마음속에 저에 대한 이미지를 정해 놓고 보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제 이미지를 국한시키다 보면 고정관념이 생길 수밖에 없거든요.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는 고소나 고발로 조치를 취하고 있어요. 인격 모독 같은 건 용납할 수 없거든요. 저도 저를 지킬 권리가 있지 않습니까? 합법적이지 않은 세력과 타협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김제동은 대화 내내 헌법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꺼냈다. “헌법에 그런 내용이 있습니까?” “헌법에서 하지 말라고 합니까?”라고 되묻곤 했다. 헌법에 관한 이야기라면 몇 시간이고 지치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헌법 37조 1항에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마치 연애편지 같지 않나요? 여기에 적어놓지 않았다고 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라는 뜻으로 들렸죠. 헌법 어디에도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지 말라고 하는 구절은 없지 않습니까. 오히려 국민 개개인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소신껏 드러내는 게 헌법 정신에 부합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지난해 겨울,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졌을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앞장서서 외친 김제동.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광화문 광장으로 뛰쳐나갔고, 그곳에서도 어김없이 마이크를 잡았다. 투사 이미지를 덧입은 김제동, 박 전 대통령이 구속 수사를 받고 있는 지금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조심스러워 보였지만 역시 할 말은 했다.

 

© 베이직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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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창 발언, 언젠가는 꼭 짚고 넘어가고 싶어”

 

“헌법재판소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다 지켜봤습니다. 결정이 난 순간, 제 몫이 다 끝난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 촛불집회위원회에서 참석을 요청해 왔지만 거절했어요. 국민이 이룬 성과고 축제의 장인데, 제가 공을 받는 게 불편했습니다. 파티에까지 참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아마 유일하게 나가지 않은 촛불집회일 거예요. 저는 박 전 대통령과는 소통이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그분의 이야기를 잘 들어보고 싶어요. 그동안 이야기하시는 걸 본 적이 없으니까요. 지금도 하고 싶은 말은 수십 가지 있지만 굳이 말하지 않겠습니다.”

비교적 솔직하게,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김제동에게 앞에서 언급한 ‘영창 발언’ 논란에 대해 물었다. 김제동은 억울한 듯 잔뜩 찡그린 표정을 지었다. 한숨을 푹 쉬더니 입을 열었다. 돌아오는 답변이 김제동스럽다.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영창에 대한 발언은 모두 사실입니다. 그날 그 자리에서 그분들과 무슨 게임을 했는지까지도 정확하게 기억납니다. 거짓말을 한 부분이 있다면 ‘아주머니’라고만 발언한 거예요. 그때 저는 ‘어머니’와 ‘아주머니’를 번갈아 썼던 것 같거든요. 국정감사에서 불러주면 이런 이야기를 다 하려고 했는데 안 불러주더라고요. 언젠가는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었습니다.”

김제동은 《윤도현의 러브레터》(KBS2)에서 ‘말 잘하는 사람’으로 데뷔해 그동안 《해피투게더》(KBS2), 《힐링캠프》(SBS) 등을 거쳐왔다. 말 한마디로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말 한마디로 박수를 이끌어내고 공감을 얻어왔다. 세간의 이목이 ‘정치’를 향해 있는 지금, 김제동은 무슨 말을 할까. 10년 만에 진보 정권이 탄생한 문재인 대통령 시대를 맞는 김제동의 심경은 또 어떠할까.



이 땅의 폴리테이너들은 너무 피곤하다

정치·사회 참여 연예인들 오히려 더 위축…대중적 영향력 커진 만큼 대가도 치러

하재근 문화 평론가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5.21(일) 16:00:00 | 1439호



‘폴리테이너(politainer)’라는 말은 미국의 정치학자 데이비드 슐츠가 1999년에 발표한 논문 ‘벤투라와 새로운 세계의 용감한 폴리테이너 정치학’에서 처음 쓰였다. 미네소타주 주지사 선거에서 프로레슬러 출신인 벤투라가 승리하자, 이 현상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신조어다. 정치인(politician)과 연예인(entertainer)의 합성어로 정치활동을 하는 연예인을 뜻한다. 데이비드 슐츠는 영상매체 때문에 연예인의 당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한국에서 폴리테이너는 직접 정치에 뛰어드는 연예인도 물론 포함하지만, 정치적 의미가 담긴 사회적 발언을 하는 연예인들을 포괄적으로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데이비드 슐츠의 주장과는 달리 한국에선 연예인의 당선 가능성이 그리 높진 않다. 그러나 발언의 사회적 파급력이 상당히 커서, 웬만한 초·재선급 국회의원보다도 더 큰 주목을 받는다.

 

2016년 11월19일 가수 전인권씨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4차 범국민행동’에서 공연하고 있다. © 뉴스뱅크이미지

2016년 11월19일 가수 전인권씨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4차 범국민행동’에서 공연하고 있다. © 뉴스뱅크이미지


 

“정치판에서 연예인을 이용만 하려 들었다”

 

최근 대선 국면에서 폴리테이너들이 또다시 화제에 올랐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폴리테이너의 활약이 예년에 비해 그리 큰 건 아니었다. 대중과 매체는 폴리테이너에 주목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연예인들이 앞에 나서지 않은 것이다. 그러자 폴리테이너의 활동이 저조하다는 이슈가 화제가 되면서 폴리테이너가 다시 조명됐다.

 

과거 연예인은 정치권의 이용 대상으로, 연예인의 정치적 행동은 권력의 철저한 통제 속에서 이뤄졌다. 이승만 정부 당시엔 정치깡패 임화수가 권력이 연예인을 이용하는 창구 역할을 했다. 그는 반공예술인단으로 연예인들을 정치적으로 동원했고, 한편으론 여배우를 상납했다고 전해진다. 희극인 김희갑이 일방적으로 반공예술단 공연 일정을 발표해 버린 임화수에게 한마디 했다가 갈비뼈가 세 대나 부러질 정도로 맞은 사건은 유명하다. 당시 김희갑이 “최무룡·김진규 등 임화수에게 안 맞은 사람이 없다”고 호소해 여론이 들끓었지만, 바로 한 달 후 임화수는 영화인들의 추대로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회장직에 오른다. 연예인들이 정치권력 앞에서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던 시절이다.

 

박정희 정부 시절에도 연예인 동원 문화는 여전했다. 한 연기자가 “집권당 선거운동에 참여하지 않으면 연예계 활동에 제약이 있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선거운동에 참여해 집권당 후보를 지원했다”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른바 ‘관제(官製) 폴리테이너’였던 셈이다. 비협조 연예인에겐 보복이 가해졌다. 신중현이 박정희 대통령 찬가 제작을 거부한 후 그의 노래들은 금지곡이 됐다. 그에 대한 반발로 신중현이 만든 노래가 《아름다운 강산》인데, 지난 연말 ‘탄핵 반대’ 집회에서 이 노래를 부르자 신중현의 아들인 신대철이 아버지의 뜻을 모독했다며 촛불집회에 나와 《아름다운 강산》을 연주하기도 했다.

 

이후 연예인들이 국민적 인기를 얻으면서 권력은 단순 동원 차원을 넘어서서, 연예인을 일종의 정치적 ‘얼굴 마담’으로 이용하려 한다. 연예인 국회의원을 만들려 한 것이다. 연예인 입장에서도 정치권력에 대한 욕망이 컸다. 당시 아무리 연예인이 국민적 인기를 누린다고 해도 사회적 위계상으로는 천대받는 직종이었다. ‘금배지’는 그런 설움을 한 방에 날릴 수 있는 인생역전의 기회였다. 권력과 연예인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 의원직에 도전하는 폴리테이너가 줄을 잇는다.

 

2009년 12월21일 국회 연구단체인 ‘대중문화&미디어 연구회’ 행사에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방송인 김미화씨가 방명록을 남기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

2009년 12월21일 국회 연구단체인 ‘대중문화&미디어 연구회’ 행사에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방송인 김미화씨가 방명록을 남기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


배우 홍성우가 공화당 의원으로 첫 연예인 국회의원에 올랐고, 민정당을 거치면서 3선까지 성공했다. 바로 뒤이어 배우 이대엽이 3선에 이어 한나라당 소속으로 성남시장까지 올랐다. 이외에도 이낙훈·최무룡·이순재·최불암·강부자·정한용·강신성일·신영균·이주일·최희준 등 많은 연예인들이 국회에 입성했다. 이선희는 갑자기 민자당 소속 서울 시의원에 나서기도 했다. 여당인 민자당이 선거판 바람몰이를 위해 이선희를 ‘차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다.

 

이렇게 많은 연예인들이 폴리테이너로 정치판에 들어갔지만, 대중의 반응은 싸늘했다. 정책적 역량 없이 그저 ‘얼굴 마담’ 노릇이나 하거나, 본인의 명예욕만 채운다는 인식 때문이다. 실제로 몇몇 소수 이외엔 대중적 인지도에 비해 정치적 존재감이 극히 미미했다. 이주일·강부자·이순재 등은 “정치판에서 연예인을 이용만 하려 들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연예인의 정치참여가 다른 식으로 분출한다. 기존의 금배지 도전이나 권력에 의한 동원이 아닌, 자발적인 후보 지지 운동의 형태다. 2002년 대선 때 명계남·문성근·김흥국 등이 노무현 진영과 정몽준 진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명계남과 문성근은 ‘노빠’의 상징으로 불릴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이외에도 주로 영화계 인사들이 대거 민주당이나 민노당을 지지하고 나섰다. 이렇게 연예인들의 정치적 역할이 커지자 보수 진영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2007년 대선 땐 백일섭·이덕화·이용식·이종원·서인석 등이 이명박 진영에 힘을 보탰다. 유인촌은 이명박 정부에서 문체부 장관에 올라 보수 폴리테이너의 상징이 됐다. 2012년 대선 땐 진보 성향 연예인과 보수 성향 연예인이 전면전을 벌였는데, 특히 100명이 넘는 연예인 유세단이 나타난 박근혜 진영이 주목받았다.

 

2016년 11월12일 가수 이승환씨가 서울 광화문광장 촛불집회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2016년 11월12일 가수 이승환씨가 서울 광화문광장 촛불집회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본격적인 폴리테이너 시대와 탄압

 

이렇게 연예인들의 정치적 활동이 점점 활발해진 건 군사정부가 끝나고 민주화가 됐기 때문이다. 독재 시절엔 연예인이 민주당 계열을 감히 지지할 수 없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에도 박규채가 1987년 대선 때 김영삼 지지 선언을 하자마자 즉시 방송에서 하차당했을 정도로 분위기가 삼엄했다. 그랬다가 김대중 정부를 거치며 연예인들에게 자신감이 생겼고, 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면서 자발적 폴리테이너 현상이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때 다시 권위주의적 기조가 나타나자, 반발심이 폭발했다. 광우병 촛불집회 등을 거치면서 정치적 발언이 잇따른다. 꼭 특정 정당 지지가 아니라 전반적인 사회문제에 대한 발언으로 확대돼 폴리테이너가 소셜테이너로도 불리게 된다. 신해철·이승환·김제동 등이 소셜테이너의 상징으로 대두했다. 이외에도 쌍용자동차 노조 지지 발언을 한 이효리, MBC 노조를 지지한 문소리 등 다양한 활동이 나타났고, 대중의 호응도 컸다. 그렇게 연예계의 비판적 사회참여 열기가 커지자 박근혜 정부는 블랙리스트로 응수했다. 단지 《변호인》에 출연했을 뿐인 송강호까지 배우 활동에 제약을 받을 정도로 ‘우악스러운’ 방식이었다. 잘나가는 MC였던 김제동은 지상파에서 거의 사라졌고, 진보 성향으로 알려진 김여진이나 김미화도 불이익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문성근과 명계남은 배우 활동에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SNL코리아》로 정치풍자 코미디를 했던 CJ는 된서리를 맞았다.

 

공포 분위기가 연예계를 짓눌렀다. 평소 비판적 정치활동을 거의 안 했던 차인표까지 촛불집회에 참여할 정도로 지난 연말 연예계의 사회적 발언이 잇따른 건 그에 대한 반발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때 짓눌렸던 분위기 속에서 연예인들은 확실히 위축됐다. 섣불리 나섰다가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번 대선에선 연예인의 활약이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민주화 후퇴의 징후라고 볼 수 있다.

 

 

네티즌 여론 위협도 폴리테이너 위축의 한 요인

 

민주주의 선진국인 미국에선 연예인들이 아무런 걱정 없이 정치활동에 나선다. 로널드 레이건, 아놀드 슈워제네거, 클린트 이스트우드 등이 각종 선출직을 맡는 등 거침이 없다. 블랙 아이드 피스의 윌 아이 앰, 스칼렛 요한슨,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등 많은 연예인들이 민주당 지지를 표명했다. 전통적으로 할리우드는 민주당 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인데, 그렇다고 공화당 정권이 할리우드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없다. 숀 펜은 공화당 부시 대통령에게 “악마이자 벙어리 같은 존재”라는 극언을 하기도 했다. 록밴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은 기존 체제를 부정하는 급진적인 운동까지 펼친다.

 

이번 미 대선에서도 트럼프는 미국 연예계의 ‘동네북’이 되다시피 했다. 마돈나, 메릴 스트립 등 트럼프 반대 발언을 한 연예인을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특히 《SNL코리아》 정치풍자 코너가 박근혜 정부 당시 한국에선 폐지된 반면, 미국 《SNL》에선 알렉 볼드윈 등이 작정하고 트럼프를 조롱했다. 이에 트럼프가 적극적으로 응수하면서 양 진영은 말싸움을 벌였다. 싸움은 대등할 때 하는 것이다. 우리는 권력이 조용히 연예인들을 억누르지만, 미국에선 대놓고 권력과 연예인이 싸운다. 그래도 불이익은 없다. 이런 민주적 환경에서 폴리테이너 문화가 꽃피는 것이다.

 

TV 프로그램 《SNL코리아》의 정치풍자 코너의 한 장면 © tvN

TV 프로그램 《SNL코리아》의 정치풍자 코너의 한 장면 © tvN


한국에서도 젊고 자유분방한 연예인들이 보수 노선을 비판하면서 진보 성향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이건 보수보다 혁신을 추구하는 예술계의 기본적인 속성이다. 미국에선 그러려니 하는데, 우리네 경우는 지난 보수 정권 10년 동안 ‘문화계를 종북세력이 장악했다’면서 과민반응을 보였다. 《변호인》 제작자는 한국영화계에서 설 곳을 잃고 결국 외국계 영화사로 옮겼다. 송강호는 《변호인》 섭외에 향후 정치보복을 우려해 망설이다가 부인의 조언으로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한편, 최근 들어선 정치권력뿐만이 아니라 네티즌 여론까지 위협으로 대두됐다. 극단적이고 배타적인 편 가르기 문화가 득세했기 때문이다. 연예인 입장에선 네티즌 눈치 때문에라도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워졌다. 정치권력이든 네티즌 여론이든 그 어떤 이유로도 정치활동에 제약이 있어선 안 된다. 모두에게 사상과 표현의 자유, 정치활동의 권리가 있다는 것이 민주공화국의 원리다. 폴리테이너가 자유로운, 관용적인 나라가 돼야 국민이 누리는 자유도 커질 것이다. 물론 연예인도 영향력에 걸맞은 책임을 져야 한다. 인기에 영합하거나 일시적인 감정으로 정치선동에 나서는 걸 조심해야 하는 이유다. 


뇌도 외모도 다 섹시해야 진정한 ‘뇌섹남’

[배정원의 섹슈얼리티] 외모는 생식과 연관, 생식적 우월함 확보된 후에야 ‘뇌섹남(녀)’ 거론

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5.21(일) 12:00:00 | 1439호


최근 몇 년간 ‘뇌섹남’ ‘뇌섹녀’란 신조어가 인기어로 자리 잡았다. ‘뇌가 섹시한 남자’ ‘뇌가 섹시한 여자’의 줄임말로 우리나라에서는 2014년 국립국어원이 이를 ‘2014 새 낱말’로 선정했다. 또 외국에서도 ‘sapiosexuality’라고 해서 신체적인 특성보다 지적 능력에 더 매력을 느끼는 현상을 나타내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른바 상대의 외모보다 뇌에서 섹시함을 느낀다는 새로운 트렌드인데, 요즘은 젊은 세대뿐 아니라 중·노년층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그래서 뇌섹남(녀)·뇌섹 중년·뇌섹 노년이 되려면 유산소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뇌로 가는 혈액순환을 도와 지적 영역을 활성화시킨다는 다크 초콜릿을 먹고, 충분한 수면을 취하라는 지침이 나올 정도가 되었다.

 

 

뇌섹男(女) 떠도 외모의 매력 절대 포기 안 해

 

원래의 뇌섹남은 이제까지 외모나 감각적인 차원에서 월등한 남성들에 대한 호칭이었던 ‘짐승남’ ‘훈남’ ‘꽃미남’ ‘꽃중년’과는 다른, 내면적인 성적 매력을 갖춘 사람을 의미했다. 뇌섹남으로 불리려면 단지 많은 지식의 배열과 과시가 아닌, 그 지식을 기반으로 하여 상대방에 대한 넉넉한 배려와 포용, 판단력을 구사하는 인간적인 매력을 가진 남자여야 했다.

 

이렇듯 뇌섹남의 등장은 상대를 고를 때 외모적인 가치를 무엇보다 우선했던 우리에게 신선한 잣대를 선사했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사람들이 ‘뇌의 섹시함’ ‘지성적인 매력’을 이야기하면서도 이와 함께 외모의 매력 또한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우리가 선호하는 외모의 매력은 생식과 아주 깊은 관계가 있다.

 

© 일러스트 정재환

© 일러스트 정재환


무엇보다 사람의 종을 보전하는 통로는 섹스다. 섹스의 기능은 생식(유전자 보전)·즐거움(쾌락)·소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 년 전만 해도 필자가 강의 중 ‘섹스의 기능’을 질문하면 대개가 ‘생식 > 사랑의 표현과 확인 > 쾌락 > 대화’의 순으로 대답이 나왔다. 그런데 요즘은 생식이 가장 뒤 순서로 밀렸다. 심지어 안 나오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 필자는 페이스북에서 재미난 실험을 해 보았다. ‘이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부분’을 질문해 본 것이다.

 

100명이 넘는 남자들은 여자에게 섹시함을 느끼는 순위가 ‘엉덩이 > 가슴 > 눈 > 다리·성기 > 입술 > 발목’ 순이라고 답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남자가 여자를 볼 때 가장 매력 있다고 생각하는 부위는 엉덩이와 가슴이다. 남자들이 여자들의 엉덩이에 끌리는 이유는, 여자의 큰 엉덩이는 임신한 아기의 두뇌 발달에 좋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여자들의 큰 엉덩이에는 아기들의 두뇌 발달에 좋은 DHA를 포함한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또한 여자의 엉덩이는 여자의 발정기를 상징한다. 다른 암컷 영장류의 경우 발정기(배란기)가 되면 엉덩이가 돌출하고, 붉어지며, 향기가 난다. 그런데 인간 여자들은 자신의 발정기를 숨김으로써 자신의 성(性)선택(자기 아이의 아버지를 결정하는, 혹은 섹스를 누구와 할까를 결정하는)에서 주도권을 가졌다. 여자들이 두 발로 일어서고 우아하게 걷게 되면서, 여자들의 몸의 구조는 남자들이 한눈에 쉽게 알아볼 수 있었던 배란기를 숨기고, 자신이 원하는 남자에게 임신시킬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는 한편 여자들은 엉덩이를 발달시켜 배란기를 가장했다. 그것이 진화심리학적으로 말하는, 여자의 엉덩이가 남자의 엉덩이보다 탐스럽게 부푼 이유다.

 

또 두 번째 매력 있는 곳인 가슴은 남자들의 영원한 이상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자의 탐스럽고 아름다운 가슴라인을 보면 남자들은 누구나 강한 자극을 받는다. 여자의 가슴은 모성과 유혹의 한가운데쯤 그 존재의 이유가 있는 듯하다. 풍만한 여자의 가슴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의 충분한 분비를 짐작하게 한다. 곧 그녀는 여자로서 건강한 생식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자들은 남자의 신체부위 중 어디를 섹시하다고 생각할까? 페이스북 질문을 통해 본 여자들의 대답은 ‘탄탄한 엉덩이 > 튼실한 허벅지 > 가슴 > 등·손 > 눈’이었다. 사실 여자들은 이런 질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성격·능력·신뢰성 같은 요소 말고 육체적인 면만 생각하라고 하면 대부분의 여자들이 남자들의 엉덩이와 허벅지·가슴, 그리고 팔을 꼽는다. V라인의 넓은 어깨와 가슴을 가지고, 엉덩이는 좁은, 그리고 굵은 핏줄이 선 강한 팔을 가진 남자야말로 여자들의 이상향이다.

 

 

사람들 직관엔 여전히 생식의 기준이 우선해

 

여자들에게 인기가 높은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남자’는 엉덩이 라인이 예쁜 남자다. 동그란 공을 잘라 붙여 놓은 것 같은 엉덩이 라인, 튼실한 허벅지를 가진 남자에게 섹시함을 느끼는 것은 여자들 역시 본능적으로는 그곳들이 남자에게 힘의 원천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또한 남자들은 소위 아킴보(Akimbo) 자세라는, 골반 위에 양손을 얹고 꼿꼿하게 서는 자세를 취하길 좋아한다. 넓은 가슴은 다른 남자들에겐 위압감을, 여자들에겐 섹시함을 과시하기에 모자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 대답들을 보면 세상은 섹스에 있어서 자신의 유전자를 보전하는 생식의 기능보다는 즐거움과 소통의 기능으로 가는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직관에는 여전히 생식의 기준이 우선하는 게 분명하다. 이런 생식적인 우월함이 확보된 후에야 남자들은 지적이고, 성격이 좋으며, 우아하고, 자존감이 높으며, 배려심이 높은 여자, 즉 뇌섹녀를 거론한다. 여자 역시 마찬가지다. 생물학적 우월함 뒤에 지적이며, 공감을 잘해 주고, 유머러스하며, 세심하며, 따뜻하고, 마음이 넓으며, 매너가 좋은 뇌섹남을 요구한다. 결국 짐승남과 뇌섹남의 양면을 가진 조화로운 남자가 몸도 뇌도 섹시한 여자를 얻을 것이란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