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멘토

제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서울대 경제학부 이준구교수)

일취월장7 2014. 2. 4. 12:16

제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서울대 경제학부 이준구교수)


며칠 전 아침에 이메일을 열어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밤사이에 오십 개가 넘는 메일이
한꺼번에 와 있는 것이 아닙니까? 메일 제목들을 훑어보니까 거의 모두가 다음 학기 내가
가르치는 강의의 수강신청에 실패해 초안지에 사인해 줄 수 있는지의 여부를 묻는 메일이었
습니다. 다음 학기에는 미시경제학, 재정학, 경제학연습 세 과목을 가르치는데, 이 세 과목
모두에서 사전에 지정된 인원이 이미 꽉 차버려 여석이 없었나 봅니다.


그렇게 수강신청자가 몰려드는 걸 보니, 내가 요즈음 학생들 사이에서 ‘학점의 천사’로 널
리 알려졌나 봅니다. 예전에 졸업한 친구들 만나 보면 내 학점이 짜다는 소문을 듣고 피해
갔다는 말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하여튼 나는 강의실에 여유가 있는 한 정원에 구애 받
지 않고 초안지에 사인해 주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다만 경제학연습의 경우에는 수
강생들이 쓴 글의 첨삭지도 위주로 강의를 진행하기 때문에 15명의 정원 이상을 받기가 힘
듭니다. 그러나 미시경제학과 재정학은 비교적 관대하게 추가 신청을 허락하고 있습니다.


세 과목 중 추가 신청을 희망하는 학생 수가 유난히 많은 것이 바로 미시경제학이었습니
다. 정원이 200명인데, 그 날 아침 받은 메일만도 마흔 개 정도 되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큰 문제는 없을 테니 강의 시작하자마차 찾아와 초안지 사인을 받으라는 답신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아침에도 비슷한 숫자의 메일이 와서 초안지 사인을 부탁하
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홀수, 짝수로 나눠 수강신청을 하도록 만들어서 이틀 연속 그런 메
일이 폭주했나 봅니다.


둘째 날 온 메일에 대해서도 별 문제 없을 것이라는 답신을 보내 줬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강의실에 비해 너무 많은 학생이 몰려들까봐 은근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따라
서 마음속으로 이제부터는 그런 약속을 해주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 다음에도 초
안지에 사인해 줄 수 있느냐는 메일이 계속 날아 왔지만, 그들에게는 약속을 해줄 수 없으
니 일단 강의가 시작된 후 사정을 보고 결정하겠다는 답신을 보내줬습니다. 그러니까 뒤늦
게 메일을 보낸 사람들은 2순위 그룹으로 배정해 강의실 여유가 없으면 그냥 돌려보낼 작
정인 것이지요.


메일을 보낸 날짜에 단지 하루, 이틀 정도의 차이 때문에 나에게 약속을 받은 그룹과 약
속을 받지 못한 그룹으로 갈려지게 된 것입니다. 만약 내 강의를 꼭 들어야 하는 사정이 있
는 사람이라면 하루 이틀 정도 게으름을 피운 것이 큰 손해를 가져다 준 셈입니다. 아침 일
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찾는다는 속담이 있듯, 조금이나마 부지런한 사람이 자신이 원하
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법입니다.

 

사실 수강신청은 비교적 사소한 중요성만을 가진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에서도 약간의 부지런함이 큰 차이를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사실을 모르고 살고 있을지 몰라도, 사실은 약간의 게으름 때문에 어떤 중요한 일과 관
련해 불필요하게 나쁜 결과를 감수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뤄서 얻
는 이득이 있다면 그것이 도대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러나 거기에 따르는 비용은 엄청난
것일 수 있습니다.

 

내 강의를 들어본 사람은 잘 알지만, 나는 지각을 결석으로 처리하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
습니다. 수업에 늦게 들어와 수업 분위기를 해치는 행위가 싫기도 하지만, 시간을 엄수하는

버릇을 기르라는 의미에서 그런 방침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리포트 제출 기한을 넘기
는 데 대해서도 아주 엄격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15점 만점이라고 할 때 하루 늦을 때
마다 5점씩 깎는 가혹한(?) 벌칙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기한을 넘겨 제출하는 학
생이 결코 적지 않습니다. 시험에서 5점을 더 얻기가 얼마나 어렵다는 걸 생각하면 사소한
게으름이 얼마나 큰 비용을 요구하는 것인지 잘 알 텐데 말입니다.

 

얼마 전에는 나와 친하게 지내고 있는 학생 하나가 내 연구실로 헐레벌떡하며 찾아왔습니
다. 첫눈에 무슨 곤란한 사정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는데, 얘기를 듣고 보니 문제는 대략 이
런 것이었습니다. 졸업반에 있는 그 학생은 졸업에 아무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법학
전문대학원에 원서를 냈나 봅니다. 그 친구 말로는 꼭 붙는다는 생각은 없었고 한 번 지원
이나 해보겠다는 생각이었다는군요. 그런데 예상과 달리 떡하니 합격 통보를 받았고, 문제
는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 대학 규정에 따르면 모든 학생은 복수전공이나 심화전공을 의무적으로 선택해야 합
니다. 그 친구는 사회과학대학의 인접 학과를 제2전공으로 선택했는데, 거기서의 전공필수
과목 중 어떤 것이 아직도 미이수 상태에 있었나 봅니다. 그렇다면 올해 졸업은 불가능한
것이고, 따라서 법학전문대학원으로의 진학도 불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가 11월이었으
니 이제 그 전공필수 과목을 수강할 수 있는 어떤 방법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사정 얘기를 듣고 딱하기는 하지만 어떻게 해볼 도리는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에서 행정에 능통한 직원에게 어떻게 방법을 찾을 수 없
겠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상황을 세밀하게 조사한 직원은 그 시점에서 남은 방법은 단 하
나도 없다고 말하더군요. 그러면서 그 학생이 올해 졸업에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인
지한 시점은 약 한 달 전이었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대책을 강구했더라
면 어떤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을 털어 놓더군요.

 

그 후로 아직 그 학생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해결되었을 리는 만무하다고
생각합니다. 혹시라도 문제가 잘 해결되었다면 당연히 기쁜 얼굴로 나에게 뛰어오지 않았겠
습니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서도 막연하게 잘 풀릴 거라고 생각하면서 시간을
끈 결과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된 것입니다. 똑같은 스펙을 갖고 내년에 지원한다 하더라도
합격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건 여러분도 잘 아는 사실 아닙니까? 내가 매우 아끼는 학생
이 그런 딱한 사정에 처해 있는지라 너무나도 가슴이 아픕니다.

 

우리 속담에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다.”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A stitch in
time saves nine.”이라는 서양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두 속담 모두 조금의 부지런함이 큰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귀중한 메시지를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기울이는 노력의 양은 똑
같은데도 그것이 어떤 시점에서 이루어졌느냐에 따라 결과가 천양지판으로 달라진다면 마음
놓고 게으름을 피울 수 있겠습니까?

 

우선 데드라인이 정해져 있는 일과 관련해서는 철저하게 그 기한을 지키기를 권합니다.
리포트 쓰는 데 이틀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면 제출기한 이틀 전에 쓰기 시작할 것이 아니라
사흘 전 혹은 그 이전에 쓰기 시작해야 합니다. 이틀 전에 시작했는데 무슨 불가피한 사정
이 생기면 제출기한을 지킬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모든 일에 여유를 두고 준비를 시
작하면 그런 불행한 결과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미루지 말고 그 즉시 해결을 서둘러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
면서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내 경험에 따르면 그런 경우보다는 점차
더 상황이 나빠지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를 즉시 해결하지 않고

미뤄두면 급기야는 해결 불능의 상태로 빠질 수도 있습니다. 뒤로 미룬다고 해서 노력이 덜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구태여 게으름을 피우면서 차일피일 미룰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ps. 초안지 사인을 부탁하는 메일들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 또 하나 있습니다. 어떤 메일
은 읽으면서 이 학생은 부탁을 꼭 들어줘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 반면, 어떤 학생은 그런 생
각이 별로 안 드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구태여 설명하지 않더라도 내가 왜 그런 차이를 느
꼈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겠지요?

 

내 강의를 꼭 수강해야 하는 이유로 다음과 같은 것을 든 학생이 있었습니다. 자기는 이
미 내가 쓸 교재를 갖고 있는데 만약 다른 교수의 강의를 들으면 다른 교재를 또 사야 되는
게 아니냐. 난 그런 추가적 부담을 지기 싫으니까 당신의 강의를 꼭 들어야 한다. “아 다르
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는데, 속마음은 그렇더라도 다른 이유를 들면 안 되는 걸까요?
“Honesty is the best policy.”라는 서양 속담이 있기는 하지만, 내가 살아본 경험에 따르
면 반드시 맞지는 않는 속담인 것 같네요. 이런 경우라면 ‘솔직하다’는 표현보다는 ‘융통성
없다’라는 표현이 더욱 적절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