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꿈과 좌절을 말한다' 강원국 전 청와대 비서관 인터뷰
“특혜 누렸으니 봉사하라” 참모들에 출마 권유
[제1203호] 2015년06월01일 10시04분
[일요신문] 5월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달이다. 죽음에 대한 경위야 어찌되었건 간에 우리는 참여정부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 정치인들은 그것이 현재의 정치에 어떻게 투영되고 있는지 관찰할 책임이 있다. 올바른 것은 올바른 대로, 잘못된 것은 잘못된 대로 현재의 정치에 제대로 대입시켜 시행착오를 줄여야 한다. <일요신문>은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펴낸 <바보, 산을 옮기다>라는 회고록을 계기로 참여정부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보려고 했다.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은 김대중 전 대통령 밑에서 연설기획행정관으로 일했고, 참여정부에서도 윤태영 전 청와대 부속실장의 자리를 이어받아 연설기획비서관에 올랐다. 그는 <대통령의 글쓰기>, <회장님의 글쓰기> 두 권으로 단번에 베스트셀러 작가 대열에 오르기도 했다. 2년차에 이어받은 강 전 비서관의 역할은 노 전 대통령 퇴임 때까지 4년간 이어졌다. 지난 5월 29일 <일요신문>은 강 전 비서관을 만나 참여정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때의 일을 현재의 정치현실과 비교해 보고자 했다.
─연설기획비서관이란 자리는 어떤 자리인가.
“대통령의 시간을 절약하는 자리다. 대통령이 연설할 메시지를 미리 정리하는 데, 단순히 정리하는 것보다 실물을 봐야 감을 잡는 시간이 줄어들어 연설문 형태로 초고를 쓰는 작업을 한다. 다만 이 초고는 최종 연설문의 10%를 만드는 정도의 작업이다. 대통령은 이 초고를 최종본에 전혀 참고 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이 초고가 최종본이 되는 경우는 절대 없다. 모셨던 두 분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민에게 말하는 연설을 남이 써준 것을 그대로 말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전에는 당대의 문장가를 섭외해 연설문을 쓰게 하고 거의 수정 없이 사용했다. 그래서 연설문 자체의 완성도로만 보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연설문이 가장 완성도가 높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썼던 YS의 연설문도 완성도가 높지만 중간에 턱턱 걸리는 데가 있다. 이 부분은 YS가 연설문을 보다가 한 줄씩 수정하거나 첨가한 것이다. 이렇게 수정한 곳이 신문 헤드라인으로 뽑혔기 때문에 윤 전 장관은 YS의 정치적 감각을 높이 평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과 글의 초고를 쓰면서 노 전 대통령 특유의 표현을 누구보다 많이 알 것 같다. 최근 노 전 대통령의 장남 건호 씨의 발언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 말하는 노 전 대통령 혹은 친노 인사들이 자주 쓰는 표현이 있나.
“그 쪽 프레임으로 보면 거칠고, 과격하고 그런 의미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표현이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친노들의 표현은 솔직하고 생생하고 듣는 사람 입장에서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관념적인 말 폼, 잡는 말은 잘 안 쓴다. ‘권위주의를 청산하겠다’ 같은 말을 안 쓴다. 그건 굉장히 관념적인 말이다. 권위주의란 말도 그렇고 머리에 그려지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떻게 표현하느냐면 ‘대통령이 검찰에 전화하지 않겠다’라고 표현한다. 또 ‘서민들이 검찰이 불러도 오금저리지 않고 국세청 앞에 가서 기죽는 그런 일 없도록 하겠다’라고 표현한다. 나는 이게 멋을 부리려는 비유는 아니지만 고도의 수사라고 생각한다. 친노 표현이 있다면 이런 표현이 아닐까 싶다. 그런 표현의 특징은 생생하다는 게 가장 크다. 폼 잡으려고 말하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은 연설비서관에게 품격 있게 써달라고 만날 주문했다고 하는데, 품격은 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품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 자체의 권위보다는 청중이 가장 알아듣기 쉬운 말로 전달하려고 하다 보니 그런 투의 말을 쓰게 된 것이다.”
─가까이서 본 노무현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었나. “노무현 대통령은 솔직하고 꾸밈없이 말한다. 저의가 없다. 그런데 주위에서는 ‘정치 9단’이라고 한다. 어디까지 솔직하느냐 하면 자신의 취약한 점을 드러내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일례로 최도술 총무비서관이 돈을 받은 문제에 대해서 노 전 대통령은 이것은 대통령을 그만둘 사안으로 봤다. 그래서 재신임을 묻겠다고 했고. 그런데 사람들의 일반적 상식으로는 이해가 잘 안되는데 그 분은 자신의 국정운영의 기반은 도덕적 신뢰 하나밖에 없다고 굳건하게 믿은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 임기가 4년 넘게 남았는데 무엇으로 이끌어 가느냐는 말을 했다.”
─참여정부의 청와대가 젊은 참모들로 이뤄져 있었다면 지금의 청와대는 좀 더 나이가 많은 느낌이다.
“단적인 예로 내가 대우그룹에서 마지막 직급이 과장이었다. 그 당시 담당 이사가 백기승 현 한국인터넷진흥원 원장(박근혜 정권 국정홍보비서관 역임)이다. 내가 지난 2004년 비서관이 됐는데 백 원장은 거의 10년 후인 2013년 청와대 홍보수석실 국정홍보비서관이 됐다. 더군다나 나와 백 원장의 나이 차이도 5년 정도 있다. 이 정도 연배차이가 참여정부와 현 정부 사이에 있는 것 같다.”
─선배인 윤태영 전 비서관의 책 <바보, 산을 옮기다>에서 노 전 대통령의 책임총리제에 확고한 생각을 알 수 있었는데 실제로도 총리가 많은 일을 했나.
“대통령은 대통령 아젠다, 대통령 프로젝트만 하고 일상적인 국정업무는 이해찬 총리에게 맡겼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인사권을 줬다. 인사권은 대통령 권력의 전부다. 인사권으로 통치하는 것이다. 그걸 총리에게 줬다. 총리가 차관 이하 인사는 완벽하게 했다. 그렇지만 그 사실을 알려지지 않게 했다. 알려지면 공무원들이 말을 안 듣는다. 그건 대통령 권력을 완전히 내려놓은 것이다. 공무원들이 총리실에 줄을 서지 청와대 줄 안 선다. 그 사실은 이 전 총리가 알려지지 않도록 당부했다.”
─노 전 대통령은 언론과의 사이가 나빠 고생도 많이 했다. 그런 점에 대해 청와대 내부 분위기는 어땠나.
“DJ는 어느 정도 언론과 타협하면서 가려고 했다. 그러다 3년차 때 신년모두연설을 혼자 쓰셨다. 초고를 올렸는데 완전 무시했다. 그런데 완성본을 계속 안 내려주셨다. 원래 며칠 전에 내려주시면 그것으로 사전 작업을 했는데, 그날은 완성본을 연설 당일에 내려주셨다. 그런데 내려주신 연설문을 읽다가 언론사 세무조사가 들어 있어 깜짝 놀랐다. 나 같은 사람도 언론은 건드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결정적으로 언론과 틀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일이 있던 데다 원칙주의자였던 노 전 대통령은 언론과 검찰과 타협하지 않았다. 비행기도 언론사에서 돈 내고 타라고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소위 진보적인 언론사는 돈이 없어 순방에 못 따라가는 경우까지 나왔다. 그래서 그런지 순방만 가면 큰 건이 연달아 터졌다. 공보실에서는 동포간담회를 ‘공포간담회’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노 전 대통령이 해외에서 고생하고 있는 동포를 보면 감정이 격해져 거르지 않고 말을 했다. 언론사에서는 물 만난 고기처럼 기사를 쏟아냈다.”
─노 전 대통령하면 말 때문에 고생도 많았다. 그것에 대한 생각을 밝힌 적이 있나.
“국가에서 내놓는 유일한 제품은 정책 하나다. 그런데 대통령의 말이 어떻고 이런 건 중요하지 않은 것 아니냐. 그럼에도 나중에 이런 말을 하셨다. 언론이 그렇게 내 말을 가지고 한 것에 대해서 자신도 잘못한 게 있다. 말을 나도 고쳐보려고 했다. 언론이 요구하는 대통령과 같이 말해보고 품격 있게 말도 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오랫동안 살아온 게 그렇게 살아오지 않아서 노력해도 안 되더라. 그런데 의문은 있다. 과연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을까. 대통령의 말투나 표현방식이 국정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할 만큼, 언론이 집요하게 다룰 만큼 그렇게 중요한 문제였는지 의문이 든다. 그런 곁가지 때문에 중요한 정책은 보이지도 않고 전달도 안 된다. 우체부가 전달을 안 해준다는 말을 했다. 나중에는 정책에 대한 보도 자체가 안 되기 때문에, ‘혁신하겠다’ 같은 말은 써주지도 않으니까 표현을 더 세게 했던 적도 있다.”
─청와대 참모와 비서진들에게 출마를 권유했다는데 그런 권유의 배경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비서관들에게도 청와대에서 근무했다는 것은 혜택을 받은 것이다. 남들이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을 너희는 한 것이다. 말하자면 특혜를 누린 것이다. 그런데 그 귀한 경험을 국민을 위해 쓰지 않고 나누지 않으면 특권만 누리고 떠나는 것이다. 정치란 기본적으로 힘들고 더럽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하면 그것은 안 된다. 고난의 길로 가야 한다.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통해 받은 특혜를 갚아야 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고 화두는 무엇이었나.
“‘성공한 대통령’이다. 당선 이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만나는 사람마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라는 덕담을 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성공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한다. 임기 4년을 넘어가면서 이런 말을 했다. 참여정부를 평가하는 시각은 3가지가 있다. 청와대에서 스스로 평가하는 것, 언론과 국민이 평가하는 것, 역사가 평가하는 것이다. 성공이라는 것이 국정운영을 잘했다는 것인데 잘했다고 하는 것과 올바르게 하는 것은 다르다. 예를 들어 경기부양하면 박수를 받을 것이다. 그런데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다음 정부에 부담이 되고 경제를 속으로부터 골병들게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올바른 길을 가야하는데 그러면 잘하지 못한 게 되고 성공하지 못한 게 되는데 그런 것으로 고민했다. 국민의 평가도 언론이 잘 써줘야 하는데 언론과 그런 관계에 있다 보니 그것도 어려웠다. 대통령 본인도 ‘임기 5년차에 우리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내가 하려는 것이 개혁과 통합인데, 권위주의 내려놓고 권력기관 정상화, 정치자금 투명화 등 개혁은 어느 정도 했는데 통합에선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국정전반을 보면 스스로 수치로 평가하는 작업을 많이 했는데 경제나 모든 면에서 부끄럽지 않게 했다. 실패하지 않았다라는 말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 이후 찾아 뵀던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찾아 뵀을 때가 노 전 대통령 돌아가시기 한 달 전쯤이었다. 참여정부 시절 연설비서관실 모두가 함께 갔다. 갔는데 좋아하시고 고마워하셨다.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보셨다. 그래서 내가 ‘벤처기업 다니는데 젊은 직원들이 노무현 대통령 좋아하는 직원이 많아서 대통령님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인기도 좋습니다’ 그랬더니 활짝 웃으시며 다행이라고 했다. 그때 그 시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뭐하고 살 건데, 넌 뭐 먹고 살 건데, 힘들지 않나 이런 말을 많이 했다. 그 분은 그때부터 그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마지막 남긴 글을 봐도 그렇다. 첫 시작이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이다. 자기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그리고 ‘미안해하지 마라’, ‘원망하지 마라’ 이것도 남아 있는 사람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배려다. 유서니만큼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타인에 대한 배려만 있다. 유일하게 자기에 대한 이야기는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그거 한 대목이다. 그게 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퇴임 후 유일하게 하고 싶었던 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걸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 쯤 주위에 ‘내가 글을 써도 누가 믿고 그 글을 읽겠나’라고 했다고 한다. 혹자는 그 유서가 조작됐다는 이야기를 한다는데 나는 보자마자 노 전 대통령의 글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대통령의 평소 글 쓰는 스타일이다. 접속사 같은 것 안 쓰고 툭툭 던지면서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고 간결하게 할 이야기만 딱 한다. 대통령은 끝없이 고치는 성격이다. 그 글을 누구에게 보여줄 수도 없는 상황에서 머릿속으로 쓰고 머릿속에서 계속 고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느낀 노무현 정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다른 것을 넣는 것. 예를 들면 내가 있어야할 자리에 대의, 역사, 국민을 넣어서 선택을 하는 것이다. 눈앞의 이익을 쫓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위해 선택하거나 국민을 위해 선택하는 점이 노무현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대통령의 시간을 절약하는 자리다. 대통령이 연설할 메시지를 미리 정리하는 데, 단순히 정리하는 것보다 실물을 봐야 감을 잡는 시간이 줄어들어 연설문 형태로 초고를 쓰는 작업을 한다. 다만 이 초고는 최종 연설문의 10%를 만드는 정도의 작업이다. 대통령은 이 초고를 최종본에 전혀 참고 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이 초고가 최종본이 되는 경우는 절대 없다. 모셨던 두 분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민에게 말하는 연설을 남이 써준 것을 그대로 말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전에는 당대의 문장가를 섭외해 연설문을 쓰게 하고 거의 수정 없이 사용했다. 그래서 연설문 자체의 완성도로만 보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연설문이 가장 완성도가 높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썼던 YS의 연설문도 완성도가 높지만 중간에 턱턱 걸리는 데가 있다. 이 부분은 YS가 연설문을 보다가 한 줄씩 수정하거나 첨가한 것이다. 이렇게 수정한 곳이 신문 헤드라인으로 뽑혔기 때문에 윤 전 장관은 YS의 정치적 감각을 높이 평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과 글의 초고를 쓰면서 노 전 대통령 특유의 표현을 누구보다 많이 알 것 같다. 최근 노 전 대통령의 장남 건호 씨의 발언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 말하는 노 전 대통령 혹은 친노 인사들이 자주 쓰는 표현이 있나.
“그 쪽 프레임으로 보면 거칠고, 과격하고 그런 의미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표현이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친노들의 표현은 솔직하고 생생하고 듣는 사람 입장에서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관념적인 말 폼, 잡는 말은 잘 안 쓴다. ‘권위주의를 청산하겠다’ 같은 말을 안 쓴다. 그건 굉장히 관념적인 말이다. 권위주의란 말도 그렇고 머리에 그려지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떻게 표현하느냐면 ‘대통령이 검찰에 전화하지 않겠다’라고 표현한다. 또 ‘서민들이 검찰이 불러도 오금저리지 않고 국세청 앞에 가서 기죽는 그런 일 없도록 하겠다’라고 표현한다. 나는 이게 멋을 부리려는 비유는 아니지만 고도의 수사라고 생각한다. 친노 표현이 있다면 이런 표현이 아닐까 싶다. 그런 표현의 특징은 생생하다는 게 가장 크다. 폼 잡으려고 말하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은 연설비서관에게 품격 있게 써달라고 만날 주문했다고 하는데, 품격은 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품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 자체의 권위보다는 청중이 가장 알아듣기 쉬운 말로 전달하려고 하다 보니 그런 투의 말을 쓰게 된 것이다.”
─가까이서 본 노무현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었나. “노무현 대통령은 솔직하고 꾸밈없이 말한다. 저의가 없다. 그런데 주위에서는 ‘정치 9단’이라고 한다. 어디까지 솔직하느냐 하면 자신의 취약한 점을 드러내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일례로 최도술 총무비서관이 돈을 받은 문제에 대해서 노 전 대통령은 이것은 대통령을 그만둘 사안으로 봤다. 그래서 재신임을 묻겠다고 했고. 그런데 사람들의 일반적 상식으로는 이해가 잘 안되는데 그 분은 자신의 국정운영의 기반은 도덕적 신뢰 하나밖에 없다고 굳건하게 믿은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 임기가 4년 넘게 남았는데 무엇으로 이끌어 가느냐는 말을 했다.”
재신임 방식과 관련해 기자회견 하는 모습.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참여정부의 청와대가 젊은 참모들로 이뤄져 있었다면 지금의 청와대는 좀 더 나이가 많은 느낌이다.
“단적인 예로 내가 대우그룹에서 마지막 직급이 과장이었다. 그 당시 담당 이사가 백기승 현 한국인터넷진흥원 원장(박근혜 정권 국정홍보비서관 역임)이다. 내가 지난 2004년 비서관이 됐는데 백 원장은 거의 10년 후인 2013년 청와대 홍보수석실 국정홍보비서관이 됐다. 더군다나 나와 백 원장의 나이 차이도 5년 정도 있다. 이 정도 연배차이가 참여정부와 현 정부 사이에 있는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시 이해찬 총리(맨 오른쪽)에게 인사권까지 맡기는 등 모든 권력을 내려놓았지만 이를 밖으로 알리지 않았다. 사진제공=청와대
─선배인 윤태영 전 비서관의 책 <바보, 산을 옮기다>에서 노 전 대통령의 책임총리제에 확고한 생각을 알 수 있었는데 실제로도 총리가 많은 일을 했나.
“대통령은 대통령 아젠다, 대통령 프로젝트만 하고 일상적인 국정업무는 이해찬 총리에게 맡겼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인사권을 줬다. 인사권은 대통령 권력의 전부다. 인사권으로 통치하는 것이다. 그걸 총리에게 줬다. 총리가 차관 이하 인사는 완벽하게 했다. 그렇지만 그 사실을 알려지지 않게 했다. 알려지면 공무원들이 말을 안 듣는다. 그건 대통령 권력을 완전히 내려놓은 것이다. 공무원들이 총리실에 줄을 서지 청와대 줄 안 선다. 그 사실은 이 전 총리가 알려지지 않도록 당부했다.”
─노 전 대통령은 언론과의 사이가 나빠 고생도 많이 했다. 그런 점에 대해 청와대 내부 분위기는 어땠나.
“DJ는 어느 정도 언론과 타협하면서 가려고 했다. 그러다 3년차 때 신년모두연설을 혼자 쓰셨다. 초고를 올렸는데 완전 무시했다. 그런데 완성본을 계속 안 내려주셨다. 원래 며칠 전에 내려주시면 그것으로 사전 작업을 했는데, 그날은 완성본을 연설 당일에 내려주셨다. 그런데 내려주신 연설문을 읽다가 언론사 세무조사가 들어 있어 깜짝 놀랐다. 나 같은 사람도 언론은 건드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결정적으로 언론과 틀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일이 있던 데다 원칙주의자였던 노 전 대통령은 언론과 검찰과 타협하지 않았다. 비행기도 언론사에서 돈 내고 타라고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소위 진보적인 언론사는 돈이 없어 순방에 못 따라가는 경우까지 나왔다. 그래서 그런지 순방만 가면 큰 건이 연달아 터졌다. 공보실에서는 동포간담회를 ‘공포간담회’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노 전 대통령이 해외에서 고생하고 있는 동포를 보면 감정이 격해져 거르지 않고 말을 했다. 언론사에서는 물 만난 고기처럼 기사를 쏟아냈다.”
2003년 육군 무적 태풍부대를 방문해 장병들이 사용하는 귀마개를 착용해 보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노 전 대통령하면 말 때문에 고생도 많았다. 그것에 대한 생각을 밝힌 적이 있나.
“국가에서 내놓는 유일한 제품은 정책 하나다. 그런데 대통령의 말이 어떻고 이런 건 중요하지 않은 것 아니냐. 그럼에도 나중에 이런 말을 하셨다. 언론이 그렇게 내 말을 가지고 한 것에 대해서 자신도 잘못한 게 있다. 말을 나도 고쳐보려고 했다. 언론이 요구하는 대통령과 같이 말해보고 품격 있게 말도 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오랫동안 살아온 게 그렇게 살아오지 않아서 노력해도 안 되더라. 그런데 의문은 있다. 과연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을까. 대통령의 말투나 표현방식이 국정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할 만큼, 언론이 집요하게 다룰 만큼 그렇게 중요한 문제였는지 의문이 든다. 그런 곁가지 때문에 중요한 정책은 보이지도 않고 전달도 안 된다. 우체부가 전달을 안 해준다는 말을 했다. 나중에는 정책에 대한 보도 자체가 안 되기 때문에, ‘혁신하겠다’ 같은 말은 써주지도 않으니까 표현을 더 세게 했던 적도 있다.”
─청와대 참모와 비서진들에게 출마를 권유했다는데 그런 권유의 배경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비서관들에게도 청와대에서 근무했다는 것은 혜택을 받은 것이다. 남들이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을 너희는 한 것이다. 말하자면 특혜를 누린 것이다. 그런데 그 귀한 경험을 국민을 위해 쓰지 않고 나누지 않으면 특권만 누리고 떠나는 것이다. 정치란 기본적으로 힘들고 더럽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하면 그것은 안 된다. 고난의 길로 가야 한다.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통해 받은 특혜를 갚아야 한다고 말했다.”
2005년 출입기자들과 청와대 뒷산을 오르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청와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고 화두는 무엇이었나.
“‘성공한 대통령’이다. 당선 이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만나는 사람마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라는 덕담을 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성공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한다. 임기 4년을 넘어가면서 이런 말을 했다. 참여정부를 평가하는 시각은 3가지가 있다. 청와대에서 스스로 평가하는 것, 언론과 국민이 평가하는 것, 역사가 평가하는 것이다. 성공이라는 것이 국정운영을 잘했다는 것인데 잘했다고 하는 것과 올바르게 하는 것은 다르다. 예를 들어 경기부양하면 박수를 받을 것이다. 그런데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다음 정부에 부담이 되고 경제를 속으로부터 골병들게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올바른 길을 가야하는데 그러면 잘하지 못한 게 되고 성공하지 못한 게 되는데 그런 것으로 고민했다. 국민의 평가도 언론이 잘 써줘야 하는데 언론과 그런 관계에 있다 보니 그것도 어려웠다. 대통령 본인도 ‘임기 5년차에 우리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내가 하려는 것이 개혁과 통합인데, 권위주의 내려놓고 권력기관 정상화, 정치자금 투명화 등 개혁은 어느 정도 했는데 통합에선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국정전반을 보면 스스로 수치로 평가하는 작업을 많이 했는데 경제나 모든 면에서 부끄럽지 않게 했다. 실패하지 않았다라는 말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 이후 찾아 뵀던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2003년 올스타전 개막식 시구 모습. 일요신문 DB
─마지막으로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느낀 노무현 정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다른 것을 넣는 것. 예를 들면 내가 있어야할 자리에 대의, 역사, 국민을 넣어서 선택을 하는 것이다. 눈앞의 이익을 쫓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위해 선택하거나 국민을 위해 선택하는 점이 노무현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윤태영 전 대변인 참여정부 비화 공개
“노무현 임기중 두 번 사임 결심”
[제1203호] 2015년06월01일 10시05분
[일요신문] 참여정부 청와대 대변인, 제1부속실장, 연설기획비서관 직을 맡으며 ‘노무현의 복심’으로 통했던 윤태영 전 대변인이 책 한 권을 내놨다. 책은 <바보, 산을 옮기다>란 제목으로 정치인 노무현이자 대통령 노무현의 ‘국민통합’을 향한 도전과 좌절을 엮은 기록이다. 이 책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임기 중 사임을 진지하게 이야기했던 장면도 볼 수 있다.
# 노무현과 참여정부 인사들
저자가 참여정부 청와대의 제1부속실장이었던 만큼 참여정부 인사와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장면이 여럿 등장한다. 참여정부에서 비서실장과 민정수석을 역임한 문재인 새정치연합 당대표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2006년 5월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를 떠나는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과 환담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한 문 대표에게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 대신 영남 지역에서 기반을 마련하는 데 힘을 보태줄 것을 당부했다. 이 자리에서 노 전 대통령은 “정치를 하기 싫다고 하니 어쩔 수 없지만, 나는 정치를 그만두기 어려우니 관리를 해주세요. 인연이 그렇게 맺어진 걸 어떡합니까?”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주변 인사들에게 정치 참여를 적극 권했다. 지난 2006년 노 전 대통령은 “김경수(대통령비서실 연설기획비서관·진주출신)는 진주 가서 출마해라. 이미지가 좋지 않나? 문용욱(대통령 제1부속실 실장)은 곰처럼 음숭한 데가 있으니 나하고 봉하로 내려가고. 이호철(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 실장) 자네는 나랑 내려가서 내셔널트러스트를 하다가 부산에 출마하든지”라고 말했다.
# 반기문 총장과의 일화
반기문 UN 사무총장에 관한 일화도 등장한다. 반기문 당시 외교부 장관은 UN사무총장 후보다 보니 민감한 외교적 사안에 대응할 때 선택의 폭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았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외교 현안의 최대 문제였던 일본과의 역사 교과서 문제, 독도 문제에 대해서 강력 대응할 때마다 후보였던 반 총장이 마음에 걸렸다.
노 전 대통령은 반 총장에게 장관직을 떼어주는 것이 UN사무총장 선거운동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반 총장의 입장은 달랐다. 반 총장은 현직을 유지해야 유리하다며 경쟁 후보의 예를 들었다. 반 총장이 “다른 후보의 경우는 나라에서 밀어주려고 (외교부 장관이 아닌) 부총리로 올려주었더니 지지도가 오히려 떨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저는 특보 같은 자리가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하며 이야기를 끝맺었다. 노 전 대통령은 당당한 한일 외교를 위해서 불가피한 선택을 하려 했지만 반 총장의 UN사무총장 선거를 위해 포기했다는 것이다.
# 사임을 생각하다
책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사임을 두 번 생각했다. 첫 번째는 임기 시작 약 반년 만인 지난 2003년 10월 최도술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SK 자금 수수관련 일이 불거졌을 때였다. 참모진의 만류도 뿌리치고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재신임을 묻겠다고 했다. 이때 노 전 대통령은 사임까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언론을 비롯하여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재신임 제안’을 노무현 특유의 ‘정치적 승부수’로 해석했다. 하지만 그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실제로 자리에서 내려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재신임 제안은 탄핵과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압승을 지나며 수면 밑으로 내려갔다.
두 번째는 지난 2006년 11월에 여당인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합당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였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직에서 사임할 준비를 지시하기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의원들이 통합신당으로 빠져나가고 잔류 의원이 50여 명 정도 될 경우에는 대통령직에서 사임하겠다. 이를 위해 과도내각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라. 총리는 김우식 과학기술부총리와 전윤철 감사원장 가운데 누가 적당할지 판단해라”라고 지시했다. 또한 노 전 대통령은 “전에 임기 5년이 길다고 말한 적 있지요. 그때부터 임기를 4년만 채우고 마치는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열린우리당이 기회를 주지 않는 것 같아 그리하지 못했지요. 당 때문에라도 내가 이 자리에 버티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식물대통령입니다. 이제 더는 일을 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라며 “4년 임기가 차는 날 즈음해서 사임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임기를 4년으로 줄이면 다음 대통령은 90일 내로 취임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다음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 시기가 엇비슷해집니다. 내가 그렇게 타이밍을 조절하면 됩니다. 여당도 없는 대통령이 대통령 한다고 버티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1년이라는 세월을 국민들에게 돌려드려야지요”라고 말했다.
이병완 비서실장은 대통령을 만류했다. 이 실장은 “설사 당이 깨져 50명, 70명이 되더라도 그 사람들과 함께해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해야 맞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내가 누구를 위해서 종을 울리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4년으로 충분하다. 남은 1년 동안 할 수 있는 일도 없다”고 거절의 뜻을 분명히 했다. 계속되는 간청에 노 전 대통령은 일부 의견을 받아들였다. 노 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과의) 협상용으로 이야기하되, 협상이 안 되면 사임은 사실이 되는 것으로 합시다”라고 못 박았다.
하지만 APEC 정상회담 일정을 위한 순방 일정을 마치고 노 전 대통령의 마음은 더 확실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순방을 다녀오는 동안 마음이 변했다. 당 사람들과 협의해서 조건부로 추진하는 것이 싫다.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 정리를 하기로 결심했다. 6개월이면 충분하다.”
이호철 국정상황실장은 “역사의 패배다. 우리 참모들은 더 이상 한국에서 살지 못할 것입니다” 이병완 비서실장도 간청했다. “우리에게 더 시간을 주십시오.” 참모들의 반대와 만류가 본격화되었다. 결국 노 전 대통령도 뜻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 노무현 스스로에 대한 평가
책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를 평가한 대목도 찾아 볼 수 있다. 대통령 취임 직후 나라종금 로비 사건 수사로 측근인 안희정 지사가 언론에 오르내리자 노 전 대통령은 안 지사를 청와대로 불러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한다. 노 전 대통령은 “지금까지는 모두가 떳떳하지 못한 구조다”면서 “이번에는 내가 턴다. 내가 은어일 수는 없다. 4급수에 사는 사람이다. 다음 대통령은 은어 같은 대통령이 될 것이다. 내가 부끄러운 것을 밝혀야 한다. 난감한 현실이지만 부끄러운 과거를 일거에 깔끔하게 정리하자”고 말했다.
다음 대통령에 대한 바람을 읽을 수 있는 대목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다음 대통령은 풍운아가 아니라 반듯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가끔 했다. 이런 바람으로 노 전 대통령은 한명숙 전 총리를 차기 대권주자로 눈여겨보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스트라이커는 나까지 하면 됐고, 단호하되 외유내강형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책에서 노 전 대통령이 유시민 전 장관에게 충고하는 장면도 눈길을 끈다. 노 전 대통령은 “활을 쏴보니 활대와 시위가 화살을 담아내는 탄력을 갖고 있더라. 활처럼 담아주어야 한다. 사람들과 관계 개선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친노-비노 갈등으로 서로를 담아주지 못하는 새정치연합이 새겨들을 말처럼 느껴진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저자가 참여정부 청와대의 제1부속실장이었던 만큼 참여정부 인사와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장면이 여럿 등장한다. 참여정부에서 비서실장과 민정수석을 역임한 문재인 새정치연합 당대표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2006년 5월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를 떠나는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과 환담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한 문 대표에게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 대신 영남 지역에서 기반을 마련하는 데 힘을 보태줄 것을 당부했다. 이 자리에서 노 전 대통령은 “정치를 하기 싫다고 하니 어쩔 수 없지만, 나는 정치를 그만두기 어려우니 관리를 해주세요. 인연이 그렇게 맺어진 걸 어떡합니까?”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주변 인사들에게 정치 참여를 적극 권했다. 지난 2006년 노 전 대통령은 “김경수(대통령비서실 연설기획비서관·진주출신)는 진주 가서 출마해라. 이미지가 좋지 않나? 문용욱(대통령 제1부속실 실장)은 곰처럼 음숭한 데가 있으니 나하고 봉하로 내려가고. 이호철(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 실장) 자네는 나랑 내려가서 내셔널트러스트를 하다가 부산에 출마하든지”라고 말했다.
# 반기문 총장과의 일화
반기문 UN 사무총장에 관한 일화도 등장한다. 반기문 당시 외교부 장관은 UN사무총장 후보다 보니 민감한 외교적 사안에 대응할 때 선택의 폭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았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외교 현안의 최대 문제였던 일본과의 역사 교과서 문제, 독도 문제에 대해서 강력 대응할 때마다 후보였던 반 총장이 마음에 걸렸다.
노 전 대통령은 반 총장에게 장관직을 떼어주는 것이 UN사무총장 선거운동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반 총장의 입장은 달랐다. 반 총장은 현직을 유지해야 유리하다며 경쟁 후보의 예를 들었다. 반 총장이 “다른 후보의 경우는 나라에서 밀어주려고 (외교부 장관이 아닌) 부총리로 올려주었더니 지지도가 오히려 떨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저는 특보 같은 자리가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하며 이야기를 끝맺었다. 노 전 대통령은 당당한 한일 외교를 위해서 불가피한 선택을 하려 했지만 반 총장의 UN사무총장 선거를 위해 포기했다는 것이다.
# 사임을 생각하다
책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사임을 두 번 생각했다. 첫 번째는 임기 시작 약 반년 만인 지난 2003년 10월 최도술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SK 자금 수수관련 일이 불거졌을 때였다. 참모진의 만류도 뿌리치고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재신임을 묻겠다고 했다. 이때 노 전 대통령은 사임까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언론을 비롯하여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재신임 제안’을 노무현 특유의 ‘정치적 승부수’로 해석했다. 하지만 그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실제로 자리에서 내려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재신임 제안은 탄핵과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압승을 지나며 수면 밑으로 내려갔다.
두 번째는 지난 2006년 11월에 여당인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합당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였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직에서 사임할 준비를 지시하기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의원들이 통합신당으로 빠져나가고 잔류 의원이 50여 명 정도 될 경우에는 대통령직에서 사임하겠다. 이를 위해 과도내각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라. 총리는 김우식 과학기술부총리와 전윤철 감사원장 가운데 누가 적당할지 판단해라”라고 지시했다. 또한 노 전 대통령은 “전에 임기 5년이 길다고 말한 적 있지요. 그때부터 임기를 4년만 채우고 마치는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열린우리당이 기회를 주지 않는 것 같아 그리하지 못했지요. 당 때문에라도 내가 이 자리에 버티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식물대통령입니다. 이제 더는 일을 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라며 “4년 임기가 차는 날 즈음해서 사임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임기를 4년으로 줄이면 다음 대통령은 90일 내로 취임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다음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 시기가 엇비슷해집니다. 내가 그렇게 타이밍을 조절하면 됩니다. 여당도 없는 대통령이 대통령 한다고 버티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1년이라는 세월을 국민들에게 돌려드려야지요”라고 말했다.
이병완 비서실장은 대통령을 만류했다. 이 실장은 “설사 당이 깨져 50명, 70명이 되더라도 그 사람들과 함께해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해야 맞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내가 누구를 위해서 종을 울리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4년으로 충분하다. 남은 1년 동안 할 수 있는 일도 없다”고 거절의 뜻을 분명히 했다. 계속되는 간청에 노 전 대통령은 일부 의견을 받아들였다. 노 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과의) 협상용으로 이야기하되, 협상이 안 되면 사임은 사실이 되는 것으로 합시다”라고 못 박았다.
하지만 APEC 정상회담 일정을 위한 순방 일정을 마치고 노 전 대통령의 마음은 더 확실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순방을 다녀오는 동안 마음이 변했다. 당 사람들과 협의해서 조건부로 추진하는 것이 싫다.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 정리를 하기로 결심했다. 6개월이면 충분하다.”
이호철 국정상황실장은 “역사의 패배다. 우리 참모들은 더 이상 한국에서 살지 못할 것입니다” 이병완 비서실장도 간청했다. “우리에게 더 시간을 주십시오.” 참모들의 반대와 만류가 본격화되었다. 결국 노 전 대통령도 뜻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 노무현 스스로에 대한 평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풍운아보다는 반듯한 사람이 다음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며 한명숙 전 총리를 눈여겨보았다고 한다. 사진제공=청와대
다음 대통령에 대한 바람을 읽을 수 있는 대목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다음 대통령은 풍운아가 아니라 반듯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가끔 했다. 이런 바람으로 노 전 대통령은 한명숙 전 총리를 차기 대권주자로 눈여겨보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스트라이커는 나까지 하면 됐고, 단호하되 외유내강형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책에서 노 전 대통령이 유시민 전 장관에게 충고하는 장면도 눈길을 끈다. 노 전 대통령은 “활을 쏴보니 활대와 시위가 화살을 담아내는 탄력을 갖고 있더라. 활처럼 담아주어야 한다. 사람들과 관계 개선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친노-비노 갈등으로 서로를 담아주지 못하는 새정치연합이 새겨들을 말처럼 느껴진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내 인생의 멘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제동 "이게 정치 얘기라고? 이건 코미디입니다" (0) | 2017.04.17 |
---|---|
지식인의 양심 문제에 관하여 - 교육에서 가르쳤으면 하는 것들..|_ (0) | 2016.08.11 |
한국 야구의 ‘살아있는 전설’ 양준혁 선수 (0) | 2015.03.18 |
제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서울대 경제학부 이준구교수) (0) | 2014.02.04 |
'노무현·제정구의 꿈' 민주당 김부겸 전 의원 (0) | 2014.0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