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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기록을 남긴 죄인!?

일취월장7 2016. 10. 12. 12:57

노무현, 대통령 기록을 남긴 죄인!?

2016.09.30 08:06:45


[프레시안 books] <대통령 기록 전쟁>

             
올해 초의 일이다. 작은 요양원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계신 엄마가 어느 날 얼굴이 벌게져서 집에 오셨다. 아니나 다를까, 요양원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시비가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 않은 말을 했다고 그러질 않나, 한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하지를 않나. 환장하겠어. 정말."

"뭘 그런 것 같고 그래. 엄마도 요새 깜빡깜빡하잖아?"

마음 같아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엄마 편을 들어주고 싶었지만 어쩐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엄마의 얼굴에 서운한 기색이 완연했지만 모른척했다. 객관적 근거는 없었고, 사람 사이에 오해는 늘 있는 법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한 번으로 그칠 줄 알았던 엄마의 푸념이 일주일 넘게 지속되었다. 모른 척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쌓여가는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한 엄마가 퇴사라는 대참사(엄마는 우리 집안의 실질적 가장이다)를 감행할 지경이었다.

나는 급히 수습에 나섰다. 사소하리라 여겼던 다툼은, 알고 보니 업무 관련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다행히 요양원은 매주 월요일 직원 전체 회의를 열었다. 시설장인 엄마는 때마다 꼼꼼히 회의록을 기록하고 있었다. 옳거니! 그거다 싶었다. 하지 않은 말은 기록되지 않았을 테고 한 말이라면 기록으로 남았을 테니, 회의록을 확인하면 될 것 아닌가.

모든 구성원의 발언과 합의 사항, 이견 등이 낱낱이 기록된 회의록은 조용할 날 없던 요양원에 안정과 질서를 안겨주었다. 모두 모여 회의록을 검토하면서 서로를 향한 인정과 사과가 몇 번 오갔다는 후문이다. 일단의 사건을 겪고 기록의 소중함을 깨달은 요양원 직원들은 아주 사소한 것까지 기록하기로 했다. 사람보다 기록을 신뢰하게 됐다고 엄마는 씁쓸해했지만, 나는 새삼 이 작은 소란에서 기록의 객관성과 공정성, 신뢰를 실감했다.

올해 초에 있었던 이 일을 우연히 상기한 건 아니다. 책 한 권을 읽었다. 기록에 관한 이야기다. 그것도 대통령 기록에 관한 이야기다. <대통령 기록 전쟁>(전진한 지음, 한티재 펴냄)엔 자신을 '기록 대통령'으로 불러 달라던 한 대통령의 역사가 담겨있다. 엄마의 요양원 사건으로 기록의 쓸모와 중요성을 이미 겪어본 바다. 하물며 국가의, 대통령의 기록이라는데 그 쓰임과 가치를 향한 기대감을 말해 뭣하랴. 

그런데 이 책, 참 지독하다. 책 제목에서 볼 수 있듯 대통령 기록의 역사는 가히 전쟁을 방불케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권위주의 정부에선 기대할 수 없었던 기록의 공적 생산과 보존을 전격 시행했다. 그는 이전 정부와는 기록물 숫자에서부터 차원이 다른 대통령 기록을 남겼다(18년 동안 집권했던 박정희 대통령 집권기의 경우, 5만2729건의 기록만 대통령기록관에 보존되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대통령 기록은 755만7118건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시작한 기록의 공적 생산과 보존은 기록을 통해 대한민국을 투명하고 신뢰받는 사회로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객관적 기록으로 국정 운영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지키고 역사의 평가를 받으려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그의 노력은 자신을 헤치는 결과를 낳고 만다. 그가 남긴 대통령 기록은 노무현 정부의 허물로 변해 정치적 공격의 대상이 됐다. '노무현, 대통령 기록을 남긴 죄.' <대통령 기록 전쟁>의 부제다. 역사에 마땅히 남겨야 할 기록을 남기고자 '대통령기록물법' 제정을 추진하고 기록 관리 분야의 개혁을 이뤄낸 죄였다. 그 많은 대통령 기록을 남겼던 것이 죄라면 죄였다. 기록이 없는 나라 대한민국을 기록하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상식적인 생각이 이토록 위험할 줄은 노무현 대통령 자신도, 개혁을 지켜보는 국민도 몰랐다.

참으로 지독하다. 이 책은 노무현 정부 이전 '아무것도 없는' 상태의 참담한 대통령 기록 문화를 적나라하게 써놓는가 하면, '정보 부존재'라는 답변을 일상적으로 내놓는 공공 기관의 부실한 기록 관리 실태를 가감 없이 폭로한다. 또한, 전 정권의 대통령 기록을 정치적 재료로만 쓰기 바쁜, 말 그대로 정치권의 지독한 행태에 관한 날 선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저자가 독한 마음을 먹지 않고서야 쓸 수 없는 과감한 평가와 고발, 분석이 책 곳곳에 도사렸다.

지독함이 어디 이뿐인가? 국가의 빈약한 기록 곳간을 채우려 기록 관리 및 정보 공개 제도 시스템을 집요하리만큼 개혁한 노무현 대통령의 의지와 "기록하지 못할 일은 하지 마라"던 그의 원칙도 그렇다. 자연히 <대통령 기록전쟁>을 읽는 독자도 지독해진다. 책을 따라가다 보면 기록을 부정하는 정치, 기록을 두려워하는 권력의 다른 이름이 투명하지 않은 정치, 책임지지 않는 권력임을 자명하게 깨닫게 된다. 책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어금니를 깨물었다. 내 속의 독한 것이 깨어나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 각성의 정체는 자각이었다. 그래, 나는 모든 권력의 시작인 민주 사회의 시민이었다. 

▲ <대통령 기록 전쟁>(전진한 지음, 한티재 펴냄). ⓒ한티재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지금 '기록으로 사건을 규명하지 못하는 나라'에 살고 있다. 기록이 부족하니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책임자를 찾아 사건을 소명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늘 원인 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비슷한 사건은 늘 반복되었고, 사건을 수습하는데 국가의 에너지를 소모해야만 했다. 나는 여기에 덧붙여 '기록을 없애며 사건을 만드는 나라'에 살고 있음을 실감한다.

세월호 사건만 해도 그렇다. 노무현 정부가 만든 '대규모 인명 피해 선박 사고 대응 매뉴얼'은 노무현 흔적 지우기에 급급했던 이명박 정부에 의해 유명무실해졌고, 결국 온 국민은 세월호 사건이라는 시대의 비극을 겪어야 했다. 의도적인 기록 삭제와 은폐는 진상 규명 과정에서도 있었다. 세월호 사건만큼 책임의 부재를 뼈아프게 실감한 일이 없다. 기록이 곧 책임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대통령 기록 전쟁>은 스스로 전문가가 아니라는 저자의 고백이 무색할 만큼 대통령 기록에 관한 깊고 방대한 성찰이 면면을 채운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다음 세대까지 왜곡 없이 이어지는 온전한 기록의 계승을 간곡히 호소한다. 차곡히 쌓이는 국가의 기록이 다음 정부의 국정 운영에 이롭게 쓰이기를 꿈꾼다.

좋은 기록은 책임 사회, 투명 사회, 신뢰 사회로 가는 이정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을 단순히 기록에 꽂혀 지난 15년간 현장을 뛰어다닌 저자의 눈물겨운 헌신으로만 읽어선 안 된다. 이 지독한 책에 쓰여 있는 전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책을 읽어 내려가며 각성한 내 안의 괴물, 권력을 창출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내년엔 대선이 있다. <대통령 기록 전쟁>을 읽은 독한 시민의 선전포고를 기다린다.



노무현은 기록 남긴 죄로 부관참시, MB는?

2016.10.12 11:05:16


[강양구의 친북] <대통령 기록 전쟁>

             
18년 동안 집권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고작 5만2729건의 대통령 기록을 남겼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0만3294건의 기록을 남겼죠. 그나마 이 기록의 대부분은 여기저기서 폼 잡고 찍은 사진과 대통령 결재 문서가 대부분입니다. 중요한 국정 의사 결정의 과정이 담긴 대통령 기록은 남아 있는 게 거의 없습니다.

이런 사정이니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0년 5월 광주의 발포 명령을 자기가 내리지 않았다고 우겨도 확인할 도리가 없습니다. 신군부에 부역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에 참여했던 김종인 의원이 도대체 무슨 발언을 하고, 어떤 일을 했는지도 알 도리가 없습니다. 만약 그런 자료가 남아 있었다면 김 의원이 야당의 총선 비상대책위원장을 할 수 있었을까요?

이런 상황이 답답했던 대통령이 있습니다. 그는 퇴임을 코앞에 두고 대통령기록물법(대통령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다음 정부가 아니라 자신에게 엄격한 잣대로 그 법을 적용했습니다. 그래서 재임 기간 그의 공과를 고스란히 담은 약 755만 건의 기록이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입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바로 그 '기록을 남긴 죄' 때문에 퇴임 후 모욕당하고, 비극적인 서거 이후에도 부관참시를 당했습니다. 도대체 대한민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대한민국 정보 공개 운동의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전진한 알권리연구소 소장이 직접 사관이 되어서 그 과정을 생생히 기록했습니다. 

'강양구의 친북'은 <대통령 기록 전쟁>(한티재 펴냄)를 놓고서 전진한 소장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다음은 10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시사통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인터뷰 전문입니다.



▲ 전진한 알권리연구소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노무현, 대통령 기록을 남긴 죄? 

강양구 : 한 권의 책을 놓고서 세상 읽기를 해보는 강양구의 친북입니다.

지난주 오항녕 전주대학교 교수가 펴낸 <호모 히스토리쿠스>(개마고원 펴냄)를 놓고서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 책에서 오항녕 교수는 역사를 "기록하고, 정리하고, 이야기하는 작업"이라고 정의했죠. 그런데 최근에 이와 관련해 굉장히 흥미로운 책 한 권이 나왔습니다. 한티재에서 펴낸 <대통령 기록 전쟁>입니다. 

부제가 눈길을 끕니다. "노무현, 대통령 기록을 남긴 죄." 사실 노무현 대통령의 공과는 앞으로 한국 현대사가 두고두고 곱씹을 대목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인 서거 때문에 그의 공과 과가 제대로 조명이 안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그의 가장 큰 공을 '기록을 남긴 것'으로 꼽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그렇게 기록을 남긴 것이 어떻게 죄가 되었는지, 이 책은 한국 사회의 기막힌 현실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전진한 알권리연구소 소장과 함께 그 이야기를 한 번 나눠보겠습니다. 전진한 소장은 2002년 참여연대에서 정보 공개 운동을 시작한 활동가로서 국내 정보 공개 운동의 산증인이라고 할 만한 분입니다.

전진한 소장님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십니까? 

전진한 : 네, 안녕하세요. 

강양구 : 참여연대, 투명 사회를 위한 정보 공개 센터, 그리고 지난해 출범한 알권리연구소 등에서 오랫동안 정보 공개 운동을 하셨습니다. 정보 공개 운동과 기록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전진한 : 제가 처음 정보 공개 운동을 할 때 힘들었던 게, 정보 공개 청구를 하거나 특정 기록을 요청하면 많은 공무원이 "그런 기록이 없다"고 했습니다. 당연히 있어야 하는 기록이 없다고 하니 황당하죠. 그래서 저희는 그 기록이 왜 없는가를 당신들이 증명하라고 소송을 건 적이 있어요. 아마 우리나라 처음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법원은 반대로 '해당 기록이 있음'을 저희보고 증명하라고 했습니다. 말이 안 되죠. 이런 판결을 보고 공무원들이 민감한 기록을 놓고 정보 공개 청구가 들어오면 '모른다' '기록이 없다'는 식으로 대응했어요. 10건 정도 청구하면 네댓 건은 없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보 공개 운동 자체가 불가능한 운동이 됩니다.

그래서 저희는 왜 국가 기록이 없어졌는지 조사해보기로 했어요. 기록 관리 전문가도 만나고, 공부도 했습니다. 

강양구 : 국가 기록이 왜 없는가를 확인하려다 기록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되셨군요?

전진한 : 네, 그렇습니다. 

강양구 : 그런데 이 책은 사실상 노무현 대통령에게 바친 책이라고도 읽혀요. 노 대통령께서 어떤 일을 하셨기에 정보 공개 운동을 이끌어 온 활동가가 이런 책을 내게 되었나요?

전진한 : 사실 저도 참여연대에 있을 때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하는 성명을 작성하거나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실제로 노 대통령이 공뿐만 아니라 과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노무현 대통령의 공을 이야기할 때 국가 기록 부문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대통령 본인의 재임 기간 기록을 모두 남겼고, 이 기록을 통해 노무현 정부의 공과를 역사의 평가 대상으로 올렸습니다. 해방 이후 한 번도 실현되지 않았던 일이죠.

그런데 놀랍게도 이처럼 큰 공을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는 악용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기록을 그의 흠을 잡는데 이용한 거죠. 저는 큰 쇼크를 받았습니다. 절대적으로 잘한 일이 이처럼 나쁜 평가를 받으며 악용된다는 데 수긍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노무현 대통령의 업적을 체계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결심해 약 1년간 이 책을 집필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기록 관련 업적을 놓고는 사실 잘했다, 못했다는 논란의 의미조차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전 대통령은 해당 기록을 남긴 적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이전 정부의 업적을 무엇을 근거로 평가해야 하느냐 할 때 난감한 순간이 많았습니다. 우리가 과거 대통령을 평가할 때, 좌우로 나뉘어 일방적인 칭찬을 하거나 일방적인 비난만 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가장 잘한 업적이 모욕으로 돌아오다 

강양구 : 저도 책을 보면서 많은 사람이 진실을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나씩 살펴보죠. 

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하고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에 반대하는 촛불 집회가 한창일 때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 지지도가 10%대로 떨어졌을 때죠. 뜬금없이 한 보수 언론(<중앙일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직 당시 작성한 기록을 봉하 마을로 들고 갔다'는 보도가 났죠. 어떻게 된 겁니까? 

전진한 : 사람들이 이런 보도를 보면 사실을 혼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엔 기록이 전부 종이 기록이었습니다. 그러니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작성한 기록을 봉하 마을로 가져갔다'는 보도를 보면, 엄청난 화물 박스를 대대적인 수송 작전을 통해서 옮겼다는 식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사건의 진실은 간단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지원시스템'이라는 국정 시스템을 통해 모든 기록을 전자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심지어 노 대통령은 이 기록 시스템을 설계하는 데도 참여해서 특허권자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전자 기록이 담긴 하드디스크 사본을 가져간 것뿐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 기간 기록을 만든 이유 가운데 하나가 자신이 만든 기록으로 자서전을 쓴다든가, 해당 기록을 퇴임 후에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어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재임 기간에 작성한 기록을 언제든지 볼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던 거예요. 

지리적 특성도 작용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 서울이 아니라 봉하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당시 대통령기록관은 경기도 성남에 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 열람권을 이용해 대통령 기록을 열람하려면, 전자 기록 사본을 가져가지 않는 한 봉하 마을에서 매번 성남으로 올라와야만 했던 것이죠. 

그럼,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의 기록물을 가져간 최초의 전직 대통령이냐? 그것도 아닙니다. 이전 정부에서는 전자 문서도 아닌 대통령 당시 기록을 퇴임 후 몽땅 들고 갔습니다.

강양구 : 김영삼 정부 때 청와대 행정관을 지낸 한 선배가 과거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사석에서 이야기한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김영삼 정부가 끝날 때 자기도 재직 기간 생산한 기록을 집으로 전부 가져갔다고 하더군요. 

전진한 : 네. 그렇게 집으로 가져가거나, 소각하거나, 파쇄기로 없앴죠.

강양구 : 네, 그 선배도 집으로 가져간 자료가 이사를 몇 번 하면서 없어졌다고 하더군요. (웃음) 

전진한 : 노 대통령 전에 기록 관리가 그렇게 한심했어요.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이전 대통령과 다르게 재임 기간 기록을 남겼죠. 당연히 노 대통령은 퇴임 후 그 자료를 이용할 궁리를 했겠죠. 그래서 성남으로 매번 가기가 힘드니까 퇴임 시 전자 열람 장치를 만들어줄 것을 국가기록원에 요청했었습니다. 

강양구 : 직접 성남에 가지 않더라도 봉하 마을에서 온라인으로 접속해 자료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거였군요? 

전진한 : 네. 그런데 국가기록원은 예산, 또 보안상의 문제로 어렵다는 입장이었어요.

노무현 대통령 측에 따르면, 법적 검토 후 대통령기록관과 협의해 전자 기록 사본을 가져가기로 합의했습니다. 전자 기록은 여러 부를 복사할 수 있으므로 원본 개념이 없습니다. 따라서 대통령기록관이 합법적 권한을 갖고 관리하는 자료를 진본이라고 하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열람을 위해 가져간 기록을 사본이라고 합니다. 

당시 언론을 다시 확인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원본을 가져갔다'는 식으로 보도한 언론사가 많습니다. '상왕 정치를 위해 가져갔다' '엄청난 비밀 기록을 일방적으로 가져갔다'는 식으로 보도했죠. 당시 저도 국가기록연구원이라는 사단법인에 있었는데, 저희도 상황이 어떤지 정확히 모르니 언론 보도만 보고 오해할 정도였어요. 

결국 나중에 검찰 조사 결과, 국가기록원에 없는 자료를 가져간 것도 아니었고, 해당 자료를 외부에 유출하지도 않았고, 오직 자서전을 쓰기 위해 사본을 가져갔음이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 국가기록원에서는 노무현 정부 당시 일한 비서관 10명을 대통령 기록물 유출죄로 고발했죠. 

강양구 :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국가기록원을 제대로 된 국가 기관으로 만든 분이 노무현 대통령인데요. 

전진한 : 그렇습니다. 2002년 당시 국가기록원 이름은 정부기록보존소였습니다. 장소의 의미가 컸죠. 그런데 노무현 정부가 기록 혁신 운동을 시작하면서 이 기관의 위상을 끌어올렸죠.

이전에는 2급, 3급 공무원이 소장을 지내던 곳이었는데, 노무현 정부 이후 1급 공무원이 원장을 맡게 되었죠.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 당시 100명 정도의 기관이었는데, 퇴임 때에는 300명 정도 기관으로 규모도 커졌습니다. 아마 노무현 정부에서 가장 예쁨을 많이 받은 기관일 겁니다. 그러나 퇴임과 동시에 노 대통령은 자신이 키운 기관으로부터 고발당했죠.

강양구 : 공무원이 아무리 영혼이 없는 존재라곤 하지만 말이죠.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많이 속상해했겠어요. 

전진한 : 충격을 많이 받으셨던 걸로 압니다. 

기록 관리 용어가 어렵습니다. 언론은 온갖 수사를 동원해 언론이 융단폭격을 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시민에게 전달되지 않으니 많이 답답한 상황이었죠. 노 전 대통령 퇴임과 동시에 그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던 업적이 가장 좋지 않은 모습으로 비쳤어요. 아마 당시 인간적 비애를 많이 느끼셨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국가정보원이 앞장서 비밀 자료 유출 

강양구 : 따지고 보면 그 사건이 노무현 대통령 모욕하기의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이 비극적으로 서거하셨고요. 

부관참시라고 해야 할까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뜬금없이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남북 정상 회담 당시 북방한계선(NLL)을 포기하는 발언을 했다는 의혹을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제기했죠. 김무성 당시 대표도 유세 도중 관련 내용을 낭독하는 등 별의별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남북 정상 회담 대화록은 1급 비밀이잖아요? 

전진한 : 우선 정문헌 의원에 관해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대통령기록물법을 만든 계기가 바로 이 분입니다. 정문헌 의원이 2005년 11월 22일, 최초로 예문춘추관법이라는 대통령 지정 기록물 제도가 들어있는 법안을 당시 야당 초선의원으로서 발의했어요. 기록학계에서 이 뉴스를 보고 다들 깜짝 놀랐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부터 제정된 대통령기록물법에서 대통령 지정 기록물을 15년간 비공개하도록 했다고 당시 새누리당이 엄청나게 비난했어요. 하지만 정문헌 의원이 발의한 법안 초안을 보면 100년, 발의안을 보면 50년간 비공개하도록 했어요. 그런데 이 분이 2012년부터 갑자기 대통령 지정 기록과 같은 중요한 기록을 폭로하는데 앞장섰어요.

어떤 나라든 정상 회담 대화록은 1급 비밀로 지정합니다. 1급 비밀이 뭐냐면, 간단히 말해 이 비밀을 깨면 협상 당사자 간 외교가 단절되거나 전쟁도 일어날 수 있는 기록입니다. 그래서 1급 비밀입니다. 이 기록은 국가정보원이 관리하고 보호해야 합니다. 국정원의 1차 임무가 1급 비밀 보호입니다. 

이처럼 중요한 기록이 오직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갑자기 2012년에 폭로되기 시작한 겁니다. 

강양구 : 그 사실만으로도 기막힌데, 대선 후에는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이 대놓고 세간에 1급 비밀 기록을 공개해버렸어요. 

전진한 : 네. 인터넷 방송에서 생중계하는 도중에 남북 정상 회담 대화록을 공개해버리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죠. 

강양구 : 정보 공개 활동가 입장으로선 정보가 공개되는 게 좋지 않나요? (웃음)

전진한 : 많은 분이 오해하시는데요. 제가 정보 공개 운동을 하는 이유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부패한 곳을 도려내고, 국가를 투명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1급 비밀 기록처럼 잘못하면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기록은 공개되어선 안 되죠. 2012년은 특히 남북 관계가 좋지 않았던 때입니다. 

해당 남북 정상 회담 대화록은 남북 합의하에 기록되었고, 향후에도 합의하에 공개키로 했습니다. 합의되지 않는다면 보통 25~30년 정도 후에야 대중에 공개됩니다. 그런데 작성한 지 5년도 되지 않은 기록을, 다른 어디도 아닌 국정원이 생방송 중에 공개했다는 건, 세계 역사적으로도 보기 힘든 일입니다. 

제가 정보 공개 활동가이지만, 이런 상황은 매우 부적절했기에 당시 저도 강하게 국정원장을 비판했습니다. 

강양구 : 결과적으로 대화록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은 없었어요.

전진한 : 네. 전혀 비굴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죠. 오직 선거에 이기고자 하는 욕망에 빠진 정치인들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되건 마구잡이 폭로를 해버린 거죠. 이런 기록을 폭로하는 순간, 북한, 중국, 심지어 미국과 같은 나라들에 '한국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외교 비밀을 폭로할 수 있다'는 신호를 주게 됩니다. 내밀한 협상은 못하게 되겠죠. 이는 결국 한국에 불이익으로 돌아옵니다. 

강양구 : 작년(2015년) 말 정부는 한일 협상을 통해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최종 합의안을 도출했다고 발표했어요.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전화 통화 내용을 공개하라는 요구를 놓고서 청와대는 정상 간 대화이므로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 경우는 어떤가요? 

전진한 : 그건 성격이 전혀 달라요. 왜냐하면, 일본이 먼저 정부 홈페이지에 통화 내용을 공개했어요. 외교 당사자인 일본이 공개했는데 한국이 공개를 마다할 까닭이 없죠. 더구나 아베 총리는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합니다. 일본 언론에 계속 협상 내용을 흘리죠. 소녀상을 이전하기로 했다든가, 나는 사과한 적 없다는 말을 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데 활용하죠. 

반면 한국의 여론은 어떻습니까? 위안부 할머니들이 동의하지 않았음에도 동의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또 일본이 자꾸 한국의 소녀상을 없애라고 밀어붙입니다. 당연히 여론이 안 좋죠. 이때 시민을 신뢰하는 정부라면, 해당 정보를 공개하고, 협조를 구해야죠.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한 쪽짜리 합의안만 공개하고, 계속 후속 조치를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강양구 : 위안부 협상의 진실은 얼마나 지나야 우리가 알게 될까요?

전진한 : 원칙적으로는 25년 이후여야 가능합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지금 관료 입을 통해 계속해서 세부 발언이 공개되거든요? 이 건도 아주 안 좋은 선례로 남을 거예요.

사초 실종 사건의 진실 

강양구 :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미궁에 빠진 것으로 알려진 사초(史草) 실종 사건은 어떤가요? 문재인 의원이 남북 정상 회담 대화록과 관련해 말이 하도 많으니 "공개해서 이야기하자"고 국가기록원에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대화록을 찾지 못해 논란이 커진 사건이죠. 

전진한 : '사초 실종 사건'이라고 명명하게 만드는 정치 언어가 참 재미있습니다. '실종'이라고 하니 마치 모든 책임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사초가 사라진 적이 없어요. 국정원에도 있고, 봉하 마을에서 회수한 이지원시스템의 사본에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화록 초본 삭제를 지시했다고 결론내리고 백종천 전 청와대 외교안보실장과 조명균 전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을 불구속 기소했다는 겁니다. 그러니 많은 분은 '뭔가 숨기려고 초본을 없앤 것 아니냐'고 의심했죠.

조선 시대에도 사초는 없앴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초초, 중초 등의 단계를 거쳐서 최종적으로 편찬된 자료예요. 사관이 상황에 따라서 급하게 기록한 사초를 여러 차례 편집해 최종 실록을 만듭니다. 이렇게 최종 실록을 만들면 사초를 어떻게 할까요? 물에 빨아서 그 종이를 재활용합니다. 그렇게 사초를 빨았던 곳이 세검정이에요. 물이 검게 변했다고 세검정이죠. 

강양구 : 사극을 보면 왕이 말하는 걸 밑에서 듣고 있는 사관이 기록합니다. 그게 사초인데, 초본은 당연히 마구 날려 썼으니 정리해야죠. 그 종이를 재활용하려고 다시 빨아서 썼다고요? 

전진한 : 그렇습니다. 당연히 사초는 사라지죠. 

현대로 돌아와서 이야기하더라도, 모든 정부는 속기록 초본을 없앱니다. 왜 없애느냐? 속기록에는 그 사람의 의도와 달리 잘못 쓰인 경우가 많습니다. 발언한 사람이 속기록을 회람한 후, 이를 편집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남북 정상 회담 대화록 초본을 보고 "이 발언은 내가 한 게 아니다" "이 발언은 당신들이 오해했다"는 식으로 지적하고 수정을 지시합니다.

자연히 초본은 없어지죠. 기록이 두 개가 남아선 안 되니까요. 조선 시대 사초 초본을 없앤 것과 같습니다. 제가 다른 공공 기관에도 전화를 다 돌려봤습니다. 속기록 초본 보관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다 없앤다고 합니다. 결재되지 않은 기록, 등록되지 않은 기록이기 때문에 보정하고, 상급자의 사인을 받은 후 초본은 다 없앤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초 실종 사건의 경우, (새누리당과 검찰이) NLL 논란이라는 드라마를 입힌 데다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은 항변할 수 없으니, 마치 수상한 일이 일어난 것처럼 만들어진 거죠.

강양구 : 남북 정상 회담 대화록 공개는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지만, 그런 대화록이 남은 것도 노무현 대통령의 노력 때문이었죠? 

전진한 : 맞아요. 노태우 정부 당시 '황태자'로 불린 박철언 씨의 자서전을 보면, 북한과 42번 만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 기록이 어디 있습니까? 아무 데도 없습니다. 남북이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가에 관한 기록이야말로 실종된 겁니다. 우리는 오직 박철언 씨 입만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기록을 남겨놓았기 때문에 주간지에 대화록 전문이 나가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바로 기록의 힘입니다. 

강양구 : 책을 읽으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이때 살아계셨다면 일목요연하게 전후 상황을 설명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전진한 : 대통령기록물법이 만들어진 시기가 2007년입니다. 대통령 지정 기록물 제도도 이때 만들어졌습니다. 대통령기록물법의 가장 중요한 내용이 기록물을 유출하거나 파기하면 최대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만든 부분입니다. 

1996년 12월 김영삼 정부에서 정보공개법을 제정했습니다. 그런데 시행을 언제 했느냐? (김대중 정부 집권기인) 1998년부터 시행했습니다. 본인이 법을 만들었지만, 본인에게는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보통 본인에게 껄끄러운 법안은 이런 식으로 만듭니다.

노무현 정부도 대통령기록물법을 2007년에 만들고 시행은 2008년부터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이러지 않았습니다. 내가 지키지 않는데 어떻게 다른 이보고 지키게 하느냐는 생각이 있었던 거죠. 이 법안을 그냥 강력하게 밀어붙였어요. 이처럼 단기간에 법을 만들어 스스로에게 시행한 정부 사례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 <대통령 기록 전쟁>(전진한 지음, 한티재 펴냄). ⓒ한티재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기록을 훼손하려는 의도를 가졌다면, NLL 포기 발언을 했고 이를 감출 목적이 있었다면, 상왕 정치를 위해 대통령 기록을 가져가려는 목적이 있었다면 대통령기록물법을 왜 만듭니까? 왜 기록물 자료를 국정원에 줍니까?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이런 일은 전부 접어두고, 마치 예전부터 대통령 기록이 있었던 것처럼 정치권에서 이야기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사초가 없어지는 게 말이 되느냐, 비도덕적인 일이다."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때 남긴 기록이 뭐가 있습니까?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부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야 기록을 조금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노무현 정부 전까지 한국 정부는 해방 이후 한 번도 대통령 기록을 제대로 만들지 않았다는 걸 명심하셔야 합니다. 

대단하다 이명박, 비밀 기록으로 돈벌이 

강양구 : 노무현 정부 이후를 보죠. 우리가 여태 이야기한 많은 일이 전부 이명박 정부 때 시작되었죠. 이명박 전 대통령도 퇴임했습니다. 기록을 제대로 남겼습니까?

전진한 : 1088만 건을 남겼다는 보도 자료를 냈죠. 

강양구 : 정말이요? 

전진한 : 기가 막혔습니다. 저희가 이 분 퇴임 1년 전에 정보 공개를 청구했는데, 대통령 기록물 80만 건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1년 만에 80만 건이 1088만 건으로 늘어난 거죠.

전자 기록 전문가들 말을 들어보니, 전자 기록은 한 줄로도 건수를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종이 기록은 철해서 보관하지만, 전자 기록은 그렇게 하지 못하죠. 그러니, 부풀리자면 얼마든지 부풀릴 수 있습니다. 

강양구 : 그러니까 A4 10장짜리 문서 파일을 A4 1장짜리 문서 파일로 쪼개면 10개가 되는 식으로요? (웃음) 

전진한 : 이 분 퇴임 후 저희가 이 분의 기록물을 면밀히 봤습니다. 정말 중요한 기록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비밀 기록이 0건입니다. 홈페이지에 남긴 기록 등만 있는데, 이런 자료가 엄청나게 부풀려져 건수로 잡혔습니다. 

강양구 :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비밀 기록을 전부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해버렸다고 하더군요.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전진한 : 비밀 기록은 일정 직급 이상의 공직자는 반드시 봐야 하는 기록입니다. 왜? 국가의 안위가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군사기밀보호법이라는 법이 있는데요, 이 법에 따라 군사 기밀로 분류된 자료는 군 장성이나 특수 분야에서 일하는 분은 모두 보셔야 합니다.

강양구 : 1급 비밀 자료는 1급 비밀 자료를 취급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거군요? 

전진한 : 네. '볼 수 있는' 자료가 아니라, '반드시 봐야 하는' 자료입니다. 봐야만 전임 정권이 어떤 발언을 했는지, 외교 상대방과 어떤 약속을 했는지 등에 관한 체계를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비밀 기록이 없다면, 전임 정권이 무슨 중요한 얘기를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새 정부는 모든 걸 처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정상 간 합의 사항이 어그러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위안부 협상과 관련해 박근혜 정부가 비밀 기록을 하나도 남겨놓지 않았다면, 아베 정부가 우리나라 다음 정부에 "우리 이런 합의했다"고 거짓말해도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는 겁니다. 

놀랍게도 이명박 대통령은 비밀 기록 전부를 대통령 지정 기록물로 묶었습니다. 그러면 15년간 후임 정부는 이를 못 봐요. 

(대통령 기록물은 일반-비밀-지정의 3단계로 분류된다. 비밀 기록물은 일반인에게는 공개하지 않지만, 차기 대통령과 국무총리, 해당 부처 장관이 볼 수 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회의록이나 국가 위기 대응 매뉴얼 등이 대표적인 비밀 기록물이다. 노무현 정부는 9700건의 비밀 기록물을 남겼다. 대통령 지정 기록물은 대통령기록물법에 따라 15년에서 30년까지 후임 정부도 볼 수 없도록 한 기록이다. 대통령 지정 기록물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동의하거나, 수사 기관이 압수 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강제 열람하지 않는 한 목록조차 볼 수 없다.) 

강양구 : 중요한 직책에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봐야 하는 기록물을 이명박 정부가 못 보게 해버린 거군요? 

전진한 : 네. 정말로 파렴치한 짓입니다. 말도 안 되는 짓입니다. 쉽게 말해 집을 판 후, 집 문서를 집 산 사람에게 주지 않고 자기가 가져가버린 겁니다. 박근혜 정부의 외교가 우왕좌왕한 이유의 하나로 이명박 정부가 비밀 기록을 남기지 않아서는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오죽하면 이혜훈 새누리당 의원도 "충격적"이라고 말했겠습니까?

강양구 : 정작 황당한 일이 또 있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작년(2015년)에 <대통령의 시간>(RHK 펴냄)이란 책을 냈는데, 이 책에 (일반인에게는 공개가 어려운) 비밀 기록 같은 내용이 잔뜩 들어갔다고 하더군요. 

전진한 : 네. 어느 날 아는 기자들이 저에게 전화해 이 책을 읽어봤느냐고 묻더군요. 이 책에 비밀 기록 같은 게 다수 수록됐다고요. 마지못해 읽어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비밀 기록은 일반인이 볼 수 없습니다. 외교상 대부분의 비밀 기록은 상대편의 발언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 중국 원자바오 전 총리 발언이 마구 수록되어 있습니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에 관한 평가 등 민감한 이야기가 수십 차례 인용되어 책에 공개되었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 북한에서 밀사가 내려온 적이 있는데, 이 사람의 발언도 고스란히 실렸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북한에 알려지면 그 사람은 엄청난 곤욕을 치를 수 있습니다. 이 책 때문에 밀사들이 정치적으로 엄청난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도 있습니다.

비밀 기록을 일반인에게는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명박 전 대통령은 아무런 명분도 없이 책에 이런 일을 버젓이 공개해놓은 겁니다. "이 기록을 누가 봤느냐"고 질문해도 묵묵부답이에요. 

저는 지금도 이 책을 왜 냈는지 모르겠어요. 이걸 공개해서 막힌 외교 관계를 풀었다든가, 남북 관계가 좋아졌다든가 하는 일이 있었나요? 책 팔렸다는 것 외엔 남은 게 없어요. 이처럼 민감한 정보가 대통령 퇴임 후 자꾸만 대중에게 버젓이 공개된다면, 한국이 외교 무대에서 왕따가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세월호 박근혜 7시간의 진실은 언제쯤? 

강양구 : 박근혜 대통령은 어떻습니까? 아직 재임 중이시라 평가하기가 조금 어렵긴 합니다만. 

전진한 : 박근혜 대통령도 기록에 관해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대표적인 게 서별관 회의입니다. 서별관이란 청와대 서쪽에 자리한 별관이죠. 말 그대로 서별관 회의록은 청와대에서 생산한 기록, 곧 대통령 기록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른 게 한진해운과 대우조선해양 부실입니다. 대우조선해양에 논란이 되는 4조2000억 원을 투입하는 결정이 서별관 회의에서 이뤄지지 않았습니까? 전 산업은행장이 폭로했죠. 국회의원들이 서별관 회의 속기록을 공개할 것을 당연히 요청했죠. 그런데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속기록 작성하지 않았다"고 말했어요.

충격적입니다. 사실이 아닐 거예요. 대통령기록법은 이런 회의 속기록을 모두 쓰도록 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4조2000억 원이라는 막대한 돈을 지원하는데 누가 찬성했고 누가 반대했으며 어떤 합의 과정이 있었느냐에 관한 기록을 남겨야죠. 지금 누가 찬성했느냐고 정부에 물어도 "모른다"고 해요. 4조2000억 원이라는 돈이 이런 식으로 집행되어도 됩니까?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관련 기록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전에 제가 <프레시안>에 썼습니다만, 경찰청장이라는 사람이 백남기 농민에게 물대포 직사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보고서를 없앴다고 합니다. 이건 없애도 되는 기록물이라고 합니다. 기록물관리법 어디에도 이런 기록물을 없애도 된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기록물 폐기 여부는 기록물평가심의회의 심의와 기록연구사의 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은 그냥 합니다. 자신들이 부도덕한 일을 했을 때 기록을 없애거나, 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을 자꾸 보면서 국가 시스템이 흔들린다는 걸 느낍니다. 걱정스럽습니다. 

강양구 : 시민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가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 7시간의 행적이에요. 이것도 정부는 대통령 지정 기록물로 지정해 나중에 공개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일러도 15년이 지나야 볼 수 있다는 거죠. 

전진한 : 대통령 지정 기록물 제도를 악용한 또 다른 사례죠. 대통령 지정 기록물은 퇴임이 목전일 때, 쉽게 말해 임기 말에 지정합니다. 그때 기록물을 검토하면서 '이 자료는 역사를 위해 15년 후에 공개하겠다'는 목적으로 만든 제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보 공개 청구를 하니 "앞으로 대통령 지정 기록물이 될 것이니 비공개"라는 식입니다. 이것부터 말이 안 됩니다. 

제가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3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갔습니다. "대통령이 구두로 지시했으니 기록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대통령이 말하는 건 전부 '대통령 말씀'으로 기록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청와대나 대통령비서실 문건을 보면 '대통령 말씀'이라는 자료가 발언 시간까지 기록됩니다. 이런 자료가 없으면 대통령이 실제로 말했는지 안했는지도 모르는데, 무슨 근거로 직원들에게 지시한단 말입니까?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소리입니다.

강양구 : 세월호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도 대통령 지정 기록이 되어버리면 우리는 한참 후에나 그 진실을 알 수 있겠네요? 

전진한 : 그렇습니다. 대통령 지정 기록은 당시에 자신이 말하지 못한 것, 그런 결정을 내린 이유 등을 후세에 알려주기 위해 만든 제도입니다. 그런데 민감한 현안에 관해 비공개를 목적으로 이 제도를 악용한다는 것이 참으로 개탄스럽습니다.

강양구 : 기록이나 제대로 남기실지도 의심되네요. 

전진한 : 예의주시해야죠.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비서관(현 민주당 의원)은 2013년 (최순실 씨의 전 남편인) 정윤회 씨의 국정 개입 의혹 문건을 유출한 죄로 검찰에 고발당했어요. 당시 청와대는 정윤회 씨의 국정 개입 의혹을 담은 문건을 두고 '찌라시'라고 했어요. 하지만 청와대는 "찌라시도 대통령 기록물"이라면서 조 전 비서관을 검찰에 고발했죠.

만일 이 사건에서 조 전 비서관이 기소됐다면 그 '찌라시'는 후대에 영원이 남겨야 할 대통령 기록물이 됩니다. 후세대는 이를 사실로 믿게 되죠. 그래서 당시 제가 <프레시안>에 "고발하더라도 논리에 맞게 해라"는 글을 썼습니다. 

"기록하지 못할 일은 하지 마라!" 

강양구 : 노무현 대통령 이후의 답답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현재 정치인 가운데 그나마 기록물 관리에 관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버금갈 만한 분이 보이십니까?

전진한 : 제가 지켜보는 분 가운데 한 분이 박원순 서울시장입니다. 박 시장께서 우리나라 최초로 지방자치단체에 기록물 관리 기관인 서울기록원을 만드는 사업을 시작하셨습니다. 원래 법으로는 17개 광역자치단체가 전부 만들어야 하는데, 그간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만들어지지 않았죠. 박원순 시장께서 첫 삽을 떠서 불광동에 공사를 진행하는 중입니다.

박원순 시장은 우리나라 최초로 정보공개정책과라는 부서를 신설했습니다. 보통 자치단체에서 정보 공개를 담당하는 분은 2~3명 정도입니다. 기록 관리 한 명, 정보 관리 한 명인 식이죠. 그런데 서울시에서 처음 정보공개정책과를 만들었을 때 담당 직원이 45명이었습니다.

나아가 박 시장은 많은 예산을 들여 정보소통광장이라는, 이틀 전 기록한 정보를 공개하거나, 목록을 공개하는 시스템에도 투자했습니다. 최근에는 세월호 관련 기록을 임시로 보관해 나중에 전시관이 생기면 돌려주기로 했죠. 

염태영 수원시장도 눈여겨 볼만 합니다. 

강양구 : 모든 면담 기록을 예전 사관이 기록하듯 녹취로 남기신다고요.

전진한 : 네. 시장 곁에 사관이 앉아있다는 건 아주 큰 의미를 지닙니다. 왜냐하면, 우선 로비를 못합니다. 자신의 모든 일정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건 상당한 자신감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염태영 시장의 시도는 매우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기록하지 못할 일은 하지 마라"고 했습니다. 말 그대로, 기록하지 못할 일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다른 지방자치단체장이나, 내년(2017년)에 대통령에 당선되실 분께서는 이런 정신을 이어받아 기록으로 평가받겠다는 자세를 가지셔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강양구 : 책을 덮으면서 혹시 내년(2017년)에 정권이 바뀐다면,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을 속 시원히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우리나라의 기록 관련 제도 중 개선해야 할 점 한 가지만 든다면 뭐가 있을까요? 

전진한 : 모든 대통령 기록이 비공개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은데, 대통령 기록의 상당수, 거의 80% 이상은 공개됩니다. 이 중 비밀 기록물이나 대통령 지정 기록물이 일반에 공개되지 않죠. 대통령 지정 기록물은 쉽게 말해 대통령이 퇴임 후 가져가는 기록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서랍에 넣어두거나, 자서전 쓸 때 사용하는 등의 기록이죠.

강양구 : 꼭 15년간 비공개하지 않아도 되죠? 그 전이라도 공개가 가능한가요?

전진한 : 그렇습니다. 15년이 안 되었는데 언론과 인터뷰에서 "그때 난 이렇게 했다"고 폭로하면, 지정은 해제됩니다. 대통령 지정 기록물은 철저히 대통령 본인과 관련된 기록입니다. 이런 기록은 보호해줘야 돼요. 대통령이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는 자리입니까. 매 순간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모든 대통령은 처음으로 이런 일을 합니다. 단임제니까요. 이때 15년 전 대통령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식으로 결정했는지 등에 관한 기록이 체계화하면 후임 대통령이 도움을 받을 수 있죠. 

저는 <조선왕조실록>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관련 책을 읽어보면, 왕의 고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고민을 체계화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대통령에게 고도의 냉정함이 요구될 때 기록된 전임 대통령의 판단은 큰 가치를 지닙니다. 

이 때문에 대통령 기록물 제도를 운용하는 미국은 단 한 번도 전임 대통령의 기록물을 보자고 하지 않았습니다. 어찌됐든 대통령 지정 기록물은 대통령끼리 함부로 공개하지 않는다는 서약이라도 했으면 좋겠어요. 

강양구 :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이 반복되어선 안 될 테니까요.

전진한 : 네. 우리가 이 비극을 생중계로 지켜봤지 않습니까? 당연히 다른 정치인은 '내가 기록을 남기면 나도 저런 일 당하겠다'고 생각하게 되죠.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과거 국보위 참여 논란 때문에 사과하지 않았습니까? 국보위가 1980년에 생겼거든요. 불과 36년 전 일입니다. 그런데 그때 김종인 의원이 어떤 발언을 했느냐에 관해 아무 기록이 없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 때 "나는 발포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하거든요? 미국 같으면 이런 발언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다 기록으로 남아 있으니까요. 이런 기록이 없으니 불과 20~30년 전의 일도 입증하지 못하는 겁니다. 기껏 청문회 불러봐야 "그 얘기 했죠?"하고 소리나 지를 뿐이죠. 

강양구 : 그러니 시민은 정부의 의사 결정을 믿지 못하고, 음모론이 횡행할 수밖에 없겠네요.

전진한 : 영화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을 보면, 놀랍게도 비행기 엔진이 꺼져 불시착하는 상황에, 불과 1~2분의 시간이 남은 그때 기장과 부기장이 매뉴얼을 꺼내 봅니다. 그리고 매뉴얼을 참고해 불시착 방법을 결정해 탑승객 전원의 생존을 이끕니다. 세월호 사건과 너무 크게 대비되더라고요. 이 사람들은 비행기에 탄 사람들을 살렸어요.

세월호는 두 시간 가까이 떠 있었어요. 이때에 대비한 수많은 매뉴얼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만들어놓았거든요. 청와대에 있었어야 돼요.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이걸 다 찢어서 각 부서로 보내버렸어요. 그러니 세월호 때 청와대는 우왕좌왕하고, 밑의 행정부서는 청와대만 지켜보고 가만히 있었죠. 한쪽은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기적을 낳았는데, 다른 한쪽은 죽어선 안 되는 사건이 엄청난 비극으로 커졌어요. 

기록은 결정적인 순간에, 국가가 큰 위기에 처했을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 책을 보시는 분은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지, 기록이 후세에 얼마나 중요한 밑거름이 되는지를 깨달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강양구 : 아까 언급하셨지만 노무현 대통령께서 평소 "기록하지 못할 일은 하지 마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고 합니다. 차마 기록하지 못할 일들이 버젓이 자행되는 지금이야말로 정치인, 공무원 또 우리들 각자가 한 번쯤 되새겨 볼 만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강양구의 친북은 대구에서 책을 펴내는 한티재 출판사에서 펴낸 <대통령 기록 전쟁>을 함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