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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도 읽은 바로 그 책! <시민을 위한 테크놀로지 가이드>

일취월장7 2017. 1. 12. 10:15

박근혜도 읽은 바로 그 책! 더 쉽게 읽는 방법은?

[프레시안 books] <시민을 위한 테크놀로지 가이드>
이대희 기자      
2017.01.12.

지난 10년간, 즉 이명박근혜 정부 기간 인터넷 패킷 감청 설비량이 예전보다 9배 증가했다. 이 설비가 어디에서 어떻게 쓰이는가는 (극소수 권력자를 제외하면) 아무도 모른다. 정부의 카카오톡 검열을 피해 텔레그램으로 둥지를 옮긴다 한들, 우리는 서버-클라이언트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서버는 지구적 독과점 상태다. 이미 인터넷이 극소수 기술 기업의 완전한 지배 아래에 놓였다. 우리가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발전하는 감청 기술 앞에 우리의 회피는 기껏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 신세라는 허망함이 드는 대목이다.  


올해가 기술 혁신의 해가 되리라는 이야기가 새해 벽두를 달군다. 4차 산업혁명기가 우리 생애에 닥쳤다. 업무가 중단된 박근혜 대통령마저 <제4차 산업혁명>(클라우스 슈밥 지음, 송경진 옮김, 새로운현재 펴냄)을 읽노라 밝혔다. 평소에는 책에 관심 있는지조차 몰랐던 그도 4차 산업혁명에 관심을 보인다는 이 선전은, 박 대통령이 여전히 업무 복귀 의지를 지닌다는 정치적 의미로 해석됐다. 기술이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테마가 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시민을 위한 테크놀로지 가이드>(이영준·임태훈·홍성욱 지음, 반비 펴냄)는 새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는 격변의 한가운데에 선 우리에게 기본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단순히 디지털 디스토피아를 예고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기술을, 즉 디지털 혁명을, 로봇을, 우리 문명을 다시 생각하게끔 한다. 인간이 여태 쌓아온 인문의 눈으로, 인문의 자세에서 기술을 생각하게끔 한다. 이 책이 제목에 '가이드'를 구태여 단 까닭이다. 인문학협동조합이 <한국일보>와 공동 기획한 프로젝트를 묶은 이 책은 기술 혁명기의 중세를 살아가는 소시민에게 생각의 틀거리를 제시한다.  

▲ 마이크로소프트의 새 증강현실 기기 홀로렌즈는 상용화를 앞뒀다. 영화에서나 보던 가상현실 기술이 별안간 당연한 우리 삶이 될 날이 머지 않았다. ⓒmicrosoft


세 저자는 각자의 업무에 충실히 임한다. 미술사 박사이자 사진비평가로서 기계비평 장르를 선보인 이영준은 우리의 현대 기술 문명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창을 만들고, 독자에게 그 창을 열어준다.  

그는 야구장에서 경기장 대신 지하 깊이 위치한 전기실에 흥미를 보인다. 실제 우리가 야구의 스펙터클을 즐기는 모든 힘은 전기에서 나온다. 3300볼트의 전기를 관리하는 잠실야구장 전기실은 조명을 키워 야간 경기를 가능케 한다. 경기의 모든 정보를 관객에게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전광판도 전기의 힘으로 작동한다. 우리는 전기의 힘을 빌려 야구장의 스펙터클을 더 생생히 즐긴다. 이영준은 이 대목에서 야구 경기를 '기계에 점령당한 신체를 되찾으려는 욕망'으로 재정의한다. 이영준은 수도처리장, 극장, 지하철 대합실, 패스트푸드점 등을 실제 방문해 이 기계 공간의 내막을 깊숙하게 들여다보고, 여기서 인간과 기계의 긴장을 인간의 언어로 다시 풀어낸다. 빌딩을 나무로 묘사해 우리가 관용적으로 표현하는 '빌딩 숲'의 의미를 문자 그대로 되살리는 대목은 짜릿함을 안긴다.  

적정기술연구소장인 홍성욱 한밭대학교 화학생명공학과 교수는 세계 각지에서 실제 적용되어 사람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의 오늘을 들여다본다. 모래 필터 정수 장치인 바이오샌드필터로 탄자니아 사람들의 식수난을 해결한 이야기, 우간다의 풍요로운 파피루스를 이용해 만든 천연 생리대가 저소득 여성에게 더 좋은 삶을 제공한 이야기가 소개된다. 풍요로운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삶의 조건인 전기가 부족해 일상을 고통에 보내야 하는 사람들에게 적정기술 제품이 어떤 변화를 이끌어냈는가를 소개하는 대목이다.  

적정기술이란 일종의 지속 가능한, 사람을 위해 지금 당장 필요한 기술 정도로 정의 가능하다. 단순히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자를 위한 기술만이 아니다. 당장 선진국 일본에서도 적정기술 제품인 휴대용 정수기 라이프스트로가 사용된 적 있다.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다. 쓰나미가 몰려오면 피해 지역은 즉시 오물과 물로 뒤범벅된다. 일주일 이내에 콜레라, 이질, 설사와 같은 수인성 전염병이 창궐한다. 긴박한 순간에 가장 필요한 기술이 어쩌면 적정기술 제품일 수 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한계를 모르고 질주하는 기술만이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 기술이 오롯이 인간을 위해 발전할 때, 인간과 기술의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함을 홍성욱은 여러 사례를 통해 독자에게 알려준다.  

이 책의 주제의식은 문학평론가로서 디지털 문명을 논하는 임태훈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융복합대학 기초학부 교수가 맡은 대목이 가장 선명히 드러낸다. 급진전하는 현대 디지털 기술의 현재를 보여주는 가운데, 이 '진보'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차분히 짚는다. 

임태훈의 글은 우리에게 반성을 촉구한다. 우리 삶을 바꾼 아이폰 혁명의 기저에는 열악한 노동 환경 아래 노동자들이 줄줄이 자살한 폭스콘의 현실이 있다. 신기술 폭발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반도체 생산에는, 그리하여 삼성전자의 깜짝 실적을 가능케 한 이 경이로운 기술 가속에는 콩고민주공화국의 광산에서 노예 노동으로 말라가는 소년 소녀의 비참한 삶이, 직업병 진단을 받지 못한 채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우리나라 노동자의 암울한 현실이 깔려 있다. 이는 이미 도래한 기술 낙원에서 우리가 매일 같이 접하는 현실이다. 임태훈은 이 대목에서 눈 감은 소비자로 전락할 것인지, 현실을 직시할 것인지 선택하라고 말한다. 

임태훈은 공유경제 붐에 관해서도 근본적 진단을 내린다. 에어비앤비나 우버가 대표적이다. 이 공유모델로 우리는 어차피 내가 놀리는 내 공간을 돈을 받고 임대한다. 언제나 달리던 길에 다른 이를 태우고 돈을 받는다. 인터넷에 기반한 공유경제는 직업이 사라지는 시대의 새로운 대안으로까지 거론된다. 하지만, 이 일에 누가 목맬까. 데이트 서비스나 하객 서비스를 생각하면 쉽다. 생활환경이 어려운 이가 공유경제에 관심을 더 보이기 마련이다. 내 삶의 가장 존엄한 가치인 나의 시간과 나의 공간, 나의 신체마저 자본화하는데 적극적인 사람은 그만큼 안정된 삶의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이일 가능성이 크다. 공유경제는 곧 디지털 세계로 침범해 결과적으로 우리 신체마저 잠식한 신자유주의의 다른 이름이라면 지나친 해석일까. 

이미 신기술 사회는 우리 앞에 성큼 다가섰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증강현실 신기술 제품 홀로렌즈(HoloLens)는 상용화를 눈앞에 뒀다. 올해 초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 쏠린 눈도 도래하지 않은 신화의 현현에 초점을 맞췄다. 낙원이 열릴 것만 같다. 하지만 가속도를 올리는 듯한 기술 질주의 현장은 우리에게 무력감을 안긴다. 남의 이야기, 그들의 이야기가 어느새 우리 비루한 삶을 속박해 버릴 것만 같다. 무력하게 이 놀라운 신세계의 파도에 휩쓸려 버릴 것인가, 아니면 인간을 위한 기술이란 무엇인가를 되짚어 볼 것인가. <시민을 위한 테크놀로지 가이드>는 지금, 바로 이 순간 우리 현실의 기술 진보를 이야기하고, 사람을 위한 기술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인문학적 성찰을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