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바로보기

“역사학자 90%좌파” 발언의 뿌리 - 국정화 지지 교수 “전공이 왜 궁금하죠?”

일취월장7 2015. 10. 30. 12:44

 

“역사학자 90%좌파” 발언의 뿌리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학계의 반발이 거세다. 정부는 ‘올바른 역사관 확립’을 내세우지만 그에 앞서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올바른 역사가 무엇인지 국가가 결정하겠다는 발상이 과연 올바른가?

천관율 기자  |  yul@sisain.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423호] 승인 2015.10.26  12:04:51

 

2006년 2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하 ‘재인식’)이라는 책이 세상에 나왔다. 식민지 시기와 해방 후를 다룬 논문 28편을 모은 초대형 프로젝트다.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출간 때부터 ‘뉴라이트의 현대사 교과서’로 불리며 논란을 일으켰다. 분량만 1500쪽에 이르는 전문 연구서이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보수층에서 “좌익의 역사 왜곡을 물리치기 위한” 필독서로 꼽힌다. 연세대 김철 교수(국문학)는 이 ‘재인식’의 편집자 4인 중 한 명이다.

2015년 9월21일, 연세대 인문·사회 분야 교수 132명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연세대 교수 성명’을 냈다. 성명서는 “국정화를 추진하는 것은 학계 다수의 해석을 부정하고 권력의 해석을 강요하려는 시도”라는 단호한 표현을 썼다. 132명 명단 중에 김철 교수가 있다. 그저 이름을 올린 정도가 아니라 준비 단계부터 움직인 것으로 알려졌다.

‘뉴라이트 교과서’의 편집자가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이름을 걸고 반대한다? 논란을 진영 대결(‘친일 독재 미화 교과서’ 대 ‘주체사상 찬양 교과서’)로 이해하면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다. ‘전향’이라도 한 걸까.

김철 교수는 학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전향’과 같은 표현을 납득하지 못한다. 애초에 ‘재인식’을 뉴라이트 교과서라고 부르는 이들에게도 단호히 항의하던 그다. 연세대 연구실에서 만난 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저 제자리에 서 있었는데, 2006년이나 지금이나 방향만 바뀐 채로 똑같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질문은 무엇이 ‘올바른 역사’인지 국가가 결정하도록 두어도 되느냐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10월12일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교과서 국정화 방안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장에는 “올바른 역사관 확립을 위한 교과서를 만들겠습니다”라는 문구가 걸려 있었다.  
ⓒ시사IN 신선영

10월12일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교과서 국정화 방안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장에는 “올바른 역사관 확립을 위한 교과서를 만들겠습니다”라는 문구가 걸려 있었다.

 

 

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여론 전선은 대체로 이념 지형을 따라 늘어서는 추세다. 진보는 교과서 국정화로 박근혜 정부가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를 만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버지 제사상에 올릴 교과서”라는 야유도 등장했다. 보수는 현재 교과서 대부분이 북한의 주체사상을 가르치는 등 친북 색채가 강하고, 대한민국의 성취를 제대로 소개하지 않는 자학사관에 빠져 있다고 주장한다.

난제가 있다. 진보 처지에서 보면, 국정 역사 교과서가 출판은커녕 집필진도 확정되지 않았다. 2017년 도입 목표를 맞추려면 부실 집필이 예상된다는 비판은 유력하지만, 내용 논란은 현 시점에서 넘겨짚기 이상의 의미를 갖기 힘들다. 역사 교과서가 보수적이면 미래 세대가 보수적이 된다는 암묵적인 전제도 깔려 있는데, 증명이 불가능한 가설 수준의 얘기다.

진보·보수 떠나 ‘국정화 논쟁’의 핵심 맥은…

보수의 처지에서 보면, 현행 교과서가 친북 색채가 강하다는 주장의 근거가 취약하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파상 공세를 펴는 ‘교과서 왜곡 사례’를 실제로 살펴보면 앞뒤 문맥을 잘라낸 자의적인 해석이 대부분이다(교과서에 주체사상? 실제로 살펴보니 참조). 보수도 ‘좌편향 교과서 때문에 청소년이 좌편향되고 있다’라는, 역시 검증 불가능한 주장에 기댄다. 생산적인 논의가 될 리 없는 구도다. “무엇이 ‘올바른 역사’인지 국가가 결정하도록 두어도 되느냐”라는 김철 교수의 질문은 그래서 시의적절하다. 넘겨짚기와 자의적 오독을 걸러내고도 교과서 국정화 논쟁의 핵심 맥을 짚는다.

‘올바른 교과서.’ 교육부가 내놓은 역사 국정교과서 공식 명칭이다. 10월12일 교과서 국정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교육부는 기자회견 제목을 “올바른 역사관 확립을 위한 교과서를 만들겠습니다”라고 뽑았다.

‘올바른 역사관’의 정의가 뭘까? 황우여 교육부 장관의 발표문을 보면, 크게 두 축이다. 첫째, 객관적 사실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둘째, 헌법 가치에 충실해야 한다. 교육부의 국정화 추진 보도자료도 비슷하다. “역사 교과서가 검정제 도입 이후 국민을 통합하고 헌법 가치인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건전한 국가관과 균형 있는 역사 인식을 기르는 데 기여하지 못했다” “각종 사실 오류와 편향성을 바로잡아 올바른 역사관을 확립하기 위한 교과서를 보급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지만 (검정제로는)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했다.”

정론처럼 보이지만 동어반복이다. 교육부의 논리에서는 ‘무엇이 객관적 사실인가’와 ‘헌법 가치에 맞는 역사 해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다시 남는다. 무엇이 올바른가를 판단할 권한을 결국 누군가는 갖게 된다. 교과서 국정화라는 발상은 ‘올바른 역사’가 무엇인지를 국가가 판단하겠다는 선언이다.

학문의 영역에서 ‘무엇이 올바른가’를 판단하는 방법은 이와는 정반대다. 경쟁하는 이론과 가설이 자유롭게 부딪치고, 사실과 논리에 따른 토론이 벌어지며, 학문공동체가 합의하는 정론이 등장한다. 국가의 개입은 ‘경쟁하는 이론과 가설’의 뿌리를 뽑아버리고 국가 공인 이론 하나만 남기기 때문에, 무엇이 올바른가를 판단하는 데 방해가 된다. 교육부가 ‘경쟁하는 가설이 있으면 병기하겠다’라고는 밝혔지만, 학문 공론장에서의 경쟁과 정부의 편집을 거친 병기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다른 분야 학자들도 ‘국정화’에 분노하는 이유

역사학계를 넘어 다른 분야의 학자들도 교과서 국정화 문제에 관심을 갖고 분노하는 대목이 여기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이근 교수(국제정치학)는 <경향신문> 칼럼에서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발상은 ‘무오류성’을 지향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기타큐슈 대학 이동준 교수(국제관계학)는 <한국일보> 칼럼에서 국정화를 밀어붙이는 정부의 태도를 ‘반(反)지성주의’로 규정했다.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자면서도 무엇이 올바른지에 대한 그 어떤 지적인 토론도 불허하겠다는 것이다. (…) 권력자들은 모든 쟁점에 대한 ‘정답’을 알고 있다는 듯 결정을 내린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현행 고교 한국사 검정교과서(위)에는 2013년 교육부가 내린 수정명령이 모두 반영된 상태다.  
ⓒ연합뉴스

현행 고교 한국사 검정교과서(위)에는 2013년 교육부가 내린 수정명령이 모두 반영된 상태다.

 

 

이 ‘정답을 알고 있다’는 태도를 박근혜 대통령이 정확히 보여주었다. 10월13일 박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올바른 역사 교육을 통해서 우리 아이들이 우리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고 올바른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과 자부심을 갖고 자라나도록 가르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바르다’는 표현이 한 문장에만 세 번 등장한다.

지식의 ‘정본’을 국가가 정할 수 있다는 발상을 누구보다 혐오했던 사상가가 있다. 보수 인사들이 사상적 원조로 즐겨 인용하는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다. 주저 <노예의 길>에서 하이에크는 전체주의 사회를 이렇게 야유한다. “사실과 이론은 당연히 ‘공식적 교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지식을 전파하는 모든 기관은 당국이 정한 결정이 올바르다는 믿음을 확산시킬 것이다. (…) 전체주의에서는 정치적 견해에 직접 영향을 주는 역사, 법, 경제학과 같은 학문에서 단지 공식 견해에 대한 옹호만이 유일하게 허용될 뿐이다. 이 분야에서는 진리의 탐색조차 불가능하며, 당국이 어떤 교리를 가르치고 출판할지 결정한다.” 하이에크의 눈에 국가가 지식의 ‘정본’을 정한다는 발상은 전체주의와 동의어였다.

김철 교수는 좌우 모두에 좌절한 경험이 있다. 2006년 ‘재인식’을 출간하면서 ‘뉴라이트 교과서’라는 동의할 수 없는 딱지 붙이기에 시달렸다. 2015년에는 교과서 국정화라는 퇴행을 지켜봐야 했다. “역사가 ‘이야기’라고 한다면, 자기가 원하는 버전의 이야기만 옳고 정본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진보·보수 양쪽에 다 있다. 한쪽은 무조건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 반대쪽은 또 무조건 ‘북한 찬양 교과서’…. 이건 학문적 대화가 아니다. 그냥 종교전쟁이다.”

국정교과서 집필 보이콧 선언이 역사학계에 번져 나가는 가운데,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이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근현대사는 역사가만이 아니라 정치사·경제사·사회·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분들을 초빙해서 구성할 것이다.” 정치학이나 경제학을 전공한 사회과학자들도 필진으로 참여시키겠다는 얘기다.

이 발언은 한국의 보수 블록이 역사학계를 보는 시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좀 더 노골적인 속내는 ‘재인식’ 2권 편집자 4인의 대담에서 드러난다. 이 대담에서, 지금은 고인이 된 성균관대 김일영 교수(정치외교학)는 “한국의 역사 연구와 서술에 스탈린주의적 편향이 아직도 남아 있다. 역사 연구가 현실 과제를 해결하는 전략·전술에 봉사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평가가 얼마나 적절한지를 떠나서, 이런 정서가 보수 블록에 폭넓게 퍼져 있다. ‘재인식’에 필진으로 참여한 연구자 28명 중 역사학 전공자는 열 명도 되지 않는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나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내놓은 “역사학자의 90%가 좌파다”와 같은 발언은 거친 데다가 사실도 아니지만, 뿌리를 더듬어 내려가 보면 이런 정서에 기대고 있다. 언론인 류근일씨는 10월13일자 <조선일보> 칼럼에서 특유의 노골적인 표현으로 “관련 학계와 연구자들 등 1만5000명이 그런 쪽(자학사관)으로 한 패거리가 돼 돌아가고 있다”라고 썼다. 보수 일각의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국정화란 비상시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극약처방이다. 다시 류근일 칼럼의 한 대목이다. “자율의 시장을 열었더니 자율을 파괴하는 세력이 그 공간을 독차지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 대목에서 ‘국정화를 지지하는 강경파’와 반대 블록의 결이 결정적으로 갈라진다. 한국 역사학계가 폐쇄적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에 동의하는 사람조차도 국정화 반대 전선에 설 수 있다. 국정화는 극약처방이 아니라 그 자체로 독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합리적이라는 평을 받는 보수 인사들에게는 “대안적인 검정교과서를 내실 있게 만들어서 보급하면 될 일을 왜 이렇게 무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자신이 지지하는 이야기를 정본으로 만들겠다는 종교전쟁에, 이번에는 국가가 직접 뛰어들었다.

 

 

국정화 지지 교수 “전공이 왜 궁금하죠?”

10월16일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지지하는 교수 모임’이 기자회견을 했다. 박근혜 정부와 직간접으로 관련 있는 인사들이 다수 성명에 참여했다. 그런데 이름만 공개되었고, 사전 동의 없이 명단에 포함된 이도 있었다.

전혜원 기자  |  woni@sisain.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424호] 승인 2015.10.29  03:19:34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밝힌 지 나흘 뒤인 10월16일.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지지하는 교수 모임’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부가 책임지고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한 것을 적극 환영한다”라는 내용이다. 기자회견 자리에는 나승일 서울대 교수(산업인력개발학, 전 교육부 차관), 양정호 성균관대 교수(교육학과), 김희규 신라대 교수(교육학과) 등 3명이 참여했다.

그런데 이 모임은 소속과 전공 없이 이름만 있는 명단을 공개했다. 소속과 전공이 표기된 명단이 없느냐는 <시사IN>의 질문에 모임 ‘창구’ 역할을 하는 양정호 교수의 반응은 이랬다. “굳이 소속하고 대학하고 그게 필요하세요? 관련돼 있는 대학과 전공이 왜 필요한지 제가 이해가 안 된다는 거죠, 기본적으로.” 그러면서 형평성을 문제 삼았다. “반대하시는 분들도 본인들 이름만 명시를 했지 세부 전공이나 과나 이런 것들은 없으시던데?” 교수들이 소속과 전공 단위로 국정화 반대 성명을 내는 상황에서 사실과 동떨어진 주장을 했다.

양정호 교수는 참여 명단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늘어나면 그때그때 공개하겠다며 “만약 어떤 시점에 그게(소속과 전공이) 그렇게 중요하다 싶으면 그때 가서 필요한 부분에 해당되는 걸 발표하거나 안내할 수는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인원수는 공개를 거부했다. 나승일 교수도 “명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지금은 비공개하기로 했다. 알려진 분은 알려진 분대로 있기 때문에, 조만간 적당할 때 하자 이렇게 얘기가 됐다”라고 말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지지하는 교수 모임’의 양정호·나승일·김희규 교수(왼쪽부터). 이들은 국정화 지지 교수들의 소속과 전공을 밝히지 않았다.  
ⓒ연합뉴스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지지하는 교수 모임’의 양정호·나승일·김희규 교수(왼쪽부터). 이들은 국정화 지지 교수들의 소속과 전공을 밝히지 않았다.

 

 

명단에 오른 이들의 세부 정보를 공개하지 않다 보니 추정이 등장했다. 정청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은 성명에 참여한 102명에 대해 전수조사를 실시했다며 “6명의 국사 전공 교수를 찾아낼 수 있었으나 그 외에는 교육 전공도 아닌 경제학과, 신학과, 정치학과, 건축학과 교수 등이 성명 발표에 동참했다. 정치적 인사도 다수 참여했다”라고 밝혔다. 조사 자료를 요청하자 의원실 관계자는 “전화로 일일이 확인해본 것은 아니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추정한 자료라는 점에 유의해달라”는 단서를 달았다. <시사IN>은 의원실로부터 해당 명단을 받아 주요 인사에게 확인을 시도했다.

박근혜 정부와 직간접으로 관련 있는 인사들이 다수 성명에 참여했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정책기구였던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산하 행복교육추진단이 눈에 띈다. 행복교육추진단장을 맡았고 인수위에서 교육과학분과 간사로 참여하며 박근혜 후보의 교육 공약을 성안한 곽병선 현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이 대표적이다. 곽병선 이사장은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후임 하마평에도 오르내리고 있다.

나승일 교수 역시 추진위원 출신으로 지난해 8월까지 박근혜 정부 첫 교육부 차관을 지냈다(국정화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재춘 전 차관도 추진위원 출신이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정부에 교육 관련 조언을 해오고 있는 양정호 교수도 추진위원으로 일했다. 양 교수는 지난 7월15일 출범한 사회부총리 사회정책자문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희규 신라대 교수(교육학과)도 추진위원 출신이다. 추진위원 출신으로 역시 성명에 참여한 홍성심 충남대 교수(영문학과)는 역사학 전공이 아닌 분들도 많이 참여하신 것 같다는 질문에 “우리나라의 근대사에 대해서 국민 누구든지 의견이 있는 거 아닌가요?”라고 말했다.

박근혜 후보가 위원장을 맡은 대선 당시 새누리당 선대위 ‘100% 대한민국대통합위원회’ 위원 출신 김용직 성신여대 교수(정치외교학과)도 이번 교과서 국정화를 지지한 것으로 보인다. 김용직 교수는 교과서포럼이 낸 <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집필진 중 한 명이다. <시사IN>은 성명에 참여한 취지를 묻기 위해 전화했지만 김용직 교수는 “사회에는 다양한 생각이 있다. 반대도, 찬성도 있을 수 있다”라고 말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현 정부 청와대 이력이 있는 인사도 성명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참여자 중 ‘송광용’이라는 이름이 있는데, 임명 3개월 만에, 그것도 박근혜 대통령 외국 순방 직전 사표를 냈다가 뒤늦게 고등교육법 위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은 사실이 드러난 송광용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전 서울교대 총장, 서울교대 초등교육과 교수)이 아니냐는 추측이다. 송광용 전 수석은 1999년부터 2013년까지 정수장학회 이사를 지냈다. <시사IN>은 송 전 수석에게 전화와 메일로 여러 차례 접촉을 시도했지만 “수업 중”이라며 전화를 끊은 뒤로는 답을 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이전 정부 인사도 참여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3월에서 2009년 7월까지 영부인을 보좌하는 청와대 제2부속실 실장을 지낸 박명순 경인여대 교수(유아교육과)다. 박명순 교수는 “교육학을 연구하는 분들 모임에서 취지를 얘기하길래 참여했다. 모임 이름은 내가 대표가 아니라 말하기 곤란하다”라고 말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2013년 1월6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 당선자가 곽병선 교수를 인수위 교육과학분과위원으로 임명했다(위). 박근혜 후보의 교육 공약을 성안한 곽 교수는 국정화 지지 교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연합뉴스

2013년 1월6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 당선자가 곽병선 교수를 인수위 교육과학분과위원으로 임명했다(위). 박근혜 후보의 교육 공약을 성안한 곽 교수는 국정화 지지 교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 외에 경북 구미에서 한나라당(새누리당) 16~18대 국회의원을 지낸 ‘친박’ 정치인 김성조 한국체대 총장, 한나라당 수석전문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는 곽창신 세종대 대외부총장 겸 교육대학원장 등 새누리당 관련 활동 이력이 있는 인사들이 참여했다. 행정학을 전공한 곽창신 대외부총장은 “역사학자가 과거사나 제대로 알지 현대사는 자신 있나? 난 원래 행정학 선생인데, 고시공부 하느라 <한국사신론>이나 <한국통사> 같은 책을 최소 열 번씩은 읽은 사람이다. 고등학교까지는 분란 있는 건 빼고 양쪽이 딱 하나로 합의해서 가르쳐야 한다”라고 말했다.

‘교학사 교과서’ 지지 교수들이 ‘국정화’도 지지

교학사 교과서를 지지한다고 밝혔던 이들도 이번 국정화 지지에 다수 참여했다. 지난해 3월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학중앙연구원 교학처장에 임명돼 ‘뉴라이트 편향 인사’ 논란이 일었던 정영순 교수(한국 근현대사·북한사, 현재는 연구처장)가 대표적이다. 정영순 교수는 <시대정신> 2013년 가을호에 강규형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와 함께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파동과 한국 좌파의 퇴행성’이라는 글을 쓴 교학사 교과서 지지자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인 이명희 공주대 교수,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등과 함께 현행 교과서 편향 사례 분석(자유경제원)에 참여한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정치학)와 정경희 영산대 교수(자유전공학부, 서양사 전공)도 국정화 지지 성명에 참여했다. 양동안 명예교수는 <대한민국 건국사> 저자로 오랫동안 1948년 건국과 이승만 건국 대통령 기념을 주장해온 인물이다. 정경희 교수는 2013년 10월 저서 <한국사 교과서 어떻게 편향되었나>에서 교과서 편향의 연원을 ‘민중사관’으로 지목했다.

황우여 부총리가 9월15일 서울 모처에서 김재춘 교육부 차관,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을 배석시켜 만난 역사학자 7명 가운데 한 명이자 국정교과서 필진 후보로 거론되는 신형식 이화여대 명예교수(사학과, 한국고대사 전공)는 국정화를 지지하지만 사전 동의 없이 명단에 포함됐다고 <뉴스타파>에 말했다. 신형식 명예교수는 교학사 교과서 사태가 한창이던 2013년 9월 ‘역사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 성명에 김정배 현 국사편찬위원장, 이배용 현 한국학중앙연구원장, 이인호 현 KBS 이사장 등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 이 성명은 교학사 교과서에 대해 “완벽한 것은 아니나 교육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는 없다고 판단된다”라면서 옹호했다.

뉴라이트 학자들과 일부 개신교 인사도 참여

세 번째 키워드는 뉴라이트다. 류석춘 연세대 교수(사회학과), 이주천 원광대 교수(사학과, 서양사 전공)는 뉴라이트전국연합의 공동대표를 맡은 경력이 있다. 류석춘 교수는 한나라당 참정치운동본부 공동본부장, 18대 대통령후보 경선관리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고, 교과서포럼 준비위원회 간부도 맡았다. 현재 연세대 이승만연구원 원장이며 박정희대통령 기념재단 이사로 있는 대표적인 뉴라이트 성향 학자다. 류 교수는 ‘올바른 역사가 뭔지 국가가 결정하는 건 자유민주주의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에 “그런 기사를 쓰고 싶으면 그렇게 쓰라”고 말했다.

이주천 교수는 5·18 북한군 개입설을 수차례 주장한 바 있다. 이주천 교수는 교과서에서 5·18을 어떻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묻자 “의혹 제기는 성인 개인의 의견이다. 조사나 연구는 해야겠지만 미성년자에게는 5·18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뒤집혀서 혜택을 받고 있다고 사실대로 가르치면 된다”라고 말했다. 역사학자로서 사실 선택을 국가가 해도 되느냐는 질문에는 “그래서 한시적이라는 거다. 시간이 지나면 검정으로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대북전단보내기국민연합 대표로 활동하는 최우원 부산대 교수(위)도 ‘국정화 지지’ 의사를 밝혔다.  
ⓒ연합뉴스

대북전단보내기국민연합 대표로 활동하는 최우원 부산대 교수(위)도 ‘국정화 지지’ 의사를 밝혔다.

 

 

성명에는 개신교 인사도 다수 참여했다. 개신교 인터넷 매체 <뉴스앤조이>는 서울신학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박명수 소장, 총신대 신학대학원 박용규 교수, 이은선 안양대 교수(기독교문화학과), 백종구 서울기독대 교수(신학과) 등 4명이 성명에 참여했다고 보도했다. 4명 모두 교회사를 전공했다. 이 중 박명수 소장과 이은선 교수가 활동하는 한국기독교역사교과서공동대책위는 교육부 집필 기준이 종교 편향적이라며 “기독교를 공정하게 서술할 것”을 주장하는 단체다.

역시 서명 참여 인사로 거론되는 유병진 명지대 총장(국제통상학)은 한국창조과학회 창립 25주년 축사에서 한국창조과학회가 “참된 진리의 해석자이며 선포자로서 부름받았고, 지금까지 그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시사IN>은 명지대에 참여 여부 확인을 요청했지만 답변이 오지 않았다.

지지 모임에는 1997년 소설 ‘우리 시대의 가장 위험한 농담에 대하여’로 등단한 작가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영상문학 전공)도 있다. 남정욱 교수는 ‘종북·반미·반국가 성향의 전교조를 교육 현장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책 <빠이 전교조>를 썼다. 최근 <조선일보>에 ‘‘헬조선’은 불평분자들 마음속에’라는 제목의 칼럼을 쓰기도 했다. <시사IN>은 메일을 통해 취재를 요청했지만 남정욱 교수는 “국정화 관련해서는 할 얘기가 정말 많지만 머릿속에서 ‘악의적 편집’이라는 단어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지지 선언을 했던 분들 중에서 ‘역사 전공자’에게 답변의 기회를 넘기고 싶다”라고 답했다.

이 지지 모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개표 조작으로 당선되었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를 찾아오라는 과제를 내 논란이 된 최우원 부산대 교수(철학과, 프랑스철학 전공)도 참여했다. 최우원 교수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지금 교과서는 교학사를 제외하면 종북 교과서다. 교학사 교과서도 솔직히 불만족스럽다”라고 말했다. “김일성은 가짜인 게 밝혀졌고, 광주 5·18도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북괴 특수군이 투입돼 일으킨 내란 폭동이라는 게 지만원의 시스템클럽, 뉴스타운에 사진으로 다 드러났는데 왜 사실대로 가르치지 않느냐. 박정희·이승만 전 대통령이 독재자인 것처럼 가르친 빨갱이들은 총살시켜야 한다”라는 게 최 교수의 주장이다.

 

 

국정교과서가 역사교사에게 줄 모멸감

다양성 교육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를 수행해야 하는 주체가 교사라는 사실은 잊는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도 마찬가지다.

  조회수 : 929  |  안순억 (성남 운중초등학교 교감)  |  webmaster@sisain.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424호] 승인 2015.10.30  02:04:18

늦은 밤까지 환한 교실이 자꾸 늘어난다. 요즘 아이들 문제로 맘고생이 심한 이 선생님 교실도 그중 하나다. 메신저가 살아 있는 것을 보고 뻔한 공치사 쪽지 하나를 날린다. “반 아이들이 많이 좋아졌어요. 힘내세요. 선생님.” 박 선생님은 몇 아이를 마주할 때마다 겁이 난다. 무기력하고 반항적인 아이는 작은 지적만 해도 땅이 꺼지는 한숨부터 쉬며 “휴~ 알았다고요”로 말을 받는다. 김 선생님은 교사들마다 골머리를 앓는 ‘소문난 아이’를 지켜보다 교사로서 한번 승부를 걸겠다며 담임을 자청했다. 그 덕에 아이는 눈에 띄게 좋아지는데 선생님은 자꾸 야위어간다. 감정의 기 싸움으로 팽팽했던 시간이 지나고 모두가 돌아간 교실에서 선생님들은 가만가만 한숨을 내쉰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사람들의 감정노동이 위험수위를 넘나든다. 불평등과 모멸감이 일상화된 불신사회는 서로가 서로에게 비수를 겨눈다. 더욱이 강제력이 없는 도덕적·교육적 권위는 그야말로 수시로 깨지는 질그릇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박해성 그림</font></div>  
ⓒ박해성 그림

많은 이들이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교육을 통탄하고 교사들의 철밥통을 질시한다. 충분히 공감할 만한 얘기다. 하지만 학교와 교육, 교사를 한꺼번에 싸잡는 비난은 위험하다. 대한민국 교사들은 전문가로서의 권위와 힘을 키워갈 기회를 박탈당한 불행한 존재다. 가르치는 자로서 가장 기본인,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평가할 것인지를 결정할 권리가 없다. 정부와 교육관청에서 바라보는 교사는 계몽 대상이거나 지침의 수행자이지, 교육 영혼과 철학을 지닌 전문가가 아니다.

우리 교육의 지향을 이야기할 때 입시 중심 교육의 획일성을 벗어난 자율성과 다양성, 창의성, 융합 교육과 역량 중심 교육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정작 그것을 수행해야 하는 주체가 교사라는 사실은 잊는 듯하다. 그들의 생각, 조건과 역량이 어떤 상태인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지침이 내려가면 교사는 각본대로 이를 수행할 것이고 따라서 학생은 그렇게 성장할 거라고 믿고 싶은 막연한 기대만 넘칠 뿐이다.  

이번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이런 위험한 인식의 한 극점을 보여준다. 역사 교사 90% 이상이 국정교과서에 반대한다. 정치인이나 학자의 분노나 상처보다 역사 교사들의 마음에 생길 생채기는 훨씬 더 깊고 처절할 것이다. 동의할 수 없는 ‘국정교과서’를 들고, ‘눈 딱 감고’ 수능과 시험 대비 역사 수업을 진행할 때마다, 90% 교사들이 느낄 모멸감과 자괴감을 상상하면 자꾸 침이 마른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때 장학사였다. 비상대책팀의 일원으로 급파되어 단원고등학교에서 두 달여를 살았다. 이백몇십 명 아이와 선생님의 장례를 치렀다. 사람의 목숨을 아무렇지도 않게 앗아가는 기업의 탐욕, 방관한 정부와 국가의 무능, ‘가만히 있게’ 했던 한국 교육과 사회제도와 문화에 대한 칼끝 같은 분노로 매일매일 바르르 떨었다. 그러나 극단의 ‘인페르노’ 공간에서도 희망 한 자락은 있는 법이다. 내게는 ‘선생님’이었다. 선박직 승무원 100%, 일반인 승객 69%가 살았지만, 승선한 선생님들은 열네 명 가운데 단 두 명만이 살아남았다.

선생님들만은 끝까지 아이들 곁을 지켰다

선생님 대부분은 탈출하기 쉬운 위층에 있었지만 배가 기울자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대부분 배 아래쪽에서 시신이 수습되었다. 생존 학생들이 증언하는 선생님들의 마지막 모습은 차마 글로 담을 수 없다. 누군가는 본능적으로 살려고 뛰쳐나올 때, 교사들은 본능적으로 아이들을 살리겠다고 달려 내려갔다. ‘교육적 관계’의 최고는 아이들을 살리는 일이다. 삶과 죽음의 찰나에 내리는 섬광 같은 선택은 모든 관계의 집약적 표현이다. 기업과 국가는 사람을 버렸고, 선장과 승무원은 승객들을 버렸지만, 선생님들만은 끝까지 아이들 곁을 지켰다.

교육의 힘은 끝내는 교사의 힘이다. 아무리 못마땅해도 교사의 교육적 권위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판단과 선택의 권한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눈치를 살펴 미리 자기 검열하지 않고 역사에 대한, 삶과 가치에 대한 철학과 생각을 마음껏 언급하고 가르칠 수 있도록 믿어주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 교육의 고질병인 획일성을 극복하는 가장 쉽고 빠른 길이다. 선생님을 믿지 않는 나라에 교육은 없다.

 

 

국정화 교과서가 수능부담 줄인다?

2017학년도 수능부터 한국사가 필수과목으로 전환된다. 국정화 찬성론자들은 이를 국정화 필요성의 근거로 들기도 한다. 국정 역사 교과서 한 개로 배우는 게 학습 부담을 줄일 거라는 얘기다. 과연 그럴까?

전혜원 기자

현재 고등학교 2학년이 치를 2017학년도 수학능력시험부터 한국사가 필수과목으로 전환된다(9개 등급 절대평가, 국정교과서 적용은 2020년부터). 국정화 찬성론자들은 이를 국정화 필요성의 근거로 들기도 한다. “지금처럼 교과서가 많은 상황에서는 수능 보기도 어려운 점이 있다”라는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한 개 교과서로 배우면 그것만 보면 되니 학생들의 학습 부담이 줄어든다는 논리다.

수능이 민감한 문제인 만큼 이 논리는 여론을 자극하기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최근 강은희 새누리당 의원이 연 세미나에서 양정호 성균관대 교수(교육학과)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3.3%가 국정교과서로 수능 부담이 감소할 것이라고 답했다고 밝혔다. 감소하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은 22.4%였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복불복 교과서보다 국정이 낫다는 여론이 많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국정화로 학습 부담이 줄어든다거나 수능이 더 쉬워진다는 주장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고 지적한다.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유기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이 지난 9월 전국역사교사모임 소속 현직 역사 교사 10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국정화 뒤 수능 난이도에 대해 ‘차이가 없다’는 의견이 49.7%로 가장 많았고, ‘더 어려워진다’는 의견도 45.9%에 달했다. ‘현재보다 수월해진다’는 의견은 4.4%에 그쳤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10월14일 전병헌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최근 5년간 수능 국사·한국사 평균점수 등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10월14일 전병헌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최근 5년간 수능 국사·한국사 평균점수 등을 공개했다.

 

 

데이터 분석 결과 검정제 전환 이후 수능 쉬워져

국정화와 수능 난이도의 관계에 대해 직접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도 나왔다. 전병헌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최근 5년간 연도별 수능 국사 및 한국사 평균점수와 최고표준점수(최고 점수와 평균점수 간 차이)를 분석한 결과를 10월14일 공개했다. 시험이 어려울수록 평균 점수는 낮아지는 한편 최고표준점수는 높아진다. 전 의원에 따르면 국정 국사 교과서로 치른 2011~2013학년도 수능에서는 평균점수가 20점대 초반, 최고표준점수가 70점대 초반이었다. 검정제 전환 이후인 2014~2015학년도에는 평균점수가 29점대로 높아졌고, 최고표준점수는 60점대로 줄었다. 검정제 전환 이후 수능이 쉬워졌다는 의미다.

전병헌 의원은 “검정교과서가 여러 종일 경우 교과서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만 문제를 내게 되지만, 교과서가 단 1종으로 통일될 경우 극도로 지엽적인 부분에서까지 출제가 되어 난이도가 급상승하게 된다. 이는 지금까지 국정교과서 체제와 검정교과서 체제로 치러본 수능점수 분석 자료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사실이다”라고 지적했다.

‘수능 부담 완화론’ 외에 교과서마다 기술이 달라 혼란을 겪는다는 주장(새누리당이나 국사편찬위원회는 주로 구석기 시대 시작 시점이 교과서마다 다르다는 것을 예로 든다) 역시, 학설이 갈리는 문제 자체가 출제될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군색한 논리다. 다른 수능 필수과목인 국어·영어·수학 교과서는 검정이나 인정으로 발행되고 있다는 점도 필수과목-국정화 연계 주장의 반론으로 등장한다.

 

 

주체사상 가르치는 금성 교과서 뜯어보기

새누리당은 국사 교과서와 관련해 아이들이 김일성 주체사상을 배운다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또한 현행 교과서가 좌편향되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교과서에 어떤 내용이 실려 있는지 교과서 논란의 핵심을 짚어보았다.

전혜원 기자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 새누리당이 여의도에 내건 현수막 내용이다.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현행 교과서가 좌편향됐다며 “친북 사상을 퍼뜨리는 숙주”라고 했다. 반면 야당은 정부·여당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목적을 ‘친일·독재 미화’로 규정했다. 실제로 교과서에 어떤 내용이 실려 있는지, 양쪽 주장이 어디서 갈리는지 논란의 핵심을 짚었다.

교과서에서 주체사상을 가르치나?

현재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 모두 주체사상을 싣고 있다. 보수색이 짙은 교학사 교과서도 비중 있게 다룬다. 북한이 김일성 독재 체제를 확립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다. 비판적인 맥락으로 쓰지 않은 교과서는 하나도 없다. 이는 ‘북한 사회의 변화와 오늘날의 실상’을 살펴보라는 2009년 교육과정 개정과, ‘분단 이후 북한의 변화 과정을 서술’하라는 교과서 집필 기준에 따른 것이다. 이들 교과서에는 적용되지 않았지만, 9월에 발표된 2015년 교육과정 개정은 아예 북한의 변화와 관련된 학습 요소로 ‘주체사상과 세습 체제’를 명시했다.

 

 

   
 

 


6·25 전쟁의 책임이 남북한 모두에게 있는 것처럼 가르친다?보수가 주체사상을 가르친다며 가장 많이 언급하는 교과서는 금성출판사판 407쪽 ‘더 알아보기-주체사상의 성립과 그 역할’(<그림 1>)이다. 이는 ‘북한, 세습 체제를 구축하다’라는 단원의 ‘김일성 유일 지배 체제의 성립’이라는 소주제에 딸린 자료다. “그러나 주체사상은 ‘김일성주의’로 천명되면서 반대파를 숙청하는 구실 및 북한 주민을 통제하고 동원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라는 문장이 있다. 이 문장을 포함한 대목 전체가 2013년 11월 교육부가 내린 수정명령을 반영해 2014년 1월 교육부의 최종 승인을 받은 내용이다.

논란이 되는 대목은 미래엔 317쪽 ‘탐구 활동’에 실린 역사학자 김성칠의 증언(<그림 2>)이다. 이 자료 중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동기로 본다면 인민공화국이나 대한민국이나 조금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들은 피차에 서로 남침과 북벌을 위하여 그 가냘픈 주먹을 들먹이고 있지 아니하였는가.” 교육부는 이 자료가 6·25 전쟁의 책임이 남북 모두에게 있다고 오해할 소지가 있으므로 북한의 남침을 직접 보여주는 자료로 교체할 것을 명령했다. 현재 미래엔 교과서는 이 자료를 ‘북한군의 전투 명령’으로 대체했다.

교육부가 문제 삼는 문장 바로 뒤에 “인민공화국에서의 끊임없는 남침의 기획과 선전은 이미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고 또, 이미 실천을 통하여 분명히 되고 말았으니 더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라는 표현이 있다. 남한에도 전쟁을 부르짖은 이들이 있었음을 증언하는 내용도 이어진다. 집필자인 한철호 동국대 교수(역사교육과)는 “다시는 이 땅에서 전쟁이라는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실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바로 앞쪽에 김일성과 스탈린이 남침을 논의하는 사료가 이미 실려 있어서 ‘오해할 소지’도 크지 않다. 한국전쟁에 대해 남침이라 쓰지 않은 교과서는 하나도 없다.

 

 

   
 

 

 

현행 8종 교과서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아닌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쓴 교과서는 하나도 없다. 집필 기준이 그랬다. ‘2009년 교육과정 개정’에 따른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집필 기준을 보면, “8·15 광복 이후 전개된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을 파악한다”라고 되어 있다.

 

북한은 국가 수립, 남한은 정부 수립으로 가르친다는 건 무슨 얘긴가?

오히려 교육부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건국’이라 표현하지 않도록 수정을 권고한 적이 있다. ‘교학사’ 교과서는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건국의 출발을 하게 되었다”(307쪽)라고 쓴 채 2013년 8월 검정을 통과했다. 이에 대해 2013년 10월 교육부는 “대한민국은 제헌 헌법에도 명시하고 있듯이 3·1운동 결과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여 수립되었음. 따라서 건국이란 용어는 적절하지 않음. 집필 기준 등에 의거하여 ‘건국’이 아닌 ‘정부 수립’ 등으로 수정 필요”라고 권고했다.

그런 교육부의 방침이 바뀌었다. 10월2일 교육부는 “북한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수립’, 남한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서술하여, 마치 북한은 ‘국가’를 수립하고 남한은 온전한 국가가 아닌 ‘정부’를 수립했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9월 발표된 2015년 교육과정 개정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모두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바꿨다. ‘정부 수립’에서 ‘건국’으로 한 발짝 이동한 셈이다.

건국이 언제인가를 두고 현재 두 가지 해석이 대립하고 있다. 헌법 전문에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라고 되어 있는 만큼 대한민국이 세워진 시점은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이라는 관점이 하나다. 다른 하나는 1948년 8월15일을 ‘건국일’로 명확히 해야 북한에 대한 남한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관점이다. 대체로 전자가 진보, 후자가 보수의 주장으로 논란이 계속돼왔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2013년 9월 ‘고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 협의회’가 교육부의 수정 권고나 지시에 따르지 않겠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가졌다.  
ⓒ연합뉴스
2013년 9월 ‘고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 협의회’가 교육부의 수정 권고나 지시에 따르지 않겠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가졌다.

 


현재 교과서는 교육부가 2013년 11월 내린 수정명령을 반영해 2014년 1월 최종 승인을 받은 버전이다. ‘교학사’ 교과서가 오류가 너무 많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교육부는 2013년 10월 ‘교학사’ 251건을 포함해 검정을 통과한 8종 교과서 서술 829건에 대해 수정·보완을 권고했고, 이에 따라 발행사가 제출한 수정·보완 내용 중 41건에 대해 수정명령을 내렸다. 일부 저자들이 수정을 받아들이지 않자 교과서 발행사들이 저자 동의 없이 교육부 명령에 따랐다. 그해 12월 교학사, 리베르스쿨을 제외한 6개 출판사(금성출판사, 두산동아, 미래엔, 비상교육, 지학사, 천재교육) 집필진 11명이 33건 수정명령 취소 청구 소송을 냈다.

 

수정명령을 내려도 집필진이 소송을 하면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교육부가 호소하는데?

집필진은 수정명령이 적법하지도 정당하지도 않다고 주장한다. ‘수정명령이 실질적인 내용 변경을 가져오는 경우에는 심의에 준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 이번 수정명령은 기간도 짧고 심의 과정도 투명하지 않아 절차를 거쳤다고 보기 어려우며, 내용도 사실상 특정 관점을 강제해 재량을 일탈한다는 주장이다. 미래엔 집필에 참여한 원고 한철호 동국대 교수는 “8개월 검정 과정에서 전혀 문제 삼지 않았던 부분을, 교학사 교과서가 문제가 되니까 전체 교과서를 일괄해 수정명령을 내렸다. 심의에 누가 참여했는지도 공개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1, 2심 재판부는 절차와 내용 모두 교육부의 재량권 안에 있다고 봤다. 10월1일 집필진은 대법원에 상고했다.

교육부는 집필진이 소송을 반복하는 것이 검정제의 ‘근본적인 한계’라며 국정화의 논거로 든다. 그러나 소송 제기는 시민의 권리다. 집필진이 대법원에서도 패소하면 교육부의 수정명령은 그대로 인정된다. 집필진이 승소한다면 수정명령이 부당했다고 사법부가 확인하는 것이 된다. 국정화 도입이 필요한 이유와는 관련이 없다.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인데, 교육부의 수정명령을 따르는 편이 낫지 않나?

교육부가 수정명령을 내린 내용을 보면 “오해할 소지가 있으므로”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북한 토지개혁의 한계를 ‘무상 몰수, 무상 분배’라고만 하지 말고 좀 더 상세히 서술하라는 요구(<그림 3>)가 대표적이다. 교과서의 특수성을 감안한 인식이다. 하지만 특정 사관을 강제하거나 사상 검증 성격이 있는 요구 등(“김일성이 활동한 동북항일연군 분량이 많다” “북한에 대한 부정적 서술을 추가하라” “북한 인권 문제를 사례를 들어 상세히 써라”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의 주체를 명확히 하라”)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이 혼재돼 있다.

 

   
 

 

기존에 문제 삼지 않은 대목을 거론하며 국정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수정명령에서는 문제 삼지 않은 ‘보천보 전투’ 대목(두산동아 247쪽)을 국정화 논란 과정에서 뒤늦게 문제 삼았다. 교육부는 “‘보천보 전투’에 대해 신문 호외와 함께 ‘김일성 이름도 국내에 알려졌다’는 등의 서술을 해 북한의 김일성 우상화를 위한 ‘보천보 전투’ 확대·과장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라고 색깔론을 제기했다. ‘이름이 알려졌다’라는 사실 기술을 ‘김일성 우상화’라는 가치판단과 뒤섞어버렸다.금성출판사 407쪽 ‘더 알아보기-주체사상의 성립과 그 역할’의 경우, 수정 전부터도 “1970년대 이후 주체사상은 ‘김일성주의’로 천명되면서 김일성 유일 지배 체제의 사상적 바탕이 되었다”라는 서술이 포함되어 있었다. “북한 학계의 주장에 따르면, 주체사상은~”이라는 표현은 “북한 학계에서는 주체사상을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라고 수정했다.

 

 

10년 전과 확 달라진 대통령의 역사인식

김동인 기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주도해온 이들의 말 바꾸기가 화제다. 가장 극단적으로 바뀐 이는 교과서 주무부처인 교육부의 김재춘 차관이다. 김 차관은 과거 민주주의 발전에 따라 교과서 발행 제도가 국정-검인정-자유발행 순서로 발전해 나간다고 주장했다. 2004년 ‘교과서 자유발행제의 의미 탐색’ 논문에서는 주요 과목의 교과서가 약한 정도의 자유발행제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고, 2011년 ‘개정 교육과정 및 교과 교육과정에 따른 교과용도서 구분 연구’에서는 인정제도의 확대를 주장했다. 학자로서 쌓아올린 연구 실적을 단번에 뒤집는 선택을 내린 것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박근혜 대통령은 2005년 “어떠한 경우든 역사에 관한 것은 정권이 재단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은 2005년 “어떠한 경우든 역사에 관한 것은 정권이 재단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한 바 있다.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은 40년간 고수해온 원칙을 바꿨다. 유신 정권이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기 직전인 1973년, 김 위원장은 <동아일보>에 “소수 저자에 의한 교과서는 독단에 빠질 위험이 있다”라고 기고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10월12일 기자회견에서 “나는 1970년대에 검인정을 외쳤다. 그러나 역사학의 이념 문제가 논란이 되는 걸 보며 일단 숨을 고른다는 차원에서라도 통합 교과서를 채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라며 직접 변화의 이유를 설명했다.

새누리당 정책 연구기관인 여의도연구원은 2013년 11월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과 해법’이라는 정책 리포트를 통해 “국정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권위주의 내지 독재국가다. 우리나라도 검정제로 발행한 교과서가 국정제로 만든 교과서보다 질적 수준이 제고되었다”라고 평가했다. 이 리포트는 특히 ‘국정제의 단점’으로 “특정 정권의 치적을 미화할 수 있으며, 역사 교육의 국가주의적 편향이 심화될 수 있음”을 지적했는데, 이는 지금 새누리당의 당론과는 정반대되는 견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대통령의 변화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 시절이던 2005년 1월19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역사에 관한 일은 역사학자가 판단해야 한다. 어떠한 경우든 역사에 관한 것은 정권이 재단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당시 노무현 정부가 한·일협정 문서를 공개한 것에 대한 일침이었다. 그러나 10년 후, 박 대통령은 당시 자신의 말과 정반대로 행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