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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시행령 정치', 박정희 '계엄령 정치'와 똑같다" - 원칙과 신뢰요? 그때그때 달라요

일취월장7 2015. 11. 3. 13:00

"박근혜 '시행령 정치', 박정희 '계엄령 정치'와 똑같다"

[국민참여를 통한 세월호 진상규명] 안병욱·박인규 대담
서어리 기자 2015.11.02 09:50:19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국민이 울었다. 위정자도 눈물을 보였다. 그러나 애도는 짧았다. 어느 순간부터 참사 희생자 가족들에 대한 차별과 폄훼만이 넘쳐났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참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고 원인이 정부에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현재 현재진행형인 '2차 참사'의 책임 소재는 확실하다. 정부다. 진상 규명을 하겠다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를 정부는 시행령으로, 돈으로 꽁꽁 묶고 있다. '특조위' 위상은 점점 추락하고, 어느새 진상 규명에 대한 기대마저 희미해지고 있다.

정부는 그저 덮기에 급급하다. 과거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위원장을 지냈으며, 현재 4.16연대 진상규명 국민참여 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는 안병욱 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는 박근혜 정부의 계속된 은폐 작업이 '2차 재앙'을 일으키고 있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부터 메르스 사태까지, 정부는 언제나 '2차 참사'의 주역을 자처하고 있다.

안 교수는 박근혜 정부가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 날이 곧 오리라 경고했다. 진실은 언젠간 밝혀진다. 이는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그는 "뒤늦게 과오가 드러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선, 차제에 정부가 지원해서 진상 규명 작업을 와야 한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와 특조위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를 논하기 위해, 안 위원장과 더불어 박인규 <프레시안> 이사장, 황상규 4.16연대 진상규명 국민참여 특별위원회 정책실장이 만났다. 다음은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4.16연대 사무실에서 진행된 대담 내용이다.


 

▲안병욱 4.16연대 진상규명 국민참여 특별위원장. ⓒ프레시안(최형락)


"박근혜 정부의 진실 은폐 수법, 지구 상 최고"

박인규 : 세월호 특조위가 본격 가동되고 있다지만 걱정부터 드는 게 사실이다. 조사가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이다. 자칫 유야무야 넘어가서 진실이 덮이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국민이 많다.

안병욱 : 지난해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두 번 다시 우리 사회에 이런 참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진상 규명을 해야 한다는 데 거의 모든 사람이 공감했다. 대통령은 눈물까지 흘리면서 동조했다. 그런데 그 눈물은 마치 악어의 눈물 같았다. 눈물을 흘린 후로 1년 6개월여 동안 정부는 이 일을 어떻게 덮을 것인가에만 골몰하는 것 같았다.

특조위에 대한 태도가 대표적이다. 특별법을 만드는 동안 정부 집권 여당은 끊임없이 방해했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누더기라 할지라도 특별법을 만들었지만, 이후 특별법보다 실질적인 영향력이 큰 시행령 카드를 꺼내놓고 공방을 벌였다. 그렇게 3개월 시간을 끈 다음, 이젠 예산을 안 주겠다고 한다. 특조위가 가진 게 권한과 예산인데, 권한은 특별법 본법과 시행령에서 다 빼버리고, 두 번째로 중요한 예산은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8월에나 지급했다. 특별법 통과 10개월 만이었다. 그런데 그나마도 반 토막짜리였다.

어느 문명사회에서 이렇게 기가 막힌 정부 조사기구가 탄생할 수 있는가. 그 점에서 보면, 박근혜 정부의 진실 은폐 수법은 지구 상 최고라고 본다.

박인규 : 자칫 특조위가 '진상 은폐위원회'가 되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될 동안 야당은 무력한 모습을 보였다.

안병욱 : 물론 야당도 나름대로 열심히 싸웠고, 노력했다. 그런데, 현재 우리 사회는 다수결 원칙을 따르고 있다. 한 명이라도 많은 사람 쪽의 의견이 관철된다. 특히 정치권이 그렇다. 옛날 독재 체제에서는 힘을 쥐고 있는 권력자가 다수를 억압했다면, 형식적으로 민주주의 체제가 갖춰진 지금은 다수가 권력을 갖고 그 수를 내세워 밀어붙인다. 세월호 참사 이후 보인 정부 여당 행태가 그러하다.

야당으로서는 문자 그대로 '중과부적(衆寡不敵)', 적은 쪽은 많은 쪽을 이기지 못한다. 독재 시대에는 아무리 독재자가 다수를 억압해도 학생들과 같은 소수 저항세력이 송곳 같은 날카로움으로 다수의 벽을 뚫고 들어갔는데, 지금은 불가능하다. 이렇게 불가능한 구조가 된 것은 <프레시안> 같은 소수 몇몇 언론을 제외한 다수 수구 언론이 송곳이 뚫고 들어갈 수 없도록 스펀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담론의 무력화는 근래 우리가 목격하는 한국 사회의 현상이다.

 


 

▲박인규 <프레시안> 이사장. ⓒ프레시안(최형락)


"특조위, 세월호 참사 책임자들에게 면죄부 주게 될 수도"

박인규 : 황상규 실장은 특조위 준비단에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안에서 본 특조위는 어땠나.

황상규 : 특조위는 위원 17명의 결의로 돌아가는 합의제 행정기관이다.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위원들이 회의에서 결의를 하면 그대로 시행이 되어야 하는데, 그 체계가 무너진 게 뼈아팠다.

그 원인은 정부에 있다. 돈을 가진 기재부가 특조위를 좌지우지한다. 기재부에서 사인을 늦게 해주면 직원들이 월급도 못 받는다. 회의도 준비해야 하고 출장도 가야 하는데 예산을 지급하지 않아서 처음엔 위원장 개인 카드로 먼저 썼다. 특조위 본래 위상 자체는 강한데, 정부 태도 때문에 조직이 형해화되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담당 공무원들도 결국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여당 의원의 '세금 도둑' 발언은 일종의 지침이었다. 협조하지 말고 계속 업무를 지연시키라는 거다. 그때부터 해수부 공무원들도 시간을 끌었다. 원래 현판식 예정 일자가 1월 중순이었지만, 결국 8월에서야 출범했다.

그리고, 조사 인력도 충분치 않다. 제가 특조위를 나오게 된 계기이기도 한데, 직원 수가 예상보다 줄었다. 특별법 모법에서는 원래 특조위 직원이 120명으로 잡아놨는데, 시행령에서는 90명만 우선 뽑고 나중에 다시 120명으로 증원하도록 했다.

박인규 : 특조위가 조사 활동을 하려면 정부에 협조 요청할 일이 많을 텐데, 앞으로도 난항이 예상된다.

황상규 : 인력이 부족해서 빨리 진척이 되고 있진 않지만, 현재 조사에 들어간 게 10개 정도 되는데, 그나마도 지원을 제대로 못 받고 있는 상황이다.

현장 조사를 가려고 해도, 처음엔 선체 조사를 못 하게 했다. 그러다가 특조위가 몇 번 항의를 하니 시혜를 베풀 듯 바지선에 한 번 올라갈 수 있게 한다든지 그런 식이다. 나중엔 해수부가 선체 조사 가능 여부를 중국 업체한테 떠넘겼다.

선체 조사야말로 핵심 조사다. 그리고 사실 해수부 동의도 필요치 않다. 해수부가 사고 책임자에 해당하지 않나. 그런데도 그들한테 허락을 맡아야 하는 게 아이러니하다.

 


 

ⓒ프레시안(최형락)


박인규 : 특조위가 정부 상대하는 일도 버거운데, 조직 내부에서도 갈등이 크다. 합의제 기구 성격 자체에서 생기는 문제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안병욱 : 가장 큰 우려는 특조위가 자칫 사고 책임자나 정부에 면죄부를 주기 위한 기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진상 규명을 위해 특조위에 몸담은 이들은 그런 이들에 맞서느라 갈등이 클 거라고 본다.

위원회가 여야나 대법원 등에서 사람을 파견하는 합의제로 운영되는 경우, 파견된 사람들은 자신이 원래 소속된 집단의 주장을 대변하는 일만 하게 돼 있다. 결코 토론 과정에서 좋은 결론을 끌어낼 수 없다. 차라리 지금 국무회의 시스템처럼, 집권 여당이든 누군가가 맡아서 위원회를 구성하고 그에 따른 결과물 등에 대해서도 확실히 책임지는 편이 낫다고 본다. 권한과 함께 책임을 함께 주는 것이다.

뭔가를 해야 하는 입장은 힘들다. 못 하게 반대하고 막는 건 쉽다. 반대하는 사람이 두 명만 되어도 일을 제대로 추진할 수 없다. 특조위는 뭔가 성과를 내야하는 집단이다. 그런데 여당 추천이 5명이다. 그렇게 반대파가 많으면 아무리 대통령이라고 해도 위원회를 이끌지 못한다.

"특조위 활동 기한, 총선 결과에 달렸다"

박인규 : 특조위가 조사 신청을 받고 있다. 유가족과 4.16연대가 생각하는 핵심 조사 항목이 무엇인가.

▲황상규 4.16연대 진상규명 국민참여 특별위원회 정책실장. ⓒ프레시안(최형락)

황상규
: 참사 원인 규명이 제일 중요하다. 침몰 원인, 구조 실패 원인 등이다. 또 책임 소재를 밝혀내는 게 중요하다. 그 과정에는 정치적인 책임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도 관건이다. 이게 큰 축이고, 국정원이 세월호를 관리했다는 의혹이라든지 그런 부분도 해명할 과제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선 이미 특조위 측에 조사 요청이 들어갔다. 특조위가 직권조사도 할 수도 있지만, 여당 쪽 위원들이 위원장이 독단적으로 결정한다고 불만을 표출하다 보니, 조사 항목 정하는 게 쉽지 않다.

안병욱 : 4.16연대가 9월에 세월호 인양 대안 마련 82개 과제를 발표했다. 그런데 그걸 몽땅 갖다 주면 특조위에서는 막연히 처리할 가능성이 있어서 시간을 두고 하나씩 제안을 하고 있다.

박인규 : 활동 기한이 아직 정리가 안 된 걸로 안다.

황상규 : 정부는 일단 내년 6월까지로 보고 있다. 최근 예산도 내년 6월까지만 산정해서 짰다.

박인규 : 선체 인양이 내년 9월 이후라고 들었다. 선체 조사 없이 끝날 수 있나.

황상규 : 해수부나 여당에서는 법에 따라서 내년 6월까지 하겠다고 한다.

안병욱 : 내년 총선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특조위 활동 기한이 내년 6월 이상으로 늘어난다고 해도 충분치 않다. 애초 처음부터 활동 기간을 길게 잡고 일하는 것과, 나중에 기한이 늘어나서 땜질하듯 하는 건 다르다. 아쉬운 부분이다.

"박근혜의 시행령 정치, 박정희 계엄령 정치와 다를 바 없다"

박인규 : '시행령 정치'라는 말이 나온다. 유승민 의원이 새누리당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나게 된 계기도 세월호 시행령 관련 청와대 압박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시행령으로 법을 무력화하는, 행정부가 입법부를 압도하는 행태가 나타나고 있다.

비슷한 일이 또 벌어지고 있다. 성남시 이재명 시장이 '청년배당' 정책을 도입하려는데, 정부가 이를 막고 있다. 지자체가 새로운 복지제도를 하려면 보건복지부와 협의하게 돼 있고, 만일 중앙 정부가 동의하지 않으면 그 정책에 드는 액수만큼의 교부금을 뺀다는 것이다. 그것도 시행령 정치다. 이는 여야나 진보 보수를 떠나서 민주주의 근본을 흔드는 문제라고 본다.

박근혜 정부는 법치 근간을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세월호 이슈도 마찬가지다. 세월호 진상을 막으려다 보니까, 민주 정치의 기본까지도 전복시켜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안병욱 : 진실, 정의와 같은, 상식에 입각한 판단 기준이 전체적으로 엉망진창이 되고 있다. 성남시 사례도 언론 통해서 얘기가 나왔다가 엄청난 반향이 없으니 정부가 억지 논리를 내세워서 무마시켜 버리는 것 같다.

상식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우리 사회가 옛날 유신 때나 5공 때보다도 더 형편없어진 게 아닌가 싶다. 그때는 정부가 강압적인 정책을 펴더라도, 그게 잘못돼있다는 건 모두가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자체가 전복돼버리는 상황이다. 민주주의 원칙과 제도 아래서 이뤄지는 일들이니까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행령은 박근혜 대통령 말마따나 행정부의 일인데, 행정부가 시행령 만드는 권한으로 국회 입법 기능을 무력화시키면서 사실상 삼권 분립 원칙도 작동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헌법이 보장한 삼권분립이라는 원칙을 부정하는 것은 계엄령으로 국회 해산시킨 것과 본질적인 내용에서 차이가 없다. 계엄령은 언젠가 해제된다는 기대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게 정당한 권한 행사로 비치니 심각한 문제다.

박인규 : 이런 상황이 국민한테 잘 알려지지 않은 건 언론의 책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안병욱 : 어느 사회나 극단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있다. 그러나 그런 얘기가 나오더라도 사회 논의 구조 속에서 정제되고,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교훈을 얻고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게 문명사회다.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5.18 때 북한 특수부대가 내려왔다든지 하는 몰상식한 이야기들이 사회 논의 구조 속에서 걸러지는 게 아니라 지배적인 이야기가 되어가는 형국이다.

최근 국정 교과서를 위한 비밀 아지트가 들통 났다. 이런 상황이라면, 정부가 절차에 하자가 있었다고 인정해야 한다. 유신시대나 5공화국 시절에도 그런 정도의 상식은 있었다. 그런데 김무성 서청원, 새누리당 국회의원 발언을 보면 이 사람들이 과연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인지 너무 놀랍다. 예전 같으면 국회의원 사퇴를 해야 할 정도의 발언인데, 신문에 버젓이 그게 정상적인 것처럼 나온다. 이런 소통 구조가 앞으로 우리 사회를 어디까지 망칠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프레시안(손문상)


"덮고, 또 덮고… 제2의 재앙 부르는 박근혜 정부"

박인규 : 특조위 활동에 대한 유가족의 반응은 어떤가.

황상규 : 세월호 희생자 가족인 장훈 4.16 가족대책협의회 진상규명 분과장의 인터뷰 내용 그대로다. 굉장히 실망을 많이 하고 있다. 그래도 대안이 없으니 지켜보자는 입장이다.(☞관련기사 : "세월호 유가족, 반 발짝만 떨어져 봐 달라")

ⓒ프레시안(최형락)

박인규
: 여러 제약이 따르지만, 그럼에도 어렵게 구성된 이상 특조위가 무언가는 해내야 하지 않나. 특조위에 기대하는 역할이 무엇인가.

안병욱 : 특조위가 가진 것은 수사권, 기소권을 요구했지만 결국 얻어낸 것은 조사권이다. 회사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제한적인 권한을 가지고 지금까지 공개적으로 드러난 것 이상을 밝혀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본다. 내부 고발자가 나타나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은 진실을 얘기한다면 의외의 성과가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이는 쉽지 않다.

과거 경험을 토대로 보건대,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 진실 규명이다. 모든 사람이 바둑판 보듯이 진실을 다 꿰뚫어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뭐가 진실인지는 대충은 안다. 과거사위원회에 있을 때도 그랬는데,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진실을 사회적으로 인정하게 하는 것이 진상 규명이라고 본다. 사람들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걸 정부가 공적으로 확인해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특조위보고서가 중요하다. 자손들이 반면교사를 삼을 수 있는, 대대로 활용할 보고서를 만들어야 한다.

박인규 : 앞으로도 정부는 비협조적인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안병욱 : 어차피 진상 규명될 것은 언제든 밝혀지게 돼 있다. 정부가 세월호 사고에 책임이 있든 없든, 그와는 별개로 지금 진상을 묻으려는 공작은 언젠가는 드러나게 될 것이다. 세월호 사건 자체가 박근혜 정부의 탓이라고 할 수는 없을 거다. 그러나 그 후속 과정은 과거 조선시대에 일어난 수많은 사화에 비견될 수 있는 수준이다.

세월호 선주는 0.01%의 최악의 상황을 배제하고 무리하게 증축하고 기상 악화에도 출항했는데, 그런데 그걸 봐준 게 해수부였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조사를 막는 게 정부다. 한 번 한 잘못을 덮고, 또 덮으려다보니까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못 막다. 그렇게 은폐만 하다가 처참한 결과를 맞은 게 메르스 사태 아닌가. 박근혜 정부는 지금 2차 재앙을 부르고 있다.

뒤늦게 과오가 드러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선, 차제에 정부가 지원해서 진상 규명 작업을 도와야 한다. 지금 밝혀질 일이 나중에 밝혀지는 것은 두 번 일하는 꼴이다. 국민적 요구를 유야무야시킨다면, '세금 낭비한다'는 이야기는 집권 여당한테 해당하는 꼴이 될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

박인규 : 베트남 전쟁도 공론화된 게 1990년대 말이다. 진실 규명에는 시효가 없는 것 같다.

안병욱 : 영국 총리를 지낸 토니 블레어가 10년도 넘은 이라크전 참전에 대해 사과했다. 역사는 결국 모든 위장막을 걷어낸다. 당시에는 TV 화면을 통해서 엉뚱한 홍보로 여론을 조작할 수 있더라도, 뒷날에는 진실들이 밝혀지기 마련이다. 당장은 후퇴한 것 같아도 그런 역사의 힘이 있기에 인류 문명이 성장해왔다.

아쉬운 건, 서양 문명과 우리 문명에 차이가 있다는 거다. 서양에서는 내부 고발자가 종종 나온다. 시간이 지나면 진실을 밝히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1945년 해방 이후로 4.3 투쟁. 한국 전쟁에서 무자비한 학살들이 수없이 일어났는데 누구도 진실을 털어놓지 않는다. 5.16 관계자들도 입을 다물고, 5.18 광주에 투입된 특전사들도 말이 없다. 수많은 간첩 조작 사건도 마찬가지다. 안타까운 일이다.

박인규 : 시간이 지나면서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가져다준 준엄한 메시지가 잊히고 있다. 특히나 정치권에서도 제대로 세월호 참사의 교훈을 읽지 못하고 있다.

안병욱 : 세월호 사건 났을 때 나라 전체가 비통함에 잠겼다. 위정자들이 참사로 인한 희생을 숭고하게 받아들이고 자기 성찰을 할 줄 알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교훈은 사라지고, 정부 여당은 못된 것만 더 배웠다. 아무리 뜨거운 이슈라도 시간이 지나면 뒤집어엎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정부는 뭐든 은폐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인다. 메르스 사태도 그랬다. 정부가 사태에 대해 함구하고 있을 때 서울시장이 도저히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며 메르스 상황을 공개했다. 이에 대해 정부가 나서서 칭찬하기는커녕 공개 행위 자체에 대해서만 터무니없는 비난을 일삼았다. 위정자들은 세월호의 교훈을 잊었다. 오히려 국민을 속이고 위장하는 그 기술만 늘어났다.

그렇게 정부 여당은 새로운 자신감을 얻고, 반대로 국민들은 일종의 체념을 하게 됐다. 국가에 대한 실망감이 커지면, 공동체 일원으로서 역할을 놓고 자신의 이익만 챙기려는 생각들을 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우리 사회 공동체가 와해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특조위에는 이런 우려를 불식시켜야 할 새로운 의무도 생겼다.

 

 

 행복하지 못했던 박정희의 마지막

박정희 전 대통령만큼 극단적인 숭배와 저주를 동시에 받는 이도 흔치 않다. 박 전 대통령의 마지막은 그에게나 나라에나 불행이었다. 하지만 더 큰 불행은 따로 있다. 불행으로부터 어떤 교훈도 얻지 못했다는 점이다.

  조회수 : 330  |  김형민 (SBS CNBC 프로듀서)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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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호] 승인 2015.11.02  14:59:28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동화 기억나지? 툭하면 “목을 쳐라” 소리 지르는 앙칼진 여왕과 트럼프 카드 병정이 설치던 나라에서 좌충우돌하던 앨리스의 이야기. 그런데 이상한 나라는 앨리스가 간 나라 말고도 많았단다. 그런 이상한 나라 중의 하나 얘기를 들려줄게.

이 나라는 명색으로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공화국을 표방하고 있었어. 국가원수 선출 선거를 하긴 하는데 대개 한 후보에 대한 찬반 투표로 결정됐고, 찬성률은 99.9%로 경이적인 스코어를 기록했지. 체육대회 같은 행사가 열리면 최고 지도자의 초상화가 화려한 카드섹션으로 피어나 관중석을 수놓고 학교 교무실(충성심이 유난한 곳에서는 교실에도) 가장 높은 벽에는 지도자의 초상화가 근엄하게 좌중을 내려다보고 있었단다. TV 뉴스에서는 그분의 근황과 업적이 떠날 날이 없고, 주요 행사 때 그분이 입장하시면 수백명이 부르는 ‘찬가’가 웅장하게 울려 퍼졌고 말이야. “가난과 시련의 멍에를 벗고 풍성한 결실과 힘찬 건설의 민주와 부강의 푸른 터전을 이루려는 그 정성을 축복하소서.”

교과서에는 그분의 자상한 얼굴 사진과 함께 이런 내용이 실리기도 했단다. “홍수가 났을 때 헬리콥터로 수해 지구를 돌아보시고 가물이 들었을 때 양수기로 물을 뿜어 올리는 농민들을 격려해주시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 어떻게 하면 농민이 더 잘살 수 있게 될까 하고 여러 가지로 힘쓰고 계십니다.” 이분 말씀은 곧 법이었고 그분 보시기에 불손하거나 불온할 경우는 언제 누구 손에 봉변을 당할지 몰랐어. 법원은 증거도 없이 사형을 서슴없이 선고했고 집행은 즉시 이뤄졌어. 술 한잔 먹다가 이분에 대해 욕설이라도 했다가는 어느 귀신에게 잡혀갈지 몰라서 사람들은 입조심, 행동 조심하면서 살얼음판을 걸었단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1979년 10월6일 생가를 찾은 박정희 대통령(오른쪽)이 주민들과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생전 마지막 생가 방문이었다.  
ⓒ연합뉴스
1979년 10월6일 생가를 찾은 박정희 대통령(오른쪽)이 주민들과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생전 마지막 생가 방문이었다.

 

자. 이 이상한 나라는 어디일까? 아까부터 “북한!”이라고 말하고 싶어서 입술 씰룩거리는 거 다 봤다. 그렇겠지. 헤어스타일 이상한 30대 청년을 두고 수만 관중이 ‘김정은’ 카드섹션을 하면서 열광하는 개인숭배의 나라, 자신의 고모부도 무슨 죄목인지 정확히 밝히지도 않은 채 사형시켜버린 나라, 북한이 당연히 떠올랐겠지. 그러나 저 위에 장황하게 소개한 나라는 슬프게도 북한이 아니라 남한이야. 아빠는 앨리스처럼 어린 나이에 저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었단다.

아빠의 이상한 나라에 요란하게 금이 갔던 날을 생생하게 기억해. 1979년 10월27일 아침이었어. 동네 앞산에 올라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동네 구멍가게 형이 뭔가를 열심히 찾더구나. 뭐 찾느냐고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지금도 또렷하게 귓전에 인쇄돼 있단다. “대통령이 죽었단다. 조기 달아야 된다.”

잠시 후 아빠 가족은 라디오 앞에 모여 긴장된 표정으로 방송을 들었지. 그때 흘러나오던 아나운서의 음울한 목소리는 대통령 사망 소식이 ‘실제 상황’임을 입증해주었어. “차지철 경호실장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다투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발사된 총에 박정희 대통령 각하가 서거….” 아빠는 이 방송을 들은 후 여러 개의 한국어 ‘보캐뷸러리’를 습득했단다. ‘우발적’이란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리고 ‘서거’(逝去)란 무슨 말인지. 결국 “대통령 앞에서 중앙정보부장이라는 사람과 경호실장이라는 사람이 싸우다가 총을 빼들었고 쏜다 안 쏜다 승강이하다가 우연히 발사된 총알에 대통령이 죽었다”는 거였어.

1979년 10월26일 ‘서거’한 분의 삶의 궤적을 여기서 줄줄이 읊고 싶지는 않아. 워낙 복잡다단한 삶을 사신 분이고, 한국을 넘어 세계 현대사에서 이분만큼 극단적인 숭배와 저주를 동시에 받는 이도 흔치 않을 테니까. 오늘은 그분의 마지막 순간만 보기로 하자.

아빠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이는 김재규(당시 중앙정보부장)가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 자신이라고 생각해. 그는 당시 한국을 지배하던 ‘유신체제’라는 이상한 나라의 왕이었단다. 툭하면 내려지던 ‘긴급조치’에 따르면 유신체제를 “반대·왜곡 또는 비방하거나 그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하거나 청원”하기만 해도 무조건 잡아 가둘 수 있었고, 심하게 비위에 거슬릴 경우 사형까지도 서슴없이 선고했으니까. 술 먹다가 “에이 더러운 세상!” 하다가는 콩밥을 먹을 수 있었고 객기 부리며 “김일성이가 차라리 낫다”고 한마디 했다가는 영영 해를 못 볼 수도 있던 시절이었어.

‘이상한 나라’ 왕의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권력이란 건 술과도 같단다. 아빠도 술 취하면 취하지 않았다고 우기잖니. 권력에 취한 사람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망각하기 마련이야. 말년의 박정희 대통령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내 맘대로 할 테니 나중에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하는 독선에 빠져 있었고, 직언하는 사람을 멀리하고 자신에게 반항하는 사람들을 국가에 대한 반역자라고 여겼단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font></div>사형선고 받고 법정을 나서는 김재규 전 중정부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사형선고 받고 법정을 나서는 김재규 전 중정부장.

 

술에 취한 사람에게 술 권하는 친구가 있는 것처럼 박정희 대통령에게도 그의 권력 주정에 맞장구치는 사람들이 있었지. 대통령과 함께 죽은 경호실장 같은 사람이었단다. 그는 당시 유신체제를 참다 못해 일어선 부산 시민을 두고 이런 말을 서슴지 않았다고 해. “캄보디아에서 300만명을 죽였는데 우리가 100만~200만명 못 죽이겠느냐.” 결국 대통령은 자신의 측근이면서도 그 무리수에 반발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죽고 말아. 그게 아빠의 어린 시절 기억을 그 이전과 이후로 휴전선처럼 나누는 10·26 사건이었구나.

아빠는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해악만 끼친 독재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지금까지 얘기한 ‘이상한 나라’를 만들었을망정 그가 대통령으로 있었던 18년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엄청나게 바뀌고 또 변화의 계기를 만든 시간이기도 하다고 여기니까.

그래도 “나 아니면 안 된다”는 독선을 발휘하며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항의하는 시민들 앞에 공수부대를 들이민 그의 마지막 모습은 용서할 수 없고, 그를 죽인 탄환을 ‘흉탄’이라 부를 수 없음을 분명히 말해둬야겠다. 만약 그가 죽지 않았다면 1980년 봄 광주의 참극은 1979년 초겨울 아빠가 살던 항도 부산에서 일어날 수 있었으니까.

아주 먼 옛날 그리스의 현자(賢者) 솔론은 자신의 부유함과 위대함을 자랑하는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에게 “한 사람의 죽음이 어떤지를 보기 전까지는 그를 행복한 사람이라 부를 수 없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단다. 아빠는 이 말이 죽음을 행복하게 맞는 사람만이 복된 삶을 살았다거나 불행하게 죽는 사람의 삶이 의미가 없었다는 뜻으로 들리지는 않아. 오히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라고 한 미국 프로야구의 전설 요기 베라의 말처럼 생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교훈이겠지.

박정희 대통령의 마지막은 행복하지 못했어. 그에게나 나라에나 불행이었다. 하지만 더 큰 불행은, 불행으로부터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하는 거야. 우리가 살았던 ‘이상한 나라’를 굳이 정상적인 나라로 억지로 치장하려 하고 ‘이상한 나라’ 왕의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귀를 막고 눈을 감고 돌진하는 일일 거야. 동작동에 누워 계신 그분은 그 모습에 기뻐하시기보다는 왜 나를 닮아가느냐고 한숨을 내쉬지 않을까 해. 아마 지금은 그분도 무척 후회하고 계실 테니까.

 

 

‘원칙과 신뢰’요? 그때그때 달라요

‘역사는 역사학자와 국민의 몫’(2004년)이라던 박근혜 대통령이 말을 180° 바꾸었다. 언론에 의해 ‘원칙과 신뢰’ 이미지를 얻었지만 대통령이 된 후 박 대통령의 말 바꾸기는 되풀이되었다.

주진우 기자  |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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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호] 승인 2015.11.03  09:06:06

 

“역사는 정말 역사학자들과 국민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들이 역사를 재단하려고 하면 다 정치적인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하기 때문에 제대로 될 리도 없고 나중에 항상 문제가 될 것이다.”(2004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역사에 관한 일은 역사학자가 판단해야 한다. 어떠한 경우든 역사에 관한 것은 정권이 재단해서는 안 된다.”(2005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이랬던 그녀가 180° 바뀌었다.

“역사 교육을 정상화시키는 것은 당연한 과제이자 우리 세대의 사명이다. 역사를 바로잡는 것은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2015년 10월27일 박근혜 대통령)

 

 

   


 

 

 

‘원칙과 신뢰’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표적인 브랜드다. 박근혜 대통령은 약속을 지킨다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힘을 쏟아왔다. “저는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았고, 한번 한 약속은 하늘이 무너져도 지켰다”(2007년 6월28일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신뢰와 약속을 지키고, 말보다 행동으로, 생각보다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2007년 6월 전북대 강연에서), “국민 여러분, 저 박근혜는 약속 대통령이 되겠다. 국민과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다”(2012년 12월20일 대통령 당선 확정 후).

원칙과 신뢰라는 이미지를 만들어준 것은 언론이었다. 2012년 12월20일 <연합뉴스>가 박근혜 리더십을 분석한, ‘원칙과 신뢰’라는 제목의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정치철학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원칙과 신뢰’이다. 박 당선인이 지난 1998년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로 정치권에 입문한 후 수없이 강조해오면서 그의 정치적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2004∼2006년 한나라당 대표, 그리고 2011∼2012 비대위원장으로 활동했던 과정에서 시스템이나 기준에 따라 당을 운영하고 이러한 기조를 유지한 것에서 ‘원칙과 신뢰’의 이미지가 싹텄다는 평가다. ‘국민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정치적 소신이며 이에 따라 2004년 17대 총선과 2012년 19대 총선이 끝난 뒤 공약 이행을 챙김으로써 이러한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했다.”

2012년 11월27일 <조선일보>는 “‘박, 약속은 지키는 준비된 후보’ 대 ‘문, 일자리 만들 소통하는 후보’”라고 썼다. 방송과 신문의 노력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신뢰받는 정치인으로서 위상을 심었다. 이는 대통령에 오르는 데 엄청난 자산이 됐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지역균형발전, 일자리, 4대 중증질환, 대학 등록금 등 교육비 경감, 무상보육 등을 약속했다(오른쪽).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지역균형발전, 일자리, 4대 중증질환, 대학 등록금 등 교육비 경감, 무상보육 등을 약속했다(오른쪽).

 

그러나 대통령이 된 후 박근혜 대통령이 ‘원칙과 신뢰’를 저버린 일들이 다반사다. 역사 문제에 관해 주장이 180° 바뀐 것처럼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말 바꾸기는 되풀이되었다.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는 경우도 셀 수 없이 많다.

대선 전, 박 대통령은 ‘일생 동안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에 애쓰신 어르신의 경제적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대선에 나섰다’는 말을 달고 다녔다. 대선 후, 당선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노인들을 위한 공약은 폐기하다시피 했다. 나라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라는 소용돌이에 빠져 있는 동안, 박근혜 정부는 경로당 냉난방비 예산 310억원과 양곡비 예산 47억원을 전액 삭감했다. 대선 공약의 히트 상품 ‘모든 노인한테 월 20만원의 기초연금을 지급하겠다’는 약속도 철회했다. 모든 노인은 소득 하위 70%로, 20만원 일괄 지급은 ‘국민연금 가입 기간에 따라 월 10만~20만원 차등지급’으로 바뀌었다. 또한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의 혜택을 형편이 어려운 기초생활수급 노인은 사실상 누리지 못한다. 정부는 기초생활수급 노인들에게 기초연금 20만원을 주는 대신 기초생활 생계급여에서 20만원을 삭감했다.

국회 공청회에 나온 강세훈 대한노인회 행정부총장은 “노인한테 지급하는 장수수당·축하금, 효행장려금, 기초생활 노인가구 월동난방비 지원 등 현금성 급여가 사실상 전부 중단되고 있다. 장수수당의 경우 기초연금 수급자를 제외하면서 소득 상위 30%인 ‘부자 노인’만 장수수당을 받게 된다”라고 말했다. 서울역에서 만난 김광수씨(73)는 “박 대통령이 기초연금과 일자리 수당을 두 배 올려준다고 해서 찍었는데 담뱃값만 2배 올렸다”라고 말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 행복 10대 공약’은 선포했다. ‘세상을 바꾸는 약속’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박 대통령은 의욕을 보였다. “정책이 없어서 국민이 불행했던 것이 아니라 약속이 실천되지 않아서 문제였다”(2012년 7월10일 대선 출사표).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면 공약도 안 했을 것이다”(2013년 1월25일 대통령직 인수위). 그러나 10대 공약 가운데 지켜지고 있는 약속은 거의 없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당시 후보가 선포한 ‘ 국민 행복 10대 공약’집. 10대 공약 가운데 지켜지고 있는 약속은 거의 없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당시 후보가 선포한 ‘ 국민 행복 10대 공약’집. 10대 공약 가운데 지켜지고 있는 약속은 거의 없다.

 

 

첫 번째 약속, 가계 부담 덜기. 가계부채는 2010년 843조원에서 올해 6월 1130조원으로 급증했다. 올 2분기는 1분기보다 30조원 넘게 늘었다. 역대 최대 증가폭을 계속 경신 중이다.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 됐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가계부채는 빚을 권하는 사회 탓이다.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완화한 것은 가계부채를 늘려서라도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조치인데, 결국 서민들에게 빚내서 집 사라고 한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만 5세까지 국가가 무상보육 및 무상 유아교육을 하겠다는 건 박 대통령의 두 번째 약속이다. 그런데 10월28일부터 30일까지 어린이집 교사들이 단체 행동에 나섰다. 정부의 보육 예산 삭감 때문이다. 지난 9월 정부가 발표한 2016년 예산안에 따르면, 누리과정(만 3~5세) 예산이 한 푼도 책정되지 않았다. 지난해에도 정부는 올해 누리과정 예산 2조2000억원을 전액 삭감했다가 반발이 일자, 일부를 예비비 명목으로 지원했다.

세 번째 약속은 교육비 덜기다. 고등학교 무상교육, 사교육비 부담 완화, 반값 등록금이 주요 골자다. 하지만 기획재정부가 책정한 고교 무상교육 예산은 2015년에서 2018년까지 0원이다. 전혀 생각이 없는 것이다. 반면 사교육비 부담은 늘고만 있다. 교육부는 올해를 ‘대학 반값 등록금’ 실현의 원년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학생과 학부모들은 전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6월 말 기준 학자금 누적 대출자는 150만명이고, 1인당 평균 대출액은 640만원이다. 2011년보다 30만원 늘어난 액수다. 정부 정책이 학자금 대출조차 줄이지 못한 셈이다. 연 2.7%인 장학재단의 학자금 대출금리를 낮추라는 야당의 요구를 정부는 계속해서 피하고 있다.

네 번째 약속은 암·심혈관·뇌혈관·희귀난치성 질환 등 ‘4대 중증질환’을 정부가 100% 책임지겠다는 것이었다. 2012년 대선 후보 텔레비전 토론 때 문재인 후보가 ‘4대 중증질환 진료비 100% 국가 부담’ 공약에 대해 물었다. 박 후보는 “비급여 부분 커버(포함)해 100% 책임지겠다”라고 답했다. 환자들이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한 부분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이었다. 하지만 당선 후 바로 없던 일로 돌렸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선택진료비(특진비)나 상급병실료·간병비 등은 국가 부담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5~7번째 약속은 일자리와 관련된 것이다. 우선 창조경제를 통해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공약은 아직 결과가 나온 게 없다. 오히려 실업률은 2012년 7.5%, 2013년 8.0%, 2014년 9.0%로 늘고 있다. 나쁜 일자리도 늘고 있다.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 비율은 2012년 9.6%, 2013년 11.4%, 2014년 12.1%(한국노동사회연구소 통계)로 조사됐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2013년 9월26일 대선 공약과 달리 기초연금을 축소한다는 뉴스를 한 노인이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3년 9월26일 대선 공약과 달리 기초연금을 축소한다는 뉴스를 한 노인이 시청하고 있다.

 

 

다음으로, 노동자들의 정년을 60세로 연장한다는 약속은 지켰다. 그러나 해고 요건을 강화하겠다는 약속은 버렸다. 10월28일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은 근속연수 1년 미만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이고 비정규직 비율도 45.4%에 달한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쉬운 해고와 낮은 임금만 강요한다”라고 말했다.

이러니 장시간 노동 관행을 없애는 등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올리겠다는 일곱 번째 약속이 잘 지켜질 리 만무하다. 지난해 한국 노동자들이 일한 시간은 평균 2163시간. OECD 34개 회원국 중 멕시코(2237시간)에 이어 2위다. OECD 평균 1770시간보다 22%나 많다. 한국의 노동자는 일본과 미국 노동자에 비해 연평균 약 400시간을 더 일한다. 하지만 임금은 훨씬 적게 받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OECD 국가 가운데 멕시코 다음으로 임금불평등이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여덟 번째 약속은 성폭력·학교폭력·가정파괴범·불량식품 등으로부터 국민을 지키겠다는 국민 안심 프로젝트다. 경찰이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불량식품 단속에 굉장한 열의를 보인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무엇이 더 나아졌는지 아직 알려진 바 없다.

이제는 단어조차 사라진 ‘경제민주화’ 공약

아홉 번째 약속은 경제민주화를 통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이루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하는 원동력이었다고 할 ‘경제민주화’ 공약 역시 일찌감치 폐기됐다. 박근혜 정부 절반을 지난 지금은 경제민주화라는 단어조차 사라졌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10월22일 어린이집 교사 등이 누리과정 지원 약속을 지키라고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10월22일 어린이집 교사 등이 누리과정 지원 약속을 지키라고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열 번째 약속은 지역균형 발전과 대탕평 인사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요직에는 특정 지역, 특정 학교 출신만 등용되고 있다. 지난 3월2일자 <문화일보> 기사 제목은 “국가 의전 서열 10위 중 8명 ‘영남권 출신’”이었다. 호남은 아예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전북일보>는 10월20일자 기사에 이렇게 썼다. “신임 장·차관급 10명 중 전북 출신은 한 명도 없고 경찰 경무관 이상 간부도 97명 중 1명뿐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은 “지난 9월 단행된 7명의 대장급 군 인사에서 호남 출신 인사가 전무한 데 이어 이번 개각에서도 호남 출신이 전무하다. 박 대통령이 ‘100% 국민통합의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약속했지만 역사관만 100% 통합하려 하고 있다”라고 비꼬았다.

10대 공약 이외에도 군복무 기간 단축, 전시작전권 이양, 검사의 청와대 파견 제한, 재벌·대기업 사면권 제한, 320만명 신용회복 지원, 목돈 안 드는 전세정책 추진, 철도민영화 반대, 장애인연금 확대 등 박 대통령이 힘주어 말했지만 지켜지지 않는 약속이 부지기수다.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받은 6억원에 대한 이야기도 자취를 감추었다.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은 “박 대통령이 국민과 한 약속을 버릇처럼 잊어버린다. 문제는 파기한 약속들이 법치주의를 훼손하고 시장경제의 기본질서를 무너뜨린 일이어서 더 심각하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JTBC와의 인터뷰에서 “내 생각이 대통령과 거리가 있는 게 아니라, (대통령의) 국민에 대한 약속이 바뀌었다면 바뀐 게 문제다. 이 정부가 국민한테 약속한 그 기조 그대로 끌고 갔다면 지금보다 훨씬 국정 운영이 잘되고 있으리라 믿는다”라고 말했다.

2012년 총선을 두 달 앞두고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말 바꾸기를 서슴지 않는 사람들은 이번에 반드시 뿌리를 뽑아야 우리 정치를 쇄신할 수 있다.” 이 발언들에 대해 박 대통령의 지금 생각이 어떤지 정말로 궁금하다.

 

 

어떤 ‘여왕’의 집착

영국의 메리 여왕은 ‘피의 메리’로 유명하다. 메리는 가톨릭으로 나라를 되돌리려 했고 스페인의 왕자였던 남편 필리페에 집착해 점령지 칼레를 잃기도 했다. ‘블러디 메리’에게서 후대 권력자들은 무엇을 배워야 할까.

  조회수 : 4,791  |  김형민 (SBS CNBC 프로듀서)

<먼 나라 이웃 나라>를 열심히 본 너는 영국의 메리 여왕을 알 거야. 숱한 사람들을 교수대로 보낸 무서운 여왕 블러디 메리, 즉 피의 메리로 기억할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메리 여왕은 ‘블러디 메리’라는 별명에 정색하고 항의할지도 몰라. “왜 나만 피의 메리냐. 여동생 엘리자베스는 어떻고 아버지 헨리 8세는 나보다 더했는데.”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에 등장하는 소년 왕 에드워드 6세가 어린 나이에 병사한 후 메리는 왕위에 올라. 스페인 공주의 딸이며 독실한 가톨릭교도였던 메리를 반대하는 세력도 만만치 않았고 반란도 일어나지. 하지만 메리는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반란을 진압해. 영국 국민은 가톨릭이냐 신교냐를 따지기에 앞서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를 동정했던 거야. “얼마나 불쌍해. 저 고귀한 여인이 계모의 딸을 돌보는 하녀 역할까지 했다니!” 헨리 8세의 후처 앤 불린은 메리에게 자신의 딸 엘리자베스를 돌보라고 명령했거든.

하지만 그녀는 아버지 헨리 8세와 남동생 에드워드 6세를 거치면서 뿌리를 내린 성공회를 부정하고 가톨릭으로 나라를 되돌리려는 무리한 시도를 하지. 거역하는 사람들에게는 용서가 없었고. 결정적으로 영국인을 화나게 한 사건이 발생하는데, 바로 스페인의 왕자이자 합스부르크 왕가 출신 필리페 왕자와의 결혼이었어. 그녀는 무려 열한 살이나 아래인 필리페 왕자에게 흠뻑 빠져서(만나보지도 않고!) 그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해. 여론은 크게 반발했고 와이어트라는 사람은 아예 반란을 일으켜서 런던으로 쳐들어오지만, 메리 여왕은 의연하게 대처해 반란을 진압하고 필리페와 결혼에 골인하게 돼.

  메리 여왕은 남편 필리페에게 집착해 전쟁에까지 끼어들었다. 위는 필리페와 메리 여왕의 초상.  
메리 여왕은 남편 필리페에게 집착해 전쟁에까지 끼어들었다. 위는 필리페와 메리 여왕의 초상.

메리 여왕은 천신만고 끝에 필리페를 남편으로 맞았지만 정작 필리페는 이 헌신적인 여왕에게 무심했어. 어차피 정략결혼이었고 열한 살 위의 큰누나쯤 되는 메리에게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한 데다가, 영국 의회가 “메리가 먼저 죽어도 필리페는 왕위 계승권이 없으며 영국의 법률을 존중해야 한다”라는 둥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자 더 정나미가 떨어져버린 거지. 1년 정도 영국에서 머무른 뒤 스페인으로 돌아간 그는 아내를 거의 돌아보지 않아. 하지만 그럴수록 메리 여왕은 필리페에게 집착한단다.

그녀는 어떻게든 필리페의 아이를 낳고 싶어 했지. 하지만 그녀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었고, 그런 마음과 몸의 부조화는 ‘상상임신’이라는 유감스러운 상황에 그녀를 몰아넣어. 한동안 사랑하는 이의 아이를 가졌다며 구름 위를 걷듯 기뻐했던 여왕은 곧 참담하게 자신의 처지를 깨달아야 했지. 이런 일이 몇 번이나 되풀이됐다니 메리 여왕의 집착이 얼마나 제 심신을 망가뜨렸을지 짐작할 수 있지 않겠니.

영국인들이 반대했던 결혼을 강행하면서 스페인을 따라 전쟁을 벌이지 않는다고 약속했던 메리 여왕이었지만, 의회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스페인과 프랑스의 전쟁에 덥석 끼어들고 말았어. 간만에 영국을 방문하면서까지 ‘내 귀에 캔디’처럼 달콤하게 늘어놓는 서방님의 요청을 메리 여왕이 외면하지 못해서였지. 프랑스 왕은 엉거주춤 전쟁에 끼어든 영국에 날카로운 비수를 꽂아. 중세 100년 전쟁 이래 프랑스 땅에서 영국이 유일하게 점령하고 있던 도시 칼레를 공격한 거야. 번성하는 항구로 막대한 세금을 영국 왕에게 바치던 칼레, 영국의 대륙 최후 거점이라 할 칼레는 허무하게 함락되고 말아.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10월27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에서 열린 시정연설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조했다.  
ⓒ연합뉴스
10월27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에서 열린 시정연설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조했다.

메리에게도 칼레 함락의 충격은 컸어. 시름시름 앓다가 죽으면서 그녀는 이런 유언을 남겼단다. “죽고 난 후 내 심장에는 칼레와 필리페가 새겨져 있을 것이오.” 메리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침대 위에서 누구의 애도도 받지 못한 채 쓸쓸히 죽어간단다. 이 소식을 들은 남편의 무정한 한마디. “메리의 죽음에 대해 일정 정도의 슬픔을 느꼈소(I felt a reasonable regret for her death).”

메리가 런던 뒷골목의 평범한 여인이었다면 그녀의 집착은 개인의 불행일 뿐이었겠지만, 여왕의 집착은 한 나라를 잘못된 길로 이끌었지. 어쩌면 그녀는 필리페와의 사랑이라는 허상의 포로였는지도 몰라. 불우한 어린 시절의 상처를 강력한 남자 필리페와의 사랑을 통해 씻으려 했고, 그와의 사랑은 그녀 인생 필생의 목표가 돼버렸지. 누가 말리려고 들면 더욱 불타올랐고, 반란 앞에서도 여왕다운 자세로 런던 시민을 감동시켰던 그녀의 총기는 집착의 불길에 녹아 없어지고 말았어. 또 그녀가 가진 종교적 신념을 국민들에게 강요하면서 ‘메리 여왕 만세’를 외치던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렸고 말이야. 앙드레 모루아의 표현을 빌리면 “애정과 고집과 절대권력의 융합으로 생기는 혼란의 한 예”였지.

역사는 누군가의 효도 수단이 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시정 연설을 들으면서 아빠는 메리 여왕을 떠올렸어. 메리 여왕의 이복 여동생 엘리자베스 여왕을 롤모델로 삼는다는 대통령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연설 말미에 등장하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뜨거운 ‘소신’에서 블러디 메리의 향기를 느낀 거야. 역사학자 90%가 반대하고 심지어 정부 출연 기관인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들도 고개를 젓고 보수 정권에서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분까지도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하는 ‘국정화 교과서’를 ‘정상화 작업’이라고 지칭하려면 걸맞은 근거를 제시하셔야 해. 그런데 아무런 설명 없이 평생을 역사와 함께한 대다수 역사학자를 ‘비정상’으로,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국민을 ‘바로잡아야 할’ 대상으로 몰고 계시지 않겠니.

또 한번 외람된 이야기지만 이건 집착으로 보여.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에 뛰어든 이유로 “아버지의 명예 회복”을 든 적이 있어. 메리 여왕만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불행한 가족사를 겪은 분으로서 한국 현대사에 좋든 나쁘든 큰 족적을 남긴 아버지에 대한 강한 애착이야 어쩔 수 없겠지. 하지만 부친 시대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애오라지 “역사를 잘못 가르친” 결과라고 생각하거나 “역사를 잘 가르치면” 과거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되리라고 믿는 건, “다시 가톨릭!”을 부르짖어 종교개혁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메리 여왕만큼이나 비현실적인 얘기일 거야. 메리가 필리페 왕자라는 허상에 매달려 그에 집착한 순간 한 사람의 여자로서도 왕으로서도 불행해졌듯이 객관적인 역사의 평가에 맡겨야 할 부친의 ‘명예’ 회복에 매달린다면 그건 딸로서도, 그리고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도 비극적인 일이 아닐까?

역사란 누군가의 효도 수단이 될 수도 없고 자긍심의 재료로 쓰여서도 안 되며 명예 회복의 도구로 전락해서도 안 되는 우리 모두의 거울이란다. 우리가 거울을 보는 건 못생겼다고 좌절하려 함도 아니고 잘생겼다고 우쭐하려 함도 아니야. 단지 우리 모습을 그대로 보기 위해서란다. 대통령님도 그걸 이해하셨으면 좋겠다. 메리 여왕처럼 불행하지도 외롭지도 않으셨으면 좋겠다. 그분의 가슴에 ‘국정교과서’와 ‘아버지’가 새겨져 있다면 그건 그분만의 불행으로 끝나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