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와 세월호는 닮았다!
양 혜왕이 맹자에게 "선생께서 천리를 머다 않고 오셨으니 이 나라를 이롭게 할 방도를 가지신 것이겠지요." 할 때 맹자가 "임금께서는 왜 꼭 이로움(利)을 말씀하십니까. 어질음(仁)과 옳음(義)이 있을 따름입니다." 대답한 장면은 <맹자>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대목의 하나다.
현대인은 이 이야기에서 맹자의 비현실적 도덕주의를 읽는다. 치열한 국제 경쟁 속에서 추상적 가치를 구체적 국익에 앞세우는 자세를 보며 "역시 어수룩한 시절이었어" 생각한다.
하지만 세월호 사태, 메르스 사태를 거푸 겪으면서는 맹자의 말씀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세월호 침몰의 원인인 노령 선박 운항, 안전 기준 완화 등 '줄푸세' 노선은 이익 극대화를 위한 것이었다. 메르스 확산을 유발한 사태 초기 정부의 비밀주의 또한 경제적 타격을 피하려는 것이었다.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려는 어질음과 자본의 이익에 치우치지 않으려는 옳음이 경제적 이익에 밀려났기 때문에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나고 작게 끝나야 할 일이 커진 것이다.
맹자가 스승 자사에게 "백성을 다스리는 도리로 무엇을 앞세워야 합니까?" 물었더니 "먼저 이롭게 해주느니라." 대답한 일이 있다. "임금의 백성을 가르침이 어질음과 옳음에 있을 뿐인데 어찌 꼭 이로움이겠습니까?" 맹자가 따져 묻자 자사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어질음과 옳음도 사실은 백성을 이롭게 하는 수단이니라. 위에서 어질지 아니하면 아래에서 자기 자리를 얻지 못하고 위에서 옳지 못하면 아래에서 속이기를 즐겨하게 될 것이니, 그 이롭지 못함이 크지 않은가. 그러기에 <주역>에 이르기를 '이로움은 옳음의 어울림'이라 하고 또 이르기를 '이롭게 쓰고 몸을 편안히 함은 덕을 받드는 길'이라 하였으니, 이 모두 이로움의 중요함을 말한 것이다." (仁義 固所以利之也 上不仁則下不得其所 上不義則下樂爲詐也 此爲不利大矣 故 易曰 利者 義之和也 又曰 利用安身 以崇德也 此皆利之大者也)
스승인 자사는 이로움의 중요성을 앞세웠는데, 제자인 맹자는 후에 양 혜왕에게 이로움을 앞세우지 말라고 윽박지른 것이다. 맹자가 자사의 가르침을 버린 것일까? 뒷날 사마광은 이렇게 풀이했다.
"자사와 맹자의 말은 같은 것이다. 무릇 어진 자라야만 어질음과 옳음의 이로움을 알고 어질지 않은 자는 알지 못한다. 따라서 맹자가 양 혜왕에게 대답함에 바로 인의를 말하고 이로움을 말하지 않은 것은 말하는 상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子思孟子之言 一也 夫唯仁者 爲知仁義之利 不仁者 不知也 故 孟子之對梁王 直以仁義而不及利者 所與言之人 異故也)
자사와 맹자 같은 프로 선수끼리는 인의와 이익의 미묘한 선후관계를 거리낌 없이 논할 수 있지만 양 혜왕 같은 아마추어에게는 정확한 대답보다 명확한 대답이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 자사가 이로움의 중요성을 말한 것은 정치의 목적이 백성을 이롭게 하는 데 있다는 원론이다. 그 목적의 실현을 위해 인의를 앞세워야 한다는 데는 자사와 맹자의 생각이 같다. 목적이어야 할 이로움에 방법에서부터 매몰된다면 그 이로움은 공익(公益) 아닌 사익(私益)이 될 위험이 크다. 천하의 이로움보다 특정 국가의 이로움이 되고 백성의 이로움보다 위정자의 이로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서상철의 <무한경쟁이 대한민국을 잠식한다>(지호 펴냄)는 요즘도 마주치는 청소년들에게 권하는 책이다. 이 책의 '들어가는 말'에 서상철은 이렇게 썼다.
한 사회의 경쟁의 도가 지나치면, 공작과 같이 경쟁을 위한 경쟁으로 그 낭비가 효용을 능가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은 극단적 경쟁 때문에 해가 득보다 오히려 큰 상황으로 볼 수 있다. (…) 극심한 경쟁은 사회 전체에 불행을 초래하고 경제 발전에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 성장의 기대가 키워온 희망은 그럴듯하지만 과도하면 성장에 대한 망상을 초래할 수 있다. '성장 망상증'에 의한 장밋빛 미래의 기대나 의존은 허구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그리고 성장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으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 사람들이 점점 더 불행해진다는 현실을 직시하는 순간에 진짜 희망이 보일 것이다.
나는 '프레시안 books'에 기고한 이 책의 리뷰에서 "저자의 진단에 크게 공감하면서도 완전히 만족하지는 않는다"고 썼다. 문제의 존재와 성격을 정확히 짚기는 했지만 그 배경을 충분히 밝히지 않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내 생각을 이렇게 적었다.
서상철도 이 책 제1장 "경쟁은 인간의 본성인가"에서 잘 설명했지만 뉴라이트에서 즐겨 들먹이는 명제 "인간은 이기적 존재"는 인간의 전체 모습이 아니라 한 측면일 뿐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서도 경쟁보다 협력을 중시하는 존재라는 사실은 복잡한 언어를 발전시킨 데서 단적으로 알아볼 수 있다. 경쟁과 투쟁에는 그렇게 복잡한 언어가 필요 없다. 언어는 협력을 위해 발전한 것이다.
근대의 인간은 원래의 본성과 달리 원자론적 세계관, 개인주의, 경쟁에 치중하며 살아왔다고 나는 본다. 산업 혁명 덕분에 낭비가 허용되는 상황 속에서 일어난 일이다. 자원과 환경의 한계에 부딪친 이제는 근대의 습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경쟁 지상주의만이 아니라 원자론적 세계관과 개인주의에 치우쳤던 모든 관습과 제도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익을 앞세우지 말라는 맹자의 말씀을 우활한 것으로 현대인이 보는 까닭은 근대적 국민 국가의 현상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근대 세계에서는 '국익'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관점이 지배적이었다. 맹자는 '국익'도 '공익'보다 '사익'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보았다. 군주가 자기 나라의 국익에 지나치게 매진하는 것이 천하의 공익을 해칠 수 있는 일이라고 본 것이다.
제국주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근대 세계는 국익 추구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던 세상이었다. 20세기 들어 두 차례 '세계 대전'을 겪으며 국익을 넘어선 '세계 질서'를 위한 노력의 필요성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20세기 후반에 자원과 환경 문제들이 부각됨에 따라 더욱 절실해졌다. 국가를 최종 단위로 여기던 근대 정치철학의 한계와 문제점을 지적하는 논설도 이제 나오고 있다.
세계에서 중국이 공헌할 수 있는 적극적 의미는 새로운 형태의 대국, 세계를 책임지는 대국, 세계사에 출현한 갖가지 제국과 아주 다른 대국이 되는 것이다. 세계를 책임지는 것은 단지 자신의 국가에만 책임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이론에서 중국 철학의 관점이고 실천에서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이다. 즉 무엇보다도 먼저 '천하'를 정치/경제적 이익에 관한 분석 단위로 삼아 문제를 분석하여 서양의 민족/국가의 사유 방식을 뛰어넘는 것이며, 세계를 책임지는 것을 자신의 소임으로 삼아 새로운 세계 이념과 세계 제도를 창조하는 것이다. 세계 이념과 세계 제도는 역사적으로 줄곧 결여되었던 이 세계의 가치관이자 질서였다. 일찍이 세계를 지배했던 영국과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미국에는 지금까지 모두 국가 이념만 존재했다. 따라서 모두 자국의 이익만 고려했기 때문에 세계를 관리하는 측면에서 영국과 미국은 지금까지도 정치적인 합법성도 없었고 특히 철학적인 합법성도 없었다. (<천하체계>(자오팅양 지음, 노승현 옮김, 길 펴냄), 12~13쪽)
세월호 사태, 메르스 사태 같은 국내 문제들 앞에서 국가주의 문제를 떠올리는 것은 '공익'과 '사익'의 차이를 생각하기 위해서다. 근대적 세계 체제 안에서 살아온 현대인에게는 '공익'의 의미가 '국익'의 한계를 넘어서기 힘들다. 진정한 '공익'을 생각할 기회가 거의 없다. 그러니 사회 내에서 공익을 무시하고 파괴하는 행태를 비판할 근거가 취약한 것이다.
맹자가 '인의'를 앞세운 것은 공익과 사익의 판별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인의에 어긋나는 이익은 사사로운 이익일 뿐이며 천하의 공익에 해로운 것이다. 양 혜왕이 이익을 앞세울 때 자기 한 몸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라면 말 상대도 되지 않는 암군(暗君)이다. 자기가 책임진 나라 전체의 이익을 꾀할 정도의 명군(明君)이라는 가정 하에, 이익을 앞세우지 말 것을 맹자는 권했다. 그 나라의 국익을 지나치게 추구하다 보면 천하의 공익이 훼손될 수 있으니, 인의의 실천에 힘을 쏟으며 그 결과로 이익이 저절로 생겨나게 하라는 것이었다.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온갖 이해관계가 온갖 지점에서 충돌하고 있다. 집권 세력은 충돌을 더욱 유발하고 격화시킴으로써 자기네 사익 추구가 두드러져 보이지 않게 한다. 노승현은 <천하체계> "옮긴이의 말"에서 "왕조를 바꾸고 국호를 고치는 것을 국가의 멸망이라 하고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는 것을 천하의 멸망이라 한다"는 고염무의 말을 인용했다(238쪽). "천하의 멸망"이란 곧 문명의 멸망을 뜻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는 풍조를 이 땅에 처음 들여온 것은 일본 식민 통치자들이었다. 지금의 집권 세력은 더 열심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충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충돌, 세대 간의 충돌, 지역 간의 충돌을 격화시키기 위해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길이 있을까?
집권 세력에게 전가의 보도는 '국익'이다. 세월호 사건의 진상 규명에 비용을 들이는 것이 국가 예산의 낭비고, 메르스 사태의 방역 등급을 올리는 것이 국격에 손상을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국가 경제의 침체를 피해야 한다며 대통령부터 나서서 "독감일 뿐이에요," 경계심을 풀 것을 요청한다. 석연치 않으면서도 '국익' 주장만은 수긍하는 것이 착한 국민의 마음이다.
국익을 등지라고 독자들을 선동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문명을 지키는 것이 국익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세월호 사태와 메르스 사태의 공통점 하나가 사람들로 하여금 이익에만 묶여 있던 생각에서 벗어나 어질음과 옳음에 대한 생각을 해볼 계기를 만들어줬다는 것이다. 이런 계기를 거듭 겪으면서도 집권 세력의 농락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회라면 어디에서 각성의 계기를 찾을 것인가.
메르스에 대처하는 정치인의 자세
리더십은 위기 때 빛난다. ‘쇼’를 벌인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지만 온 국민이 자신의 일로 여기는 상황에서 가만히 있는다면 그 또한 무책임한 일이다. 여야 정치인이 메르스 사태에서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살펴보았다.
|
[405호] 승인 2015.06.18 08:54:33 |
불행하게도 리더십은 위기 때 빛난다. 위기에 대처하는 리더의 자세는 그 자체로 신뢰의 척도가 된다. 진영 논리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우리 사회에서 어쩌면 재난은, 정치인의 리더십이 상대적으로 공정하게 평가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인지도 모른다.
물론 재난을 컨트롤하는 정치인의 태도는 신중해야 한다. 자칫 사태 해결과 상관없이 ‘쇼’를 벌인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처럼 “국가가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그런 정치인들이 있다면 퇴출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도 있다.
이정현 의원이 말한 ‘그런 정치인’이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뻔하다. 중앙정부의 정보 통제를 질타하며 메르스 사태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 등 야권 지자체 단체장을 겨냥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싸늘하다. 중앙정부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맬 때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시민의 안전을 지키려는 게 어째서 ‘정치적’이냐는 여론이 훨씬 높다. 이정현 의원의 발언이야말로 ‘정치적’이라는 의견도 쏟아져 나왔다.
![]() |
||
ⓒ연합뉴스 박원순 서울시장은 선제적 조치로 정부의 메르스 감염 병원 공개 등을 이끌어냈다는 평을 받았다. |
지지율 1위 탈환한 박원순
메르스 사태에서 가장 많은 정치적 자산을 쌓은 인물은 단연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6월4일 밤 긴급 브리핑 이후 정부가 “혼란과 불안을 초래했다”라며 공세에 나섰으나 박 시장은 “늑장 대응보다 과잉 대응이 낫다”라며 맞받는 등 전면전을 불사했다. 여론 추이가 심상치 않음을 파악한 정부는 뒤늦게 메르스 감염 병원 명단을 공개하는 등 박 시장의 요구 사항을 수용했다. 중앙정부가 박원순 시장의 ‘지휘’를 따르는 모양새가 만들어진 것이다. 메르스 감염이 지역사회로까지 확대되는 것 아니냐는 염려가 커지면서 박 시장의 선제적 조치가 더욱 조명받았다.
이는 6월12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박원순 시장이 차기 정치지도자 선호도에서 1위(17%)를 차지했다. 한 달 전 조사에 비해 6%포인트나 상승한 결과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둘 다 13% 지지율에 머물렀다.
![]() |
||
ⓒ연합뉴스 여야의 김무성·문재인 대표는 양당 관계자가 모인 ‘4+4 회동’으로 메르스 대응에 나섰다. |
눈여겨볼 점은 무당층의 지지도에서도 박원순 시장(17%)이 문재인 대표(13%)를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전략통은 “메르스 사태 추이를 민감하게 지켜본 여론이 박원순 시장의 행보가 ‘쇼’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볼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박원순 시장의 지지율 1위 행진이 한동안 계속될 가능성이 높으리라는 것이다. 이는 제1야당의 권력 지형에도 적잖은 변화를 줄 것으로 보인다. ‘당 외곽’에 있는 박원순 시장이 차기 총선과 대선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가 제1야당의 관심사다.
남은 걸림돌은 보수 진영의 총공세다. 박원순 시장이 공개한 삼성서울병원 소속 메르스 감염 의사의 상태가 위중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부 언론은 ‘박원순 책임론’에 시동을 걸고 나섰다. 박 시장이 의사에게 스트레스를 줘서 상태가 악화됐다는 논리다. 박 시장이 차기 지도자 지지율 1위를 탈환하면서 이런 공세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후방 지원 문재인, 광폭 행보 김무성
문재인 대표는 조용하게 움직였다. 전면에 나서서 정부를 비판하는 대신 여야를 뛰어넘는 초당적 행보를 보였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물론 여당 소속 남경필 경기지사 등과도 만나 공동 대응을 논의했다.
특히 문재인 대표가 김무성 대표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메르스 사태 해결을 위해 대표·원내대표·정책위의장·메르스대책특별위원장이 참석하는 ‘4+4 회동’을 제안한 것은 의미심장한 대목이었다. 정치권에서는 6월7일 최경환 국무총리 대행의 메르스 대책 발표를 이끌어낸 것이 4+4 회동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원순 시장의 선제 조치에 이어 여야 수뇌부 회동으로 메르스 사태의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기게 생긴 청와대가 정치적 압박을 느꼈다는 것이다.
4+4 회동은 국회법 개정을 놓고 여당과 청와대가 갈등을 빚고 있는 국면에서 제1야당이 새누리당 지도부에게 힘을 실어주는 효과도 있었다. 이로 인해 새누리당 지도부가 박원순 시장을 직접 겨냥해 공격에 나서는 것을 막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실제로 이정현 최고위원 정도를 빼면 박원순 시장의 행보를 비판한 새누리당 지도부는 없었다. 새정치민주연합 관계자는 “박원순 시장이 선제공격에 나서고, 문재인 대표가 후방 지원을 한 셈이다. 당으로서는 아주 오랜만에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여줬다”라고 자평했다.
문재인 대표와 달리 김무성 대표는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메르스 환자가 다녀간 국밥집을 찾은 데 이어 마스크 없이 감염 병원을 방문하는 등 언론의 조명을 한 몸에 받을 만한 과감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김 대표가 던지려는 메시지는 “메르스 공포가 과장됐다”라는 것이다. 6월10일에는 “이 추세로 가면 확실히 메르스가 진정 국면에 접어든다”라는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메르스 환자 13명이 추가되고 사회적 불안감이 커진 가운데 나온 발언이어서 논란을 자초했다. 당내에서조차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니냐”라는 비판이 나올 지경이다.
![]() |
||
ⓒ충남도청 제공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메르스 치료에 나선 병원의 노력을 적극 환기시키는 모습을 보였다. |
치료 병원 감싸고 나선 안희정
메르스 대응을 놓고 잔잔하게 회자되는 인물은 안희정 충남도지사다. 안 지사는 당초 박원순 시장보다 한발 앞서 자신이 직접 메르스 사태를 지휘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중앙정부의 대응이 허술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중앙정부를 질타하는 대신 ‘긴밀 공조’ 체제를 구축한 것임을 강조했다. 하루 두 차례 대책본부 회의를 열고 각 시·군의 유관 기관장들과 수시로 회의를 여는 등 소리 없는 강행군을 벌이고 있다.
안희정 지사는 이 과정에서 다른 면모를 보였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박원순 시장이 중앙정부의 무능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사태를 해결하려 했다면, 안 지사는 외려 감쌌다. 6월7일 보건복지부가 서울시·경기도·충청남도·대전시 등 4개 지자체와 ‘메르스 대응을 위한 실무협의체’를 꾸리는 데도 적극 중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안 지사는 메르스 치료에 나서고 있는 병원의 노력을 적극 환기시켰다. 정부의 삼성서울병원 봐주기 논란으로 메르스 치료 병원 전체에 곱지 않은 시선이 생겨날 무렵이었다. 안 지사는 메르스 치료 병원과 의사를 응원해달라고 호소했다. 안 지사가 ‘남다른 리더십을 보여줬다’고 평가하는 이들이 줄을 이었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안 지사가 천안 단국대병원의 경영 상태까지 염려하며 병원을 다독이는 걸 보면서 ‘아 저거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사면초가에 빠진 박근혜
메르스 사태 초기 박근혜 대통령의 대응은 엉망진창이었다. 세월호 때와 마찬가지로 컨트롤타워가 없었고, 정부의 메시지는 우왕좌왕했다. 박원순 시장이 긴급 브리핑을 연 6월4일 밤에도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국회법 개정에 대한 청와대의 입장을 강조하는 전화를 기자들에게 돌린 것으로 알려져 보수 언론조차 아연실색하게 했다.
![]() |
||
ⓒ청와대 제공 6월5일 박근혜 대통령은 첫 메르스 확진 환자 발생 16일 만에 국가지정 격리병상을 방문했다. |
6월 둘째 주 들어 청와대의 변화가 감지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병원 명단을 공개하라고 지시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리는 등 존재감을 알리려 애썼다. 결정적인 대목은 미국 방문 일정 연기였다. 방미 일정을 연기하라는 각계의 요구에도 끝까지 버티던 청와대는 6월10일 대통령의 방미를 연기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방미 논란을 보다 못한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대미 관계를 위해 예정대로 미국을 방문하라”고 말한 다음 날이었다. 국회법 논란 때 박 대통령 편을 들던 친박계 의원들마저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서는 입을 다물 즈음이었다.
청와대로서는 승부수였다. ‘국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사면초가에 빠진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한 수였다. 그럼에도 6월12일 한국갤럽 조사에서 대통령 국정 수행 평가 지지율은 전주보다 1%포인트 하락한 33%였다. 국정 수행에 대한 부정 평가는 전주보다 3%포인트 상승해 58%를 기록했다. 방미까지 연기한 것치고는, 초라한 성적표였다.
현장의 양심선언 "이렇게 메르스에 무너졌다!"
5월 20일 삼성서울병원에서 1번 환자를 놓고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확진 판정을 내린 지 벌써 만 한 달입니다(6월 19일). 그 동안 165명이 메르스에 감염되었고, 안타깝게도 23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6월 18일 오전 6시 기준). 격리 대상자는 6729명. 격리를 경험한 이들까지 염두에 두면 1만 명이 넘습니다.
한 달간 메르스를 취재하면서 여럿으로부터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받았습니다.
"도대체 초기 대응이 왜 그렇게 미숙했던 거예요?" "병원 공개를 도대체 왜 안 했던 거예요?" "병원 공개를 하지 말자고 목소리 높였던 사람은 누구예요?" "삼성서울병원은 도대체 왜 저 지경이 된 거예요?" "지역 사회 감염은 정말로 없는 거예요?" "메르스가 잡히기는 할까요?"
열심히 이런 질문의 답을 찾았지만, 명쾌한 답을 얻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정보가 이중삼중으로 차단된 탓이었죠. 그러다 16일 밤에 전화번호 하나를 받았습니다. 5월 20일 메르스 확진 환자가 처음 나오고 나서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최전선에서 메르스와 싸워온 P씨의 것이었습니다. 직접 방역을 담당하는 실무자의 육성을 비공식적으로 듣는 것은 <프레시안>뿐만 아니라 다른 언론에서도 없었던 일입니다.
전화를 걸었더니 피곤한 목소리의 P씨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는 질문에 조심스럽게 답했습니다. 나중에는 독자에게 자신의 답변을 알리는 데도 동의했습니다. 신분은 최대한 감춥니다. 왜냐하면, 신분이 노출되면 불이익을 당할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약 1시간에 걸친 그의 고백을 들어보겠습니다. 앞으로 그를 '닥터 P'로 지칭하겠습니다.

ⓒ프레시안(최형락)
"처음에 심각한 오판이 있었다"
프레시안 : 메르스 사태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갑니다. 많은 시민들이 이 생소한 바이러스가 계속해서 통제되지 않은 상황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닥터 P : 처음부터 이번 사태를 막는 데 참여했던 전문가로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특히 소중한 생명을 잃은 환자들, 그리고 사랑하는 그들을 떠나보낸 유가족에게는 입이 몇 개라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위로를 보냅니다.
프레시안 : 마음이 편치 않겠지만 솔직히 말씀해 주십시오. 도대체 처음에 대응이 왜 그렇게 엉터리였던 겁니까? 정부는 금세 진압할 수 있을 것처럼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닥터 P : 정보 부족과 심각한 오판이 있었죠. 중동에서 메르스가 발생한 지 고작 3년 밖에 안 되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를 빼놓고는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나라도 몇 나라 안 됩니다. 우리나라도 이번이 처음이고요. 그래서 방역 당국이 메르스와 그것을 유발하는 바이러스에 대해서 아는 것이 너무 적었습니다.
아는 것이 적다 보니 처음에는 세계보건기구(WHO) 지침대로 하는 게 최선이었죠. 그런데 WHO에서 파악한 메르스의 특징은 낮은 감염력이었어요. 그래서 초기 대응이 그렇게 허술했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정보 부족이 초래한 심각한 오판이었던 셈이죠. 하지만 그 시점에서는 그것이 합리적인 대응처럼 보였습니다.
"지역 사회 감염 가능성 낮다. 다행이다"
프레시안 : 불확실성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군요. WHO는 지역 사회 감염 가능성도 낮다고 얘기했죠?
닥터 P : 사실 초기에 대응이 느슨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메르스의 지역 사회 감염 사례가 드물다는 것이었죠. 아직은 조심스럽기는 합니다만, 그 특징은 여전히 유효한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도 아직까지 병원 밖이라고 정확하게 특정할 만한 지역 사회 감염 사례는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관리가 제대로 안 된 탓에 감염자가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도 이용하고, (자각 증상이 없는 상태긴 했습니다만) 1500명 이상의 모임에도 참석하고, 며칠간 업무도 평소처럼 보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었죠. 그런데 아직까지 그런 과정에서 감염된 메르스 환자는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로 다행스러운 일이죠. 앞으로도 지역 사회 감염이 안 나타나길 바랍니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한국 의료의 부끄러운 맨얼굴"
프레시안 : 그런데 정작 가장 안전해야 할 병원이 뚫리지 않았습니까? 특히 삼성서울병원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감염자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닥터 P :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이죠. 사실 중동에서도 의료 기관 내에서는 한 사람이 여덟 명까지 감염시키는 사례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병원 내의 감염은 정말로 조심했어야 마땅했죠. 방역 당국도 그 점인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이 삼성서울병원이 뚫렸죠. 이 대목이 특히 중요합니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은 한국 의료의 부끄러운 맨얼굴입니다.
사실 아프리카의 몇몇 나라에서 유행했던 에볼라도 감염률이 굉장히 낮은 전염병입니다. 전염성은 낮고 치사율은 높아서 최초 환자만 격리하면 희생자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어요. 하지만 아프리카에서의 몇몇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았죠. 왜일까요? 바로 장례할 때 시신을 만지는 풍습 때문에 그렇죠. 우리는 그런 풍습을 참으로 미개하다고 비웃었죠.
그런데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수십 명의 감염자가 나왔다는 사실을 한국의 실상을 잘 모르는 외국인이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요? 삼성서울병원의 대규모 감염 사태를 논문으로 써도 외국 학자들이 이해를 할 수 있을지 걱정이에요. 그들이 보기에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은 우리가 마치 아프리카의 장례 풍습을 미개하다고 비웃듯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일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하루 외래 환자만 8000명이 드나드는 삼성서울병원은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초대형 병원입니다. 그런데 그 대형 병원의 응급실에는 하루 200명 정도의 환자가 격리 없이 누워 있죠. 이들은 병실이 날 때까지 2박3일이고, 3박4일이고 응급실에 머뭅니다. 병원이 없는 것도 아닌데, 무조건 그 병원에 입원하려고 누워 있죠.
환자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보호자에다가 심지어 문병을 하러 방문객도 드나듭니다. 여기에 의사, 간호사까지 정말로 난장판이 따로 없죠. 응급실 하면 병실에 격리된 중환자와 의료진을 연상하는 외국인 입장에서는 이런 한국의 응급실 모습이야말로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일 거예요.
프레시안 : 바로 그 대목에서 메르스 바이러스의 고삐가 풀렸군요.
닥터 P : 맞습니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방역 당국이 의료 기관 내의 메르스 감염 사태를 예상 못한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메르스 바이러스가 우리의 독특한 의료 환경과 결합이 되었을 때, 어떻게 폭발할지는 미처 예측을 못했던 것이죠.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삼성서울병원에서 계속해서 감염자가 나오는 지금의 참담한 상황을 낳았습니다.
프레시안 : 메르스 바이러스가 한국의 의료 환경을 숙주로 삼은 격이군요.
닥터 P : 정확합니다. 이참에 이런 의료 환경을 바꾸지 않으면 또 다른 바이러스가 메르스를 대신할 겁니다.

ⓒ프레시안(최형락)
"바로 그 전문가들이 병원 공개 막았다"
프레시안 : 그런데 병원 공개는 왜 그렇게 늦었던 겁니까? 도대체 누가 그렇게 병원 공개를 막았던 겁니까?
닥터 P : 기왕 솔직히 털어놓는 자리니 낯부끄러운 얘기부터 해야겠습니다. 저를 포함해 초기부터 전문가 여럿이 메르스 방역에 투입되었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전문가 몇몇이 (삼성서울병원을 포함해) 병원을 공개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어요. 아마도 그런 전문가의 조언이 관료나 정치인의 이해와 맞아떨어져서 병원 공개가 늦어졌겠죠.
그러다 여론에 못 이겨서 병원을 공개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지 않았습니까? 내부에서도 더 이상의 비공개 방침은 곤란하다는 회의적인 목소리도 계속해서 나왔고요. 그러다 뒤늦게 6월 7일 병원 공개를 하게 되었죠. 그러자 갑자기 처음에 병원을 공개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전문가들이 마치 자기들은 처음부터 병원 공개 주장을 했던 것처럼 행세를 하는 거예요.
(<프레시안>은 6월 2일 정부 방침을 거스르고 평택성모병원의 실명을 공개하고 나서, 4일까지 삼성서울병원을 비롯한 당시까지 환자가 발생한 병원 명단 6곳과 동탄성심병원의 실명을 최초 공개했다. 그 후로 애초 병원 명단 비공개를 최종 결정하고 고집한 당사자가 누구인지 다각적으로 취재를 했다. 하지만 여전히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는 상황이다.)
프레시안 : 어처구니없군요.
닥터 P : 기가 막힌 일이죠. 자, 여기서 내부 고발을 해야겠네요. 지금 메르스 방역 체계에서 전문가의 목소리가 굉장히 큽니다. 심지어 한 감염내과 전문의는 차관급으로 임명되어 병원을 폐쇄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가지고 있죠. 대통령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터라서 모두들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죠.
프레시안 : 그 대목이 개인적으로 궁금했습니다. 그 분은 이번 메르스 사태 초기부터 방역에 전문가 자격으로 자문하셨던 분 아닌가요? 그렇다면, 그 분을 포함한 전문가들 역시 초기 방역 실패, 병원 비공개 등에 책임을 져야 마땅하죠. 그런데 정작 책임을 져야 할 분이 시간이 지날수록 권한이 더 세지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더군요.
닥터 P : 이번 메르스 방역의 제일 큰 특징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전문가, 특히 감염내과 전문의의 목소리가 컸다는 점이죠.
프레시안 : 그 대목부터 짚어보죠. 감염내과 전문의는 일단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를 치료하는 전문가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감염내과 전문의가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일선까지 진두지휘하고 있습니다. 그 둘은 엄격히 다른 것 아닌가요? 예를 들어,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일은 예방의학 특히 감염역학 전문가가 나서야 할 일 아닌가요?
닥터 P : 그 말이 맞긴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의학계에서 예방의학 전문가는 아주 소수예요. 그 중에서도 감염병을 전문으로 다루는 감염역학 전문가는 거의 손으로 꼽습니다. 그러니 왜 감염내과 전문가 목소리만 들리고 예방의학 전문가 목소리는 안 들리느냐고 묻는 건 현실을 모르는 소리죠.
오히려 문제는 다른 데 있죠. 일단 전문가가 저렇게 맨 앞에서 진두지휘하는 모습이 맞나요? 방역은 수많은 자원을 동원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고도의 행정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지극히 정치적인 행위입니다. 당연히 관료와 정치인이 맨 앞에 서야죠. 그리고 그들의 성과에 대해서 평가를 받고, 또 책임을 져야 할 일이 있으면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하고요.
그런데 지금의 모습은 어떤가요? 몇몇 전문가가 질병관리본부와 전국의 보건소 공무원 같은 공공 자원과 삼성서울병원과 같은 민간 자원을 총괄하는 엄청난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런 권한 행사가 문제가 되었을 때, 과연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프레시안 : 초기 대응 실패나 병원 비공개에 책임이 있는 전문가 몇몇의 권한이 오히려 세진 상황이 이해가 되네요.
닥터 P : 맞습니다. 전문가는 관료나 정치인이 최선의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자문하는 역할에 만족해야죠.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기존의 국가 방역 체계, 그러니까 보건복지부-질병관리본부-지방자치단체-보건소로 이어지는 이 체계가 제대로 작동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했죠.
지금 메르스 방역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애초 존재했던 이 국가 방역 체계가 제대로 작동을 안 하고 있었던 겁니다.
"실장급 질병관리본부장이 아무리 설명해도 장관은…"
프레시안 : 사실 초기 대응 실패로 그 국가 방역 체계의 한계가 드러나자 전문가의 목소리가 커지고 권한이 세진 것 아닙니까?
닥터 P : 그런 면도 있죠. 그런데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군대가 첫 전투에서 패했다고, 기존의 지휘 체계를 무시하고 외부에서 자문하던 학자를 지휘관으로 앉히면 전쟁을 계속할 수 있겠어요? 처음에 국가 방역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그런 시행착오를 극복하고 후속 대응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죠.
그런데 이번에는 첫 대응을 잘못했다고 아예 국가 방역 체계를 무시하고, 그 위에 외부의 민간인 전문가가 군림해서 진두지휘하는 이상한 체계를 만들어 버렸죠. 그것도 우왕좌왕하다 한참 늦게죠. 또 그렇게 뒤늦게 만든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 같지도 않고요. 이번 메르스 대응을 되짚을 때 이 대목은 두고두고 평가를 해야 할 대목입니다.
프레시안 : 무슨 말씀인 줄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 국가 방역 체계의 여러 구멍이 드러난 것도 사실이잖아요. 한편으로는 국가 방역 체계의 일선에서 지휘해야 할 관료, 정치인이 제 역할을 못하기도 했고요.
닥터 P : 그건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애초부터 문제투성이였어요. 당장 역병이 돌면 최전선에서 싸우는 지휘관이 질병관리본부장입니다. 그런데 질병관리본부장이 실장급이에요. 이번에도 질병관리본부장이 특히 보건복지부 장관 앞에서 상황을 이해시키는데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장관이 감염병은 물론이고 보건의료에 대해서 문외한이었으니까요.
프레시안 : 사실 문형표 장관은 이 국면에선 최악의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던 것 같습니다. 본인에게도 불행이고, 국민에게도 불행이죠. 보건의료에 문외한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정부가 가능하면 나서지 말고 시장이 알아서 하도록 하자는 입장을 가진 분이잖아요. 역병이 돌면 정부가 있는 힘껏 역할을 해야 하니, 얼마나 당황스러웠겠어요.
닥터 P : 차마 전하지 못할 일화도 많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질병관리본부장의 말이 먹히지 않는 구조가 애초 존재했던 거죠. 거기다 나중에는 외부의 전문가가 대통령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서 사실상 질병관리본부장, 그리고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는 보건복지부 장관 위에서 군림하고 있으니 국가 방역 체계가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죠.
프레시안 : 그렇게 외부의 전문가가 목소리를 키울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국가 방역 체계의 취약성을 보여준 한 사례 아닐까요?
닥터 P : 정확한 지적입니다. 당장 메르스 감염 원인과 전파 경로를 파악하는 역학 조사 자체도 해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지금 34명의 역학 조사관이 있습니다. 이 숫자도 미국의 2000명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숫자죠. 더구나 그 가운데 32명은 경험이 없는 군 복무 중인 공중보건의(공보의)입니다. 질병관리본부 소속 정식 공무원은 달랑 2명이죠.
공공 병원의 사정은 어떻습니까? 한국의 공공 병원은 병상 수를 기준으로 전체의 12%에 불과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77%와 비교하면 언급하기가 민망할 정도입니다. 국가가 곧바로 동원할 수 있는 공공 병원이 적으니 당연히 환자를 격리하고 치료하는 데 굼뜰 수밖에 없겠죠.
아까 한국에서 예방의학 전문가가 소수라고 얘기했죠? 왜 소수겠어요? 이런 공공 의료 영역이 협소하다 보니, 예방의학을 전공해도 일자리가 없습니다. 일자리가 없는데 누가 전공을 하겠습니까? 이런 국가 방역 체계의 문제를 방치해 두면, 앞으로도 이번 메르스 사태와 똑같은 일이 반복될 가능성이 큽니다. 정말로 국가 방역 체계를 강화해야 해요.
프레시안 :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면, 지금 일선에서 방역 업무를 담당하는 이들을 마냥 욕할 수도 없네요.
닥터 P : 시민들에게 죄송스런 마음에 일선에서 정말로 죽기 살기로 방역 업무를 담당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서 일하고 있는지도 한 번 눈길을 주십시오.
"메르스, 잡히긴 잡힐 겁니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메르스가 잡히기는 할까요?
닥터 P : 방역의 경우에는 항상 예측 못할 변수가 있습니다. 그런 불확실성을 깊이 고려하지 않은 탓에 이번에도 대응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고요. 그래서 말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견해를 말하자면, 잡히기는 잡힐 겁니다. 당장 삼성서울병원에서 나오는 환자 수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역 사회 감염이 다행히 안 나오고 있고요.
지금 제2의, 제3의 삼성서울병원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데 가장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사실 방역 당국이 제일 걱정했던 병원은 대전의 을지대학교병원 중환자실이었어요. 다행히 그곳에서는 삼성서울병원 같은 대량 감염 사태가 일어난 것 같지는 않아요. 중환자실이어서 거동이 불편한 중증 환자 외에는 아무래도 오고간 이들이 제한적이었으니까요.
프레시안 : 삼성서울병원을 거쳐서 지역 거점 병원의 응급실 등으로 가는 이들이 있었을 수 있잖아요? 이미 그런 사례가 나오고 있고요.
닥터 P : 그러니까 그런 상황을 제일 걱정하는 거죠. 일단 그런 일이 나타나면 격리 조치 등을 신속히 하고서 추가적으로 감염을 막는 수밖에 없어요. 일단은 삼성서울병원 감염자를 추적해서 치료하고 또 다른 병원 내 대량 감염 사태가 나오지 않도록 막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더 중요한 일은 지금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는 중증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고요.
프레시안 : 어려운 인터뷰에 응해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고생해 주십시오.
닥터 P : 메르스가 잡히고 나서가 더 큰일입니다. 이번에는 꼭 국가 방역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얘기를 한 번 더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미 일어난 미래" 한국경제의 시스템 붕괴를 막는 유일한 해법은 정치권 물갈이 뿐
21세기는 지식정보로 움직이는 시대입니다. 대한민국은 지식정보화시대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으면서 변화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눈부시게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인터넷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듯이, 전세계가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어 실시간으로 정보가 돌아다닙니다. 정보는 널려있고 "공신력있는, 검증받은 전문가"가 확인을 해주면 사람들은 스스로 알아서 판단합니다. 인터넷을 없애지 않는 이상, 정보통제는 불가능합니다. 투명하게 공개 하지 않고 막으려 한다면 괴담과 유언비어만 퍼질 뿐입니다. 국민들이 정부를 믿지 않게 됩니다.
.
.
정부는 그렇다 치고, 국회 과반에 가까운, 130석의 야당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대통령이 일은 안하고 연예인 행세를 하고 다니는데, TV 조선 같은 종편만 바라보면서 사태 추이를 관망하고 눈치만 보고 있다는 인상입니다. 비노네, 친노네, 새누리당 세작이네, 구태네 뭐네 내년 총선 밥그릇 쟁탈전에, 지들끼리 집안 싸움이 가관입니다. 메르스 재난이 터지니까 손발 놓고 관망만 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은 개인 각자가 국가의 헌법기관이고, 야당은 여당과 함께 국회를 구성하는 국정운영의 파트너 아닙니까? 정부가 일을 안하면 불러다가 야단쳐서 일하게 만들고, 잘못하면 책임 지우고, 야당은 야당대로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해줘야 하지 않습니까? 약점이 많아서 대통령 비판하고, 정부 여당 비판하면 감방갑니까? 그럼 야당 국회의원 하지 말아야지, 쓰레기가 일도 안하면서 왜 국회의원은 하면서 세금 받아쳐먹습니까? 세월호 유가족들이, 피해자들이 왜 정부와 무뢰배들의 일방적 폭력과 조롱 속에 노출되어 고통받게끔 방치 합니까? 새정련 너네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뻔뻔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겁니까?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늘상 느끼는 것이지만, 대한민국 모든 문제의 핵심은 일반 국민들을 통제대상, 관리대상으로 바라보는 정부와 정치권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21세기 지식정보화 시대, 선진국에서는 국민주권의 시대가 한참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봉건시대에나 어울릴 법한 "내가 정치인네, 내가 관료네, 기자네, 나는 일반시민이 아닌 특권귀족 계층이네" 마인드로 거들먹 거리고 행세나 하는 자들이, 독점적 기득권에 안주해왔기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무지와 무책임, 도덕적 해이 충만함 속에 국민의 혈세를 축내면서. 21세기에서 같은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지만, 정신은 20세기 유신시대에 머물러 있는, 자기개혁 가능성 제로의 정치인들과 영혼없는 관료들이 대한민국 고질적 만악의 근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료, 복지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난한 자는 '현금'에 집착한다! - 한국을 위한 복지 처방전 (0) | 2015.06.22 |
---|---|
'매드맥스' 한국, 쿠오바디스! (0) | 2015.06.20 |
"삼성서울병원 공개를 막은 X는 누구인가?" (0) | 2015.06.15 |
"중증 메르스, 에크모 없으면 죽습니다" - "메르스 재앙, '공무원 탓' 말라!" (0) | 2015.06.12 |
한국의 미래…병들고 가난한 노인들의 나라 (0) | 2015.05.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