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복지 칼럼

"중증 메르스, 에크모 없으면 죽습니다" - "메르스 재앙, '공무원 탓' 말라!"

일취월장7 2015. 6. 12. 10:18

"중증 메르스, 에크모 없으면 죽습니다"

[인터뷰] "중증 메르스 환자 치료 센터 지정해야"
강양구 기자2015.06.12 07:47:23
 
11일 <한국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이 삼성서울병원 의사 35번(38) 환자의 "뇌사" "사망" 등의 오보를 내면서 많은 시민이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알레르기 비염 외에는 특별히 아픈 곳이 없던 이 의사가 불과 며칠 만에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로 목숨을 잃었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더구나 그 의사는 불과 며칠 전에 여러 매체와 병상 인터뷰도 했었죠.

하지만 이 의사의 "뇌사" "사망" 등의 보도는 결국 오보로 밝혀졌습니다. <프레시안> 확인 결과, 이 의사는 메르스로 폐 기능이 심각하게 손상된 상태여서 '에크모(ECMO)' 치료를 받는 중입니다. 자가 호흡이 곤란한 상태의 환자라서 외부에서 혈액에 직접 산소를 주입해서 몸속으로 넣어주고 있는 것이죠.

에크모 치료는 메르스 중증 환자에게 꼭 필요한 처치입니다. 하지만 정작 정부가 지정한 메르스 치료 병원 가운데 이 치료를 제대로 할 수 있는 병원이 드물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이 지적대로라면, 상태가 심각해진 메르스 환자의 경우에는 사망할 가능성이 훨씬 더 커집니다. 서울 소재 한 대학 병원 호흡기 내과 전문의의 증언입니다.

프레시안 : 어제(11일)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치료 중인 삼성서울병원 의사 35번 환자의 상태를 놓고서 설왕설래가 많았습니다. "뇌사" "사망" 등은 오보로 확인이 되었죠. 그런데 상태가 심각해서 에크모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의사 L : 35번 환자의 경우는 메르스로 폐 기능이 손상되어서 호흡 기능 상실이 온 것으로 보입니다. 이 경우에는 자가 호흡을 통해서 공기 중의 산소를 몸속으로 흡입할 수 없습니다. 인공호흡기로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그럼, 에크모 치료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프레시안 : 에크모 치료가 뭔가요?

의사 L : 환자의 정맥에 에크모 장치를 연결시켜서 일단 혈액을 밖으로 빼냅니다. 그리고 그 혈액에 산소를 주입한 다음에 다시 동맥이나 정맥에 넣어줍니다. 환자의 심장, 폐 등의 기능이 심각하게 손상을 입을 때 바로 이 장치가 필요하죠. 메르스 중증 환자의 경우에는 이 에크모 치료가 꼭 필요합니다.

프레시안 : 메르스가 완치되어 퇴원하는 환자를 내세우며 정부는 "대수롭지 않은 병"이라는 메시지를 시민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의사 L : 애초 몸이 건강해서 메르스를 잘 이겨낼 경증 환자의 경우에는 관리만 잘하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애초 다른 질환을 가지고 있는 노약자나 혹은 35번 환자처럼 갑작스럽게 상태가 심각해지면 중증 환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중증 환자의 치료는 경증 환자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프레시안 : 그런 환자는 최악의 경우에 에크모 치료가 필요하다는 말씀이군요.

의사 L : 맞습니다. 중증 환자의 경우에는 인공호흡기만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 때는 에크모 치료가 필요합니다.

프레시안 : 에크모 치료는 정부가 정한 메르스 치료 병원 어디서나 받을 수 있습니까?

의사 L : 그 대목이 걱정입니다. 에크모 치료는 경험이 풍부하고 훈련된 의료 인력이 준비되어 있는 병원에서 시행해야 안전할 뿐만 아니라 그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서울 지역에서는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분당서울대학교병원, 고려대학교안암병원, 상계백병원 정도가 준비가 되어 있는 병원이죠. 지방 병원 가운데는 충남대학교병원, 전북대학교병원, 부산대학교양산병원 정도가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프레시안 : 메르스 치료 병원 가운데 상당수의 이름이 빠져 있네요.

의사 L : 맞습니다. 현재 메르스 확진 환자를 치료 중인 서울의료원에서도 에크모 치료를 1회 시도했으나 실패해서 초기 사망자가 발생했죠. 제가 알기로는 서울의료원에서 처음으로 호흡 기능 상실 환자에게 에크모 치료를 시도했다 실패한 것입니다. 앞으로 전국 곳곳에서 이런 상황이 계속 나올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프레시안 : 중증 환자의 경우에는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는 얘기군요.

의사 L : 안타깝게도 상황이 그렇습니다. 이미 몇몇 지방 병원은 음압 병실도 부족하고, 의료진도 부족해서 중증 환자의 치료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서울로 환자를 이송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앞에서 지적한 대로 에크모 치료를 할 수 있는 병원은 부족하기 때문에 이런 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프레시안 : 위에서 열거한 병원이 있지 않습니까?

의사 L : 이미 환자를 받고 있는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충남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 정도를 제외하면 에크모 치료가 가능한 다른 민간 병원은 메르스 치료 지정 병원이 아닙니다. 이들 병원은 앞으로 발생하는 중증 환자 치료에 기여할 수 없죠.

프레시안 : 정부는 일반 시민이 메르스 감염 걱정 없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국민 안심 병원 명단을 오늘(12일) 발표할 예정입니다.

의사 L :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100명이 넘는 메르스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메르스 안심 병원을 지정하고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사망자를 줄이기 위해서 에크모 치료가 가능한 병원 등을 중심으로 중증 메르스 환자 치료 센터를 지정하는 것이죠. 일의 우선순위가 크게 잘못되었습니다. 걱정됩니다.

프레시안 : 정부는 다음 주면 확진 환자가 줄어들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의사 L : 기대대로 되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지켜봐야죠.

다시 강조하지만, 지금 100명이 넘는 확진 환자 가운데 계속해서 중증 환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호흡 기능 상실로 인공호흡기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증가하고 있어요. 이들의 상태가 더 심각해지면 에크모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그 환자들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목숨을 잃을까봐 걱정입니다.

 

 

 

 "메르스 기사, 10년 전 '황우석 사태' 생각나요"

[프레시안, 응원합니다] 최승호 뉴스타파 앵커
서어리 기자2015.06.11 15:19:38
 
요새 프레시안 편집국에선 새삼스레 10년 전을 추억하는 기자들이 늘었다. 선배 기자들은 "캬~" 하고 후배 기자들은 "읭?" 하는 까마득한 옛일, '황우석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태'. 선배 기자들은 당시를 회고할 때마다 입버릇처럼 말한다. '두려웠지만 행복했던 시절'이었다고.


2005년 황우석 사태 당시와 지금의 메르스 정국을 놓고 보면, 절묘하게도 겹쳐지는 부분이 있다. 지난 4일, 프레시안은 소송을 각오하고 '메르스 병원' 6곳의 실명을 최초로 공개했다. 한 마디로 '질렀다'. 김선종 연구원과 문화방송(MBC) 제작진의 인터뷰 녹취록을 단독 보도했던 10년 전 그때처럼. 병원 공개 이후로도 단독 기사와 35번 의사 환자 등 후속 기사를 쏟아내며 프레시안 기자들은 조금은 두렵고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다행히 독자들의 관심과 성원이 잇따랐다. '용기 있는 보도였다'며, 감사하게도 많은 격려를 받았다.

그래도 외로웠다. 정부가 마비된 상황에서, 국민의 건강과 알 권리를 위해 많은 언론이 프레시안과 함께해주길 바랐다. 그러나 정부가 5일과 7일 두 차례 공식 발표를 하기 전까지 다수 언론이 침묵을 지켰다. 단 한 곳,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타파만 빼고. 뉴스타파는 지난 5일 '메르스 감염 지도' 기사를 통해 메르스 병원 6곳의 정보를 공개했다.

프레시안과 함께 병원 실명을 공개한 언론이 하필 뉴스타파라는 점도 10년 전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은 뉴스타파의 대표 얼굴이 된 최승호 앵커, 그는 황우석 사태 당시엔 MBC <PD수첩> 책임 프로듀서(CP)로서 줄기세포 조작 의혹을 파헤쳤다. 여러모로 프레시안과 연이 깊은 그는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의 조합원이기도 하다.

뉴스타파 메르스 첫 보도가 나가기 하루 전인 4일, 서울 마포구 뉴스타파 스튜디오에서 프레시안 전홍기혜 편집국장과 최 앵커가 만났다. 기시감을 느낀 건 전홍기혜 편집국장만이 아닌지, 최 앵커 또한 10년 전 이야기부터 풀어놓았다.


 

▲최승호 뉴스타파 앵커. ⓒ프레시안(최형락)

 


"방송 중단 속상해 밤새 술 마시고 일어나니, 프레시안이 사고를?!"


때는 2005년 12월 4일 오후 세 시경. 당시 최 앵커는 12월 6일 자 <PD수첩> 방송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이 가짜임을 밝힐 결정적 증거들을 한창 편집하던 중이었다. 누군가 TV를 보라고 해서 틀어 보니, YTN이 'MBC 제작진이 취재윤리를 위반하면서 황 교수를 음해하려 했다'는 김선종 연구원의 인터뷰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었다. MBC와 제작진을 향한 비난 여론이 쏟아졌다. MBC 내부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황 교수의 논문 조작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김 연구원을 압박한 건 맞지만, 그와 별개로 논문이 가짜라는 건 명백하게 밝혀져야 할 사실이었다. 그러나 결국 방송이 막혔다. 국민 정서를 거스를 수 없다는 경영진의 판단이었다.

"'무기한 방송 중단'이라는 통보를 받았어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었지요. 방송을 하면 그 논문이 가짜인 게 밝혀지는데 왜 못 하게 하는지…. 그날 <뉴스데스크>에서 사과 방송을 하는 걸 보면서 한학수 PD랑 밤새도록 술 마셨어요."

다음날 엄청난 숙취에 시달릴 즈음, '줄기세포 논문 가짜 의혹' 보도가 떴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고를 친 곳이 어딘가 하고 보니, 프레시안이었다. <PD수첩>이 쥐고 있던 줄기세포 유전자 지문 분석 결과뿐 아니라, 한학수 PD와 김선종 연구원의 인터뷰 녹취록 전문까지 공개했다. 제작진이 프레시안에 자료를 건넨 건 아니었다. 독자적으로 취재해서 내보낸 보도였다.

"'방송이 중단됐으니 이렇게 진실이 묻히는 건가' 하고 우리 제작진들은 상당히 암울해했어요. 그런데 프레시안 보도를 보면서 다시 '희망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실제로 그 보도가 나간 뒤부터 상황이 급격하게 바뀌었죠. 그래서 누군가는 그랬다고 해요. '고래들이 싸움을 끝낸 뒤 새우가 칼 들고 나섰다'고."

파문이 크게 일자 다른 언론들도 앞다퉈 황우석 논문의 진위 여부를 캐기 시작했다. 의혹은 결국 사실로 드러났다.

"MBC 사장이 프레시안에 엄청난 영광을 줬다고 봐요. 혹시 사장이 프레시안을 굉장히 좋아했던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웃음)


 

▲2005년 황우석 사태 당시 MBC <PD수첩>을 진행했던 최승호 앵커의 모습. ⓒ뉴스타파

 


"죽지 않고 끝까지 버틴 프레시안, 대단합니다"

지금이야 다 밝혀진 상태이니 하하호호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그땐 보도 하나, 방송 한 번 하는 게 살 떨리도록 무서운 일이었다.

"가짜 논문 의혹에 대한 제보를 처음 받고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워낙 황 교수를 애국자로 떠받드는 분위기라, 과연 방송을 했을 때 <PD수첩>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가늠이 안 됐어요."

다행히 나중에 방송이 다시 나갔지만, 대중을 떼로 등진 대가는 혹독했다. 빗발치는 항의 전화에 못 이긴 광고주들이 광고를 하나둘 끊기 시작했다. 줄기세포 조작 의혹 첫 방송 다음 주에는 광고가 정말 하나도 없었다. '방송 타이틀이 나가자마자 스튜디오 화면이 나온 유일무이한 방송'이 됐다.

"권력하고 싸운 건 여러 번 경험이 있지만, 대중과 싸운 건 황우석 사태가 처음이었어요. 'PD수첩 폐지' 보도자료가 나갈 정도로 어마어마한 공격을 당했죠. 대형방송도 못 견딜 만큼 힘들었는데, 프레시안처럼 작은 회사는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MBC에 비할 바가 아니죠. 그 심정이 이해가 가더라고요. 안쓰러웠죠. 그런데도 죽지 않고 끝까지 버텼잖아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프레시안은 거대 권력뿐 아니라 대중의 요구에도 저항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언론이에요."

 

 

▲최승호 앵커가 지난달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지금은 그 때보다 훨씬 더 칠흑같은 어둠 속이긴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잡은 손을 놓치지만 않는다면 결국 이겨낼 겁니다."

 


 

 

 


"우리 '새우 언론'들, 칼 들어야죠"

황우석 사태를 포함해 '아닌 건 아니'라고 하던 최 앵커는 결국 2012년 장기 파업 이후 MBC를 떠났다. 엄밀히 말하면 쫓겨났다. 새 둥지를 찾았다. 탐사보도 전문매체 뉴스타파. 꼭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그는 이곳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MBC 때와 달리 지금은 피디부터 작가까지 혼자 1인 다역을 해야 하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편하다. 경영진 눈치를 보지 않고 뭐든 취재할 수 있다. 취재한 내용은 고스란히 방송에 반영된다. '차 떼고 포 떼는' 방송이 아니라는 데서 가장 큰 만족을 느낀다.

'차 안 떼고 포 안 떼는' 방송은 정직한 뉴스를 갈구하던 언론 소비자들을 끌어모았다. 후원 회원 3만5000명. 뉴스타파는 광고 하나 없이 오롯이 후원금만으로 뉴스를 제작한다.

조세피난처,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 세월호 사고 보도 등을 통해 세운 뉴스타파의 위상은 내부 구성원들의 치열한 노력의 결과다. 그러나 무기력한 공영방송 또한 뉴스타파의 입지를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준공영방송' MBC에서 쫓겨 나왔지만, 웃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대중이 언론을, 정부를 믿지 못하면 사회가 더 이상 발전하기 어렵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결국 언론 구성원이 두 눈 부릅뜨고 스스로를 감시하는 일이 중요해요. 그런데 지금 MBC, KBS 구성원들에게 그런 걸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온 것 같아요. 그럴수록, 고래 싸움이 끝나고 새우가 칼을 들 듯이 '새우 언론들'이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새우처럼 작은 언론을 독자들이 많이 도와준다면, 새우 언론이 공영언론의 빈 공간을 메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프레시안(최형락)

 


"좋은 언론에는 비용이 듭니다"

새우가 살기 위해선, 작고 여린 이 생물이 살아남을 환경이 받쳐줘야 한다. 새우 언론이 고사하지 않으려면, 독자들의 관심과 후원이 필요하다.

"좋은 언론에는 비용이 듭니다. 언론 지형은 프레시안이나 뉴스타파 같은 대안언론들이 먹고 살기 힘든 방향으로 굳어져 가고 있습니다. 프레시안, 우리 사회 전체를 봤을 때 존재해야 하는 언론이지 않습니까. 광고 많다는 이유로 보기 싫다고 거부한다면, 프레시안이라는 좋은 언론을 우리 사회가 가질 수 없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적극적인 기사 공유와 후원이 새우 언론을 좀 더 자라나게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조합원으로서 프레시안에 바라는 점을 물었다.

"이번 메르스 기사들을 보니, 황우석 사태 때 매섭게 기사를 쏟아냈던 과거의 프레시안이 생각납니다. 무척 용기 있는 결정이었다고 보고, 앞으로도 이렇게 존재감 있는 기사가 많이 나오길 바랍니다. 언론협동조합으로서 발전 또한 기원합니다."

 

 

"메르스 재앙, '공무원 탓' 말라!"

[주간 프레시안 뷰] 사스와 메르스…똑같은 공무원, 다른 건 지도자
영국에서 화재 경보가 울리면

영국 유학 시절의 일입니다. 15층 기숙사 건물의 10층에 짐을 풀고 채 한 달이 되지 않았을 때, 화재 경보가 울렸습니다. 화재 경보가 울린다고 별 일이 있겠습니까. 아마 누군가 실수로 눌렀거나, 고장 확인을 위해 눌러 본 것일 테니 곧 꺼질 줄 알았지요.

그런데 웬걸, 한 15분이 되어도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경보는 계속되었습니다. 슬슬 부아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장난도 유분수거니와 문제가 생겼으면 빨리 직원이 조치를 취해서 고쳐야지 이렇게 오랫동안 시끄럽게 경보가 울려대다니요.

그 때 누군가가 제 방문을 쾅쾅 두들깁니다. 문을 열었더니 경비원입니다. 다짜고짜 고함을 지르면서 묻습니다. "너 귀머거리냐, 지금 경보 울린 것 안 들리느냐?" 저는 되물었습니다. "잘 들린다, 그런데 무슨 일이냐?" 그랬다가 다시 한 번 큰 호통을 들었지요. "무슨 일이냐니? 화재 경보가 울렸잖아. 그럼 뭘 해야 하지?"

그제야 저는 조금 눈치를 챘습니다. 알았다면서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기고 천천히 신발을 신고 있는데, 경비원은 서두르라고 계속 잔소리를 늘어놓았습니다. 그렇게 방 밖으로 나와서 엘리베이터를 눌렀다가 또 한번 혼쭐이 났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이제 다들 알아 채셨을 겁니다. 저는 경비원과 함께 10층부터 계단을 걸어서 내려왔습니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수십 명의 학생들이 대피선이 그려진 한쪽 구석에 모여 있었고, 저를 보면서 한숨을 쉬며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몇몇은 머리를 가리키며 손가락을 빙빙 돌렸습니다. '정신이 어떻게 된 것 같은 저 학생은 도대체 어느 나라 애냐?'는 말도 들렸습니다.

이것이 제가 태어나서 처음 제대로 받아 본, 화재 경보 훈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화재 경보 훈련은 한 달에 두 번씩, 불시에 계속되었습니다. 나중에 이 훈련이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모든 학교에서 한 달에 두 번 불시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화재 경보가 울리면

작년에 한국에 돌아와 가을 학기에 어느 대학에서 첫 강의를 맡게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수업 중에 화재 경보가 울렸습니다. 영국이라면 지체 없이 모든 학생이 빠른 걸음으로 정해진 가까운 비상구를 향했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누구의 명령이나 지시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복도로 뛰쳐나온 사람은 저 혼자였는데, 원칙대로라면 저는 꿈쩍하지 않는 제 수업의 학생들을 인솔해 5층에서 1층으로 계단을 통해 내려온 후 정해진 장소로 대피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 역시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럴 용기가 없었습니다.

다만 학생들에게, "원칙대로라면 여러분은 경보가 울리자마자 나에게 물을 필요 없이 강의실을 빠져나가 대피했어야 한다. 그리고 이 경보가 실제 상황이었다면 여러분과 나는 이미 죽었다"고 말했을 뿐입니다.

올해 또 한번 화재 경보를 들었습니다. 세월호 1주기였던 4월의 어느 날, 제가 사는 곳의 지하철역이었습니다. 플랫폼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을 때, 화재 경보가 울렸습니다. 이번에도 아무도 화재 경보에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번에도 망설였습니다. 원칙대로라면 저는 즉시 지하철역 밖으로 대피 했어야 합니다. 만약 연기를 발견하면 방독면을 착용하고, 소화기도 휴대했어야 할 겁니다. 그리고 조금 더 책임감이 있었더라면, 다른 사람들이 지하철에 타는 것을 제지하고 대피를 유도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미친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국가의 책임을 공무원에게 물을 수는 없습니다

중동감기 메르스가 한국에 왔습니다. 초기에 보건복지부는 메르스 자체를 무시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첫 확진 환자가 발생한 날 한가하게 운동회를 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운동회를 하려다가 철회했다는 거짓말을 직원들에게 강요했다가, 결국 모든 것이 들통나자 "작년에 세월호 때문에 못했다. 이번만큼은 제대로 해보자 했는데 딱 그날 환자가 나온 것"이라고 안타까워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또 병원에서의 2차 감염이 주요한 전파 원인라는 점을 이미 5월 하순에 파악하고도, 메르스 확진 환자가 거쳐 간 병원 응급실에 대한 폐쇄 결정을 유보했습니다. 병원의 손실에 대한 배상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랬다는 겁니다. 결국 인하대병원처럼 스스로 결단해서 능동적으로 대처한 곳이 있는 반면, 서울삼성병원처럼 끝까지 숨기다가 이제는 메르스의 온상이 된 곳도 생겼습니다.

대통령과 청와대는 억울할 것입니다. 애초에 보건복지부는 별 일 아닌 것으로 보고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사실은 사태가 심각하고 우리부처가 잘 못 인식했다고 보고하기보다는 계속해서 축소 보고를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현재와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청와대와 대통령의 '정부가'로 시작되는 '유체이탈' 화법은 바로 이런 억울함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공무원 탓을 할 수는 없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태안 기름유출 사고가 일어났을 때, 일부 공무원들은 대통령을 앞에 두고도 예산 때문에 방재를 할 수 없다고 버티다가 대통령의 약속을 받고서야 태도를 바꾸었습니다. 현재 질병관리본부장을 맡고 있는 분이 과거 정부에서 사스를 훌륭하게 대처했던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 역시 많은 점을 시사합니다. 공무원은 그런 존재입니다. 책임은 그런 공무원들을 통제해야 할 임명직 공무원과 정치인에게 있습니다.

이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들에게 마스크를 쓸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정작 본인은 마스크로 얼굴을 꽁꽁 가리고 현장에 나타났습니다. 메르스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강구하지 않던 청와대는 국민들에게 안심하라고 말하면서 정작 청와대에는 열 감지기를 설치했습니다. 어제 열린 새누리당 대책회의에서는 메르스라는 병명이 공포스러우니, 보다 유화적인 다른 말로 바꾸자는 말도 나왔습니다.

민주주의에서는 국가의 책임을 공무원에게 물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청와대와 대통령이 착각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지도자는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을 영국 여왕에 비유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약용은 요순과 같은 성왕조차도 단지 '남면(南面)'하는 것만으로는 나라를 다스리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 지난 5일,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 ⓒ연합뉴스


세월호 1년, 데자뷰와 쌍둥이

세월호 1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메르스라는 신종 전염병을 맞닥뜨렸습니다. 두 가지 다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본 것은 데자뷰였습니다. 세월호와 메르스를 대하는 태도에서 해양경찰과 질병관리본부, 해양수산부와 보건복지부는 쌍둥이처럼 닮아 있었습니다.

이 정부는 세월호 사건 이후로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 정부는 본질적으로 그러한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아마 하지 않을 것입니다. 국방만이 안전이고, 사회의 안위가 신고와 색출에 달려있다는 대통령의 신념이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제가 이 정부와 대통령에 대해 쓰지 않는 이유입니다.

이 정부 하에서는, 언제든지 제2, 제3의 세월호와 메르스가 우리와 우리 가족의 생명과 안전을 곁에서 위협할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 정부의 남은 기간 동안 우리는 스스로 사는 법, 각자를 지키는 법에 대해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민주주의를 하면서 치러야 하는 대가입니다.

물론 동시에 우리는 민주주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위험의 그 가능성을 낮출 수 있습니다. 혹은 불가피하게 그런 일이 발생하더라도 그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정치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사회가 바뀌어야 정치가 바뀐다고 합니다만, 정치가 사회의 변화를 견인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지도자는 대형사고 이후, 안전의 날을 정하고, 기관을 해체하고 새로 만들고, 유언비어 유포자를 색출하는데 더욱 힘을 씁니다. 대피 훈련을 잘 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미리 시간을 정해서 여러 번 안내방송을 하고, 정해진 순서대로 화재대피 훈련을 합니다. 그것이 나라를 안전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다른 지도자는 대형사고 이후에 공무원들의 사고와 근무방식을 점검하고, 모든 고층빌딩과 위험시설에서 실제로 불시에 대피훈련을 하게 할 것입니다. 모든 유치원과 학교에서 비상 대피훈련을 하고, 무엇보다 소방관들의 지위와 처우를 크게 개선할 것입니다. 그것이 실제로 나라를 안전하게 만드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죽지 맙시다. 그러려면 사회를 바꿔야 하고, 정치를 바꿔야 하고, 정치인을 바꿔야 합니다. 화재 경보가 울릴 때 원칙대로 행동하면 미친 사람이 되는 것이 바뀌지 않는 한, 우리는 상시적인 위험 속에 살게 될 것입니다. 물론 우리 스스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를 바꾸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수단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고백드릴 일이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 돌아와 첫 화재 경보를 듣고도 학생들을 대피시키지 않은 그 날, 저는 수업시간에 세월호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