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칼럼

학부모 상담, 칭찬 듣기 대회가 아닌데 말이죠

일취월장7 2015. 6. 1. 12:12

 

학부모 상담, 칭찬 듣기 대회가 아닌데 말이죠

학부모 상담주간을 운영하는 학교가 많다. 제대로 상담이 이뤄지면 교육 효과는 훨씬 좋아진다. 그런데 실제 상담은 난감한 경우가 많다.

  조회수 : 223  |  양영희 (하중초등학교 교사)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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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2호] 승인 2015.06.01  08:25:24

2주 동안의 지루한 상담주간이 끝났다. 혁신학교는 학부모 상담주간을 운영하는 곳이 많다. 아이 한 명 한 명을 제대로 알고 도와주려면 교사의 힘만으로는 어렵다. 가정과 연계해 함께 협력하고 이해할 때 교육의 효과는 커진다. 아이를 둘러싼 환경을 알고 참조하는 일, 아이를 효과적으로 돕는 일 등은 모두 아이를 ‘제대로 아는 일’에서 출발한다. 그 ‘아는 일’은 이해로 넓어지고 소통과 교육으로 확대된다. 상담주간은 한 아이에게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학부모와 직접 만나는 시간은 아이를 만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부모들은 교사를 만나면 무조건 아이를 칭찬해주기를 기대한다. 상담하는 부모들은 아이에 대해 교사가 긍정적 멘트를 해주지 않으면 무척 실망한다. 심지어는 뭘 잘하는지, 뭘 못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그 내면에는 칭찬에 대한 기대심리가 들어 있다. 잘하는 게 딱히 없는 아이에 대해 칭찬을 해달라니. 그런 표정을 보며 교사들은 난감하다. 어떤 부모들은 상담 직후 주변의 엄마들에게 담임에게서 들은 아이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자랑하는 경우도 많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박해성 그림</font></div>  
ⓒ박해성 그림

 
상담은 ‘아이 마음 읽기’다. 부모가 읽은 아이 마음과 교사가 읽은 아이 마음이 얼마나 거리가 있는지, 어른들은 무얼 수정해야 하는지, 아이가 어디서 행복을 느끼는지 아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또 교사가 보는 눈이 절대적일 수도 없는데 교사에게 인정받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 싶기도 하다. 게다가 몇 개월 동안 아이를 보고 ‘당신 아이가 어떻다’고 단정해서 말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담임을 이렇게 대하라’는 상담 매뉴얼이 있다고?

그래서 1학기 상담은 오히려 부모가 아는 아이에 대해 말해달라고 요청한다. 대다수 부모는 그럴 때 아이의 장단점을 매우 이분법적으로 설명한다. 마치 경기장의 심판처럼 어떤 선을 그어놓고 거기에 도달했는지를 말한다. 기준은 물론 부모가 마음대로 정한 것이다. 거의 모든 부모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것들’만 부각시켜 아이의 단점이라고 말한다. 그것들은 대부분 부모 욕망에 근거를 두고 있다. 심지어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상담주간에 담임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매뉴얼이 떠돌아다닌다고도 한다. 예를 들면 ‘무조건 집에선 잘한다고 해라. 아이 기 죽이는 말은 인정하지 마라. 아이가 선생님을 좋아한다고 해라’ 등등. 부모들의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아이가 집에서 얼마나 갑갑함을 느낄지 짐작이 간다. 그럴 때 교사는 꼭 필요한 말도 아끼게 된다.

이렇게 상담이 마음을 열고 만나는 자리가 아니라 겉도는 만남이 되면서 아이를 도울 시간도 놓쳐버린다. 고학년을 맡으면서 ‘왜 저렇게 될 때까지 그냥 내버려뒀을까’ 하는 아이들의 태도를 많이 본다. 이미 습관으로 단단하게 굳어져버린 아이들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낄 때도 많다. 그것이 어찌 아이만의 문제이겠는가? ‘칭찬만 요구하는 부모, 솔직하지 못한 교사’ 모두가 공조해서 빚어진 결과인 것이다.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부모와 교사가 긴밀하지 않을 때 그 틈새의 자유를 느낀다. 문제가 있어도 어른들이 쉽게 만나지 않는 것도 안다. 특히 맞벌이를 하는 가정의 아이는 상담주간에도 부모가 학교에 올 수 없음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줄 안다. 즉 학교에서의 문제 행동이 가정에 전달될 통로가 없다고 안심하는 것이다. 그래서 집에 가서는 잘하고 있으니 상담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하고, 교사에게는 부모가 바빠서 못 온다고 알린다.

올해는 상담주간을 운영하며 가능하면 아이의 학교 생활을 있는 그대로 자세히 전하려고 했다. 그랬더니 많은 부모들이 놀라며 당황했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정보와 다르다는 것이다. 정보가 다르면 부모의 태도와 교육도 달라진다. 사춘기에 막 들어선 아이들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모르는 부모들도 많았다.

이런 상담이 이뤄지면 교육의 효과는 이전보다 훨씬 좋아진다. 상담이 형식적이지 않으려면 진실과 진심이 편하게 오갈 수 있는 서로의 신뢰가 먼저 필요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표현을 한다며 아이를 미워한다고 흥분하는 부모와 아이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말하는 데에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학교로는 아이를 도울 수 없다.

 

 

국문학자가 유학 가야 해?

조회수 : 260  |  박태근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 연구원)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속담이 있다. 요즘 같으면 말이든 사람이든 미국으로 가는 게 맞겠다. 특히 지식인, 학자라면 ‘언어 권력’ 영어와 ‘지식 권력’ 미국을 벗어나기 어렵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문학, 한국사 연구자도 미국으로 유학을 가는 게 낫다는 말이 농담처럼 떠돌기도 한다. 실제 수치도 그렇다. 국가별 미국 유학생 수에서 한국은 중국과 인도에 이어 3위를 차지한다. 인구에 비례하면 엄청난 숫자다. 대학 교원의 박사학위 비율도 마찬가지다. 국외 박사학위 비율은 꾸준히 상승해 40%에 이르렀고, 이 가운데 3분의 2가 미국에서 학위를 받았다.

김종영 교수는 이렇듯 미국 유학 후 한국에서 엘리트로 자리 잡은 이들을 <지배받는 지배자>(돌베개 펴냄)라 명명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문화 헤게모니를 가지지만, 여전히 글로벌 헤게모니의 지배를 받는 이중적 지위를 뜻하는 말이다. 이들은 미국 대학의 헤게모니에 종속되는 덕분에 한국에서 권력을 누릴 수 있다. 자연스레 현재의 권력 구도를 깨기보다는 이 격차를 활용해 좀 더 나은 자리를 얻는 데 힘을 쓰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미국 유학파 지식인의 헤게모니는 점차 강해지고 이에 도전하려는 약자의 지식 권력은 보잘것없는 게 되고 만다. 게다가 미국 대학과 비교되는 한국 대학과 학계의 천민성은 미국 대학이 한국 대학 변혁의 전범처럼 느껴지게 해, 지배받는 지배자들이 지배의 이유를 강화하는 데 도움을 주면서 아메리칸 드림에 화룡점정을 찍는다.

이런 구도에서 벗어나 온전한 지식의 장을 만들 수는 없는 걸까? 그게 어렵다면 나 하나라도 지배받는 지배자의 그늘에서, 그들과 경쟁하는 답 없는 현실에서 벗어나 지식인으로 바로 설 수 있을까. 김경만 교수는 <글로벌 지식장과 상징폭력>(문학동네 펴냄)에서, 상징 자본을 보장하는 외국 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온 이들이 오히려 ‘한국적인 무엇을 찾아야만 서구 이론을 극복할 수 있다’면서 자신의 상징 자본을 부정하는 태도를 비판한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2013년 서울 삼성동에서 열린 해외 유학·이민 박람회.  
ⓒ연합뉴스
2013년 서울 삼성동에서 열린 해외 유학·이민 박람회.


그간 한국적인 무엇을 찾으려는 시도는 모두 실패했고, 설사 찾는다 해도 지식장의 지배자들이 관심을 가질 가능성은 적다. 방법은 하나다. 글로벌 지식장에 본격적으로 들어가 장을 지배하는 이들의 이론을 비판하며 글로벌 헤게모니 속에서 자리를 확보해야만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지식장의 구조가 바뀌지 않을 테고, 더 많은 예비 지식인이 유학을 떠날 테고, 그들이 돌아오면 종속성이 더욱 강해질 게 분명하다. 유학을 가서 서구의 학문을 배울 이유는 충분하다. 다만 왜 그것을 배우며, 그것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는 물음이 부족할 뿐이다. 떠나기 전에 꼭 답해야 할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