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칼럼

누가 우리 아이들을 '수포자'로 만들었나?

일취월장7 2015. 5. 30. 10:45

누가 우리 아이들을 '수포자'로 만들었나?

[기고] "수학마저 '주입식'…'재미' 되찾아야"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수학교육인가? '수학' 때문에 교육주체들(학생, 교사, 학부모)이 고통스럽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고, 온 나라가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다시 말해, 수많은 학생들은 '수포자'(수학포기자)가 되어 절망하고 있고, 교사들은 알아듣는 학생이 별로 없어 거의 벽보고 강의하고, 학부모들은 사교육비 대느라 허리가 휘고 있다. 

엄연히 수학교육의 목적은 논리적, 합리적 사고력을 기르는데 있다. 그러나 이것은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 우리나라의 현실은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려는 "변별력의 도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우리나라에서 수학이라는 기차는 철로를 벗어나 괴물처럼 달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이를 획기적으로 개선하자고 크게 목소리 내지 못했다. 이 불편한 진실에 드디어 "벌거벗은 임금님"이라고 소리치듯, 교육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며 발 벗고 나섰다. 

마땅히 교육부와 교육청 등 공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당국이 해야 할 일을, 애써 외면하며 하지 않고 있으니, 결국 목마른 사람이 샘 파듯이 교육시민단체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교육당국은 이러한 사실에 크게 부끄럽게 여겨야 할 것이다.  

28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백범기념관에서 필즈상을 다수 배출한 미국, 영국, 일본, 싱가포르, 핀란드, 독일 등 선진 6개국의 교과서와 우리나라 교과서를, 비교분석한 그 결과를 발표하였다. 수학 교육과정 · 지도항목 및 주제, 배우는 시기 · 방법 등을 비교한 결과, 우리나라 학생들은 수학을 선진국 학생들보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어렵게" 배우지만, 교수·학습 방법은 훨씬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은 선진 6개국보다 평균 18.3개 항목(26.9%)을, 중학생들은 17.5개 항목(29.2%)을 더 이르게 배우거나 많이 접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리나라 중학생들이 배우는 이등변삼각형의 성질 등 논증기하 분야는 선진 6개국에서는 고등학교에서 배우거나 아예 배우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비교분석한 고교과정에서도 문과에서 미적분을 필수로 배우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었다. 

또한 핀란드의 경우,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중학교부터 4개 학년에 걸쳐 개념과 연산, 응용을 단계별로 차근차근 배우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중3 과정에서 단 몇 시간 만에 끝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핀란드 등 다른 나라들은 여러 학년에 걸쳐서 반복적으로 가르치는 나선형 교육과정을 택하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한 가지 학습 주제를 단번에 가르치고 끝내는 경우가 많아, 학생들 입장에서는 한번 낙오되면 따라잡기 힘들다고 진단했다.

학습 분량도 초등학교의 경우 27%, 중학교의 경우 29%가 더 많았다. 특히 '수포자'가 급격히 증가하는 중학교 과정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은 미국학생들보다 21%, 핀란드학생들보다 심지어 60% 더 많은 분량을 배우고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대학에서나 배우는 미적분을 우리나라 학생들은 고등학교 때 배우고 있었고, 주요 단원의 학습시기도 우리나라가 1~2년 정도 빠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 연구는 '전국수학교사모임'과 '좋은교사운동'의 협조를 받아 2013년 11월부터 1년 6개월 동안 초·중·고 현직 교사들을 중심으로 33명의 연구진을 구성해 진행했다고 밝혔다. 아쉽게도 고등학교의 경우, 나라마다 학생들의 진로 및 대학입시 방법에 워낙 차이가 커, 비교분석 대상이 주로 초·중학교에 그쳤다고 말했다.

이들 연구진들은 우리나라 수학교육은 분량만으로 보면, 엄청나게 많은 내용을 빠르게 가르치고 있지만, 그렇게 진도에 쫓겨 속성으로 가르치다 보니, 사고력 키울 기회 없는 지식으로 채워져 있고, 학생들이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가 사고하고, 발견의 기쁨이 없다보니 수학과목에 점점 흥미를 잃어간다고 하였다. 아울러 6개국에 비해 협력학습, 토론·토의 등 교수·학습 방법 면에서도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학업성취도 수준은 최상위권, 그러나 동기부여지수는 바닥 수준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 학생들의 수학 학업성취도 수준은 세계최고 수준이지만, 수학공부에 대한 동기부여지수나 흥미도는 바닥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왜 수학을 공부하느냐고 물으면, 많은 학생들이 "수학이 싫지만 내신성적과 입시에서 비중이 워낙 크기에, 즉 좋은 대학 가기 위해 억지춘향이 격으로 중요과목인 수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 13일, OECD경제분과에서 세계 76개국 학생들 대상으로 수학 실력 평가한 결과를 BBC 방송 통해 공개했다. 그러자 일부 언론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의 성취수준이 3위로 세계최고수준이라며 크게 보도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성취도평가'라는 점이다. 2012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결과에서도 우리 학생들의 수학에 대한 성취도는 높았지만, 흥미도나 자신감은 최하위권이었다. 또한 성적과 학습시간의 상관성을 조사한 학업효율성지수 역시 바닥수준이었다.   

"수학을 좋아하기 때문에 공부하는가?" 라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대답한 한국학생은 30.7%인 반면, 인도네시아 78.3%, 태국 70.6%였다. 이번에는 "수학시간이 기다려지는가?" 라는 물음에, 한국학생은 21.8%, 미국 45.4%. 일본 33.7%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우리 학생들이 얼마나 수학을 싫어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는 통계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등 각종통계와 수치에서 보듯, 입시위주의 주입식 교육, 다시 말해 '선행학습과 반복학습의 연속'으로 수학을 공부하는 우리나라 학생들은 세계에서 최장 시간 수학 공부을 하니까 당장은 성취도결과가 높게 나오지만, 고등사고력이 필요한 고학년 되면서 따라가지 못해 "수포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의 발표를 계기로 이제, 수많은 학생들을 "수포자"로 만드는 교육과정 및 입시제도를 당장 개선해야 할 것이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어렵게" 아니라 이제는 "더 천천히", "더 적게", "더 쉽게" 가르쳐야 한다. 어른들이 마음만 먹으면 우리나라 학생들도 일부 선진국 학생들처럼 "즐겁게 수학공부"할 수 있지 않겠는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교육과정과 항목·주제를 학생들에게 맞춰 재조정하고, 주입식 강의가 아닌 발견학습이 가능한 체제로 수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수학사교육포럼' 최수일 대표도 "현재 수능시험 대비를 위해 고등학교 3년 과정을 2년만에 끝내고 있는 현실을 반영, 수능 시험범위를 3학년 1학기 정도까지 하는 등 재조정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전환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렇다. 교육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수학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입시도구로 활용되고 있고, 대학진학 이후에는 전공과 연계성이 없으면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며 이제라도 "수학을 배워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 수학을 왜 배우는가? 그 이유부터 설명하고 교육해야 한다. 즉 수포자 막기 위해서는 수학에서 배우는 기쁨을 맛보게 해주어야 하고, 사고력 증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체득하게 해주어야 하며, 확률, 도형, 함수, 미적분 등이 우리 생활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알게 하고, 또한 수학에서 배우는 개념들이 사회 전반적으로 얼마나 다양한 분야에 접목되고 있는지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 ⓒ프레시안(최형락)


교육부는 2018년부터 적용될 새교육과정의 수학학습량 20% 줄이겠다고 지난 2월 약속했다. 20% 정도 감축하여 수학교육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수학과목에 대한 흥미도 높이고, 쉽고 재미있는 수학교육 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시안을 보면 오히려 이전보다 더 부담을 늘렸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교과서 개정만으로 수포자를 줄이기 어렵다. 대학입시제도가 상대평가에 의한 방식으로 상위권 대학이 우수한 학생들 선발하는 방식이 바뀌지 않은 한 수학의 중요성 크기 때문에 교과서 학습량 줄인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게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 등 대학서열화를 깨려는 노력과 함께 학력사회를 능력사회로 전환하는 근본적인 노력도 병행해야 효과가 있을 것이다. 독일처럼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임금과 승진에서 차별을 받지 않는 사회가 만들어지면, 자연스럽게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교육 본연의 모습을 되찾게 될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