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반대 & MB 비리

"MB 자원외교 실패, 반민특위 열어야 한다"

일취월장7 2014. 12. 10. 11:31

"MB 자원외교 실패, 반민특위 열어야 한다"

[이철희의 이쑤시개] 홍익대 전성인 교수 "최경환, 마지막 카드마저 써 버렸다"

이명선 기자 2014.11.21 09:54:55

100조 원에 육박하는 혈세가 밑 빠진 독 'MB 정부'에 들어갔다. 4대강 사업 22조 원과 자원 외교 41조 원 외 2018년까지 추가 투자될 31조 원까지 국부(國富)가 낭비되거나 유출됐다.   

홍익대 전성인 경제학과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적 의사 결정은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지만, (투자 대비 성과 없음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큰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며 "'경제적 반민특위'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MB 정부의 경제 실책(失策)을 명백히 밝히기 위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일제 시대 친일파 처벌을 목적으로 만든 기구)를 구성해야 한다는 뜻이다. 

전성인 교수는 MB 자원 외교에 천문학적인 액수가 오고 간 데 대해 "소위 말하는 '도장값'(인허가 처리 급행료 또는 리베이트)이 있었을 것"이라며, 2003년 론스타펀드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도장값' 논란을 상기했다. 

지난 14일 팟캐스트 <이철희의 이쑤시개>에 출연한 전성인 교수는 이외에도 박근혜 정부의 경제 정책을 조목조목 짚었다. 이날 녹음에는 <이쑤시개> 진행자인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과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함께했다.(☞ 팟캐스트 바로 듣기)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손문상)


'초이노믹스', 부작용만 남았다

박근혜 정부 최경환 경제팀의 경제 정책 '초이노믹스'에 대해 전성인 교수는 "부작용만 남았다"고 평가했다. "애초부터 특정 정치적 지지층을 목적으로, 일단 잘 간수하자"라는 생각에 부동산 경기 부양과 부자 감세만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최경환 부총리 취임 소식에 각종 경제지표는 요동쳤다. 코스피 지수는 2000포인트 선을 돌파하고,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5년 만에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취임 후 그는 금융과 건설 규제 완화, 재정 양적 완화 등 경제전문가조차 휘둥그레질 정도로 수많은 정책을 쏟아냈다. 큰 씀씀이에 새누리당은 7.30 재보궐에서 승리를 맛봤다. 

그러나 '최경환 효과'는 여기까지. 주가는 심리적 지지선인 1900선 아래로 떨어졌으며,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에 따른 부동산 기대감은 '반짝'에 그쳤다. 전세난은 오히려 더 심각해졌으며, 재건축 아파트 가격은 '초이노믹스' 이전 시세로 떨어졌다. 

전성인 교수는 부동산 경기 부양의 부작용으로, 주택담보대출 증가를 꼽았다. 대출 문턱이 낮아지면서 제2금융권의 대출과 은행권의 신용대출이 주택담보대출로 이동, 낮아진 신용도로 은행 위험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전 교수는 담보대출은 "은행 입장에서는 안전한 대출이지만 시스템 전체로 보면 절대로 안전한 게 아니"라며 "금융기관 여신 관리 쪽은 비상이 걸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체자의 상환 능력 부족으로  담보의 처분이 어려워질 경우, 정부가 직접 구매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만약 전세담보대출이 지금과 같은 궤도로 실패하면, 부동산 시장 침체가 실망 효과까지 더해져 가속화될 수 있다. 과거에는 'LTV·DTI 완화하면 그래도 뜨겠지?'라는 기대 심리가 있었지만, 이 역시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백약이 무효'라는 생각에 시장이 확 가라앉을 것이다. LTV·DTI 완화는 심리적 효과를 위해서라도 남겨 놨어야 한다. 그런데 마지막 카드마저 써 버렸다." 

향후 부동산 정책에 대해 전성인 교수는 "공급을 늘리는, 특히 전세 물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며 "집값 하락에 따른 우려로 전세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데, 이들에게 '월세로 가라'라는 건 정책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에서 '임대주택'이라는 단어 자체가 금기어"라며, 부동산 매매를 통한 경기 부양이 아닌 "정책적 리스크 부분에서 임대주택 공급을 가장 바란다"고 말했다.  

"MB 법인세 인상이 정상화"

정치권의 무상교육·무상급식 재원 마련과 관련해 법인세 인상을 통한 '부자 감세 정상화'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기업의 투자를 독려한다며 25%였던 법인세 세율을 22%로 인하했다. 하지만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10대 대기업의 사내유보금만 증가했을 뿐, 기업 투자 및 고용 촉진은 저조했다. 특히 가계 부채가 크게 증가하면서 법인세는 대표 부자 감세가 됐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박원석 의원(정의당)이 국세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대기업이 얻은 감세 혜택은 26조5287억 원으로 전체 기업 감세 혜택(38조7327억 원) 중 68.5%에 달했다. 반면, 중소기업은 12조2040억 원으로 전체 감세 혜택 중 31.5%에 머물렀다. 

▲ 9월 16일 자 <뉴스타파> 화면 갈무리.

▲ 9월 16일 자 <뉴스타파> 화면 갈무리.


전성인 교수는 "MB정부에서 인하한 법인세를 올리는 게 정상화"라며 "이를 시행하지 않고 있는 것 자체가 부자 감세 유지"라고 비판했다. 또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 중인 대주주들의 배당소득 분리과세 역시 실질적인 부자감세"라고 말했다. 

"세금이라는 게 상대적인 것이다. 저쪽은 깎아 주는데, 가만히 있으면 상대적으로 이쪽은 증세 같다. 저쪽에 분리과세를 해줄 때는 '현실 적합성 재고'고, 이쪽 세제혜택을 없앨 때는 '증세 행정의 정상화'라고 한다. 예를 들면, 증세 구조의 정상화를 위해서 세금우대 저축을 없애겠다고 하는 식이다. 저축 상품은 주로 서민들이 드는 것인데."

특히 전성인 교수는 "국민들이 세금 지출에 대한 '맛'을 못보고 있다"고 했다. 자신이 지출한 세금이 어떤 형태로든 돌아오는 경험을 해본 적 없다는 것. 따라서 복지 정책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증세 문제에 부정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MIT 대런 애쓰모글루 교수의 책 <왜 국가는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제임스 A. 로빈슨 공저, 최완규 옮김, 장경덕 감수, 시공사 펴냄)를 언급하며 "세금을 어디에 쓰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을 때 (국민이 세금을) 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1일 보도된 JTBC 여론조사 결과, 조사 대상의 49.4%가 "세금 더 낼 의향 없다"고 답했다.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이 된 까닭은…"

[MB의 비용 2부] <1> 이명박 정부 남북관계 5년

이재호 기자(정리) 2014.11.13 09:58:17

 
'경제 대통령'이 되겠다던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한 경제 정책은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왔고, 향후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한 정권이 추진한 정책에 대한 사후적 평가는 그 집권세력의 정치적 성향을 떠나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국민 혈세를 제대로 썼는지에 대한 평가이기 때문이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과 지식 협동조합 '좋은나라'(이사장 유종일)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직전 정부인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주요 경제 정책에 대한 평가로 'MB의 비용'을 공동 기획, 연재하고 있다. 1부에서는 4대강, 자원외교, 기업 비리, 원자력 발전소 비리, 한식세계화 등 주요 정책이 끼친 손실과 관련해 구체적인 비용을 추산해봤다. 

2부에서는 비용으로 추산하기는 힘들지만 명백하게 '손실'을 끼친 정책에 대해 논의한다. 경제정책 범주를 넘어서 통일외교, 정치 등 국가 시스템과 관련된 정책 의제들에 대해 전문가들이 어떤 평가를 하고 있는지 들어보고자 한다. 첫 번째 대담으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과 김연철 인제대학교 교수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평가했다. 

이명박 정부 시기 대표적인 대북정책 실패 사례로 5.24조치를 꼽을 수 있다. 천안함 사건 이후 북한에 대한 대응으로 시작된 5.24조치는 남북 교류와 경제협력을 중단시키면서 북한에 경제적인 압박을 가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됐다. 하지만 본래의 목적과는 달리 북한보다 오히려 남한이 고통을 받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김연철 교수는 "2011년 기준으로 5.24조치로 인한 직접 손실액만 45억 달러, 우리 돈으로 4조가 넘었다. 여기에 교역이나 위탁가공이 중단되면서 국내적으로 일자리가 줄어든 부분까지 포함하면 손실액은 124억 달러, 우리 돈으로 13조 원이 넘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남북경협이 끊기지 않고 진행됐다면 얻을 수 있는 이익, 즉 기회비용까지 고려하면 손실액은 이보다 훨씬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세현 전 장관은 "남북관계 악화로 한미동맹이 강화되면서 생겨난 비용도 고려해봐야 한다"면서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는 틀어막은 채 북쪽 때문에 정세가 불안하니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미국의 비싼 무기를 사들이는 것과 표리의 관계에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위협을 구실로 삼은 한미동맹의 강화는 곧 고가의 무기 수입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그런데 5.24조치는 천안함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시행됐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김 교수는 "이명박 정부 집권 1년차인 2008년 하반기부터 남북 민간교류가 이미 굉장히 위축"됐고 "남북 경협 기업들 역시 2009년에 들어서면서 대체로 북한을 방문하는 기회나 숫자가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로 미루어볼 때 5.24조치는 비핵개방3000이라는 기본 철학을 갖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남북 경협과 교류를 완전히 중단시킬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명분으로 작동했다고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진단했다. 

정 전 장관 역시 "천안함 사건이 결국 남북관계를 끊고 싶었던 이명박 정부에게 좋은 구실로 이용당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초기 청와대 모 비서관이 통일부에 와서 6개월 안에 북한을 무릎 꿇린다고 공언했던 것을 보면 5.24조치와 같은 대북정책은 언제든 나올 수 있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명박 정부의 실패한 대북정책 유산을 이어받은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보다 더 경직된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분석도 나왔다. 정 전 장관은 "경제적으로 상호의존성이 생기면 군사적 긴장은 자연히 완화된다. 경제공동체 확립 이후에 사회문화 공동체를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정치공동체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것"이라며 "남북 양 사회에 충격을 덜 주고 효과적으로 통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통일대박을 이야기하고 통일준비위원회를 출범시킨 것은 너무 앞서가는 이야기"라고 단언했다. 

정 전 장관은 "박근혜 정부가 북한의 붕괴를 전제로 한 흡수통일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교류협력은 하지 않으면서 통일 대박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하고 우려했다. 

대담은 지난 9일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다음은 대담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는 집권 5년간 남북관계를 사실상 단절시켰다. 이에 대한 부작용이 컸기 때문에 2012년 대선 당시 여야를 막론하고 북한과 관계개선을 주요 공약으로 포함시키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무엇이었나? 

정세현 : 이명박 정부가 국제정세와 우리의 국익 등을 생각해서 대북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지 않았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였다. 물론 그간 대북정책과 남북관계는 정권에 따라 심하게 요동치는 측면이 있었다. 장기적인 방향성이 없었다는 것인데, 그래도 이명박 정부 전까지는 국제정세와 국익 등을 고려해서 판단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그리고 현재의 박근혜 정부로 들어오면서 이러한 경향이 없어지고 있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 때는 북한과 대결을 정당화하는 분위기 속에서 군사 정권의 필요성을 인식시키면서 남북관계나 통일 문제를 국내 정치에 써먹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국제정세도 이를 허용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냉전 시대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정부에서 추구하는 대북정책이 안팎으로 소위 '쿵짝'이 잘 맞는 측면이 있었다. 

노태우 정부 때는 사회주의권이 흔들리고 전 세계적으로 탈냉전의 흐름이 있었다. 당시 정권은 이를 놓치지 않고 중국, 소련 등과 수교하면서 국제정세 흐름에 올라탔다. 또 노태우 대통령은 1988년 7월 7일 이른바 '7.7선언'이라고 불리는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을 통해 남한은 소련·중국과, 북한은 미국·일본과 관계개선을 해나가자고 제안했다. 

노 대통령은 군인 출신 대통령이었음에도 국제정세 변화를 잘 활용해서 소련, 중국과 수교를 맺었다. 이는 대단히 큰 업적이다. 국제정세의 가시적 흐름이 분명해진 뒤에 일을 추진하면 이미 늦는 경우가 많은데 적시에 국제정세 변화를 포착해 과감한 외교 전략을 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시기에 외교·안보 분야에서 일했던 실무자들은 두고두고 칭송받아야 한다고 본다. 

특히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당시 외교·안보의 최전선에 있었던 실무진의 존재가 더욱 가치 있게 여겨진다. 지금 국제정세를 보면 남북, 한미 관계를 이렇게 끌고 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남북 화해협력이 정권에 도움이 되지 않고 국제정세도 냉전시기였기 때문에 통일을 핑계 삼아 안보 장사를 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 그런데도 똑같은 패턴으로 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 통일준비위원회 출범 등도 통일 핑계로 안보 장사를 하겠다는 건데 이러한 접근은 복잡한 동북아 정세를 헤쳐 나가는데 바람직하지 않다. 

프레시안 : 남북관계에서 남한 대통령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미국과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도 이에 못지않은 중요한 변수 아닌가? 

정세현 : 그렇다. 예를 들어 김영삼 정부 때는 남북관계가 모두 멈췄는데, 이는 YS 혼자만의 철학이나 정책적 입장 때문만은 아니었다. 북핵문제를 빙자해서 남북관계의 속도를 조절하려는 미국의 움직임이 작용한 것인데, 이러한 움직임은 전임 정부인 노태우 정부 시절, 즉 1991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은 북한이 핵 활동을 하는데 남북관계만 개선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니냐며 제동을 걸었다. 그래서 1991년 12월 31일 남북한이 함께 한반도의 비핵화를 약속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나왔다.   

기본적으로 미국은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동북아 지역에서 자국의 우월적 위치가 흔들린다고 생각한다. 동북아 지역의 국제정치를 통제하는 레버리지로서 북핵 문제를 활용하는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채택은 노태우 정부 시기 남북관계 개선 의지가 상당히 강했음에도 미국의 압박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후 1992년 연말 한미안보연례회의(SCM)에서는 중단됐던 한미 연합 군사훈련인 '팀스피릿'을 재개하기로 결정하기에 이른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가 도출되는 과정에서 1992년 팀스피릿 훈련을 중단하기로 했는데 이것이 뒤집힌 것이다. 

미국은 한미 연합 군사훈련인 팀스피릿이 중단된 것에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미국 국방부나 군산복합체 입장에서 볼 때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는 한국 정부의 독자 행보, 그리고 이로 인한 팀스피릿 중단이 미국의 주요 수입원인 무기 판매를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노태우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을 밀어붙였지만, 정권 말기가 되면서 레임덕 현상으로 결국 1993년 팀스피릿이 재개되는 것으로 결정돼버렸다. 미국 군부의 영향권에 있다고 볼 수 있는 남한 군부가 미국의 이익에 합당하게 결정해 버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후 정권인 김영삼 정부는 팀스피릿 훈련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던 측면이 있다. 대통령의 대북관도 중요하지만 이처럼 미국의 군산복합체나 국방부 등 강경론자들의 입김도 한반도 정책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미국 군 세력의 주장을 타고 넘을 수 있는 대통령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변수가 되는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이들의 주장을 타고 넘어가려 했다. 또 일정 부분 이들을 극복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확실한 철학이 없는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미국 군부와 군산복합체의 이익에 봉사하는 줄도 모르고 그들의 주장에 일방적으로 끌려가기만 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미국은 기본적으로 한반도 정세가 계속 불안한 상태로 가야만 무기 장사를 해먹을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 대통령이 이러한 미국의 의도에 일정 정도 협조하거나 동조해주면서도 자기 목소리를 챙길 수 있으면 남북관계가 개선될 수 있는 것이고, 아니면 계속 대결적인 상태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프레시안 : 남북관계의 개선이나 안정이 남북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과 연결돼있다는 설명인 것 같은데, 국내정치적인 측면도 있지 않나? 이명박 정부가 '비핵개방 3000'이라는 정책을 들고 나온 것도 국내 정치와 연결돼 있다고 생각하는데

▲ 김연철 인제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 김연철 인제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김연철 :
이명박 정부의 경우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외교적 필요성의 측면보다는 이념에 기반한 측면이 매우 강했다. 그러다 보니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진보-보수라는 이분법적인 기준으로 평가한 측면이 있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부터 이러한 경향이 나타난 것 같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초기 통일부 업무보고 때부터 남북관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는 그동안 억눌려 있었던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보수층의 반감을 동원해 북한 문제를 이념적으로 접근했다.  

이명박 정부의 남북관계를 돌아보면 몇 번의 계기가 있었다. 2008년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피살사건,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5.24조치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이런 우발적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가 가져올 외교·경제 등 여러 부분들에 대한 중장기적인 이익 또는 전략적인 의미를 고려하기보다는 국내정치적 기준에 따라 이를 평가하고 대응했다. 

실제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근무했던 인사들 중 일부는 남북관계 개선을 안 해도 좋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했다. 이산가족 상봉 문제가 중요하다고 지적했을 때도 이명박 정부에서는 이산가족 안 만나도 상관없다는 식의 시각이 있었다. 

정세현 : 보수 정권인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 안 하면 어떠냐, 어설프게 해서 지지세력 흩어지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 남북관계 중단하더라도 지지세력 결집을 통해 5년 동안 힘 있게 권력을 행사하자"는 계산이 있었다고 본다. 그렇지 않고는 비핵개방 3000이라는 순서가 뒤집힌 정책 기조가 나올 수가 없다.

북한이 비핵화를 추진하고 대외적으로 개방조치를 취하면 1인당 국민소득을 3000 달러로 만들어주겠다는 건데, 비핵화가 그렇게 하루아침에 될 것 같으면 그 문제가 왜 지금까지 해결되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겠나. 

이명박 정부는 비핵화가 북한의 의지만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인데, 이는 너무 단순한 판단이다. 미국의 군산복합체 입장에서 보면 북한의 비핵화는 곧 자신들이 무기를 내다 팔 시장이 없어지는 상황을 몰고 온다. 따라서 미국은 말로는 비핵화를 이야기하지만 속셈은 그렇지 않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선거 캠프에 있던 참모들이 이러한 현장감이 전혀 없었던 것 같다. 

외교·안보 현장에서 몇 년 만 일해 보면 큰 나라들, 예를 들어 미국이나 중국의 속셈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이들은 대국이기 때문에 체면치레를 위해서라도 평화지향적인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평화는 자신이 우월적인 지위에 있는 상태에서 안정이 유지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팍스 로마나'는 고대 로마의 지배가 확립된 상태에서 저항세력이 없으니까 평화로운 상태가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팍스 아메리카나' 역시 미국의 절대적인 영향력, 지배 권력이 통하는 상태를 평화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군사적으로 자국의 우월적 위치를 키워가기 위한 정책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08년이면 북핵문제가 발생한지 16~17년이 넘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비핵개방 3000을 들고 나온 것은 당시 정책을 입안한 참모들이 보수결집을 위해 남북관계를 중단해도 좋다는 계산도 있었겠지만, 기본적으로 핵문제나 체제 개방 문제가 북한 당국의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북한이 진짜로 비핵화를 추진하려고 하면 미국 군산복합체들은 "쟤들 왜 저러나, 저러면 곤란한데 우리 죽이려고 하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개방 문제 역시 북한이 온전히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개방을 하려면 개방한 결과로 돈이 들어와야 한다. 즉 외국의 투자가 들어와야 하는데 그러려면 아시아개발은행(ADB)이나 세계은행(WB)에 최대 지분을 가지고 있는 미국이 허가해야 한다. 한국에서 북한으로 들어가는 투자는 사실 투자라고 보기도 힘들다. 북한도 나라인데, 우리가 북한의 경제를 부흥시킬 수 있을 만큼의 투자를 할 수는 없다.  

개발도상국들은 장기 저리로 차관을 끌고 들어와서 경제를 발전시킨 뒤 10~20년 후에는 명목상으로는 크지만 가치 면에서는 빌린 돈보다 적은 돈을 갚으면서 개발을 해야 한다. 이러한 방식의 차관을 제공해줄 수 있는 곳은 ADB나 WB 정도다. 결론적으로 개방은 미·북 수교가 전제되지 않으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미·북 수교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고치는 문제와 표리의 관계다. 이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개방은 사실상 어렵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미·북 대화도 막으면서 북한이 개방하면 남북 교류 협력을 하겠다고 하니, 인과관계나 선후관계를 모르는 사람들이 만든 정책이 비핵개방 3000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의 본심에 대한 이해가 없던 측면도 있고. 

천안함 아니었어도 5.24조치는 나왔을 것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의 남북관계에서 2010년 천안함 사건과 그에 따른 5.24조치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던 것 같다. 지금까지 이 조치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김연철 :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 기조가 비핵개방 3000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5.24조치가 남북 경협이 잘 이뤄지다가 천안함 사건이 일어나서 이에 대한 대응 차원으로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다. 비핵개방 3000에 이미 남북경협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기본 정책이 잘 드러나 있다. 

이명박 정부 집권 1년 차인 2008년 하반기부터 남북 민간교류가 이미 굉장히 위축되고 있었다. 이때부터 정부가 방북승인을 굉장히 엄격하게 하면서 대체로 민간교류가 중단되기 시작했다. 남북 경협 기업들 역시 2009년에 들어서면서 대체로 북한을 방문하는 기회나 숫자가 줄어들었다. 이로 미루어볼 때 5.24조치는 비핵개방 3000이라는 기본 철학을 갖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남북 경협과 교류를 완전히 중단시킬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명분으로 작동했다고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정세현 :
천안함 사건이 결국 남북관계를 끊고 싶었던 이명박 정부에게 좋은 구실로 이용당한 셈이다. 물론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보다 파장이 크지 않은 사건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5.24조치와 같이 남북관계를 사실상 단절시키는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 당국자들의 성향을 봤을 때 집권 3년 차에 나온 5.24조치는 어떤 측면에서는 좀 늦은 감도 있다. 이명박 정부 초기 청와대 모 비서관이 통일부에 와서 6개월 안에 북한을 무릎 꿇린다고 공언했던 것을 보면 5.24조치와 같은 대북정책은 언제든 나올 수 있는 것이었다. 

금강산 관광도 마찬가지다. 박왕자 씨 피살 사건 이후 이명박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사건 다음날부터 금강산 관광을 중단했다. 비핵개방 3000을 입안한 사람들이 금강산 관광을 끝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정책을 만들었는데 이 사건이 설득력 있는 관광 중단의 명분이 된 것이다. 

한편으로는 천안함 사건의 성격 규정에 미국의 입김이 작용한 측면도 있다고 본다. 천안함 사건 발발 이후 주한미군사령관의 첫 멘트는 이를 북한의 소행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입장이 조금씩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입장이 변한 배경으로 당시 일본 오키나와(沖繩島)에 위치한 후텐마(普天間) 미군 공군기지 이전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당시 이 문제로 미·일 간 갈등이 상당히 심화되고 있었다. 일본 내부에서는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당시 총리가 상당히 강하게 후텐마 기지를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일본 내 외무성 현직 관리들과 퇴직 외교관들은 미국에 후텐마 기지를 잔류시키라고 강하게 이야기했다. 

이 때 후텐마 기지 잔류파들에게 천안함 사건이 기지를 이전할 수 없는 명분으로 절묘하게 쓰여졌다. 미국의 원안대로, 즉 기지 이전을 하지 않는다는 목적에 부합하게 천안함 사건이 활용된 측면이 있다. 이 때문에 미국 입장이 '천안함은 북한의 소행'으로 바뀌게 됐다. 

미국은 후텐마 기지를 이전하면 동중국해 부근에서의 미국의 군사력이 약화된다고 판단했다. 이를 막기 위해 천안함 사건이 이용된 것인데, 미국은 북한의 도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후텐마에 비행장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또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미국은 이명박 정부의 강경론을 뒷받침해줄 필요가 있었다. 결국 미·일 간의 안보 문제가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으로 결론 나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된 것이다. 

프레시안 : 5.24조치가 북한에 압박을 주겠다는 목적으로 취해졌는데, 4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보면 결과적으로 우리에게만 손해를 끼친 상황이 됐다. 

김연철 : 5.24조치는 일반적으로 국제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제제재의 유형과는 매우 다르다. 크게 보면 세 가지 측면에서 다르다. 첫째로 어떤 경제제재도 인적교류 자체를 막지는 않는다. 전 세계에서 미국이 북한에 대해 가장 강력하고 포괄적인 제재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재미교포들이나 미국인들이 북한을 왕래하고 있지 않나? 하지만 5.24조치는 이러한 인적교류까지 막아버렸다. 

두 번째로 대체로 제재라는 것은 군사적 목적의 물품이나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될 수 있는 물품을 막는 형태로 진행된다. 산업 목적의 무역 자체를 막는 경제제재는 유례를 찾기 어렵다. 하지만 5.24조치는 교역과 위탁가공 자체를 중단시켰다. 대단히 이례적이다. 

마지막으로 5.24조치의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이 압력을 가한 쪽이라는 사실이다. 보통 '제재'라는 것은 상대방에 대해 일종의 벌칙이나 압력을 가하는 것인데 황당하게도 5.24조치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쪽은 상대방인 북한이 아닌 우리 중소기업들이었다. 일반적인 경제제재는 가능하면 자국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상대방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인데 5.24조치는 북한에 별다른 압력이 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자국의 피해를 최소화하지도 못했다. 북한 입장에서 교역이나 위탁가공 등은 남한이 아닌 중국과 함께해도 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5.24조치가 끼친 직접적인 경제 손실도 만만치 않은 수준이다. 2011년 당시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손실을 체계적으로 조사하기 위한 팀을 만들고 백서를 발간했는데 직접 손실액만 45억 달러, 우리 돈으로 4조가 넘었다. 여기에 교역이나 위탁가공이 중단되면서 국내적으로 일자리가 줄어든 부분까지 포함하면 손실액은 124억 달러, 우리 돈으로 13조 원이 넘는다. 남북경협이 끊기지 않고 진행됐다면 얻을 수 있는 이익, 즉 기회비용까지 고려하면 손실액은 이보다 훨씬 커질 것으로 보인다. 

▲ 2010년 5월 24일 이명박 대통령이 전쟁기념관에서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2010년 5월 24일 이명박 대통령이 전쟁기념관에서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세현 : 기회비용의 측면에서 보자면 남북관계 악화로 한미동맹이 강화되면서 생겨난 비용도 고려해봐야 한다. 우리를 포함해 미국과 동맹국인 나라들을 보면 동맹국이 비싼 무기를 팔아주는 경우가 많다. 즉 동맹국이 미국에 "비싼 무기 좀 우리한테 팔아주세요"라고 빌어대다시피 하는 형태인데, 일본이나 이스라엘 등이 이런 식으로 동맹을 유지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는 틀어막은 채 북쪽 때문에 정세가 불안하니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미국의 비싼 무기를 사들이는 것과 표리의 관계에 있다. 즉 쓰지 않아도 되는 돈을 쓰는 것이다. 

임기 1년차였던가? 이명박 대통령 방미 결과 한미동맹이 더욱 강화됐다고 정부가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확장억제(extended deterence)만 해도 대단한 건데, 이번 한미정상에서 미국으로부터 'extended & extended deterrence'(더욱 확장된 억제)를 보장받았다고 역설했다. 이 부분은 언론사에 대서특필된 반면, 미국이 한국에 파는 무기의 등급을 올려줬다는 건 조그맣게 기사화됐었다. 

미국이 한국에 판매하는 무기의 등급을 올려준다는 건 비싼 무기를 팔아주는 것이 동맹 강화의 민낯이라는 걸 의미한다. 결국 남북관계를 막아놓고 불안하니까 미국으로부터 비싼 무기를 사들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놓고도 이명박 정부는 미국의 이런 조치에 기뻐했고 마치 무슨 역사적 업적이라도 낸 것처럼 홍보해댔다.  

남북관계에 들어가는 돈은 분단관리비용, 평화비용이라고 볼 수 있다. 남북경협이 활성화되고 북한이 경제적으로 남한에 의존하게 되면 대남도발이 어려워진다. 북한의 군사적 움직임을 어렵게 만드는 효과가 있는데도 그 돈 내는 것이 아깝다며, 북한 '퍼주기' 안 하겠다며 남북경협과 교류를 끊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 대북지원이나 경협에 들어가는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들여가면서 미국이 '팔아주는 은혜를 베푸는' 비싼 무기를 사들인 것이다.  

프레시안 : 북한에 돈을 주면서 평화를 살 수 있는데 오히려 미국에 돈을 주면서 전쟁을 만든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정세현 : 그렇다. 금강산, 개성공단 확장, 민간교류 활성화, 남북 간 경제협력 등이 활성화되고 구조화되면 북한이 경제적 이득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군사적 긴장도를 현격히 낮춘다. 실제 김대중-노무현 정권 당시 경험했던 일이다. 한반도의 안보 상황이 안정적으로 관리돼왔던 것이다. 그런데 북한에 돈 주는 것이 아깝다고 막아놓으니까 북한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미국에 의존해야 하고, 미국에 의존하면 북한으로 건너가는 현금이나 현물보다 훨씬 많은 액수의 돈을 들여서 미국의 무기를 사야 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무기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고철이 될 수밖에 없다. 고성능 무기가 끊임없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확장억제 받아냈다고, 무기 구매 자격 높여줬다고 좋아했던 이명박 정부의 당시 입장을 보면 평화비용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연철 :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관련된 비용도 낭비됐다. 2007년 대선 당시 미국 국방부의 차관보를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이 각 후보 캠프를 돌았다. 이들은 각 후보에게 2012년으로 예정돼있던 전작권 환수 일정을 지킬 것이냐는 점을 확인했다. 당연히 당시 여권에서는 지킨다고 했는데, 미 대표단은 만약 일정이 연기되면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그 책임은 한국에서 져야 한다고 말했다. 자기들은 계획대로 예산을 책정해놨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집권 이후 2015년으로 전작권 환수 시점을 연기했고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아예 무기한으로 연기해버렸다. 이렇게 되면 당장 주한미군의 방위비분담금부터 상당 부분 인상할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남북관계 경색이 남한의 미국 의존도를 높였다면, 반대로 북한의 중국 의존도도 높인 측면이 있지 않나? 

정세현 : 남북관계가 막히면서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이 됐든 금강산 관광이든 다 중단됐다. 사람이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아야 하다 보니, 북한은 자연스럽게 중국 쪽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일단 땜질은 하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중국과 교류협력을 활성화시킨 것이다. 

다만 북한에게 있어 중국이 남한을 대체할 수준까지 다다랐는지는 의문이다. 북핵 문제가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중국이 무턱대고 북한과 교류나 경협을 늘릴 수는 없다. 비록 북한과 중국이 지난 1961년 '조·중 상호 우호협력 조약'을 체결해 상대방이 제3의 국가로부터 공격을 받으면 자동으로 개입하겠다고 합의했지만 현시점에서 이는 명문화된 문서에 불과하다. 

현재 중국은 미국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 속에 만약 중국이 북한 문제 때문에 미국에 약점을 잡혀서 자국의 동아시아 전략이 틀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중국이 가장 바라지 않는 시나리오가 바로 이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은 때때로 북한을 제재하는 모양새를 취하기도 한다. 이것이 북·중 관계가 남북관계를 온전히 대신할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중국은 정치적 판단에 의해 북·중 관계를 조절할 수 있지만 우리한테는 북한과의 교류나 협력이 곧 평화비용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정치적 상황에 의해 왔다갔다 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다. 북·중 관계가 남북관계만큼 커진다면 나중에 통일이 이뤄지는 시점에서 우리가 치러야 할 비용이 그만큼 많아지게 된다. 

김연철 : 남북경협과 북·중 경협의 관계가 선순환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다. 남북중 3각 협력이 되는 모델이다. 현재는 남북 간 경협이 중단된 상황에서 북·중 경협이 진전된 것인데, 북한의 자원이나 인력이 한정돼있는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남북경협이 중단되고 북·중 경협이 활성화되면 남북 경협의 공간이 줄어드는 측면이 있다. 

우리 경제가 북방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 경제를 살리려면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남한은 저성장기조가 정착돼있다. 경제성장률은 고착됐고 인구와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다. 그러면 결국 잠재성장률을 어디서 확충할 것인가가 문제로 대두되는데, 잠재성장률을 높이려면 북한이라는 다리를 건너 대륙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이 길을 이명박 정부가 막아 버렸다. 

이후 치러야 할 비용도 생각해봐야 한다. '표준비용'이라는 것이 있는데, TV 전파 방식, 휴대폰 전파 방식 등 기술표준이 이에 해당한다. 웬만한 가전제품에는 이러한 표준이 있는데, 북한에 중국의 표준이 정착하게 되면 이후 남북 경제공동체를 건설하거나 통일 경제를 건설할 때 표준을 다시 통일시키는 데 상당한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가 막은 북미 관계 정상화…북핵 문제 해결 요원해졌다  

프레시안 : 그간 남북관계의 역사를 살펴보면 남한정부와 미국정부의 입장이 달라서 고생한 적이 많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취임했던 2008년 이후를 보면 미국이 북한과 관계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올 때였다. 부시 전 대통령은 2006년 중간선거 참패 이후 북한과 관계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새로 취임한 오바마 대통령도 무엇인가 해보겠다고 나서던 때였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대북정책을 가져갔다면 남북관계, 나아가 북·미 관계를 풀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또 엇박자가 발생했다.  

김연철 : 비핵개방3000이 기존의 6자회담 흐름과 충돌됐다. 2005년 9.19공동선언은 북한의 핵포기 과정과 한반도 평화체제 확립 등 나머지 국가들의 이른바 '상응조치'와 병행하는 해결 방식이었는데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은 '선(先)핵폐기론'이었다. 이는 기존의 9.19과 충돌되는 지점이 있다.  

▲ 김연철 인제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 김연철 인제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정세현 : 오바마 정부가 집권 이후에 북한과 관계 개선을 시도했지만 이명박 정부가 적극적으로 막아섰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북핵과 평화협정 체결을 교환하는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했음에도 이명박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2009년 2월 13일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국 국무장관은 아시아 소사이어티 초청 연설에서 북한의 핵을 포기시키기 위해서라면 북미수교, 평화협정 체결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에 이명박 정부가 반대했다. 이명박 정부는 자신들의 정책은 '비핵개방 3000' 이라면서 비핵화 관련 북한의 성의 있는 조치가 있어야 6자회담을 재개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명박 정부의 '선 비핵화' 장벽에 막혀 오바마 정부는 평화협정 논의를 시작하지 못했고 결국 6자회담도 못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2009년 5월 25일 북한이 2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그런데 북한의 핵실험에도 미국은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해 7월 23일 태국 푸켓에서 열린 ARF(아세안 지역 안보포럼, ASEAN Regional Forum)회의에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2월에 한 그 이야기를 또 언급했다. 같은 해 11월에도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한 자리에서 힐러리 장관은 2월과 7월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심지어 12월에는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평양에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번번이 이명박 정부가 비협조적으로 나오면서 미국도 힘을 쓰지 못하게 됐다. 

핵 문제의 핵심 당사국은 미국이다. 하지만 핵문제가 발생했을 때 최대 피해 당사자는 한국 정부다. 그런데 한국이 협조하지 않으니 미국으로서도 별로 나설 이유가 없는 것이다. 6자회담에 한국이 안 나오면 회담을 시작할 수도 없고. 그래서 6자회담 재개 정책은 없었던 것이 되고 오바마 정부도 더 이상 '힐러리 해법'을 추진하지 못했다. 

이후 2010년 오바마 정부는 북핵 문제를 방치하는 것을 이른바 '전략적 인내'정책으로 포장해서 비핵화와 관련해 북한의 선제적인 조치가 있어야 6자회담이 가능하다고 언급하기 시작했다. 또 중국이 북한에 압력을 넣어야 한다는 ‘중국역할론’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오바마 정부는 핵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는 방향으로 정책을 끌고 갔다. 

김연철 : 이 부분 역시 기회비용에 들어가는 것 같다.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위상과 역할, 협상력 등이 과거와 비교해봤을 때 줄어들었고 반대로 한국의 위상과 역할은 늘어나는 추세였다. 이를 잘 발휘했다면 남북관계도 좋아지고 한국의 외교적 위상도 올라갔을 텐데, 이명박 정부는 이를 정반대 방향으로 행사했다.

미국의 위상과 동북아 질서 등 국제정세는 20세기와 많이 달라졌고 지금도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그런데 1950년대식 안보관으로 국제정세 문제를 대응했으니 얼마나 많은 문제가 드러나고 있나. 안타까운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 때 잘못 꿴 단추, 박근혜 정부에도 이어진다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살펴보자는 취지인데, 살펴보니 대부분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문제점들이다. 박근혜 정부 임기 내에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유산들이 청산될 수 있을까? 

정세현 : 안타깝게도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보다 더 경직된 사고를 갖고 있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이 연초에 통일대박론을 언급한 것이나, 통일준비위원회를 출범시킨 것을 보면 그렇다. 

남북이 경제공동체부터 시작해서 사회문화, 정치, 군사 공동체로 이어져야 통일이 가능하다. 우리의 사회변화 과정을 봐도 경제규모가 커지고 국민소득이 올라가면서 사회문화적 변화가 왔고, 이후 1980년대 들어서야 정치적 변화가 가능했다. 중국, 동유럽, 베트남 역시 마찬가지였다. 북한 체제도 이러한 변화를 겪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렇다면 통일은 북한 체제의 변화과정과 궤를 같이하면서 일어나는 것이 자연스럽다. 결국 통일을 위해서는 남북 경제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정도의 상호 의존관계가 선행돼야 한다. 이를 위해 전 정부들이 남북 교류협력을 시작한 것이다. 북한 퍼주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그런데 통일의 첫 단추를 꿰는 '남북 경제공동체 확립'이라는 차원에서 시작한 남북 교류협력이 '퍼주기'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다. 하지만 교류협력을 중단시키는 것은 통일의 첫 단추부터 풀어버리는 것이다. 첫 단추를 풀어버렸는데 통일이라는 옷을 어떻게 입을 수 있겠나. 

경제적으로 상호의존성이 생기면 군사적 긴장은 자연히 완화된다. 경제공동체 확립 이후에 사회문화 공동체를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정치공동체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통준위는 너무 앞서가는 이야기다. 

이렇게 남북 양 사회에 충격을 덜 주고 효과적으로 통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통일대박을 이야기하고 통준위를 출범한 이유는 무엇인가? 박근혜 정부가 북한의 붕괴를 전제로 한 흡수통일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교류협력은 하지 않으면서 통일 대박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이명박 정부는 비핵개방 3000을 기조로 삼았지만 적어도 북한 붕괴론을 공공연히 드러내지는 않았다. 통일대박론은 뒤집어 놓으면 사실상 북한 붕괴론이다. 더 강경해진 것이다. 지난해 말 당시 국정원장이 '2015년 자유민주주의 통일' 이야기를 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 지난 1월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대박'을 언급한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 지난 1월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대박'을 언급한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또 이명박 정부 때는 북한에 안주면 안줬지 북한을 자극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북한에 잘해줄 것 같이 이야기하면서 북한을 자극한다. 

붕괴를 전제하고 하는 통일대박론의 문제로 우선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통일 전에 통일 비용을 미리 투자하는 개념으로 남북교류협력을 활성화시켜서 경제공동체, 사회문화공동체를 만들려고 했다. 그리고 이것이 완성돼서 정치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시점이 되면, 그때 지출될 금액만을 통일비용으로 잡고 있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정치공동체부터 만들고 거꾸로 경제공동체를 시작하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결과적으로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에 끼친 영향으로 들어가고 있는 사회적 비용이 박근혜 정부에서 계속 늘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김연철 : 과정을 이야기하지 않고 결과로서의 통일만 강조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 때보다 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내긴 했지만, 사실 이 흐름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 나온 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 만들었던 통일항아리, 통일세 논의 등이 이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남북 간 현안에 관심을 쏟기보다는 지금 현실과 무관한 것을 강조한 측면이 있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이야기가 나왔던 통일 비용의 핵심은 남북한 경제력 격차를 줄이기 위한 비용이다. 또 통일비용 추산을 남북 간 경제력 격차가 어느 수준일 때 하느냐에 따라, 즉 시점에 따라 달라진다. 통일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남북 간 경제력 격차를 줄여야 하고, 그러려면 교류협력을 해야 하는데 지금 대북정책은 격차를 늘리면서, 즉 통일비용을 확대하면서 통일을 준비한다고 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 거다. 

정세현 :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이 전 세계 꼴찌에서 11~16등 정도라고 하더라. 물론 북한 경제에 대한 판단은 한국은행이 단독으로 하는 것은 아니고 국정원도 개입하지만, 만약 저 수치가 사실과 근접하는 것이라면 통일비용은 이전보다 훨씬 많이 들어갈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북한은 없는 걸로 취급하고 통일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통일을 북한을 흡수하거나 ‘대한민국 헌법 질서의 자동 연장’이라는 개념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는 박정희 대통령이 가졌었던 '수복'개념이다. 김영삼 정부 들어서 비로소 수복은 아니고 '특별 관리' 정도로 변했다. 독일의 경우를 보니까 우리가 상당기간, 10년 정도 북한 지역을 특별 관리해야 한다는 개념이었다. 이후 경제적 수위가 비슷해질 때 문을 연다는 개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거꾸로 수복 개념으로 통일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통일을 강조하는 것이 보수 결집을 위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박근혜 정부는 남북 간 대화하자고 하면서 북한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요구하거나 북측에서 요구하는 전단문제를 귓등으로도 안 듣고 그대로 밀고 나가고 있다. 그러면서 거창한 소리만 한다. 남북대화를 하겠다는 말의 진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김연철 : 박정희 대통령 당시 유신체제를 선포한 이유가 통일이었다. 통일시대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국내 정치적인 갈등을 지속할 수가 없다는 명분으로 선거를 없앴다. 과도하게 통일을 강조했을 때 그것이 가지는 국내정치적 함의에 대해서도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 

정세현 : 위기의식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 국가의 정책 방향이 통일이 아니라 오히려 안보를 강화하는 쪽으로 갈 소지가 크다. 통일이라는 말로 국민들의 사고를 마취시키는 방식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북한을 봐도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평양에 사는 사람들은 통일을 입에 달고 살고 있다. 예전에 평양에 있는 호텔에서 젊은 사람들을 보게되면 결혼했냐고, 언제 할거냐고 물었는데 아직 안했다고 하면서 뒤에 붙이는 대답이 걸작이다. "통일되면 할 겁니다". 난 속으로 어느 세월에 결혼하겠다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통일이 언제 되는데요?"라고 물으면 이들은 이렇게 답한다. "장군(김정일)님이 곧 시켜주실 겁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 갔을 때도 북한 주민들은 "김정일! 김정일! 통일! 통일!" 이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더라. 마치 남북 정상회담 한 번 하면 통일이 가까웠다고 생각하면서. 이렇게 통일만 강조하는 것 자체가 국민을 어리석게 만드는 행위다. 

북한에 통일을 위한 준비가 얼마나 됐나? 하나도 돼있지 않으면서 '조국통일 완수'라는 명분하에 북의 체제와 세습도 정당화되고 있는 것 아닌가? 북한 국내정치가 세력이 복잡하고 좌우, 보수·진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체제에 대한 충성도를 높이기 위해 통일을 남용하고 있다. 이런 점을 생각해보면 지금 시기에 박근혜 정부가 통일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 것이 불안한 측면이 있다. 

 

 

 "MB 부적격 인사, 포스코에서만 25조 날렸다"

[MB의 비용 2부] <2> 이명박 정부의 실패한 인사 정책

허환주 기자(정리) 2014.11.21 07:17:05

'경제 대통령'이 되겠다던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한 경제 정책은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왔고, 향후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한 정권이 추진한 정책에 대한 사후적 평가는 그 집권세력의 정치적 성향을 떠나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국민 혈세를 제대로 썼는지에 대한 평가이기 때문이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과 지식 협동조합 '좋은나라'(이사장 유종일)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직전 정부인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주요 경제 정책에 대한 평가로 'MB의 비용'을 공동 기획, 연재하고 있다. 1부에서는 4대강, 자원외교, 기업 비리, 원자력 발전소 비리, 한식세계화 등 주요 정책이 끼친 손실과 관련해 구체적인 비용을 추산해봤다. 

2부에서는 비용으로 추산하기는 힘들지만 명백하게 '손실'을 끼친 정책에 대해 논의한다. 경제정책 범주를 넘어서 통일외교, 정치 등 국가 시스템과 관련된 정책 의제들에 대해 전문가들이 어떤 평가를 하고 있는지 들어보고자 한다. 첫 번째 대담으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과 김연철 인제대학교 교수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평가했다. 

지난 18일 두 번째 대담으로는 김용진 서강대 교수와 윤태범 방송통신대학 교수가 이명박 정부의 낙하산 인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회는 이승선 <프레시안> 경제국제 전문기자가 맡았다. 아래 대담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

▲ 김용진 서강대 교수(왼쪽), 윤태범 방송통신대 교수(오른쪽). ⓒ프레시안(최형락)

▲ 김용진 서강대 교수(왼쪽), 윤태범 방송통신대 교수(오른쪽). ⓒ프레시안(최형락)


‘낙하산 인사’, 이 용어가 적절한가

이승선 : '낙하산 인사'라는 말은 쓰는 사람마다 정의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낙하산 인사'라는 용어를 먼저 정리하기 전에는 우리가 주제로 잡은 'MB의 낙하산 인사 비용'을 따지기가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다. 낙하산 인사라는 용어가 적절한지에 대해서부터 이야기를 해보면 좋을 듯하다. 

김용진 : 낙하산 인사라는 말을 개인적으로 싫어한다. 낙하산 인사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부적격 정실 인사'가 문제다. 

이승선 : '보은인사'가 더 맞지 않나. 

김용진 : 아니다. 대선 후보 캠프에 전문가가 들어가 일을 했다고 하자. 그리고 그 사람이 대선 후보의 공약을 만들고 정책을 만들었다. 그 뒤 대선 후보는 대통령이 됐다. 그러면 그 전문가는 대선 후보와 함께 그 정책이 제대로 이행되도록 하는 역할을 맡아야 하는 거 아닌가. 

윤태범 : 낙하산 인사를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선거에서 이긴 당선인에게 ‘너 혼자 들어가라'는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 분위기가 그렇다. 당선인 혼자 '철옹성'에 들어가서 무엇을 할 수 있겠나.  

이승선 : 낙하산 인사는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두 분 모두 생각하는 듯하다. 반면, 부적격 정실 인사에 대해서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럼 용어를 바꿔서 MB의 부적격 정실 인사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김용진 : '정실'은 서로 잘 아는 사이를 일컫는다. 즉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하지만 이 사람이 적격한 사람이냐는 또 다른 문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을 환경부 장관에 앉히려고 한다면 환경 관련 최소한 그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든지, 자격증을 가지고 있든지, 경력이 있든지 그래야 한다. 그래서 ‘아, 저 사람은 저 분야 전문가다’, 그렇게 인정할 수 있을 정도는 돼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고 잘 아는 사람, 즉 전문성은 없으면서 캠프에서 일했다고 고위직에 앉히는 것은 부적격 정실 인사라고 할 수 있다. 

윤태범 : 전문성이 부적격 정실 인사 논란을 피하기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인 것은 맞다. 과거 이철 국회의원이 철도공사(코레일 전신) 사장으로 취임할 할 때, 부적격 정실 인사 논란이 나왔다. 그때 나는 그가 부적격 정실 인사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당시 철도공사는 전환시기였다. 비정규직 고용문제로 노사갈등이 심각했고 여러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그런 구조가 있었기에 당시 철도공사는 경영이 중요한 게 아니라, 철도공사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가 중요했다. 

이승선 : 변화전문가가 필요했다는 건가. 

윤태범 :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이철 사장에게 미션을 줬다고 생각한다. '당신을 여기에 임명한 것은 이것 때문이다. 당신이 의원이라서가 아니라 지금 상황에서 적합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거기서 영업 흑자 만들라는 게 아니다'. 이렇게 말이다. 지금 최연혜 코레일은 사장은 흑자가 미션일수 있다. 하지만 이철 사장은 아니었다. 낙하산 인사에는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프로세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인사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인사 프로세스를 생각할 때 첫째, 프로세스가 제대로 구성됐나, 그다음으로 그 프로세스가 제대로 작동되는가. 이 두 가지를 고려한다. 하지만 MB 때는 이 두 가지 모두 잘 안 됐다. 인사 프로세스의 외관조차도 부실한 상황이었고, 설사 형식적으로 프로세스가 갖춰져 있다 해도 실제로는 부적절하게 운영됐다. 시스템 자체도 제대로 마련이 안 된 상황에서 대부분 인사가 무사통과했다.

반면, 노무현 정부 때는 낙하산 인사로 언론 등에 많이 공격을 받았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 말기에 인사검증에 관한 법을 하나 만들려고 했다. 그때 나는 청와대 인사검증 자문위원을 했고 법안을 만드는 데 관여했다. 당시 법에는 고위직의 자격조건과 후보에 대해 무엇을 검증하려는가에 대한 프로세스 등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이 법을 두고 청와대 내부에서 문제가 제기됐다. 스스로 우리 발목 잡는 거 아니냐고. 그러나 이런 반대를 무릅쓰고 청와대에서 인사검증안을 만들어 국회로 보냈다. 하지만 당시 한나라당이 반대해서 국회에서는 논의도 못 했다. 한나라당이 자기들이 정권을 잡은 뒤를 생각해 부담을 느끼니까 반대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청문회가 있지만, 절름발이다. 장관을 예로 들면 청문회는 있지만, 그 사람을 검증하는 시스템은 없다. 청문회법은 국회법이다. 즉, 그 전에 거쳐야할  검증에 관한 법은 없다. 청와대가 후보자를 선정하고, 자체 검증한다고 하지만 제대로 검증을 못하는 것이다. 청와대가 국회에 인사 후보자를 보낼 때는 주민등록번호, 병역기록 등 몇 가지만 해서 보낸다. 이러니 검증이 제대로 되겠나.

이승선 : 미국에는 인사검증 시스템이 법으로 되어 있나. 

윤태범 : 그렇다. 미국은 백악관에서 법에 따라 검증을 마친 뒤, 의회에 검증서를 보낸다. 그런데 우리는 국회에서 검증하니 후보자들이 만신창이가 된다. 제대로 인사를 하려면 완벽히 검증한 뒤, 국회로 보내서 ‘정책 청문회’가 되어야 하는데 지금 구조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이승선 : 우리나라의 청문회 제도는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과하더라도 직무수행이 힘들게 만들어 버리는 이유가 사전 검증 절차가 체계적으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김용진 : 미국은 최소 6개월 이상 인사에 대한 검증을 한다. 낱낱이 뒤진다. 

MB 때 유달리 많았던 비리 인사

▲ 김용진 서강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 김용진 서강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이승선
: 그렇게 부족한 검증 시스템이지만, 이상하게 MB 때 부적격 정실 인사 비리가 유달리 많았던 것 같다. 

김용진 : 윤 교수님이 말한 것처럼 인사에서 전문성은 필수조건이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프로세스를 말했는데, 나 역시 동의한다. 예를 들어 MB 정부 때 이석채 KT 회장은 KT와 같은 업종에서 1년 이상 사외이사를 했다. 당시 KT 정관은 ‘최근 2년 이내에 KT 경쟁업체와 공정거래법상 동일기업군에 속하는 업체에 임원으로 있던 자는 이사가 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어 LG전자와 SK C&C 사외이사로 있었던 이석채 회장은 사장 후보로 응모할 자격조차 없었다.
 
하지만 KT 사장추천위원회는 ‘정관을 개정한다’는 조건으로 이석채를 사장 후보로 추천하는 꼼수를 부렸다. 뭔가 공정성을 위해 만든 법도 그 사람을 위해 바꿔버린 셈이다. 그게 MB의 방식이었다. 그러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또한, 그렇게 선임한 인사, 즉 이석채 회장은 편법으로 자신을 선임한 사람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 이석채 회장에게 주어진 미션은 ‘빨리 가서 나를 도와라’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과만 보면 ‘다 해먹어라’인 듯하다. 얼마 전 KT 임원 만났는데, 고민이 많다고 했다. 이석채 회장 때 벌려놓은 수습하기 어려운 사업 때문이었다.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이 조직을 망가뜨린 셈이다. 부적격 정실 인사를 판단하는 기준 중 하나는 ‘보은 할 게 많은 사람 앉히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승선 : 그렇게 자기 사람을 심으려 무리한 인사를 했는데, 그에 따른 비용이 상당하다. 

김용진 : 부적격 정실 인사가 쓴 비용은 엄청나다. 대표적인 게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자원외교 비리다. 지금 언론에 공개된 내용을 보면, 자신들도 그 정도로 손실이 날 줄 몰랐다고 한다. 그런 판단을 내리는 위치에 있었으면서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역량이 없었던 거다. 

이승선 : 세부적으로 한번 살펴보자. 그 비용을 발생시킨 리스트를 꼽아 달라. 

윤태범 : MB 인사라는 게 두 가지 영역이 있는 듯하다. 장‧차관 인사와 공공기관장‧ 상임이사. 비용이라는 것은 다른 말로 '정책의 실패'로 표현할 수 있다. 4대강 사업을 예로 들어보자. 이 사업에는 국토부와 수자원공사가 동원됐다. 수자원공사의 경우, 4대강 사업을 하기 전에는  부채비율이 전체자산의 20%에 불과한 우량기업에 속했다. 하지만 불과 5년 만에 부실 공기업으로 변했다. 

공기업 회계는 정부가 저지르는 일종의 분식회계다. 정부의 위탁사업을 실행하는 게 공기업이기 때문이다. 정부부채에 공기업 부채를 포함시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4대강 사업이 공기업 부실을 초래한 과정을 보자. 정부 사업을 공기업이 하도록 하고 그 비용은 지불해주지 않고 수익사업권만 준다. 도로공사를 예로 들면, 도로 하나 만드는데 정부는 전체비용의 50%밖에 도로공사에 안 준다. 나머지는 도로공사가 스스로 채워야 한다. 결국, 통행료로 채워야 하는데 이것은 공사 마음대로 올리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적자를 메우려면 몇십 년 걸릴지 모른다. 

수익을 올릴만한 도로건설은 대부분 민자로 빠진다. 대표적인 게 맥쿼리였다. 정부가 최소수입까지 보장해주었다. 그러니 수익성을 따져볼 필요도 없이 대박이다. 맥쿼리가 하는 사업 대부분이 이런 식이었다.  

이승선 : 이 정도는 하려고 부적격 정실 인사를 한 게 아닌가.(웃음) 제대로 전문성 있는 사람을 수자원공사 등에 임명하면 방해가 되니 부적격 정실 인사를 해서 나라살림을 거덜 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부적격 정실 인사로 나라살림을 거덜 낸 사람들이 상당할 듯하다. 

김용진 : MB 정부에서 상당한 비용을 초래한 부적격 정실 인사의 대표적 사례로 이석채 회장이 꼽힌다. KT가 이석채 회장 재임 때 망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궁화호 2호, 3호 위성 매각 사건을 보자. 이 회장이 홍콩 위성업체 ABS에 단돈 45억 원에 매각하는 결정을 했다. 무궁화 2호, 3호의 설계수명이 다 됐다고 하지만, 보수하면 13년간 추가 운영이 가능한 상태였다. 이 결정으로 초래한 비용을 따져보자. 무엇보다 국가별로 할당된 위성궤도까지 못쓰게 했다는 게 심각한 손실이다.  

대체 위성도 없는 상황이라서 13년에 걸쳐 5200억 원의 손실이 생긴다. 새로운 위성 구매에 4000억 원 정도 들어가니 합하면 1조 원 가까운 비용이 초래됐다.

위성이 없으므로 군사정보를 미국과 일본에 의존해야 한다. 군사적 정보를 다른 나라에 의존하면서 발생하는 비용은 10조 원으로 추산된다. 

더 한심한 것은 국가에 할당된 위성 궤도까지 걸린 매각 결정은 정부가 해야 하는데, 민간업체가 결정한 것을 정부가 사후에 덜컥 승인해줬다는 점이다.  

이승선 : 위성이 없어 군사정보를 미국과 일본에 의존하는 비용이 10조 원이라고 추정하는 근거는 뭔가.

김용진 : 우리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전작권을 안 가져와 미군 주둔 비용을 우리가 내지 않나. 그것을 추산해보라.

이승선 : 이석채 회장 이외에도 그런 인물이 있나. 

김용진 : 정준양 포스코 전 회장도 기업을 망쳐놓으며 큰 비용을 발생시킨 인사로 꼽을 수 있다. 정 회장의 경우는 부적격 정실 인사라기보다는 인사 자체가 불법적으로 이뤄졌다. 

포스코는 민간기업이다. 정부가 인사에 개입할 수 없다. 정부 지분이 단 하나도 없다. 하지만 ‘영포 라인’으로 불리는 MB 측근 실세들이 정준양을 회장으로 임명하기로 하고 그에 따라 회장으로 임명됐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자기 패거리 이익을 생각하는 대표적인 도적들

이승선 : 정준양 회장도 정부가 미션을 주기 위해서 임명한 건가. 

김용진 : 당시 천신일, 박영준 등 핵심실세가 논의해서 정준양을 포스코에 보낸 거다. 그 후 어떤 변화가 일어났나. 2010년 70만 원이던 포스코 주가는 2013년에 30만 원으로 반 토막 이하로 폭락했다. 주가가 내려간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엉뚱한 짓을 많이 했다. 대우인터내셔널 등 부실기업들을 무수하게 매입했다. 포스코 시가총액이 현재 24조 원이다. 절반 떨어진 것으로 계산해도 25조 원을 날린 거다. 

▲ 윤태범 방송통신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 윤태범 방송통신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윤태범
: 민영화된 공기업의 경우 정상적으로 CEO 인사에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 그런데 부적절한 과정을 거쳐 임명된 인사는 ‘보은’을 할 수밖에 없다. KT, 포스코는 민영화된 일반 기업임에도 아직 정부 입김이 작용하는 걸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임명된 인사가 그 분야에서 전문성이 있더라도 정통성이 약하게 된다.  

이승선 : 정부 입김으로 들어갈 때, 뭔가 정권의 미션이 주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김용진 : 당시 포스코 내에서는 정준양 회장 말고 다른 사람이 하마평에 올랐었다. 그걸 박영준과 천신일이 뒤집은 거다. 그러면 뭐가 되겠나. 그 자리에 앉혀줬으니 뭔가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이승선 : 공기업 사장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도 그런 인사가 있지 않나. 

김용진 : 자원외교는 공기업이 다 한 거다. 광물자원공사, 석유공사, 수자원공사 등. 이들이 해외자원개발사업을 했는데, 대부분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과 연결된다. 실세라는 건 그런 돈을 만질 수 있는 라인, 즉 석유공사 사장 등을 임명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거기에 사람을 채우면 자기가 원하는 것은 모두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자원공사가 4대강 사업에 8조 원 넣을 때, 정부에서 갚아준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후 정부는 나 몰라라 했다.  

윤태범 : 박영준 전 차관은 전형적인 부적격 정실 인사다. 산업자원부(MB 정부 때 지식경제부)는 정무적인 판단보다는 전문가 역량이 필요한 곳이다. 특히 장관이 정무직 인사라면, 차관은 더욱 실무 전문가를 앉혀야 한다. 거기에 이상득 보좌관 출신의, 정치만 평생 하던 사람을 앉힌 거다. 

이승선 : 박영준 전 차관의 인사 과정도 문제인 듯하다. 

윤태범 : 박 전 차관이 모든 공직에 못 간다는 건 아니다. 청와대에도 있었지 않았나. 장‧차관 중에서도 갈 수 있는 곳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재오 의원도 국민권익위원회로 갔다. 그것은 부적격 정실 인사가 아니다. 전문성조차 없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영준은 가서는 안 되는 자리에 간 거였다. 가서 자원외교에 몰입하지 않았나. 

이승선 : 박영준이 개입한 공기업 부적격 정실 인사로 초래된 비용은 얼마나 될까? 

윤태범 : 정확히 추산하기는 힘들다. 자원개발은 나중에 실패했다고 해서 부적격 정실 인사 때문에 발생한 비용 문제로 단순히 치부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김용진 : 개발이 가능한지 알아보는 탐사 사업이라면 평가가 쉽지 않다. 탐사 사업은 전문성이 강한 영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MB의  자원개발은 '자주' 개발률을 높이려는 사업에서도 불거지고 있다. 자주개발률을 높이려면 이미 탐사가 끝나고 개발이 되고 있는 사업 지분을 획득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석유공사가 매입했다가 헐값에 팔아버린 하베스트의 자회사가 문제가 되고 있는데, 하베스트는 매입 당시 이미 운영되는 곳이었다. 나중에 보니 아무것도 나오지 않은 업체를 매입한 것이다. MB 정부는 자주 개발률 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해외자원 개발사업에 35조 원이나 퍼부었는데, 결과를 보면, 참담한 수준이다.  

이승선 : 4대강 사업, 기업 문제, 자원외교 등에서 발생한 비용과 손실을 보면 결국 부적절 정실 인사와 연결이 되는 문제인 듯하다. 

김용진 : MB 정부가 초래한 비용을 ‘기회비용’으로 넓혀보면 더 심각하다. IMF 사태 이후 정부가 미래를 위한 대규모 투자사업을 주도하지 못했다. 김대중,정부 때는 IMF 사태 이후 수습을 하느라 미래에 투자할 여유가 없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를 등한시했다는 점에서는 노무현 정부도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늦어도 MB 정부 때는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는 미래를 위한 투자에 주력했어야 했다.

그렇다 보니 지금 우리는 100원 벌면 45원이 해외로 나간다. 대규모 원천 기술 같은 것에 제때 투자를 못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탐사선을 보내 혜성에 탐사로봇까지 착륙시키는 데 1조7000억 원을 들였다고 한다. 만일 착륙에 실패했었다고 해도, 이 사업을 통해 이미 엄청나게 먼 거리까지 조정이 가능한 통신기술을 보유한 것이다. 유럽에서 10여 년에 걸쳐 이런 사업을 벌이는 동안 우리는 로봇 물고기 운운하고 있었다.(웃음) 22조 원을 날리면서 말이다.  

이승선 : 기회비용이라는 개념으로 ‘MB의 비용’을 생각하니 먹먹해진다. 박근혜 정부와 비교해도 MB 정부는 부적격 정실 인사로 초래된 비용이 두드러진 것 같다. 

김용진 : 박근혜 정부에서 아직 부적격 정실 인사로 얼마나 큰 비용이 초래되는지에 대해 큰 논란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그 이유를 생각하면, 그나마 대통령이 아직 힘이 있어 부적격 정실 인사들이 이상한 짓을 해서 자기네끼리 맘대로 해먹기 힘들어서 그런 것 같다. 반면 MB 정권 때는 위에서 아래까지 다 해먹는 구조였다. 

윤태범 : 박근혜 정부도 지켜봐야 안다. MB 정권 때도  2년차 때까지는 자원외교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다. 정권 말에 자원외교에 대한 문제가 확 드러났다.

김용진 : 박근혜 정부는 실제로 하는 일이 별로 없다. 나중에 부적격 정실 인사로 초래된 ‘비용’ 문제가 MB 때처럼 심각한 것으로 드러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적은 거 같다. 

이승선 : 해먹으려면 뭔가를 벌려야 하는데, 벌린 일이 별로 없다는 얘기인 듯하다. MB 정권의 실책이 4대강 사업, 해외자원외교 등인데, 또 다른 게 있을까. 

윤태범 : 공기업 부채 증가다. 상상을 초월한다. 자료를 보면 2008년 이후 급상승했다. 이 원인은 부적격 정실 인사와 부실한 감사 때문이다. MB 정부의 주요 국책 사업을 수행한 공공기관은 대부분 부채가 늘었다. 그런 공공기관을 살펴보면 대부분 부적격 정실 인사가 벌어진 곳이다. 

▲ 이승선 <프레시안> 경제국제 전문기자

▲ 이승선 <프레시안> 경제국제 전문기자


무능을 넘어 부도덕한 이들이 망친 MB 정권의 5년

이승선 : MB 정부 5년 동안 공공기관 부채가 200조 원이나 늘었다고 한다. 

김용진 : 외교안보분야에서 초래되는 기회비용도 생각해 보라. 이건 더욱 천문학적이다. 북한이 가진 자원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6000조 원 정도 된다는 보고서도 있었다. 지금 중국과 러시아가 다 가져가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이명박 정부가 허가한 제2롯데월드 문제도 군사적 비용과 관련해서 보자. 그 높이를 허가해주려면 성남 공항 활주로의 각도를 원래 7도 틀어야 했다. 그런데 3도만 틀어도 되게 해줬다. MB는 결코 승인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 김은기 당시 공군참모총장을 자르고, 다른 사람을 앉혀서 허가해줬다. 7도를 틀면 1조2000억 원이 들고 3도 틀면 3000억 원 든다. 이것만으로 롯데에 9000억 원의 이익을 안겨줬을 뿐 아니라 안보상으로 심각한 비용을 초래했다. 

이승선 : 결국 안보에 들어가는 비용, 외교 관계에 의해 얻어지는 국익을 외면하고 이상한 정책을 써서 엄청난 기회비용을 초래했다.  

윤태범 : MB 정부 때는 단순한 부적격 정실 인사뿐 아니라, 정책을 무리하게 합리화하기 위해 부적격 정실 인사를 동원했다는 점에서 질적으로 더욱 나쁘다. 

이승선 : MB 정부가 자행한 부적격 정실 인사는 무능을 넘어 부도덕한 측면이 강해 나라의 미래까지 망쳐버렸다. 

김용진 : 제대로 된 낙하산 인사는 욕심 대신 열정, 무능 대신 전문성을 갖춘 인물을 앉히는 것이다. 반면 MB 정권에서는 욕심과 무능만 가득 찬 인물들이 주요 요직에 앉아 나라살림만 거덜 냈다. 일자리 창출 사업은 대표적인 예산 낭비 사업이었다. 지속적인 고용창출이 아니라 돈으로 임시 일자리를 만들었을 뿐이다. 자전거 도로 사업도 마찬가지다. 미래지향적인 주요사업들보다 이 사업이 우선순위가 되면서, 자전거가 별로 다니지 않는 곳까지 자전거 도로를 만드느라 예산을 마구 썼다. 이런 사업은 나중에 유지보수 비용까지 경직성 비용을 계속 발생시킨다.

4대강 사업을 할 때, 내가 ‘제대로 사업이 되려면 IT가 동원된 컨트롤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인을 통해 청와대에 건의한 적이 있다. 비의 양을 예측하고 수문 조절 등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는 취지였는데, 청와대 측의 반응이 한심했다. 'IT 몰라요. 우린 토목만 알아요'라는 것이었다. ‘토목’만 아는 전문성이 없는 부적격 인사들로 채워져 있으니 이런 것이다.

이승선 : 대통령 자체가 부적격이었던 듯하다. 

김용진 : 내가 미국에서 10년 있다가 2007년에 귀국했는데, 이미 그때 나는 한국의 대통령이 될 자격에 대해 ‘토목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가 주장했다. 

이승선 : 선견지명이 있었나 보다. 어떤 이유로 그렇게 생각했나. 

김용진 : 토목 분야는 모든 비리와 협잡이 횡행하는 곳이다. 이곳의 전문경영인은 돈을 벌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토목 분야에서 CEO는 황제다. 그런데 토목사업의 CEO는 다시 오너의 머슴이다. 따라서 토목 분야 CEO 출신에게 민주주의적인 마인드와 국가를 생각하며 국정운영을 하는 리더십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이승선 : 유권자들이 김 교수의 탁견을 알았다면, MB를 대통령으로 뽑는 실수를 하지 않았을 텐데 아쉽다. 하지만 독재를 하더라도 잘 살게 해주면 그만이라는 기대가 커서 ‘부적격 인사’인 줄 가려내는 눈이 멀었던 것 같다. 정실 인사라고 해도 ‘적격’이면 된다고 하는데, ‘적격’인지 ‘부적격’인지 판단할 객관적인 기준이 있나?
 
윤태범 : 해당분야 전문성을 지녔다면 일단 필요조건을 갖춘 것이다. 정치인 중에도 대표적으로 국회의원 떨어진 사람을 앉히는 경우, 선거에서 도와준 사람 앉히는 경우 등은 정실 인사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적격이냐 아니냐는 다시 따져봐야 한다. 오죽하면 좋은 낙하산, 나쁜 낙하산으로 구분하겠는가. 

인사를 할 때는 해당분야에서 업무전문성을 가장 먼저 보고 그다음으로 고위직이 갖춰야 할 보편적인 조건으로 도덕성을 봐야 한다. 이 두 가지가 충족되면 세 번째로 과도하게 이해충돌이 있는 사람이냐 아니냐 라는 ‘윤리성’을 따져봐야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김성주 총재는 대표적인 부적격 정실 인사

이승선 : 박근혜 정부에서도 부적격 정실 인사가 문제가 되고 있다. 적격 인사인데, 부적격으로 매도당하거나, 적격 인사라고 청와대에서 강변하지만 명백한 부적격 인사 사례를 꼽아 달라. 

윤태범 :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은 부적격 정실 인사가 아니다. 기본조건은 다 갖추고 있다. 반면, 윤진숙 전 해수부 장관은 봐주려고 해도 봐줄 수가 없다. 그가 전문성이 있다고 하지만, 사실 해양수산 전문가는 아니다. 대표적인 부적격 정실 인사다. 그 사람이 장관으로 임명됐을 때 많은 사람이 ‘수첩에 적혀 있다는 이유‘로 검증도 없이 임명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김용진 : 김성주 대한적십자 총재도 부적격 정실 인사다. 그 사람은 그쪽 전문성이 전혀 없다. 게다가 적십자사비도 5년 동안 안 냈는데 말 다했다. 전문성, 도덕성 등 두 개 기준에서 다 안 된다. 필요조건이 안 되는 거다. 필요조건을 충족했다고 해도, 충분조건에 해당하는 절차적 정당성을 갖췄나. 그것도 아니다. 미국은 장관을 임명할 때 대통령이 나서서 ‘이 사람은 무엇을 잘하고, 나는 무엇을 하려고 이 사람을 임명한다’고 밝힌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인사권자가 그냥 덜렁 ‘너희가 검증해라’ 하면서 주민등록번호, 병역기록 등 몇몇 정보를 주는 게 아니라 ‘나는 왜 이 사람이 왜 필요한가’라고 설명하는 거다. 그러면서 ‘승인해 달라’고 하는 거다. 우리는 걸핏하면 전문성이 있느니, 도덕성이 있느니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게 빠져 있다. 바로  '목적적합성' 이라는 충분조건이다.

윤태범 : '낙하산이다 아니다', '적격하다 아니다'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없다. 모든 것을 언론에 맡긴다. 자격을 갖추고 있는데, 선거를 도와줬다는 이유로 오물을 씌운다. 인사검증에 대한 기준과 절차가 법적으로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적격한 인사도 이런 상황에서 임명되면 만신창이가 된다.

이승선 : 안철수 의원은 지난 대선 때 ‘선거에서 이겨도 선거를 도와준 사람들에게 공직을 나누지 않겠다’고 공약을 했더라.

김용진 : 그 말을 듣는 순간 ‘안철수는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랑 같이 정책을 만들고, 나를 위해 조직을 만들고 했던 사람이 같이 안 들어가면 어떻게 자신의 공약을 실천할 수 있겠는가.  

이승선 : 기업 CEO 출신이면 다 대통령감이 못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김용진 : 거대한 시장을 읽는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정도면 모르겠다. 700억 원 정도 규모의 IT기업, 그것도 뭔가를 지키려는 성향이 강한 보안솔루션을 주요 제품으로 하는 기업을 운영한 CEO 출신이라면 다시 생각해 봐야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주주권이 존재하는 기업환경을 가진 선진국과 달리 우리의 기업환경은 업종을 불문하고 민주적인 마인드셋이 형성된 CEO 출신 정치인은 기대하기 어렵다. 창업주 출신도 마찬가지다. 

이승선 : 끝으로 부적격 정실 인사로 국민에게 막대한 비용을 초래하지 않기 위해 앞으로 필요한 제도적 정비에 대해 말씀해 달라. 

윤태범 : 늘 부적격 정실 인사를 둘러싸고 논란만 있고 제도적 정비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면서 여야건 언론이건 간섭 말라고 청와대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인사권을 위임받은 것이다.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있지만, 국회는 국민을 대표해 검증할 권한이 있다. 국회 청문회가 인사권 간섭이 아닌 정책 검증을 하려면, 청와대에서 확실한 사전 검증을 하는 절차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승선 : 여러 조언을 해주셨다. 앞으로 ‘MB의 부적격 정실 인사가 초래한 비용’ 같은 대담이 없길 바라는 마음에서 인사 시스템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길 바란다. 오랜 시간 감사하다.  

 

"MB '언론 장악' 칼부림…목표는 따로 있었다"

[MB의 비용 2부] <3> '언론 암흑기' 만든 이명박 정부 5년

서어리 기자(정리) 2014.12.01 11:46:23

 
'경제 대통령'이 되겠다던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한 경제 정책은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왔고, 향후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한 정권이 추진한 정책에 대한 사후적 평가는 그 집권세력의 정치적 성향을 떠나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국민 혈세를 제대로 썼는지에 대한 평가이기 때문이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과 지식 협동조합 '좋은나라'(이사장 유종일)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직전 정부인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주요 경제 정책에 대한 평가로 'MB의 비용'을 공동 기획, 연재하고 있다. 1부에서는 4대강, 자원외교, 기업 비리, 원자력 발전소 비리, 한식세계화 등 주요 정책이 끼친 손실과 관련해 구체적인 비용을 추산해봤다.

2부에서는 비용으로 추산하기는 힘들지만 명백하게 '손실'을 끼친 정책에 대해 논의한다. 경제정책 범주를 넘어서 통일외교, 정치 등 국가 시스템과 관련된 정책 의제들에 대해 전문가들이 어떤 평가를 하고 있는지 들어보고자 한다. 첫 번째 대담에선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평가한 데 이어 두 번째 대담에선 임기 내내 '낙하산'으로 점철된 인사정책에 대해 짚어봤다.


지난달 21일 세 번째 대담에서는 김신동 한림대 교수와 최상재 전 전국언론노조위원장이 이명박 정부 임기 내내 이어진 '언론 장악' 시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사회는 박인규 <프레시안> 이사장이 맡았다.

▲'MB의 비용' 세 번째 대담에서는 김신동 한림대 교수와 최상재 전 전국언론노조위원장이 이명박 정부 임기 내내 이어진 '언론 장악' 시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프레시안(최형락)

▲'MB의 비용' 세 번째 대담에서는 김신동 한림대 교수와 최상재 전 전국언론노조위원장이 이명박 정부 임기 내내 이어진 '언론 장악' 시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프레시안(최형락)


"MB에게 언론은 도구… 목표는 따로 있었다"

프레시안 : 보수 진영 입장에서 볼 때 이명박(MB) 정권의 대표 업적으로 남북관계 파탄, 부자 감세, 4대강 사업 등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언론 장악이다. 정연주 전 한국방송공사(KBS) 사장 등 다수 언론인을 해임하면서 방송의 공영성을 망가뜨렸고, 미디어산업육성을 명목으로 미디어법을 통과시켜 보수 위주의 담론 질서를 강고하게 구축했다. MB 정부 시절의 언론 정책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일단 총론적인 설명을 부탁한다.

최상재 : 단적인 예가 국제언론단체 프리덤하우스가 매년 발표하는 자유언론지수다. 노무현 정권 마지막 해였던 2007년 순위가 37위였는데 2008년 47위로 뚝 떨어졌다. 2009년에는 문화방송(MBC) PD수첩 제작진 체포건, MBC-KBS 기자-피디(PD) 해직사건으로 69위까지 내려앉았다. 이후 약간 회복했다가 지금 다시 68위로 떨어졌다. 노무현 정권 후반부 기자실 폐쇄건 전에는 해외 취재 나가서 일찍 이민 간 분들이 "한국은 언론 자유가 없다"고 하면 우리는 "옛날 이야기다. 지금 한국 언론자유도는 세계 최고수준이다. 미국도 국익 관련 보도 통제하고, 일본도 천황 기사는 통제하지 않느냐. 우리는 과도할 정도로 정부 비판을 많이 한다"고 했다. 대부분의 언론인들도 1987년 이후 언론 환경이 자유로워졌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는 못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권 바뀌는 것 자체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MB 정부는 정말 실용적인 정부가 될 거라고 예측했다. 그런데 완전히 딴판이었다. 한마디로, DJ(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며 민주화되던 언론을 그 전으로 되돌렸다. 상당히 저항이 있을 수밖에 없는 걸 알면서도 그걸 감수하고라도 할 과제와 목표가 있었다. 언론 장악은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었다. 궁극적인 목표는 4대강, 자원외교, 공공부문 민영화였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언론을 손을 본 것이다. 그런데 예상보다 언론계 저항이 컸고, 그래서 언론과의 전쟁 때문에 정작 하고 싶은 걸 다 못하고 임기가 끝났다.

프레시안 : MB 정권 이후엔 언론 상태가 어떻다고 보나.

김신동 : 어떤 정권이든 퇴행을 목표로 삼지는 않을 거다. 결국 언론을 도구화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이런 퇴행적인 결과를 만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왜 언론을 도구화할 필요성을 느꼈을까. 바로 제도의 습관(institution habit) 때문이다. MB 정권을 리드하던 사람들이 기억하던 제도와 1987년 이후 한국 사회가 새로 개척한 제도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었다. MB 정권을 이끈 사람들은 새롭게 만들어나가고 있는 그러한 제도를 이해하지도, 공감하지 못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갖고 있는 제도의 기억이란 1970년대 관이 주도하는 지시적이고 일방적인 발전주의 모델이었다. 그러니 언론이라는 것도 정권이 경쟁적으로 설득해야 하는 그런 상대가 아닌, 정치 권력이 동원할 수 있는 자원 정도로 이해한 것이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제도도 있다. 대통령이 공영방송 사장을 다 임명하는 구조이지 않나. 제도가 걸러주지 못하고, 대통령의 선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언론을 도구화했다는 데 두 분 다 동의하는 것 같다. 그런데 MB 정부가 정연주 강제 퇴임, 미디어법 시행 등 일련의 언론 탄압을 했던 뚜렷한 동기가 있었던 것 같다. MB 정부가 집권 초기 광우병 촛불시위로 애를 먹지 않았나. 그리고 촛불시위를 촉발하게 한 게 다름 아닌 방송, MBC 'PD수첩'이었다.

최상재 : MB가 집권하기 전부터 한나라당은 앞선 두 번의 대선 패배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상파 방송을 지목했다. 집권하면 가장 먼저 손댈 대상으로 간주했다. 아니나 다를까 MBC 'PD수첩' 광우병 편이 나오고 나서 4~5개월 이상은 정권이 흔들릴 정도로 위기가 왔다. 다행히 시위 도중 큰 인명 사고는 없었지만, 사망 사건이라도 나왔으면 아마 역사가 달라졌을 거다. KBS를 장악하기 조금 전에는 YTN 구본홍 사장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냈다. 방송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된 것이다. YTN 낙하산 사장 취임 이후부터 촛불시위 진압에 성공했다고 판단하면서 MB는 그해 8~9월 정연주 해임 작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공영방송 체계를 손을 보면서 차츰 보수정권에 적합한 시스템을 만들었다. 사실 그때 난 '민주개혁진보 진영에서는 대체 두 번의 정권 동안 대체 뭐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자고 해서 약간의 변화는 있었지만, 허망하게도 MB 정부 이후 단 몇 개월 만에 방송체계가 급속도로 보수화됐다.

▲김신동 한림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김신동 한림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군부 독재 시절 언론인 부역자들, 청산됐어야 했다"

프레시안 : MB 정부가 들어설 당시, '이미 우리 사회는 두 번의 수평적 정권 교체를 했기 때문에 우리 민주화가 안정적인 단계에 들어섰다. 그러니 MB 정부가 들어서도 크게 문제없을 것'이라고 한 정치학자들이 많았다. 이론적으로는 방송의 독립성 지켜지는 게 맞았어야 했는데, 아니었다. MB가 위법임을 알면서도 언론 장악을 밀어붙인 건 정권유지와 관련된 욕심 때문이었나.

김신동 : 큰일이 없는 한 임기까지는 대통령직이 유지가 된다. 헌법을 고치지 않는 한 결국 '계급이익의 충돌'이라고 보는 게 정답인 것 같다. 두 번의 진보정권을 가졌다고 해서 민주주의를 뿌리내리는 것은 굉장한 낙관주의라고 본다. 프랑스는 지금이 제5공화국이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1958년 샤를 드골이 정권을 잡을 때까지 근 200년 동안 정권이 5번이 뒤바뀐 한 것이다.

우리도 반동의 시기를 가졌으니, MB 입장에서는 국민 여론이나 전문성과는 무관하게 최시중 씨나 김재철 씨를 낙하산 임명하는 게 큰 갈등이 없으리라고 봤을 것이다. 그전 두 정권이 정연주 사장을 내정한 것과 자기가 김재철 임명하는 것과 똑같다고 본 것이다. 정연주가 걸리적거리니까 바꾸겠다는 건 당연한 거였다.

이건 계급 차원의 문제인데, 구체적인 정책이라는 게 결국 특정 섹터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다. 국민 전체의 이익도 있지만 그보단 계급적 이익을 대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실 우리가 다 알고도 MB를 선택했는데, 그 이유는 당시 대선 당시 우리는 이상한 희망적 아포리즘에 빠져있었다. '실용주의'라는 것이다. MB는 당성을 떠난 실용적인 경제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이상한 착각 속에 빠져있었다. 그러나 집권 후 백일하에 그게 잘못된 생각이란 게 드러났다. 그건 이 사회가 충분한 사회적 경험을 축적하지 못한 데서 온 결과다. 그런 현상이 다시 또 반복되지 않는다는 법도 없다.

프레시안 : MB가 자신이 최시중을 쓰는 거나 노무현이 정연주를 쓰는 거나 다름 없다고 생각했을 거라고 했다. 그런데 재밌는 현상이, 노무현 정권 당시엔 언론인 해직 같은 극단적인 사례가 없었어도 이른바 '조중동' 대한 언론 탄압이라는 담론이 유행했다. 오히려 진짜 언론 탄압 국면이었던 MB 땐 언론 탄압이 사회적 의제로 나오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봐야 할까. 국민들의 의식의 문제인가. 야당의 문제인가. 언론의 문제인가.

김신동 : 우리 공영방송이 두 진보정권을 거치면서, 하루아침에 소위 민주주의적 공영방송이 된 것처럼 보여졌다. 그러나 사실 공영방송의 역사는 정말 오욕의 역사였다. 박정희 정권 이래 군부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했다. 그러나 과연 독재가 물러났을 때 그럼 독재 나팔수였던 공영방송도 체제개선을 했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독일은 나치 때 부역한 언론인이 전쟁 후 숙청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독재 때 나팔 불던 사람들이 처벌 받지도, 책임지고 나가지도 않았다.

민주화에 접어드니 독재 부역자들은 민주화로 노선을 갈아타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2선으로 숨었다. 소위 말해 투쟁적이었던 사람들과 자리 교대를 하고 2선에서 안주했다. 먼저 내부 정리가 있었어야 한다. 그런데 민주 정권의 딜레마가 있었다. 막상 집권을 했지만 정권을 돌볼 자원이 없자 DJ가 꺼내 든 카드 화합이었다. 아무도 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굉장히 현명한 판단이었다. 또 조중동의 일방사격에서 막아 줄 도구가 공영방송이었다. 그래서 벌을 주거나 바로잡지 않고 오히려 상을 주게 된다. 그래서 방송이 무소불위의 힘,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되었다. 국회의원, 심지어 대통령조차도 눈치 보는 공영방송이 탄생한 것이다. 그러다 다시 정권이 바뀌자마자 또 반대로 바로 자리바꿈 현상이 일어났고, 민주 진보 진영이 역화살을 맞은 거다.

프레시안 : 진보 정권 스스로 쟁취한 정권이 아니기 때문이었을까.

최상재 : 언론인 독재 부역자 문제는 해방 이후 우리 사회가 친일파 청산을 못 하는 모든 문제점과 궤가 거의 같다. 당연히 독재 정권에 부역한 언론인이 청산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했다. DJ 정권 때도 합리적이라고는 하나 보수에 가까운 박권상 사장을 KBS 사장에 앉혔다. 내부 개혁이 아니라 타협을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때 시대정신은 과감한 청산이었어야 했다.

미디어법 투쟁할 때도 가장 대응하기 어려운 게 한나라당 의원들이 '다 지난 정권 때 발의된 것'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노무현 정부 때 이미 종편 얘기가 나왔다. 우리는 '방송계 전체를 정글로 만들 거다. 어찌 민주개혁 정권이 할 일이냐'고 물었었다. 또 차세대 성장동력이라면서 '통방 융합'을 외쳤다. 이건 기본적인 방송 기능을 무시하거나 다가올 재앙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은 탓이었다. 지금 야권은 그런 과거를 반성해야 한다.

자유무역협정(FTA)도 마찬가지다. 혹여 FTA가 필요한 상황이 오더라도, 이쪽 정부가 아니라 저쪽이 집권했을 때 할 일이었다. 그에 따른 갈등, 모순 생기면 그걸 기반으로 정권 바뀌어야 하니까. 노무현 정권 때는 민주진보 진영이 탄핵 이후론 과반 의석도 갖고 있었으니 사회 변혁할 새로운 질서에 도전해야 하는데, 이렇게 실용 정부니 대연정이니 하면서 좌회전 깜빡이 켜면서 스스로 우경화했다.

▲최상재 전 언론노조위원장. ⓒ프레시안(최형락)

▲최상재 전 언론노조위원장. ⓒ프레시안(최형락)


"미디어법 낳은 민주 정권… 산업 이전에 '언론 퇴행' 고려했어야"

프레시안 : 자연스럽게 미디어법 얘기로 넘어가는 것 같다. 노무현 정권 때 실제로 미디어법이 논의 됐었나.

김신동 : 맞다. 그러나 종편 논의가 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이 있었다. 어디 정권에서 시작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시작은 서로 동의했지만, 결론이 전혀 엉뚱하게 떨어졌다. 왜 이렇게 일이 꼬였는지를 추적하는 게 중요하다.

종편 도입은 정권이 사업으로 한 건 아니다. 각종 뉴미디어가 등장하면서 방송 통신 환경이 지난 20년 사이 급변하면서 산업이 재조정이 되고 있다. 한국은 80년 전두환 정권이 언론통폐합 조치를 단행하면서 MBC-KBS 쌍두 체제를 탄생시켰다. 알다시피 언론 장악을 하면서 유럽식 공영방송이라고 뒤집어씌운 것이다. 그러나 이건 유럽식과 관련 없는 독재 방식이었고, 그 과정에서 한국의 공영방송이 전 세계적으로 봐도 힘이 아주 센 방송이 된다. 그런 기조가 90년대로 들어오면서도 유지되고, 민주화가 되면서 돈만 많이 버는 게 아니라 이제는 민주 투사로 화관까지 뒤집어쓰게 됐다.

또 동시에 영상산업진흥을 한다, 미래산업에 도움이 된다, 이런 명분으로 외주제작제도가 도입하면서 많은 프로그램이 외주화됐다. 대형 방송사의 '갑질 관행'은 이렇게 시작했고 지금도 이어진다. 그런데 재밌는 게, 공영방송 대표라 하는 영국 BBC도 채널이 200개, 500개 생기면서 더 이상 공영성을 가져갈 수 없어서 혼영 방송으로 바꿨다. 최소한의 공영 부문을 살리면서 결국 민간 업자에게 일정 부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미국처럼 모든 걸 상업주의로 돌릴 순 없으니, 우리도 유럽식 혼영체제로 가야 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일정 정도 공영성은 유지하되 나머지 폭발 성장하는 부문에선 시장 경쟁 논리를 도입해서 케이블 채널을 확대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채널 인허가를 내는데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해서 승인할 필요가 없다. 기본 요건만 충족하면 알아서 하도록 해야 한다. 종편은 어차피 수많은 케이블 중 하나이니, 특별히 이상하지 않으면 알아서 하도록 해야 했다. 그런데 정부는 이게 뭐가 대단한 특권이라고 움켜쥐었다. 그래서 종편 심사에 시비가 붙었다. 그러니 애초에 왜 심사를 하나.

처음이 문제가 아니다. 어느 정권에서든 변화하는 방송 통신 환경 때문에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끌고 가는 과정에서 정파 논리가 들어가고 페어플레이가 된 게 아니라 묘한 형태로 허들을 만들어 입맛에 맞는 종편 방송을 만들도록 한 것이다.

최상재 : 그런 언론 환경의 변화는 인정한다. 그러나 저는 전 민주 정권에 분명한 실책이 있었다고 본다. 종편을 운운한 것은 나중에 정권이 바뀌어도 한국의 언론 자유가 퇴보하지 않을 거라는 ‘나이브’한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영 부문을 지킬 법적 제도적 장치부터 만드는 게 선결조건이었다. 그것부터 하지 않고 산업적인 측면만 강조하다 보니 문제가 생긴 거다.

김신동 : 저도 동감하는 바다.

최상재 : 지상파 방송이 전체 시장에서 보면 밉상일 거다. 인정한다. 미디어법 싸움할 때 대안언론 쪽 반응이 뜨뜻미지근했다. 그래서 늘 이야기한 게 공영방송 포함한 전체 제도권 방송은 결국 저수지 수위 같고, 대안언론은 그 안의 물고기라는 것이다. 굉장히 밉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보고 미디어법 투쟁에 힘써달라고 설득을 했었다.

프레시안 : <프레시안>은 당시에 같이 열심히 싸웠다(웃음). 그런데 정작 야당 반응이 더 미적지근하지 않았나 싶다.

최상재 : 그때가 민주당이 2007년 대선에 지고 나서 손학규 대표 체제가 들어섰을 때다. 정부조직법으로 MB 정부 인수위와 붙었다. 그때 여성청소년, 통일부 쪽에만 관심을 두고 방송 통신 문제에 대해선 MB가 원하는 대로 넘겨줬다. 아주 나이브하게 접근했다.140이 넘는 의석에서 나중에 90석으로 줄고 나서 미디어법 투쟁할 때, 한 번도 시위장에 얼굴을 내비치지 않은 사람도 절반이었다. 저는 그걸 보고 예견했다. 지금의 야당이 다음에 또 정권을 못 잡을 거라고. 사태 파악을 너무도 못 했다.

▲박인규 <프레시안> 이사장. ⓒ프레시안(최형락)

▲박인규 <프레시안> 이사장. ⓒ프레시안(최형락)


"공영방송은 인사권 통제, 종편은 무한경쟁 속 보호… MB, 성공했다"

프레시안 : 정치적인 결과를 얘기하기 전에, 당시 미디어법이 어쨌든 고용 창출 등 산업적 필요에 의해서 한 건데 법안 통과 후 3년이 지난 지금 산업적 효과를 어떻게 보고 있나.

김신동 : 정책이 잘되고 못되고를 떠나 산업은 확장되고 있다. 종편 뿐 아니라 그 외 플랫폼 다양해지고 소설미디어 같은 서비스 폭이 확장되면서 미디어 부문이 계속 성장하고 있다. 정부는 그런 성장을 더 잘 독려하기 위해 법을 만들자는 취지였는데, 지금 우리가 보는 성장이 그런 입법 취지에 잘 맞아떨어졌을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지금 큰 메가트렌드 상에서 일어나는 정도의 성장 효과를 보고 있는 거다.

좀 더 다른 각도에서 재밌는 현상이 있다. 종편이 네 개 나왔을 때는 똑같았지만, 종편 내에서 차별화 전쟁이 진행됐다. 일단은 JTBC가 약진하고 MBC가 몰락하면서 무소불위의 공영방송도 하루아침에 종편화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내용 없는 종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이게 MBC를 대체할 수 있다는, 누가 기획하지 않은 역동성을 보고 있다.

학생들에게 연구 주제를 잡으라고 하면 JTBC를 지목한다. 지상파 3사가 새로 시장에 뛰어든 군소경쟁자한테 이상한 방식으로 밀리는 것이다. 3사 집단은 깨기 힘든 자기만의 패턴이 있다. 도전자들은 판을 뒤집지 않으면 자기 공간을 만들 수 없다. 그래서 종편은 훨씬 더 창의적이고, 안 좋은 경우는 엽기적인 일들을 만드는 것이다.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란 프로그램을 예로 들자. 탈북자들을 데려다가 탈북 경험이나 북한 생각에 대한 경험 증언 듣는데, 대부분이 전부 검증할 수 없는 '카더라'다. 물론 많은 프로그램들이 뜬소문을 가져오지만, 이를테면 아오지 탄광에서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하면 그걸 어떻게 검증할 수 있나. 그러니 방향이 뻔하고 오히려 반통일적인 방송이라는 생각이 든다.

프레시안 : MB 때 진보 대 보수의 보도 성향이 5대 5를 유지했다면 지금은 9대 1 같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세월호 참사 등 정권 민감한 사건 국면마다 종편에서는 보수 위주의 담론만을 생산하고, 그런 것들이 박근혜 정권에는 유리한, 진보 개혁 계열의 당에 불리한 여론 지형을 만든다. 이명박 정부가 만들어놓은 언론 지형이 박근혜 정부를 지탱하는 중대한 기둥의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최상재 : 그런 면에서 MB 정부가 성공했다고 봐야 한다. 우선 공영방송 체계를 낙하산 인사를 통해 장악하면서 인사권을 확실히 가지게 됐다. 그리고 무한경쟁의 시장경제를 뛰어넘어 종편을 보호했다. 경인방송(OBS) 연 매출은 불과 350억인 데 반해 종편이 네 곳 다 800~900억대 매출을 올리고 있다.

프레시안 : 방송학자들이 종편 네 개를 다 허가를 주면 하나도 못 살아남을 거라고 했다. 판단 착오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김신동 : 두 개는 살고 두 개는 손들고 나가지 않겠느냐고 했다. 근데 언론사들이 재밌는 게, 한국일보 죽는다는 소리가 20년 전부터 나온다. 매체 산업이 굴뚝 산업이 아니기 때문에 시작하는데 자본금이 수백, 수천억이 들어 갈 이유가 없다. 대학 방송국 정도 설비만 갖고 있으면 방송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오히려 불필요하게 허들을 높여서 대기업 아니면 못하게 하는 게 문제다. 벽만 낮추면 <프레시안>도 <한겨레>도 다 들어갈 수 있다. 비싼 돈 들여서 출범한 TV조선이나 채널A가 지금 어떤지를 생각해보자. 정작 제작비가 없으니 이상한 토크쇼만 내보낸다. 돈 하나 안 들이고 스튜디오에서 헛소리를 해도 사람들은 재밌다고 보니까 광고 싸게 해도 유지가 되는 거다. 그래서 좀체 쉽사리 망할 일이 없다. 원자재 값이 안 들어가니.

최상재 : 종편은 제작비를 안 쓰고, ‘재방률’도 60% 가까이 된다. 그런데도 2013년 MBN이 200억, 채널A가 290억, JTBC가 1500억 적자가 났다. JTBC는 자본 잠식도 끝난 것 같은데 언제까지 버틸지 모르겠다. 물론 모기업 신문사의 백그라운드도 있고 정치권력이 받쳐주니 유지는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버티는 과정에서 옆에서 매체들이, 특히 중소 매체들이 녹아난다는 게 문제다. 중소매체들까지. 아마 내년부터 광고사정이 더 줄어들 것이다. 아마 지상파 방송도 올해 다 적자일 텐데, 그래서 제작비 깎자는 얘기가 나온다. 그럼 결국 외부 제작비를 깎게 된다. 또 공익 프로그램은 기획단계에서 다 '킬(Kill)' 되고.

이런 가운데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지상파와 종편에 이중적인 규제를 하고 있다. 만약 윤창중이 지상파에 나왔으면 바로 징계를 받았을 거다. 그런데 종편에서는 아주 형식적인 징계만 간다. 지금도 종편에서는 하루에도 대여섯 시간씩 아주 정치적인 이야기, 특히 확인 안 되는 이야기들로 방송을 한다. 그럼 중장년 이상의 사람들이 종편의 논리로 20~30대를 설득한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 사회를 병들게 만들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

김신동 : 종편 등장 등 다채널화는 경쟁을 조장하는데, 이는 벗어날 수 없는 특성이라고 본다. 일종의 방송의 '타블로이드화'라고 본다. 영국 같은 고급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사람이 고양이를 낳았다는 말도 안 되는 뉴스가 나오는 신문이 있지 않나. 큰 틀에서 보면, 방송산업에 대해 규제를 푸는 과정에 대해 타블로이드화 현상이 종편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보인다. 그런데 종편의 잠재적, 현재적 위협을 어디까지 입증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시청률이 1%도 안 되는 게 많은데 지나치게 위협적인 걸로 생각하는 게 아니냐, 과대평가하는 것은 아니냐 이런 생각도 든다.

▲지난달 27일 대법원은 YTN 해직기자들이 사측을 상대로 낸 해고무효소송에 대해 3명은 해직 유효, 3명은 해직 무효 판결을 내놨다. YTN은 MB 정부 들어 첫 '언론 장악' 사례로 기록됐다. ⓒ프레시안(최형락)

▲지난달 27일 대법원은 YTN 해직기자들이 사측을 상대로 낸 해고무효소송에 대해 3명은 해직 유효, 3명은 해직 무효 판결을 내놨다. YTN은 MB 정부 들어 첫 '언론 장악' 사례로 기록됐다. ⓒ프레시안(최형락)


"MB는 서툰 칼, 박근혜는 날카로운 칼… 대안 준비해야"

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 언론 정책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정부가 언론 정책에 있어 MB에 뒤지지 않게 퇴행시킬 거라는 얘기가 많다. 최근 여당이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서 KBS와 EBS를 공공기관에서 지정할 수 없다고 한 조항을 삭제한 개정안을 내놓아 논란이 되고 있다.

최상재 : 이 문제의 핵심은 이제 인사뿐 아니라 예산을 통해서도 공영방송을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과거에 언론인들이 두세 번 정도 막았던 일인데, 이번에도 또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대통령이 대선 때 언론 기능을 원상회복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하나도 지켜진 게 없다. 특히 종편 특혜에 대해선 아무 말이 없다. 지금 상황이 유리하다고 본 것이다. 나아가 세월호 같은 경우도 보도 자제 압력이 공공연하게 들어왔다. MB 정부 때는 서툰 칼이라 피가 많이 튀었다면, 지금은 오히려 더 날카롭게 언론에 대한 압력이 들어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의 자체적 노력도 필요하지만, 야당이나 시민사회에서 공영방송의 독립성, 공영성 담보하기 위해 내놓을 수 있는 방안이 뭐가 있을까.

최상재 : 일단 박근혜 정부는 노력을 안 할 것이다. 어떤 보수적 방송도 동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저는 JTBC 손석희 앵커의 활약에 대해 너무 좋게 보지 말라고 하고 싶다. 평가기준이 달라야 한다. KBS와 MBC는 정권을 비판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지고 판단해야 하지만, 종편은 내외부에 오가는 자본을 비판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바라봐야 한다. 정권 비판 보도로 징계를 받으면 오히려 브랜드 지명도를 올리는 일이 될 수 있다. 현재 지상파 가운데 SBS가 그나마 낫다고 하는데, 결코 나을 게 없다. 여전히 태영 관련 보도는 하지 않는다. 결국 학계나 시민사회가 새로운 대안을 내놓는 수밖에 없다. 지금은 보수 정권에게 달콤한 시기이다. 이게 보수 정권을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 지금은 변하지 않을 것 같지만 언젠간 변화의 때가 올 것이다. 문제는 그냥 기다려선 안 된다는 점이다. 언론의 자유나 공영방송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 제기해야 한다.

김신동 :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가시적으로 공영방송을 개선할 안을 기대하긴 어렵다. 더 우울한 것은 공영방송의 문제를 우려하고 대안을 모색하려는 노력 자체도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학계에서는 일종의 자기검열까지 겹쳐져서 여러 눈치를 본다. 제가 여기 나왔으니 KBS나 MBC에서 전화 오는 일은 다 없어질 거다(웃음). 그런 정도로 위협을 느낀다. 답답하지만 다른 도리가 없다.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나가야 한다.

최상재 : 여전히 양식 있는 언론인과 언론학자의 헌신이나 희생이 필요하다. 1980년대 초반에 노동운동을 한 사람은 1987년에 그렇게 빨리 세상이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 못 했다. 1970~1980년대 사람들의 희생을 기반으로 한 동력이 사반세기 가량 갔다. 그걸 생각해야 한다.

 

 

 "MB는 결코 정치에 무능하지 않았다"

[MB의 비용 2부] <4> "보수정부 10년, 야권의 대안은 무엇인가?"

임경구 기자, 최하얀 기자 2014.12.09 10:06:24

 
'경제 대통령'이 되겠다던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한 경제 정책은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왔고, 향후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한 정권이 추진한 정책에 대한 사후적 평가는 그 집권세력의 정치적 성향을 떠나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국민 혈세를 제대로 썼는지에 대한 평가이기 때문이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과 지식 협동조합 '좋은나라'(이사장 유종일)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직전 정부인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주요 경제 정책에 대한 평가로 'MB의 비용'을 공동 기획, 연재하고 있다. 1부에서는 4대강, 자원외교, 기업 비리, 원자력 발전소 비리, 한식세계화 등 주요 정책이 끼친 손실과 관련해 구체적인 비용을 추산해봤다.

2부에서는 비용으로 추산하기는 힘들지만 명백하게 '손실'을 끼친 정책에 대해 논의한다. 경제정책 범주를 넘어서 통일외교, 정치 등 국가 시스템과 관련된 정책 의제들에 대해 전문가들이 어떤 평가를 하고 있는지 들어보고자 한다. 앞선 대담에선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과 인사정책, 언론정책에 대해 짚어봤다.


네 번째 대담은 '정치'다. 박동천 전북대 교수와 이철희 두문정치연구소 소장이 돌아봤다. 

2008년 촛불사태로부터 2012년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에 이르기까지, 이명박 정부 5년은 민주주의에 관한 평범한 시민들의 상식이 으깨지는 과정이었다. 대통령에게 정치는 비효율이었다. 이제 와 문제가 되고 있는 4대강 사업의 후과도, 자원외교의 실패도, 방산비리의 '적폐'도 사회적 저항을 외면하고 "공동체에 비용을 전가한 착취형 권력"(박동천)의 단면이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정치의 기술'에서 대단한 유능함(?)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공통적이었다. "보수 정권으로서의 정체성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싸움의 기술 측면에서도 무능하다고 말하기 어렵다"(이철희)는 것. 어찌됐건 정권 재창출에도 성공했다.  

'정신적 승리'에 족할 게 아니라면, 이명박 정부에 대한 무조건적인 '악마화'는 그 기저에 깔린 야당의 실패를 은폐한다. 민주와 반민주의 도식화된 구분법에 입각한 야당의 전략은 '반(反)MB'에서 '反이명박근혜'로 이어졌으나, 보수정권의 본질에 대한 비판, 나아가 대안적 의제 제시에 아둔했다.

야당은 그래서 실패했다. 하기에 이명박 정부 시절의 '정치의 비용'을 되새기는 일은 부득불 야당의 무능에 대한 현재적 비판으로 이어졌다. 이명박 정부 5년의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과연 야당은 '이기는 싸움'을 할 수 있을까?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손문상)  

 
 


“MB 정부의 정치, 유능하거나 포악하거나”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에서 정치의 몰락, 정치의 후퇴를 겪었다는 평가가 많다. 정치과정을 비효율로 치부한 CEO 리더십이 그렇고 임기 초 촛불 사태를 겪으면서 우편향적인 노선으로 선회해 진영 갈등이 극심해진 부분도 있다. 먼저 정치의 측면에서 이명박 정부를 전체적으로 평가해보자. 

박동천 : 주체의 무능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걸 정치의 몰락, 정치의 실패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정치를 굉장히 잘했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두 문법에서 정치는 전혀 다르게 정의된다. 후자로 본다면 정치를 기본적으로 적과 동지의 구분으로 보는 것이다. 힘으로 멱살을 콱 쥐어 끌고 가고 저항한 사람들 짓밟는 정치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잘했다. 자기 임기 동안 상당한 위기가 있었지만 어쨌거나 돌파를 했고 사실상 그 뒤로는 물리력에 의한 저항은 미미한 수준으로 갔다. 감정이나 도덕적 비판은 무성해졌지만 대통령을 끌어내릴 정도로, 대통령이 위기를 느낄 정도로는 저항 전선이 형성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생존이란 목표엔 확실히 성공한 사례가 되겠다.  

반면 정치를 우리 현재 모습의 부족한 점을 조금 낫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기대 측면에서 보면 이명박 정부는 형편없는 정부였다. 이 기획에서 말하는 ‘MB의 비용’이란 측면에서는 공동체에 비용을 전가하는 착취형 권력을 행사했다.  

이철희 : 정부가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의 잣대는 보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수 있는데, 정당의 관점에서 보면 정권이 재창출됐느냐 교체됐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지표 중에 하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실패한 정치라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지지율도 많이 까먹긴 했지만 정권의 위기라고 할 만큼 뚜렷한 위기가 있었던 거 같지는 않다. 본인이 취하고자 했던 노선을 분명하게 관철을 시켰다고 본다. 

대선 캠페인 때는 박근혜와 대척점에서 싸우다 보니 중도로서 스탠스를 취했다. 당시만 해도 박근혜가 신자유주의를 얘기하며 분명한 보수 정체성을 주장한 반면, 이명박은 이를 견제하기 위해 중도 스탠스를 취했고, 이겼다. 그러나 선거 연합으로 편성된 이 중도 스탠스는 집권하면서 어차피 교정이 될 거였다. 보수 세력의 주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박근혜 정부를 봐도 똑같다. 2007년 MB처럼 상당히 좌클릭을 해서 주도권을 잡고 집권했지만 얼마 안 가서 곧바로 보수 반발에 의해서 우클릭 했다. MB때 그것이 더 극적으로 나타났던 이유는 촛불 항쟁으로 강제적으로 떠밀린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보수파들이 MB를 견인하는 데 성공했다고 본다. 그러다 보니 좀 일찍 보수 정권으로 자기정체성이 확인된 것이다. 

싸움의 관점, 게임의 관점으로 보면 MB 정부 때 보수진영에 상당히 많은 성과도 있었다. 예컨대 미디어법 통과시켜서 종편을 만들었다. 또 과거엔 시위자들에 대해 법 위반으로 대응했다면 이제는 배·보상 문제로 접근해 고사시키는 등 상당히 진화된 방식을 사용했다. 권력기관, 공안기관도 상당히 강화시켰다. 이쪽 진지는 약화시키면서 보수 진지는 강화시켰단 점에서 보면, 보수 정권으로서의 정체성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싸움의 기술 측면에서도 무능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정치공학적 관점에서는 충분히 이렇게 진단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의 실질적인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의 관점에서, 사회경제적 약자 관점에서 보면 훨씬 삶이 피폐해지고 양극화가 심해졌다. 대중 정치의 관점에서 본다면 MB정부는 실패한 정권으로 규정하는 게 맞다고 본다. 보통 사람들의 삶을 굉장히 힘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실패는 보수 정권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지키려다 보니 나타난 현상이고, 이를 충분히 견제하지 못한 야당의 문제도 같이 연동돼 있다. 

“MB정부 천박함은 표피일 뿐, 본질은…” 

프레시안 : 이 소장 말처럼 2007년 당시 대선후보 경선 때만해도 이명박 그룹은 진화된 보수로 비쳤다. 그들이 내건 중도보수 개혁이 너무 쉽게 실패한 이유를 촛불이라는 계기로만 설명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철희 두문정치연구소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이철희 두문정치연구소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이철희 : 촛불 때문이란 건 결과적 서술이다. 대통령으로선 보수라는 지지축과 중도라는 지지축 중에 어디를 강화시킬 것이냐를 항상 고민할 수밖에 없다. 중도개혁 쪽을 강화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고 보지만 촛불이 등장하며 이 옵션이 사라졌다. 그러다 보니 반공보수가 긴밀하게 움직여 결국 우리와 손잡아야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낸 거다. MB는 허둥지둥하다 결국 보수의 품으로 들어가 버렸고. 촛불 사태만 보면 진보 진영이 전체 국면을 풀어가는 데 촛불을 활용한 것 보다 보수가 활용이 훨씬 능동적이었고 긴밀했다. MB를 포획한 것이다.  

과거 진보진영은 MB를 천박한 악마처럼 얘기했지만 그런 천민성과 천박함은 표피일 뿐이고 본질은 보수다. 본인이 내걸었던 비지니스 프렌들리, 시장 보수 노선을 시종일관 지켰다. 그리고 그건 박근혜 정부에도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런 노선 없이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좌충우돌했다고만 보면 지금까지 그 노선이 이어지긴 어려웠다고 본다. MB의 얼굴, 박근혜의 얼굴 등 여러 얼굴을 보이고 있지만, 그 기저에 깔린 본질은 보수다. 

박동천 : 개인과 소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게 보수의 특성 중 하나다. 그런 점에서 보수가 아니란 말은 아니다. 문제는 MB가 내걸었던 것처럼 비지니스 프렌들리냐. 난 그렇게 생각 안 한다. 이명박이 지시해서 휘발유 값을 인위적으로 내린 적이 있었다. 그런 건 비지니스 프렌들리가 전혀 아니다. 그건 관치금융 시절에 왕조식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대처나 레이건과 다르다. 한국은 법치주의, 헌정주의적 원리가 상대적으로 확보가 덜 된 나라다. 그러니 권력자가 법 위에서 자기 마음대로 뭔가를 해치울 수 있는 것이다. 이 보수는 서양식으로 얘기하면 20세기 보수라기보다 18세기 보수다.  

어떤 사람을 중도냐 보수냐 하기 이전에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이 무슨 원칙이 있느냐이다. MB는 역대 대통령 중에 가장 원칙이 없었던 대통령이다. 그는 자기 개인적인 또는 자기 주변의 좁은 집단적 이익을 챙기는 4대강 사업을 하려고 대통령 한 것이라고 요약하고 싶다. 그건 보수냐 진보냐와 상관없는 문제다. 대개 정치인들은 눈앞에 이익을 위해서 행동하고 이념은 포장이다. 진보도 그건 마찬가지다. 그렇게 이해하는 게 이명박 정부를 이해하는 데 더 맞지 않을까.  

한마디 덧붙이면, 2008년 촛불 때 광우병 사태는 애당초 잘못된 어젠다였다. 그때 열심히 했던, 그렇게 처절하게 몸을 바쳤던 분들께는 가혹한 얘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산 쇠고기 먹고 병 걸릴 확률은 로또 당첨되고 벼락 맞아 죽을 확률보다 낮다고 새누리당 누가 그랬다. 그 말은 맞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진보진영의 어젠다가 잘못 잡혀 있었던 것이다. 어젠다가 잘못 잡혀있었기 때문에 바로 꺼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MB가 위기를 모면하는 데 결과적으로 큰 도움을 줬단 건 안타까운 일이다.  

▲박동천 전북대 교수ⓒ프레시안(최형락)

▲박동천 전북대 교수ⓒ프레시안(최형락)  

 
 

“어떤 민주주의인가를 말해야” 

프레시안 : 촛불집회에서 논점을 좀 확장하면 저항의 방식이 효과적이었느냐다. ‘반MB’란 명제가 운동적 성과는 거둘 수 있었을지라도 정치적 성과를 거두기엔 상당히 미흡했단 것은 2012년 대선에서 확인된 게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박동천 : 저항의 방식을 얘기하기 전에, 왜 저항해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저항해야 하는가를 분명히 봐야겠다. 단순히 MB라는 사람에게 저항한다면 그것은 명분이 없는 얘기다. 그건 야전에서 싸워서 MB가 이긴 거고 루저들이 불평하는 거밖에 안 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대목은 중간에 있는 표들이다.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싫지만 정동영이나 문재인을 못 믿는 사람들이다. 이명박-박근혜가 대통령이 돼도 자기 먹고사는 것이 그렇게 피폐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주목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는 당분간 이들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결판날 확률이 높다고 본다.  

이철희 : (2007년 대선에서) 530만 표 차이는 크게 진 것이다. 10년 집권 뒤에 패배한 것이기 때문에 열패감, 공허감이 상당히 크게 형성돼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반MB, MB 개인이 아니라 MB로 상징되는 노선에 반대하는 것은 취할 수 있는 전략의 일환이라고 본다. 물론 반대보다는 조금 더 내부 정비하는 데 시간을 써서 복지 같은 의제로 새롭게 재편될 필요도 있었다. 어떤 전략으로 활로를 찾을 것이냐는 고민이 있을 수 있는데, 당시 야당은 전자를 선택했다. 반MB를 하며 MB를 희화화하고 악마화했다. 정서적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정치 전략으로 보기엔 굉장히 미숙했다고 본다. MB 비판이 조롱으로 끝나면 안 되고 MB가 지향하는 노선 때문에 손해 보는 사람, 피해 보는 사람을 결집시키고 정치적으로 동원했어야 했다. 그러지 못해서 아쉽다. 

가장 아쉬운 것은 2010년 지방선거 때 무상급식 이슈가 힘을 발휘했을 때다. 복지 쪽으로 야당이 움직여서 박원순 시장의 재보궐 선거 압승까지 끌고 갔다. 그땐 야당이 잘하는 국면이었다. 당시의 국면을 좀 더 진화시켜서 갔더라면 2012년 총대선 패배가 그렇게 허무하진 않았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MB정권 5년 동안 야당이 무능했다고 보는 건 불가피하다.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의 시기를 민주주의 후퇴의 시기로 평가한다. 언론 장악, 민간인 사찰, 국가기관 대선개입 문제 등이 반복됐다.  

박동천 : 87년 항쟁의 결과 87년 체제가 등장했다. 그런데 굉장히 미흡했다. 헌법이 바뀌긴 했지만, 밑으로부터의 요구가 헌법에 반영된 건 대통령 직선제 딱 하나다. 87년 체제가 그렇게 엄청나게 탄탄한 게 아니다. 권력은 원래 은폐하고자 하고 치부를 가릴 수만 있다면 가리면서 멋대로 하려고 하는 속성이 있다. 이명박 정부는 그걸 전형적으로 한 것이다. 촛불을 밟고 난 뒤론 그야말로 기고만장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이상이나 꿈으로 보려 한다. 반민주 세력을 욕하는 형태로,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규정하려고 한다. 그러지 말고 제대로 이해를 해야 한다. 가까운 예로 최근 독일식 비례대표제 말하는 정치인들이 생겨나고 있다. 요즘은 정동영이나 손학규 등 유력 정치인도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찬성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들이 하는 얘기는 그 당에서 철저히 개인적 견해일 뿐 당론이 될 리가 없다. 당론이 된다고 해서 나머지 당원들이 그 목적에 동감하고 같이 행동하지 않는다. 야당이 그런 상태라는 것을 그 사람들 스스로 인식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 이철희 두문정치연구소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 이철희 두문정치연구소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이철희 :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의 관념에서 보면 MB 정부 시기에 분명히 후퇴했다. 손학규 대표 시절부터 민주주의가 후퇴한 것을 무엇으로 표현할 거냐가 논란이었다. 독재라고 할 수도 없고 맞는 용어가 없어 고민했던 기억도 난다. 어쨌건 민주-반민주로 접근한 건 잘못됐었다고 본다. 어떤 민주주의냐를 말했어야 한다. 누구를 위한, 누구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민주주의냐를 말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를 기업들과 사회적 강자에게 도움이 되는 민주주의라고 한다면, 이에 맞서려면 그건 ‘민주주의 아니다’라고 하지 말고 ‘우리 민주주의는 이런 것이다’라고 했어야 했다. 예를 들어 우린 친노동이라거나 대안은 이거다라면서 전선을 쳤어야 한다. 그런데 민주주의를 왜 후퇴시키냐며 민주-반민주로 접근하니 결국 과거 일들을 꺼내서 싸우는 식이었다. 민주주의 후퇴에 대해서 비판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다만 어떤 민주주의냐를 가지고 말했어야 한다는 얘기다. 부자 민주주의 때문에 결국 서민들이 죽어간다거나, 사회적 약자들이 많은 것을 빼앗겨서 힘들어지고 있단 점을 보이는 식의 프레임을 짰어야 하는데 그걸 못 짠 게 상당히 아쉽다. 
 
개인적으로 민주-반민주 가지고는 안 싸웠으면 좋겠다. 국정원 대선개입이란 엄청난 반민주 사건이 벌어져도 대중이 동의하지 않았다. 잘못했다고 하면서도 정치적 에너지로 표출하는 데는 조심하고 있기 때문에 (프레임을) 바꿔야 했다고 생각한다.  

박동천 : 1954년 사사오입 개헌과 비교해 보자. 헌법학자들이 이를 두고 ‘위헌적 개헌’이라고 하지만 개헌은 개헌이다. 물론 교과서적인 시각으론 잘못된 것이다. 문제는 그런 일이 벌어졌단 말이다. 그리고 이승만이 당선됨으로써 결과적으로 국민이 승인한 것이다. 민주적 정당성을 그렇게 확보한 것이다. 대선개입, 천안함 사건, 곽노현 재판 등 문제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중요한 건 대한민국 대다수가 넘어가고 묵인했다는 것이다. 이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란 관점에서 봐야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론은 얘기하지 말자. 기울어진 건 맞다. 언론 환경이나 학계 환경을 봤을 때 9대1 정도로 기울어져 있다고 본다. 하지만 운동장이 기울어졌기 때문에 선거에서 졌다고 하면 말이 안 되는 거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어떻게 싸울 것이냐는 얘기가 되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잘 한 것을 보자. 사고들을 연이어 터뜨리면서 한 사고를 다음 사고들로 묻었다. 그렇게 야당을 길들였다. 지금 박근혜 체제도 대체로 그런 형국으로 가고 있다. 대응만 할 일이 아니라 어젠다 세팅이 중요하다. 요즘 보니까 결국 노동으로 가야 한다는 얘기를 이제 와서야 한다. 어젠다를 선점해야 하고 공세적으로 나가는 것이 핵심적인 문제다. 

이명박에서 박근혜로…“지는 싸움 그만해야” 

프레시안 : MB정부에서 벌어진 여러 가지 사건들 가운데 국정원의 대선개입 문제는 박근혜 정부로까지 이어졌다. MB정부가 대선개입을 하게 된 원초적인 동기는 무엇이라고 보나. 

이철희 :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이 물려있다고 느껴진다. 국정원 대선 개입은 지난 정부의 문제인데도 현 정부가 상식적으로 이해 안 될 정도로 완강하게 감쌌다. 그러다 보니 뭐가 있다는 논리적인 추론이 나오는 것이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설명이 안 될 정도로 강고히 연결돼 있는 거 같다. 이상돈 교수는 그래서 샴쌍둥이라는 표현을 썼다.  

문제는 ‘이명박근혜’라는 이름으로 꼭 공격해야 할 문제인가. 나는 그렇게 좋은 프레임으로 보지는 않는다. 집권자를 인격적 대상으로 해서 집중포화를 퍼붓는 것은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크게 먹히지도 않는다. 그보다는 10년 보수 정권의 본질이 뭘까. ‘이명박근혜’라고 하기보다 이들의 본질이 뭐냐, 보수 정부 10년 동안 누가 집중적으로 손해, 피해를 봤고 누가 덕을 봤느냐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지금의 야권이나 진보 세력이 내놓은 대안에 관심을 가질 거라고 본다.   

국정원 대선개입에 대해선 문제제기를 안 할 수 없지 않나. 당연히 문제제기 해야 한다. 선거가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면 민주주의 근간을 흔든 것이다. 그런데 이게 정치적 쟁점으로 가 있을 때는 결국 실력으로 풀어야 하는 문제다. 실력이 없으면 아무리 부당해도 관철을 못 시킨다. 그래서 정치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국정원 대선 개입도 지는 싸움이다. 아직 끝나진 않았지만 법원 판결 나오는 걸 보면 대체로 졌다고 보는 게 맞는 거 같다.  

프레시안 : 대선개입 문제는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과 연관된 문제여서 제약이 있다고 쳐도, 요즘 ‘사자방’으로 거론된 문제들은 박 대통령이 전혀 부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는 문제가 아닐까? 특히 사대강 문제는 감사원 감사 때 짚고 넘어갈 기회도 있었다. 과거정부에 돌을 던지는 차원이 아니라 이전 정권이 남긴 부정적 비용을 좀 더 말끔히 해소하고 넘어가는 것이 박 대통령에게 좋지 않을까 싶다.  

박동천 : 그걸 치우고 가는 게 본인에게 특별히 유리할 것도 없다. 대중이 진상을 알고 싶다는 막연한 감정은 무시해도 좋다는 생각이 있는 거다. 지금 정부 사람들이 박정희 시절보다 훨씬 더 명확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고 훨씬 더 지능적이다. 박정희가 살아있다면 박근혜를 보면서 ‘우리 딸 참 똑똑하다’ 그럴 것이다. 

이철희 : 보수 정권이 보수로서의 성격에 충실하다 보니 소수의 수혜자와 다수의 피해자가 분명히 갈려 있다. 그런데 피해자가 그 피해를 못 느끼도록 한다. 자꾸 덮고 치환해 버린다. 보수 정부 10년의 가장 약한 고리는 결국 사람들의 삶이 피폐해 졌다는 것, 양극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다수의 피해자들이 문제를 제기하려면 대안이 있을 때 된다. 대의제 민주주의 시스템이 그런 것이다.  

박 대통령이 지금까지 가장 기민하게 움직인 때가 그런 때였다. 사회경제적 이슈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질 때. 반면, 정치, 도덕적 이슈에선 완강하게 버텼다. 자신들도 약한 고리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이 약한 고리를 자꾸 치고 들어가야 하는데, 사회경제적 이슈가 갖는 특성은 실력이 없으면 못 한다는 것이다. 이건 찬반구도가 아니라 우열구도다. 경제민주화나 복지도 대선에서 쟁점을 제대로 못 만든 이유도 그래서다. 결국 정치는 정의 아닌가. 야권이 어떤 관점을 들고 나와서 쟁점을 만드느냐가 실력이다. 

▲ 박동천 전북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 박동천 전북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박동천 :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는 불량한 정부다. 생존 능력은 나름대로 발휘를 하고 있지만, 더불어 사는 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불량 정부다. 이런 정부가 지탱될 수 있는 요인은 대단히 많지만 그중 하나를 집어 보자면 안보 장사다. 자기들 집단 이익을 위해 권력을 행사하는 조직이 가게 되는 길은 항상 강경파 득세다. 전선을 엉뚱한 곳에 첨예하게 만들어 상대를 마녀 사냥해 누르는 전략을 쓴다. 이를 위해 언론 장악을 했어야 했고 검찰을 부리는 것이다. 당장은 보탬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결국은 감당할 수 없는 때가 온다. 예를 들어 어버이연합이 커지면 새누리당도 감당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방산비리를 척결하겠다고 얘기하지만 쌓일 대로 쌓인 방산비리가 척결될 거라 믿는 사람은 없다. 개인적인 몇 사람의 비리로 가지치기해서는 절대 밝혀지지 않는다. 차라리 강제징집제를 폐지하면, 방산 비리도 굉장히 많은 게 여과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이철희 : 4대강이나 자원외교, 방산 비리를 보자. 4대강이란 건 환경 이슈만이 아니다. 1차적으로는 환경 이슈이지만 또 민생 이슈이고 부패의 문제이기도 하다. 민주적 의사결정 시스템 문제도 결부돼 있다. 지금 이것을 환경 문제로만 집중 부각시켜놨는데, 대중을 동원하는 데 얼마나 힘이 있을지는 따져봐야 한다.  

‘사자방 국정조사’하자고 입법부가 요구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미리 결론을 제시하지 말았으면 한다. 예를 들면 MB를 국정조사장에 불러내야 한다는 얘기는 하지 말잔 거다. 조금씩 팩트를 보이면 국민들이 알아서 요구한다. 저건 MB가 설명해야 한다고. 국정원 대선개입도 박근혜에 의한 작품이라고 섣불리 규정한 건 대단히 미숙한 전술이었다고 본다. 하나씩 잘못된 걸 드러내다 보면 결국 누군가는 답을 해야 하는 것이다. 국정원을 거쳐서 MB를 거쳐서 박근혜로 가는 것인데 그런 과정이 안 됐다. 이번에 거론되는 사자방 국조도 주 메뉴가 되면 안 된다. 정치는 어쨌든 현실 가능한 대안을 만들어야 하는 건데, 무조건 아니다 잘못됐다고 하는 건 정치 문법으로는 부적절하다. 

 

 

"측근 실세 논란? MB는 대통령 본인이…"

[MB의 비용 2부] <3> 이명박 정부 '대통령·측근' 비리

박세열 기자, 곽재훈 기자(정리) 2014.12.10 09:43:14

 
과거 최고 권력자에게 개인 비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흔히 민주화 이후 대통령으로 불리는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도 개인(가족 포함) 비리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지난 2007년 12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이 전 대통령의 개인 비리와 이명박 정부의 측근 비리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더 심각한 모습을 보여줬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1993년 3월 27일자 <세계일보> 3면에 실린 '이명박 의원 150억대 땅 은닉'이라는 기사는, 도곡동 땅 차명 보유 의혹에 불을 지폈으며, 2007년 대선 당시 BBK 사태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그의 정치 이력 자체가 비리 의혹으로 얼룩져 있었던 셈이다. 과거 최고 권력자의 비리는 법 제도 등의 미비 혹은 권력과 언론의 패거리 문화로 인해 축소되거나 덮고 넘어간 부분들이 있었다. 또한 제왕적 총재 시절의 관성 때문에 일정 부분 용인된 측면도 분명 존재한다. 이제는 좀 사라지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 무렵 등장한 이명박 정부는 우리의 기대를 철저히 저버렸다.   

대표적인 것은 내곡동 사저 매입 의혹이다. 이는 대통령 본인이, 그것도 재임 기간 동안 직접 연루돼 있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였다.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 그리고 그의 보좌관 출신인 박영준 씨, 대통령의 친구인 천신일 씨, 대통령의 부인과 아들 등의 이름은 시시때때로 언론에 오르내렸다. 대통령과 고향이 같은 '사조직'의 권력 남용 의혹도 빼놓을 수 없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이명박 전 대통령 본인이 정치인 출신이 아니었던 부분은 중요한 지점이다. 개발 독재 시기 기업 문화의 타성에 젖어 있던 그에게 최고 권력자의 위치는 버거운 자리였을 수도 있다. 민간 기업 출신인 그의 개인 캐릭터와 이력을 본인이 극복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렇다고 이명박 정부의 비리의 원인을 개인의 캐릭터 문제로 돌리는 것은, 본질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이 전 대통령과 측근의 비리는 우리 사회에 엄청난 비용을 안겨줬다. 정확히 산정하거나, 추산할 수 없지만, 숱한 권력형 비리를 발견하고 조사하고 처벌하느라 든 사회적 비용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회적 스트레스가 막심했다는 점까지 따져보면 그 '비용'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프레시안>은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대통령의 비리와 대통령의 비리를 대하는 권부, 그리고 사법부의 태도, 또 대통령 비리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비용 등을 주제로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박선아 교수, 참여연대 박근용 협동사무처장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편집자> 

▲박선아 한양대 교수(왼쪽)와 박근용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이 지난 3일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좌담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박선아 한양대 교수(왼쪽)와 박근용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이 지난 3일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좌담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이명박 정부, 부패에 대한 국민 인식을 냉소적으로 악화시켜" 

프레시안 : 한국사회는 대통령의 비리에서 늘 자유롭지 않았지만, 이명박 정부의 비리는 이전 정부와 어떻게 다를까? 

박선아 : 이명박 정부 임기 5년이 끝나고도 만 2년이 지났다. 총평하자면 그전 대통령들과는 비리 사건이 났을 때 국민이 받아들이는 태도, 분노의 질이 다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명박 정부의 도덕성에 대해 실망하고 분노하는 차원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부패에 대한 국민 인식을 다른 형국으로 악화시켰다. 

이 전 대통령은 대기업에 재직했을 때, 이후 정치인이 돼서, 다시 본인 개인사업을 할 때, 대선기간 중에도 여러 형사사건에 연루된 적이 있었다. 그 중 BBK 사건은 개인투자, 벤처, 금융영역까지 합쳐진, 한국사회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범죄였는데 이 전 대통령이 거기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지고 '몸통 아니냐' 하는 의혹까지 있었다. 

박근용 : 이는 냉소적 시선이었다. 그 전에는 '대통령이면 이 정도는 돼야 한다'는 사회적 기준 같은 게 있었는데, 취임할 때부터 '전과 14범 대통령'이라는 말을 들어왔으니 '이런 분이 대통령이 됐는데 그 밑의 사람은 얼마나 깨끗할까', '비리가 있어도 대통령 스스로가 비슷한 죄를 저지른 경험이 있는데 척결한다고 스스로 강하게 말할 수 있겠나'하는 시민들이 많았다. '대통령이 저러니 공직자에게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을 것'이라는 냉소였다.  

고위공직자 인선을 하면서도 '흠결이 있지만 아깝다' 수준이 아니라, 여러 비리가 많아도 그냥 인선을 했다. 인사청문회 제도가 만들어진 이후 높아져 오던 공직자 인선 기준이 너무 낮아졌다. 이는 박근혜 정부 초기의 인사 파동에도 영향을 줬다고 할 수 있다.  

프레시안 : 5년간 수많은 비리 사건이 있었는데, 잠시후 본격적으로 다룰 내곡동 사건을 빼고 가장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박선아 : 저는 효성그룹 사건이다. 친인척 관련은 아니지만, 이런 재벌 비호 사건은 이득의 규모로 봤을 때 다른 어떤 개인비리와도 차원이 다르다. 앞으로 '기업과 경제를 살리겠다'는 분들이 정치를 할 때 시민들이 얼마나 감시의 눈초리를 보낼지는 모르겠지만, 이명박 정부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말도 안 되는 국가 경제정책을 들고 나왔었는데 기업이 탈법을 저지르는 것에 대해 최초의 기업가 출신 대통령이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지 보여준 거라고 생각한다.  

박근용 : 사실 개인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비리가 너무 많다 보니 딱히 뭘 하나 집을 만큼 대표적으로 기억나는 게 없다. (웃음) 돈과 관련되지 않은 사건까지 넓힌다면 민간인 사찰 사건이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아닐까 한다.  

박 교수가 말한 효성 사건은 2009년 당시 수사를 안 하고 덮었던 사건인데, 국회에서 경찰 첩보보고서가 공개되면서 문제가 됐었고 특히 재미 블로거 안치용 씨가 여러 자료를 공개하면서 안 건드리지 않을 수 없게 된 거였다. 그나마 (2009년에는) 해외부동산 매입 부분만 살짝 건드렸다. 원래 효성에 대해 제기된 의혹은 수백억 원대의 비자금 조성이었다. 올해 들어 재수사하면서 조석래 회장이 다시 기소된 상황인데, 4년 전에 했어야 할 것을 미루다 보니 지금 다시 하게 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효성 사건은 기억할 만하다.

▲박근용 처장. ⓒ프레시안(최형락)

▲박근용 처장. ⓒ프레시안(최형락)  

 
 

"내곡동, 현직 대통령 직접연루 비리사건으로는 유일한 수준" 

프레시안 : 앞서 박 교수가 BBK 사건을 언급했지만, 이명박 정부에서는 과거에는 없었던 새로운 비리 의혹이 많았다. 내곡동 사저 논란도 기상천외한 사건이었는데, 시민사회의 반응은 당시 어땠었나?

박근용 : 대통령 관련 비리라고 하면, 전에는 주로 대통령 본인 비리보다는 대통령의 위세를 이용한 측근들의 호가호위 사건 아니었나. 이런 사건은 노무현 정부 때나 이명박 정부 때나 있었다. 그런데 대통령 본인과 관련돼 '현직 대통령이 이득을 보느냐 마느냐' 이런 케이스는 사례가 별로 없었다. 대상자가 현직 대통령이니 검찰 수사의 한계는 뻔했고 '검찰이 제대로 하겠나'하는 자포자기 분위기도 (시민사회에) 있었다. 

그나마 대통령 위세가 많이 빠졌을 때인 집권 4년차(2011년)에 사건이 터지면서 새누리당에서도 특검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일부 사실은 이광범 특검 팀에서 밝혔다. 내곡동 사건은 대통령 본인이 관련된 비리 사건으로는 거의 유일하지 않나 한다. 처벌은 안 됐지만. 그래도 문제가 불거져 사람들이 항의하니, 정치적 타격을 줄이기 위해 입주를 포기한 것으로 그나마 위안을 삼는 거다. (웃음)

프레시안 : 지난 6월 검찰이 무혐의에 따른 불기소 처분을 하면서 이제 사건이 종결된 것 아닌가?

박선아 : 확정판결을 받은 경우만 일사부재리가 적용된다.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했다고 해도 공소시효 기간 이내라면 다시 수사해 기소할 수는 있다. 그러나 물론 형사소송법 상으로는 수사를 재개하는 게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박근용 : 2012년 6월, 처음에는 정당들이 이 당시 대통령을 고발했다. 참여연대는 특검 수사가 끝나고 1심 판결이 나온 후인 2013년 3월에 고발장을 냈다. 1심 재판에서 김인종 당시 처장 등 경호처 관계자 3명이 대통령에게 여러 차례 보고했다는 사실이 나와서, 그것을 보면 이 전 대통령도 모르지 않았음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또 이 전 대통령 임기 후이니 형사소추 대상이 되니까.  

결국 불기소 처분됐는데, 당사자 중 하나인 김인종 전 처장에게만 물어보고 "김 전 처장이 '구체적 지시를 받은 것은 없다'고 하니 더 이상 살펴볼 필요 없다"고 검찰이 끝내버린 거다. 압수수색을 한다거나, 이 전 대통령 본인에 대해 진술이나 조사를 한다거나 이런 절차는 없었다.  

박선아 : 이 전 대통령이 '전 재산 기부'를 약속할 때, 논현동 사저만 남기면서 "우리 내외 살 집 한 채만 남기고 하겠다"고 했잖나. 대선 때 이 대선후보의 도덕성에 대한 많은 의문이 있었지만 선거기간 중 한 무거운 약속이어서 (유권자들이) 그건 믿었는데, 내곡동 사저 의혹이 다시 나오며 우리가 생각했던 '사익추구형 정치인'으로서의 모습이 다시 나오는 걸 보고 실망했던 것 같다.  

재산 대부분을 기부했디고 하지만 청계재단 문제도 같이 이야기될 수 있다. 청계재단이 공표된 취지에 맞춰 잘 운영되고 있다는 평가보다는 그 반대 측면이 많다. 지난 10월에는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부동산 등 자산 매입을 통한 차입금 상환이 미진할 경우 재단 인가를 취소할 수 있다'는 행정지도도 받았지 않나. 

프레시안 : 내곡동 사저 매입 과정에서 국고가 투입됐는지 하는 부분과 증여세 탈루 여부도 논란이었다. 

박선아 : 이 전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 씨에 대해서는 특검에서 불기소 처분을 하면서도 증여세 탈루 혐의가 있다고 보고 국세청에 통보했었다. 국비가 들어간 부분은 경호처가 이시형 씨 대신 대납한 부동산 수수료 1100만 원이었다. 이처럼 내곡동 사건은 최고권력자 본인 또는 하나뿐인 아들이, 그것도 대통령 재임기간 중에 공익과 사익 추구를 구별하지 못한 사건이 아닌가 한다.  

박근용 : 당시 특검을 한 달 더 연장하려 했는데 결국 못 했고, 특검에서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까지 발부받았지만 청와대 측이 협조를 안 해 집행도 못 했다. 이시형 씨의 증여세 문제는, 이 씨가 낸 돈이 자기 돈이냐 부모에게 받은 돈이냐 하는 의혹이 아직도 풀리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이 당선될 때부터 차명재산 의혹이 있지 않았나.  

특검 수사결과를 보면, 이 씨가 이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은 씨에게 가서 이른바 '장롱 속 현금' 6억 원을 받아왔다는 건데 그 돈의 출처가 뭐냐는 것이다. 이상은의 개인재산이냐, 아니면 이 전 대통령 돈을 이상은이 보관하고 있던 것이냐 이런 부분은 확인되지 않은 채 넘어갔다.  

사실 참여연대가 처음 고발을 결심했을 때는 배임·횡령 중심으로 생각했었지만, 이참에 규명 안 된 (이 전 대통령의) 차명 재산이 이시형 씨에게 간 것 아니냐 하는 의혹도 밝혀 달라고 고발 당시 요구했었다. 그러나 그건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미스터리다.  

프레시안 : 고발장에 따르면, 참여연대는 이 전 대통령이 이 건으로 국고에 미친 손해를 9억7000만 원으로 추계했다. 이건 환수가 되는 돈인가? 

박근용 : 아니다. 기소가 배임으로만 돼서. 횡령이 아니니 그건 물어내는 돈은 아니다. ('지시'에 따라 직접 국고에 손해를 끼친) 김인종 전 처장도 벌금형만 받았다.  

프레시안 : 직접 손해 외에 사회적 비용도 꽤 크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박근용 : 특검 수사로 인해 사무실 임대비용, 수사관 인건비 등의 불필요한 돈을 쓰게 만든 건 분명하다. (기획재정부가 2012년 당시 이광범 특검팀에 배정한 예산은 12억8000만 원이었다. 편집자) 그런데 사회적 비용…. 당시는 이미 이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없었기 때문에, 이 사건 때문에 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서 공공기관에 대한 불신이 생겼다고 볼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안타까운 일이다. (웃음)

▲박선아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박선아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이명박 정부 친인척 비리, 이상득 빼놓을 수 없어" 

프레시안 : 내곡동 외에도 많은 비리 사건과 의혹들이 있었다. 특히 이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은 여러 비리 사건에 연루됐다.  

박선아 : 이 전 의원은 2007년 10월 솔로몬저축은행에서 3억 원을 받은 것으로 처벌을 받았는데, 당시는 이미 이명박 후보의 대선 당선이 가시화되던 시점이다. 이 외에도 수많은 이권 개입과, 엄청난 국고 손실을 빚은 자원외교에도 이 전 의원이 관여돼 있다. 이명박 정부 친인척 비리를 얘기하면서는 이 전 의원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프레시안 : 이 전 의원은 포스코 인사 개입의 배후로 지목받기도 했다. 인사 개입에 관여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이 전 의원의 보좌관 출신이었다. 그리고 포스코 인사 개입 건에 연루된 또다른 실세는 천신일 전 세중나모 회장이었다.  

박근용 : 천신일 회장의 경우 인사청탁 사건이 시발점이다.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2009년에 연임을 시도하며 천 회장을 통해 로비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지만, 그 부분은 규명되지 않고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인 임천공업에서 불법자금 43억 원을 받아 로비에 썼다는 정도로 끝났다. 의혹이 2가지였는데 하나만 건드리고 끝난 것이다.  

이 전 의원의 경우 그 정도 지위에 올랐으면 돈은 안 받았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전 의원을 통한 인사청탁이나 로비는 분명 가능성이 있다. 한상률 전 청장 사건에서도 이 전 의원이 경주로 내려가 같이 골프를 쳤다는 등 관여된 정황이 있지 않나.  

밝혀지지 않은 것은 한상률 전 국세청장 인사청탁 로비 사건이다. 한 전 청장의 전임자인 전군표 전 청장의 부인에게 자신의 부인을 통해 그림을 갖다줬다는 일명 "그림 로비" 사건인데, 안원구 국장이 한 청장의 인사청탁을 폭로했지만 올해 4월 결국 한 전 청장은 무죄가 확정됐다.  

한상률 사건은 수사가 2010년에 종결됐는데, 진작 처음부터 제대로 수사했으면 무죄가 날 수 있었을까 의문이다. 한 전 청장은 논란이 되니 2009년부터 미국으로 도피했고, 2011년 2월 귀국한 이후 검찰이 수사를 재개했지만 시간이 너무 지나서 증거도 다 인멸할 수 있었던 때였다. 이미 정지(整地) 작업이 끝난 상태에서 들어온 게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최근 정윤회 씨나 박지만 씨 등의 '권력 암투설'이 나오는데, (언론에 보도된 의혹을 보면) 정 씨도 금품을 얻기 위해 불법적인 뭔가를 했다기보다는 '자기 사람'과 '자기 사람이 아닌 사람'의 선을 그어서 누구를 잘 봐달라, 누구는 안 된다 했다는 것 아니냐.  

이명박 정부 때도 박영준 차관이 양재동 파이시티 건으로 받은 돈으로 드러난 게 1억 원 정도로 액수가 적은 편이다. 신재민 전 문화부 차관이 SLS로부터 받은 돈으로 검찰이 밝혀낸 것도 1억 원 정도였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인사청탁 등에 영향력을 미쳤다는 것이고,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사찰 역시 이같은 '찍어내기'의 대표 격인 권력남용 사건이었다.  

프레시안 :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은 그 자체로 심각한 사건이지만, 기획 주제가 'MB의 비용'인 만큼 돈 관계도 짚어보자. 불법사찰 사건에서 규명되지 않은 의혹 중 하나가 '영포회(영일만·포항 출신 공직자 모임)'의 활동비 등 자금이 어디서 나왔냐는 것이었다.  

박근용 : 특수활동비 개념으로 공금을 썼을 것이다. 국무총리 공직윤리지원관실이나 청와대 민정수석실 및 고용노사비서관실 예산에 특수활동비 등 영수증이 필요 없는 항목이 있을 것인데, 그것을 공적 용도를 뛰어넘어 썼다는 게 유력한 추정이다. 구체적 금액을 모를 뿐 세금이 쓰인 건 분명하다고 본다. 

특히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 준 '관봉' 5000만 원이 있지 않나. 나중에 무슨 류충렬 공직복무관리관이 '돌아가신 장인에게 받은 돈'이라고 하면서 은폐됐었는데, (이 돈을 류 관리관에게 장석명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건넨 만큼 : 편집자) 청와대 특수활동비였을 수도 있고, 세금으로 조성된 게 아닌 다른 비자금이었을 수도 있다. 만약 세금이라면 그야말로 엉뚱한 데 지출된 것이다.  

"검찰, 권력형 비리에 왜 무력한가?" 

프레시안 : 권력형 비리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결국 왜 검찰 수사는 이같은 비리 사건 앞에서 흐지부지되는가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의 검찰 수사를 어떻게 평가하나?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박근용 :
정치검찰로 완전히 회귀한 5년. 집권 초기 광우병 촛불시위 때 위기감을 느끼며 검찰을 확실히 장악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 같다. 집권 반대 세력을 위축시키고 본때를 보이겠다는 생각을 한 게 아닌가 한다. 2009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한 것도 그렇다.  '밀리면 안 된다'는 것인데, 정부에 대한 불신을 회복시키는 방법을 사회통합적인 정책 추진이 아니라 반대세력에 대한 처벌 위주로 가겠다는 공격으로 읽혔다. 검찰을 상대 진영에 대한 공격수단으로 쓴 게 아닌가 한다.  
 
 
감사원 문제도 있다. 법률상 여러 권한이 있지만 감사원은 지금 최약체 정부기관이 됐다. 공무원의 비리 또는 공무에 관계됐다면 사인(私人)의 비리도 감사원을 통해 초기 수사가 가능한데 너무 역할을 못 하고 있다. 자원외교 건만 봐도, 한참 추진하고 있을 때는 잘못 진행돼도 손도 못 대다가 정권이 바뀌니 건드리는 수준이다. 4대강 사업에 대해서도 이명박 정부 당시에는 감사를 했지만 문제 제기를 안 하다가 정권 바뀌니 겨우 한 것 아니냐. 감사원은 형사처벌로 가기 전에 예방적으로 문제를 빨리 시정할 수 있는데 그게 안 되고 있다. 그래서 감사원을 국회로 옮기자는 논의가 있지만 이 논의가 나온 지도 10년이 넘었다. 
 
프레시안 : 왜 그럴까? 역시 권력 구조적 문제일까? 

박근용 : 김대중 정부 중반부터 검찰개혁과 검찰의 정치적 중립 얘기가 많이 나왔다. '옷 로비' 사건이나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아들들을 수사하면서 검찰이 나약하다는 얘기가 나왔고 그래서 강조된 게 정치적 독립이었다. 그러나 독립시켜 놓았더니 검찰 자체가 권력집단화했다는 지적도 있다. 지금 검찰이 정치적으로 종속됐다고 하지만, 검찰이 가진 권력은 집권세력도 바꿀 만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적 독립보다는 시민에 의한 민주적 통제가 검찰개혁의 방향이 돼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인사권자의 의중에 따라 말단 검사까지 인사를 다 할 수 있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집권세력의 선의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은 그대로 유지된다. 검찰총장이든 지방검찰청장이든 주민직선제를 시도해볼 수 있다. 지금은 지검장들이 총장, 장관, 대통령 등 윗사람들 눈치를 봐야 하지만, 선거제도로 바꾸는 순간 인사권자가 아니라 시민들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된다. 물론 시민들 중에도 보수적인 이들이 있고, 그들의 눈치를 보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사회가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는 한 균형이 맞춰질 것이다.  

박선아 : 같은 생각이다. 대한민국 제2공화국(1960~61) 헌법은 대법원장을 (법관들의) 선거로 뽑게 한 적이 있다. 미국은 주 검찰총장을 선거로 뽑는다. 한국은 검찰시민위원회를 통한 기소배심제가 있지만 아직 시민의 사법 참여가 시범 수준에 그치고 있다. 검찰 독립보다는 시민 참여가 선진국형이고 사법에 대한 우리 국민의 기본적 요구를 반영하는 방향이라고 본다.  

박근용 : 그리고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공수처) 등 특별 수사기구가 있었으면 한다. 검찰이 기소권을 독점하는 게 아니라 경쟁할 수 있는 기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검찰 입장에서는 '우리가 이렇게 대충 했는데 다른 기관이 비리를 훨씬 많이 밝히면 망신'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고, 집권세력에 대한 경고도 된다. 지금은 검찰만 장악하면 처벌받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검찰만 장악해 될 게 아니라면 더 조심하게 될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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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아 :
공수처 등은 사실 내용이 다 나와 있는 상태인데 국민들이 미는 힘이 빠져 있는 것 같다. 박근혜 정부도 초반에 대검 중수부를 폐지하면서 검찰개혁을 어떻게 하겠다고 발표를 했었는데 어느 순간 쑥 들어갔다.  

박근용 :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상설특검법에 합의해 준 것도 아쉽다. 상설특검법이 엉망이라는 것을 세월호 참사 과정에서 보지 않았나. 상설특검 제도를 만들었다고 했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특검 수사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가지고 여야가 엄청나게 공방을 했다. 과거에 '이거 수사하자, 하지 말자' 하고 여야가 몇 달씩 싸우고, 수 개월 후에야 특검법 만들어지던 것과 뭐가 다른가. 상설특검법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게 세월호 국면에서 확인된 거다. 

프레시안 : 검찰개혁을 위한 시민적 추동력이 약해졌다는 지적이 있었다. 시민들이 권력형 비리에 관대한 것일까? 

박근용 : 관대한 면이 있다. 그것을 부추긴 것이 검찰의 '집권세력과 반대세력 꿰어맞추기 수사'다. 이놈도 나쁘고 저놈도 나쁜 놈이라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기간 내내 집권세력 뿐 아니라 야당도 검찰 수사를 받았다. 물론 실제로 비리가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야당은 '흠집 내기'라고 주장했다. 국민 입장에서 보자면 '부패 문제에서는 이놈이나 저놈이나 같다'는 생각이 깔리도록 된 것이다.  

박선아 : 결국은 시민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명박 정부에서 이런 비리가 있었음에도 같은 당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다. 비리가 났을 때 신속히 수사하고, 그 결과를 국민에게 알리고, 그것이 선거에 반영되는 식으로 사법과 정치가 같이 가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 집권세력에 대한 사법부의 처벌이 있고 국민적 평가도 있었음에도 선거 결과는 그와는 다르게 나온 부분이 있다. 국민들이 정치에 대한 눈을 좀 높였으면 한다. 

"박근혜, MB의 길 가지 않으려면…" 

프레시안 : 긴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하다. 이명박 정부를 반면교사로 삼아, 박근혜 정부가 어떻게 해야 좋을지 조언하는 것으로 좌담을 마무리하자.  

박선아 : 시민의 입장에서 봤을 때, 박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경제적 토대는 1970년대에 이미 튼튼하게 기반이 마련돼 있다. 박 대통령 일가와 그 측근들은 육영재단이나 영남대학교, 한국민속촌 등 어마어마한 자산을 갖고 있다. 그러니 이명박 정부에서와 같은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 다만 또다른 형태의 비리가 있을 수 있고, 그에 대해 이명박 정부의 측근 비리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감시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한다. 

박근용 : 선거 전에 시민들과 모임을 해 보면 '박근혜는 부패와는 거리가 먼 이미지다', '박근혜는 믿는다'는 분들이 많았다. 이 전 대통령이 워낙 반대되는 이미지라 박 대통령은 그런 면에서 점수를 따고 선거에 나갈 수 있었고 당선 후에도 박 대통령 본인이 부패로 논란이 된 적은 없었다. 이처럼 자유로운 상황은 이명박 정부 때 많이 후퇴했던 공직자 부패에 대한 사회적 기준을 회복할 좋은 기회였는데 고위공직자 인선을 하면서 이를 살리지 못했다. 최소한 '금품 로비 등에 대해서는 엄단한다'는 잣대를 세워 주는 정도는 해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