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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직된 관료사회 시원하게 꼬집고 싶었다” ‘개콘’ 비대위의 풍자 개그 김원효

일취월장7 2011. 11. 9. 09:20

“경직된 관료사회 시원하게 꼬집고 싶었다”<세계일보>
  • 입력 2011.11.08 (화) 19:54
‘개콘’ 비상대책위원회서 풍자 개그로 주가 올리는 김원효
  • “10분 안에 개그콘서트 시청률을 끌어올릴 방안을 내놓지 않으면 프로그램을 폐지하겠다고 합니다.”

    “야∼안돼∼. 10분 안에 어떻게 코너를 짜냐. 그럼 개나 소나 다 짜겠다. 지금 코너를 짰다고 치자, 그런데 재미가 없어. 그럼 사람들이 재미없다고 뭐라뭐라 하겠지. 그럼 나는 국장님한테 불려가겠지∼.”

    개그콘서트의 시청률이 5% 미만으로 떨어졌다고 가정하고 비상대책위원장의 반응을 보여달라고 하자 개그맨 김원효(30)는 미리 준비라도 한 듯 속사포처럼 대사를 쏘아댔다. KBS2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에서 비대위원장으로 활약하고 있는 김원효를 8일 KBS 공개홀 인근에서 만났다.

    KBS2 개그콘서트 ‘비상대책위원회’의 김원효는 “원래 정치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면서 “프로그램을 하면서 말 솜씨도 늘고 용기 내서 바른 말도 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범준 기자

    “정치적 부담이요? 없었는데 사람들이 자꾸 물어보니까 가끔은 부담스럽네요.”

    비대위는 노인정 폭파 위협, 아파트 독극물 테러, 지하철 폭탄 테러 등 각종 긴급한 상황에서 경찰과 군인, 대통령에 이르는 관료사회늑장대응과 책임 전가 등 비효율적인 병폐를 꼬집는 정치풍자를 뼈대로 하고 있다. 10분 안에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비대위원장은 “야∼안돼∼그걸 10분 안에 어떻게 하냐”라며 안 되는 이유를 늘어놓다가 8분을 잡아먹고, 현장에 대통령이 나타나 잡담과 불필요한 식순으로 남은 2분을 까먹는 식이다.

    “사실 비상상황에서 경찰청장과 치안감이 어떤 대화를 주고받는지 모르잖아요. 하지만 직장에서, 관공서에서 이 사람한테 가면, 저 사람한테 가라, 여기 가면 저기로 가라는 것을 다들 겪어봤잖아요. 영화 ‘도가니’에서도 우리가 늘 풍자하는 것처럼 (학내에서 벌어진 아동 성폭행 사건을 두고) 시청에서는 교육청으로 가라, 교육청에서는 시청으로 가라며 떠미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매주 다른 비상상황을 설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당초 홍수나 태풍 등 재해재난 상황으로 코너를 짰지만 실제 피해자가 존재하는 상황은 또 다른 상처를 줄 수 있어 배제한다. 한창 민감한 이슈는 진정국면으로 접어든 뒤 건드리는 편이다. 지난달 방청객의 박수와 환호를 이끈 “무슨 일이 터지면 국민에게 미리 얘기를 해줘야 할 것 아니야”라는 대사는 한 달 전인 9월 중순 아무런 예고없이 발생한 정전 대란을 빗댄 촌철살인이었다. 이슈가 뜨거울 당시 건드리면 시사가 되지만, 국민적인 분노가 어느 정도 사그라져 웃어줄 여유가 생길 때쯤 다시 한번 되짚어주면 개그로 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료사회를 꼬집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딱딱해 보이기만 하는 대통령, 경찰, 군인들도 다 사람이고, 그렇다 보니 허술한 부분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도 경찰 입장에서는 억울할 법도 하지 않을까.

    “얼마 전 은행에 대출금 갚으러 갔는데 인근 지구대 소장님이 절 너무 좋아하신다며 한걸음에 달려오셨어요. 경찰을 대상으로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도 받았고요. 경찰들은 친근한 이미지를 심어준다고 좋아하시는데 오히려 다른 분들이 ‘경찰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었다’며 항의하시죠.”

    ‘비대위’를 하기 전 ‘꽃미남 수사대’에서도 경찰 역을 맡았던 그는 사실 스무 살까지 경찰이 꿈이었다. 하지만 대학 연극동아리에서 연기에 매료돼 개그맨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김원효는 2005년 KBS2 ‘개그사냥’의 ‘진단소방서’로 데뷔해 ‘내 인생에 내기 걸었네’ ‘9시쯤 뉴스’ ‘꽃미남 수사대’ 등에서 어눌한 캐릭터를 주로 맡았다. 평소 말수도 적은 그에게 A4 용지 2장이 넘는 대사를 속사포처럼 내뱉는 역할은 하나의 도전이었다.

    “사실 전에는 ‘내가 할 수 있을까’ 고민부터 했는데 결혼을 계기로 ‘해야 되겠다’ ‘잘할 수 있을 거야’로 생각이 바뀌더군요. 매주 긴 대사를 외우면서 공부를 이렇게 했으면 서울대를 갔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고요. 하하”

    그는 요즘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프로그램 제안을 놓고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출연료나 시청률보다는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신뢰해주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말한다.

    방송사들의 문제가 안정적으로 가려다 보니 신인 개그맨들을 뽑아놓고 방치한다는 겁니다. 개그맨도 방송을 해야 감을 잃지 않는데 말이죠. 지금은 하고 싶은 개그가 많고, 나중에 버라이어티 프로를 하게 되면 김원효만의 스타일을 보여드리고, 후배들도 끌어줄 수 있는 선배가 되고 싶어요.”

    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