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디지털 세상의 어두운 그림자들

일취월장7 2011. 8. 13. 14:48


디지털 세상의 어두운 그림자들
성낙환 | 2011.08.09

디지털 초연결 사회로 나아가면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편리함과 지식 정보 문화의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프라이버시 침해, 사이버 범죄, 디지털 피로, 인터넷 통제 같은 내부 불안요소도 대두되고 있다. 디지털 풍요와 혜택이 커질수록 디지털 불안요소들에 대한 경계도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이버 세상은 제5의 전장(戰場)이다.’ 미 국방부는 최근 7월 육·해·공·우주에 이어 ‘0’과 ‘1’로 이루어진 가상의 디지털 세계를 새로운 군사작전 지역으로 선언하였다. 나날이 발생 건수가 늘어 나고 수위도 높아져 가는 사이버 테러에 맞서서 선제적이고 공세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온라인 공격에 의한 피해는 개인과 기업 수준을 넘어 국가 차원으로 확대되고 있다. 작년 이란의 나탄즈(Natanz) 핵시설과 중국의 싼샤(三峽)댐 등 국가 기간시설에 침입하여 시스템을 마비시킨 악성코드(malware) ‘스턱스넷(Stuxnet)’은, 비록 강대국의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의혹을 받고는 있지만 국가도 사이버 공격에 안심할 수 없다는 경각심을 일깨우기 충분했다. 게다가 스턱스넷은 단지 시작을 뿐이라고 많은 보안 전문가들이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고 네트워크로 연결된 초연결 시대의 밝고 희망찬 청사진 속에 감춰진 어두운 이면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디지털 시대에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에는 사이버 범죄처럼 눈에 보이는 직접적 피해를 주는 것만 있지는 않다. 생활 전반에 뿌리 내린 각종 디지털 기기 및 인터넷은 사회 시스템을 서서히 변화시키고 인간의 정신 및 사고 체계에 근본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부지불식간에 의도하지 않은 잘못된 방향으로 사용되어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거나 거부감이 들게 할 수 있다.


스마트폰을 예로 들어보자.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에 연결하여 이메일을 확인하고 게임도 하며 모르는 길을 찾아갈 수도 있는 스마트폰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지만, 휴식 시간을 방해하고 주의력을 떨어뜨리며 나의 위치를 누군가로부터 감시 당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스마트폰 사용을 걱정하는 사람도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상을 반영하듯 최근 미국의 르네상스 피츠버그 호텔, 시카고의 모나코 호텔 등에서는 투숙객들이 전자기기에서 벗어나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디지털 해독(Digital Detox)’ 상품을 내놓아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체크인할 때 스마트폰이나 PC를 데스크에 맡기면 숙박료를 할인해 주어 디지털 기기를 현대인의 족쇄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해방감을 주는 아이디어 상품이라 하겠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 연결되고 정보를 자유롭게 공유하며 디지털 기기에 의해 생활이 윤택하게 될 초연결의 스마트화된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진행 과정은 평탄치 않을 수 있다. 초연결 시대의 도래에 앞서 현재 나타나고 있는 문제점과 이로 인한 사회경제적 영향, 미래 가능한 시나리오 등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하는 이유이다.

 

디지털 ‘빅 브라더’에 대한 우려


우선 디지털 네트워크의 ‘빅 브라더’화를 경계하는 프라이버시 문제를 들 수 있다. 현대 사회는 개인의 인적사항, 건강상태와 같은 거의 모든 상태 정보뿐 아니라 CCTV등을 통해 사람의 움직임까지도 디지털 데이터로 저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사물에 탑재된 RFID, 센서 등을 통해 각종 정보가 쌓이면서 도시에서 디지털 사각지대를 찾는 것이 어렵게 돼버렸다. 범죄예방과 교통단속 등이 목적인  CCTV이지만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누군가가 감시 할 수도 있기 때문에 프라이버시에 대한 우려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폭발적으로 사용이 늘어나고 있는 스마트폰과 SNS는 프라이버시 문제를 촉발시키고 있다( 1108호, ‘디지털 프라이버시의 미래’ 참고). 스마트폰에서 제공하는 각종 개인별 맞춤화된 스마트 서비스 및 위치기반 서비스는 개인정보를 활용한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SNS도 다른 사람과 온라인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보가 의도하지 않게 외부로 흘러나갈 소지가 크다. 실제로 현재 10개가 넘는 국가로부터 개인 정보 수집과 관련하여 조사를 받고 있는 구글은, 최근 네트워크 장비의 고유 주소 번호인 맥어드레스(Mac Address)를 불법으로 수집하여 또다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얼굴 인식 기능을 확대 적용하려는 페이스북 역시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는 사람들까지 인터넷에 검색되면서 타인의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나날이 늘어만 가는 프라이버시 문제에 맞서 이를 해결하려는 움직임도 분주하다. 각국 정부는 개인정보보호법을 제정하여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법적으로 보호하고, 기업들은 개인정보의 수집, 활용, 관리 규정을 철저히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인정보 수집 시 약관을 통해 사용자들이 어떻게 자신의 정보가 사용될 수 있는지 납득시키고, 수집된 개인정보는 처음 용도 이외에는 사용되지 않도록 꾸준히 감시하며, 철저한 관리로 개인정보가 외부로 유출되는 사례를 막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경우 올해 9월부터 개인정보보호법의 본격적인 시행 예정을 앞두고 있어 기업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기술이 끊임없이 발전하면서 프라이버시 문제는 계속해서 논란이 될 소지가 크다. 예를 들어 최근 IT의 화두인 클라우드 컴퓨팅은 도입 전부터 프라이버시 논란에 휘말리고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데이터를 인터넷의 특정 서버에 저장 시켜 언제 어디서 어떤 기기를 사용하더라도 동일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신기술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중요 파일을 사용자 몰래 볼 수 있다는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작년 IBM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7%가 클라우드 컴퓨팅 도입 시 프라이버시 보호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디지털 세상에서 사람들을 보다 더 가깝게 만들고 하나의 네트워크로 통합시키려는 기술적 움직임과, 자신 만의 ‘홀로 있을 권리(Right to be Alone)’인 프라이버시를 지키려는 인간 본성 사이에서 어떻게 타협점을 만들어 나가야 할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나날이 심각해지는 사이버 범죄, 크래킹


타인의 컴퓨터에 무단으로 침입하여 시스템을 파괴하거나 정보를 빼돌리는 범죄 행위를 사람들이 흔히 해킹(Hacking)이라고 알고 있지만, 보다 정확하게는 크래킹(Cracking)이다. 해킹이란 단어는 컴퓨터 보안상의 헛점을 발견하고 경각심을 주어 이를 보완하는 좋은 의미로도 사용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Pwn2Own과 같은 유명 해킹대회는 보안 컨퍼런스의 하나로 OS, 웹 브라우저, 스마트폰 등의 문제점을 찾아내어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반대로 크래킹은 컴퓨터 보안 기술을 활용하여 타인에게 물질적 또는 정신적 피해를 주는 불법 행위로 해킹과 구분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두 단어가 혼용되고 있다.


사회가 발전하고 복잡해지면서 각종 범죄가 등장하였듯이, 크래킹 방법도 컴퓨터 기술 수준이 높아지면서 다양해지고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컴퓨터 실행파일 등을 변형시켜 컴퓨터 작동을 멈추거나 파괴하는 바이러스뿐 아니라, 네트워크를 옮겨 다니며 자기 자신을 복제하여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웜(Worm), 이메일의 첨부파일 등을 통해 감염되어 컴퓨터의 정보를 외부로 유출시키는 트로이 목마(Trojan Horse)등 형태가 다양하다. 또 감염된 PC를 통해 특정 서버에 대량의 트래픽을 유발하여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디도스(DDoS, Distributed Denial of Service), 위장 사이트를 만들어 개인 정보를 빼가는 피싱(Phishing)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인터넷 보안을 뚫으려는 크래킹 사건이 늘어나면서, 이를 막으려는 노력도 활발하다. MS와 같은 S/W 업체는 윈도우와 오피스 프로그램의 보안 문제를 발견할 때마다 업데이트 파일을 제공하고 있으며 시만텍(Symantec), 맥아피(Mcafee) 같은 컴퓨터 보안 업체는 백신 프로그램을 통해 이를 치료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외부침입이나 오류가 발생했을 때 취하는 조치들로 사후약방문 성격이 강하다. 또 시스템이나 프로그램은 사람이 만들고 운영하기 때문에, 사용상의 허점은 어쩔 수 없이 존재한다. 철통 같은 보안을 자랑하는 미국의 CIA와 FBI도 6월 룰즈섹(Lulzsec)이라는 해킹 집단에 뚫린 사례가 있다. 게다가 보안 관리가 비교적 허술한 인터넷 카페 등의 수많은 공용 PC는 크래커들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좀비PC가 되어 각종 사이버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 실제로 올해 3월 MS는 좀비PC를 이용한 스팸메일 발송의 원흉으로 지목되고 있는 악성 스팸메일 봇넷(Botnet) 러스톡(Rustock)의 서버를 압수 수색한 적이 있다.


이러한 사이버 범죄에 의한 유무형의 피해는 그 규모가 크건 작건 간에, 사람들의 디지털 활동을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 개인정보가 크래커에 의해 무단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늘어날수록 인터넷 상거래 같은 주요 인터넷 비즈니스가 타격을 받을 공산이 크다. 최악의 경우 스턱스넷처럼 산업시설 특히 교통, 통신, 금융, 전기 같은 주요 기간시설을 마비시키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영화 ‘다이하드 4’의 국가적 테러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크래킹에 대한 대응이다. 인간 사회가 형성된 이후 범죄가 없었던 시기는 없었다. 마찬가지로 디지털 세상이 있는 한 사이버 범죄도 지속될 것이다. 현실 범죄에 비해 아직 부족한 사람들의 경각심을 지속적으로 고양시키고, 크래커를 해커를 통해 잡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디지털 사회에 정신적으로 지쳐 가는 사람들


인터넷의 확대로 크래킹 같은 불법 행위도 늘고 있지만, 디지털 피로(Digital Fatigue)처럼 은연중에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인터넷의 광대한 정보와 친우들의 소식들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 기기에 사람들이 더욱 의존하면서 나타나는 문제점이라 할 수 있다. 일례로 스마트폰을 손에서 떼지 못해 상대방과의 대화에 집중을 못하거나, 업무에 차질이 생기는 사례를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을 장기간 불편한 자세로 보면서 나타날 수 있는 시력저하, 목 디스크 같은 육체적 피로도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주는 정신적 피로가 더욱 심각한 문제라 하겠다.


대표적으로 정보 과도에 의한 사람의 사고력 저하를 들 수 있다. IT 컨설팅 업체인 IDC의 분석에 따르면 2011년 한 해 전세계에서 생성되는 데이터 양은 1.8 ZB(1021 bytes)로 매 2년 마다 2배씩 증가할 전망이다.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양을 넘어서는 자료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여름 휴가를 다녀온 후 밀린 이메일을 확인하는 데에만 몇 시간씩 소비하는 경우가 흔한 상황이 돼버렸다. 이처럼 사람이 다루는 정보의 양은 늘어났지만, 정작 하나의 정보에 들이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주어진 자료를 정독하고 필자의 의도를 파악하며 정보를 정리한 후 자기화하기 보다는, 빠르게 마우스 스크롤을 내리면서 단지 훓어 보기만 할 뿐이다. 이에 IT 미래학자인 니콜라스 카는 자신의 저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디지털 시대 사람들의 집중력 및 사고력 저하에 우려를 표한 적이 있다.


한편 정보뿐 아니라 사람과의 디지털 연결도 대폭 증가하고 있다. 인스턴트 메신저나 SNS를 통해서 이전에는 관계 맺기 어려운 사람들과도 쉽고 빠르게 연결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SNS의 친구 찾기 기능을 통해 못 본지 10년이 넘은 동창생이나 전 직장 동료, 어렸을 때 집 근처에 살던 이웃 등과도 온라인 친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디지털 인연 맺기에 열중하던 사람들이 최근 그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 SNS 사용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별로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은 사람의 친구 요청 승인을 놓고 고민에 빠진 경험이 있는 것처럼,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신뢰가 쌓인 오프라인과는 달리 온라인의 인스턴트 관계에 염증을 느끼거나 사생활을 보호받고 싶은 사람들이 늘고 있다. 실제로 전세계적으로 폭발적 성장세를 보였던 페이스북만 하더라도 최근 본고장인 미국, 영국 등지에서는 가입자수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디지털 피로 현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도 개발되고 있다. 과거 사용 기록을 참고하여 인터넷 검색 결과에서 불필요한 자료를 줄여주는 자동 검색 및 필터링 기능이나, 사람들의 관계 수준을 ‘써클’로 단계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구글 플러스 같은 SNS 들이 그 예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기술을 통한 사회 문제 해결 방법으로, 디지털 환경 변화에 따른 사람들의 근본적 의식변화를 놓치는 한계가 있다. 2009년부터 매년 4월 셋째 주를 디지털 해독 주간(Digital Detox Week)으로 정하고 인터넷, 게임, 휴대폰 등 모든 디지털 기기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자는 캐나다의 애드버스터(http://www.adbusters.org)의 사회 캠페인에서 보듯이 기술뿐 아니라 사회시스템 상에서 인문학적인 논의와 문화적인 접근을 통해 디지털 피로를 극복하는 자세도 요구된다.

 

위협받는 인터넷 자율성 및 개방성


디지털 시대의 부작용인 프라이버시, 크래킹, 디지털 피로와는 조금 다른 차원이지만 인터넷 자율성 및 개방성 침해도 미래 초연결 시대를 가로막는 불안요소이다. 인터넷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자율과 개방의 취지 아래 인터넷은 빠르게 발전해 왔지만, 최근 인터넷이 방대해지고 그 영향력이 커지면서 국가나 기업이 정치적 또는 상업적 목적으로 인터넷을 통제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국가의 경우 국가 안보 및 사회 질서 확립 목적이 크다. 중국의 ‘만리장성 방화벽(Great Firewall)’이 대표적이다. 인터넷 인구가 약 5억 명으로 미국 인구보다 많지만 중국 정부는 아직까지 자치구 시위, 공산당 비판 내용과 같은 내부의 정치적 불만과 외부의 반체제 내용에 대해 인터넷 검열을 엄격히 실시하고 있다. 인터넷 세상의 골리앗 구글도 2010년 중국 당국의 인터넷 검열에 반발해 중국 시장에서 철수하였고, 페이스북은 아직까지 중국에 진출도 못한 상황이다.


중동국가들도 2011년 북아프리카에 불어 닥친 자스민 혁명 이후 인터넷 규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란, 리비아, 시리아 등이 인터넷을 검열하거나 차단하고 있는데, 특히 이란의 경우 2년 안에 해외 인터넷 연결을 끊고 자국 내의 인터넷만 사용하겠다고 지난 5월 발표할 정도로 강경하다. 미국 정부가 인터넷 도메인 명칭을 통제하는 국제 인터넷 주소 관리기구(ICANN, Internet Corporation for Assigned Names and Numbers)를 아직까지 감독하고 있는 것도 논란을 사고 있는 사안이다.


기업의 경우 인터넷 통신 사업자들(ISP, Internet Service Provider)에 의한 망 중립성(Internet Neutrality) 문제가 인터넷 자율성과 연관되면서 논쟁이 되고 있다. 과거에는 ISP가 막대한 투자 비용을 들여 망을 구축하면 포탈, 게임 등 콘텐츠 사업자가 그 통신 망 위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소비자들은 콘텐츠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ISP에게 일정의 통신요금을 지불하는 비즈니스 구조가 잘 유지되어 왔다. 하지만 가입자 수가 거의 포화상태에 달하고 각종 스마트 기기에 의한 데이터 양 폭증으로 통신 불통 사태가 나타나면서 문제가 생겼다. 신규 망 건설 비용에 많은 비용이 소모되는 상황에서, ISP는 안정적인 네트워크 망 운영을 위해서 인터넷 서비스를 통제해야 할 경우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ISP가 많은 트래픽을 유발하는 사용자에 제재를 가하거나 자사와 관련된 특정 인터넷 서비스를 밀어줄 경우, 개인의 인터넷 사용 자유를 훼손할 수 있다고 콘텐츠 서비스 업체와 인터넷 사용자들은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례로 미국의 민주당 의원 알 프랭켄(Al Franken)은 ‘공화당 사이트 로딩 시간이 민주당 사이트 로딩 시간보다 5배 빨라질 수도 있다’면서 개인의 인터넷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망 중립성은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망 중립성 문제를 놓고 이해 당사자들 간 의견이 팽팽히 맞서면서, 이를 중재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논의가 활발하다. 인터넷 자율성과 혁신을 지속시키고 사용자의 자유를 보존하면서도, 합리적인 네트워크 관리가 되도록 정책적 뒷받침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작년 12월 오픈 인터넷 규칙(Open Internet Rule)을 발표하였고, EU도 작년 6월 망 중립성 자문서를 발표하여 각국의 의견수렴 중에 있다. 우리나라도 현재 방송통신위원회를 중심으로 망 중립성 정책방안 마련을 준비하는 상황이다.


자율성 및 개방성은 인터넷의 본질적 속성이다. 정보의 자유로운 교류와 공유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최근의 디지털 산업 생태계가 폐쇄형(Walled Garden)에서 개방형(Open Platform)으로 흘러가는 이유이다. 하지만 위의 사례에서처럼 정치적, 기술적 이유로 언제든 그 속성을 뒤집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디지털 블랙 스완의 가능성


모든 현상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디지털 세상도 그러하다. 세계의 많은 사람과 연결할 수 있고 정보를 언제 어디서든 빠르게 얻는 것이 가능해졌지만 프라이버시, 크래킹, 디지털 피로, 인터넷 개방성 침해 같은 불안 요소도 존재한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해결에 뛰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크래킹을 막기 위해 보안이 더 뛰어난 제품을 구매하고, AI를 통해 불필요한 정보를 제거하는 서비스를 이용하며, 개방형의 오픈 소스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등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디지털 사회의 불안 요소들을 해결하기 위한 이러한 노력들은 보다 더 안정되고 굳건한 디지털 세상을 구축하는데 밑거름이 될 것이다. 여러 크래킹 사건을 통해 더욱더 완벽한 보안 프로그램이 설계되고 그 기술은 또 다른 부문으로도 파급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진화되어 나간다 하더라도 그 시행착오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예측하기 힘든 돌발사고와 이로 인한 피해는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디지털 시스템이 더욱 광범위하고 복잡하게 연결될수록 상상하기 힘든 대재앙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상대적으로 보안에 취약한 모바일 디지털 기기가 늘어나고, 스마트 그리드를 통해 전력, 교통, 통신 시스템이 맞물려 운영될 경우 크래킹의 피해 규모는 매우 커질 가능성이 높다. 디지털 불안 요소들에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게다가 이들 불안요소들은 서로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프라이버시 침해가 늘고 크래킹이 빈번해질수록, 디지털 피로도는 더욱 심해지고 인터넷을 통제하려는 움직임도 커질 것이다. 또 디지털 피로를 줄이기 위해 개발된 인텔리전트 서비스는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거나 크래킹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 각 개별 불안요소들이 중첩되고 증폭되어 나타나게 될 디지털 블랙 스완의 예방 차원에서라도 사고 발생가능 유형을 분석해 보고 장단기 대비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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