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김광기의 '인사이드 아메리카']

일취월장7 2020. 4. 8. 11:02

병원이 '바이러스 배양접시'로...미국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김광기의 '인사이드 아메리카'] 제국이 그들의 배를 불리는 방식 ⑩


미국의 예상 사망자 수 최대 24만 명


미국에서 코로나 사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향후 사망자가 최소 10만 명에서 20만 명에 이를 것이란 보도가 나오자마자, 곧바로 최대 24만 명이 될 것이란 추정치로 수정되고 있다. 사태가 이렇게 되니 미국 전역이 충격과 공포에 휩싸이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과는 다른 문화 때문에 쓰지 않으려 했던 마스크를 찾는 모습도 늘고 있다. 죽음의 공포 앞에선 서구식 '문화'도 별 소용이 없는 듯 보인다. 평상시 행동과 믿음이 문화를 구성하는 것이라고 볼 때 삶과 죽음의 갈림길 앞에서 그런 것들도 우선순위에서 한참 뒤로 밀리는 게 당연하다. 평소의 일상이 무너져 버린 곳에서 문화란 거추장스러운 장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사람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직감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그것도 치명적인 문제다. 문화적으로 꺼리던 마스크가 미국에서조차도 필수적으로 쓰이는 곳이 있었다. 바로 병원이다. 그러나 환자가 홍수처럼 쇄도하는 이때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료진조차 쓰지 못할 정도로 마스크가 부족하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그리고 그 부족한 것들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의료진을 위한 안면비말보호대와 방호복 같은 개인보호장구(Private Protective Equipments, 이하 PPE)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또한 진단검사키트와 중증폐렴환자를 위한 인공호흡기도 거의 동난 상태이다. 선진국, 그것도 세계 최강 미국에서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오늘은 이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 미국 뉴욕시 브롱스의 한 병원의 간호사들이 자신들을 보호할 마스크를 달라고 시위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3월 30일 자 기사 갈무리.


현재 미국 병원은 '세균배양접시'


"중환자실(ICU)이 폭발했다."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학병원 외과전문의가 <뉴욕타임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환자가 물밀듯이 쇄도하고 있는 와중 일손이 달리자 중환자실에 자원해 환자를 보고 있다. 그런데 난생처음 보는 전쟁 같은 이런 상황을 목도하는 의료진을 더욱 공포에 떨게 하는 것은 정작 따로 있다. 의료진의 감염이다.


실제로 상당수의 의료진이 감염되었고 사망하고 있다. 그것도 다른 이유가 아닌 PPE가 부족해서이다. 이런 일은 중환자실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고 응급실을 비롯해 병원 전체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뉴욕의 한 의사는 이렇게 바이러스에 무방비로 노출돼 환자를 보는 병원 환경을 "세균배양접시(a petri dish)"라고 묘사했다. 한 간호사는 "매일 우리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느낌이다"라고 토로했다.(☞ 관련 기사 : <뉴욕타임스> 3월 30일 자 'Nurses Die, Doctors Fall Sick and Panic Rises on Virus Front Lines')


임산부들 감염시키고 있는 의사들


뉴욕 마운트시내병원(Mount Sinai hospital) 산부인과 의사의 말은 더욱 충격적이다. 그 의사는 확진자인 산모들의 분만을 거든 지 오래됐다는 것이다. 그것도 PPE 없이.


PPE가 절대 부족한 상태에서 산부인과는 코로나 환자를 받는 최전선 의료진이 아니기에 PPE의 착용은 엄격히 제한되어있다. 그래서 산부인과에서 PPE 착용은 언감생심.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이런 와중 임부들을 검진하고 분만을 돕고 있으니 그 불안감이 얼마나 높을까? 이 때문에 의료진들은 퇴근해 집에 가자마자 옷을 세탁기에 돌리고 샤워를 하고 있지만 가족은 물론 다른 환자들에게 병을 옮기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심지어 앞서 언급한 산부인과 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검진하는 임산부들과 분만 후 퇴원시키는 산모들을 확실히 감염시키는 중이다."PPE 부족으로 무방비 상태로 환자를 받고 있는 의료진들은 환자들의 생명은 물론 자신들의 생명의 위협까지 감내하고 있는 상태이다. 한 간호사의 울부짖음은 현재 미국에서 PPE 부족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단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우리 모두는 완전히 끝났다. (이런 상태라면) 곧 내 동료들을 잃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현재로서는 탈출구가 없다는 것이다."(<뉴욕타임스> 3월 30일 자)


태부족인 진단검사키트


코로나 사태가 한창인 지난 3월 30일 트럼프가 미국의 주지사들을 모아 놓고 관련 회의를 했다. 각 주의 코로나 대처 상황을 듣고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트럼프는 "나는 진단검사에 대해 들은 바가 없다. 세계의 그 어느 나라보다 우리나라에서 검사를 더 많이 했다. 그리고 검사는 매우 정확했고 이번 주에는 더 빨리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나는 진단검사 하는데 문제가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한술 더 떠서, 그 회의 후 백악관 브리핑에서 트럼프는 모임이 어땠느냐고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주지사들이 국가 위기에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는 자신의 지도력에 대해 감탄했으며, 일을 잘 처리해주어 "고맙다"고 말했다고 답했다. 시쳇말로 '자뻑(스스로 만족하는 상태)'이다. 그동안 제기됐던 진단검사키트의 태부족 현상으로 검사에 차질이 빚어진다는 사실을 모르쇠로 일관하며 부인한 것이다.

그러나 회의에 참석했던 주지사들의 반응은 트럼프의 말과 완전히 달랐다. 소속 정당과 상관없이 모든 주지사들이 진단검사키트가 부족하거나 다 떨어져 검사자체가 되고 있지 않으니 빨리 해결해 달라는 요청이 봇물 터진 듯했다고 전해진다. 트럼프의 말대로 "고맙다"는 뉘앙스의 말가 나오긴 했을 것이나, 그 내용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노스캐롤라이나 주지사 로이 쿠퍼(Roy Cooper)가 트럼프에게 가능한대로 우리에게 진단키트를 보내주면 "고맙겠다"고 말한 조건적 인사치례였으니 말이다.


워싱턴 주지사 제이 인슬리(Jay Inslee)는 진단검사키트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트럼프의 브리핑을 보고 충격을 받다고 말했다. 신문과 방송, 그리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만 보더라도 누구나 진단검사키트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트럼프가 이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대통령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거나 공감 능력이 전혀 없거나 둘 중 하나라면서 성토했다.

인슬리에 따르면, 지금 워싱턴 주를 포함해 모든 주가 검사를 늘리려는 노력에 애를 먹고 있는 것은 둘째치고 진단검사키트 자체가 "심각하게 부족(dire shortage)"하다. 워싱턴 주의 경우 그 넓은 주에서 키트를 구하기 위해 의료진들이 서너 시간 차를 타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관련 기사 : <뉴욕타임스> 3월 30일 자 'Trump Suggests Lack of Testing Is No Longer a Problem. Governors Disagree')


▲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인공호흡기가 물량 부족으로 시달리고 있는데, 그마저도 '이베이(eBay)'식 입찰 방식으로 구하라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성토하고 있다. <가디언> 3월 31일 자 기사 갈무리.


동 난 인공호흡기


중증호흡기 환자 치료에 쓰이는 인공호흡기 소진으로 미국 전역이 지금 아우성이다. 가장 심각한 것으로 알려진 뉴욕 주에서만 3만 개의 인공호흡기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도 트럼프는 연방정부가 비축한 인공호흡기 1만 개가 있다며 걱정 말라고 했다. 미국 전역에서 정확하기는커녕 대충이라도 몇 개의 인공호흡기가 필요한 줄도 모르는 셈이다.(그런데 정말 모르는 것 같지는 않다. 우리나라에 코로나 관련 의료장비를 요청한 것을 보면 말이다.)

4월 1일 현재 이제껏 연방정부로부터 지원받은 개수를 파악해 보니 트럼프의 발언은 휴짓조각이 됐다. 일리노이 주는 4000개를 요청했으나 450개, 뉴저지 주는 2300개를 요청했으나 300개, 뉴멕시코 주는 단지 370개, 버지니아 주는 350개 요청에 단 한 개도 아직 받지 못했다. 일리노이 주는 저것도 가장 시급한 것만 추려 줄여서 요청한 것인데 왜 그렇게 많이 필요하냐는 타박까지 받았다고 한다. 코네티컷 주지사는 "정말로 없어서 죽겠다"며 비명을 질렀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연방정부가 갖고 있다는 비축량 1만 개 역시 현재 수요에 턱없이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비축하고 있다는 것조차 온전한 것이 아니라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민감한 기계의 특성상 비축 시 유지 관리가 필요한데 그것이 안 돼 거의 쓸모가 없는 것이 태반이라고 란다.(☞ 관련 기사 : <뉴욕타임스> 4월 1일 자 'A Ventilator Stockpile, With one Hitch: Thousands Do Not Work')

사정이 이러니, 트럼프는 인공호흡기를 환자 2명이 공유해서 쓰라고 병원에 지침을 내렸다. 황당한 일이다. 연방 정부는 이른바 ‘인공호흡기 분리사용(ventilator splitting)’이 "절대적으로 최후의 수단으로 간주될 경우만 사용할 것"이란 단서를 달아 이 새로운 지침을 공유할 수 있다고 허락했다.


인공호흡기 공유는 코로나 환자 쇄도로 이태리 병원에서 어쩔 수 없이 시행되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여태껏 극히 드문 예를 제외하곤 전례가 없다. 최근 뉴욕의 파산 직전의 병원에서 그렇게 한 적이 있고, 2017년 최악의 대량 총기사건 발생 후 라스베이거스의 병원에서 워낙 사태가 긴박해 딱 그때만 적용된 적이 있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인공호흡기 공유는 현재로서는 안전하게 사용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관련 기사 : <폴리티코> 3월 31일 자 'Trump Officials Tell Desperate Hospitals That Patients Can Share Ventilators')


의료장비 부족 외부에 발설하면 해고 위협한 병원


그러나 이런 의료장비의 부족을 세상에 알리는 것은 주지사들이나 가능한 것이다. 사선이나 다름없는 최전선 병원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들이 외부에 의료장비의 부족을 발설하는 것을 금지하는 함구령이 내려졌다. 다름 아닌 해당 병원들의 지시다. 만일 발각될 경우 해고한다는 위협과 함께. 준비가 덜 된 병원으로 이미지가 실축되어 향후 환자가 줄어들 것을 우려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의료진의 인터뷰는 대부분 익명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워싱턴 주 간호사협회 대변인인 슈베르트(Ruth Schubert)는 "병원이 이미지 실추를 방지하기 위해 의료진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있다"고 성토했다.

그런데 이렇게 의료진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면 커다란 문제가 추가로 발생한다. 첫째는 열악한 환경에 대해 알고 있어야 새로 투입되는 의료진들이 나름대로 충분하지는 않지만 대비를 해야 하는데, 대비를 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현재 의료진들이 입을 닫고 있으면, 이들 말고 다른 의료진들이 와서 자신들처럼 무방비로 코로나에 감염될 수가 있다. 둘째는 의료장비의 부족을 알고 외부에서 도움의 손길이 펼쳐질 수도 있는 데 이런 가능성이 재갈을 물리면 사라진다. 풍족한 줄 알면 도움의 손길은 기대하기 어렵다.(☞ 관련 기사 : <블룸버그> 3월 31일 자 'Hospitals Tell Doctors They’ll Be Fired If They Speak Out About Lack of Gear',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3월 31일 자 'A Bay Area Hospital Desperately Need Supplies, Including Masks')


▲ <뉴욕타임스> '제조업의 대통령이라고 말한 트럼프. 그리고 재앙이 덮쳐왔다'라는 제목의 기사 갈무리.


제조업의 소멸: 의료장비 만들 공장이 없다


트럼프는 애초에 대통령이 될 때, 그리고 대통령이 되고 나서 자신은 "제조업의 대통령(the president of manufacturing)"이 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런데 그 약속은 지켜졌는가? 한 마디로 개뿔이다. 그것은 단지 선거용이었을 뿐이다. 쇠락한 러스트 벨트(미국의 제조업이 상징인 중부지방의 자동차 공업지대)의 백인 노동자들의 표를 몽땅 가져가겠다는 속셈이었을 뿐, 대통령이 되고 나서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방증을 코로나 사태가 해주고 있다. 그 대단하다고 하는 선진국 미국에서, 세계 최강의 국가 미국에서, 그 돈 많다는 미국에서 PPE가 부족하고, 인공호흡기가 부족해서 사람이 무수히 죽어 나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것들은 어디서 만드는가? 답은 매우 쉽다. 공장에서 만든다. 그게 바로 제조업체이다. 그러나 지금 미국의 제조업은 이미 사망을 알린 지 오래. 그것 때문에 거기에 종사했던 근로자들이 허드레 일자리로, 혹은 실업자로 전락해 중산층에서 밀려나고 있는 이때, 그것을 시정하겠노라고 기치를 들고 나와 수많은 노동자들의 환호와 지지 속에 대통령이 된 트럼프가 취임 후 제일 먼저 했어여 하는 일은 바로 제조업의 부활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말뿐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제조업은 그가 취임하기 이전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러니 PPE와 인공호흡기를 당장 만들 공장이 어디 있는가?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 보라 3억3000만 명이 넘는 인구를 가진 대국, 엄청난 땅덩어리를 가진 나라에서 그래 그 알량한 마스크와 방호복, 그리고 기술 집적도가 그것들보다는 더 필요한 것이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다른 첨단 기계에 비해 간단한 축에 속하는 인공호흡기를 만드는 공장이 없단 말인가?

당연하다. '공장은 모두 다른 나라로'가 그동안 미국의 추세였으니. 하긴 '달러'라는 전 세계가 통용하는 돈만 찍어내면 물건은 다른 나라에서 열심히 만들어 갖다 대주는데 왜 힘들게 공장을 돌려 물건을 만들까. 그러니 '공장은 필요 없다'라는 생각이 팽배했던 것이 미국이다. 봉이 김선달이 따로 없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그렇게 해서 커다란 이익을 본 이들, 즉 그 봉이 김선달은 미국의 국민들, 서민들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기업을 운영하는 극소수의 사람들, 즉 필자가 말하는 제국들이었다. 그 결과 김선달이 아닌 자들은, 즉 서민들, 제조업체 종사자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그렇게 그들의 사회적 중요성도 상실되어 잊혀 가는 사람들이 되었다. 이와 동시에 미국의 기초 체력도 점점 하향세를 타고 있었다. 왜냐하면 국가의 힘은 굴뚝산업, 즉 제조업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트럼프는 국방물자생산법(Defense Production Act, 이하 DPA)을 발령해 마치 펜타곤이 전시에 '폭탄을 만들어라. 탱크를 만들어라'라고 명령을 내리는 것처럼 '의료 장비를 만들어라'라고 명령할 뿐이다.(☞ 관련 기사 : <로이터> 4월 3일 자 'Trump invokes Defense Production Act for ventilator manufacturing') 말만 한다고 되는 게 어디 있나. 그것도 하루아침에. 세상사가 그렇게 되는 게 아니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바로 공장이 돌아가고 그러면 얼마나 좋겠는가? <뉴욕타임스>가 지적하고 있는 것과 같이 그렇게 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말 그대로 환상이다. 무엇보다 제일 먼저 미국제 생산라인(Made-in-America production lines)이라는 게 거의 존재하지 않는데 어디서 물건을 만든다는 말인가. 이것은 트럼프의 명을 받은 GM과 포드 같은 회사에 모두 해당되는 사항들이다. 그 외 여기에 참여할 것으로 기대되는 대부분의 기업들은 아일랜드, 스위스, 중국 등으로 생산기지를 옮긴 지 오래다. 이런 전시와 같은 비상사태가 발생해 긴급하게 특정 물자를 생산해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존에 돌아가던 공장이 있었어야 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관련 기사 : <뉴욕타임스> 3월 29일 자 'Trump Said He Was the President of Manufacturing. Then Disaster Struck') 그리고 그는 마치 전시의 사령관처럼 명령만 내렸고, 그것도 구체적으로 몇 개를 만들어 어디에 공급하라는 상세 요목 없이 두루뭉술한 명령만 내렸다. 그리고는 이제 모든 물자가 공급될 테니 아무 문제가 없다고 허풍선만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국가 재난 상황을 이끌어 나갈 컨트롤 타워로서의 명민함과 기민성 그리고 지도력은 그 어디에서도 보이질 않는다. 있는 것은 오로지 재선을 위한 이미지 관리뿐이다. '봐! 나는 DPA까지 발령한 힘 있는 대통령이야. 내가 할 건 다 했어. 끝!'


▲ 미국 켄터키 주 루이빌에 등장해 덜미가 잡힌 사기꾼 일당. 이들은 250달러만 내면 코로나 검사를 해준다며 사람들을 속여 착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유에스에이투데이> 4월 3일 자 기사 갈무리.


국가 재난사태에도 작동하는 신자유주의 원리


지난 글에서 필자는 이런 재난 상황에서 미국인의 대다수는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그저 각자도생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 바 있다.(☞ 관련 기사 : 코로나 사태, 월가 억만장자들에겐 책임 전가의 호재) 이런 상황에서는 생존을 위해서는 서로 먼저 살겠다고 달려드는 수밖에 없다. 경쟁이다. 그것도 무한 경쟁. 이런 경쟁에서 지면 도태뿐이니까. 그러니 이런 재앙 상황에서는 남에게 희생하고 양보하고 이런 도덕은 뒷전으로 팽개쳐진다. 특히 자신의 무사안일과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신자유주의의 화신과 같은 사람들에겐 더더욱. 이런 이들의 범주는 다양하다. 어떤 이는 자기 혼자 돈 벌겠다고 손세정제와 알코올 등 사다 쟁여 놓고 높은 가격에 팔려 내놓은 사람도 있고(☞ 관련 기사 : <뉴욕타임스> 3월 14일 자 'He Has 17,700 Bottles of Hand Sanitizer and Nowhere to Sell Them'), 심하게는 코로나를 이용해 사기 행각을 벌이는 이들도 있다. 켄터키 주 루이빌(Louisville)에는 간이 검사사이트를 주유소 등에 차려 놓고 단돈 250달러(약 31만 원)에 검사를 해준다며 사람들을 꼬여 돈을 벌다 덜미가 잡힌 이들도 있다. 모두 코로나로 공황 상태에 빠진 서민들을 상대로 부당한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약삭빠른 자들의 발 빠른 행보다.(☞ 관련 기사 : <유에스에이투데이> 4월 3일 자 'Fraud follows coronavirus spread; fake vaccines, testing, investment scams are exacting a toll') 이 보단 덜 한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조바심에 생활필수품들을 사재기해서 집에다 쌓아두려 애쓴 이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죄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같은 맥락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런 각자도생의 원리는 단지 개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50개 주에도 마찬가지다. 모든 게 각자도생이다. 물론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분명 기저에는 국가가 '너희 일은 너희가 알아서 해'라는 방임적 철학이 자리해 있고, 미국이라는 나라가 중앙집권식이 아니니 그럴 수도 있다고 한편 수긍이 가기도 하지만, 그러나 코로나 사태와 같은 이런 재난은 매우 특별한 상황이 아닌가? 그런데 생명과 관련된 이번 사태에서조차 여전히 경쟁과 각자도생은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있으니 문제다.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인공호흡기 조달을 위해 지금 미국의 50개 주가 서로 경쟁하는 매우 "기괴한 상황(bizarre situation)"에 처해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왜냐하면 현재의 조달 방식이 마치 온라인 쇼핑 업체인 '이베이'의 경쟁 입찰 방식이라서 그렇다. 그래서 그는 지금 "이베이 식 입찰 전쟁(eBay-style bidding war)"이 벌어지고 있다고 통탄했다. 입찰 방식은 가격을 많이 부르는 쪽이 시쳇말로 '득템(낙찰받는 것)' 하는 방식이다. 입찰에 응하는 자가 많은 수록 가격은 오른다. 그런데 인공호흡기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무슨 장신구 같은 것인가? 생명의 촌각을 다투는 사람들에겐 운명을 가르는 그런 생명줄 같은 의료기기이다. 이것을 각 주가 필요로 하는 데 50개 주가 서로 앞 다투어 물건 확보를 위해 각축전을 벌여야 한다니. 한 술 더 떠, 50개 주도 모자라 연방정부 기관인 미국연방재난관리청(FEMA)까지 가세해 인공호흡기 입찰에 뛰어 가격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기가 찰 노릇이다.(☞ 관련 기사 : <가디언> 3월 31일 자 'New York’s Andrew Cuomo decries 'eBay'-style bidding war for ventilators', <뉴욕타임스> 4월 2일 자 'N.Y.C. Death Toll Tops 1,500 as Cuomo Warns on Ventilators')

이럴 땐 지역색, 정치색 이런 것들은 다 집어치우고 대승적으로 대처하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그것을 하고 있지 못하다. 그러니 그저 나만 살고 보자 식의 각축장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공급체계의 정비도 없고 오로지 있는 것이란 경쟁, 가격 올리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 전체 국가와 전체 국민 생각은 '1'도 없다. 이때 영악한 이들은 오직 이런 경우를 발판으로 재빠르게 움직여 돈 벌 생각밖에 없다.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DPA를 발동해 인공호흡기를 생산하라고 명령한 트럼프는 그것이 언제 생산되어 공급될지 미정인 상태에서 벌써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에 팔아먹을 궁리만 하고 있다. 인공호흡기의 공급이 수요를 곧 추월할 것이라면서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로 수출하겠다고 한다.(☞ 관련 기사 : <배니티페어> 3월 31일 자 'As U.S. Hospitals Face Shortages, Trump Vows to Send Ventilators—to Europe')

입찰 방식으로 조달되는 인공호흡기의 공급체계를 새로 정비하고, 주별 상황을 정확히 파악한 후 조정과 분배를 해야 할 곳이 백악관인데도 저러고들 있으니, 국민들은 누구를 믿으란 것인가. 하긴 이런 일의 총괄 책임자로 트럼프의 사위가 떡 하니 앉아 있으니, 일이 제대로 될 턱이 없다. 이 와중에 주지사들의 한 숨소리가, 그리고 코로나에 감염돼 애타게 인공호흡기를 찾고 있는 국민들의 절규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 뉴욕시의 경우 4월 2일 현재 사망자가 1500명에 이른다. 사진은 뉴욕대학 앞의 임시 시체보관소로 바꾼 냉동트럭 모습이다. <뉴욕타임스> 4월 2일 자 기사 갈무리.


소수만을 위해 준비된 미국 병원


샌프란시스코의 한 병원은 캘리포니아 주가 코로나 감염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임대 계약을 맺었다.(병원과 국가가 무슨 임대계약을 맺나? 우리나라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시스템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로 그 신자유주의적 체계에서 비롯된 시스템임을 감안하기 바란다.) 그런데 이 병원은 그 지역의 환자를 받을 여력이 전혀 없다. 주정부가 원하는 것의 20%만 처리할 능력밖에 없다고 병원 관계자가 밀려오는 환자들을 보고 난색을 보이고 있다. PPE는 물론 인공호흡기, 그리고 병상까지 완전히 떨어진 상태다.(☞ 관련 기사 :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3월 31일 자 'A Bay Area Hospital Desperately Need Supplies, Including Masks')

이제 왜 이런 일들이 미국에서 벌어질 수밖에 없는지 정곡을 찔러보자. 그것은 바로 미국의 병원이 이런 대량 환자의 발생 자체를 상정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더 뼈를 때리는 말을 해 볼까. 비상사태는커녕 평상시에도 미국의 병원은 해당 병원이 있는 인근의 모든 국민들을 잠재적 환자들로 꼽아본 적이 결코 없다. 애초에 미국 병원엔 국민들은 없었다. 자신들을 찾을 고객은 단지 소수. 의료보험을 가진 돈 많은 이들이니 말이다. 의료보험이 있다 해도 그 종류가 천차만별인 이상 그 액수에 따라갈 수 있는 병원이 한정되어 있으니 정말로 그 예상치를 차고 넘는 환자는 아예 고려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준비를 하는가. 올 사람은 딱 정해져 있는데. 그 예상 병원 환자 수에 맞춰 병원에 의료 자재를 구비해 놓았으니 현재 병원에 보유한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말이다.

다시 말해 예상하고 말 것도 없다. 올 사람이 정해져 있으니 전혀 준비가 안 된 것이다. 애초에 미국 병원에 국민들은 없었다. 전체 국민이 잠재적 병원 환자가 되리라는 것은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이 미국 병원이다. 그들은 애초에 제쳐둔 존재들이었다. 그곳은 일반 국민이 갈 수 없는 그림의 떡과 같은 곳이었을 따름이다. 보험과 돈이 없는 자들에겐 딴 세상이나 다름없는 곳, 그곳이 미국 병원이다. 그러기에 현재의 의료장비 부족과 병상의 부족은 무척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런 곳에서 이번엔 검사라도 공짜로 해준다니 너도나도 앞다퉈 가 환자가 쇄도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미국은 아비규환 그 자체이다. 필자는 뉴욕시에 사는 한 친지의 부모가 코로나가 의심돼 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가 10시간을 기다렸지만 그마저도 받지 못하고 되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혀 준비가 안 된 곳 미국에서 그렇게 코로나는 기세등등해 진격 중이다.


▲ <가디언>은 "코로나 사태가 악화되면서 사회소요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총기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디언> 3월 16일 자 기사 갈무리.


총, 시체가방, 그리고 바리케이드


그러나 이렇게 비상사태에 대해 전혀 준비가 안 된 미국에서 준비해 놓은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총이다. 영국의 매체 <가디언>은 코로나 사태가 악화 일로에 놓이면서 국민들 사이에 총기와 탄환 구매가 폭등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 원인으로 코로나 위기가 혹시나 불러올 수 있는 소요사태에 대한 개인적 방어 차원이라고 지적했다. 말하자면 만일에 벌어질 수도 있는 파국에 대해 개인들이 준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 : <가디언> 3월 16일 자 'US sales of guns and ammunition soar amid coronavirus panic buying') 또 준비된 것이 있다. 바로 시체가방이다. 미국 정부는 코로나 사태로 인한 사망자가 최소 10만 명에서 24만 명이 나올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코로나 확진을 받은 사람의 수를 추정한 것이라 그렇지 않고 집에서 길거리에서 죽는 사람들을 포함한다면 그 이상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를 위해 시체를 담을 수 있는 가방이 필요할 것으로 예측해 FEMA가 국방부에 요청한 군용 시체가방 10만 개를 민간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국방부가 발표했다.(☞ 관련 기사 : <블룸버그> 4월 2일 자 'Pentagon Confirms It’s Seeking 100,000 Body Bags in Virus Crisis')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이런 것은 발 빠르다. 가능한 한 사람들을 살릴 생각을 먼저 하지 않고 저런 것은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게 필자로서는 납득이 잘 가지 않는다. 이런 것을 보면 명품매장이 문을 닫으며 출입구와 창문을 나무판자로 봉쇄 해 놓은 것은 애교에 속한다 할 수 있다. 소요사태 시 약탈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발 빠른 행보다. 이런 준비의 100분의 1만이라도 코로나 재난 속에서 국민들을 살릴 준비를 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앞선다.


▲ 미국 정부가 국방부에 민간인 사망자에 사용할 시체가방 10만 개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 4월 2일 자 기사 갈무리.


진정한 정치 지도자라면…


만일 미국에서 진정한 정치 지도자라면 했어야 할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1순위는 이런 엉망진창의 의료체계와 보험체계를 확 바꾸어야 한다고 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트럼프도 못 했고, 오바마도 못 했다. 아니, 그들은 그것을 못 한 게 아니라 안 한 것이다. 트럼프야 공화당 쪽이니까 그렇다고 치자. 소위 진보라고 하는 민주당 쪽인 오바마는 왜 안 했나? 그가 시행한 전 국민 의료보험인 '오바마 케어'는 우리와 같은 공공보험이 아닌 민간사보험이다. 기껏 만들었다는 게 민간보험사의 배만 불려주는 흉물이 되었다. 민간보험사의 로비에 구워삶아져 그렇게 된 것이다. 전 국민 의료보험을 만들었다고 자화자찬했으나 오바마는 국민들의 짐을 덜어주기는커녕 외려 세금 성격의 짐만 더 가중시킨 나쁜 지도자가 되었다.(책 <부자는 어떻게 가난을 만드는가>(김광기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참조)

의료와 보험체계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샌더스일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우리와 같은 공공의료보험을 만들겠다는 그의 포부를 보고 '빨갱이'란다. 그러면 이 대목에서 물어보자. 우리나라의 의료체계와 보험체계가 '빨갱이'의 것인가? 결코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샌더스가 소속으로 나온 민주당은 물론 소위 진보언론조차 모두 득달같이 달려들어 샌더스 보고 '빨갱이'란다. 그가 주창한 사회민주주의를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라고 찌그러트리면서. 그러나 샌더스가 분명히 말했듯이 그의 사회민주주의는 참된 민주주의를 말한다. 지금의 미국 민주주의는 돈에 의해 심하게 오염되었다. 그 결과 금권정치로 변질되어 버렸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입게 되었다. 이에 염증을 느낀 샌더스는 돈과 자본에 의해 왜곡되지 않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싶어 한다. 그게 바로 사회민주주의라고 칭한 것이다.(☞ 관련 기사 : <경향신문> [국제칼럼] ''월가규제' 샌더스의 도전'(2016년 1월 10일 자), '안 통할 수 없지! 샌더스'(2016년 2월 14일 자), '샌더스가 그립다'(2016년 10월 23일 자))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지만, 만일 2016년 대선에서 샌더스가 대통령이 되고, 그가 그의 공약을 지켜 미국에 공적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하고 의료체계를 대대적으로 손을 봤다면 이번 코로나 사태는 지금과는 현격히 다른 과정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비록 확 갈아치우지는 못 했었더라도 이런 사태가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을 때 대통령이 위기상황을 감지하고 차근차근 준비했더라면 적어도 PPE 및 인공호흡기 부족 등의 사태로 의료진들이 발을 동동 구르거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환자를 맞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 해도 근본적인 개혁이 아닌 이상 지금의 상황과는 오십보백보이긴 마찬가지지만.


난세에 등장한 영웅들


그런데 늘 그렇듯 난세엔 영웅이 등장하기 마련. 그중 제일 먼저 쿠오모 뉴욕주지사가 거론된다. 그는 비록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결단력 과단성을 가지고 전시의 장군처럼 뉴욕 주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간혹 엉뚱한 소리만 해대는 트럼프에게 쓴소리도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지금 그가 코로나 사태와 관련해선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가뭄 속 단비처럼 미국 국민에겐 그가 신뢰받는 지도자로 각인되고 있다. 뉴욕 주에 쇄도하는 환자들을 위해 그는 인공호흡기 조달을 주별로가 아닌 연방국가 차원에서 해야 한다며 트럼프를 맹비난 했다. 그는 미국의 50개 주가 인공호흡기를 확보하기 위해 입찰 경쟁에 나선 이때 연방정부까지 가세해 입찰 경쟁에 뛰어들 것이 아니라 연방정부가 모든 인공호흡기를 일괄 구매해서 필요한 만큼 각 주에 할당 공급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째서 연방정부가 이런 멍청한 짓을 하는 것이냐면서.(☞ 관련 기사 : <가디언> 3월 31일 자, <유에스에이투데이> 4월 2일 자 'Coronavirus ventilators supply botched just like lack of testing. Now, 3 urgent priorities') 확실히 트럼프는 죽을 쓰고 있지만 쿠오모 같은 지방정부의 수장은 똑똑한 것이 맞다. 트럼프는 주먹구구식으로 이 재난에 우왕좌왕 대고 있는데 비해 정확한 사태 파악과 대안 제시에 있어 쿠오모가 빛을 발하고 있어 그 지도력을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난세에는 영웅이 나게 마련인가 보다.


▲ 인쇄공장에서 모든 일을 중단하고 개인보호장구, 손소독제 등을 생산하고 있는 뉴욕의 한 제조업체 사진. <뉴욕타임스>는 이 업체를 브루클린의 "전시공장"이라 명명했다. 코로나로 사태 후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을 모아 급조한 공장이다. 가히 미국은 지금 코로나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뉴욕타임스> 3월 31일 자 기사 갈무리.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이들은 이런 셀럽(유명인)들이 아니다. 무명의 영웅들이 또한 존재한다. 집에 쑤셔 박아 둔 천들을 가져다 수제마스크를 만들어 지역의 의료진들에게 제공하는 봉제사들이 있고(☞ 관련 기사 : <뉴욕타임스> 3월 25일 자 'A Sewing Army, Making Masks for America'), 프린트 인쇄업체에서 PPE와 손소독제를 만드는 이들도 있다.(☞ 관련 기사 : <뉴욕타임스> 3월 31일 자 'A 'Wartime Factory' in Brooklyn Is Fighting Coronavirus') 또한 구두공장에서 구두를 만드는 것을 잠시 중단하고 PPE를 만들고 있는 이들도 있다.(☞ 관련 기사 : <보스턴 글로브> 4월 1일 자 'Manufacturing a coronavirus defense: companies like L.L. Bean transition to medical gear production')

국가나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다. 트럼프가 삽질을, 그리고 제국(극소수의 기득권층)서부터 일개 약삭빠른 일반인들에 이르기까지 죄다 코로나를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으려 드는 이때, 그들은 과거 2차 세계대전 때 국가를 위해 전쟁 물자를 만들어 나라를 구한 그들의 선배들처럼 지금 자국민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어떤 공장은 코로나로 일자리서 해고된 노동자들을 모아서 사회적 거리를 두며 의료 장비들을 열심히 만들어 내고 있다. 그들은 말한다. 이것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고. 이것은 일자리를 잃은 이들에게 일을 주고, 국민을 위해 싸워주고 있는 최전선의 의료진들을 조금이나마 돕기 위한 것이라고.

나는 이게 바로 과거의 미국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제국이 그들의 농단으로 나라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기 전의 미국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이야말로 타락한 정치지도자들을 포함해 제국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무명의 영웅들이고 용사들이다. 나는 이들에게 뜨거운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들의 행위를 미국만을 위한 일로 폄훼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이것은 휴머니즘(인간주의, 혹은 인도주의)이다. 가슴 속 깊숙이 뜨거운 것이 올라오게 하는 휴머니즘. 그것은 국경을 초월해도 박수받아 마땅한 인간 승리의 정신이다. 무명의 영웅들이여, 미국의 서민들이여, 부디 용기 내기를.

참고


- <부자는 어떻게 가난을 만드는가?>(김광기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 김광기, “'월가규제' 샌더스의 도전,” <경향신문>, 2016. 1. 10.


- 김광기, “안 통할 수 없지! 샌더스,” <경향신문>, 2016. 2. 14.


- 김광기, “샌더스가 그립다,” <경향신문>, 2016. 10.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