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칼럼

삼성이 앞서서 노동조합법을 존중한다면

일취월장7 2020. 1. 2. 09:27

삼성이 앞서서 노동조합법을 존중한다면

[삼성공화국, 어디로 가나] '노동 존중' 사회는 꿈인가
2020.01.01 10:01:43


올해 11월 13일은 전태일 노동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면서 분신을 한 지 49주년, 즉 반세기를 맞는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높은 경제 성장을 지속하여 OECD에도 가입이 되고,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보유하는 나라가 되었다. 오죽하면 미국의 트럼프가 주한미군 주둔비를 올리라고 하면서 ‘한국은 부자 나라다’라고 했을까? 이렇게 빠르게 경제가 성장하고 국력이 신장할 수 있었던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얼룩져 있는 성장 덕이다. 하지만 그 성장이 사실은 국가와 기업이 나서서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 처해 있는 노동자들의 노동을 착취하고 노조를 탄압하여 이루어진 성과라면 지나친 평가일까?  

과거 현대건설 사장으로 있으면서 노조탄압에 앞장섰던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는 747공약과 ‘부자되세요’라는 슬로건 등을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다. 국민들은 연 7% 성장에 4만 달러 시대, 세계 7대 부국의 꿈을 이명박이 만들어줄 줄 알고 열광하였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에 당선이 된 뒤에 국민들이 그렇게 반대하는 '4대강삽질'로 국민혈세를 날리고, 각종 방산비리의혹, 자원외교, 노동탄압, 친기업 정책 등으로 일관하면서 툭하면 ‘국격’을 내세웠다. 그를 통해 학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음으로써 이명박의 성장위주, 친기업, 노동탄압의 정책은 그대로 박근혜정부로 이어지고, 과거부터 권력자들과 뒷돈이 오가는 정경유착의 고리는 지속되었다. 재벌들의 곳간은 쌓여갔지만 노동자의 주머니는 얄팍해져갔다. 게다가 오히려 비정규직이 양산되어 고용불안에 시달리면서 부익부빈익빈의 사회구조는 더욱 확대일로를 걸어왔다. 

법외노조인 전교조와 공무원노조가 노동수준 말해주고 있어

87년 6월항쟁 이후 불어닥친 노동운동 진영의 사회적 진출과 민주화 운동은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결성으로까지 이어진다. 이미 4.19교원노조가 5.16쿠데타 세력에 의하여 짓밟히고 난 지 실로 30년 만에 이루어진 교사들의 ‘노동자’선언인 것이다. 당시 필자는 서울의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전교조 바람을 피해갈 수 없었다. 교사들이 노조를 건설한다고 하니 교육부, 교육청, 학교장, 경찰, 정보부 등 전 국가조직이 동원되어 노조결성을 막기 위하여 별의 별 수단을 다 썼다.

우선은 이념 공세였다. ‘교사는 성직자다’, ‘교사는 전문직이지 노동자가 아니다’, ‘노조는 빨갱이다’라는 이념 공세로 몰아붙였다. 그런가 하면 주동자들은 잡아다가 감옥으로 보내고, 교장이나 교육관료들을 내세워 전교조에 가입한 교사들의 집을 찾아 부모나 가족을 협박하기도 하고, 감언이설로 꼬드기면서 전교조 탈퇴를 종용했다. 이런 이념 공세와 온갖 탄압을 통하여 당시 노태우 정권에서는 ‘학교에 전교조는 없다’고 선언을 한다. 그러자 교사들은 한겨레 신문광고를 통하여 ‘내가 전교조 조합원이요’ 하고 명단 공개를 한다. 그 숫자가 전국적으로 1만 명이 넘었다. 그러자 신문광고를 통하여 명단을 공개한 교사들에게는 장학사, 교장이나 교감 등 교육관료 등을 동원하여 집요하게 전교조 탈퇴를 강요하거나 회유를 하였다. 그래서 많은 교사들은 본의 아니게 탈퇴각서를 써야하는 아픔을 감수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끝내 탈퇴각서를 쓰지 않은 교사들은 파면, 해임 등으로 교단에서 쫓겨났다. 그렇게 해직의 길을 걸은 교사들이 1,600명 가까이 된다. 그들은 거리의 교사가 되어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참교육의 열망을 안고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노태우 정권에 이어 들어선 김영삼 정권에서는 이들에게 형식적이지만 전교조 탈퇴각서를 쓰게 하여 다시 교단으로 돌아오게 했다. 하지만 그 중 일부는 끝까지 탈퇴각서를 쓰지 않고 교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김영삼 정권에 이어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교원노조가 법적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 단체행동권이 없이 단결권과 단체교섭권만 부여된 절름발이 노조지만 그래도 합법의 지위를 보장받아서 정부나 교육청 등에서는 전교조에게 사무실을 제공하고. 전교조 간부들 중에는 노조 전임자가 되어 전교조 일을 볼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그러던 그 전교조에 박근혜 정권은 해고된 교사를 조합원으로 둘 수 있는 전교조 규약을 문제 삼아 이를 개정하여 해고자들은 조합원으로 받아들일 수 없도록 요구한다. 전교조는 이를 거부한다. 그러자 전교조에서 합법 교원노조로서의 지위를 뺏어버려 비합법의 길로 내쫓는다. 합법적 지위가 없다고 하며 교섭은 고사하고 정부나 교육청 등이 제공하는 사무실, 전임자 발령 등의 혜택도 회수를 해버린 것이다. 지금은 전교조가 다시 비합법에서 합법노조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면서 제2의 합법화 투쟁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때 전교조 합법화의 길을 열겠다고 공약을 했지만 임기 절반을 넘긴 현재까지도 합법의 길을 열지 않고 있다. 이는 전교조만의 문제가 아니라 공무원노조의 현실 또한 그렇다. 

▲ 강남역 CCTV 철탑 아래 천막. ⓒ프레시안(최용락)


ILO가 권고하는 수준도 인정 못하는 한국 

우리나라는 이제 경제력은 3만 불이 넘는 선진국 수준으로 도약을 했는데 노동지수는 세계에 가장 바닥을 기고 있는 노동후진국, 노동탄압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에다 노조 가입률 10% 대로 OECD 평균 가입률 29%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프랑스라든가 북유럽 여러 나라는 물론이고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이 노조 가입률이 50%를 웃도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노조 가입률이 얼마나 저조한가를 알 수 있다.

UPR(국가별 인권상황 정기검토,Universal Periodic Review)은 유엔이 4년6개월마다 회원국들의 인권 상황을 검토하는 제도다. 2008년 처음 시작해 지금까지 세 번에 걸쳐 열렸다. 유엔 내 독립기구나 전문가그룹이 아니라 회원국들이 상호간 인권상황을 들여다보고 국제기준에 못 미친 것이 있을 때는 이행하라고 독려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UPR이 2013년 우리 정부를 향해서 ‘ILO 결사자유위원회’의 핵심적 협약을 비준하라고 권고를 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국내 법령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수용하지 않았다.  

ILO의 180개의 협약 중 중요하다고 꼽은 핵심협약은 8개다. 1991년 ILO에 가입한 한국은 그 8개 중 아직까지도 4개를 비준하지 않았다. 강제노동 철폐 협약인 29호와 105호와 결사의 자유 협약인 87호와 98호이다. 이 4개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나라는 중국과 한국, 마샬제도, 팔라우, 통가, 투발루 등 6개국뿐이다. OECD 가입국이면서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속하는 한국이 ILO의 기본협약조차 가입을 하지 못하는 노동후진국이라는 현실을 두고 이명박 같은 비리 대통령이 ‘국격’ 운운하는 것이 참으로 낯 뜨거운 일이 아닌가? 

그 중 87호·98호 협약은 ILO의 정신과 직결돼 있다. 노동자의 단결권과 관련되어 있는 협약인데 정부는 “국내법과 충돌한다”며 협약의 비준을 미뤄온 것이다. 국제협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는데, 우리나라의 노동조합법과 교원노조법·공무원노조법에는 이와 충돌하는 조항이 여럿 있는 것이다. 전교조가 해고된 교사도 조합원이 될 수 있다는 전교조 규약을 문제 삼아 합법노조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취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대선 공약으로 전교조의 합법화를 공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임기 절반을 넘긴 현재까지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팽개쳐 두는 것은 촛불혁명에 의하여 탄생되었다는 문재인 정부가 얼마나 반노동적인 정책을 취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지난 해 뜨거운 6월 10일부터 강남역 사거리에 있는 교통폐쇄회로 CCTV 철탑에서는 삼성해고 노동자 김용희 씨가 삼성을 향해 ‘해고를 철회하고 원직복직시켜라’, ‘이재용을 구속하라’고 외치면서 이 엄동설한의 겨울까지도 몸도 제대로 가누기 힘든 좁은 철탑에서 고공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경제대국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세계 초일류기업임을 자처하고 있는 삼성의 노동자였던 김용희 씨나 철탑 밑에서 그를 지원하고 있는 이재용 씨는 모두 삼성에서 노조 결성 운동을 했다고 감시, 폭행, 납치, 감금 심지어는 간첩 등의 누명을 쓰는 탄압을 당하다가 결국은 부당해고를 당하고, 가족들의 생계조차 어려운 고통을 이어온 것이다.

삼성과 같은 재벌기업이 이런 식으로 노조 결성 자체를 할 수 없도록 탄압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권력과 공권력의 비호를 받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한국의 노동지수가 세계에서 바닥을 치는 이유는 역대 정권들이 정경유착에 의한 친재벌 정책, 노조 적대정책을 고수해왔기 때문이다. 삼성 등 우리나라의 유수한 재벌기업들이 역대 정권에 거액의 정치자금을 대고, 권력과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노동부, 검찰, 사법기관들도 툭하면 ‘국민경제’ 운운하면서 재벌, 대기업 봐주기를 해왔기 때문인 것이다. 많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목숨을 끊고, 많은 노동자들이 고공에 올라가 몇 백일 씩 농성을 해야 하는 이런 나라를 ‘노동후진국’이라 부르기보다 오히려 ‘노동야만국’이라 불러야 하지 않겠는가?

2016-17년 촛불혁명 때 적폐청산을 외치면서 제1구호가 ‘박근혜 탄핵, 구속’이었고, 제2구호가 ‘재벌 해체’와 ‘이재용 구속’ 등이었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권력 비리와 재벌 비리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우리가 ‘국격’을 운위한다면, 국가의 구석구석이 정의로워야 하고 노동자들은 노동권이 보장되고 사회, 경제적 약자들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이 갖춰진 나라일 때 경제, 문화, 정치, 사회적으로 국격을 갖춘 선진사회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경찰, 군인이 노조하는 유럽 국가



지난 해 10월 초 프랑스에서는 경찰관들이 근무여건 개선과 충분한 연금 지급 등을 요구하며 2일(현지시간) 파리 시내에서 2만 7천 명이 모여 대규모 장외집회를 열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나라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경찰관이나 소방관 등은 노조를 할 수 없도록 법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지하철이 파업이나 태업을 하여 준법투쟁만 하여도 시민들이 정부나 지자체보다 노조를 비난하기 일쑤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철도가 파업을 하면 오히려 시민들이 나서서 지지하는 박수를 보내고 불편함을 스스로 감내하면서 파업하고 있는 철도노동자들을 돕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대부분 시민들은 자신들도 다 어느 노조 조직에 소속되어 있는 노조원들이기 때문에 연대감이 작용해서 그런 것이다. 그런가 하면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은 시민혁명과 노동자 투쟁, 사회주의 운동 등을 통하여 노동자들이 단결하고, 노동자들이 정당을 결성하여 정치적으로 진출을 하거나, 특정 정당과 연대를 통하여 정치적으로 그들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온 빛나는 노동운동의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또 한편으로는 학교 교육을 통해서 노동의 소중함, 노동자의 권리 등에 대한 학습을 하면서 성장해온 시민의식이 성숙하기 때문이다.

유럽 여러 나라들은 노동자가 기업에 고용되면 일정 기간 안에 의무적으로 노동조합에 가입을 해야 하는 ‘유니언숍’ 제도라든가 ‘에이전시숍’이라 하여 꼭 노동조합에 가입을 강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액의 조합비를 납부하도록 하거나, 사용자가 노동자를 고용할 때는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것을 고용조건으로 하는 ‘클로즈드 숍’ 제도 등 노동자들이 조합가입이나 활동을 거의 의무적으로 해야만 하는 제도가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노동운동이 활발하다. 우리나라와 같이 ‘오픈 숍’ 제도가 되어 노동조합 가입여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제도를 채택하는 나라들은 많지 않다. 

독일에서는 장관도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다. 장관도 국가에 고용된 피고용자라고 인식한다는 뜻이다. 보수정치인인 메르켈조차 총리가 된 뒤에 “노동조합원 자격을 유지하면서 조합비를 계속 내고 싶습니다.”라고 할 정도로 ‘노동자 계급’의 범위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정서가 강한 것이다. 프랑스에는 판사노조와 변호사노조도 있다. 한국의 노동조합 간부들이 프랑스에 있는 본사에 ‘원정 투쟁’을 갔을 때 이들이 법률 자문을 해주어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선진국에는 경찰노조와 소방관노조가 있고 심지어 스웨덴, 덴마크,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에는 군인노조도 있다. 독일에서의 군인노조는 해외파병을 반대했고 결국 의회에서 파병 동의안이 부결되기도 했다. 네덜란드 군인노조는 비리 혐의가 있는 사령관의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한다. 우리나라 같으면 꿈같은 이야기다. 그렇지만 꿈은 꾸어야 이루어진다고 하였으니 노동선진국의 노동문화를 우리도 하루속히 도입하여 입법할 수 있도록 많은 노동자 출신들이 국회 등 정치권에 진출해야 된다.  

노동자 정치 세력화는 요원한 길인가? 

한국노총위원장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인 이용득 의원이 총선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지난 11월 25일자 한겨레 신문에 밝힌 것을 보면 “민주당은 노동자에 온정만 있고 정책의지는 없다”고 하면서 “지금 민주당은 아무것도 안 해보고 ‘노동이 죄인’이라고 뒤집어씌운다. 2년도 안 된 주52시간제를 누더기로 만드는 것부터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자신은 “노동회의소 설치를 통하여 전문가 그룹이 모여 노동자 전체의 권익 향상을 도모하고 싶은데, 문대통령의 공약사항임에도 청와대나 당이 관심이 없다. 민주당 구성원들의 노동에 대한 철학이 부재하다. 성장률 둔화든 양극화든 모두가 노동계 탓만 하는데 문대통령도 다르지 않다. 표만 의식한다”고 하며 많은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친노동자 정당은 정의당을 비롯한 소수당과 의회에 진출하고 있지 못한 몇몇 원외 정당들이 있을 뿐이다. 필자가 보기에 더불어민주당조차도 친노동자 정당이 아니다. 유럽에서 본다면 현재 더불어민주당 정도 수준의 정책을 내걸고 있는 정당들이 우파 정당이고 정의당 정도가 중도 정당쯤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한당과 같이 노골적으로 노동자들을 적대시하고 친자본, 친기업적인 정책과 정치활동을 하는 정당들이 계속하여 집권을 해왔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노동현실이 이렇게 열악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들 중 노동조합에 가입해서 활동을 해본 국회의원이 몇 명이나 될까? 정부의 고위관료나 판검사, 변호사 등 법조인, 군인, 경찰 등 공직자 출신들, 학생운동권 출신에서 정치권으로 진출해 있는 정치인, 언론인 출신, 교수, 사학 2세들, 기업인 출신, 지역 유지 등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들로서 소위 ‘노동자의 땀으로 얼룩진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정치인들이 얼마나 될까? 아주 소수일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노동자의 고통을 알면 얼마나 알겠으며, 안다고 한들 마음에서 우러나서 노동자의 편에 서서 정책을 펼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노동자들의 고통과 절실함을 온몸으로 부딪혀보지 않은 자들의 한계일 뿐이다.

노동 존중 교육과 학습이 이루어지는 사회가 필요하다 

촛불혁명에 의하여 탄생되었다는 문재인 정부에서 조차도 ‘노동자’라는 용어를 자신 있게 사용하고 있을까? 노동절을 ‘근로자의 날’이라 명명하고 노동조합법을 ‘근로기준법’이라는 등 해방 이후 남한 사회에서 ‘노동’이라는 말은 거의 금기어에 가깝다. 전교조 결성을 할 때도 “어떻게 너희들이 ‘노가다’라고 스스로 자신의 신분을 낮추려 하느냐?”는 비아냥거림을 많이 들었다. 우리 학생들이 들고 공부하는 교과서에서 ‘노동’이라는 용어는 거의 볼 수 없다. 죄다 ‘근로’라는 용어로 표현이 되어 있다. 이들이 자라면 대부분 노동자가 되어있을 텐데 말이다.

초중고 등 국민 보통 교육 기관에서 이제는 ‘노동’에 대한 교육과 학습이 이루어져야 한다. 내가 품을 팔아서 생계비를 벌고, 또 세상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과 용역 등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이 ‘노동’이며 그 ‘노동’이 세상을 발전시키고 유지하며 세상을 창조해 나가는 거룩한 일이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과 학습이 되어야 한다. 노동자가 당당하고 존중받아야 하고 세상을 만들고 지탱해가는 힘의 원천이라는 것을 학습해야 한다. 이러한 노동자로서, 권리를 행사하고 노동을 통하여 사회를 발전시키고 봉사하면서 자아를 실현해 나가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인가를 보통교육 기관인 초중등 학교에서 학습되어야 하는 것이다. 아마 이런 소리를 한다고 한국경총이 들으면 또 의식화 교육, 좌파교육 등 온갖 색깔을 덧칠하려들지 모를 것이다. 하지만 과거 ‘노조’하면 빨갱이로 몰던 반공시대도, 친미일시대도, 개발독재시대도, 일방적 친기업 정책만을 강요하던 시대도 지나가고 있다. 세상은 자유, 평등, 인권, 생존권, 노동권, 환경권 등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향해 진보하고 있다. 이를 거스르기에는 시민의 의식이 많이 진화하고 있다. 요즘 각종 선거나 여론조사에서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독일의 시민교육인 ‘보이스텔스바흐협약’이 우리나라에서도 활성화가 된다면 자연스럽게 ‘노동’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보이스텔스바흐협약’식 교육은 현실정치와 사회문제를 학습의 의제로 가지고 와 열띤 토론을 하면서 현실정치와 사회에 대한 올바른 가치판단을 할 수 있는 안목을 키워주는 교육방식이기 때문에 노동문제와 관련된 의제를 가져와서 학교 교실에서도 학습이 이루어질 날도 멀지 않으리라 본다. 이런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장차 사회를 이끌어갈 성인이 되어 그가 기업인이 되든지 노동자가 되든지 정치인이 되든지 평범한 시민이 되든지 사회 곳곳에서 활동해 간다면 그런 사회는 노동 친화적인 문화와 정책, 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사회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삼성이 앞장서서 노동조합법을 존중해야  

삼성은 이병철 창업주가 무노조경영 원칙을 내세워 그의 아들 이건희를 거쳐 현재 이재용에 이르기까지 무노조 원칙을 고수해왔다. 강남역 사거리 철탑에서 싸우고 있는 김용희 씨나 그를 지원하며 함께 싸우는 이재용 씨는 삼성 계열사 내에서의 노조 설립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정책을 집요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삼성의 무노조경영 원칙에 의하여 희생된 해고 노동자들이다. ILO 기본 협약조차 비준하지 못하는 우리 정부나 삼성이나 노동탄압 쌍생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정부가 전교조나 공무원노조를 탄압하는 것이나 삼성이 국내는 물론이고 베트남, 영국 등 해외에서도 노동탄압을 하여 빈축을 사고 있는 것은 글로벌 일류를 자처하는 기업의 명예를 걸고서라도 이제는 청산해야 한다. 머지않아 정부도 ILO 기본협약을 비준할 것으로 본다. 삼성의 여러 계열사들 중에는 아직은 미미하지만 하나 둘 노조가 결성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근래에는 상급단체를 한국노총으로 하는 노조가 탄생하는 소식도 들려와서 이제 이재용 시대에는 ‘무노조경영’이라는 말은 사라지겠구나 하는 희망적인 기대를 해 본다.  

이제 세상은 변하고 또 변해서 과거 일제하 농경시대에서부터 출발한 삼성재벌이 산업화시대를 거쳐 정보화시대를 선도하면서 국제 일류 기업으로 도약했으면 그 명성에 걸맞게 노조를 인정하고 대화의 파트너로 삼아 삼성노동자들과 함께 노사협의도 하면서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이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다. 

기업이 위험 부담을 감수하면서 자본을 투자하고 노동자들을 고용해서 사업을 하는 것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자본의 논리도 중요하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 부가가치를 창출해 내는 노동자들과 그 열매를 나눌 때 기업인은 진정한 보람을 느끼고, 역사적으로 현실적 사회적 존재감이 있지 않겠는가? 

어쨌거나 삼성은 창업주부터 시작하여 3세 경영인까지 거치면서 우리 사회발전에 기여한 면도 있지만 우리사회로부터 엄청난 빚을 지고 있다. 삼성이 그 동안 정경유착이라든가 각종 탈법, 불법, 비리 등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아온 것도 부인 못할 것이다. 더구나 무노조경영은 물론이려니와 법인세 감면 해택, 싸구려 전력요금을 갖고 기업을 할 수 있었던 점, 각종 세금은 제대로 내었는지 등에 대해 많은 국민들은 삼성을 고운 눈으로 보고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전 세계 어느 나라가 회사를 창업하고 나서 3세까지 경영권을 세습하는가? 선진 외국에는 이런 사례가 거의 없다. 

이제 삼성의 실질적인 경영권을 갖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에게 권고하고 싶다. 이 추운 겨울날 철탑 위에 올라가서 목숨을 걸고 생존권 투쟁을 하고 있는 김용희 씨를 비롯하여 이재용 씨는 물론이고, 그 동안 삼성 계열사에서 부당하게 해고되었다고 외치는 노동자들과 마음을 활짝 연 대화를 통하여 그들의 명예를 회복해주고, 그들이 우리 사회를 오늘날까지 있게 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대승적 입장에서 통 큰 결단을 하기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재용 부회장을 만나면 진지하게 이런 권고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빌게이츠를 생각한다. 경주 최부자, 제주 만덕할머니, 유한양행의 유일한 회장 등 우리 사회에서 이를 실천한 많은 분들을 생각한다. 그들 삶의 가치를 생각하면서 삼성 이재용 부회장도 시대와 호흡을 하면서 통 큰 결단을 한다면 역사에 두고두고 칭송을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