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칼럼

그들의 오늘 저녁 식사 메뉴는 무엇일까

일취월장7 2019. 12. 3. 17:30

그들의 오늘 저녁 식사 메뉴는 무엇일까

[삼성공화국, 어디로 가나] 강주룡에서 김용희까지
2019.12.03 14:23:04

서른 살의 강주룡이 평양의 을밀대 지붕에 올라간 게 1931년 5월 28일이다. 평양 평원 고무공장 노동자였던 그녀는 '양철지붕 밑에서 화로를 안고 비지땀 흘리며, 고무 냄새 때문에 늘 코가 얼얼하고 머리가 아픈' 지독한 노동환경에도 일본인 사장이 임금을 깎겠다고 하자 파업을 시작했고 12일 뒤 경찰에 의해 강제해산 당한 다음 혼자서 을밀대 지붕에 올라 고공농성을 한 것이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두어 줄짜리 기록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체공녀 강주룡>을 일전에 읽으면서 비교적 상세히 알게 되었다.

서간도와 평양을 오가며 식민지 여성의 삶을 오롯이, 막막하게 살아냈던 강주룡. 최소한의 생존형 기본 권리를 얻기 위해(이런 정도도 극도의 투쟁을 통해서만 얻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는 사실. 일제 식민지 치하니까 그랬겠지 하는 사람 있을 것이다) 허공의 고립과 고독을 선택한 사람. 

나는 을밀대 지붕에서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고공농성을 했던 그녀의 마음을 생각해보곤 한다. 그 어색한데다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곳에서 그녀의 두 눈에는,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개인사가, 삶의 매순간 번쩍였고, 괴로웠고, 우스웠고, 눈물 나던 고비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을 것이다.  

부조리에 대항하기 위해 자신을 끝까지 밀어붙인 자의 눈에 보이는 풍경들이 또 있었을 것이다. 멀리 흘러가는 대동강, 그 너머 아스라이 멀어지는 산들, 천연덕스러운 마을 풍경, 신작로와 키 낮은 집들,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걸어가는 소, 이 시간에도 화롯불에 비지땀 흘리며 고무냄새를 맡으며 어질머리 흔들고 있을 동료 노동자들. 그리고 '니뽄도'를 철컥거리며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일제 순사와 한국인 '꼬봉'들.  

울었을까.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막판까지 밀고 갔다는 것은 그거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뜻했고 그 지경까지 간 사람은 일순 처연해지는 법이니까. 가장 용감한 사람은 극도로 지친 사람이니까.  

그저 삶을 정리해봤을 것이다. 일찍 죽은 남편과 시댁과의 불화, 딸을 가축만도 못하게 처리한 아버지, 눈물의 어머니. 그리고 이제 앞으로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들. 나는 그저 우리가 고생해서 일한 만큼만 임금을 달라고 요구했을 뿐인데... 우리 회사가 먼저 임금을 깎이면 다른 공장도 깎일 게 뻔해서 한 것뿐인데... 이제 나는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되는 걸까... 내 삶은 뭘까, 하는 것들. 지금 우리도 툭하면 하게 되는 그런 상념들.


거기다가, 낯선 높이가 주는 이질감과 공포, 백척간두에 혼자 서있는 고립감까지. 글쎄 누구라도 그러지 않겠는가. 책임감이 아무리 커봤자 결국 우리는 여덟 뼘 육신을 가진, 밥 먹고 물마시고 똥오줌 눠야하는 사람이니까.  

어쩌면 그녀는, 새의 눈에는 세상이 이렇게 보였겠구나, 구름은 이렇게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구나, 흘러가는 강물과 푸른 산을 보고 있으면 세상 사는 게 아무것도 아닌데, 이대로 훨훨 날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도 했을 것이다.

결국 강주룡은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고 단식까지(단식과 농성은 약자의 전유물인 것이다. 쥔 자들이 함부로 흉내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최후의, 유일한 무기를 빼앗는 짓이니까) 감행했던 그녀는 결국 다음해, 서른하나의 나이에 죽는다.  

그리고 90년 뒤 또 한 명의 노동자가 25미터 높이의 교통관제용 철탑 위로 올랐다.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 씨. 그의 과거와 현재 상태, 대척점에 있는 삼성의 경영 행태와 기득권자들의 폭력에 대해서는 이 연재 시리즈에 자세히 나와 있으니 반복하지 않겠다.

▲ 김용희 씨. ⓒ연합뉴스


90년 전과 오늘. 식민지 조국을 바라보는 서른 살의 조선여자와 대한민국 국민인 초로의 남성. 단 한 번의 저항으로 목숨을 날려버린 젊은 여자. 인권유린과 납치, 감금, 성폭행 조작, 간첩혐의, 해고, 구속 같은, 평생 한 사람이 한번 당하기 어려운 것들을 모조리 뒤집어쓰고 있는 남자. 흐른 세월이 무색하게도, 무용하게도, 너무 닮은 두 사람.

그녀처럼 허공에 최후의 전선을 꾸린 김용희 씨도 그러기에 주룡의 생각을 되풀이 하고 있을 것이다. 탄생에서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 매 순간의 위험과 고난들. 사람의 몸으로 받아들이기 너무 크고 무서운 것들. 어쩌면 1982년 삼성항공 창원1공장에 입사를 하지 않았으면 인생이 바뀌었을라나, 도 생각할 것이다. 

그의 눈에 보이는 서울 강남 풍경. 끊이지 않은 중형자동차의 행렬과 늘어서 있는 럭셔리 상점들. 휘황찬란한 조명불빛. 그리고 저 멀리 한강과 아련한 산들. 울었을까. 그러지 않을 것이다. 고난의 끝까지 간 사람은 담담해지니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단 하나의 가치만 들고 있는 자는 용감하니까. 무서워지니까.  

야만과 폭력은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최악의 방식들이며 우리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종종 그것을 발견하곤 한다. 국가와 회사. 삶의 근본과 바탕이 되어야하는 대상에게 되레 인생이 말려 들어가버린, 90년을 사이에 둔 채 나란히 허공에 앉아 있는 두 사람.

강주룡은 세상을 떴고 김용희 씨는 위험한 상태이다. 나는 동시대 한 사람으로서, 파인텍 굴뚝 농성장 찾아갔을 때 들었던, 이런 농성을 하고 내려온 다음 찾아온다는 엄청난 멘탈붕괴와 공항장애가 걱정이 된다. 하지만 이는 그가 성공적으로 내려온 다음의 일이다. 그 전에 강주룡처럼 될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쓰는 날은 수능시험일이다. 첫 한파가 기습을 했다. 김용희 씨는 이제 엄청난 추위까지 참아내야 한다. 사람 몸으로 가능할지 모르겠다. 문득 드는 궁금증 하나. 이렇게 한 사람의 평범한 노동자를 목숨 건 고공농성자로 만들어버린 사람들의 오늘 저녁 식사 메뉴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