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칼럼

2030년, 미국제국이 무너진다?

일취월장7 2019. 11. 18. 16:16

2030년, 미국제국이 무너진다?

[프레시안 books] <대전환>
2019.11.18 15:57:27
"힘없는 외국인을 유린하는 데 익숙해진 미국은 이제 힘없는 자국민도 냉담한 눈길로 바라보게 되었다.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에 박수를 보낸 대중은 훗날 똑같은 고통을 당하게 되었다." (마크 트웨인)

북미 대륙의 서쪽 끝까지 뻗어나간 미국은 세계로 눈을 돌렸다. 필리핀에서 스페인을 내쫓은 미국은 무자비한 학살과 정보전으로 필리핀 게릴라를 압살해 아시아에 최초의 식민지를 건설했다. 필리핀 정복은 미국이 제국으로 우뚝 서는 시발점이었다. 미국의 행진에 열광하는 대중을 바라보며, 마크 트웨인은 절망을 읊조렸다. 그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훗날 중앙정보부(CIA)와 연방수사국(FBI)의 모태가 된 군사정보과가 필리핀 정복 10년 만에 창설됐다. 필리핀에서의 경험이 고스란히 이식돼 '첩자'를 감시한다는 명목 하에 자국민을, 훗날에는 광통신과 위성을 이용해 전 세계인을 감시하는 체계가 만들어졌다. 미국이 제국으로 성장함에 따라, 미국의 건국 이데올로기였던 자유와 민주주의는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제국주의는 억압을 기초로 한다. 자유와 민권에 바탕을 둔 민주주의와 양립하기 어렵다. 대영제국이 그랬고 프랑스도 그랬다. 제국기의 말, 비틀거리던 영국은 마우마우 폭동을 막겠다며 케냐인 1800여 명을 학살했다. 상당수 키쿠유족을 강제 수용소에 분리 수감했고, 고문을 일상화했다. 1971년 상반기 영국은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의 테러에 조직적인 고문으로 응수했다.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독립을 열망한 알제리민족해방전선(FLN)의 독립전을 진압하느라 3000여 명을 학살했다. 프랑스가 남베트남의 정치범을 가둬 고문하던 '호랑이 철창(고문 피해자의 비명이 호랑이 울음처럼 들린다고 해 이 같은 별칭이 붙었다)'은 악명 높았다. 식민지에서 프랑스의 자유와 민권은 통하지 않았다. 외부로 향하던 제국주의의 칼날은 곧 자국마저 겨냥했다. 제국이 퇴조하던 이 시기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민주주의가 크게 흔들렸다.  

미국이라고 다를 것 있겠는가. 미국 FBI는 슈타지가 그랬듯 자국민을 감시했다. 매카시즘에 희생된 이들이 차고 넘쳤다. CIA는 친미 동조자를 권력자로 만들기 위해 여러 나라의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공작에 앞장섰다. 제국주의가 미국의 독립과 민주주의 이데올로기를 해하고, 장기에 걸친 세계 지배로 인한 피로가 쌓이자 미국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막대한 군사비 지출에 가려진 황폐화한 공교육, 복지, 막대한 채무. 오늘날 우리가 바라보는 미국의 본모습이다.  

하지만 미국이 흔들린다고 해서 감히 미국제국이 무너지리라 예상하기란 힘들다. 아직 슈퍼파워로서 미국의 지위는 굳건하다. 위스콘신대 매디슨캠퍼스 석좌교수인 앨프리드 맥코이가 노년에 펴낸 <대전환>(홍지영 옮김, 사계절)이 논란거리가 가득한 책인 이유다. 맥코이 교수는 책에서 단언한다. '미국제국은 2030년경 무너진다.' 맥코이 교수에 따르면 이제 다시금 세계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미국제국이 쇠퇴기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작가는 제국은 반드시 망하기 마련이라고 강조한다. 인류 역사에서 언제나 그러했듯 말이다. 

"하버드대학 역사학 교수 니얼 퍼거슨은 역사상 70개의 제국이 존재했다고 말한 뒤 이렇게 꼬집었다. "아직도 미국 '예외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제국을 연구하는 역사가는 이렇게 대꾸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나머지 69개 제국만큼 예외적이라고.""

미국이 세계 최강의 국가로 우뚝 서던 해인 1945년 태어난 맥코이는 박사 학위 준비 중 우연히 베트남전쟁에 파병된 미군 병사들의 헤로인 중독 문제를 연구하다 CIA를 주축으로 한 미국 정부가 동남아시아에 가한 첩보전의 대가가 병사들을 휩쓴 약물 유통이었음을 확인했다. 제국 질서 확립을 위한 정보전의 대가가 자국민의 마약 중독이었던 셈이다. 그 내용을 담은 <동남아시아 헤로인의 정치학(The Politics of Heroin in Southeast Asia)>는 CIA가 출판을 금지하려 시도하기도 했다. 미국은 라틴아메리카 정치 개입 과정에서도 자국 내 마약 유통을 '협상'했다. 오늘날 미국 사회에 만연한 마약중독 문제는 미국제국의 발전과 결코 떼놓을 수 없다.  

제국주의 질서를 떠받치는 힘 

책은 크게 세 부문으로 나뉜다. 1부 '미국제국의 이해'는 미국이 제국으로 성장한 과거를 크게 훑는다. CIA의 첩보전과 마약의 상관관계 등의 내용이 이 대목에 나온다. 미국이 제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손상됐는가를 1부는 조명한다. 2부 '미국의 생존 전략'은 미국제국을 떠받치는 주요 힘을 정리한 내용으로, 시기적으로는 오바마 행정부까지를 주로 언급한다. 3부 '미국 쇠퇴의 역학'은 이 책의 주요 홍보 문구이자, 작가의 예측이 포함된 근 미래상을 담았다.  

결론에 도달하기 전, 미국제국이란 말이 성립하느냐부터 짚어야 한다. 작가의 말을 인용하자면 "제국(Empire)은 강대국이 직접 통치(식민지)나 간접적(군사적, 경제적, 문화적) 영향력 행사를 통해 다른 이들의 운명에 지배력을 행사하는 글로벌 거버넌스의 한 형태"다. 미국은 정확히 제국이다. 오늘날 미국은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WTO) 등의 국제경제기구와 유엔을 통해 세계 질서를 주도적으로 짜고 있다. 비교조차 무의미한 수준의 군사력으로 전 세계에 국가 '방어'를 위한 군인을 파견해놓았다. 달러화가 국제 기축 통화라는 사실보다 더 적확하게 미국이 제국임을 설명해주는 사례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제국주의 질서에 익숙하다. 통일신라 이후 한반도는 당대 세계 최강의 슈퍼파워였던 대당제국이 주도한 중화 질서에 편입했다. 이후 한반도는 오랜 기간 중국에서 태동한 제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20세기 들어 한반도는 대일본제국의 직접 통치령, 곧 식민지가 됐다. 일본이 무너진 후 한반도는 20세기 세계 질서를 쓴 미국제국이 주도한 자유 진영의 질서에 들어갔다. 지금 한국의 번영을 (과도한 지출이라는 주한미군주둔비 논란과 별개로) 미국의 핵우산과 떼어놓고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맥코이 교수는 양차 세계대전을 통해 100년간 번영한 대영제국이 퇴조하고, 종전을 통해 새로운 제국으로 올라선 미국이 제국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대내외적으로 이용한 강권의 관철을 비판적으로 되짚는다. 2부 '미국의 생존전략'에 집중 기술된 미국제국의 주요 통치 전략은 주로 아들 부시~오바마 행정부 시기를 조명한다. 이들 정부에서 미국은 감시기구, 고문, 압도적 군사력을 이용해 제국에 도전하는 이들을 짓밟았다. 모두 미국이 세계 최초로 발명한 것은 아니지만, 세계 어느 나라보다 고도화한 통치 수단이다. 스노든을 통해 전모가 일부 드러난 미국의 감시 기술을 예로 들자면 이런 식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NSA(미국국가안전보장국)의 디지털 프로젝트를 오히려 확장하여 미국 패권의 무기로 삼았다. (...) 오늘날 NSA는 복호화 기술과 인터넷 데이터 허브 감시를 결합하여 3만7000명의 직원이 전 지구를 감시하는, 다시 말해 요원 1명이 세계 시민 20만 명을 감시하는 고효율을 자랑한다. (...) 2013년 4월, NSA의 국내 '적극적 감시 대상'은 11만7675명에 달했다. 이는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칠 만한 인사 대부분을 포함하는 숫자다. (...) NSA는 동맹국들에 관한 정보를 캐내기 위해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유럽연합 정상회의 본부를 감청하고, 뉴욕의 유엔 유럽연합 대표부 사무실과 워싱턴 소재 대사관 등 38곳에서 스파이 활동을 벌였다." 

저 감시 대상에는 당연히 한국 최고위직 정치인도 포함된다. 기실 미국은 국제법을 초월한 존재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목 하에 미국은 드론을 띄워 아프가니스탄을 위시한 중동의 민간인을 마구 학살하고 있다. 사실상 재판 없는 즉결 처형이 버젓이 이뤄지는 셈이다. 오직 미국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책에 자세히 언급된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은 이미 한국에도 익히 알려진 만큼, 구체적 설명이 필요하진 않을 듯하다. 지난해 미국의 국방비는 7170억 달러(약 840조 원)로 내년 한국 정부의 국가예산안보다 300조 원 이상 많다. 전 세계 국방비의 절반 가까이를 미국 혼자 쓴다.  

▲ 지정학을 낳은 매킨더의 '세계섬' 이론. 매킨더는 유라시아를 세계 핵심 섬으로 정의했고, 특히 핵심 지역을 '심장지대'라 명명했다. 매킨더는 이 심장지대를 통제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하리라고 전망하고, 대영제국으로 하여금 심장지대의 지배자가 나타나는 걸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reddit.com


세계섬을 누가 차지할 것인가 

미국이 이처럼 제국의 지배력 유지를 위해 무자비한 수단을 서슴지 않는 이유를 맥코이 교수는 지정학에서 찾는다. 약 110년 전 영국의 핼퍼드 매킨더로부터 태동한 '세계섬' 이론, 곧 유라시아대륙의 지정학적 힘과 관련 있다. 일본과의 무역 갈등 이후 여러 외교 전문가가 언급한 그 지정학적 변화를 작가는 책 첫머리에서부터 언급한다. (☞관련기사: 지구적 관점에서 본 일본은, 끝까지 가기로 마음 먹었다 

매킨더의 이론은 간단히 말해 세계섬인 유라시아대륙의 심장지대인 페르시아만에서 시베리아해에 이르는 지역을 지배하는 국가가 세계 유일의 슈퍼파워가 된다는 이론이다. 유라시아대륙에는 세계 인구의 75퍼센트, 세계 자원의 75퍼센트가 몰려 있고 세계 총생산량의 60퍼센트가 집중됐다.  

매킨더 당시 대영제국은 해양국가였다. 국방비에 최소한의 비용을 투자한 대영제국은 압도적 해군력에 기반한 기동력으로 세계섬을 통제했다. 첫 가상의 적은 러시아였다. 매킨더 당시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연결했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세운 영국에 유라시아 내부를 연결한 러시아가 독일과 손잡는 건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영국은 일본과 손잡아 극동에서 러시아의 해양 진출을 막고, 유럽에서는 프랑스와 손잡고 러시아의 크림반도 진출을 막았다.  

양차 대전의 종전 후 영국으로부터 제국의 지위를 물려받은 미국은 더 적극적으로 세계섬 통제에 관여했다. 극동에는 일본이라는 핵심 병참기지를 얻었고, 이어 한반도 남부에까지 군사기지를 전진 배치했다. 태평양 통제를 위해 필리핀-오스트레일리아로 이어지는 방어시설을 설치했고, 중동에는 친미 독재정권을 세웠다. 유럽에는 나토(NATO)가 건재했다. 미국은 이들 하위 동맹국에 배치한 미군과 강력한 소프트 파워로 소련 제국의 세계섬 통일을 막아냈다. 20세기 말에는 드디어 유일무이한 최강의 제국이 됐다. 맥코이 교수의 말처럼, 유라시아대륙의 양 끝을 이처럼 강력하게 틀어막은 존재는 미국 외엔 없었다. 

퇴조하는 미국제국 

이제 미국은 육해공뿐만 아니라 사이버사령부, 우주사령부까지 둔 세계 유일의 나라다. 우주에서도 전쟁 준비를 하는 나라는 오직 미국뿐이다(이제 중국이 뒤따르고 있다.). (☞관련기사: 미국은 왜 전쟁을 하는가?)  

이런 미국제국이 무너진다는 말은 짐짓 너무 황당해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맥코이 교수는 여러 요인을 든다. 주요 변수로 우선 꼽을 수 있는 건 중국이다. 최근 중국 경제가 고도성장의 끝에 다다르고, 가계부채 비율이 빠르게 치솟으며 홍콩을 위시한 여러 지역에서 저항의 움직임이 커지는 등 내부적 걸림돌에 부딪히는 기색이 보이지만, 아직 세계 경제 전문가들은 2030년대 중국 경제가 미국을 제칠 것으로 내다본다. 최근 아디다스와 나이키의 자동화 공장 폐쇄에서 드러났듯, 이른바 '제4차 산업혁명'도 미국의 쇠퇴한 제조업을 되살리기는 어렵다. 세계의 제조 엔진이자 세계 최대 소비시장이 된 중국은 그간 쌓아온 역량을 바탕으로 첨단 산업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오늘날 중국은 유일하게 양자통신위성을 쏘아올린 국가고, IT 혁신역량에서도 미국을 추월한 나라가 됐다. 책에 따르면 "2009년 미국의 우주 전문가가 지적했듯이 '중국의 핵심 우주 과학자 집단은 현재 은퇴 시기에 이른 미국과 러시아의 우주 과학자 집단보다 20년가량 젊고' 따라서 베이징은 '날로 불어나는 젊고 재능 있고 의욕적인 우주 과학자 풀'을 확보했다. 2030년경 미국은 심각한 과학 인력 부족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미래 우주 전장에서도 미국이 패할 징조가 이미 보이고 있다. 

중국의 자신감은 시진핑의 새로운 국가 전략 일대일로(一帶一路)에서 구체화됐다. 맥코이 교수는 일대일로를 통해 중국이 세계섬을 하나로 잇는 절차에 착수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중국의 철도를 유럽 끝까지 잇는 프로젝트에는 독일과 러시아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2014년 10월, 중국은 2300억 달러를 들여 세계에서 가장 긴 고속철도 노선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이 실현되면 베이징에서 모스크바까지 7000킬로미터 거리를 단 30시간 만에 주파하는 초고속 열차가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를 것이다."

중국은 미국이 망쳐놓은 중동에도 적극적으로 손을 뻗고 있다. 페르시아만에서 불과 600킬로미터 떨어진 파키스탄의 과다르에는 중국의 대형 항만이 들어섰다. 이곳을 통해 중동의 원유가 중국의 신장위구르자치구까지 곧바로 들어온다(중국이 인권 탄압 논란에도 이곳 시민을 무자비하게 통치하는 이유를 이 국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미 일대일로에 들어선 아프리카 주요 국가는 중국 경제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동아프리카 적잖은 국가의 주식이 쌀로 바뀌고 있다.  

미국이 중국의 세계섬 통일을 가만히 보고 있지는 않았다. 맥코이 교수는 부시가 망쳐놓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회복하리라는 기대와 달리 오히려 미국의 정보 통치를 강화하는 데 몰두한 오바마 행정부가 행한 전략을 대표적 사례로 꼽는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다. 오바마는 한국, 일본을 포함한 극동 지역과 동남아시아, 태평양 국가를 미국과 경제공동체로 연결해 유라시아의 우랄산맥 동쪽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대폭 강화하려 했다. 세계섬 통일이 이뤄지는 걸 막고, 미국이 중국과 유라시아를 양분하려는 계획이었다. 오바마는 아울러 유럽 역시 미국과의 자유무역 네트워크에 넣는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는 실패로 돌아갔다.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첫 주에 곧바로 TTP를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유럽은 브렉시트에서 드러났듯, 이제 자체 분열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20년 간 이어진 국제 자유 무역의 폐해가 컸음이 명백해지자, 그에 분노한 대중이 세계 곳곳에서 반세계화에 동조한 상황에 오바마 홀로 추진한 경제 통합 정책이 성공하기란 애초에 어려웠다. 

오바마가 중동보다 중시했던 아시아를 오히려 하나로 묶는 건 중국이다. 최근 인도를 제외한 15개국이 원칙적 합의에 이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이끈 건 베이징이다. 미국이 빠진 태평양 국가들이 거대한 자유무역 블록을 만들기로 합의한 사실에서 미국이 받아들일 건 이것이다. 심지어 일본과 한국, 오스트레일리아와 같은 전통적 우방마저 중국이 주도하는 경제 질서에 찬성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전통 우방이었던 필리핀은 두테리트 집권 후 곧바로 중국에 머리를 숙였다. 필리핀 바로 코앞의 남중국해에서 중국은 난사군도에 대규모 군사 시설을 배치했다. 미국은 속수무책으로 이를 바라보았다. 

▲ 트럼프 행정부는 쇠퇴하는 미국제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외부로 향한 관심을 접고, 고립주의 노선을 타고 있다. 이른바 '동맹'에 일방적으로 미국이 가하는 태도는 명백히 결별 선언에 가까워 보인다. ⓒAP=연합뉴스


대전환 시기, 미래는? 

외부의 도전자(중국)에 더해 미국 스스로도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다. 맥코이 교수는 지나치게 커진 국방비 부담과 미국 국내 경기 침체의 가속화 등으로 인해 미국이 거대 제국을 계속 유지할 수는 없으리라고 내다본다. 기실 미국제국이 퇴조하고 있다는 지적은 이미 미국 정보기관 내부에서도 나온 바 있다. (☞관련기사: 美정보기관 보고서 "미국의 질서 강요는 실패할 것") 다만, 이 책이 말하는 '미국제국의 몰락'이 미국의 패망을 말하는 건 아님을 인지해야 한다. 미국의 제국주의 질서가 무너진다는 뜻이다. 맥코이 교수는 미국제국이 무너진 뒤에도, 미국은 역내 패권국으로 남으리라고 전망한다.  

맥코이 교수의 주장에서 가장 주목할 대목은 미국제국이 2003년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지적이다. 부시가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을 이어가던 때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수렁에 미국이 발을 들이면서 미국제국의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자유와 민주주의는 허구였다. 강력한 무력으로 중동을 더 엉망진창으로 만들면서도, 미국은 중동에서 패배했다(자세한 내용은 책의 3장 '비밀공작의 지하세계'에 수록돼 있다.). 결국, 트웨인이 우려한 대로 제국이 바깥으로 내민 칼날이 스스로를 찌르고 있었다. 로마제국이 노르만의 공세에 맞서 택한 민권 강화(마리우스)에의 귀족정 저항은 술라의 독재를 낳았고, 술라를 위시한 귀족파와 맞선 대중은 결국 카이사르라는 독재관을 택했다. 민주정 회복의 상징이 되리라던 열망과 달리, 카이사르는 로마가 황제 독재정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말로에 들어선 제국주의는 결국 내부마저 식민지화하기 마련이다.  

"미국 패권의 전성기였던 1980년대에 워싱턴은 세계 수많은 지역과 비밀공작의 지하세계에서 주인으로 행세했다. (...) 하지만 이제 그 모든 것이 미국의 통제에서 벗어났다. 분홍색 양귀비꽃이 미군을 교착 상태에 빠뜨렸듯이, 쇠퇴하는 경제력을 군사력으로 대체하여 패권을 지키려는 워싱턴의 시도도 비슷한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맛본 실패는 워싱턴이 비밀작전의 세계에서 통제력을 잃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패권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지표이다." 

내외부의 위협과 더불어 미국을 옥죄는 중요 변수는 기후위기다. 미국은 물론, 떠오르는 중국마저도 이 미증유의 위기 앞에서는 버틸 수 없다. 맥코이 교수는 기후위기로 인한 경제적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진 끝에, 미국은 세계 곳곳에 배치한 군대를 운용할 돈이 없어 결국 제국의 지배력을 축소하고 국내 문제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으리라고 전망한다. 중국과 미국의 대결이 국제 경제적 문제, 지정학적 문제에 따른 전망이라면, 기후위기로 인한 미국제국의 몰락은 이미 예고된 영화 본편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미 우리는 그러한 전조를 트럼프 행정부에서 바라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고립주의 노선을 택했다. 미국이 한국에 요구하는 상식 밖의 과도한 방위비는 달리 말해 주한미군 철수 논의와 맞닿아 있다. 트럼프는 계속 미국 내 문제를 염두에 두고 있다. 무너지는 제국에 외부 동맹과의 협업은 고민 대상이 아니다.  

우리에게 특히 흥미로운 건 미국제국의 몰락이 한반도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는 점일 것이다. 오랜 기간 제국 지배 질서에서 생존의 방법을 모색했던 한국에 미국제국의 퇴조는 나라의 운명을 뒤흔드는 큰 사건이다. 명청 교체기의 위기, 청일 교체기의 위기 국면에서 한국은 큰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이와 관련해 맥코이 교수는 미국제국의 퇴조 후 세계 헤게모니가 어떻게 재구성될지에 관해 나름의 견해를 내놓는다. 여러 모델 중 특히 흥미를 끄는 건 세계를 통괄하는 슈퍼파워가 사라지고, 역내 지배국들에 의한 다극점 지배 체제가 등장하리라는 전망이다. 기실 기후위기는 이런 변화를 강제한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당장 자국 내 문제 해결에 모두가 바쁜 사이, 역내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국가가 인근 지역에서 지정학적,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패권을 나눠 행사하리라는 맥코이 교수의 전망이 현실성 있어 보인다. 우리의 경우는 결국 중국이 될 것이다.  

당장 이 책의 전망을 곧바로 수용하기는 어려움이 있다. 지금도 미국의 슈퍼파워는 굳건하다. 군사력보다 더 강력한 미국의 소프트파워는 현대 지구 체제를 밑바닥에서부터 정의했다. 저자가 책의 곳곳에 이 같은 현실에 대한 반박을 배치해놓았다. 이를 찾아 읽어보며 현실과 비교할 수 있다.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중국이 부상하리라는 전망, 기후위기가 미국제국의 쇠퇴를 이끌 것이라는 전망은 매우 설득력 있다. 책을 읽고 나면 한국이 중국 헤게모니를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는 두려움이 든다. 여태 제국은 실상이 어떠하든, 군사력과 함께 새로운 이데올로기도 수출했다. 영국은 자유시장의 혜택을 홍보했고, 미국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총칼과 함께 들이밀었다. 과거 대당제국과 원제국도 실크로드를 통한 번영을 약속했다. 중국은 다르다. 중국은 경제적, 군사적으로 성장한 후 어떤 대안적 이데올로기도 내놓지 못했다. 홍콩 사태에서 보듯, 시진핑 일극 체제의 중국이 돈 외에 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번영은 없다. 이런 중국이 각국의 동의를 얻는 거대 제국이 되리라는 전망은 좀처럼 하기 어렵다. 책의 내용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만큼이나 설득력이 강하다. 이 같은 전망이 독자로 하여금 강한 공명을 낳는다. 특히 흔들리는 시대에 한국의 엘리트층이라면 반드시 손에 집어들 필요가 있는 책이다.  

▲ <대전환>(앨프리드 맥코이 지음, 홍지영 옮김) ⓒ사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