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칼럼

청소년을 타락케 하는 악마의 유혹, 현금?

일취월장7 2019. 12. 7. 10:24

청소년을 타락케 하는 악마의 유혹, 현금?

[청소년 인권을 말하다] 청소년에게도 자신의 돈을 사용할 권리가 있다


몇 달 전, 청소년 A씨는 서울시가 지원하고 서울시립기관이 주관하는 한 청소년활동에 지원했다. 그 활동의 모집 홍보물에는 선정된 팀에게 활동지원금 100만 원을 지원한다고 되어 있었다. A씨는 해당 활동에 선정되었다. 하지만 막상 활동지원금은 단 100원도 받지 못했다. 해당 활동에 필요한 모든 비용은 담당 직원이 대신 결제했다. A씨가 선결제한 비용의 영수증을 제출하고 비용을 보전 받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담당 직원이 함께 있지 않을 때는 배달 어플이나 쇼핑 어플을 통해 주문을 하고 그 주문 내역을 담당 직원에게 보내주면 대신 결제해 주겠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A씨는 활동팀 회의가 있던 날, 안내받은 대로 주문 내역을 담당 직원에게 보내며 결제를 부탁했다. 담당 직원은 다음부터는 1주일 전에 미리 말하라며 짜증을 냈다. 결국 A씨는 활동에 필요한 대부분의 비용을 사비로 지출했다. 담당 직원은 나중에야 A씨가 지출한 비용만큼의 기프티콘(모바일 상품권)을 보내줬다. 해당 청소년활동을 진행하며 A씨는 자기 돈은 돈대로 쓰고 불필요한 기프티콘만 잔뜩 받게 되었다. 이 모든 게 청소년에게 현금을 지급해서는 안 되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A씨는 이전에도 동일 기관에서 진행하는 공모전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그때도 비청소년인 다른 심사위원들은 심사비를 현금으로 받은 반면 A씨는 문화상품권으로 받았다. 

청소년에게 현금 안 주는 사회
 

우리 사회는 유독 청소년에게 현금을 주는 것을 꺼린다. 학교 행사나 대회의 상은 언제나 현물 아니면 문화상품권이다.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진행하는 행사나 사업 등도 마찬가지이다. 으래 현금으로 지급하는 상금, 보수, 지원금이라도 청소년이 대상자면 어김없이 현금 대신 문화상품권을 지급한다. 업무상 회의비나 물품 구매비 등 현금 지출이 필요한 경우에도 온갖 비효율적이고 이상한 방법들을 동원해서라도 청소년에겐 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잦다. 이는 당사자인 청소년뿐만 아니라 이를 집행하는 입장에서도 번거롭고 불편한 일이다.


왜 이런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청소년에게 현금 지급을 꺼리는 것일까? A씨의 사례처럼 정부, 공공기관의 업무 규정에 학생·청소년에 대한 현금 지급 불가 규정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학교를 비롯해 대부분의 기관들은 이렇다 할 금지 규정을 따로 가지고 있지는 않다. 때문에 그 이유를 물으면 '관행이다', '교육상의 문제가 있다' 등의 애매하고 추상적인 답변이 돌아온다. 서울시교육청에서 내놓은 교육행정 관련 질문·답변 사례집을 보면, "학생에게 현금을 지급하였을 때의 교육상의 문제점 등을 감안하여 그 외의 방법을 함께 검토"하라는 답변이 실려 있다. 도대체 왜 청소년에겐 현금을 주면 안 되는 것일까? 청소년들에게 현금을 지급하면 대체 어떤 '교육상의 문제'가 생긴다는 것일까? 현금은 청소년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위험'하거나 '나쁜' 것일까? 


"그 돈으로 '불필요한' 물건을 사거나 PC방 등에서 '놀며' 탕진하면 어쩌지? 청소년이라면 마땅히 책을 사서 공부를 하거나 문화생활을 해서 교양을 쌓아야 하는데 말이지. 그렇다면 현금보다 용도가 제한적인 문화상품권을 주는 것이 좋겠다!" '교육'이라는 단어에 담긴 얄팍한 속내는 대충 이런 의미일 것이다. 올바르고 건전한 청소년의 모습을 정해놓고, '일탈'의 위험이 너무나 큰 현금보다 '안전한' 문화상품권을 지급함으로서 청소년들의 행동을 통제하고자 하는 것이다. 

청소년 통제의 수단, 돈
 

보다 더 깊이 들어가면 애초에 청소년이 '자기 돈'을 가지기 쉽지 않은 현실이 있다. 우리 사회는 청소년을 독립된 개인이 아니라 친권자(부모)의 소유물이나 통제대상으로 여긴다. 그 결과 청소년은 부모의 경제적인 지원 없이는 생활은커녕 생존조차 어렵다. 친권자가 용돈을 주지 않으면 청소년이 '자기 돈'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없다시피 하다. 정당하게 일을 해서 돈을 벌려고 해도 만 18세 미만의 청소년은 일을 하기 위해선 친권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이는 반대로 얘기하면 친권자에게 있어 '용돈'은 청소년인 자식을 통제하기에 매우 손쉽고 용이한 수단이다. 친권자가 용돈을 끊으면 청소년은 경제적으로 철저히 무력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청소년이 친권자가 아닌 존재를 통해 현금을 확보하는 것은 청소년에 대한 친권자의 통제력을 위협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친권자로선 그 금액의 크고 작음을 떠나 자식에 대한 자신들의 통제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결코 달갑지 않은 것이다. 즉 청소년에게 '용돈'을 줄 '권한'이 있는 사람은 친권자뿐이다. 친권자가 없는 자리에선 언제나 '어른'인 보호자의 통제가 따라붙는다. 교사가, 담당직원이, 인솔자가 청소년을 '대신'해서 돈을 관리하고 결제한다. 청소년을 자율성을 가진 개인, 사회의 일원으로서 마땅한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친권자의 암묵적인 승인 아래 친인척이나 부모의 막역한 지인이 청소년에게 용돈을 주기도 하지만 여기엔 언제나 친권자의 날카로운 시선이 따라 붙는다. "대신 잘 맡아뒀다 크면 줄게", "넌 어차피 그런 돈 쓸데도 없어", "필요한 건 다 사주는데 너가 돈이 왜 필요해"라며 반강제로 빼앗아 가는 일도 흔하다. 청소년이 친권자의 통제에서 벗어난 돈, 스스로 판단해서 사용할 수 있는 돈, 자신의 돈을 갖는 것 자체를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곧 능력이고, 돈의 박탈은 곧 자율성의 박탈을 의미한다.

청소년에게 차별 없이 경제적 권리를! 

과거 노예제가 존재하던 시절, 노예는 사적인 재산을 갖는 걸 허락받지 못했다. 노예의 모든 재산은 곧 주인의 재산이었다. 현재의 청소년들 또한 친권자의 허락 없이는 돈을 가질 수 없다. 심지어 온 사회가 나서서 행여나 청소년의 손에 친권자가 허락하지 않은 돈이 들어갈까 노심초사한다. 청소년은 친권자의 소유가 아니다.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청소년도 마땅히 자신의 돈을 가지고, 관리할 권리가 있다. 


돈은 그 자체로 나쁘거나 위험하지 않다. 오히려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누구나 돈에 대한 개념과 적절한 사용 방법을 알아야 한다. 위험한 것은 돈이 아니라 돈에 대한 무지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선 교육이 필요하고 가장 좋은 교육은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돈을 관리하고 써 보지 않고는 돈에 대해 배울 수 없다. 청소년에게 '현금'을 허하라. 청소년 또한 자신의 정당한 대가를 돈으로 받을 권리가 있다. 청소년에게도 자신의 돈을 스스로의 욕구와 필요에 따라 사용할 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