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칼럼

대학 서열 구조는 입시 경쟁과 사회 불평등의 연결고리

일취월장7 2019. 10. 9. 10:21

文대통령, 약속대로 하면 된다

[장석준 칼럼] 대학 서열 구조는 입시 경쟁과 사회 불평등의 연결고리


조국 논란은 한국 사회에 소중한 기회다. 검찰 개혁 뿐만 아니라 교육 불평등과 계급-계층 사다리 같은 근본 문제들을 새삼 강렬히 드러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국 논란은 또한 장벽이기도 하다. 모처럼 화제에 오른 이 문제들을 조국 찬반의 회오리로 다시 가려 버리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9월 30일 발표된 전국 교수-연구자-대학원생 성명서는 마치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처럼 반갑다. "촛불항쟁의 정신을 되살려 전면적 사회대개혁에 나서자!"라는 제목의 이 성명서는 "검찰 개혁의 역사적 당위성"을 강조하면서도 "구조적 불평등과 소수 특권집단이 구축한 '캐슬'의 교육적-문화적 특권과 차별, 이로 인한 광범위한 박탈감과 환멸이 근본적 문제임"을 직시하자고 촉구한다. 성명서가 강조하는 대안은 "전 방위적 경제 개혁, 노동 개혁, 교육 개혁"이다.

정확한 지적이다. 경제, 노동 그리고 교육 개혁이 시급하다. 이 중 교육 개혁에 대해서는 이미 조국 논란 초기부터 정부도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벌써 한 달도 더 지난 9월 1일에 문재인 대통령은 "대입 제도 재검토"를 지시했다. "현행 입시 제도가 공평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다"는 것이었다. 조국 논란 와중에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이 쟁점이 된 탓에 나온 발언이기도 하지만, '교육 개혁'이라고 하면 입시 제도의 이러저런 변경부터 떠올리는 한국 사회 상식을 충실히 반영한 대응이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입시가 좀 더 '공정'해지기만 하면 되는가? 정말 입시 제도 변경이 지금 필요한 교육 개혁의 핵심 내용인가?  

대학 서열 구조는 입시 경쟁과 사회 불평등의 연결고리 

입시 제도가 문제라는 이들은 대개 학종 같은 수시 비중을 줄여야 한다고 한다. 금수저에게만 유리한 입시 제도라는 것이다. 그래서 대안은 정시 확대가 된다. 더 나아가 아예 정시가 100%였던 과거로 돌아가자는 목소리도 있다. 시험 한 번으로 대학을 결정하던 방식이 더 '공정'했다는 것이다.  

물론 학종은 문제가 많다. 학생부 수상 경력 기재나 자기소개서처럼 부모가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게 하는 요소들은 폐지해야 한다. 그러나 수시 안에 학종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학생부교과전형도 있고, 금수저와는 가장 거리가 먼 이들에게 대학 교육의 문을 여는 고른기회 전형이나 지역균형선발 전형도 있다. 이들을 다 없애거나 줄여서 정시 중심 체제로 돌아가는 게 과연 바람직한가?  

만약 정시 중심 체제로 돌아간다면, 2000년대처럼 사교육이 다시 기승을 부릴 것이다. 이미 경험했듯이 사교육의 비대한 성장은 공교육을 황폐화시킨다. 하지만 이것만 문제가 아니다. 돈 많은 집안일수록 더 많은 과외 수업을 시킬 수 있고 웬만하면 이는 시험 성적 차이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이미 작년에 서울대는 정시 비율을 늘리면 강남3구 출신 합격자 비중만 늘어난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정시가 모든 계층에게 더 '공정'하다는 것은 신화에 불과하다.  

이렇듯 입시 제도는 이리 바꾸든 저리 바꾸든 한계가 많다. 뭔가 더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건드리지 않는 한, 입시 경쟁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고 입시 제도 변경은 늘 변죽만 울릴 것이다.  

그 문제란 결국 계급-계층 불평등이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입시 경쟁을 통해 특정 대학 졸업 증명서를 획득하느냐 혹은 못하느냐에 따라 계급-계층 지위가 결정된다. 4년제 대학 졸업장을 지닌 사무직-기술직과 그렇지 못한 이들 사이의 임금 격차가 너무나 크다. 게다가 전자 안에서도 이른바 '수도권 명문대학' 졸업장을 갖춘 이들은 관료 체계를 통해 안정적으로 성공 사다리를 오르는 반면 나머지는 이를 바라보며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려야 한다.  

그래서 교육 개혁 무용론을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다. 어차피 계급-계층 구조 자체를 손보지 않는 한, 교육 제도는 아무리 바꿔봐야 소용없다는 것이다. 헛되이 교육 개혁을 논하며 시간을 허비할 바에는 차라리 노동 개혁에 매진하는 쪽이 낫다고도 한다. 노동시장을 뜯어고쳐 임금소득자 내부의 소득 격차를 줄이면 계급-계층 사다리에서 더 윗자리를 차지하려는 입시나 취업 경쟁도 줄어들지 않겠냐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과연 언제나 실현될 수 있을지,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해법이기도 하다. 게다가 임금 격차 완화는 제도의 문제만은 아니다. 계급-계층 간 힘의 문제이기도 하다. 소득 격차를 줄이려면 저임금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단결하여 임금 차이를 최소화하는 단체협약을 쟁취하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다. 그러나 21세기 한국 노동조합운동이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여러 계기, 숱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입시 제도 개혁론과 노동 개혁 우선론은 한국 교육 문제를 바라보는 양 극단의 시각이라 할 수 있다. 한 쪽은 지나치게 부분적 문제에 집착하고, 다른 한 쪽은 너무 근본적인 문제만 바라본다. 전자에만 매몰되다 보면 다람쥐 쳇바퀴 돌듯 기성 질서 안에서 맴돌 테고, 후자만 강조하면 교육 문제에는 손을 놓게 될 것이다. 둘 다 기존 교육 '구조'를 방치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혹시 두 접근법이 서로 만나는 중간 지점은 없을까?

있다. 입시 경쟁은 결국 무엇을 위한 경쟁인가? 서울대를 정점으로 피라미드처럼 늘어선 대학 서열 구조에서 보다 위쪽으로 진입하려는 경쟁이다. 다른 한편 노동시장 불평등 구조의 골간에 자리 잡은 것은 무엇인가? 대학 졸업 여부, 명문대 졸업 여부다. 즉, 입시 제도와 계급-계층 불평등의 중간에 바로 대학이 있다. 대학 서열 구조가 입시 경쟁과 사회 불평등의 이음매 구실을 한다.  

그렇다면 출발점은 분명하다. 대학 개혁에서 시작해야 한다. 대학 서열 구조 해체에 나서야 한다. 대학 서열 구조 해체야말로 한계가 너무 큰 개혁 방안인 입시 제도 변경과 너무 장기적 개혁 과제로만 보이는 계급-계층 불평등 해소를 잇는 꼭짓점이다. 대학 개혁을 추진하기만 한다면, 이는 부분적 개혁과 근본적 개혁, 두 방향 모두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이미 구체적인 대학 개혁 방안이 있다. 공동 선발-공동 수업-공동 학위 네트워크 구축을 통한 대학 평준화가 그것이다.  

대학 개혁의 요체는 대학 서열 구조 해체  

입시 중심 교육과 대학 서열 구조에 문제의식을 지닌 이들은 이미 20여 년 전인 2000년대 초부터 대학 개혁 방안을 고민했다. 정진상 교수(경상대, 사회학)의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입시 지옥과 학벌 사회를 넘어>(책세상, 2004)가 이 시기에 나온 대표적인 저작이다. 이 책에서 정진상은 서울대를 포함한 국공립대학들을 학생 선발과 수업, 학위 수여를 함께 하는 통합네트워크로 묶자고 제안했다. 이 통합네트워크는 별도 입시 없이 대학입학자격고사를 통과한 학생들을 지역별로 선발한다. 이러한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 방안은 곧바로 민주노동당 등 진보 세력의 교육 개혁안으로 채택됐다.  

10년이 훨씬 넘는 세월이 지나면서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 안도 진화를 거듭했다. 기존 국공립대학들을 바탕으로 공동 선발-공동 수업-공동 학위의 대학연합체제를 구성하고 현행 입시는 대학입학자격고사로 대체한다는 기본 내용은 유지됐지만, 논의와 연구를 거듭하며 여러 내용이 덧붙여졌다. 너무 복잡해져서 때로는 이 점이 대학 개혁 운동의 대중화를 방해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가령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가 펴낸 <입시-사교육 없는 대학 체제: 대학 개혁의 방향과 쟁점>(한울, 2015)에는 참으로 다양한 세부 방안과 실행 계획들이 실려 있다.  

그러나 골자는 복잡할 게 없다. 공동으로 학생을 뽑고 공동으로 학위를 주는 대학연합체제를 구축하여 현재의 대학 서열 구조를 타파한다는 것이다. 자사고와 특목고가 등장하기 전에 고등학교 체제를 비슷한 방식으로 개편했던 전례에 따라 이름 붙인다면, '대학 평준화'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방향에서 지금껏 제출된 개혁안들의 핵심을 가장 간명하게 정리한 문헌으로는 교육혁명공동행동 연구위원회가 펴낸 <대한민국 교육혁명: 교육 체제의 혁명적 전환, 미룰 수 없다>(살림터, 2016)가 있다.  

< 대한민국 교육혁명>의 개혁안이 2000년대 대학 개혁안과 크게 달라진 점은 공동 선발-공동 학위의 대학연합체제에 상당수 사립대학까지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국공립대학 비중이 24%에 불과하다. 비슷한 경제 수준 국가들 가운데 국공립대학 비중이 이렇게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혹시 이것 역시 일제 잔재인가. 아무튼 이런 상태에서 국공립대학들만 통합해서는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없다. 특히 수도권에는 사립대학들이 밀집한 반면 국공립대학은 서울대, 서울시립대, 서울과기대 정도다.  

그래서 <대한민국 교육혁명>은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는 사립대학들을 대학연합체제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사립대학들은 공적 재원을 지원받는 만큼 이미 준공영 체제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실은 연세대나 고려대 같이 대학 서열 구조의 수혜를 받는 이른바 '명문' 사립대학일수록 현재 더 많은 정부 지원을 받고 있다. 계속 이런 지원을 받는다면, 이들 대학 역시 대학연합체제에 합류해야 할 것이다. 이를 반대한다면, 이들 대학은 국고 지원 없이 완전히 자력으로 생존해야 할 것이다.  

남는 문제는 대학 서열 구조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서울대다. <대한민국 교육혁명>은 서울대를 수도권 대학연합체제에 통합시키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만 되면 대학연합체제가 구축되더라도 다시 그 안에서 수도권-비수도권 간 서열화가 나타날 위험이 있다. 어쩌면 서울대의 학부 과정은 수도권 대학연합체제에 통합하되 대학원은 학과별로 지역 거점 국립대로 이전하는 방안이 필요할지 모른다. 이런 조치는 권역별로 계열이 특성화된 대학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손우정, "서울대 전국 대학화 전략?: 권역별 계열 특성화 공공네트워크 모델", <입시-사교육 없는 대학 체제>) 강력한 지역 균형 발전 전략이 될 수도 있다.  

이렇듯 방책들은 이미 갖춰져 있다. 그리고 이 중 일부는 현 집권 세력이 지난 두 차례 대선에서 약속한 내용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조기 대선을 앞두고 펴낸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 완전히 새로운 나라, 문재인이 답하다>(21세기북스, 2017)에서 이렇게 말했다.  

"근본적으로는 대학 서열화를 없애고 전문 분야로 재편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대학 평준화가 필요하다고 보는 거죠. 예를 들면 공동입학, 공동학위제가 가능합니다. 이 과목은 저 대학에서, 저 과목은 이 대학에서, 단순히 학점을 주는 정도가 아니라 공동학위를 주는 겁니다. 제가 지난 대선[2012년 대선-인용자] 때 국공립대학부터 먼저 공동입학, 공동학위제를 하겠다고 공약을 했었습니다 ... 그러면 적어도 서울대학과 지방 국립대학 간의 서열화는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 이 제도가 정착되면 사립대학으로 확대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약속: 행동하는 양심, 깨어 있는 시민을 위한 약속", <대한민국이 묻는다>)

이 약속대로 하면 된다. 이제 우리는 더는 주저하지 말고 이 약속의 즉각적 이행을 요구해야 한다.  

대학 평준화와 무상화를 결합하자 

대학 평준화는 대학을 둘러싼 또 다른 중요한 개혁 과제들과 결합해 상승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예컨대 대학 교육 무상화가 그렇다. 대학 무상화는 독일 같은 나라에서는 이미 현실이고, 버니 샌더스 운동이나 영국 노동당 같은 영미권 좌파의 핵심 정책이기도 하다. 우리의 경우는 대학 평준화와 연동해 단계적으로 대학 교육을 무상화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대한민국 교육혁명>이 이미 제시하는 대로 대학연합체제에서는 등록금을 대폭 낮춰야 한다('반값 등록금'). 대학연합체제에 합류한 사립대학은 국고 지원을 받는 대신 학생들에게 받는 등록금을 인하해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대학연합체제에서는 등록금을 폐지해야 한다. 대학연합체제의 이러한 단계적 무상화는 학생들이 서열화된 잔존 사립대학 대신 대학연합체제를 선택하게 만드는 중대한 유인 요소가 될 것이다.

사실 지금 한국 대학이 요구받는 개혁 과제는 하나 둘이 아니다. 인구 구조와 지식-기술 환경 변동에 따라 앞으로 대학은 성인을 위한 평생 교육에 더 많은 비중을 두어야 한다. 또한 정보화 혁명(유행에 따라 과장을 좀 섞으면 "제4차 산업혁명")에 부응해 교육 체계와 방식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지구 자본주의, 지구 정치 질서, 지구 생태계의 3중 위기에 맞서 교육 내용도 새로 짜야 한다. 이 가운데 어느 과제도 관료화되고 기업화된 현 대학 체계를 뒤흔들지 않고서는 시도조차 할 수 없다.  

대학 평준화는 이런 화석화된 대학 체계를 크게 흔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단순한 대학 '개혁'이 아니라 이 시대가 요구하는 대학 '혁명'의 출발이 될 수 있고, 되어야만 한다.

조국 논란은 의도치 않게 한국 사회에 이 혁명의 시급함을 상기시켰다. 진보 세력이 오랫동안 주장하기는 했지만 가장 급한 과제들 목록에서는 항상 빼놓기 일쑤였던 대학 개혁을 이제는 맨 앞에 내세우자. 소리 높여 입시 철폐-대학 서열 구조 타파를, 대학 평준화-무상화를 외치자.   



이제 초등학교 수업도 스마트폰 사용이 필수!
  • 최재붕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포노사피엔스》 저자 (boong33@skku.edu)
  • 승인 2019.10.09

[최재붕의 포노사피엔스] 디지털 플랫폼은 포노 문명 뿌리


아마존 등 성공비결에서 해법 찾아야
 프랑스의 석학이자 미래학자인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는 ‘음악 소비 변화는 미래 소비문화 변화 예측을 위한 지표’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소비재이자 보편적 사랑을 받고 있는 음악 소비가 바뀌면 사람들은 다른 소비 패턴도 곧 음악 소비 방식으로 전환한다는 이론이다. 그의 예측은 지난 30년간 어김없이 적중했다. 스마트폰 보급 이후 음악 소비의 표준은 어느덧 CD와 같은 제품 판매 방식에서 디지털 플랫폼 기반의 다운로드(또는 스트리밍) 방식으로 급격히 교체됐다. 그리고 미디어산업 생태계는 혁명 단계로 진입했다.

디지털 플랫폼·빅데이터·인공지능
대한민국 인구 95%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모바일뱅킹 사용 비중은 70%에 육박하고 있다. 인간 생존에 가장 중요한 돈 관리를 폰에 맡긴다는 건 심리적 신뢰도가 매우 높다는 것이고, 그래서 이들은 자연스럽게 폰을 기반으로 소비하고 또 즐긴다. 2018년부터 모바일뱅킹 사용자 비중이 50%를 넘었으니 이제 우리나라 은행업무 표준은 모바일뱅킹이다. 금융거래는 디지털 플랫폼에서 이루어지고 스마트폰이 그걸 담당한다. 이 방식은 음악을 듣는 과정과 다를 바 없다.

인간의 필수 소비재라는 의식주는 어떨까. 국내도 온라인 의류 구매 비중이 30%를 넘었다. 미국은 ‘정기구독’ 형태의 패션사업이 새로운 트렌드로 급성장 중이다. 일정 금액을 월납하면 인공지능이 옷을 골라 보내주기도 하고 비싼 옷을 한 달간 빌려주기도 한다. 이런 비즈니스가 급성장하면서 의류·신발 소비가 디지털 플랫폼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배달의민족’은 어느새 3조원 가치 기업으로 성장했다. 새벽배송으로 유명한 ‘마켓컬리’도 6000억원 가치로 평가받고 있다.

집을 구할 때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플랫폼 ‘직방’의 기업 가치는 이제 7000억원에 이른다. 누군가 새로운 비즈니스를 기획한다면 디지털 플랫폼에 기반해 도전하는 것이 이제는 상식이 됐다. 그만큼 우리 인류의 삶의 근간이 디지털 공간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제 초등학교 4학년 사회 교과서는 이렇게 써야 한다. ‘어린이 여러분, 오늘은 은행업무를 배워봐요. 자~ 스마트폰을 열고 앱을 다운받아 계좌를 개설하세요.’ 이것이 표준이다. 어른들이 알고 있는 상식, 즉 ‘도장과 신분증을 들고 은행에 가서 계좌를 개설합니다’라는 전통적 방식은 소수자를 위한 보조 프로그램이 될 것이다. 시장경제에 대한 내용도 바뀌어야 한다. ‘제조기업은 물건을 만들고 만들어진 물건은 시장을 통해 거래됩니다’라는 내용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거래됩니다’라고 말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디지털 플랫폼이 어떻게 작동하고 어떻게 물건과 서비스가 거래되는지 알려줘야 한다. 그래서 디지털 플랫폼 구축과 코딩은 기술과목이 아닌 사회과목이 돼야 한다. 이 모든 변화는 몇몇 기업이 만든 것이 아니라 인류의 자발적 선택이 만든 것이다. 이 정도가 되니까 문명의 교체, 디지털 혁명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디지털 플랫폼 거래가 활성화되면 고객의 방문은 데이터로 남는다. 따라서 데이터 분석은 고객의 마음을 읽는 작업이 된다. 세계 최고의 디지털 유통 플랫폼을 구축한 아마존의 최고경영자(CEO) 제프 베이조스는 디지털 플랫폼의 성공 요인을 ‘고객 중심 경영’이라고 이야기한다. 한번 방문했던 고객이 다시 오게 하려면 그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건 상식이다. 그래서 ‘빅데이터 분석’은 고객의 마음을 읽는 작업이 되고 디지털 플랫폼 비즈니스의 가장 핵심적인 기술 요소가 된다.

고객에 대한 분석만으로는 고객을 사로잡기 어렵다. 고객이 원하는 걸 제공하는 서비스가 필요한데 그래서 도입된 것이 바로 인공지능, 그중에서도 머신러닝에 기반을 둔 큐레이션 서비스(개인화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고객이 열광했다. 그 결과 무려 1억3000만 명의 프라임 고객(연회비 119달러를 내는 특별고객)을 확보함으로써 세계 최고의 유통기업이 됐다.

고객이 모이지 않는 플랫폼은 실패
그렇다면 전문가를 모아 빅데이터 분석팀과 인공지능 개발팀을 만들기만 하면 비즈니스는 성공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기업들이 디지털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데 실패하는 가장 큰 요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디지털 플랫폼의 사활은 고객이 결정한다. 디지털 플랫폼으로 비즈니스를 전환하는 시기에 대부분의 기업들은 이를 외주 처리했다. 기업의 비즈니스 핵심인재들은 참여하지 않고 외주로 고객 중심 경영을 실현하는 건 불가능하다. 고객이 오지 않는 플랫폼은 무용지물이 된다.

빅데이터 분석과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다. 비즈니스의 근간이 디지털 플랫폼으로 옮겨간다면 기업의 운명을 걸어야 한다. 기업의 모든 임직원이 디지털 플랫폼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자세한 내용을 학습해야 한다. 디지털 거래방식은 어떻게 되는지, 해외에서 성공한 모델은 어떻게 되는지, 빅데이터 분석과 인공지능의 기본적인 원리는 무엇인지 철저하게 스스로 학습하고 무장해야 한다. 그래야 그동안 축적했던 자기 전문 분야에서의 지식을 디지털 플랫폼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길을 찾을 수 있다. 다양한 분야 전문가와 협업할 수 있는 자세도 중요하다. 오로지 고객을 중심에 놓고 모든 전문가가 아이디어를 합쳐 그들이 열광할 수 있는 비즈니스를 만들어내야 한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가 세계 1위 기업으로 재도약하면서 성공전략이 재조명받고 있다. 사티아 나델라 CEO가 밝힌 비결은 ‘윈도즈’ 중심 경영에서 ‘클라우드 애저(ajur)’ 중심으로 옮긴 것이라고 한다. 그러자 전 직원이 시장의 지배자에서 도전자로 생각이 바뀌었고 모든 조직이 이걸 실현하기 위해 협력하면서 새로운 도약이 가능했다고 한다. 그렇게 애저(Ajur)는 아마존웹서비스(AWS)를 꺾고 클라우드 시장 점유율 1위가 됐다. 가만히 있어도 팔리던 윈도즈 시대에서 디지털 플랫폼 근간인 클라우드 시대로 성공적으로 이전하면서 시가총액은 무려 3배가 뛰어 1200조원을 넘어섰다. 여기에 우리 기업들이 주목해야 할 성공전략이 있다.

최근 중국의 씨트립(Ctrip)은 익스피디아를 누르고 세계 1위 여행기업으로 성장했다. 비결은 바로 디지털 3콤보다. 3억 명의 고객을 보유한 이 회사는 여행이라는 상품을 디지털 플랫폼으로 설계했고 빅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고객이 좋아하는 여행 패키지를 끊임없이 만들어냈다. 최근에는 고객 예약의 70%를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챗봇으로 처리하면서 세계 1위로 부상할 수 있었다. 모든 비즈니스 분야에서 이러한 기회의 문이 열렸다. 혁명은 곧 위기이자 기회다. 얼마만큼 디지털 문명의 편에 서서 미래를 준비하느냐에 따라 위기의 문을 지나 기회의 문을 열 수 있다. 지금 바로 스마트폰을 열고 학습을 시작해 보자. 디지털 플랫폼,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콘텐츠가 당신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기회의 문이 당신 손안에 있다.

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교육 ‘개편’ 말고 교육 ‘개혁’
  • 변진경 기자
  • 승인 2019.10.09 12:51
수능·학종의 황금비율을 찾는 방안 같은 대입제도 개편만으로는 교육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 국민은 ‘교육이 추구해야 하는 이상’을 포기하지 않았다.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
ⓒ연합뉴스지난 8월23일 고려대 학생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의 입학 과정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이른바 ‘조국 대란’을 겪으면서 교육 불평등 문제가 논의되는 영역은 전에 없이 넓어졌다. 교육 불평등 이슈가 사회·경제·정치 영역을 넘나들고 있다. 늘 공기처럼 우리를 감싸고 있던 교육 불평등의 얼굴이 처음 그려졌기 때문이다. 눈 따로, 코 따로, 귀 따로 묘사되기 일쑤였던 교육 불평등의 민낯이 한 장의 몽타주로 완성됐다.
형상화된 교육 불평등 앞에서 국민은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어떤 개혁인가? 이 질문 앞에서 교육 불평등 문제는 또다시 좁은 영역 안에 갇혀버렸다. 대입제도 개편, 그중에서도 수학능력시험(수능)과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황금비율을 찾는 방안이 교육 불평등 문제를 푸는 핵심인 것처럼 논의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교육개혁을 주문하자 언론은 과연 교육부가 수능 반영 비율을 높일 것인가 말 것인가를 전망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학종 폐지하고 수능으로만 대학 가게 해주세요’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교육 불평등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대변하는 목소리로 자주 소개된다. 이런 ‘국민 여론’에 힘입어 자유한국당 김재원 의원은 대입 전형을 정시 100%로 바꾸는 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민주당 김병욱 의원도 “학종이 정의를 담보하기 전까지 50% 이상 정시를 확대하는 것이 대안이 아니냐”라고 말했다.

지금 가장 선명한 대안으로 떠오른 ‘수능 강화’가 교육 불평등을 완화한다는 실증적 증거는 거의 없다. 오히려 반대로는 많다. 지난해 교육부 차관이 서울 주요 대학들에 정시 비율을 높이라고 요구하자 서울대가 시뮬레이션해본 결과를 공개했다. 수능 중심의 정시 일반전형을 현행(2018년) 27%에서 40~50%로 늘리자 서울 특히 강남 3구 거주 합격자 수가 크게 증가했다. 특목고·자사고 출신 합격자 수도 늘었다. 일반고 출신 합격자 수는 크게 줄었다.

상류층의 수능 선호 현상 ‘명확’

‘금수저는 학종을, 흙수저는 수능을 선호한다’는 세간의 믿음 또한 사실이 아니다. 지난해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육 여론조사에서 “대입 전형에서 가장 많이 반영되어야 하는 것은?”이라는 질문에 ‘수능 성적’이라는 답변 비율이 가장 높은 집단은 월 소득 600만원 이상의 상위계층이었다(38.2%). 월 소득 400만~600만원 집단도 수능 성적을 1순위로 꼽았지만(29.7%) 월 소득 600만원 이상 집단보다는 그 비율이 낮았다. 월 소득 200만원 미만, 월 소득 200만~400만원 집단은 ‘수능 성적’보다 ‘특기 적성’이나 ‘인성 봉사’가 대입 전형에 더 많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답했다(아래 표 참조).

최근 발표된 논문 <배제의 법칙으로서의 입시제도>(문정주·최율, <한국사회학>, 2019)는 상류층의 수능 선호 현상을 더 명확하게 보여준다. 선호하는 대입제도를 물었을 때 주관적 계층의식이 상층일수록 수능을 선택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38쪽 <표 1> 참조). 상층일수록 입시제도에 대한 이해 수준도 높게 나타난다. 논문은 기회의 평등, 평가의 공정성 따위 외피를 쓴 ‘금수저 학종’ 비판 담론이 사실은 입시제도를 자신들에게 좀 더 유리하게 변화시키려는 상류층의 전략적 계층 투쟁의 결과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 계층 투쟁은 금수저에 대한 흙수저의 투쟁이 아닌, 다이아몬드 수저에 대한 금수저의 투쟁일 가능성이 높다(39쪽 딸린 기사 참조).

넓은 의미의 교육 불평등에 따른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좁은 의미(주로 공정성으로 대변되는 ‘평가의 투명성’)의 교육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최근 ‘정시로만 돌린 1996년 고교별 서울대 합격자 수’ 표가 몇몇 온라인 커뮤니티에 돌아다녔다. 대원외고 199명, 서울과학고 150명, 한영외고 128명, 한성과학고 120명 등 특정 특목고 몇 군데가 서울대 입학을 독식한 과거 통계를 보고 누리꾼들은 이렇게 반응했다. “그런데 지금보다는 저게 나은 듯” “설령 지금보다 쏠림 현상이 훨씬 심해져도 그게 맞죠. 최소한 부정한 방법으로는 대학 못 가니까요” “최소한 납득이라도 되죠”. ‘최소한의 평가 공정성’ 외에는 교육에 대한 기대가 없는 목소리들이다.



교육 ‘개혁’ 요구가 정말 이런 소박한 제도 ‘개편’일까? 국민들이 교육에 거는 기대를 제대로 헤아리기 위해서는 지난해 국가교육회의가 진행한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 조사 결과를 다시 돌아볼 만하다. 당시 시나리오 네 가지 가운데 1안과 2안이 팽팽히 맞섰다. 1안은 “자신의 목표를 향하여 노력할 때,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라는 교육 비전을 내걸었다. 교육의 결과(성적·등수), 그리고 그것을 판가름하는 평가 방식의 공정성을 중시하는 안이다. 2안의 비전은 “치열한 경쟁과 줄 세우는 학교 수업보다 다양한 소질과 적성, 배움이 실현되는 학교 수업이 가능해진다”였다. 줄 세우기 위한 수단이 아닌 배움 그 자체로서의 교육을 지향하는 안이다. 우리 사회 분위기를 감안할 때 다소 이상적이기까지 한 2안은 1안과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숙의를 거친 시민참여단은 중장기적 대입제도 개편 방향으로는 오히려 2안 쪽을 더 많이 지지했다.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와 절대평가 과목 확대로 ‘수능 약화’ 쪽을 택했고, 학생부 위주 전형과 수능 위주 전형 중에서도 전자를 골랐다. 이런 결정을 내릴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요인은 ‘학교 교육의 정상화’였다. ‘선발 과정의 객관성’ 못지않게 ‘지역, 계층, 학교 유형 간 격차 완화’도 고려했다. 공론화 조사에 앞서 실시한 2만명 대상 대국민 조사에서도 중장기 대입정책이 ‘학생 선발의 객관성을 보장하는 방향’(16.2%)이기보다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방향’(29.1%)이기를 더 주문했다. 좀 더 많은, 좀 더 숙의를 거친 목소리를 들어보면 국민은 가장 현실적이고 비정한 대입제도 영역에서조차 아직 교육의 여러 이상적 가치, 교육이 추구할 수 있는 최대한의 가치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흔히 “교육 문제는 답이 없다”라고 표현되는 자조 속에서 변화의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공정한 평가에 적합한 입시제도, 교육 기회의 평등에 적합한 입시제도, 중등교육 내실화에 적합한 입시제도를 물었을 때 모든 계층을 막론하고(심지어 수능제도가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인식하는 상층조차) 다수가 “차이가 없다”라고 답했다(<표 2~4> 참조). 어떤 입시제도로도 우리 사회 교육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그렇다면 다시 교육 불평등 문제는 수능과 학종 비율, 대입제도와 같은 좁은 영역에서 사회·정치·경제 전 영역으로 확장된다. 국민의 요구는 입시제도 밖에서, 교육 부문 밖에서 해법을 찾으라는 주문일 수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대입 공정성을 넘어 특권 대물림 교육 중단을 위해” 학종 개선과 자사고·외고의 일반고 전환 등에 더해 정부와 시민사회에 특권 대물림 지표 개발과 조사, 대학 서열체제 극복 국민 공론화, 출신학교 차별금지 법제화 등을 건의했다. 더 근본적이고 거대한 이야기들도 조금씩 흘러나온다. “교육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학 평준화 같은 과감한 상상력이 필요하다”(소래섭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부산일보> 9월17일) “대학 입시, 개선이 아니라 폐지가 답이다”(김누리 중앙대 교수, <한겨레> 9월22일), “프랑스 사례를 참고해 공립대학교를 지역별 1대학, 2대학 등으로 재편하자”(페토 사회적협동조합 신택연 이사장, 9월25일 국가교육회의 주최 ‘청년 세대가 생각하는 교육의 공정성은 무엇인가’ 교육포럼)…. 이런 방안이 ‘정시 100%안’보다 나쁠 이유는 또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