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끝까지 간다…둘 중 한 명은 옷 벗어야 끝나”
- 조해수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19.09.09 11:00
검찰 안팎, 정치권, 경찰 관계자가 말하는 “윤석열은 ○○○○이다”
조국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이 검찰로 옮겨 붙었다. 검찰이 칼을 쥐었다. 조 후보자 논란에서 청문회도, 심지어 여론도 뒷전으로 밀리게 됐다. 검찰이 수사를 진행하면서 사안이 정치적 공방에서 수사적 쟁점으로 바뀌었다. 8월27일 전방위적인 압수수색을 단행하며 조 후보자에 대한 강제수사에 돌입한 검찰이 결국 조 후보자의 운명을 쥐게 된 형국이다.
검찰은 조 후보자가 법무장관에 임명되더라도 차질 없이 수사를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심지어 검찰은 9월5일 청와대와 여당을 상대로 “수사 개입을 중단하라”는 공식 입장을 표명했고, 9월6일 청문회 당일에는 조 후보자의 부인을 동양대 총장 표창창 위조 혐의(사문서 위조)로 전격 기소했다. 검찰이 청와대와 정면으로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조성됐다.
조 후보자에 대한 기소 여부를 떠나, 만약 소환조사나 서면조사 등 조 후보자 본인에 대한 검찰의 강제수사가 진행되면 결국 법무장관직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 만들어진다. 검찰이 자신의 인사권자가 될 수 있는 사람에게 칼을 들이댄 것이다. 그것도 특수수사를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가 나섰다. 검찰로서도 수사 성과를 내놓지 않으면 상당한 후폭풍을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검찰의 이러한 움직임은 수장인 윤석열 검찰총장이란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인물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윤 총장을 두고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여러 평가가 나온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우리 총장님”이라고 호감을 표출했던 여권은 “윤 총장은 양날의 칼이 아니라, 결국 ‘망나니의 칼’이었다”면서 분노에 가까운 배신감을 표출하고 있다. 야권은 조 후보자에 대한 검찰 수사를 반기면서도 “윤 총장은 제어가 안 된다. 패스트트랙 수사를 통해 우리한테도 피바람이 불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검찰 측은 “윤석열은 법과 원칙을 따르는 검사”라면서 윤 총장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고 있다. 반면 경찰은 “검찰 지상주의자인 윤석열의 자만이 도를 넘었다”며 검찰을 견제할 수 있는 것은 경찰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시사저널은 전·현직 검찰 관계자, 정치권 및 경찰 관계자들을 다양하게 만나 윤 총장에 대해 물었다. 그들이 말하는 “윤석열은 ○○○○이다”란 설명은 향후 검찰 수사가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올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윤석열은 천생 검사다”
전·현직 검찰 관계자들에게 윤석열 총장에 대해 물었을 때 가장 처음에, 가장 많이 나온 답변은 “윤석열은 천생 검사”라는 것이다. 윤 총장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다. ‘짜장면 일화’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윤 총장은 2002년경 검찰을 떠나 대형 로펌인 ‘태평양’에 입사한 적이 있다. 그러다 결국 1년3개월여 만에 다시 검찰로 돌아왔는데, 이때 결정적인 계기가 짜장면이었다고 한다. 변호사 신분으로 검찰청을 찾았는데, 복도에서 검사들이 끼니를 때우기 위해 먹고 있던 짜장면의 냄새가 진동했다고 한다. 윤 총장은 이 냄새를 맡고 “아,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나? 밥 먹을 새도 없이 수사할 때가 그립다”며 검찰 복귀를 결심했다는 것이다. 윤 총장의 로펌행을 권유했던 이는 서울대 79학번 동기이자 ‘절친’인 문강배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다. 문 변호사는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윤 총장은 어렵게 사시를 통과했지만 지방검찰청을 전전했다. 초임 검사라면 누구나 중요한 자리에서 큰 사건을 수사하고 싶어 한다. 윤 총장은 이 꿈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자 내 권유를 받고 결국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1년여가 지난 다음에 다시 검찰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때 윤 총장이 ‘나는 검찰을 너무 사랑한다. 어떤 보직에 오르는지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검찰 조직을) 떠나서야 알았다. 어떤 보직이든 검사로서의 직분을 다하겠다’고 말한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윤석열은 불도저다”
검찰 관계자들은 조 후보자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법과 원칙에 따른 것일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윤 총장이 사건을 앞에 두고 좌고우면(左顧右眄)하면서 정치적 계산이나 유불리를 따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강배 변호사는 “2003년 노무현 정권 초기 불법 대선자금 수사 당시 검찰은 여당인 민주당 이상수 사무총장과 안희정 전 비서(전 충남지사),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2012년 작고) 등 대통령 최측근을 모두 구속기소했다. 당시 대검 중앙수사부(현 반부패강력부) 평검사에 불과했던 윤 총장이 이를 강력하게 주장했다”면서 “2013년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 때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고자 한 것도 윤 총장이다. 이번 조 후보자의 수사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강조했다.
2003년 불법 대선자금 사건 당시 중수부에 함께 근무했던 검찰 수사관은 “(윤 총장은) 수사를 할 때 사건 외적인 면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그 인상이 강렬하게 남아 있다”면서 “수사를 하다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점이 나오면 전혀 개의치 않고 수사를 확대했다. 걸리면 끝을 보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윤석열은 망나니 칼이다”
여당에서는 윤 총장을 향해 ‘배신자’라며 분노를 숨기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코드인사, 검찰 기수 파괴 등 온갖 비판을 감수하며 윤 총장에게 검찰을 맡겼다. 그야말로 파격 발탁이었다. 조국 후보자가 윤 총장을 적극 밀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런데 윤 총장은 임명된 지 한 달 만에 문재인 정부를 정조준하고 나선 것이다.
여당 고위 관계자는 “윤 총장 임명 당시 당 안팎에서 ‘윤석열을 믿을 수 없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왔다. 그러나 VIP(대통령)의 강력한 의지 때문에 윤 총장이 임명될 수 있었던 것”이라면서 “정치적 배신이라는 점을 제쳐두더라도, 청문회 전에 강제수사에 돌입한 것은 명백한 정치 개입이다. 윤 총장이 검경 수사권 조정 국면에서 청와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망나니 칼을 휘두른 것이다. 조 후보자의 문제를 넘어 이제는 검찰과의 전면전이다”고 비난했다.
“윤석열은 끝까지 간다”
윤 총장의 정치적 입지는 위태로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조 후보자에 대한 수사가 헛발질에 그칠 경우, 검찰 개혁을 막기 위해 검찰권력을 남용했다는 역풍을 고스란히 맞게 된다.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대검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법무장관 후보자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는 것은 조 후보자 본인과 관련된 확실한 혐의점을 검찰이 확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조 후보자에 대한 기소에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사모펀드와 관련한 자본시장법 위반, 딸 입시와 관련한 사문서 위조·공무집행 방해 등은 이미 충분한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고 있다. 조 후보자에 대한 수사는 윤 총장을 필두로 한동훈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송경호 서울중앙지검 3차장, 고형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이 중심이다. 그중에서도 한동훈 부장이 핵심이다. 오히려 사건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검의 배성범 지검장은 핵심에서 비껴나 있다. 고형곤 부장은 검찰 내에서도 ‘싸움꾼’으로 유명하다. 조 후보자가 법무장관에 임명되더라도 소환조사가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조 후보자를 부를 수 있는 인물이다. 압수수색을 단행했을 때부터 ‘윤 총장, 조 후보자 둘 중 하나가 옷을 벗어야 끝나는 싸움’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수사를 시작했다.”
“윤석열은 중수부 검사다”
조 후보자 사건이 마무리되더라도 또 하나의 큰 산이 남아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등 검찰 개혁안이 그것이다. 지난 8월에 있었던 윤 총장의 첫 인사에서 결국 옷을 벗고 나온 검찰 출신 변호사는 “검찰이 너무 빨리 압수수색을 단행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면서 “윤 총장이 조 후보자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밝혔다. 즉, 윤 총장이 조 후보자 사건을 기회 삼아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안에 불복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난해 6월 조국 당시 민정수석,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박상기 법무장관이 만나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대한 합의문을 발표했다. 이때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이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만나 합의 내용을 보여줬다. 윤 지검장은 이에 반발해 다음 날 출근하지 않았다. 검찰 개혁안에 대한 윤 총장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러나 윤 총장이 검찰총장에 오르면서 검찰 개혁안의 큰 그림에는 동의했다고 한다. 다만 검찰의 특수수사 기능에 대해서는 절대 양보하지 않았다고 한다. 윤 총장은 특수통 검사를 넘어 ‘중수부’ 검사다. 권력형 비리를 수사하는 일본 도쿄지방검찰청의 특수부를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은 검찰 지상주의자다”
경찰은 윤 총장이 검찰권력을 지키기 위해 항명도 불사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역대 총장 중 처음으로 경찰청을 방문했으며, 퇴임 즈음에도 또 한 번 방문했다. 그러나 윤 총장은 임명되고 40일이 넘도록 아직까지 한 번도 경찰청을 찾지 않았다. 경찰과는 협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면서 “김광준 검사 뇌물 사건을 맡았던 김수창 당시 특임검사가 ‘검찰은 의사, 경찰은 간호사’라는 식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윤 총장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은 생각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검찰 비리에 대한 수사가 가능한 공수처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기 위해 범죄정보과를 확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단독]경찰, 공수처 신설 앞두고 '범죄정보과' 강화" 기사 참조).
“윤석열은 ‘전두환’ 스타일이다”
윤 총장이 검찰 개혁안에 대해 딴지를 걸고 나올 경우 문재인 정부는 최후의 수단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인사권을 휘두르는 것이다. 이미 조 후보자 사건으로 윤 총장에 대한 여당의 신뢰는 바닥까지 추락한 상태다.
그렇다고 해서 윤 총장에게 직접 칼을 들이댈 수는 없다. 여당은 윤 총장의 인사청문회에서 터진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 사건을 적극 방어하며 윤 총장을 ‘검찰 개혁의 적임자’로 치켜세웠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여당 중진의원은 “윤 총장은 컨트롤이 되지 않는 인물이다. 앞으로도 조 후보자 사건 같은 경우가 반복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내년부터는 총선을 시작으로 대선 등 본격적인 선거 국면이 시작되는데, 윤 총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면서 “그렇다고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윤 총장을 앉혀놨는데 우리 손으로 해임할 수는 없다. 결국 윤 총장의 손발을 잘라야 한다. 내년 인사에서 대검과 중수부에 있는 ‘윤석열 사단’을 지방으로 좌천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에서도 여당의 이와 같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한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검 관계자는 “윤 총장은 자리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측근들을 좌천시키면 윤 총장도 미련 없이 사표를 쓸 것이다. 윤 총장은 퇴임 후를 준비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윤 총장의 절친인 남기춘 전 서부지검장은 옷을 벗은 후 초야에 묻혀 지낸다. 윤 총장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면서 “윤 총장이 사표를 쓰는 순간 검찰 고위 간부는 물론 평검사까지 줄사표를 쓸 수 있다. 이른바 ‘검란’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 총장은 후배나 부하 직원들을 끝까지 책임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윤 총장의 선배기수로 이번 인사에서 옷을 벗은 전직 검찰 고위 간부는 “윤 총장은 ‘전두환(전 대통령)’ 같은 스타일이다. 보스형 지도자로 자기 사람은 꼭 챙긴다. 현재 윤 총장의 비서실장은 2000년대 초반 중수부에서 함께 고생했던 수사관이다. 대검 사무국장으로 임명된 강진구 수원고검 사무국장은 윤 총장이 대구·대전고검을 전전할 때 윤 총장을 살뜰히 챙겼던 사람이다. 이렇다 보니 후배, 부하 직원이 윤 총장을 끝까지 따르는 것”이라면서 “검찰 내에서 윤 총장에 대한 신뢰는 문재인 정부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명심해야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조국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이 검찰로 옮겨 붙었다. 검찰이 칼을 쥐었다. 조 후보자 논란에서 청문회도, 심지어 여론도 뒷전으로 밀리게 됐다. 검찰이 수사를 진행하면서 사안이 정치적 공방에서 수사적 쟁점으로 바뀌었다. 8월27일 전방위적인 압수수색을 단행하며 조 후보자에 대한 강제수사에 돌입한 검찰이 결국 조 후보자의 운명을 쥐게 된 형국이다.
검찰은 조 후보자가 법무장관에 임명되더라도 차질 없이 수사를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심지어 검찰은 9월5일 청와대와 여당을 상대로 “수사 개입을 중단하라”는 공식 입장을 표명했고, 9월6일 청문회 당일에는 조 후보자의 부인을 동양대 총장 표창창 위조 혐의(사문서 위조)로 전격 기소했다. 검찰이 청와대와 정면으로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조성됐다.
조 후보자에 대한 기소 여부를 떠나, 만약 소환조사나 서면조사 등 조 후보자 본인에 대한 검찰의 강제수사가 진행되면 결국 법무장관직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 만들어진다. 검찰이 자신의 인사권자가 될 수 있는 사람에게 칼을 들이댄 것이다. 그것도 특수수사를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가 나섰다. 검찰로서도 수사 성과를 내놓지 않으면 상당한 후폭풍을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검찰의 이러한 움직임은 수장인 윤석열 검찰총장이란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인물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윤 총장을 두고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여러 평가가 나온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우리 총장님”이라고 호감을 표출했던 여권은 “윤 총장은 양날의 칼이 아니라, 결국 ‘망나니의 칼’이었다”면서 분노에 가까운 배신감을 표출하고 있다. 야권은 조 후보자에 대한 검찰 수사를 반기면서도 “윤 총장은 제어가 안 된다. 패스트트랙 수사를 통해 우리한테도 피바람이 불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검찰 측은 “윤석열은 법과 원칙을 따르는 검사”라면서 윤 총장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고 있다. 반면 경찰은 “검찰 지상주의자인 윤석열의 자만이 도를 넘었다”며 검찰을 견제할 수 있는 것은 경찰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시사저널은 전·현직 검찰 관계자, 정치권 및 경찰 관계자들을 다양하게 만나 윤 총장에 대해 물었다. 그들이 말하는 “윤석열은 ○○○○이다”란 설명은 향후 검찰 수사가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올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윤석열은 천생 검사다”
전·현직 검찰 관계자들에게 윤석열 총장에 대해 물었을 때 가장 처음에, 가장 많이 나온 답변은 “윤석열은 천생 검사”라는 것이다. 윤 총장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다. ‘짜장면 일화’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윤 총장은 2002년경 검찰을 떠나 대형 로펌인 ‘태평양’에 입사한 적이 있다. 그러다 결국 1년3개월여 만에 다시 검찰로 돌아왔는데, 이때 결정적인 계기가 짜장면이었다고 한다. 변호사 신분으로 검찰청을 찾았는데, 복도에서 검사들이 끼니를 때우기 위해 먹고 있던 짜장면의 냄새가 진동했다고 한다. 윤 총장은 이 냄새를 맡고 “아,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나? 밥 먹을 새도 없이 수사할 때가 그립다”며 검찰 복귀를 결심했다는 것이다. 윤 총장의 로펌행을 권유했던 이는 서울대 79학번 동기이자 ‘절친’인 문강배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다. 문 변호사는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윤 총장은 어렵게 사시를 통과했지만 지방검찰청을 전전했다. 초임 검사라면 누구나 중요한 자리에서 큰 사건을 수사하고 싶어 한다. 윤 총장은 이 꿈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자 내 권유를 받고 결국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1년여가 지난 다음에 다시 검찰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때 윤 총장이 ‘나는 검찰을 너무 사랑한다. 어떤 보직에 오르는지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검찰 조직을) 떠나서야 알았다. 어떤 보직이든 검사로서의 직분을 다하겠다’고 말한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윤석열은 불도저다”
검찰 관계자들은 조 후보자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법과 원칙에 따른 것일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윤 총장이 사건을 앞에 두고 좌고우면(左顧右眄)하면서 정치적 계산이나 유불리를 따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강배 변호사는 “2003년 노무현 정권 초기 불법 대선자금 수사 당시 검찰은 여당인 민주당 이상수 사무총장과 안희정 전 비서(전 충남지사),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2012년 작고) 등 대통령 최측근을 모두 구속기소했다. 당시 대검 중앙수사부(현 반부패강력부) 평검사에 불과했던 윤 총장이 이를 강력하게 주장했다”면서 “2013년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 때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고자 한 것도 윤 총장이다. 이번 조 후보자의 수사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강조했다.
2003년 불법 대선자금 사건 당시 중수부에 함께 근무했던 검찰 수사관은 “(윤 총장은) 수사를 할 때 사건 외적인 면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그 인상이 강렬하게 남아 있다”면서 “수사를 하다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점이 나오면 전혀 개의치 않고 수사를 확대했다. 걸리면 끝을 보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윤석열은 망나니 칼이다”
여당에서는 윤 총장을 향해 ‘배신자’라며 분노를 숨기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코드인사, 검찰 기수 파괴 등 온갖 비판을 감수하며 윤 총장에게 검찰을 맡겼다. 그야말로 파격 발탁이었다. 조국 후보자가 윤 총장을 적극 밀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런데 윤 총장은 임명된 지 한 달 만에 문재인 정부를 정조준하고 나선 것이다.
여당 고위 관계자는 “윤 총장 임명 당시 당 안팎에서 ‘윤석열을 믿을 수 없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왔다. 그러나 VIP(대통령)의 강력한 의지 때문에 윤 총장이 임명될 수 있었던 것”이라면서 “정치적 배신이라는 점을 제쳐두더라도, 청문회 전에 강제수사에 돌입한 것은 명백한 정치 개입이다. 윤 총장이 검경 수사권 조정 국면에서 청와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망나니 칼을 휘두른 것이다. 조 후보자의 문제를 넘어 이제는 검찰과의 전면전이다”고 비난했다.
“윤석열은 끝까지 간다”
윤 총장의 정치적 입지는 위태로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조 후보자에 대한 수사가 헛발질에 그칠 경우, 검찰 개혁을 막기 위해 검찰권력을 남용했다는 역풍을 고스란히 맞게 된다.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대검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법무장관 후보자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는 것은 조 후보자 본인과 관련된 확실한 혐의점을 검찰이 확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조 후보자에 대한 기소에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사모펀드와 관련한 자본시장법 위반, 딸 입시와 관련한 사문서 위조·공무집행 방해 등은 이미 충분한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고 있다. 조 후보자에 대한 수사는 윤 총장을 필두로 한동훈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송경호 서울중앙지검 3차장, 고형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이 중심이다. 그중에서도 한동훈 부장이 핵심이다. 오히려 사건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검의 배성범 지검장은 핵심에서 비껴나 있다. 고형곤 부장은 검찰 내에서도 ‘싸움꾼’으로 유명하다. 조 후보자가 법무장관에 임명되더라도 소환조사가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조 후보자를 부를 수 있는 인물이다. 압수수색을 단행했을 때부터 ‘윤 총장, 조 후보자 둘 중 하나가 옷을 벗어야 끝나는 싸움’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수사를 시작했다.”
“윤석열은 중수부 검사다”
조 후보자 사건이 마무리되더라도 또 하나의 큰 산이 남아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등 검찰 개혁안이 그것이다. 지난 8월에 있었던 윤 총장의 첫 인사에서 결국 옷을 벗고 나온 검찰 출신 변호사는 “검찰이 너무 빨리 압수수색을 단행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면서 “윤 총장이 조 후보자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밝혔다. 즉, 윤 총장이 조 후보자 사건을 기회 삼아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안에 불복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난해 6월 조국 당시 민정수석,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박상기 법무장관이 만나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대한 합의문을 발표했다. 이때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이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만나 합의 내용을 보여줬다. 윤 지검장은 이에 반발해 다음 날 출근하지 않았다. 검찰 개혁안에 대한 윤 총장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러나 윤 총장이 검찰총장에 오르면서 검찰 개혁안의 큰 그림에는 동의했다고 한다. 다만 검찰의 특수수사 기능에 대해서는 절대 양보하지 않았다고 한다. 윤 총장은 특수통 검사를 넘어 ‘중수부’ 검사다. 권력형 비리를 수사하는 일본 도쿄지방검찰청의 특수부를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은 검찰 지상주의자다”
경찰은 윤 총장이 검찰권력을 지키기 위해 항명도 불사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역대 총장 중 처음으로 경찰청을 방문했으며, 퇴임 즈음에도 또 한 번 방문했다. 그러나 윤 총장은 임명되고 40일이 넘도록 아직까지 한 번도 경찰청을 찾지 않았다. 경찰과는 협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면서 “김광준 검사 뇌물 사건을 맡았던 김수창 당시 특임검사가 ‘검찰은 의사, 경찰은 간호사’라는 식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윤 총장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은 생각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검찰 비리에 대한 수사가 가능한 공수처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기 위해 범죄정보과를 확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단독]경찰, 공수처 신설 앞두고 '범죄정보과' 강화" 기사 참조).
“윤석열은 ‘전두환’ 스타일이다”
윤 총장이 검찰 개혁안에 대해 딴지를 걸고 나올 경우 문재인 정부는 최후의 수단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인사권을 휘두르는 것이다. 이미 조 후보자 사건으로 윤 총장에 대한 여당의 신뢰는 바닥까지 추락한 상태다.
그렇다고 해서 윤 총장에게 직접 칼을 들이댈 수는 없다. 여당은 윤 총장의 인사청문회에서 터진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 사건을 적극 방어하며 윤 총장을 ‘검찰 개혁의 적임자’로 치켜세웠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여당 중진의원은 “윤 총장은 컨트롤이 되지 않는 인물이다. 앞으로도 조 후보자 사건 같은 경우가 반복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내년부터는 총선을 시작으로 대선 등 본격적인 선거 국면이 시작되는데, 윤 총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면서 “그렇다고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윤 총장을 앉혀놨는데 우리 손으로 해임할 수는 없다. 결국 윤 총장의 손발을 잘라야 한다. 내년 인사에서 대검과 중수부에 있는 ‘윤석열 사단’을 지방으로 좌천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에서도 여당의 이와 같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한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검 관계자는 “윤 총장은 자리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측근들을 좌천시키면 윤 총장도 미련 없이 사표를 쓸 것이다. 윤 총장은 퇴임 후를 준비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윤 총장의 절친인 남기춘 전 서부지검장은 옷을 벗은 후 초야에 묻혀 지낸다. 윤 총장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면서 “윤 총장이 사표를 쓰는 순간 검찰 고위 간부는 물론 평검사까지 줄사표를 쓸 수 있다. 이른바 ‘검란’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 총장은 후배나 부하 직원들을 끝까지 책임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윤 총장의 선배기수로 이번 인사에서 옷을 벗은 전직 검찰 고위 간부는 “윤 총장은 ‘전두환(전 대통령)’ 같은 스타일이다. 보스형 지도자로 자기 사람은 꼭 챙긴다. 현재 윤 총장의 비서실장은 2000년대 초반 중수부에서 함께 고생했던 수사관이다. 대검 사무국장으로 임명된 강진구 수원고검 사무국장은 윤 총장이 대구·대전고검을 전전할 때 윤 총장을 살뜰히 챙겼던 사람이다. 이렇다 보니 후배, 부하 직원이 윤 총장을 끝까지 따르는 것”이라면서 “검찰 내에서 윤 총장에 대한 신뢰는 문재인 정부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명심해야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전략적 요충지 대한민국, 미국의 전략무기 판매처인가
[복지국가SOCIETY] 한·미 간 기울어진 운동장, 바로잡을 용기가 필요하다
2019.09.09 10:48:56
동북아시아의 패권국가로 자리매김하려는 일본이 대한민국을 자신의 통제권에 묶어둘 의도로 시작된 경제 침략을 계기로 우리는 대한민국의 객관적 위상을 확인할 계기를 마주하게 되었다.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수출절차 우대 국가)에서 제외해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함으로써 경제 성장을 가로막고자 하는 의도는 오히려 자주독립 국가에 대한 우리 국민의 자각을 촉발케 해 새로운 변화의 동력이 만들어지고 있다.
전략적 요충지 대한민국, 미국의 전략무기 판매처인가
일본이 도발한 경제 전쟁 대응으로 자발적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전 국민적으로 진행되었고, 정부는 부품·소재·장비의 국산화와 수입 다변화를 위해 가능한 최대의 지원 강화를 약속하고 있다. 나아가 정부는 동북아시의 패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의 강력한 요구로 맺었던 한·일 간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함으로써 미·일의 반발을 사고 있다. 오랫동안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불평등한 관계를 감내해왔던 과거의 틀을 벗어나 이제 새로운 한·미·일 군사 관계를 모색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해방 이후 74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분단과 한국 전쟁, 휴전과 분단의 고착화, 냉전의 지속과 지난한 군비 경쟁 등으로 한반도는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이자 화약고로 자리매김 되었고, 강대국의 정략적 이익 쟁탈전이 전개되는 슬프고도 초라한 운명이 지속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남·북의 경제적 공동 번영을 추구하기 위해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철저하게 단절시킨 남·북 관계를 복원하고, 심혈을 기울여 몇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는 상황을 만들어냈지만, 수십 년 동안 지속된 냉전의 벽을 일거에 허물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임을 확인하게 된다.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남·북의 진지한 노력이 미국의 국익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약소국의 슬픈 운명을 걷어내기 위한 열정적인 노력이 지속되지 않으면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남·북의 공동 번영은 찬란한 환상에 그칠 뿐임을 실감할 것이다. 비무장 지대를 평화 공원으로 조성하고, 둘레길을 만들어 시민의 방문을 허용하고, 남·북 간의 다양한 민간 교류를 추진하는 것이 장기적 관점에서 한반도에 평화통일 국가를 건설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될지는 몰라도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은 미국의 거대 군산복합체의 압력이다. 진실로 지난한 과제라는 사실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수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정착에 합의하여 점차적으로 군비 축소를 이행하기로 합의했지만 조기경보기가 도입되고, 대당 가격 1000억 원이 넘는 최신예 전투기인 F35 스텔스전투기 40여 대가 도입되는 현실이 한반도에 평화 정착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누구의 의도인지 확인하지 않아도 남·북 사이에 긴장이 조성된 이후에는 언제나 미국으로부터 첨단 군사무기를 도입하는 모습이 지난 수십 년 동안 반복적으로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조야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미국에 전혀 불리하지 않다"며 즐거운 미소를 짓는 모습에 안타까움만 배가될 뿐이다.
북한의 1년 국방 예산이 1조 원이고, 2020년 대한민국의 국방 예산(안)은 50조 원이 넘는다. 우리나라는 이 국방 예산 중의 상당액을 미국으로부터 무기를 구입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의 주류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강조하고, 자주 국방의 실현을 강조하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극대화하며 한반도를 미국의 군사 무기 판매처로 전락시키고 있다.
주한미군의 성격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필요하다
일본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한 이후 청와대 게시판에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개정을 청원하는 글이 올라왔다. 분명한 것은 과거와 달리 아주 많은 한국인이 주한미군의 주둔이 단순히 대한민국을 북한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만이 아님을 깨달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1945년 일본이 연합군에 패망하여 대한민국이 일본의 식민 지배로부터 벗어난 시점에 미군은 대한민국 해방을 위해서 한반도에 진주한 것이 아니라, 무주공산이 되어버린 한반도에 소련이 진주하는 것을 막아내고 승전국의 전리품을 챙기고자 점령군으로 한반도에 발을 들여놓았다. 실제로 태평양 사령관이던 맥아더는 대한민국에 진주하면서 "나의 지휘 하에 있는 승리에 빛나는 군대는 금일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영토를 점령한다"라는 포고령 1호를 통해 스스로 점령군임을 분명히 했고, 북위 38도 이남을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6개 조의 점령 조건을 발표했다.
미군 또는 미군이 중심이 된 유엔군이 한반도에 진주한 이래로 과연 점령군의 지위를 포기한 적이 있었는지를 묻고 싶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핵심은 점령군인 미군이 군사상 한반도를 효과적으로 통치 또는 실효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실제로 그것이 주둔군 지위 협정(SOFA)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미국은 1년 주한미군 주둔 지원비가 1조380여억 원임에도, 그리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미군 기지를 무상으로 공여 받고 있음에도 주둔비가 적다며 4~5배나 더 늘려줄 것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제 주한미군의 주둔 목적과 한반도 평화 정착 간의 연관성을 명확히 밝히는 일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주독립 국가의 위상을 회복해야 한다
냉전 체제의 완결을 가져온 한반도의 남·북 전쟁은 주권 국가의 군사적 지위를 상실한 채 전쟁이 끝난 지 66년이 지나고 있음에도 미군으로부터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가져오지 못한 상태로 이어졌다. 이는 곧 자주 국방의 실현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한미 군사 동맹으로 인해 한국은 매년 수십 조 원의 국방 예산을 투여하고 있음에도 자주 국방은커녕 독자적 군사 작전을 전개하지도 못하는 반쪽 국방 정책을 수행하고 있고, 남·북 간에 맺어진 군사 합의조차 미국의 허가를 받지 못하면 무용지물이 되는 상황에 처했다.
한국은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 경제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한 내용을 이행하기 위해 남·북 사이에 끊어져 있는 도로와 철도를 연결하려고 해도 미국의 동의가 없어서 이를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 또, 관련 현황을 조사하기 위해 판문점을 넘어가려고 해도 미국의 동의가 없으면 불가능한 상황을 종종 마주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오랫동안 단절돼 있던 남·북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운전자론'을 주창했지만,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해 북·미 사이에서 중재자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독자성을 상실한 상태에서 운전자론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전진은 가로막힐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국과 대한민국을 갑과 을의 관계로 규정해서 한국으로 하여금 미국의 일방통행식 요구를 이행함을 강제하는 비자주적이며 불평등한 관계는 바꿔야 마땅하다.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남·북의 경제적 공동번영이라는 과제를 이행하기 위해서도 자주독립 국가로서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주권 국가의 지위를 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전시작전권을 이양하고도 지금과 같은 막강한 갑의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한반도의 모든 군사 작전을 유엔사의 지휘 하에 두려는 미국의 정책 방향은 "주한미군이 한반도의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패권국가 또는 세계 방위군으로서 미국의 영향력을 공고하게 유지하기 위한 미국의 군사 전략에 근거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제 이념의 덫에서 벗어나야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면 반국가단체의 이익을 주장한다며 국가보안법에 의해 처벌을 받고 강제로 입이 봉해지는 오랜 세월을 감내했어야 했다. 그런데 세상이 변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대중이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것이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공동 번영에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인지, 주한미군 철수 주장이 게 눈 감추듯 사라져버렸다. 아마도 시민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미국과 대한민국의 갑과 을의 관계가 명확히 규정돼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미국이 스스로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는 결정을 내리지 않는 한, 우리의 요구에 의해 주한미군이 철수할 수 없다는 객관적 사실을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당장 미군을 철수시켜 오랫동안 유지되었던 질서를 일거에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도 그런 결정에 기여했음직하다.
따라서 지금은 주한미군의 철수를 논의하기보다는 한반도의 비핵화와 남·북의 공동 번영을 도모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을 이행하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동등한 두 주권 국가의 조약으로 개정하는 것, 그에 부속된 주둔군 지위 협정(SOFA)을 대한민국의 국익을 철저히 보호하는 방향으로 개정하는 것, 전시작전통제권을 인수받아 자주독립 국가의 지위를 확보하는 것, 남·북 관계를 미국의 통제가 아닌 우리 스스로의 결정과 집행으로 변화·발전이 가능한 조건을 확보하는 것 등이 우리 앞에 놓인 과제임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열강의 패권적 경쟁 속에서 만들어진 수십 년 전의 냉전 체제가 여전히 우리의 생명줄을 쥐락펴락 하고 있는 상황을 혁파해야만 우리 민족의 미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이념의 주인이어야 하고, 이념은 인간의 행복을 구현하는 수단이어야 한다. 그런데 냉전 체제의 유물인 분단 체제가 여전히 우리 민족을 이념의 덫에 가두어두고 있다. 다른 나라의 정치 지도자들은 국익을 우선하면서 누가 국익 실현의 적임자인지를 경쟁하는데, 우리나라의 정치 지도자들은 국익을 팽개치고 여전히 이념의 노예가 되어 토굴 속에서 헤매고 있는 모습이다.
독재자들과 소수의 지배 기득권층이 국가보안법을 통해 진실이 알려지는 것을 철저하게 가로막아 왔지만, 낭중지추라는 말처럼 국익을 옹호하는 진실이 차분하게 드러나서 전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수십 년 동안 민족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했지만, 이제 ‘신 독립 운동’을 통해 대한민국이 온전하게 정의로운 자주독립 국가로 거듭남으로써 민족적 자긍심이 전 국민의 가슴 속에 굳건히 뿌리내리기를 간절하게 기대하는 마음이다. '무기를 녹여 보습을 만들자'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수십 조 원의 국방비를 시민 행복을 위한 복지 용도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를 명확히 했으면 좋겠다.
그렇소, 우린 사회주의자요. 아직? 아니 지금이야말로!
[장석준 칼럼] '기회의 공정'은 허구, '보편적 평등' 외치자
2019.09.10 11:14:37
2주 전에 조국 법무부장관 지명자를 둘러싼 논란에 글 한 편을 보탰는데, 법무부장관 임명 절차가 끝난 지금도 이 논란의 여진이 가실 줄 모른다. 그만큼 역사적인 논쟁이었다. 이 나라 시민이면 누구나 찬성인지 반대인지 답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였고, 평소 사회과학자들이 내놓는 진단 못지않은 무게 있는 이야기들이 저마다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게다가 조국 지명자가 발단이 된 논란임에도 화제가 너무나 광범하게 확산됐다. 마치 대한민국의 문제라는 문제는 다 불거져 나오는 듯싶었다. 검찰 공화국의 어둔 속살이 새삼 조명됐고, 입시 논란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불공정 경쟁을 향한 불만으로 이어지더니 마침내는 '계급'이라는 단어까지 튀어나오게 만들었다. 이야기 거리가 너무 많아 탈인 지난 한 달이었다.
하지만 그 많은 기사와 분석, 담론과 행동들 속에서도 내게는 비어 있는 뭔가가 더 도드라져보였다. '있는 것'이 너무 많아 문제인 시국이었지만, 도리어 '없는 것' 하나가 더 눈에 들어왔다. 내가 보기에는 이 '없는 것' 한 가지 때문에 그 수많은 '있는 것'들이 전부 변죽만 울리고 있었다. '없는' 그것이 '있는' 모두를 텅 빈 존재로 만드는 꼴이었다.
생각만 해도 어지럽고 복잡했던 조국 지명자 논란에서 도대체 무엇이 비어 있었다는 말인가?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도드라져 보인 조국 논란
조국 장관 지지자들은 하나같이 검찰 개혁 필요성을 앞세웠다. 검찰이 뜻밖에 법무부장관 지명자 가족 수사에 들어가고 언론에 수사 내용을 흘리자 이 목소리는 더욱 격해졌다. 이런 그들에게 조국 지명자 가족의 삶에서 드러난 중산층 지위 세습에 대한 분노는 검찰 개혁이라는 다급한 과제에 비하면 투정에 불과했다. 서울대, 고려대 등에서 벌어진 촛불 시위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길이 대체로 그러했다.
그런데 정녕 검찰이라는 비선출직 관료 권력을 개혁하길 바란다면, 엘리트 계층의 특권 세습에 반발하는 외침에 과연 그토록 거리감을 느껴야 했을까? 둘 다 민주공화국의 규범에 어긋나는 엘리트층의 존재 방식과 영향력에 맞서고 있지 않은가? 동일한 최상층을 조준하면서도 서로 동지라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반면 조국 장관 비판자들(자유한국당 열혈 지지자들은 제외하고)은 무엇보다 편법이나 반칙이라 생각되는 방식으로 자녀에게 학벌을 세습하는 행태를 참을 수 없어 했다. 특히 젊은 세대는 여기에서 자신들도 참여하고 있는 입시-취업 경쟁의 불공정성을 보았다. "과정은 공정할 것"이라던 문재인 정부의 약속이 정권 핵심 인물 혹은 주된 지지층에 의해 배반되는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급기야는 최순실-정유라를 상기하며 촛불까지 들었다.
그런데 불만의 목소리는 '공정성'이라는 한 단어만을 맴돌았다. 이와 겨룰만한 다른 말들은 좀처럼 출현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최상위권 대학 입시 경쟁에 함께 뛰어들었던 이들만 불만의 주역인 듯 보였다. 그 경쟁에 아예 끼어들지 못한 훨씬 더 많은 이들은 '공정한 경쟁'을 외치는 자리에서 왠지 낯설음을 느껴야 했다.
어느 쪽이든 뭔가 겉도는 것만 같았다. 전에 없던 말의 성찬이 벌어졌는데 정작 꼭 필요한 말은 빠져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양편 모두 자신의 한계는 보지 못한 채 상대방의 맹점만을 손가락질했다. 서로가 서로의 꼬리를 물며 어지럽게 제자리를 돌기만 했다.
비어 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보편적 평등을 요구하는 거대한 이념-운동이었다. 경쟁은 공정해야 한다고 부르짖는 게 아니라 경쟁을 통해 사다리 위쪽으로 올라가야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구조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흐름이 안 보였다. 검찰 엘리트와 강남 중산층이 1등 시민이 되고 나머지는 2등 시민이 되는 현실을 뒤집는 게 진짜 개혁이라고 밝히는 흐름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만약 이런 이념-운동이 강력히 존재했다면, 이번 논란은 사뭇 다르게 전개됐을 것이다.
실은 이런 방향의 문제제기들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입시 경쟁 공정성이 아니라 대학 서열 구조를 문제 삼는 눈 밝은 이들이 있었다. 공정성에 대한 집착이 실은 사이비 평등주의인 능력주의의 표현일 뿐이라는 시원스런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주장이 거대한 흐름으로까지 대두하지는 못했다. 그리하여 지난 한 달 우리의 언어는 지나치게 풍성한 듯싶으면서도 실은 빈곤하기 그지없었다.
따지고 보면 이게 자본주의의 당연한 광경일지 모른다. 돈만 많으면 타인을 마음껏 지배해도 되는 사회에서 만인은 평등하다는 명제만큼 허망한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또한 시험만 잘 보면, 학력(=학벌) 증서만 갖추면, 돈 많은 자들 대열의 꽁무니에라도 낄 수 있는 사회에서 평등을 외치며 가장 약한 이들과 함께 하자는 게 얼마나 가당치않은 주장인가. 그러니 평등을 주장하는 흐름 따위가 존재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그리고 이런 현실에서 시민의 평등한 권리를 전제하는 민주공화국이란 조만간 빈 껍데기로 전락하고 말 운명이다.
한데 놀라운 일이 있다. 곧바로 무너졌어야 마땅한 민주공화국들이 아직도 그런 식으로 무너지지는 않고 있다. 그것도 우리보다 훨씬 먼저, 더 오래 전부터 자본주의 질서 아래 있는 나라들에서 그렇다. 세대 간 계급 재생산을 거의 처음 경험하는 대한민국과 달리 이미 몇 세대를 계급 사회에서 살아온 대서양 양쪽 나라들 말이다. 물론 속을 들여다보면 다들 삐걱대고 있지만, 그래도 드러내놓고 귀족 지배 체제로 돌아가지는 못하고 있다. 어째서인가?
존재하는 게 더 이상할 그 이념-운동, 즉 보편적 평등을 요구하는 흐름이 이상하게도 존재했기 때문이다. 강력한 노동조합을 결성해 이미 안정된 지위를 얻은 노동자들이 그런 권리의 확대를 요구하기란 힘든 일이다. 우리도 겪어서 아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운동이 자라났다.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대학 졸업장을 갖춘 지식인들이 가장 취약한 처지에 있는 이들의 삶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란 힘든 일이다. 우리에게도 상식이다. 그런데 그런 이념이 확산됐다. 이런 뜻밖의 이념-운동이 출현한 덕분에 민주공화국들은 속절없이 후퇴하지는 않을 수 있었다.
더구나 이 이념-운동에 참여하면서 사람들은 진정 자유로운 개인이 되는 길은 체제가 가르쳐준 바와는 달리 경쟁이 아님을 터득했다. '경쟁'의 자리에 들어가야 할 다른 말은 '연대'였다. 경쟁이 지배하는 시장도 아니고 명령의 세계인 국가도 아닌 사회 연대 속에서 마침내 대중의 상당수는 결코 낙오됨 없이(평등하게) 자신일 수 있는(자유로울 수 있는) 길을 발견했다.
그래서 이 이념-운동에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이름 하나가 붙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주요 정치세력 중 오직 자유한국당만 쉽게 내뱉는 말, 지금도 한국 사회에서는 일상어가 되기에 부적합하다고 치부되는 말, '사회주의'가 그것이다.
보편적인 평등을 요구하는 거대한 이념-운동의 부재
이번 논란에서 '사회주의'라는 말이 전혀 등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맨 처음과 마지막에 잠깐 출몰했다. 조국 지명자의 전력을 들먹이는 극우 언론 지면에 잠시 나타났고, 인사청문회 끝 무렵에 자유한국당 의원과 지명자 사이에 오간 공방에서도 언급되고 지나갔다.
그러나 논란의 중요한 쟁점들과 섞이지 못한 사회주의란 지나간 옛 추억의 어휘에 다름 아니었다. 누군가 이 네 음절을 발음하더라도 관료 권력 해체나 특권 세습 타파 같은 현안과는 별 관련이 없다고 치부되는 죽은 언어에 불과했다.
한국 사회에서 이 말이 어찌 이 모양이 됐을까? 따지고 보면, 여기에 86세대 지식인-운동가 상당수가 이 사회에 남긴 가장 커다란 잘못이 있다. 이른바 세대론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내가 염두에 둔 것은 지성사다. 한국 지성사에서 86세대에 속하는 한 무리의 지식인-운동가들은 이후 한국 사회의 숱한 가능성을 제약하게 될 커다란 구멍 하나를 남겨놓았다. 그것은 사회주의의 부재라는 구멍이다.
1980년대에 일단의 젊은이들은 어쩌면 너무 쉽게 사회주의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1990년대에 이들은 그보다도 더 쉽게 사회주의를 폐기해버렸다. 그들은 소련, 중국, 북한의 국정 교과서에 정리된 교조적 체계를 정통 사회주의라며 수입했다. 그러더니 현실사회주의권이 무너지자 자신들이 받아들인 교과서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전체를 내다 버렸다. 덕분에 한국 사회에서는 '사회주의'라면 여전히 대중의 살림살이와는 거리가 먼, 한물간 외국 이론을 뜻할 뿐이다. 이것은 결코 유서 깊은 반공 교육만의 업적은 아니다.
사회주의가 이런 어두컴컴한 구멍으로만 남은 한국 사회에서는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던가? 이 말이 절실히 필요한 이들이 오래도록 무장 해제 상태에 있어야 했다. 그들은 가장 뚜렷하면서도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표어 없이 자신들의 요구를 정리해야 했다. 그것은 저마다의 권리 확대가 어떻게 사회 전체의 전진으로 이어지는지 도무지 알아챌 수 없는 기다란 목록에 불과했다. 잘못 읽으면 그것은 어느 항목이 더 위에 있어야 하는지를 놓고 끝없이 다퉈야 하는 화근 덩어리일 수도 있었다. 말하자면 저항자들은 그들이 반드시 갖춰야 할 독자적 세계관을 박탈당했다.
물론 '사회주의'라는, 어쩌면 역사의 온갖 피딱지와 오물이 덕지덕지 붙은 네 음절에 지나치게 집착할 일은 아닐지 모른다. 평등한 자유의 실현과 그 기본 전제인 사회 연대를 표현할 다른 말을 고안해낼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런 대체 용어가 아직 준비돼 있지 못하다면, 우리는 감히 이 오래된 표지를 내세우길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구멍은 메꿔지고, 다람쥐 쳇바퀴 돌던 말들은 재정리돼야 한다. 다시 "그렇소, 우리는 사회주의자요"라고 말하기 시작해야 한다.
1단계 혁명이니 2단계 혁명이니 하는 번잡한 논의를 되살리자는 게 아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니 전위정당이니 하는 낡은 개념들을 다시 시험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재정 확장을 통해 기초연금을 지금 당장 최소한 50만원은 넘게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고, 입시제도나 끝없이 뜯어고칠 일이 아니라 대학 평준화를 단행해야 한다는 것이며, 학력과 성별, 고용 형태와 기업 규모에 따른 임금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하고 있는 주장들이다. 그래서 반문하기도 한다. 86세대에 가까운 지식인-운동가일수록 더욱 강한 어조로 반문한다. "뭣 하러 이런 구체적 요구들에 '사회주의'란 딱지를 덧붙여 논란이나 공격만 자초하려 하는가?" 심지어는 진보정당 안에서도 분위기는 다르지 않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러한 '표지'다. '이름'이다. '깃발'이다. 상징 자원이 빈곤한 이들일수록 이런 자신만의 상징은 참으로 소중하다. 당장에 다른 표지를 내놓지 못할 바에는 이미 있는 표지를 내세우려는 노력을 뒤로 미루거나 가로막아선 안 된다. 경쟁의 공정성이 아닌 평등 사회 실현을 대변할 표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주장을 구구절절 부연하지 않아도 한 마디로 요약할 표지,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이 자신들이야말로 부자와 권력자들보다 더 민주공화국에 어울리는 존재임을 자부할 뒷심이 되는 표지. 지난 200여 년 동안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이런 역할을 했던 '사회주의'가 대한민국에서만 그러지 못할 이유가 있는가.
더는 진실에서 눈을 돌리지 말자. 헬조선은 자본주의의 과잉 탓이 아니다. 오직 한 가지 결핍이 지옥을 더욱 지옥으로 만들고 있다. 그것은 대중적인 사회주의 운동의 부재다.
그렇소, 우리는 사회주의자요 – 아직도? 아니 지금이야말로!
한국 사회가 조국 대전으로 한창 시끄러울 때에 인터넷에는 한 유명 저자의 신간 광고가 떴다. 금융화 이후 전 지구적인 자산 격차 심화와 그에 따른 불평등 구조를 비판한 <21세기 자본>(장경덕 옮김, 글항아리, 2014)의 저자 토마 피케티가 새 책을 냈다는 것이었다. 제목은 '자본과 이데올로기'. 국내 언론도 이 책이 기본소득제를 넘어 기본자산제 같은 정책 제안을 담고 있다며 발 빠르게 소개 기사를 냈다.
그런데 내년 출간이 예정된 영역본의 소개글을 보면, 피케티는 새 책에서 자신의 정책 제안들을 아울러 "참여에 바탕을 둔 사회주의"라 제시한다 한다. 책을 직접 읽지 않았으니 단정하기는 이르나 소개글에서 이 점을 강조한 것 자체가 시대 정신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지금까지 두 세기 동안 민주공화국들의 죽음을 저지한 힘은 이 표지 아래 모였던 보통 사람들의 불굴의 노력이었음을 세계 곳곳에서 다시 환기하고 있다는 징표이고, 신자유주의의 쇠퇴 이후 역사의 후퇴를 저지하려면 이 힘을 부활시키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음을 자각하고 있다는 징표다.
이제 한국 사회도 이 보편적인 흐름에 합류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지구 자본주의라는 보편성만 받아들인 채 그에 맞설 사회주의라는 보편성과 한사코 거리를 둔다면, 우리는 검찰 공화국, 강남 공화국, 삼성 공화국이라는 가장 보편적이지 않은 현실을 대대손손 등에 지고 살아야 할 운명이다.
나는 그렇게 살기 싫다. 더 많은 '우리'도 같은 생각이리라 믿는다. 그래서 이제껏 어리석게 참아온 만큼 앞으로는 더욱 시끄럽게 떠들려 한다. 한국 사회에도 드디어 거대한 흐름이 되어 나타나도록 지겹게 외치려 한다. 보편적 평등의 약속, 경쟁이 아닌 연대라는 출구, '사회주의'를 말이다.
게다가 조국 지명자가 발단이 된 논란임에도 화제가 너무나 광범하게 확산됐다. 마치 대한민국의 문제라는 문제는 다 불거져 나오는 듯싶었다. 검찰 공화국의 어둔 속살이 새삼 조명됐고, 입시 논란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불공정 경쟁을 향한 불만으로 이어지더니 마침내는 '계급'이라는 단어까지 튀어나오게 만들었다. 이야기 거리가 너무 많아 탈인 지난 한 달이었다.
하지만 그 많은 기사와 분석, 담론과 행동들 속에서도 내게는 비어 있는 뭔가가 더 도드라져보였다. '있는 것'이 너무 많아 문제인 시국이었지만, 도리어 '없는 것' 하나가 더 눈에 들어왔다. 내가 보기에는 이 '없는 것' 한 가지 때문에 그 수많은 '있는 것'들이 전부 변죽만 울리고 있었다. '없는' 그것이 '있는' 모두를 텅 빈 존재로 만드는 꼴이었다.
생각만 해도 어지럽고 복잡했던 조국 지명자 논란에서 도대체 무엇이 비어 있었다는 말인가?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도드라져 보인 조국 논란
조국 장관 지지자들은 하나같이 검찰 개혁 필요성을 앞세웠다. 검찰이 뜻밖에 법무부장관 지명자 가족 수사에 들어가고 언론에 수사 내용을 흘리자 이 목소리는 더욱 격해졌다. 이런 그들에게 조국 지명자 가족의 삶에서 드러난 중산층 지위 세습에 대한 분노는 검찰 개혁이라는 다급한 과제에 비하면 투정에 불과했다. 서울대, 고려대 등에서 벌어진 촛불 시위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길이 대체로 그러했다.
그런데 정녕 검찰이라는 비선출직 관료 권력을 개혁하길 바란다면, 엘리트 계층의 특권 세습에 반발하는 외침에 과연 그토록 거리감을 느껴야 했을까? 둘 다 민주공화국의 규범에 어긋나는 엘리트층의 존재 방식과 영향력에 맞서고 있지 않은가? 동일한 최상층을 조준하면서도 서로 동지라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반면 조국 장관 비판자들(자유한국당 열혈 지지자들은 제외하고)은 무엇보다 편법이나 반칙이라 생각되는 방식으로 자녀에게 학벌을 세습하는 행태를 참을 수 없어 했다. 특히 젊은 세대는 여기에서 자신들도 참여하고 있는 입시-취업 경쟁의 불공정성을 보았다. "과정은 공정할 것"이라던 문재인 정부의 약속이 정권 핵심 인물 혹은 주된 지지층에 의해 배반되는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급기야는 최순실-정유라를 상기하며 촛불까지 들었다.
그런데 불만의 목소리는 '공정성'이라는 한 단어만을 맴돌았다. 이와 겨룰만한 다른 말들은 좀처럼 출현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최상위권 대학 입시 경쟁에 함께 뛰어들었던 이들만 불만의 주역인 듯 보였다. 그 경쟁에 아예 끼어들지 못한 훨씬 더 많은 이들은 '공정한 경쟁'을 외치는 자리에서 왠지 낯설음을 느껴야 했다.
어느 쪽이든 뭔가 겉도는 것만 같았다. 전에 없던 말의 성찬이 벌어졌는데 정작 꼭 필요한 말은 빠져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양편 모두 자신의 한계는 보지 못한 채 상대방의 맹점만을 손가락질했다. 서로가 서로의 꼬리를 물며 어지럽게 제자리를 돌기만 했다.
비어 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보편적 평등을 요구하는 거대한 이념-운동이었다. 경쟁은 공정해야 한다고 부르짖는 게 아니라 경쟁을 통해 사다리 위쪽으로 올라가야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구조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흐름이 안 보였다. 검찰 엘리트와 강남 중산층이 1등 시민이 되고 나머지는 2등 시민이 되는 현실을 뒤집는 게 진짜 개혁이라고 밝히는 흐름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만약 이런 이념-운동이 강력히 존재했다면, 이번 논란은 사뭇 다르게 전개됐을 것이다.
실은 이런 방향의 문제제기들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입시 경쟁 공정성이 아니라 대학 서열 구조를 문제 삼는 눈 밝은 이들이 있었다. 공정성에 대한 집착이 실은 사이비 평등주의인 능력주의의 표현일 뿐이라는 시원스런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주장이 거대한 흐름으로까지 대두하지는 못했다. 그리하여 지난 한 달 우리의 언어는 지나치게 풍성한 듯싶으면서도 실은 빈곤하기 그지없었다.
따지고 보면 이게 자본주의의 당연한 광경일지 모른다. 돈만 많으면 타인을 마음껏 지배해도 되는 사회에서 만인은 평등하다는 명제만큼 허망한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또한 시험만 잘 보면, 학력(=학벌) 증서만 갖추면, 돈 많은 자들 대열의 꽁무니에라도 낄 수 있는 사회에서 평등을 외치며 가장 약한 이들과 함께 하자는 게 얼마나 가당치않은 주장인가. 그러니 평등을 주장하는 흐름 따위가 존재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그리고 이런 현실에서 시민의 평등한 권리를 전제하는 민주공화국이란 조만간 빈 껍데기로 전락하고 말 운명이다.
한데 놀라운 일이 있다. 곧바로 무너졌어야 마땅한 민주공화국들이 아직도 그런 식으로 무너지지는 않고 있다. 그것도 우리보다 훨씬 먼저, 더 오래 전부터 자본주의 질서 아래 있는 나라들에서 그렇다. 세대 간 계급 재생산을 거의 처음 경험하는 대한민국과 달리 이미 몇 세대를 계급 사회에서 살아온 대서양 양쪽 나라들 말이다. 물론 속을 들여다보면 다들 삐걱대고 있지만, 그래도 드러내놓고 귀족 지배 체제로 돌아가지는 못하고 있다. 어째서인가?
존재하는 게 더 이상할 그 이념-운동, 즉 보편적 평등을 요구하는 흐름이 이상하게도 존재했기 때문이다. 강력한 노동조합을 결성해 이미 안정된 지위를 얻은 노동자들이 그런 권리의 확대를 요구하기란 힘든 일이다. 우리도 겪어서 아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운동이 자라났다.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대학 졸업장을 갖춘 지식인들이 가장 취약한 처지에 있는 이들의 삶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란 힘든 일이다. 우리에게도 상식이다. 그런데 그런 이념이 확산됐다. 이런 뜻밖의 이념-운동이 출현한 덕분에 민주공화국들은 속절없이 후퇴하지는 않을 수 있었다.
더구나 이 이념-운동에 참여하면서 사람들은 진정 자유로운 개인이 되는 길은 체제가 가르쳐준 바와는 달리 경쟁이 아님을 터득했다. '경쟁'의 자리에 들어가야 할 다른 말은 '연대'였다. 경쟁이 지배하는 시장도 아니고 명령의 세계인 국가도 아닌 사회 연대 속에서 마침내 대중의 상당수는 결코 낙오됨 없이(평등하게) 자신일 수 있는(자유로울 수 있는) 길을 발견했다.
그래서 이 이념-운동에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이름 하나가 붙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주요 정치세력 중 오직 자유한국당만 쉽게 내뱉는 말, 지금도 한국 사회에서는 일상어가 되기에 부적합하다고 치부되는 말, '사회주의'가 그것이다.
보편적인 평등을 요구하는 거대한 이념-운동의 부재
이번 논란에서 '사회주의'라는 말이 전혀 등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맨 처음과 마지막에 잠깐 출몰했다. 조국 지명자의 전력을 들먹이는 극우 언론 지면에 잠시 나타났고, 인사청문회 끝 무렵에 자유한국당 의원과 지명자 사이에 오간 공방에서도 언급되고 지나갔다.
그러나 논란의 중요한 쟁점들과 섞이지 못한 사회주의란 지나간 옛 추억의 어휘에 다름 아니었다. 누군가 이 네 음절을 발음하더라도 관료 권력 해체나 특권 세습 타파 같은 현안과는 별 관련이 없다고 치부되는 죽은 언어에 불과했다.
한국 사회에서 이 말이 어찌 이 모양이 됐을까? 따지고 보면, 여기에 86세대 지식인-운동가 상당수가 이 사회에 남긴 가장 커다란 잘못이 있다. 이른바 세대론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내가 염두에 둔 것은 지성사다. 한국 지성사에서 86세대에 속하는 한 무리의 지식인-운동가들은 이후 한국 사회의 숱한 가능성을 제약하게 될 커다란 구멍 하나를 남겨놓았다. 그것은 사회주의의 부재라는 구멍이다.
1980년대에 일단의 젊은이들은 어쩌면 너무 쉽게 사회주의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1990년대에 이들은 그보다도 더 쉽게 사회주의를 폐기해버렸다. 그들은 소련, 중국, 북한의 국정 교과서에 정리된 교조적 체계를 정통 사회주의라며 수입했다. 그러더니 현실사회주의권이 무너지자 자신들이 받아들인 교과서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전체를 내다 버렸다. 덕분에 한국 사회에서는 '사회주의'라면 여전히 대중의 살림살이와는 거리가 먼, 한물간 외국 이론을 뜻할 뿐이다. 이것은 결코 유서 깊은 반공 교육만의 업적은 아니다.
사회주의가 이런 어두컴컴한 구멍으로만 남은 한국 사회에서는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던가? 이 말이 절실히 필요한 이들이 오래도록 무장 해제 상태에 있어야 했다. 그들은 가장 뚜렷하면서도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표어 없이 자신들의 요구를 정리해야 했다. 그것은 저마다의 권리 확대가 어떻게 사회 전체의 전진으로 이어지는지 도무지 알아챌 수 없는 기다란 목록에 불과했다. 잘못 읽으면 그것은 어느 항목이 더 위에 있어야 하는지를 놓고 끝없이 다퉈야 하는 화근 덩어리일 수도 있었다. 말하자면 저항자들은 그들이 반드시 갖춰야 할 독자적 세계관을 박탈당했다.
물론 '사회주의'라는, 어쩌면 역사의 온갖 피딱지와 오물이 덕지덕지 붙은 네 음절에 지나치게 집착할 일은 아닐지 모른다. 평등한 자유의 실현과 그 기본 전제인 사회 연대를 표현할 다른 말을 고안해낼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런 대체 용어가 아직 준비돼 있지 못하다면, 우리는 감히 이 오래된 표지를 내세우길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구멍은 메꿔지고, 다람쥐 쳇바퀴 돌던 말들은 재정리돼야 한다. 다시 "그렇소, 우리는 사회주의자요"라고 말하기 시작해야 한다.
1단계 혁명이니 2단계 혁명이니 하는 번잡한 논의를 되살리자는 게 아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니 전위정당이니 하는 낡은 개념들을 다시 시험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재정 확장을 통해 기초연금을 지금 당장 최소한 50만원은 넘게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고, 입시제도나 끝없이 뜯어고칠 일이 아니라 대학 평준화를 단행해야 한다는 것이며, 학력과 성별, 고용 형태와 기업 규모에 따른 임금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하고 있는 주장들이다. 그래서 반문하기도 한다. 86세대에 가까운 지식인-운동가일수록 더욱 강한 어조로 반문한다. "뭣 하러 이런 구체적 요구들에 '사회주의'란 딱지를 덧붙여 논란이나 공격만 자초하려 하는가?" 심지어는 진보정당 안에서도 분위기는 다르지 않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러한 '표지'다. '이름'이다. '깃발'이다. 상징 자원이 빈곤한 이들일수록 이런 자신만의 상징은 참으로 소중하다. 당장에 다른 표지를 내놓지 못할 바에는 이미 있는 표지를 내세우려는 노력을 뒤로 미루거나 가로막아선 안 된다. 경쟁의 공정성이 아닌 평등 사회 실현을 대변할 표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주장을 구구절절 부연하지 않아도 한 마디로 요약할 표지,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이 자신들이야말로 부자와 권력자들보다 더 민주공화국에 어울리는 존재임을 자부할 뒷심이 되는 표지. 지난 200여 년 동안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이런 역할을 했던 '사회주의'가 대한민국에서만 그러지 못할 이유가 있는가.
더는 진실에서 눈을 돌리지 말자. 헬조선은 자본주의의 과잉 탓이 아니다. 오직 한 가지 결핍이 지옥을 더욱 지옥으로 만들고 있다. 그것은 대중적인 사회주의 운동의 부재다.
그렇소, 우리는 사회주의자요 – 아직도? 아니 지금이야말로!
한국 사회가 조국 대전으로 한창 시끄러울 때에 인터넷에는 한 유명 저자의 신간 광고가 떴다. 금융화 이후 전 지구적인 자산 격차 심화와 그에 따른 불평등 구조를 비판한 <21세기 자본>(장경덕 옮김, 글항아리, 2014)의 저자 토마 피케티가 새 책을 냈다는 것이었다. 제목은 '자본과 이데올로기'. 국내 언론도 이 책이 기본소득제를 넘어 기본자산제 같은 정책 제안을 담고 있다며 발 빠르게 소개 기사를 냈다.
그런데 내년 출간이 예정된 영역본의 소개글을 보면, 피케티는 새 책에서 자신의 정책 제안들을 아울러 "참여에 바탕을 둔 사회주의"라 제시한다 한다. 책을 직접 읽지 않았으니 단정하기는 이르나 소개글에서 이 점을 강조한 것 자체가 시대 정신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지금까지 두 세기 동안 민주공화국들의 죽음을 저지한 힘은 이 표지 아래 모였던 보통 사람들의 불굴의 노력이었음을 세계 곳곳에서 다시 환기하고 있다는 징표이고, 신자유주의의 쇠퇴 이후 역사의 후퇴를 저지하려면 이 힘을 부활시키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음을 자각하고 있다는 징표다.
이제 한국 사회도 이 보편적인 흐름에 합류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지구 자본주의라는 보편성만 받아들인 채 그에 맞설 사회주의라는 보편성과 한사코 거리를 둔다면, 우리는 검찰 공화국, 강남 공화국, 삼성 공화국이라는 가장 보편적이지 않은 현실을 대대손손 등에 지고 살아야 할 운명이다.
나는 그렇게 살기 싫다. 더 많은 '우리'도 같은 생각이리라 믿는다. 그래서 이제껏 어리석게 참아온 만큼 앞으로는 더욱 시끄럽게 떠들려 한다. 한국 사회에도 드디어 거대한 흐름이 되어 나타나도록 지겹게 외치려 한다. 보편적 평등의 약속, 경쟁이 아닌 연대라는 출구, '사회주의'를 말이다.
'정치, 국제정세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회적 박탈감'으로 포장된 권력 카르텔의 '반격' - 위기의 본질은 무엇인가 (0) | 2019.09.11 |
---|---|
[전쟁국가 미국·3강] 한국전쟁과 미국의 반공군사주의 (0) | 2019.09.11 |
격랑의 한반도, 불확실성 시대, 한반도가 나갈 길 (0) | 2019.09.06 |
"美는 무조건 일본편.. 남북 합심해 과거사·독도 문제 대응해야" (0) | 2019.09.04 |
트럼프의 방위비 요구가 황당하고 부당한 이유 (0) | 2019.09.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