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격랑의 한반도, 불확실성 시대, 한반도가 나갈 길

일취월장7 2019. 9. 6. 10:06

불확실성 시대, 한반도가 나갈 길  

[창비 주간 논평] 트럼프·아베·김정은·시진핑, 비슷한 전략을?
2019.09.05 09:15:32

한숨이 나온다. 세상이 점점 나빠지는 것 같아서다. 극우의 등장, 시장의 붕괴와 보호무역주의의 부상, 빈부격차의 확대 등 극복했다고 믿었던 문제들이 극단적인 양태로 불거져 나오고 있다. 혹자는 세계를 지배해온 신자유주의의 몰락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미·중을 중심으로 한 패권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이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각 분석의 세부 논점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대부분은 지금 이 시대가 세계사적 전환에 있다는 점에서 의견 일치를 본다. 그리고 상당수는 그 전환의 방향이 디스토피아로 치닫고 있다고 평가한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세계가 어떤 방향으로 가든 한국 사회는 새로운 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희망이 가득했다. 왜냐하면 미국에서 트럼프가 혐오와 적대의 언어를 쏟아내며 대통령이 되고, 영국이 자국민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브렉시트를 통과시켰을 때 한국은 시민의 힘으로 정권을 교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과 러시아에서 권위주의적 지도자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게 되고, 보수화된 일본이 우경화로 치닫고 있을 때 한반도에서는 남북의 지도자가 만나 비핵화와 평화를 약속하고 있었다. 아무리 세상에 어둠이 드리우더라도, 시민의 힘을 확인한 한국 사회만은 쉽사리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너무 낙관했던 것일까? 아니면 한반도 문제가 사실은 세계적 차원의 문제라는 것을 잠시 잊었던 탓일까? '판문점선언' 이후 중요한 고비마다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가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갈등해온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간의 대결 구도가 더욱 복잡해지면서 미래를 예측하기란 더욱 어려워졌다. 강제징용 문제로 촉발된 한일관계 악화는 경제뿐만 아니라 한-미-일로 이어지는 안보동맹의 위기로까지 확산되었으며, 사드 배치의 여파가 여전한 중국과의 관계 개선도 큰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오랫동안 동북아를 지배해온 질서인 동맹의 원리가 국익의 논리로 바뀌는 순간, 한반도 평화를 둘러싼 국제관계는 더욱 미궁으로 빠진다. 

북한과의 관계 또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하노이 회담' 결렬의 원인 제공자로 한국을 지목하고 있는 북한 정권은 문재인 정부를 향한 원색적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거기에 북한이 한미군사훈련에 대한 반발로 수차례에 걸쳐 단거리 탄도미사일 시험에 나서면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하노이회담으로 생채기가 난 김정은 위원장의 절대적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당장 북한이 남한과의 대화에 나서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지금 북한에 가장 중요한 과제는 하노이 회담의 충격을 극복하고, 미국과의 유리한 협상을 통해서 경제를 개선하는 것일 텐데 이 과정에서 남한을 배려할 여유도 없을뿐더러 실익도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복잡해진 동북아 정세에서 북한은 결국 외부의 적을 공격함으로써 내부의 결속력을 다지는 전통적 방식으로의 회귀를 선택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과거 '적'의 자리에 있었던 미국이 협상 대상자가 되었고, 이제 남한이 '적'으로 호명된다는 데 있다. 안보동맹이건 글로벌 밸류체인이건 한동안 공생하며 협력해온 미국과 일본이 국익을 앞세우며 한국에 대한 적대적 감정을 숨기지 않는 것처럼 북한도 체제 안전을 위해서라면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고, 적도 될 수 있음을 공표하는 것이다. 

어쩌면 트럼프와 아베, 김정은과 시진핑은 사실상 비슷한 통치 전략을 펼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시적인 외부의 적을 만들어내고, 혐오와 적대의 언설을 확산하여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방식 말이다. 이 과정에서 내부에 존재하는 의견이나 다중의 개인(들)은 '국가'라는 이름으로, '국익'이라는 가치로 배제된다. 정치적 이념의 스펙트럼과는 상관없이 극단주의적인 사고방식이 횡행하고, 극우적인 자국민 우선주의를 지도자가 직접 나서서 확산한다. 비판적 지식인과 전문가에 대한 광범위한 반감이 조장되고, 대중의 눈과 귀를 현혹한 지도자는 자신의 정치권력 유지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그리 많지 않다. 아무리 촛불시민 정신으로 탄생한 정권이라 하더라도, 쏟아지는 외부의 압박과 이에 정비례하는 내부의 갈등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지금 한국의 선택지는 주변국처럼 되거나 아니면 전혀 다른 패러다임을 구축하여 주변국을 변화시키는 것 두 가지밖에 없다. 단연 쉬운 길은 주변국처럼 되는 것이다. 국가적 위기상황을 강조하며 국민의 단결을 강조하는 것이다. 흔들리는 안보위기는 더 많은 무기 도입과 군사 훈련 등으로 대응하고, 격화되는 경제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라도 잠시 재벌개혁이나 경제 불균형 해소 등은 유보하는 것이다. 점점 격화되는 경제·안보 전쟁에서 살아남는 길은 더욱 강력한 국가를 만드는 일이라고 믿는 것이다.

주변국과 정반대의 길로 나갈 수도 있다. 시민의 힘으로 자국민 중심주의의 폭력성을 제기하고, 국가가 비대해지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평화의 한반도가 정상들의 합의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북 시민들의 교류와 협력에 있다고 믿고 실천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는 세계 곳곳의 시민들과 연대하여 군사적 긴장이나 보호주의 경제정책을 반대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작금의 상황이 인류 모두의 파멸로 귀결될 수 있음을 자성하는 일이다.

한반도 평화를 둘러싸고 외교 난맥이나 정책 실패 등을 지적하는 이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지금 더 큰 문제는 세계사적 전환의 파고 속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피 흘려 쟁취한 시민의식이 국가의 이름으로 탈취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는 국가적 위기 상황을 운운하며, 혐오와 갈등의 감정을 확산하여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모두에 의해서 시도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과 같은 불확실성 시대를 버텨내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시민이 깨어 있는 것이다. 위기의 근원을 꿰뚫어 보는 힘을 길러내는 것이다.     


격랑의 한반도, 우리가 주도하는 외교·안보의 길로

[현안진단] 북한, 미국, 일본 공세 속 흔들리지 말아야
2019.09.04 17:43:59


열강의 對한반도 공세

미·일·중·러가 한국에 대해 거의 동시에 공세를 이어가는 기이한 국면이 조성되고 있다. 그 출발점은 중국이다.

사드 미사일 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에 대해 중국은 관광과 투자, 인적 교류 등 전 방위 차원에서 한국에 대해 보복조치를 취한 바 있다. 그 탓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 관광객은 급감했으며, 롯데마트의 철수 등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직간접적인 타격을 피할 수 없었다. 중국의 보복조치로 인한 피해의 여진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중국의 한국에 대한 공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중국 군용기는 수시로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하고 있으며, 올해 2월 23일에는 처음으로 독도와 울릉도 사이를 무단 진입했다. 7월 23일 중국은 러시아와 한반도 동해에서 사상 첫 공군 합동훈련을 실시했으며, 당시 러시아 정찰기는 2차례 독도 영공을 침범해 한국 전투기가 경고사격을 가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이후 타국의 군용기가 한국의 영공을 무단 침입한 것은 최초의 일이지만, 러시아는 사과는 물론 납득할 만한 해명도 내놓지 않았다.

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문제 삼아 수출규제 조치를 취한데 이어 8월 28일부터 한국을 수출관리 우대 대상국가인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조치의 실행에 들어갔다. 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 적용 제외 조치 모두 안보적 신뢰와 깊은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경제적 차원이라는 일본의 해명은 근거를 찾기 어렵다.

8월 22일 한국 정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더 이상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군사정보보호협정은 국가 간에 안보적 신뢰관계를 기초로 군사기밀을 공유하는 협정으로, 일본이 한국에 대한 불신을 공개화한 상황에서 우리로서는 불가피한 조치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결정과 동시에 미국 외교 안보라인의 핵심인사들의 입에서는 실망과 유감 표명이 끊이지 않았다.  

한국 정부가 자제를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미국의 행태는 계속됐으며, 심지어 "문재인 정부가 동북아 안보상황을 오해하고 있다"는 외교상 이례적인 표현까지 사용했다. 일본 정부 역시 미국의 입장에 적극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북한도 대남 공세로 돌아서는가 

2017년 11월 29일 화성 15형의 시험 발사를 마지막으로 현재까지 북한은 핵실험과 장거리 탄도미사일의 발사를 중단했다. 그러나 올해 5월 4일 북한은 북한판 이스칸데르급으로 추정되는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시작으로 8월 24일까지 모두 9차례 단거리 발사체 및 탄도미사일을 집중적으로 발사했다. 뿐만 아니라 7월 23일에는 이례적으로 탄도미사일 발사가 가능한 것으로 추정되는 신형 잠수함의 건조모습까지 공개했다.

북한의 무력시위와 더불어 주목할 부분은 한국에 대한 비난이다. 7월 25일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직후 김정은 위원장은 "남조선 당국자들이 세상 사람들 앞에서는 '평화의 악수'를 연출하며 공동선언이나 합의서 같은 문건을 만지작거리고, 뒤돌아 앉아서는 최신공격형 무기 반입과 합동군사연습 강행과 같은 이상한 짓을 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 정부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대부분의 무력시위가 새벽 또는 이른 아침에 이루어 졌다는 점에서,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새벽잠을 설치지 않게 해드리겠다"고 한 언급을 뒤집은 점도 눈에 띈다.

북한이 자신들의 무력시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운 F-35A 스텔스 전투기 등 최신 무기 도입이나 한미 군사연습은 모두 미국과 관계가 있다. F-35A 도입은 이미 오래 전부터 계획된 사안이며, 한미 군사연습은 공세적 성격을 최대한 배제하고 축소된 형태로 진행된 것이라는 점에서 북한의 비판은 전혀 납득되지 않는다. 

자신들이 원하는 남북관계의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북한 대남비난의 중요한 이유다. 북한 대남 비난의 행간은 남북관계의 전면 부정이 아니라 한국 정부가 대북제재와 외세를 의식해서 남북관계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이유는 장기교착 국면에 놓인 북·미협상에 있다.  

한국 정부 비난에 집중하던 북한은 8월 21일자 <노동신문>에 게재된 "우리의 자위적 국방력 강화조치는 정당하다"는 제목의 개인 필명 사설을 필두로 미국에 대해 직접적인 비난을 시작했다. 이 시기는 비건 대북정책 특별 대표가 방한해 북한과 대화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상황이었다. 8월 23일에는 리용호 외상이, 같은 달 31일에는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이례적으로 폼페이오 장관에게 독설을 퍼부었다.

특히 최선희 부상은 "북미대화에 대한 기대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으며, 지금까지의 모든 조치들을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떠밀고 있다"며 위협했다.

반면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은 자제하고 있는데, 이는 북·미 비핵화 협상국면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발사한 발사체 또는 탄도미사일의 사거리가 모두 단거리로 트럼프 대통령이 정한 레드라인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기본적으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대남 비난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북·미 비핵화 협상 교착국면에 대한 불만을 '약한 고리'인 한국을 향해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북·미 관계가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남북관계 형성이 어렵다는 판단을 토대로 선미후남(先美後南)의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북·미 비핵화 협상을 견인하려는 한국 정부에 제약이 발생한 셈이다. 

우리식 외교·안보의 길 

주변 열강의 공세와 북한의 대남 비난 국면은 역설적으로 한국 정부가 주도하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 중·러의 공세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응한 국제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는 역내 안보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자신들의 입장과 모순된다.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일본의 최근 대한 공세는 모두 북·미 비핵화협상과 한반도 안보정세에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다. 말하자면 그들은 결과적으로 그들이 원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오는 잘못된 전략선택을 하고 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결정에 대한 미국의 반응 역시 대동소이하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구사에 있어서 한·미·일 안보협력은 그 출발점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미국의 불편한 입장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문제는 사태가 이 상황까지 오게 방치한 미국 정부의 무책임이다. 미국은 일본의 반도체 관련 수출규제 조치와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막을 수 있는 두 번의 기회를 모두 방관하고 결과적으로 불가피한 조치를 선택하게 된 한국 정부를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모든 동맹은 상호간 안보적 이해관계에 따르는 것이며,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하고 신뢰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한국은 더 이상 미국의 동아시아 안보정책에 자동적·수동적으로 편입되는 존재가 아니며, 자국의 이해관계 관철을 위해서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의 방위비 분담을 넘어 전액을 부담할 경우 주한미군은 동맹을 위한 지원군이 아닌 용병으로 전락할 위험성을 내재한다. 미국의 관료들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결정을 두고 한국 최고지도자를 거론하며 '실망'과 '안보적 오해'라는 표현을 거침없이 사용하는 것은 동맹을 '실망'시키는 외교적 결례에 해당한다. 

한·미 동맹은 오랫동안 양국의 건설적인 관계에 기여해왔으며,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동아시아의 안보상황을 고려했을 때 향후에도 상당기간 그 필요성이 인정된다. 많은 한국인들은 한·미 동맹의 중요성과 한국의 발전에 기여한 미국의 역할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이 방치될 경우 미국에 대한 한국인들의 신뢰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 우려가 있다.

한·미 동맹과 한·중관계가 모두 필요한 우리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이 우리에게 동참을 요구하고 있는 인도·태평양 전략은 중국을 포위하는 전략이다. 미국은 이미 중국에 대한 즉각적 공격이 가능한 중거리 탄도미사일의 아시아 배치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했으며, 그 대상으로 한국이 포함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사드체계가 방어무기인데 비해 중거리 탄도미사일은 공격무기라는 점에서 중국의 반발은 그 정도를 예상하기 어렵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 결정에 대해 찬반을 논할 때가 아니며, 한국 외교·안보전략의 근본적인 틀을 재검토하고 중장기적인 전략을 고민할 때다. 사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박근혜 정부 말기 국민적 공감대를 결여한 상태에서 전격적으로 체결되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의 재연장 여부는 당면 한일관계 뿐만 아니라 한국 외교·안보의 중장기 전략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차원에서 신중히 고려되어야 할 사안이다. 이제 다시 새로운 출발점에 서있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토대로 우리의 정책적 행보를 가속화해야 한다. 외교·안보에 있어서 한국의 목소리를 당당히 낼 때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국익을 관철하는 입장에 양보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반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레버리지로 한·미 신뢰관계를 새롭게 정립해야 하며, 우리 주도의 외교안보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언급한 '흔들리지 않는 한반도'의 초석이며, 그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문 대통령은 곧 임기 후반을 맞이하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숨고르기 국면에 놓여 있다. 향후 대북·통일정책은 단기적 성과주의를 지양하고, 중장기 관점에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북한의 선미후남(先美後南)전략에 대한 대응체제의 구축과 아울러 비핵화를 향한 북한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북·미간에 실질적인 초기 합의를 도출함으로써 비핵화 협상의 동력을 확고히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북한과 신뢰를 형성하는 직간접적 채널을 유지하고, 인도적 협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북핵문제를 포함해 한국의 외교·안보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국익우선의 흔들리지 않는 정책적 기조 하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한국 외교·안보의 길을 찾아야 할 때다.



유엔사 권한 유지되면 한국군 작전권 행사는 불가능

[기고] 전작권 전환이후 한미연합군 지휘, 유엔사가 거의 확실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이 한국에 전환된 뒤에도 유엔군사령부(유엔사)가 실질적으로 이 권한을 갖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결론부터 밝히면, 이는 미국이 수년 전부터 추진해왔고 한국은 침묵했던 미래 밑그림의 하나다. 

미국의 이런 태도는 한미연합군 최고 지휘권을 자신이 계속 장악하면서 주한미군을 미군 장성의 지휘 하에 한반도에 계속 주둔시키려는 노림수로 해석된다. 미국은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에 대비해 1978년 11월 한미연합군사령부(연합사)를 만들었고, 이어 전작권 전환 문제가 구체화되자 껍질만 있던 유엔사를 계속 보강해왔다. 

유엔사는 1950년 6월 한국전쟁 발발 직후 설립된 군사기구다. 전쟁 기간 해외참전국 및 한국군에 작전통제권을 행사했고, 1953년 7월 체결된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되었다. 유엔사의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은 1978년 11월 연합사가 창설되면서 연합사로 넘어갔다. 현재 연합사령관 겸 주한미사령관이 유엔사 사령관을 겸직하고 있는데, 향후 연합사와 유엔사 두 사령관을 각기 다른 사람이 맡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미국이 전작권 전환이후 한미연합체제의 최고 지휘권을 유엔사가 갖게끔 하는 방침을 굳힌 원인은 북한의 미사일 개발로 알려졌다. 미국이 한반도 유사시 미군 증원군을 한반도에 직접 파견하면 북한의 미사일 공격 대상이 된다. 이를 막기 위해 미국은 유엔사 후방기지로 설정된 일본을 증원기지로 활용하는 게 전략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유엔사가 전작권을 갖게 되면 미군은 일본 내 유엔사 후방기지 7곳을 자유롭게 사용하게 된다(<한겨레> 2018년 6월 8일). 미국은 종전 선언을 할 경우 유엔사가 해체되면서 일본 내 유엔사 후방기지 7곳도 영향을 받아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큰 차질이 생길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일본은 유엔사 후방기지의 역할을 담당해 유엔군 소속의 병력과 장비를 한국으로 전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향후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위대가 미군 해상호송 등의 역할을 담당해 일본이 전력제공국이 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유엔사는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실행할 때 인천 항구 지리에 해박한 일본인 수십 명을 차출해 상륙정의 해상 및 육상 작전을 지원토록 했으며 당시 일본인 희생자가 다수 발생했다고 일본 NHK가 지난 6월 방송한 바 있다.  

미국은 향후 한반도 유사시 막대한 병력을 증파할 전략을 수립해놓았는데 이를 위해 한국이 최근 종료 결정을 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이 대단히 긴요하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한반도 유사시 미 지상군, 해군, 공군 병력 69만 명, 선박 160척, 비행기 2000대 등의 지원군을 한반도에 증강 배치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일본의 유엔사 후방기지인 비행장과 항구가 큰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는 지소미아에 의해 보장될 수 있을 것으로 미국은 판단하고 있다 (<자유아시아방송> 2019년 8월 6일). 미국 정부가 지소미아와 관련해 한국 정부에 강력한 부정적 태도를 보인 이유다.  

이와 관련해 유엔군사령부 웨인 에어 부사령관이 지난 4월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 있는 유엔사 본부에서 진행된 기자설명회에서 밝힌 유엔사에 대한 견해가 주목된다(<VOA> 2019년 4월 22일). 그는 "전작권이 주한미군에서 한국군으로 전환된 이후에도 유엔사의 지위에는 변화가 없다. 유엔사는 연합사를 지원할 것이며 그 역할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에어 부사령관은 이어 "유엔사가 해체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먼저, 유엔사가 창설될 때와 마찬가지로 유엔 안보리에서 결의안이 통과돼야 유엔사가 해체될 수 있다. 두 번째, 유엔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미국 정부가 정치적인 결정을 내리면 유엔사가 해체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유엔사가 해체될 만한 정치적 상황이나 조건, 환경이 무엇일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추측하거나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1970년대 맺어진 합참-유엔사-연합사 관계약정(TOR)에는 정전협정이 유지되는 한 유엔사가 연합사를 지휘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한겨레> 2019년 9월 5일). 에어 부사령관의 말과 <한겨레> 보도를 종합하면, 향후 유엔사가 계속 주둔하면서 한미연합사의 지휘권을 갖는다는 것인데 이렇게 될 경우 한국군의 전작권 행사는 물 건너가는 꼴을 면키 어렵다.  

미국은 해외 파병역사에서 연합군 사령관직을 계속 맡아왔다. 그 이유로 미국이 참전할 당시 동맹군 가운데 가장 강력한 군대를 보유했고, 동맹국에 무기를 배치한 사실 등이 거론된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다. 미국이 핵과 같은 첨단무기를 가장 많이 동원할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나토의 역대 최고사령관은 미군 장성이 역임해 왔고, 역대 부사령관은 영국군 또는 독일군 장성이 맡아왔다.  

미국과 한국의 국방장관은 지난해 11월 제50차 한미안보협의회의를 통해 현재의 연합사 구조를 지속 유지하기로 하고, 전작권 전환 이후 미래 연합사에서는 한국군 4성 장성이 사령관을 맡고 미군 4성 장성이 부사령관을 맡도록 한다는 공동의 공약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미국의 핵우산과 주한미군의 첨단전력 우위 등의 실상을 고려할 때 나토의 전철을 벗어나기 어렵다. 한국 정부는 국민이 확신하고 있는 한국군의 연합사 지휘라는 미래의 청사진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국민에게 알려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 일각에서 제기 되고 있는 일본 정부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해제와 지소미아 동결조치 백지화 가능성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특히 미국이 중거리 미사일을 한국에 배치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경우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은 어렵게 되고 동북아에 냉전에 다시 시작되지 않을까 우려된다.